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잠긴 조명훈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더니 말했다.“방 집사님, 지금 이 상황 보셨죠? 제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차량을 강에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험성은 똑같이 존재하고요. 아가씨께서 운이 안 좋으면 강에 떨어지는 순간 차가 폭발하거나, 수면과의 거대한 충격 때문에 목숨을 잃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살릴지 말지는 방 집사님께서 결정하시죠!”머리가 똑똑한 조명훈은 결정권을 방철우에게 넘겼다.이렇게 되면 사람을 살려내면 자기 공인 것이고, 실패하면 방철우의 잘못이 되는 것이다.김예훈은 방호철과 같은 방씨 가문이라는 말에 발걸음을 돌리려다 조명훈의 말 때문에 다시 발걸음을 멈췄다.조명훈의 아이디어대로 진행시키면 살아날 확률이 미세했기 때문이다.조명훈은 분명 생명으로 장난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방철우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이내 냉정해지면서 말했다.“조 선생님께서는 이쪽 전문가시기 때문에 믿습니다. 만약 사고가 나도 선생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입니다.”이 말에 조명훈은 바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정장을 벗어 던지고 앞으로 걸어갔다.“방 집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 아가씨를 살려드리겠습니다! 제 평생직업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멈추세요!”조명훈이 람보르기니를 강에 떨어뜨리려고 할 때, 김예훈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발로 차면 충격 때문에 폭발 시간이 당겨질지도 몰라요! 그리고 엔진이 폭발하지 않는다고 해도 떨어지는 각도를 보셨어요? 앞 유리가 이미 깨진 상태라 이대로 떨어지면 차 앞 대가리부터 떨어질 것이고, 50미터 가까이 되는 수면에 부딪히면 무사할 것 같아요? 이러는 거 생명을 두고 장난치는 거잖아요! 살 희망이 전혀 안 보이잖아요!”비록 방씨 가문 사람의 생사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죽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다.현장이 고요해지고, 사람들은 일제히 김예훈에게 시선을 돌렸다.비록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설득력있다고 생각했다
김예훈이 인내심을 가지고 말했다.“전문가인 건 모르겠고, 이렇게 하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세요? 지금 유일한 방법은 재빨리 차 문을 열어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자를 밖으로 끌어내는 거예요. 모든 동작이 3초 내로 완성되어야 한다고요! 실패하는 순간 다함께 강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하면 성공할 확률이 50%는 될 거예요.”“유일한 방법이요?”조명훈도 김예훈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자신도 함께 강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 이 방법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당신이 말한 이 방법은 자기 목숨마저 바치는 것 외에 별로 설득력 없어 보이는데요? 어떻게 3초 내로 차 문을 열고, 안전벨트를 풀어 사람을 끌어내요? 누가 할 수 있다고 그러세요? 아무리 할 수 있다고 해도 아가씨 발이 앞에 걸리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걸리기만 하면 3초는 불가능한 거예요! 그러다 차량이 폭발할 수도 있고요. 이봐요, 모르면 그냥 가만히 있어요. 사람 살리는 데 방해하지 말고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 같아요? 아가씨 신분을 듣고 어떻게든 방씨 가문에 잘 보이고 싶은 거잖아요. 그런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 거예요. 아가씨를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요. 계속 옆에서 알짱거렸다가 사람 살리는데 방해되면 알아서 책임지세요!”조명훈은 방철우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방 집사님, 이 사람 데리고 물러나 주세요. 사람 살리는데 방해되지 않게요.”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이러면 정말 사고 날 거라고요...”방철우도 미간을 찌푸리고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이봐요. 젊은이. 당신은 안전관리 전문가예요 아니면 소방대원이에요?”김예훈이 고개를 흔들었다.“저는 그저 예전에 국방부에서 일했던 적이 있어서 이 방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입니다.”방철우가 멈칫하면서 물었다.“어느 부대에 있었는데요?”김예훈이 고개를 흔들었다.“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방면에서는 조명훈 씨 못지않게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김예훈을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방씨 가문 아가씨의 생명을 가지고 이런 장난을 치다니.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현장에 있던 여자들은 가소로운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감히 안전관리 전문가와 아는 척을 하다니. 