이때 희생양을 찾지 않으면 정씨 어르신이 그에게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정지용은 정씨 어르신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럴 때 누가 '적임자'가 되면 누가 재수 없다. 곧 그의 시선은 정민아를 보고 있었다. 어쨌든 정씨 어르신은 늘 그녀를 싫어하셨으니, 그녀가 '적임자'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 저는 민아가 적임자라고 생각해요!" "전에 기본 협정도 민아가 체결했으니까요! 민아가 새 회사의 대표가 되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이 순간 정지용은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이럴 때 정민아를 힘껏 치켜세워줄 뿐만 아니라, 진지하게 말할수록 그녀는 나중에 더 비참해질 것이다. 다른 정씨 가족들은 정지용의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잠깐 생각해보더니 그래도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맞아요. 민아와 CY그룹 사람들이 잘 아니까 대표가 되어도 문제가 없을 거예요!” "게다가 민아는 지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는데, 회사에서 기생충이 될 수는 없잖아요? 차라리 겉으로만 보기 좋은 민아를 대표직에 앉히는 게 나을 거예요!" "맞아요. 민아가 가장 적합해요!" 정씨 가족들이 보기에 정민아는 승낙할 자격도 없고 용기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녀를 비웃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 모두가 너를 그렇게 밀어주는데 민아야, 너는 이 대표가 되고 싶어?" 정씨 어르신은 웃는 듯 말 듯한 표정이었고 정민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 하고 싶어?" 그가 보기에 정민아는 하늘이 용기를 주어도 감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민아는 오늘 딴생각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듣지 않았다. 이제 정씨 어르신이 몇 번 물어보자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반응했다. "할아버지, 저 하고 싶어요." 정민아는 지금 약간 자포자기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상관없이 받아들이면 된다. "뭐라고?!" 정씨 어르신의 표정이 굳
꼭 정씨 가문의 젊은 사람들 중에서 실권자 한 명을 뽑아야 한다면, 정씨 어르신은 정민아를 정말 마음에 들어했다. 그러자 정씨 어르신은 최후의 결정을 내리고 말했다. "됐어. 김세자 쪽에서는 우리 정씨 가문에서 젊은 사람을 뽑아 새 대표가 되기를 바래!" "정민아가 확실히 우리 정씨 가문에게 큰 공로가 있어!" "내 생각에 정민아가 새 회사 대표를 하는 거야." 이 말이 나오자 모든 사람들이 조용해졌고, 한참 있다가 간간이 맞장구를 쳤다. 정민아도 멍해 있다가 이제야 그녀에게 시키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들었다. 뜻밖에도 그녀를 새 회사의 대표를 맡으라는 것이다. 이 일은 어떻게 그녀에게 차례가 올 수 있지? "할아버지, 정말 안 돼요! 민아가 능력이 부족해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할아버지, 우리들 중에서 아무 사람이나 뽑아도 민아보다 나아요! 걔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요!" "맞아요! 김세자가 그의 미래의 아내에게 주는 예물을 이미 결혼한 민아가 무슨 자격이 있어요?!" 정씨 가족 사람들은 모두 정민아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정씨 어르신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정민아가 그 사람이 되는 것도 절대 원하지 않는다. 정지용은 받아들여도 정민아는 정말... 정씨 어르신의 안색이 차가워졌으며 그 같은 머리 좋은 사람이 정씨 가족들의 속셈을 모를 리가 없다. 다들 이렇게 반대하니까 그는 오히려 굳게 결심했다. 그가 보기에 정민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나중에 정씨 가문에서는 여전히 그가 결정하지 않겠는가? 만약 정지용이 정말 그 자리에 오르면, 오히려 모든 것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자, 정씨 어르신은 기침 한 번 하고 모든 소란을 제지했다. 그리고 정민아를 보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민아야! 다들 네가 새 회사의 대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난 네가 맘에 들어!" "이건 기회인데 하고 싶어?” 정민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으며
