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잠긴 조명훈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더니 말했다.“방 집사님, 지금 이 상황 보셨죠? 제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차량을 강에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험성은 똑같이 존재하고요. 아가씨께서 운이 안 좋으면 강에 떨어지는 순간 차가 폭발하거나, 수면과의 거대한 충격 때문에 목숨을 잃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살릴지 말지는 방 집사님께서 결정하시죠!”머리가 똑똑한 조명훈은 결정권을 방철우에게 넘겼다.이렇게 되면 사람을 살려내면 자기 공인 것이고, 실패하면 방철우의 잘못이 되는 것이다.김예훈은 방호철과 같은 방씨 가문이라는 말에 발걸음을 돌리려다 조명훈의 말 때문에 다시 발걸음을 멈췄다.조명훈의 아이디어대로 진행시키면 살아날 확률이 미세했기 때문이다.조명훈은 분명 생명으로 장난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방철우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이내 냉정해지면서 말했다.“조 선생님께서는 이쪽 전문가시기 때문에 믿습니다. 만약 사고가 나도 선생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입니다.”이 말에 조명훈은 바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정장을 벗어 던지고 앞으로 걸어갔다.“방 집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 아가씨를 살려드리겠습니다! 제 평생직업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멈추세요!”조명훈이 람보르기니를 강에 떨어뜨리려고 할 때, 김예훈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발로 차면 충격 때문에 폭발 시간이 당겨질지도 몰라요! 그리고 엔진이 폭발하지 않는다고 해도 떨어지는 각도를 보셨어요? 앞 유리가 이미 깨진 상태라 이대로 떨어지면 차 앞 대가리부터 떨어질 것이고, 50미터 가까이 되는 수면에 부딪히면 무사할 것 같아요? 이러는 거 생명을 두고 장난치는 거잖아요! 살 희망이 전혀 안 보이잖아요!”비록 방씨 가문 사람의 생사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죽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다.현장이 고요해지고, 사람들은 일제히 김예훈에게 시선을 돌렸다.비록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설득력있다고 생각했다
김예훈이 인내심을 가지고 말했다.“전문가인 건 모르겠고, 이렇게 하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세요? 지금 유일한 방법은 재빨리 차 문을 열어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자를 밖으로 끌어내는 거예요. 모든 동작이 3초 내로 완성되어야 한다고요! 실패하는 순간 다함께 강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하면 성공할 확률이 50%는 될 거예요.”“유일한 방법이요?”조명훈도 김예훈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자신도 함께 강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 이 방법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당신이 말한 이 방법은 자기 목숨마저 바치는 것 외에 별로 설득력 없어 보이는데요? 어떻게 3초 내로 차 문을 열고, 안전벨트를 풀어 사람을 끌어내요? 누가 할 수 있다고 그러세요? 아무리 할 수 있다고 해도 아가씨 발이 앞에 걸리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걸리기만 하면 3초는 불가능한 거예요! 그러다 차량이 폭발할 수도 있고요. 이봐요, 모르면 그냥 가만히 있어요. 사람 살리는 데 방해하지 말고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 같아요? 아가씨 신분을 듣고 어떻게든 방씨 가문에 잘 보이고 싶은 거잖아요. 그런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 거예요. 아가씨를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요. 계속 옆에서 알짱거렸다가 사람 살리는데 방해되면 알아서 책임지세요!”조명훈은 방철우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방 집사님, 이 사람 데리고 물러나 주세요. 사람 살리는데 방해되지 않게요.”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이러면 정말 사고 날 거라고요...”방철우도 미간을 찌푸리고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이봐요. 젊은이. 당신은 안전관리 전문가예요 아니면 소방대원이에요?”김예훈이 고개를 흔들었다.“저는 그저 예전에 국방부에서 일했던 적이 있어서 이 방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입니다.”