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훈은 그저 데릴 사위인 거 아니었어?”“비록 부산 용문당의 회장이라는 신분이 있지만, 용문당은 용씨 가문의 것이 아니었어?”“용씨 가문의 일꾼 주제에 어떻게 감히 용천우 씨와 맞짱을 뜨는 거야?”“게다가 이렇게 많은 국방부 사람 앞에서 직접 총기를 사용하다니...”“김예훈이 죽으려고 환장한 거야?”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이시카와 유키코는 큰 충격을 받았다.그녀는 김예훈이 곧 자신의 악몽이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지독했다!지독하기로 소문난 일본 사람에서도 김예훈과 비슷한 사람을 찾아내기 힘들었다.사실 다른 사람은 물론 용천우도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용천우는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자신이 온 힘을 다해 공격했는데 결국 김예훈의 뺨을 한 대 맞고 날아갔다.그리고 김예훈은 박천철의 총기를 들고 손쉽게 그의 팔다리를 절단했다.'김예훈에게 어떻게 이런 배짱이 있는 거지?'지금 용천우의 머릿속에서는 온통 의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끊임없이 몸을 떨었다.김예훈의 배짱은 보통이 아니었고, 상상 이상이었다.지금 그는 김예훈이 오른손을 움직여 자기 머리를 쏠까 봐 겁을 먹었다.하지만 용천우는 지금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용천우는 얼굴색이 확 변하더니 매섭게 말했다.“김예훈, 당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난 국방부 사람이고 용씨 가문 사람이야. 당신이 날 이렇게 대하는 이상, 넌 곧 죽게 되겠지! 할 수 있다면 날 바로 죽여, 그렇지 않으면...”펑!김예훈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용천우는 소름이 끼쳤고 있는 힘껏 머리를 옆으로 기울었다. 총알은 그의 이마를 스쳐 지나갔고, 그의 뒤에 있는 벽에 구멍을 하나 남겼다.하마터면 그는 김예훈의 총기에 머리가 박살 날 뻔했다.용천우는 식은땀을 흘렸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으며 입을 거의 열지 못했다.“왜? 너 아주 잘나지 않았어?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던 거 아니야? 왜 피했는데?”김예훈은 조롱하
김예훈은 생수 한 병을 꺼내서 박천철에게 던져주고는 웃으며 말했다.“천철아, 내 앞에서는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않아도 돼. 넌 지금 현직 부산 국방부의 부지휘관이고 나는 그저 일 계 평민에 불과해. 네가 나한테 예의를 갖추는 걸 다른 사람이 보기라도 하면 네 신분에 안 맞아.”박천철은 아주 진지하게 답했다.“총사령관님, 장난이 너무 지나치세요. 제가 총사령관님의 병사였던 이상, 평생 총사령관님의 병사예요.”박천철의 모습을 보더니 김예훈도 더 이상 군말하지 않고 박천철더러 앉으라고 손짓하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오늘 네가 딱 마침 왔어. 나도 원래는 네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지만, 방호철 도련님이 하도 말을 안 들으니 나도 어찌할 수가 없었어.”박천철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총사령관님, 제 밑의 부하들은 다 형님의 부하라고 생각하세요! 형님이 우리를 부르는 것은 이 병사들의 복이에요! 형님 언제 시간 한번 내서, 부산 국방부에 오셔서 훈화를 한번 해주시면 그게 바로 병사들에게 가문의 영광이에요!”김예훈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내가 손에 있는 일을 마저 정리하고 끝내면 꼭 부산 국방부에 한 번 들를게. 그리고 석지웅에게 전해줘. 용천우 같은 애를 쓰다니, 될수록 용천우를 사직하게 만들라고 전해줘.”“네!”박천철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리고 그는 약간 걱정이 담긴 말투로 물었다.“총사령관님, 전에 제가 큰형한테서 소식을 들었는데 형님께서 이번에 신분을 숨기고 부산에 왔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사람들은 다 형님의 정체를 모르실 거예요. 예를 들어 방호철, 오늘 일 때문에 그 사람은 분명 또다시 기회를 노려서 형님께 복수하려고 들 거예요. 꼭 조심하셔야 해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제게 전화 한 통만 주시면 제가 제 밑의 삼천 명 형제들을 데리고 무조건 한걸음에 달려갈게요.”김예훈은 미소를 지었다.“오늘 용천우가 세력을 믿고 기세등등하지만 않았어도 난 네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을 거야. 내 말을 명심해. 국방부의 존
부산 용문당 답례 파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서울국제공항의 VIP 공항에는 토요타 센트리 몇 대가 서 있었다.방호철은 그중 한 차량에 기대서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긴 숨을 내쉬었다.이번에 김예훈을 대응한 수단은 어떠한 우세도 점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용천우가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되면서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와야 했다.이는 방호철에게 누워서 침 뱉는 격이었다.“왜요, 방 도련님? 머리 아프세요?”짧은 치마를 입은, 기품이 있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이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모든 남자들이 한눈에 반할만한 매력을 가진 미인이었다.금릉 권씨 가문, 권연우.