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박동휘가 웃음을 짜내며 물었다.“김 고문님, 사실 도련님께서는 이미 일어난 모든 일을 알고 계십니다. 다만 김 고문님과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고문님께서 협조를 해주신다면 성택 도련님의 죽음은 없었던 일로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훗날 청별 그룹과 성남이 서로 협력할 일도 더 많아질 겁니다! 우리 청별 그룹에서 작정하고 일류 가문을 만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거든요!”박동휘가 말하는 사이에 소위 세 명의 천왕과 여비서들은 모두 안하무인의 표정으로 김예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김예훈은 성남 기관의 고문 신분이 있었지만 동시에 명문 가문의 데릴남편이었으니 그들은 김예훈에게 돈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지금 이형택은 충분히 구미가 당길 만한 조건을 제시했으니 똑똑한 사람이라면 모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 것이다.겨우 경호원의 목숨쯤이야 충분히 내놓을 수 있었다.경호원 한 사람의 희생으로 수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는 너무 쉬워 보였는데 말이다.심지어 이 인도 사람들은 김예훈이 지금 당장 이형택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회유하는 이형택의 수단에 이견이 있는 이들도 없었다.이형택은 혼외자식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그의 성격과 신분에 부합하다.“도련님께서 과거의 일은 모두 청산하시겠다고 했으니 무릎 꿇고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김예훈이 아무 반응도 없자 3대 천왕 중 한 명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는 심지어 당장이라도 김예훈을 바닥에 넘어뜨려 대신 선택을 해주고 싶었다.“과거의 일은 청산한다고?”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당신들이 그 말을 할 자격이 있어? 내가 아직 과거의 일을 제대로 따지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당신들이 뭔데 나한테 그 말을 해? 아주 웃기고 있어.”“과거의 일을 제대로 따져?”3대 천왕 중 한 명이 앞으로 다가가더니 차가운 얼굴로 김예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도련님께서는 지금 너에게 기회를 주고 있잖아. 눈치 좀 챙겨. 사람을 내놓고 무릎을
이형택은 자기가 김예훈을 제대로 휘어잡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리고 그의 여비서들은 모두 경멸이 담긴 눈빛으로 김예훈을 바라보고 있었다.어차피 결국 이형택에게 무릎을 꿇게 될 텐데 조금 더 버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이형택의 압박에 김예훈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내가 당신따위가 준 기회가 필요할 것 같아?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그 압박이 나한테 먹힐 것 같아?”이형택이 웃으며 말했다.“김 고문, 당신을 자극하고 싶진 않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나 세력은 당신 따위 고문이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당신을 위해서라도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이형택은 인내심이 거의 바닥이 났다.김예훈이 이성택을 죽였고, 또 그는 김예훈을 이용해 이대정까지 죽일 생각이었기에 지금까지 참은 것이었다.아니면 그는 진작 김예훈에게 귀싸대기를 날렸을 것이다.“말할 게 두 가지가 있어...”김예훈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첫 번째, 이성택은 죽어도 싸. 그래서 그의 죽음으로 대가를 치를 사람은 없을 거야. 나 김예훈이 분명 말했어. 두 번째. 당신이 이왕 온 김에 한국에 있는 리카 제국 임씨 가문의 재산을 모두 내놔. 아니면 청별 그룹을 평정하고 직접 그 재산을 가져올 테니까.”이형택은 의아한 얼굴로 김예훈을 훑어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청별 그룹을 평정할 거라고? 그럴 배짱도 없으면서 말이야.”그 말을 들은 예쁘장한 여비서들도 혀를 찼다.그녀들은 수년간 이형택을 따라다니며 수많은 세자나 도련님들을 만나왔었다.그들은 청별 그룹을 상대할 때 깍듯한 태도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예의를 차리곤 했었다.얼마나 무식하고 자만한 사람이어야 청별 그룹을 평정하겠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할 수 있는가?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직접 나서야 하겠네.”“도련님, 이 자식이 너무 센 척하는데요? 우리도 손을 쓰는 건 어때요? 한국 사람들이 그럼 그렇지요. 자기가 아주 잘났다고 생각하나 봐요. 우리한테 제대로 밟혀야 꼬리를 내리지!”3대 천왕