방철우가 멈칫하면서 물었다.“어느 부대에 있었는데요?”김예훈이 고개를 흔들었다.“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방면에서는 조명훈 씨 못지않게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김예훈을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방씨 가문 아가씨의 생명을 가지고 이런 장난을 치다니.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현장에 있던 여자들은 가소로운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감히 안전관리 전문가와 아는 척을 하다니. 주제 파악도 하지 못하네.’“그런데 이분이 말씀하신 대로 맨손으로 밀 수는 없잖아요. 인체에도 정전기가 있는데 터치했다가 연료 탱크가 폭발할 수도 있다고요...”김예훈이 좋은 마음에 알려줬지만 방철우는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이봐, 젊은이. 계속 방해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때, 보디가드 두 명이 다가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김예훈이 한마디라도 더하면 당장 쥐어팰 듯이 말이다.이 모습에 김예훈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난 그저 사람을 살리고 싶은 마음뿐인데 방씨 가문에서 날 믿어주지 않으니...’김예훈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이대로 갔다간...’“그래요. 알아서 하세요. 성공하길 기원할게요.”사람을 살리지 못하게 하니 더는 설득하지 않고 뒤돌아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사람들은 가소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요즘 젊은이들은 나쁜 것만 배워.”“이런 장소에서 허세를 부리면 안 된다는 거 모르나?’“사람이 너무 가벼워 보여!”사람들은 김예훈 같은 사람이야말로 강에 내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조명훈은 피식 웃더니 앞으로 다가가 람보르기니 차에 오른손을 갖다 댔다.퍽!손바닥이 닿인 순간 정전기 때문에 연료 탱크가 폭발하고 말았다.조명훈은 순식간에 저 멀리 날아가 피를 토해냈다.끼익!전체 차량에 불이 붙어 차를 지탱하고 있던 난간 하나가 끊어져 끝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말았다.유일하게 남은 난간 하나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짧으면 30초, 길어봤자 1분 내로 강에 떨어질 것이 뻔했다.심지어 강에 떨어지는 도중에 대형 폭발이 일어날지도 몰랐다.“헐! 저 자식 말이 맞았어!”“안전관리 전문가라며? 왜 정전기 때문에 폭발이
이 말에 주위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 아무도 몰랐다.방씨 가문 아가씨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1분1초가 시급한 상황이었다.특히나 당사자인 그녀에게는 눈뜨고 자신의 목숨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몰랐다.“얼른 방법 좀 생각해 보라고!”방철우가 조명훈의 멱살을 잡으면서 소리쳤다.조명훈은 이 순간 울상이었다.“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요. 얼른 구조대원이나 불러요! 얼른요! 아님. 죽을지도 몰라요!”조명훈은 눈앞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비록 방철우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일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을 줄 몰랐다.전국 10대 명문가 중의 하나인 서울 방씨 가문은 힘이 강해 전문가한테 현장 확인을 요청하면 아까의 행동이 얼마나 무모한 행동이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여론 때문에 당장 조명훈을 죽이진 못해도 전국 10대 명문가로서 서서히 피를 말려 죽일 방법이 수만 가지였다.“이런 젠장! 전체 부산, 그리고 전체 대한민국에서 당신보다 대단한 안전관리 전문가가 없다며! 인제 와서 구조대원을 부르라고? 진작에 그러지 그랬어!”방철우는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다가 조명훈을 걷어차더니 보디가드한테 소리 질렀다.“얼른 구조대원이나 불러! 빨리!”“이봐요. 요즘은 구조대원이 출동하는데 최소 5분이나 걸려요. 그런데 차까지 막히는데 도착하면 이미...”구경하고 있던 사람이 말했다.“아까 모든 것을 간파한 그 젊은이가 살릴 수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그 사람부터 찾아봐요!”“그 꼴로 사람을 살린다고요? 분명 얻어걸린 거겠죠!”김예훈이 사람을 살려내면 자신한테 불리했기 때문에 조명훈이 다급한 나머지 말했다.“방 집사님, 얼른 구조대원이나 부르세요! 더 이상 기회를 놓치지 말고요!”“꺼져!”조명훈의 심리를 알아챈 방철우은 냉정해지기로 했다.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목이 빠져라 구조대원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그는 또 조명훈을 발로 걷어차고는 인파를 파헤치고 김예훈이 떠난 방향을 뒤쫓아갔다.100m 가