이날 정씨 가문에서 새 회사의 대표를 선출했다는 소식이 온 성남에서 널리 퍼졌다. 동시에, 새 회사의 이름도 정했다. 백운 그룹! 새로운 회사의 주요 업무가 백운 별장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딴 것이다. 그러나 성남에서 백운이라는 두 글자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백운 별원과 백운 가든은 모두 김씨 가문의 산업을 대표한다. 그런데 이번에 백운 그룹 네 글자는 뜻밖에도 CY그룹 쪽에서 통과되었다. 김세자조차도 이 백운 그룹이라는 이름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이것 때문에 한동안 소문이 분분했다. 심지어 김세자가 이날 마음에 든 사람은 아직 고등학교를 다니는 정민아의 여동생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래서 미래의 처형을 이렇게 챙겨주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을 밖에서 감히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모두 뒤에서 몇 마디 했을 뿐이다. 그리고 정민아는 정식으로 백운 그룹의 대표가 되었고, 그 후 각종 자원을 통합하는 일 때문에 팽이처럼 바쁘게 돌았다. 요즘 김예훈도 여러가지로 바쁘게 지내면서 무심한 척했다. 그러나 곧 추석이 다가오는데도 정민아는 여전히 바빴다. "김예훈, 소현이 데리러 가줘. 곧 추석 연휴인데 엄마는 걔가 학교에서 적응이 안 될까 봐 집에 와서 며칠 있으라고 했어." 정민아가 이 일이 생각났다. "알았어. 내가 데리러 갈 게." 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그와 정소현의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처제이니까 데리러 가는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회사를 떠나자 김예훈은 하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 한 대를 준비해줘요. 눈에 뛰지 않는 걸로 하면 돼요.” “네, 대표님.” 전화 건너편에서 하은혜도 숨을 돌릴 틈이 없이 매우 바빴다. 김예훈은 손 꼼짝하지 않고 남에게 시키는 일을 참 잘한다. 하은혜는 지금 매일 야근하느라 바빠서 김예훈을 도와 차를 준비할 시간도 정말 없어서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곧 양복 차림의 경호원이 차를 보내왔다. 토요타 엘파,
재벌 2세의 이름은 손학철이다.허구한 날 포르쉐를 몰고 다니며 놀고먹기밖에 하지 않는 날라리 부잣집 도련님이다.오늘 저녁 모임은 바로 그가 마련한 자리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 학생들이 어떻게 이런 곳에 와서 소비할 수 있겠는가?로열 가든 KTV 같은 곳은 하룻밤에 몇천만 원씩 소비하는 곳이었다.손학철이 오늘 밤 이곳에 온 목적은 아주 간단했다. 정소현을 인사불성으로 만들어 야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지금 어린 여자애들은 이걸 제일 두려워하지 않는가?그것으로 협박하면 바로 순한 양이 되어버릴 것이다!오늘 밤, 정소현은 절친이 선물한 옷을 입었다. 탱크톱 상의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그녀는 뽀얀 피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길쭉 뻗은 다리는 손학철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정소현은 이런 옷차림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때, 그녀가 어색하게 앉아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형부가 왔어. 가지 않으면 언니한테 꾸지람을 들을 거야.”“오면 돈 몇 푼 줘서 돌려 보내. 언니한테는 널 못 찾았다고 하면 되잖아.”“학업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은데, 놀 땐 놀아야지, 안 그러면 어떻게 시험을 잘 볼 수 있겠어?”“이런 걸 노동과 휴식의 결합,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는 거야.”손학철은 정소현의 아름다운 얼굴을 쳐다보며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자자! 술 마시면서 게임하자...”정소현의 새로운 ‘절친’ 들은 손학철과 한통속이었다. 그들은 모두 게임을 하자며 부추겼다.사실상 그들의 목적은 단순했다. 그냥 정소현을 취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정소현은 바보같이 오늘 밤의 사냥감이 자신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룸의 문이 열리고 김예훈이 걸어 들어왔다.“아저씨 누구야? 여기가 어딘지는 알아? 무슨 일이야?” 남자 몇 명이 일어나서 김예훈을 쳐다보며 말했다.여자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려고 하는 속셈이 훤히 보였다.김예훈은 그들을 무시하면서 룸 안을 훑어보고 정소현을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소현아, 집에