주제 파악도 하지 못하네.’“그런데 이분이 말씀하신 대로 맨손으로 밀 수는 없잖아요. 인체에도 정전기가 있는데 터치했다가 연료 탱크가 폭발할 수도 있다고요...”김예훈이 좋은 마음에 알려줬지만 방철우는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이봐, 젊은이. 계속 방해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때, 보디가드 두 명이 다가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김예훈이 한마디라도 더하면 당장 쥐어팰 듯이 말이다.이 모습에 김예훈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난 그저 사람을 살리고 싶은 마음뿐인데 방씨 가문에서 날 믿어주지 않으니...’김예훈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이대로 갔다간...’“그래요. 알아서 하세요. 성공하길 기원할게요.”사람을 살리지 못하게 하니 더는 설득하지 않고 뒤돌아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사람들은 가소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요즘 젊은이들은 나쁜 것만 배워.”“이런 장소에서 허세를 부리면 안 된다는 거 모르나?’“사람이 너무 가벼워 보여!”사람들은 김예훈 같은 사람이야말로 강에 내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조명훈은 피식 웃더니 앞으로 다가가 람보르기니 차에 오른손을 갖다 댔다.퍽!손바닥이 닿인 순간 정전기 때문에 연료 탱크가 폭발하고 말았다.조명훈은 순식간에 저 멀리 날아가 피를 토해냈다.끼익!전체 차량에 불이 붙어 차를 지탱하고 있던 난간 하나가 끊어져 끝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말았다.유일하게 남은 난간 하나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짧으면 30초, 길어봤자 1분 내로 강에 떨어질 것이 뻔했다.심지어 강에 떨어지는 도중에 대형 폭발이 일어날지도 몰랐다.“헐! 저 자식 말이 맞았어!”“안전관리 전문가라며? 왜 정전기 때문에 폭발이
이 말에 주위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 아무도 몰랐다.방씨 가문 아가씨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1분1초가 시급한 상황이었다.특히나 당사자인 그녀에게는 눈뜨고 자신의 목숨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몰랐다.“얼른 방법 좀 생각해 보라고!”방철우가 조명훈의 멱살을 잡으면서 소리쳤다.조명훈은 이 순간 울상이었다.“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요. 얼른 구조대원이나 불러요! 얼른요! 아님. 죽을지도 몰라요!”조명훈은 눈앞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비록 방철우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일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을 줄 몰랐다.전국 10대 명문가 중의 하나인 서울 방씨 가문은 힘이 강해 전문가한테 현장 확인을 요청하면 아까의 행동이 얼마나 무모한 행동이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여론 때문에 당장 조명훈을 죽이진 못해도 전국 10대 명문가로서 서서히 피를 말려 죽일 방법이 수만 가지였다.“이런 젠장! 전체 부산, 그리고 전체 대한민국에서 당신보다 대단한 안전관리 전문가가 없다며! 인제 와서 구조대원을 부르라고? 진작에 그러지 그랬어!”방철우는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다가 조명훈을 걷어차더니 보디가드한테 소리 질렀다.“얼른 구조대원이나 불러! 빨리!”“이봐요. 요즘은 구조대원이 출동하는데 최소 5분이나 걸려요. 그런데 차까지 막히는데 도착하면 이미...”구경하고 있던 사람이 말했다.“아까 모든 것을 간파한 그 젊은이가 살릴 수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그 사람부터 찾아봐요!”“그 꼴로 사람을 살린다고요? 분명 얻어걸린 거겠죠!”김예훈이 사람을 살려내면 자신한테 불리했기 때문에 조명훈이 다급한 나머지 말했다.“방 집사님, 얼른 구조대원이나 부르세요! 더 이상 기회를 놓치지 말고요!”“꺼져!”조명훈의 심리를 알아챈 방철우은 냉정해지기로 했다.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목이 빠져라 구조대원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그는 또 조명훈을 발로 걷어차고는 인파를 파헤치고 김예훈이 떠난 방향을 뒤쫓아갔다.100m 가
“다들 비키세요! 차량이 다시 폭발할 수 있으니 최대한 멀리하세요!”십몇 초 뒤, 김예훈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장갑 있으신 분 있나요? 저 좀 빌려주세요!”누군가 고무장갑을 던져주길래 바로 손에 끼고 앞으로 나섰다.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허세만 부리던 조명훈과는 달리 사람을 살리려는 진심과 위기 속에서도 차분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전혀 서두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전문가나 다름없네!”“이봐요. 조심하세요!”“보고만 있지 말고 얼른 구급차나 소방차가 지나갈 수 있게 차 빼세요!”“...”다른 사람들이 뭘 하든 김예훈은 바로 운전석으로 다가갔다.소녀의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보고 조용히 하라는 손짓하고는 왼손으로 차 문을 열었다.빠직!차 문이 분리되는 순간, 위태롭던 난간 하나가 철저히 끊어지고 말았다.람보르기니 차량이 서서히 아래로 쏠리자 김예훈이 앞으로 덮쳤다.풍덩!퍽!