“다들 비키세요! 차량이 다시 폭발할 수 있으니 최대한 멀리하세요!”십몇 초 뒤, 김예훈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장갑 있으신 분 있나요? 저 좀 빌려주세요!”누군가 고무장갑을 던져주길래 바로 손에 끼고 앞으로 나섰다.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허세만 부리던 조명훈과는 달리 사람을 살리려는 진심과 위기 속에서도 차분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전혀 서두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전문가나 다름없네!”“이봐요. 조심하세요!”“보고만 있지 말고 얼른 구급차나 소방차가 지나갈 수 있게 차 빼세요!”“...”다른 사람들이 뭘 하든 김예훈은 바로 운전석으로 다가갔다.소녀의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보고 조용히 하라는 손짓하고는 왼손으로 차 문을 열었다.빠직!차 문이 분리되는 순간, 위태롭던 난간 하나가 철저히 끊어지고 말았다.람보르기니 차량이 서서히 아래로 쏠리자 김예훈이 앞으로 덮쳤다.풍덩!퍽!김예훈이 몸을 날린 순간 차량이 강에 떨어지면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사람들은 환해진 수면 위 불꽃을 보면서 한순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네. 아까 그 젊은이, 죽을힘을 다해 살리려고 했는데 결국 한발짝 늦어버렸어.’방철우와 두 보디가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절망스럽게 바닥에 무릎 꿇고 말았다.“제가 진작에 말씀드렸잖아요! 방법이 없다고! 제가 전문가인데 제 판단이 틀렸겠습니까? 그러다 결국 사고가 났죠? 제가 잘못 판단한 거 아니죠?”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조명훈이 박장대소를 지었다.사람들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인제 보니 조명훈 씨 판단이 맞았어. 만약 아까 젊은이처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사람 살리려고 덮쳤다면 죽은 사람이 조명훈 씨일지도 몰라.”“저기요. 무릎만 꿇고 있지 말고 저 좀 도와주세요...”바로 이때, 허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폭발 연기가 사라지고, 방철우는 난간을 잡고있는 손가락을 발견하고 멈칫하고 말았다.내려다보았더니 김예훈이 한 손으로는 난간을 잡고
성별을 불문하고 김예훈은 그녀에게 심폐소생을 해주기 시작했다. “쿨럭!”잠시 후, 그녀는 격렬하게 기침하기 시작하더니 피를 토해내면서 호흡이 다시 돌아왔다.김예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방철우에게 말했다.“됐어요. 괜찮아졌어요. 그래도 이따 구급차가 도착하면 전신 검사를 해보세요. 그리고 운전 좀 자제시켜 주세요. 이런 스피드가 빠른 스포츠카는 조금만 방심해도 사고 나기 일쑤예요.”“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방철우는 무례했던 아까와는 달리 공손하기만 했다.위험했던 상황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그녀가 다시 살아난 것을 보자 사람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김예훈을 무시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여자들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변했다.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 묻고 따지지도 않고 낯선 여자를 살려내는 남자야말로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했다.아까까지만 해도 박장대소를 짓던 조명훈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얼굴이 극도로 어두워졌다.비록 김예훈이 이쪽으로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찔렸다.김예훈한테 진 것도 모자라 방씨 가문의 복수를 받을지도 몰랐다.이런 생각에 그는 바닥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었다.“이봐요. 혹시 연락처 좀 남길 수 있을까요? 저희가 은혜에 보답하려고요.”방철우는 보디가드더러 아가씨를 부축하라고는 김예훈에게 공손하게 부탁했다.하지만 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냥 지나가던 김에 도와드렸을 뿐입니다. 마음에 두지 마세요.”그러고는 뒤돌아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방씨 가문과는 둘 중의 하나가 죽어야만 끝나는 관계라 이름을 남겼다가 이 소녀한테 피해가 갈까 봐 두려웠다.방철우는 멈칫하고 말았다. 방씨 가문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이 만나보았어도 오히려 멀리하려는 그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다.“오빠, 저는 방수아라고 해도. 혹시 성함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이 떠나려는 순간, 방수아가 손을 잡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생명의 은혜를 꼭 보답하려고요.”방수아는 혼절 상태였