성남에 있을 때, 그녀는 김예훈과 정민아와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지금 방호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줄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방호철은 실눈을 뜨고 이 단아한 미인을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천우 일은 나한테 책임이 있어요. 다만 우리 용 도련님도 아마 이해할 테니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니 머리 아플 일은 없죠.”“다만 김예훈은, 데릴사위 따위가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게 놀랍네요.”“오늘 밤 부산 용문당 답례 파티에 올 텐데, 무슨 선물을 준비해야 재미있을지 고민중이에요...”“모처럼 우리 같은 사람한테 까부는 흙수저 애를 만났는데.”“너무 보기 안 좋게 짓밟을 수는 없잖아요. 그동안 노력한 시간도 있는데.”방호철의 눈에는 화 대신 장난기가 가득했다.처음에는 김예훈이 감히 자기한테 까분다는 생각에 화가 났었다.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는 이미 김예훈을 꼭 밟고 지나가야 할 언덕이라고 생각했다.김예훈을 밟아야 한다면 사자가 토끼를 잡듯 최선을 다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서울 4대 도련님의 체면이 깎이지 않겠는가?권연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저도 예전에 그 녀석을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그날 그 데릴사위가 저한테 준 느낌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그냥 평범했어요.”“근데 의외의 면이 있었네요.”“장덕수, 임강호와 박천철, 이
권연우가 웃으며 말했다.“이제 막 권세를 잡은 흙수저는 쉽게 이 사실을 잊고 인정을 인맥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죠.”“그래서 많은 흙수저들의 신분 상승 두 번째 단계가 바로 넘어져서 산산조각 나는 거죠.”“예를 들어, 오늘 밤 답례 파티에서 김예훈이 깊은 수렁에 빠진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방호철이 실눈을 뜨며 조용히 말했다.“그래요, 확실히 재미있겠네요...”“용 도련님한테 전화나 해야겠어요. 혹시 용문당 집법부대를 불러야 할지도 모르니까요.”“용문당 내부 사람들이 모두 그 녀석을 짓밟으려 할 때에도 김예훈은 부산 용문당 회장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권연우의 얼굴이 살짝 빨개지더니 담담히 말했다.“저는 그가 계속 그 자리를 지키기를 바라요. 그래야 제가 손 쓸 기회가 생기니까요...”...오후 4시, 김예훈이 막 집을 나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김예훈은 발신 번호를 확인하고는 잠깐 멈칫했다. 조인국이 전화할 줄이야.김예훈은 무의식적으로 수신 버튼을 눌렀다. 전화 반대편에서 이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예훈이야? 너 지금 어디야?”김예훈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대답했다.“오산그룹이요.”“아직도 출근하는 거야?”“근데 너 출근도 이제 여기까지야. 얼른 준비하고 천외루로 와. 나랑 인국 아저씨가 널 기다리고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김예훈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김예훈은 순간 이미연과 조인국 부부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답례 파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더 묻지 않고 택시를 타고 천외루로 향했다.천외루는 부산 해수욕장 뷰가 매력적인 찻집이었다.이곳은 부산 앞 바다와 메인 거리가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운 가게였지만 차 한 잔의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부잣집 도련님이거나 상류층 인사들뿐이었다.천외루에 도착한 김예훈이 조인국의 이름을 말하자 웨이터가 3층 VIP룸으로 데려갔다.김예훈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조인국 가족이 있었고 그 외에
이 말을 하는 조인국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이미연은 조롱 섞인 표정으로 실눈을 뜬 채 김예훈을 보며 말했다.“부인할 생각 마. 네 장모가 어제 포레스트 별장 입주민 단톡방에 들어왔어. 방금 한 얘기는 네 장모가 단톡방에서 한 거야.”“입주민 단톡방에서 자기 두 딸 공개 구혼도 하던데. 참 대단해!”이미연은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예전에 김예훈이 이들 가족을 데리고 포레스트 1호 별장을 구경시킬 때만 하더라도 이들의 체면을 구겼었다.하지만 모든 진실이 드러난 지금, 흙수저는 흙수저이고, 가난뱅이는 가난뱅이일 뿐이라는 사실이 이미연의 기분을 좋게 했다.그에 반해 조효임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우지환의 입꼬리에는 풍자 섞인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김예훈의 가면이 벗겨져서 누구보다 흥분한 것 같았다.김예훈은 미간을 어루만질 뿐 해석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임은숙의 성격대로라면 지금쯤 아마 포레스트 별장 곳곳을 누비고 다녔을 테니 말이다.모두가 도끼눈을 하는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김예훈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아저씨, 아주머니, 혹시 두 분 오늘 저를 타이르려고 오신 거라면 그러실 필요 없어요.”