얼굴이 발그레한 정소현을 보고 김예훈은 이 모임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내 알아챘다.아마도 이 양아치들이 정소현한테 손을 댈 속셈인 것 같다.정소현만 바보같이 자신한테 구애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예전에 남해시에 있을 때, 정소현을 따라다니는 남자애들이 있었지만 정씨 일가의 명성이 자자하여 감히 이런 짓거리를 하지 못했다.근데 성남시가 어떤 곳인가? 억만장자도 이곳에서는 큰 소용이 없다. 워낙 부자들이 넘쳐나는 곳이라 손꼽히는 가문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김예훈, 빨리 가요! 난 안 갈 거예요. 무슨 자격으로 날 간섭해요!” 김예훈이 떠날 생각을 하지 않자 정소현은 큰 소리로 말했다.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정소현을 강제로 데려가려고 했다.“쾅-”바로 이때, 누군가가 문을 발로 찼다.한 사람이 발에 차여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너 왜 그래?” 자기 동창이라는 걸 확인한 그들은 다가가서 부축했다.뒤에는 얼굴이 빨갛게 부은 여자애가 있었다. 분명 방금 누구한테 맞은 것이다.“무슨 일이야?” 정소현 등 사람들은 얼른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그 여자애는 울면서 말했다.“방금 화장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날 괴롭혀서 얘가 몇 마디 욕해주다가 맞았어. 흐윽...”그 여자애가 울고 있는 사이 건달 몇 명이 건방진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어쭈, 생각지도 못했네! 로열 가든 KTV에 언제 이렇게 예쁜 계집애가 많았어? 오늘 밤 간만에 신나게 놀겠는데!”건달들은 정소현 등을 보고 눈빛이 반짝거렸다.그들은 거리낌 없이 길게 쭉 뻗은 여자들의 다리를 쳐다보았다.“당신들이 내 친구를 때렸어!” 손학철은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걸어나가 차갑게 말했다.학교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어떻게 친구가 남한테 괴롭힘을 당한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게다가, 그의 뒤에는 십여 명의 남학생이 있다, 고작 이 몇 명 건달들을 무서워할 리가 있나?그리고 지금 여자애들 앞에서 그들은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하나 같이 용감하게 나섰다.“그래, 내
“짝짝짝...”맨 앞에 있던 건달이 손을 뻗어 손학철의 얼굴을 가볍게 치더니 웃으며 말했다. “녀석, 아까는 그렇게 날뛰더니! 건방지게. 지금도 한 번 날뛰어 보던가? 우리가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거야?”“형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제가 눈이 삐었나 봅니다!”손학철은 나설 줄도 굽힐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내 '탁'하고 무릎을 꿇으며 사과했다.잘난 척하는 것보다 지금은 일단 살고 봐야 한다.“팍!”맨 앞의 건달이 그의 뺨을 때리고 이내 테이블 위에 있던 맥주병을 들고 머리를 내려쳤다.손학철은 처량한 비명을 질렀지만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일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룸 안은 쥐 죽은 고요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건방지게 굴던 남학생들은 지금 모두 벌벌 떨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들은 자기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날뛰다가 수십 명이 건달들을 보고는 모두 겁에 질렸다. 이때, 겁이 많은 애들은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어떤 애들은 부들부들 떨며 울먹울먹거리는데 눈빛에 공포가 가득했다.잘난 척하는 거. 여자애들의 환심을 사는 일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다들 쪼그리고 앉아. 누가 감히 일어서면 나한테 죽도록 맞을 줄 알아!”건달이 손을 대자 이내 서 있던 몇 명 남학생들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여자애들은 말할 것도 없이 모두 껴안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들은 남자애들보다 더 겁이 났다.사실, 건달들은 계속 거리낌 없이 그녀들을 쳐다보고 있었다.이때, 정소현만 담이 좀 컸다. 어찌 됐든 그녀는 큰 가문에 태어났고 견식이 좀 있는 편이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김예훈은 이미 가장 구석에 있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었다.그가 있는 자리가 하도 은밀하여 건달조차도 그를 보지 못한 것 같다.“역시 찌질한 인간이야. 저 데릴사위는 놈은 진짜 쓸모가 없구나. 언니가 저런 놈한테 시집간 건 정말 재수 없는 일이야!”정소현은 김예훈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남아있던