김예훈이 몸을 날린 순간 차량이 강에 떨어지면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사람들은 환해진 수면 위 불꽃을 보면서 한순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네. 아까 그 젊은이, 죽을힘을 다해 살리려고 했는데 결국 한발짝 늦어버렸어.’방철우와 두 보디가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절망스럽게 바닥에 무릎 꿇고 말았다.“제가 진작에 말씀드렸잖아요! 방법이 없다고! 제가 전문가인데 제 판단이 틀렸겠습니까? 그러다 결국 사고가 났죠? 제가 잘못 판단한 거 아니죠?”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조명훈이 박장대소를 지었다.사람들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인제 보니 조명훈 씨 판단이 맞았어. 만약 아까 젊은이처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사람 살리려고 덮쳤다면 죽은 사람이 조명훈 씨일지도 몰라.”“저기요. 무릎만 꿇고 있지 말고 저 좀 도와주세요...”바로 이때, 허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폭발 연기가 사라지고, 방철우는 난간을 잡고있는 손가락을 발견하고 멈칫하고 말았다.내려다보았더니 김예훈이 한 손으로는 난간을 잡고
성별을 불문하고 김예훈은 그녀에게 심폐소생을 해주기 시작했다. “쿨럭!”잠시 후, 그녀는 격렬하게 기침하기 시작하더니 피를 토해내면서 호흡이 다시 돌아왔다.김예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방철우에게 말했다.“됐어요. 괜찮아졌어요. 그래도 이따 구급차가 도착하면 전신 검사를 해보세요. 그리고 운전 좀 자제시켜 주세요. 이런 스피드가 빠른 스포츠카는 조금만 방심해도 사고 나기 일쑤예요.”“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방철우는 무례했던 아까와는 달리 공손하기만 했다.위험했던 상황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그녀가 다시 살아난 것을 보자 사람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김예훈을 무시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여자들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변했다.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 묻고 따지지도 않고 낯선 여자를 살려내는 남자야말로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했다.아까까지만 해도 박장대소를 짓던 조명훈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얼굴이 극도로 어두워졌다.비록 김예훈이 이쪽으로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찔렸다.김예훈한테 진 것도 모자라 방씨 가문의 복수를 받을지도 몰랐다.이런 생각에 그는 바닥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었다.“이봐요. 혹시 연락처 좀 남길 수 있을까요? 저희가 은혜에 보답하려고요.”방철우는 보디가드더러 아가씨를 부축하라고는 김예훈에게 공손하게 부탁했다.하지만 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냥 지나가던 김에 도와드렸을 뿐입니다. 마음에 두지 마세요.”그러고는 뒤돌아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방씨 가문과는 둘 중의 하나가 죽어야만 끝나는 관계라 이름을 남겼다가 이 소녀한테 피해가 갈까 봐 두려웠다.방철우는 멈칫하고 말았다. 방씨 가문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이 만나보았어도 오히려 멀리하려는 그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다.“오빠, 저는 방수아라고 해도. 혹시 성함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이 떠나려는 순간, 방수아가 손을 잡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생명의 은혜를 꼭 보답하려고요.”방수아는 혼절 상태였
“저기요...”방수아는 뒤따라가고 싶었지만 몸이 워낙 허약해서 몇 발짝 가지도 않아 헐레벌떡 숨쉬기 시작했다.“아가씨, 그만 쫓아가세요.”방철우가 핸드폰으로 찍은 김예훈의 옆모습을 보여주면서 말했다.“이거 방금 제가 찍은 옆모습이에요. 저희 힘으로 부산에서 사람 하나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더군다나 실력이 뛰어나신 분인데 더욱 찾기 쉽겠죠.”방수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명문가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똑똑하기로 소문났다.“방 집사님, 비밀리에 알아봐 주세요. 아마도 놀라운 신분을 가지고 계셔서 다른 사람한테 알리기 싫어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찾되 절대 폐를 끼치면 안 돼요.”방철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 찾아볼게요.”“네. 그러면 잘 부탁드릴게요.”방수아의 눈빛은 의미심장하기만 했다.늘 접촉해 왔던 세자님, 부잣집 도련님과는 달리 김예훈이야말로 진정한 남자라고 느껴졌다.심지어 서울 4대 도련님 중의 한 명인 오빠 방호철 역시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차를 주차했던 곳에 갔더니 토요타 알파드는 보이지 않았다. 김예훈은 바로 육지후가 몰고 갔다고 생각했다.김예훈은 한숨을 내쉬고는 어느 한구석을 찾아 최산하에게 전화해서 포레스트 별장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집으로 가던 길, 정소현한테서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형부, 큰일 났어요. 빨리 집에 돌아오면 안 돼요?”김예훈은 멈칫하고 말았다.‘이제 집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큰일 나?’“왜 그래?”정소현의 목소리는 울상이었다.“형부, 차를 육지후한테 빌려주면 어떡해요. 저 자식 면허도 없다고요! 아까 주차장에서 외제 차 몇십 대를 받아버렸어요. 지금 차 주인들이 집까지 찾아와서 난리예요. 저마다 한정판 스포츠카라고 하던데... 저희보고 배상하라고 난리예요. 심지어 어떤 차 주인들은 자동차구매 영수증까지 가지고 왔어요. 대충 계산해 보니까 배상금이 4, 500억 원은 되겠더라고요.”전화기 너머의 정소현은 머리가 지