“저기요...”방수아는 뒤따라가고 싶었지만 몸이 워낙 허약해서 몇 발짝 가지도 않아 헐레벌떡 숨쉬기 시작했다.“아가씨, 그만 쫓아가세요.”방철우가 핸드폰으로 찍은 김예훈의 옆모습을 보여주면서 말했다.“이거 방금 제가 찍은 옆모습이에요. 저희 힘으로 부산에서 사람 하나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더군다나 실력이 뛰어나신 분인데 더욱 찾기 쉽겠죠.”방수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명문가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똑똑하기로 소문났다.“방 집사님, 비밀리에 알아봐 주세요. 아마도 놀라운 신분을 가지고 계셔서 다른 사람한테 알리기 싫어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찾되 절대 폐를 끼치면 안 돼요.”방철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 찾아볼게요.”“네. 그러면 잘 부탁드릴게요.”방수아의 눈빛은 의미심장하기만 했다.늘 접촉해 왔던 세자님, 부잣집 도련님과는 달리 김예훈이야말로 진정한 남자라고 느껴졌다.심지어 서울 4대 도련님 중의 한 명인 오빠 방호철 역시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차를 주차했던 곳에 갔더니 토요타 알파드는 보이지 않았다. 김예훈은 바로 육지후가 몰고 갔다고 생각했다.김예훈은 한숨을 내쉬고는 어느 한구석을 찾아 최산하에게 전화해서 포레스트 별장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집으로 가던 길, 정소현한테서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형부, 큰일 났어요. 빨리 집에 돌아오면 안 돼요?”김예훈은 멈칫하고 말았다.‘이제 집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큰일 나?’“왜 그래?”정소현의 목소리는 울상이었다.“형부, 차를 육지후한테 빌려주면 어떡해요. 저 자식 면허도 없다고요! 아까 주차장에서 외제 차 몇십 대를 받아버렸어요. 지금 차 주인들이 집까지 찾아와서 난리예요. 저마다 한정판 스포츠카라고 하던데... 저희보고 배상하라고 난리예요. 심지어 어떤 차 주인들은 자동차구매 영수증까지 가지고 왔어요. 대충 계산해 보니까 배상금이 4, 500억 원은 되겠더라고요.”전화기 너머의 정소현은 머리가 지
집 안으로 들어가자 온통 액세서리로 치장한 아줌마들과 정장 차림의 아저씨들이었다.다 화려한 옷차림이었지만 상류사회 인사들처럼 우아하지는 않고, 포악스럽기만 했다.정군과 정소현은 피곤한 상태로 구석에 숨고 있었다.오직 육미선과 육지후가 그들과 다투고 있었다.“당장 배상하세요!”“포레스트 별장에서 살면 남의 주차장에 와서 함부로 박아도 됩니까?”“무조건 배상하세요!”“누군지는 몰라도 배상하지 않으면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김예훈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포레스트 별장에는 개인 주차장이 있었지만 육지후가 이곳에 와본 적 없었기 때문에 맞은편에 있는 부자 동네 주차장에 가서 차를 몇십 대 박아버린 것이다.그곳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벼락부자라 소질이 별로 높지도 않았다. 차가 아무이유 없이 고장 났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꼭 육미선 모자한테서 배상금을 받아내기로 했다.이때 한 아줌마가 육미선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저 차 노후 준비할 돈으로 샀단 말이에요! 돈 안 내놓으면 다 같이 죽을 수밖에 없어요!”“포레스트 별장에서 살고 있으면서 돈이 없다고요? 누가 당신 말을 믿겠어요!”“얼른 돈이나 내놔요! 아니면 죽도록 팰 거니까!”쏟아붓는 폭언에 육미선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그만하지 못해요? 몇 번을 말해요! 저랑 제 아들도 피해자라고요! 이 차 우리 아들 것도 아니에요. 면허도 없는데 기사 놈이 글쎄 운전하게 했다니까요? 배상금을 받고 싶으면 기사 놈한테 받으세요. 아니면 이집 주인한테서 받으시든가요. 포레스트 별장에서 살고 있으면 어떻게든 갚겠죠! 갚을 능력이 못 된다고 하면 이 별장을 내놓으라고 하면 되잖아요!”육미선은 원래 인성이 안 좋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가만히 있었겠지만 전혀 굴하지 않고 응당하다는 듯이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아들 육지후도 억울한 듯 옆에서 거들고 있었다.임은숙은 어디에 숨었는지도 몰랐다. 정군과 정소현이 말리지 않았다면 이 아줌마들이 새로 리모델링한 별장을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