“송우 형님, 안으로 드시죠!”뜻밖에도 대머리는 오늘 그보다 더 높은 분을 모시고 왔다.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검은 양복 차림에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들어왔다.“송... 송우...”그 사람을 보고 손학철은 기겁했다.대머리는 기껏해야 싸움꾼이었다.하지만 송우는 달랐다!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인물로 거느리는 수하가 수없이 많았다.대머리조차도 그의 수하일 뿐이다.“송우 형님, 대머리 형님. 여기 계집애들 장난 아닙니다! 하하하!”방금 앞장섰던 그 건달이 아부했다.그 대머리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여자애들을 훑어보았다.오히려 송우는 카리스마를 뽐내며 여자애들을 자세히 보지 않고 무심하게 내뱉었다. “제일 예쁜 애들 둘 골라서 내 방으로 데려와.”그는 예전에 남해시에 정민아를 탐내나가 김예훈에게 맞아 죽을 뻔했다.머리가 총명한 편인 그는 오정범한테 호되게 당하고는 후에 오정범 밑으로 들어갔다.지금은 오정범의 명을 받고 성남시의 상황을 보러 온 것이다.평소에 그는 조용히 처신하며 지냈다. 성남시의 큰 인물을 만나면 허리를 굽히며 낮은 자세를 취했다.그러나 오늘 이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대머리가 그의 말을 듣고 이내 말했다. “여자들은 남기고 남자들은 때리고 풀어줘!”“누가 감히 밖에 나가 함부로 지껄이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안 돼요! 안 돼요!”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은 하나같이 두려움에 떨었다.특히 여자애들은 울고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남아서 무슨 일어날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방금 전까지 패기가 넘쳤던 정소현조차도 지금은 당황하여 몸을 떨기 시작했다.이런 건달들한테 짓밟히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남자애들은 극심한 공포에 부들부들 떨었다. 어떤 애는 심지어 도망갈 수만 있다면 여자애들이 어떻게 되든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노래방 파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이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손학철은 자신이 탐하던 여자가 남에게 짓밟히
주위에 있는 친구들의 눈빛, 특히 정소현의 눈빛을 느낀 손학철은 허리를 곧게 폈다.이때 그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송우 형님, 대머리 형님. 아버지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형님들은 지하 세계의 큰 인물들이시라고!”“형님들 같은 큰 인물이 저희와 같은 꼬맹이들한테 화를 내시겠습니까?”“오늘은 송우 형님께서 제 체면을 봐서 이 일을 그냥 넘어가는 게 어떠십니까?”“제 친구의 잘못이니 여기서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아버지한테 말해서 형님들을 대접하겠습니다. 어떠십니까?”말을 마치고 손학철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비록 해산물 장사를 하는 아버지이지만 엄청난 부자였다. 건달들도 그한테서 밥 빌어먹고 살아야 할 것이다.그래서 손학철은 아버지의 이름을 꺼내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송우와 대머리가 돈을 벌지 싶지 않은 한, 이 바닥에서 먹고 살려면 그의 체면을 세워주어야 할 것이다.룸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이때, 손학철은 뒷짐을 지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여자애들이 탄복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송우는 손학철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재밌군, 요즘은 새파랗게 어린놈도 내 앞에서 잘난 척을 다 해!”“넌 말할 것도 없고 네 아버지가 와도 내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할 거야! 체면을 세워달라니? 너 따위가?”말을 마치고 송우는 손학철의 뺨을 후려졌고 멀리 튕겨 나간 손학철은 이빨이 여러 개 빠졌고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다.이 순간, 룸 안의 사람들은 모두 멍해졌다.모든 사람의 희망이 깨져버린 것이다.방금 전까지도 다들 손학철이 자신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흐윽...”지금 이 순간, 학생들은 모두 절망에 빠졌고 여자애들은 작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오늘 밤, 정소현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지만 이제보니 자신도 함정에 빠지게 된 것 같다.“너 때문이야!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그래! 만약 네가 진작에 손