“지금 마지막 기회를 줄게. 10분 이내에 그 경호원 당장 내놔. 그리고 팔다리를 하나씩 자르면 내가 목숨을 살려줄게! 만약 10분이 지나서도 이렇게 무식하게 군다면 그때 가서 날 원망하지 마!”말을 마친 이형택은 소파에 털썩 앉고는 다리를 꼬고 실눈을 뜬 채 김예훈을 바라봤다.그의 뒤에 서 있던 여비서들은 모두 두 눈을 반짝이며 이형택을 바라봤다.이것이야말로 명문 가문의 도련님, 카리스마 있는 대표님의 포스이지!여유롭게 모든 일을 대하는 자세야말로 정말 멋있는 거라고!하지만 그와 반대로 김예훈은 촌스럽고 돈 없는 병신 같아 보였다.이형택의 말을 들은 김예훈이 웃으면서 말했다.“당신은 그래도 그 바보 같은 동생보다는 똑똑하군. 적어도 나를 상대할 때는 수적 열세에 처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이형택이 덤덤하게 말했다.“수적 열세? 당신이 혼자여도 우리 쪽은 200명일 것이고, 당신이 1000명을 더 불러와도 우리 쪽은 여전히 200명일 것이야.”“그래? 그럼 당신 소원 이뤄주지.”김예훈이 웃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애들 1000명 불러와. 더 많지도 적지도 않게, 딱 1000명 불러와. 상대가 요구한 거니까.”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김예훈의 모습을 보고 뒤에 서 있던 여비서들마저 코웃음을 쳤다.아직도 잘난 척하고 있네.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잘난 척하고 있어? 죽는 게 두렵지도 않나?이때 3대 천왕이 동시에 그에게 다가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무릎 꿇지 못해?”200명의 태권도 고수들도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뚜벅뚜벅.”이때 레이 리조트 밖에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질서 있는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뚜렷하게 들려왔다.‘쿵’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대문을 발로 확 차버렸다.“뭐?”이형택 등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대문 쪽을 바라보더니 모두 몸을 흠칫 떨었다.레이 리조트 밖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보였기 때문이다.곧이어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성남에 있는
이형택은 한국에서 수년간 살아오면서 서울 4대 도련님이나 부산 6대 세자 같은 건 다 들어봤었다.김예훈이 어마어마한 정체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분명 명성이 자자해야 할 텐데 그에 대해 자료를 조사할 때는 의외로 정보가 많이 없었다.새까맣게 모인 사람들 속에서 그는 심지어 오정범을 발견했다.경기도 폭력 조직의 신예, 오정범?청별 그룹은 전에 경기도 이쪽과 별다른 접점이 없었지만, 경기도에 들어서기 전에 경기도 쪽의 높은 분들에 대해서는 샅샅이 조사했었다.그중에서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신예 오정범이었다.청별 그룹의 계획에 의하면 오정범은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데려와야 하는 인물이었다.경기도 폭력 조직의 도움이 더해진다면 청별 그룹은 제멋대로 움직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하지만 전설의 신예 오정범이 1000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김예훈을 도와주러 왔다니, 게다가 그는 김예훈 앞에서 공손한 표정을 보였다.그래서 이형택은 김예훈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한국은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해 내고 있는 땅이야. 감히 인도 따위가 건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아까 나한테 기회를 준 걸 봐서 나도 기회를 하나 줄게.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 죽진 않을 거야!”김예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오정범도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들었어? 당장 무릎 꿇어! 무릎 꿇으면 목숨은 살려줄 거야!”이때, 1000명의 사내는 이미 200명의 태권도 고수들을 에워쌌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모두 무기가 하나씩 쥐여 있었다.200명의 태권도 고수들이 어떻게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3대 천왕의 얼굴색은 매우 어두워졌다.만약 평소에 누군가 감히 그들과 이렇게 이야기했다면 진작 그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지금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상대의 실력은 충분히 그들을 무릎 꿇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들은 한국에 있는 청별 그룹의 천왕이었다. 어떻게 이렇