집 안으로 들어가자 온통 액세서리로 치장한 아줌마들과 정장 차림의 아저씨들이었다.다 화려한 옷차림이었지만 상류사회 인사들처럼 우아하지는 않고, 포악스럽기만 했다.정군과 정소현은 피곤한 상태로 구석에 숨고 있었다.오직 육미선과 육지후가 그들과 다투고 있었다.“당장 배상하세요!”“포레스트 별장에서 살면 남의 주차장에 와서 함부로 박아도 됩니까?”“무조건 배상하세요!”“누군지는 몰라도 배상하지 않으면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김예훈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포레스트 별장에는 개인 주차장이 있었지만 육지후가 이곳에 와본 적 없었기 때문에 맞은편에 있는 부자 동네 주차장에 가서 차를 몇십 대 박아버린 것이다.그곳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벼락부자라 소질이 별로 높지도 않았다. 차가 아무이유 없이 고장 났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꼭 육미선 모자한테서 배상금을 받아내기로 했다.이때 한 아줌마가 육미선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저 차 노후 준비할 돈으로 샀단 말이에요! 돈 안 내놓으면 다 같이 죽을 수밖에 없어요!”“포레스트 별장에서 살고 있으면서 돈이 없다고요? 누가 당신 말을 믿겠어요!”“얼른 돈이나 내놔요! 아니면 죽도록 팰 거니까!”쏟아붓는 폭언에 육미선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그만하지 못해요? 몇 번을 말해요! 저랑 제 아들도 피해자라고요! 이 차 우리 아들 것도 아니에요. 면허도 없는데 기사 놈이 글쎄 운전하게 했다니까요? 배상금을 받고 싶으면 기사 놈한테 받으세요. 아니면 이집 주인한테서 받으시든가요. 포레스트 별장에서 살고 있으면 어떻게든 갚겠죠! 갚을 능력이 못 된다고 하면 이 별장을 내놓으라고 하면 되잖아요!”육미선은 원래 인성이 안 좋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가만히 있었겠지만 전혀 굴하지 않고 응당하다는 듯이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아들 육지후도 억울한 듯 옆에서 거들고 있었다.임은숙은 어디에 숨었는지도 몰랐다. 정군과 정소현이 말리지 않았다면 이 아줌마들이 새로 리모델링한 별장을
외국 여자의 말을 들은 장무준은 역겨움과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바라보았다.그는 동하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김예훈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서 악취가 진동하더라니, 네 몸에서 나는 냄새였구나!”“동하임, 마리아 씨가 너한테서 어떤 악취가 난다고 했는지 알아?”“궁상맞은 냄새가 난다고 했어!”“동씨 가문은 어떻게 보면 별 보잘것없는 가문인데 자기네가 무슨 상류층 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히 진주 상류층에 끼려고 해?”“너희 동씨 가문의 그런 염치없는 모습이 참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특히 동하임 넌 영국 제국의 황녀에 비하면 길가의 개에 불과해!”장무준의 눈에는 거리낌 없는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당장 이 기생오라비를 데리고 꺼져!”“앞으로 절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참, 혼약은 할아버지한테 취소하라고 할 거야.”“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어.”“바로 너랑 이 기생오라비가 장씨 가문 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는 거야!”“3일 채우면 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어!”장무준의 빈정거림에 매서운 기운이 동하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그녀는 장무준을 차갑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장무준, 고작 며칠 동안 외국인 행세를 했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영국 제국의 개라도 된 줄 아나 봐?”“잘 들어!”“파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장무준 네놈이 3일 밤낮으로 우리 가문 문 앞에서 무릎 꿇고 빌면 파혼을 동의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이 내연녀랑 부부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내연녀?”장무준은 동하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더러운 년, 말조심해!”“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영국 제국의 황녀고 영국 제국 황위의 49번째 계승자야!”“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고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야. 너랑 너희 동씨 가문이 평생 떠받들고 모셔야 하는 존재라고!”“감히 누구한테 내연녀라고 하는 거야?”“미친 거 아니야?”“마리아 씨가 나