류서우의 편파적인 말투를 들은 나오키가 말했다.“류서우 씨, 제가 증언해 드릴게요. 저 자식이 바로 제 아들딸을 죽이고 한일 관계를 파괴한 놈이에요. 그리고 여기 쓰러져있는 일본인들도 전부 다 저 자식이 죽였어요. 살인마나 다름없는데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해요! 저런 사람이 죽지 않으면 한일 관계도 다시 호전될 수 없다고요.”나오키는 일본의 신성한 사무라이 정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어쩌면 비열한 것이 본모습이라 사무라이 정신은 그저 보여주기식일지도 몰랐다.남들이 믿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절대 믿지 않는 그런 거짓말처럼 말이다.나오키의 진심 어린 호소에 류서우가 웃으면서 말했다.“나오키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집법 부대에서는 법에 따라 이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할 거예요. 자기 사람도 다스리지 못한다면 용문당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겠죠.”류서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 회장님, 정말로 반항할 준비가 되셨어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피식 웃었다.“반항? 만약 시비를 가리지 않고, 선과 악도 구분하지 못해 악당을 도와주는 것이 집법 부대의 스타일이라면 반드시 반항해야 하겠는데?”“이런 젠장! 어디서 이런 무례한 말을 하는 거예요! 용문당 집법 부대를 모욕한 죄로 더 큰 벌을 받아야 할 거예요!”류서우는 뒷짐을 쥔채 거만하게 김예훈을 쳐다보고 있었다.“지금 아셔야 할 것은 당신은 이미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거예요. 규칙이든 법도든 하나도 빠짐없이 위반했다고요! 그런데도 저희가 나서지 않으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것 같아요?”‘하찮은 회장 주제에 공손하게 대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도전장을 내밀어?’류서우의 마음속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과거의 회장들은 류서우를 보면 바로 굽신거렸는데 처음 보는 태도에 더욱 분노를 샀다.이 순간, 류서우는 허리춤에서 활을 꺼내 김예훈의 머리를 겨냥하면서 차갑게 말했다.“손 머리 위로, 무릎 꿇으세요!”“정말 구제 불능이네.”김예훈은 한숨을
류서우는 김예훈에게 삿대질하면서 냉랭하게 말했다.“제가 집법 부대를 대표해서 알려드리는데 무기를 내려놓고 나오키 씨한테 용서를 비세요. 그리고 저희 집법 부대에서 회장님을 어떻게 처리할지 기다려 주세요. 다시 마음대로 행동했다간 체면이고 뭐고 바로 체포할 거예요. 어차피 나오토 씨도 죽이고 세이이치로 씨도 죽인 건 사실이잖아요. 증거가 확실하고 사실도 명백하니 당신을 죽여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 같아요.”이때, 류서우의 손짓하나에 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들이 활을 꺼내 김예훈을 겨냥했다.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뒤돌아 류서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마치 자신을 싫어하는 듯 공격성이 강했다.하지만 집법 부대라는 말에 김예훈은 조금이나마 그녀가 이해되기도 했다.부산 용문당 회장이 된 이후로 많은 사람의 이익을 해쳤기 때문이다.그리고 지난번 만남에서 집법 부대를 짓밟아버렸는데 그런 그들이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짓밟힌 상황에서도 류서우가 이렇게 대담하게 찾아온 것을 보면 신분이 심상치 않거나 용문당 몇몇 장로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컸다.일반적인 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라면 김예훈 앞에서 아마 기침도 하지 못했다.이때 김예훈이 담담한 표정으로 류서우를 쳐다보면서 말했다.“나오토는 내가 죽인 게 아니야. 확실한 증거도 있고, 증인과 물증도 충분한데 어떻게 내가 죄를 지었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거야? 세이이치로는 내가 나오토를 죽이지 않은 걸 알면서도 그 핑계로 나를 공격하려고 했고, 나는 그저 정방 방위했을 뿐인데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래? 나오키도 복수심에 불타서 고수들을 조직해 나를 포위하려고 했고, 이 많은 사람이 나 하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그것도 내 잘못이야? 루미코 역시 의사로 가장해 나를 암살하려고 했어. 타케이 가문에서 자꾸만 나를 괴롭히고 죽이려고 해서 나는 그저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정당 방위했을 뿐이라고. 집법 부대 제자 입장에서는 내가 무모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해? 넌 도대체 한국인이야? 아니면 일본인이야?