“제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그게...”조인국의 표정이 점점 더 난처해졌다.이미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조인국을 훑고는 입을 열었다.“예훈아, 비현실적인 환상을 품지 마. 오늘 우리는 너를 타이르려고 온 게 아니라 우리 사이의 선을 명확히 하려고 온 거야.”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리고 조인국을 쳐다봤다.조인국은 좀 찔리기는 했지만, 한숨을 내쉬고는 시선을 돌렸다.김예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연이 우지환을 가리키며 말했다.“지환이는 너도 알 거야. 삼촌인 우충식은 부산 용문당 부회장이고 새로 올라오신 회장님의 총애를 받고 있어서 신분이 되려 상승했는데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지?”“우 부회장의 인맥 덕분에 지환이가 우리 조씨 가문에 다리를 많이 놔줘서 부산 용문당의 주문이 많이 들어왔어. 지환이의 공이 크지.
조효임의 눈빛이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는 썩 달갑지 않아 보였지만 곧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지환씨가 도움을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그녀도 사실 우지환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심지어 변우진과 가깝게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 격투기 챔피언이라고 불리는 변우진도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비교해 보면 오히려 자기를 위해 많은 것을 헌신한 우지환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그래서 우지환이 오늘 밤 열리는 답례 파티의 초대장을 가지고 집에 왔을 때, 조효임은 이미연의 부추김에 못 이겨 그를 받아들이려 했다.김예훈은 조효임의 눈에 들지도 않았다.이 녀석은 예전에는 하은혜에게 빌붙어 살더니 이제 아내가 돌아오자마자 쫓겨나지 않았는가.이런 녀석을 어떻게 우지환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닌가?우지환은 담배를 다 피운 뒤,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의기양양해서 말했다.“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효임 씨도 마음에 둘 필요 없어요. 어차피 우리 앞으로 한 식구잖아요!”“식구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죠. 전 최선을 다해서 효임 씨를 도울 거예요. 최고의 인플루언서로 만들 거라고요!”“예를 들어, 오늘 밤 라이브 방송을 켜는 거예요. 답례 파티 현장을 라이브로 방송하면 분명 조회수가 폭발할 거예요!”“효임 씨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제가 드린 초대장은 최고 레벨이에요. 그곳에서 라이브 방송을 켜는 건 분명 문제없어요!”우지환이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모습을 본 김예훈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역시 우씨 집안 사람이네. 이 정도로 뻔뻔하다니.’‘허풍을 떠는 모습을 보니, 아마 우충식도 너처럼 허풍을 떨지는 못할 거야.’김예훈은 잔에 담긴 차를 다 마시고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우지환을 보며 말했다.“지환 씨, 그 초대장은 당신이 조씨 가문을 도와서 가져온 게 확실해?”“그리고 당신이 그 건물주가 확실해? 휴대폰을 나한테 보여줄 수 있어?”“김예훈, 건방지게 감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이미연이 김예훈을 노려보
이미연이 실눈을 뜨고 김예훈을 보며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예훈아, 너 설마 네가 부산 용문당 회장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우리한테 초대장도 주고? 네가 그런 자격이 있기는 해?”“그리고 네가 건물주라고? 지환이가 효임이 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는지 알기나 해?”“40억이야!”“네가 평생을 일해도 벌지 못할 돈이야, 그런데 네가 건물주라니!”“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충고 하나 할 게. 앞으로 잘 모르거나 자기가 한 일이 아니면 아는 척하지 마!”“우리 집과 너희 집이 비록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왔지만 너 때문에 멀어진 지 오래됐어!”“하나만 말할게. 앞으로 넌 우리 조씨 가문이랑은 아무 사이도 아닌 거야, 넌 그럴자격 없어!”조인국은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이미연의 말이 다 틀린 건 아니었다. 김예훈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좋아하고 체면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공을 자신의 것으로 돌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만약 이런 사람이 자기와 자신의 딸과 가까이한다면, 소중한 딸의 인생을 망치는 격이었다!조인국은 애초에 김예훈을 좋게 보았었다. 하지만 기대가 컸기에 지금 실망도 크다.“됐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오늘 너를 부른 건 몇 가지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야.”이미연은 쓸데없는 말 대신 실눈을 뜨고 김예훈을 보며 말했다.“첫째, 너를 부산으로 부른 일은 우리가 잘못했어. 사과의 의미로 여기 2,000만 원 가져가. 우리 조씨 가문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줘.”말을 마친 이미연은 핸드백에서 현금 뭉치를 꺼내서 김예훈 앞에 놓았다.“둘째, 전에 아저씨와 너의 부모님과 했던 결혼 약속에 대해서 명확히 할게!”“그건 그저 취해서 한 말일 뿐이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도 말고 마음에 담지도 마!”이미연의 말을 들은 우지환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한마디로, 아주머니는 말씀은 앞으로 효임 씨를 귀찮게 하지 말라는 뜻이야!”“두꺼비 주제에 천사 같은 오리의 고기를 먹으려 하다니.”“꿩이 봉황한테 어울