“장무준 저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영국 제국에서 자라서 결국 영국 제국 황실 방계의 여자 친구를 찾은 듯해요.”“저런 친밀한 모습이 해외에서 일어난 거라면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심지어 저 자식이 우리 가문이랑 진작에 파혼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저희 동씨 가문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근데 지금 우리 동씨 가문이랑 파혼도 하지 않고 내가 마중 나올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외국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내 뒤통수를 치잖아요.”“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죠!”동하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저 남자한테 관심이 없지만 자신과 동씨 가문에 먹칠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일이 일단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퍼지게 되면 동씨 가문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김예훈은 동하임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그럼 이제 어쩌려고요?”“저 남자한테 가서 당신을 좋아하는지, 결혼은 할 것인지 물어볼 건가요?”“죽어도 싫어요!”동하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간단하네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서 분명히 말해줘요.”“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는 거면 장씨 가문 쪽에서 자발적으로 파혼하게끔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에요?”김예훈은 장무준이 장현준의 손자란 걸 알고 있었지만 동하임이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다.어찌 됐든 동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이 지경에 이른데에는 자신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동씨 가문을 도와 이 일을 최대한 조용히 해결해야 했다.자신이야 나중에 진주·밀양을 떠날 거라서 상관이 없지만 동씨 가문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다.동하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혼하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장무준이 지금 이 관건적인 시기에 돌아왔는데 순순히 파혼할까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순순히 파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그 남자 교육
다음 날 시즌 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김예훈은 다시 한번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김예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힘없이 문 열러 갔고 문 앞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하임을 보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동하임 씨, 지금 아침 9시예요. 나 조금만 더 자게 해줘요!”“좀 푹 쉬게 내버려둬요!”화장한 동하임의 안색이 안 좋았고 그녀는 김예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나랑 같이 공항에 누구 좀 데리러 가요!”김예훈은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하임의 안색이 좋지 않을 걸 보자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임의 포로쉐 911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다 진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동씨 가문의 사람은 이미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동하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가 주차를 도와주고 한 레스토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안색이 좋지 않은 동하임은 에르메스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김예훈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문 채 따라나섰다.그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평소에 냉담한 동하임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다.