랜드크루저가 마당을 뚫고 들어온 순간, 누군가 차 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스무 명이 넘는 젊은 남녀가 동시에 차에서 내렸다.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거만하고 차가운 표정이었다.그중 앞장선 사마은 키가 거의 1미터 70이 넘는 긴 생머리 미녀였다.그림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있는 그녀는 세상 모든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녀는 왼손에 태블릿을 쥐고 김예훈을 힐끔 쳐다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김 회장님, 무단으로 부산을 떠나 진주에 와서 살인 방화를 저지르다뇨! 저 류서우는 정말 회장님께서 뻔뻔한 사람은 처음 보네요. 제 발로 찾아왔으니 절대 이만 갈 생각하지 마세요. 죽고 싶지 않으면 무기를 내려놓고 무릎부터 꿇으세요. 그러면 목숨만은 구제해 줄게요.”김예훈은 이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너희들 누구야?”“용문당 집법 부대인데요?”아주 깔끔한 대답이었다.“저희 당주님께서는 회장님이 부산 용문당의 안위를 무시하고 일본 손님을 도발했다는 신고를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진주에까지 와서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진주 기관은 당신 같은 사람을 용납할 수 없어요! 저희 용문당에서도 용납할 수 없고요!”“그래?”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용문당 4대 장로님이 지켜주는 집법 부대? 글쎄 왜 이렇게 거만하게 행동하는가 했네.”김예훈은 용인주의 체면을 봐서 부산 용문당 회장을 하기로 한 것이다.아니면 당주를 하라고 해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라도 해도 그의 앞에서 잘난 척할 자격이 없었다.“마침 잘 왔어. 내가 이따 나오키를 죽이면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고 현장 정리 잘해. 아무리 그래도 진주 호텔인데 사람이 죽으면 너무 불길하잖아.”김예훈을 차가운 말을 내뱉으면서 나오키를 죽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결국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이 오늘 밤 그의 목적이었다.“김 회장님!”류서우는 결국 분노하고 말았다.“지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세요? 저희 집법 부대는 당주님과 회장님을
퍽!바닥에 세게 부딪힌 나오키는 힘겹게 일어나려고 했지만, 체내에서 알 수 없는 힘이 휘몰아쳐 결국 피를 토해냈다.그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이 순간 그는 대결로 모든 생명력과 잠재력을 소진했는지 아까보다도 더 늙고 초췌해 보였다. 나오키는 창백한 얼굴로 저항하지도 않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은 채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오른손에는 여전히 검을 쥐고 있었다.아직 죽지 않았지만, 곧 죽음이 다가올 운명이었다.김예훈의 손에 목숨이 잡혀있었기에 그가 원한다면 뺨 한 대로 바로 목숨을 끝내버릴 수 있었다.“안 돼!”이 모습에 일본 고수들은 마음속 신이 무너진 것처럼 통곡했다.여전히 표정이 덤덤한 김예훈의 모습에 일본 남녀들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진세은 역시 의심할 여지 없이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정신마저 혼미해졌다.김예훈이 나오키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거로 생각지도 못했다.몇 명의 아름다운 일본 여성들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막고 있었다. 무슨 소리라도 냈다간 함께 김예훈의 손에 죽을까 봐 겁이 났다.“네가 졌어.”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이미 말했잖아. 알아서 목숨을 내놓으면 체면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왜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그런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퍽!김예훈은 단검을 나오키 앞에 떨어뜨리더니 피식 웃었다.“일본 사무라이들이 전장에 나가서 지면 알아서 목숨을 끊는다고 들었어. 그리고 항상 두 자루의 검을 가지고 다닌다지? 장검은 적을 죽이는 데 쓰이고, 단검은 자결하는 데 쓰인다고 들었어. 단검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내가 직접 빌려줄게. 네가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줄지 너무나도 궁금해.”이 말에 열몇 명의 일본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이들은 그제야 김예훈이 전혀 용서할 마음 없이 뿌리까지 뽑아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런 제기랄! 끝까지 해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환각이 나타난 것처럼 나오키의 뒤에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귀신이 나타나 검을 들고 내리치는 것 같았다.이런 한방에 마음이 약하나 자는 바로 무너지기 일쑤였다.밖에서 그 기운을 느낀 진세은은 힘이 풀려 오줌을 지릴 뻔했다.쨍!이 순간,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나타나 나오키의 검을 막았다.쨍!김예훈은 멈추지 않고 뒤로 날아가 발이 바닥에 떨어질 때 뒤로 세 발짝 물러서 나오키의 검에 담긴 기운을 물리쳤다.“흥미롭군. 이제 막 무신 급에 접어든 실력이 아니야.”김예훈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음양술로 이 실력에 도달할 수 있는 거 보면 일본 국방부의 그 몇몇 무신들도 너의 상대가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죽고 싶어서 억지로 장병급에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무신 급으로 거듭난 거야? 이 대결이 끝나면 육체가 무너지고, 사람 전체가 망가질 텐데?”