이미연은 김예훈이 있는 척 하구 허세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김예훈이 힌숨을 내어 쉬고는 조효임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줬다.“효임아, 지난 시간 동안 안 좋은 일들도 많았지만 친구는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진짜 그냥 나랑 선을 그으려는 거야? ”조효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너랑 나는 원래부터 한길을 걸을 사람이 아니라고. 전에는 아빠가 억지로 너랑 사귀게 한 거라고. 어릴 때 일은 다 지나간 일이니까 더 말하지 마.”김예훈이 말했다.“다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그럼 혼인은 그냥 없는 거로 해.”“보아하니 당신도 눈치는 있는 사람인 거 같네요.”이미연이 말을 이었다.“세 가지 일이 있어요. 오늘부터 우 도련님께서 당신을 자르셨으니 오산그룹에 가서 출근하지 않아도 돼요. 부산에서 자리를 잡고 싶거든 본인 실력으로 해내세요. 저랑 효임이는 더는 돕지 않을 거예요. 우리 집에 오지도 말고 오산그룹에 와서 행패 부리지도 말고요. 전에는 효임이를 봐서 우 도련님께서 봐주셨지만 이제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더는 봐주지 않을 거예요.”김예훈은 말을 듣고 눈을 가늘게 뜨며 우지환을 보고 말했다.“우 도련님, 진짜 저를 자르실 건가요.”우지환이 말했다.“자르면 뭐 어쩔 건데요. 오산그룹에 들어오게 했으니 당연히 말 한마디에 차버릴 수도 있는 거죠. 김예훈 씨, 운이 좋아서 계약 몇 건 성사시켰다고 오산그룹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요. 다 효임씨를 봐서 기회를 줬던 거니까요. 고마워하지는 않고 내가 도운 걸 자신의 성과로 생각하고 내 낯을 때리려고 하다니. 이런 사람을 내보내지 않으면 남겨둬서 설에 떡국이라도 해먹으라고요? 그러니까 이 사직서에 사인하시죠.”말을 하는 사이 우지환운 이미 프린트 해놓은 사직서를 테이블에 뿌리고는 김예훈이 사인을 하는 것을 기다렸다.이미연이 고급 만년필을 꺼내 김예훈의 앞에 뿌렸다.“사인 하시죠. 싸인을 하고 나면 우리 오산그룹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되는 거예요. 우리 조
외국 여자의 말을 들은 장무준은 역겨움과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바라보았다.그는 동하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김예훈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서 악취가 진동하더라니, 네 몸에서 나는 냄새였구나!”“동하임, 마리아 씨가 너한테서 어떤 악취가 난다고 했는지 알아?”“궁상맞은 냄새가 난다고 했어!”“동씨 가문은 어떻게 보면 별 보잘것없는 가문인데 자기네가 무슨 상류층 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히 진주 상류층에 끼려고 해?”“너희 동씨 가문의 그런 염치없는 모습이 참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특히 동하임 넌 영국 제국의 황녀에 비하면 길가의 개에 불과해!”장무준의 눈에는 거리낌 없는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당장 이 기생오라비를 데리고 꺼져!”“앞으로 절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참, 혼약은 할아버지한테 취소하라고 할 거야.”“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어.”“바로 너랑 이 기생오라비가 장씨 가문 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는 거야!”“3일 채우면 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어!”장무준의 빈정거림에 매서운 기운이 동하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그녀는 장무준을 차갑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장무준, 고작 며칠 동안 외국인 행세를 했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영국 제국의 개라도 된 줄 아나 봐?”“잘 들어!”“파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장무준 네놈이 3일 밤낮으로 우리 가문 문 앞에서 무릎 꿇고 빌면 파혼을 동의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이 내연녀랑 부부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내연녀?”장무준은 동하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더러운 년, 말조심해!”“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영국 제국의 황녀고 영국 제국 황위의 49번째 계승자야!”“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고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야. 너랑 너희 동씨 가문이 평생 떠받들고 모셔야 하는 존재라고!”“감히 누구한테 내연녀라고 하는 거야?”“미친 거 아니야?”“마리아 씨가 나