곧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거대한 레스토랑은 이미 통째로 예약된 상태라 다른 손님은 없었고 모든 웨이터가 한 테이블 귀빈들한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테이블 중앙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서울 사람으로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듯했고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점잖고 우아한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영국 제국의 외국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관건적인 것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김예훈은 그것이 영국 제국 황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외모는 영국 제국의 장공주과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특유의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그러한 사람이 진주 국제 공항에 나타났다는 자체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몇몇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바깥 구석에 몰래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손자분이 동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었죠?”“명목상으로는 동하임의 약혼자 맞죠?”김현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그 당시 동씨 가문이 아직 집권하지 않았을 때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그의 손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해서 서울 사람들을 경멸했고 오직 영국 제국 황실의 사위가 되기만을 원했다.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으로 유학 갔고 황실 방계인 여친을 찾은 후에는 진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김현민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장현준은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 거다.김현민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제가 제대로 기억한 것 같네요.”“오늘 동하임이 현장에서 김예훈을 건드리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둥,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그 말이 퍼지게 되면 장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질 게 뻔해요.”“어쨌든 동하임은 어르신의 손자며느리이고 아직 파혼하지 않았잖아요.”“제가 보기에는 손자분이 돌아와서 동하임을 교육 좀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누가 더 권력이 있는지 동씨 가문에 단단히 알려야죠!”“고작 동씨 가문 주제에 집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장씨 가문의 은혜는 싹 다 잊은 거잖아요.”“게다가 동씨 가문을 망가뜨리면 김예훈이 계속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그 사람이 평성에서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주에서는 뿌리 없는 초목일 뿐이에요.”“동씨 가문과의 인연만 끊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밟고 올라설 수 있지 않겠어요?”“게다가 그 사람이 이번에 영국 제국을 거듭해서 모욕했는데 어르신 손자분과 황실 여자 친구가 같이 돌아와서 김예훈의 낯짝을 세게 후려갈겨 버리면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장현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김 수장님 역시 명성대로 인재시네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대신 전략과 배치를 아주 완벽하게 짜놓으셨네요.”“어떻게 체면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급한 마
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용현성이 김예훈을 제압하지 못할 거란 걸 진작에 예상했던 거예요?”“용현성은 용문당 집법부대의 부당주고 용문당 36개 지회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그런데 김예훈이 어떻게 감히 용현성의 체면을 구길 수 있어요?”김현민은 직접 장현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간단해요. 김예훈이 부산 용문당 회장 신분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회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람한테 단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덤일 뿐이에요.”“그 사람의 진짜 정체는 아마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경기도 김세자요!”“진주 이씨 가문의 이일메 큰 어르신도 그 사람을 건드렸다가 패배의 쓴맛만 봤어요.”“심지어 경기도 제일의 명문가의 모든 자원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그런 사람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게다가 용 어르신과 어르신께서 아무런 준비 없이 공격해서 큰 코만 다치게 된거예요.”김현민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장현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김현민을 응시하며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그럼 왜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제가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제가 어르신한테 그 사람의 진짜 정체를 미리 말해줬다고 해도 어르신의 성격과 용어르신의 독단성을 감안했을 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을까요?”