김예훈은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그는 이러한 기이한 수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음양술, 주술 등을 이용하여 강제로 실력을 높이는 것은 자기 잠재력을 이미 소진하는 것과 같았다.특히 한 번에 큰 범위를 돌파하면 소진력은 더욱 무서웠다.나오키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대결이 끝나면 육체가 완전히 무너져서 병신이 될 수도 있었다.“김예훈, 너를 죽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상관없어.”나오키는 차가운 표정으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다시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샤샥!나오키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또 한 번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완전히 방어를 포기한 상태라 오히려 빈틈을 드러내며 검을 휘둘렀다.샤샥!김예훈이 무심하게 휘두른 검은 정확히 나오키의 검에 부딪혔다.나오키는 부들부들 떨면서 어쩔 수 없이 뒤로 대여섯 발짝 물러났다.이순간 나오키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렇게까지 큰 대가를 치렀는데 맞은편의 김예훈이 이 정도로 쉽게 공격을 피해버릴 줄 몰랐다.이것으로
나오키는 김예훈의 폭넓은 지식에 놀라긴 했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김예훈이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나머지 열몇 명의 일본 고수들은 소리를 지르며 추문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던 추문성은 진세은이 방금 바닥에 떨어뜨린 총을 집어 들고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퍽! 퍽! 퍽!여러 일본 고수가 피바다에 쓰러졌지만 다른 일본 고수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돌진해 왔다.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세은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전혀 움직일 수 없어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이 시각, 김예훈과 나오키는 정면으로 승부를 겨루고 있었다.샤샥!나오키가 은빛 광채를 띠는 검을 앞으로 내리치길래 김예훈은 검으로 그의 천둥 같은 일격을 막아냈다.쨍!두 검이 부딪히는 순간 고막이 터질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나오키는 숨을 가쁘게 쉬면서 연신 뒤로 물러났다.하지만 김예훈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오키를 바라보았다.“무신 급이네.”김예훈은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나오키가 종이 인형을 사용해서 실력이 업그레이드되어 무신 급이 될 줄 몰랐다.비록 오래 지속될 수도 없고, 그에 따른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무신 급은 엄연히 장병급과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예를 들어 오정범과 추문성이 젊은 층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긴 하지만 김예훈의 지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돌파구를 찾아 무신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나오키가 이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일본의 음양술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한 이유를 알수 있었다.김예훈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나오키는 이미 무표정으로 칼을 들고 다시 접근했다.일본 검도를 수련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나오키는 김예훈과 같은 상대를 상대할 때 그 어떠한 허세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매번 검을 내리칠 때마다 온갖 힘을 다해 휘둘렀다.쨍! 쨍! 쨍!무표정을 한 김예훈
어쨌든 나오키도 전설적인 인물로서 많은 풍파와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다.하지만 자기가 직접 상속자로 지정한 아들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자, 품위를 지키던 모습은 사라지고 극도의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세이이치로와 마찬가지로 신분을 밝혔는데도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며 자기 아들을 죽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이순간 나오키는 분노로 들끓기 시작하면서 김예훈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어했다.열몇 명의 일본 남녀들이 짐승처럼 포효하면서 검을 꺼내 언제든지 덮칠 준비가 되어있었다.오직 김예훈만은 무덤덤하게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추문성은 진작에 당도를 들고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진세은은 부들부들 떨면서 장례식장에서 빠져나갔고,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따라서 홍성파 정예 부하들도 얼굴이 창백해진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그 순간, 진세은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마치 느끼지 못한 듯 계속해서 중얼거렸다.“이런 미친놈은 절대 건드리면 안 돼.”진세은은 차라리 진주 감옥에 있었으면 했다.평생 감옥에 갇히더라도 이 장면을 겪고 싶지 않았다.“이런 제기랄! 감히 내 앞에서 내 아들을 죽여? 죽여버릴 거야! 너의 온 가족도! 너의 조상님들도 모조리 무덤에서 파내서 뼈를 부숴버릴 거라고!”나오키는 검을 꺼내 앞으로 돌진했다.김예훈 역시 무심하게 검을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은 부모님의 잘못이야. 네 아들이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른 것도 네가 잘 가르치지 못해서 그런거라고. 일본인이 대한민국에 왔으면 고개를 숙이고 다녔어야 한다고 진작에 말해줬어야지. 네가 불만이 많다는 거 알아. 그렇다면 내가 공정하게 대결할 기회를 줄게. 하지만 너는 분명히 내 상대가 아니야. 그러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좋을 거야. 나이를 잔뜩 처먹고 지는 것도 쪽팔리잖아.”말하는 사이, 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검을 들었다.쌍방의 원한은 이미 죽고 못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마냥 좋은 사람이 되기 싫은 김예훈은