“장무준 저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영국 제국에서 자라서 결국 영국 제국 황실 방계의 여자 친구를 찾은 듯해요.”“저런 친밀한 모습이 해외에서 일어난 거라면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심지어 저 자식이 우리 가문이랑 진작에 파혼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저희 동씨 가문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근데 지금 우리 동씨 가문이랑 파혼도 하지 않고 내가 마중 나올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외국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내 뒤통수를 치잖아요.”“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죠!”동하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저 남자한테 관심이 없지만 자신과 동씨 가문에 먹칠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일이 일단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퍼지게 되면 동씨 가문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김예훈은 동하임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그럼 이제 어쩌려고요?”“저 남자한테 가서 당신을 좋아하는지, 결혼은 할 것인지 물어볼 건가요?”“죽어도 싫어요!”동하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간단하네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서 분명히 말해줘요.”“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는 거면 장씨 가문 쪽에서 자발적으로 파혼하게끔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에요?”김예훈은 장무준이 장현준의 손자란 걸 알고 있었지만 동하임이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다.어찌 됐든 동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이 지경에 이른데에는 자신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동씨 가문을 도와 이 일을 최대한 조용히 해결해야 했다.자신이야 나중에 진주·밀양을 떠날 거라서 상관이 없지만 동씨 가문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다.동하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혼하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장무준이 지금 이 관건적인 시기에 돌아왔는데 순순히 파혼할까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순순히 파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그 남자 교육
다음 날 시즌 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김예훈은 다시 한번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김예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힘없이 문 열러 갔고 문 앞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하임을 보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동하임 씨, 지금 아침 9시예요. 나 조금만 더 자게 해줘요!”“좀 푹 쉬게 내버려둬요!”화장한 동하임의 안색이 안 좋았고 그녀는 김예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나랑 같이 공항에 누구 좀 데리러 가요!”김예훈은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하임의 안색이 좋지 않을 걸 보자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임의 포로쉐 911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다 진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동씨 가문의 사람은 이미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동하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가 주차를 도와주고 한 레스토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안색이 좋지 않은 동하임은 에르메스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김예훈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문 채 따라나섰다.그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평소에 냉담한 동하임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다.