김현민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에게 차근차근 미끼를 던졌다.“어르신과 용 어르신께서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합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분께서 미리 패배의 쓴맛을 맛보는 거예요.”“그래야 두 분께서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니깐요.”그 말을 들은 장현준의 표정이 바뀌었고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김 수장님은 날 위해서 나설
남윤지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김현민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애초에 그 두 늙은이를 내보낸 건 단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잖아요.”“첫 번째 목적은 이 기회를 빌려 용문당이 김예훈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그 한계를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그리고 두 번째는 일본이 김예훈 측과의 싸움에서 패배돼서 이번에는 영국 제국의 힘을 빌려서 그놈을 죽이려고 했잖아요.”“이제 그 두 늙은이는 도련님이 예상했던 대로 쓸모가 없어졌고 마침 저희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잘된 거 아니에요?”김현민은 담담하게 말했다.“계획은 그렇긴 한데 안타깝게도 변수가 생겼어.”“어떤 사람들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아직도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단 말이지.”김현민의 얼굴에 비웃음이 번졌다.“어떤 사람들이요?”남윤지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문 앞에서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코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얼굴이 부어오른 장현준이 거실 문을 열고 김현민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의 얼굴은 끊임없이 일그러지면서 변화하는 동시에 원한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 수장님, 김예훈 그놈 뭐예요?”“고작 용문당 회장 주제에!”“어떻게 감히 내 얼굴에 손을 대요!”“게다가 날 서양 놈들의 개라고까지 했어요!”“그놈을 당장 죽여버려요! 김 수장님, 내 원한을 꼭 갚아줘요!”“별거 아닌 놈이 감히 전임 총독의 얼굴을 때리다니!”“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진주·밀양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어요?”“또 어떻게 영국 제국 황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겠어요?”장현준은 자신과 김현민의 신분 차이를 잊은 채 붉게 부어오른 얼굴에는 증오와 사나움만 가득했다.이어서 장현준은 그의 부하들 앞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쓸모없는 것들! 이 쓸모없는 것들아!”“날 보호하지 않고 뭘 했던 거야?”“영국 제국의 퇴역 기사라면
김예훈은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그리고 김현민이 일본, 영국과 결탁한 의혹이 있는 것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큰 어르신의 생신날 김현민이 상속받으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세요.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퍼뜨려 주세요. 김현민이 밖에 나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긴장감을 줘야죠. 맨날 집에서 음모와 계략을 연구하는 것도 정신상태에 좋지 않거든요.”김현민이라는 사람은 너무 계산적이고, 자기 보호에 강했다. 그런 그에게 짜증 날 대로 짜증 난 김예훈은 이렇게라도 그를 압박하고 괴롭혀 보기로 했다.그가 미쳐 날뛰기 시작해야 자기가 짜놓은 판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알아볼게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동씨 가문은 그래도 진주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어서 이런 일은 쉽게 처리할 수 있거든요.”김예훈은 웃으면서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했다.김현민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너무 의도적으로 계획하면 안 되었다. 너무 티 나게 하면 그가 눈치챌 수 있었다.오히려 이런 무심한 계획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동하임은 갑자기 웃더니 그에게 다가가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도련님께서 저희 동씨 가문에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마땅히 내놓을 것도 없고 해서 제 몸을 바치는 거 어떨까요?”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용기를 낸 것이다.김예훈만 원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튈 것이 분명했다.“하하하.”김예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으로 동하임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하임 씨, 농담도 참.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하임 씨 아버지의 친구이자 하임 씨의 삼촌이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농담으로 저를 화나게 하면 제가 어떤 벌을 내릴지도 몰라요.”동하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께서 이런 걸 좋아하셨어요? 그러면 삼촌, 저한테 어떤 벌을 주실 건데요?”김예훈은 갑자기 주제가 잘못된 것 같아 순