다른 타케이 가문 사람들은 김예훈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도 나오키는 김예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예를 들어 부산 용문당 회장으로서 부산에 있을 때 야마자키파를 물리친 사실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때는 부산에 있는 야마자키파 중에 무신 급은 없었기에 김예훈이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나오키는 비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아들을 보면서 화를 내는 대신 차분한 모습이었다.김예훈은 그런 그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타케이 가문의 수장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고, 그저 약간의 호기심뿐이었다.‘장병급 주제에 대한민국에 와서 위세를 부려?’“이봐, 젊은이. 오늘 일은 여기까지인 걸로 해. 나오토 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니 일본대사관에 진주 경찰서에 잘 협조하라고 할게. 만약 네가 정말 억울한 거라면 내가 타케이 가문을 대표하여 한마디 하지. 절대 너에게 복수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국제 경찰에 수배 신청도 내리지 않을 것이고.”나오키는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나 나오키는 타케이 가문의 수장이자 야마구치파의 장로로서 절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만 가봐. 떠나기 전에 내 아들한테 사과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대가를 치러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나오키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그의 신분으로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반드시 체면을 세워줄 거로 생각한 모양이다.죽어버린 타케이 가문 정예들에 대해서는 김예훈이 좋은 조건만 제시하면 따라서 없던 일로 해줄 수 있었다.“사과? 일본인 주제에 나한테 사과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발로 바닥에 있던 검을 두 동강 냈다.사람들이 반응할 틈도 없이 그중 한 조각은 세이이치로의 목구멍에 꽂히고 말았다.세이이치로는 부들부들 떨면서 목을 부여잡은 채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러다 서서히 바닥에 널브러져 숨을 거두게 되었다.그는 진주에 오고부터 타케이 가문의 상속자이자 야마구치파의
진세은은 총을 들어 올리려다 다시 움츠러들었다.김예훈이 추문성 덕분에 위세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이순간 절망감에 휩싸이고 말았다.세이이치로는 얼굴이 찌릿찌릿한 느낌에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당연히 자존심, 자부심과 사무라이 정신마저 짓밟히고 말았다.김예훈은 휴지 한 장을 꺼내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닦으면서 말했다.“넌 나한테 안 돼.”다시 정신을 차리려던 세이이치로는 이 말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사실 김예훈을 만나기 전에 그의 실력을 과대평가한 건 사실이지만 곁에 장병급 실력자가 있다고 해도 자기 상대가 안 될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뺨 한 대에 무너질 줄이야.야마구치파든, 타케이 가문이든, 실력자든, 김예훈의 소박한 뺨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세이이치로는 절망감에 휩싸였다고 해도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김예훈, 장난 아닌데? 그런데 나를 이겨서 뭐 하려고? 나는 진주에서 직접 모신 손님인데 나를 죽였다간 어떻게 보고하려고? 어떻게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있겠어. 그래서 말인데 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나를 죽일 용기는 없을 거야. 지금 이 시대에서는 힘이 강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수 있는 건 아니거든. 김예훈,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어.”“그래?”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앞으로 다가갔다.“네가 날 이렇게 도발하는데 죽이지 않고서야 내 체면이 서겠어?”김예훈의 미소에서 살기를 느낀 진세은은 부들부들 떨면서 누군가에게 전화했다.“뭐하는 짓이야!”바로 이때, 뒷문 쪽에서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열몇 명의 일본 남녀가 검을 들고 문을 박차면서 들어왔다.조금 전의 일본인들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풍기고 있었다.뒤이어 기모노를 입은 백발의 노인이 뒷짐을 쥐고 걸어왔다.추문성은 이 사람을 보자마자 숨이 가빠지더니 본능적으로 김예훈의 앞을 가로막았다.“아버지.”상대방을 확인한 세이이치로는 뻘쭘한 표정이었다.“나오키 어르신!”진세은은 기쁜 마음에 재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