곧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거대한 레스토랑은 이미 통째로 예약된 상태라 다른 손님은 없었고 모든 웨이터가 한 테이블 귀빈들한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테이블 중앙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서울 사람으로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듯했고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점잖고 우아한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영국 제국의 외국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관건적인 것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김예훈은 그것이 영국 제국 황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외모는 영국 제국의 장공주과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특유의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그러한 사람이 진주 국제 공항에 나타났다는 자체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몇몇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바깥 구석에 몰래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손자분이 동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었죠?”“명목상으로는 동하임의 약혼자 맞죠?”김현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그 당시 동씨 가문이 아직 집권하지 않았을 때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그의 손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해서 서울 사람들을 경멸했고 오직 영국 제국 황실의 사위가 되기만을 원했다.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으로 유학 갔고 황실 방계인 여친을 찾은 후에는 진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김현민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장현준은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 거다.김현민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제가 제대로 기억한 것 같네요.”“오늘 동하임이 현장에서 김예훈을 건드리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둥,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그 말이 퍼지게 되면 장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질 게 뻔해요.”“어쨌든 동하임은 어르신의 손자며느리이고 아직 파혼하지 않았잖아요.”“제가 보기에는 손자분이 돌아와서 동하임을 교육 좀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누가 더 권력이 있는지 동씨 가문에 단단히 알려야죠!”“고작 동씨 가문 주제에 집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장씨 가문의 은혜는 싹 다 잊은 거잖아요.”“게다가 동씨 가문을 망가뜨리면 김예훈이 계속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그 사람이 평성에서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주에서는 뿌리 없는 초목일 뿐이에요.”“동씨 가문과의 인연만 끊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밟고 올라설 수 있지 않겠어요?”“게다가 그 사람이 이번에 영국 제국을 거듭해서 모욕했는데 어르신 손자분과 황실 여자 친구가 같이 돌아와서 김예훈의 낯짝을 세게 후려갈겨 버리면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장현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김 수장님 역시 명성대로 인재시네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대신 전략과 배치를 아주 완벽하게 짜놓으셨네요.”“어떻게 체면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급한 마
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용현성이 김예훈을 제압하지 못할 거란 걸 진작에 예상했던 거예요?”“용현성은 용문당 집법부대의 부당주고 용문당 36개 지회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그런데 김예훈이 어떻게 감히 용현성의 체면을 구길 수 있어요?”김현민은 직접 장현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간단해요. 김예훈이 부산 용문당 회장 신분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회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람한테 단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덤일 뿐이에요.”“그 사람의 진짜 정체는 아마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경기도 김세자요!”“진주 이씨 가문의 이일메 큰 어르신도 그 사람을 건드렸다가 패배의 쓴맛만 봤어요.”“심지어 경기도 제일의 명문가의 모든 자원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그런 사람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게다가 용 어르신과 어르신께서 아무런 준비 없이 공격해서 큰 코만 다치게 된거예요.”김현민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장현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김현민을 응시하며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그럼 왜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제가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제가 어르신한테 그 사람의 진짜 정체를 미리 말해줬다고 해도 어르신의 성격과 용어르신의 독단성을 감안했을 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을까요?”