“그렇다면 덕망 높은 두 분의 끊임없는 호소 끝에 김현민은 반드시 전략을 바꿔야겠죠. 만약 도련님께서 상대가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멀리 놓고 봤을 때 저 두 사람은 김현민이 자신을 위해 분풀이를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겠죠. 그렇다면 저 두 사람이 김현민의 마음을 흔들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다 단단한 고리에 작은 균열이 생길 수도 있어요. 만약 김현민이 오늘 일때문에 참지 못하고 직접 나선다면 계획이 급하게 진행되면서 그중에서 부족한 점이 보이겠죠. 어쩌면 도련님께서 이 기회를 이용해 그를 뿌리째 뽑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무튼 도련님은 이 건물에 들어선 순간부터 함정에 빠진 것이 틀림없어요.”동하임은 손에 들고 있던 수표를 김예훈에게 건넸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예훈이 흥분한 나머지 일을 너무 크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아버지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조언을 듣고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김예훈의 행동이 막무가내로 보이지만 사실은 신중한 움직임이었고, 걸음마다 김현민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비록 김예훈과 김현민이 아직 정식으로 붙지 않았지만, 신경전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현재 파악된 상황을 봤을 때 적어도 김현민은 김예훈에게서 그 어떠한 이득도 본 적이 없었다.이로써 동하임은 왜 아버지가 진주·밀양에서 아무런 기반도 없는 김예훈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지만 안타깝게도...동하임은 김예훈이 미혼일 때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이때 김예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힐끔 쳐다보았다.비록 동태원의 조언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사람은 조금만 더 가르쳐주면 곧 큰 인물이 될 사람이었다.하지만 김예훈은 인정하지 않고 피식 웃을 뿐이다.“너무 과대평가하신 거 아니에요? 저는 그저 사람을 때렸을 뿐인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신 거 아니에요? 저를 너무 그렇게 과대평가하지 말아
잠시 후, 용현성과 장현준은 처참한 모습으로 이곳을 떠났다.동하임은 손에 든 2,000억 원의 수표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김 도련님, 이번 만남은 정말 실패네요. 아무쪼록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줄 알았는데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줬냬요. 이 2,000억 원, 더 두 분이 여기저기 연락해서 겨우 모은 거예요.”동하임은 여전히 한숨이 나왔다.‘그렇게 거들먹거리더니 돈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어. 2,000억 원을 울며불며 여기저기서 빌려야 한다니.’김예훈은 그들에게 2,000억 원을 내놓으라고 한 것은 그들의 뺨을 때리는 것보다도 더 심했다.그들의 노후 자금마저 탈탈 턴 것과도 같았다.이로써 쌍방은 지금, 이 순간부터 더 이상 평화롭게 지낼 수가 없었다.“괜찮아요. 저희가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고 해도 저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었을 거예요. 어차피 저들 눈에는 제가 죽어야 마땅한 존재니까요.”김예훈은 다시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공진해가 보내온 자료를 확인했다.“소식에 따르면 용현성은 특별한 능력 없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암암리에 일본 쪽과 연락하는 것 같더라고요. 류서우가 초대하지 않았더라도 일본인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기 위해 무조건 문제를 일으키러 왔을 거예요. 장현준은 원래부터 식민지 시대 때 영국에서 기르던 개였을 뿐이에요. 평생 무릎 꿇고 개처럼 살더니 외국인이 하느님인 줄 아나 봐요. 이런 사람은 아무리 체면을 세워주고, 또 기회를 줘봤자 절대 만족하지 않을 거예요. 아무튼 제가 회장 패쪽을 내놓지 않고, 또 그들의 요구에 따라 일본에 가서 사죄하지 않는 한 둘 중 하나는 죽는 운명이었다고요.”김예훈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해서 말했다.“어차피 죽고 못 살 판에 2,000억 원을 배상하라고 한 것도 많이 봐준 거예요. 오늘 이렇게 많은 눈이 지켜보지 않았다면 저 사람들 오늘 이곳을 벗어나지도 못했어요.”김예훈의 담담한 말투에는 살기가 가득했다.그에게는 외국과 은밀히 연락하고 국민을 해치려는 비겁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