김현민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에게 차근차근 미끼를 던졌다.“어르신과 용 어르신께서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합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분께서 미리 패배의 쓴맛을 맛보는 거예요.”“그래야 두 분께서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니깐요.”그 말을 들은 장현준의 표정이 바뀌었고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김 수장님은 날 위해서 나설
남윤지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김현민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애초에 그 두 늙은이를 내보낸 건 단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잖아요.”“첫 번째 목적은 이 기회를 빌려 용문당이 김예훈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그 한계를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그리고 두 번째는 일본이 김예훈 측과의 싸움에서 패배돼서 이번에는 영국 제국의 힘을 빌려서 그놈을 죽이려고 했잖아요.”“이제 그 두 늙은이는 도련님이 예상했던 대로 쓸모가 없어졌고 마침 저희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잘된 거 아니에요?”김현민은 담담하게 말했다.“계획은 그렇긴 한데 안타깝게도 변수가 생겼어.”“어떤 사람들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아직도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단 말이지.”김현민의 얼굴에 비웃음이 번졌다.“어떤 사람들이요?”남윤지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문 앞에서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코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얼굴이 부어오른 장현준이 거실 문을 열고 김현민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의 얼굴은 끊임없이 일그러지면서 변화하는 동시에 원한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 수장님, 김예훈 그놈 뭐예요?”“고작 용문당 회장 주제에!”“어떻게 감히 내 얼굴에 손을 대요!”“게다가 날 서양 놈들의 개라고까지 했어요!”“그놈을 당장 죽여버려요! 김 수장님, 내 원한을 꼭 갚아줘요!”“별거 아닌 놈이 감히 전임 총독의 얼굴을 때리다니!”“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진주·밀양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어요?”“또 어떻게 영국 제국 황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겠어요?”장현준은 자신과 김현민의 신분 차이를 잊은 채 붉게 부어오른 얼굴에는 증오와 사나움만 가득했다.이어서 장현준은 그의 부하들 앞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쓸모없는 것들! 이 쓸모없는 것들아!”“날 보호하지 않고 뭘 했던 거야?”“영국 제국의 퇴역 기사라면
김예훈은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그리고 김현민이 일본, 영국과 결탁한 의혹이 있는 것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큰 어르신의 생신날 김현민이 상속받으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세요.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퍼뜨려 주세요. 김현민이 밖에 나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긴장감을 줘야죠. 맨날 집에서 음모와 계략을 연구하는 것도 정신상태에 좋지 않거든요.”김현민이라는 사람은 너무 계산적이고, 자기 보호에 강했다. 그런 그에게 짜증 날 대로 짜증 난 김예훈은 이렇게라도 그를 압박하고 괴롭혀 보기로 했다.그가 미쳐 날뛰기 시작해야 자기가 짜놓은 판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알아볼게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동씨 가문은 그래도 진주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어서 이런 일은 쉽게 처리할 수 있거든요.”김예훈은 웃으면서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했다.김현민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너무 의도적으로 계획하면 안 되었다. 너무 티 나게 하면 그가 눈치챌 수 있었다.오히려 이런 무심한 계획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동하임은 갑자기 웃더니 그에게 다가가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도련님께서 저희 동씨 가문에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마땅히 내놓을 것도 없고 해서 제 몸을 바치는 거 어떨까요?”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용기를 낸 것이다.김예훈만 원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튈 것이 분명했다.“하하하.”김예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으로 동하임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하임 씨, 농담도 참.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하임 씨 아버지의 친구이자 하임 씨의 삼촌이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농담으로 저를 화나게 하면 제가 어떤 벌을 내릴지도 몰라요.”동하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께서 이런 걸 좋아하셨어요? 그러면 삼촌, 저한테 어떤 벌을 주실 건데요?”김예훈은 갑자기 주제가 잘못된 것 같아 순
“그렇다면 덕망 높은 두 분의 끊임없는 호소 끝에 김현민은 반드시 전략을 바꿔야겠죠. 만약 도련님께서 상대가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멀리 놓고 봤을 때 저 두 사람은 김현민이 자신을 위해 분풀이를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겠죠. 그렇다면 저 두 사람이 김현민의 마음을 흔들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다 단단한 고리에 작은 균열이 생길 수도 있어요. 만약 김현민이 오늘 일때문에 참지 못하고 직접 나선다면 계획이 급하게 진행되면서 그중에서 부족한 점이 보이겠죠. 어쩌면 도련님께서 이 기회를 이용해 그를 뿌리째 뽑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무튼 도련님은 이 건물에 들어선 순간부터 함정에 빠진 것이 틀림없어요.”동하임은 손에 들고 있던 수표를 김예훈에게 건넸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예훈이 흥분한 나머지 일을 너무 크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아버지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조언을 듣고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김예훈의 행동이 막무가내로 보이지만 사실은 신중한 움직임이었고, 걸음마다 김현민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비록 김예훈과 김현민이 아직 정식으로 붙지 않았지만, 신경전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현재 파악된 상황을 봤을 때 적어도 김현민은 김예훈에게서 그 어떠한 이득도 본 적이 없었다.이로써 동하임은 왜 아버지가 진주·밀양에서 아무런 기반도 없는 김예훈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지만 안타깝게도...동하임은 김예훈이 미혼일 때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이때 김예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힐끔 쳐다보았다.비록 동태원의 조언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사람은 조금만 더 가르쳐주면 곧 큰 인물이 될 사람이었다.하지만 김예훈은 인정하지 않고 피식 웃을 뿐이다.“너무 과대평가하신 거 아니에요? 저는 그저 사람을 때렸을 뿐인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신 거 아니에요? 저를 너무 그렇게 과대평가하지 말아
잠시 후, 용현성과 장현준은 처참한 모습으로 이곳을 떠났다.동하임은 손에 든 2,000억 원의 수표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김 도련님, 이번 만남은 정말 실패네요. 아무쪼록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줄 알았는데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줬냬요. 이 2,000억 원, 더 두 분이 여기저기 연락해서 겨우 모은 거예요.”동하임은 여전히 한숨이 나왔다.‘그렇게 거들먹거리더니 돈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어. 2,000억 원을 울며불며 여기저기서 빌려야 한다니.’김예훈은 그들에게 2,000억 원을 내놓으라고 한 것은 그들의 뺨을 때리는 것보다도 더 심했다.그들의 노후 자금마저 탈탈 턴 것과도 같았다.이로써 쌍방은 지금, 이 순간부터 더 이상 평화롭게 지낼 수가 없었다.“괜찮아요. 저희가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고 해도 저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었을 거예요. 어차피 저들 눈에는 제가 죽어야 마땅한 존재니까요.”김예훈은 다시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공진해가 보내온 자료를 확인했다.“소식에 따르면 용현성은 특별한 능력 없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암암리에 일본 쪽과 연락하는 것 같더라고요. 류서우가 초대하지 않았더라도 일본인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기 위해 무조건 문제를 일으키러 왔을 거예요. 장현준은 원래부터 식민지 시대 때 영국에서 기르던 개였을 뿐이에요. 평생 무릎 꿇고 개처럼 살더니 외국인이 하느님인 줄 아나 봐요. 이런 사람은 아무리 체면을 세워주고, 또 기회를 줘봤자 절대 만족하지 않을 거예요. 아무튼 제가 회장 패쪽을 내놓지 않고, 또 그들의 요구에 따라 일본에 가서 사죄하지 않는 한 둘 중 하나는 죽는 운명이었다고요.”김예훈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해서 말했다.“어차피 죽고 못 살 판에 2,000억 원을 배상하라고 한 것도 많이 봐준 거예요. 오늘 이렇게 많은 눈이 지켜보지 않았다면 저 사람들 오늘 이곳을 벗어나지도 못했어요.”김예훈의 담담한 말투에는 살기가 가득했다.그에게는 외국과 은밀히 연락하고 국민을 해치려는 비겁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