이형택의 얼굴색은 한껏 어두워졌다. 이때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김예훈! 나 항복할게! 우리 죽이지 마!”이형택이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인도의 태권도 고수들은 하나둘씩 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두 손을 높게 들어 항복 의사를 표했다.1000명의 훈련된 상대를 상대하는 데는 깨끗이 결과를 승복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인 듯했다.살 수만 있다면 무릎 꿇고 항복하는 건 백 번이고 할 수 있었다.김예훈이 머리를 갸우뚱했다.오정범은 사람들을 데리고 우르르 달려가 인도 태권도 고수들을 모두 묶었다.기세등등하던 청별 그룹에서 오직 서 있는 사람은 이형택과 그의 예쁘장한 여비서들뿐이었다.“김예훈, 당신 너무 한 거 아니야? 나 그래도 청별 그룹 대표님의 아들이라고. 청별 그룹에서도 어느 정도 권력이 있는데, 당신 같은 사람들이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이형택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여전히 인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김예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무릎 꿇고 말해.”“무릎 꿇고 말하라고?”이형택은 분노가 끓어올라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며 말했다.“김예훈, 자기가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성남이나 경기도는 물론이고, 전체 한국에서 감히 나 이형택을 무릎 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있어도 우리 인도를 모욕할 수 있는 자는 없다고!”이형택은 수적 열세에 처해 있었지만 인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10여 년 전, 그가 인도에서 군 복무를 하던 당시 인도 태권도 일인자의 문하생으로 태권도를 전수받았었다.그의 싸움 실력으로 충분히 혼자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었다. 목숨 정도는 혼자 힘으로 충분히 건질 수 있었다.그래서 그는 그동안 청별 그룹의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이형택은 원래 자기 실력을 전혀 드러낼 생각이 없었는데 김예훈이 하도 자신의 자존심을 마구 짓밟고 있으니 그는 더는 실력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김예훈, 오늘 한 번 태권도 검은띠 9단 고
이형택의 머리는 돼지머리처럼 빨갛게 부어올랐고 입과 코에서 모두 피가 흘러나왔다.그는 인도에서 문무를 겸비한 유명한 천재였고, 인도 태권도 일인자 문하생이자 청별 그룹 한국 지사 대표의 아들이었다!그 어떤 신분으로 보나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할 거물이었다.하지만 그는 지금 김예훈 앞에서 물에 빠진 개처럼 반격할 힘이 전혀 없었다.그리고 만약 김예훈이 어떤 전설적인 수단으로 그를 상대했다면 그는 패배를 인정했을 것이다.하지만 김예훈은 그저 그에게 귀싸대기만 날렸다.아무리 이형택이 현란한 공격을 펼치고, 무서운 기운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김예훈은 그저 그에게 귀싸대기만 때렸다.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형택은 전혀 그의 손바닥을 피할 수 없었다.“짝!”또 한 번의 따귀를 맞아 이형택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그래, 인도의 거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한번 말해봐. 왜 인도를 모욕하면 안 돼?”김예훈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이형택은 한 번 또 한 번 따귀를 맞아 몸이 이리저리 날아가 버렸기에 얼굴은 이미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특히 뒤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여비서들은 잔뜩 겁에 질렸다.그녀들은 이형택이 직접 남미에서 온 경호원의 머리를 발로 차서 죽인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런 그는 김예훈 앞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짝!”마지막 따귀가 이어졌고 이형택은 또 한 번 바닥에 쓰러 누웠다.이번에 그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그저 피를 토할 뿐이었다.김예훈은 차가운 얼굴을 보이며 그에게 다가가고는 또 한 번 뺨을 후려치려고 했는데 이형택은 몸을 벌벌 떨었다.자존심이고 뭐고 이 순간 모두 무너지게 되었다.싸움 고수, 태권도 일인자 문하생의 타이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되었다.“그, 그만 때려요... 잘못했어요... 죄송해요...”이형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대로 계속 김예훈에게 맞는다면 곧 목숨을 잃을 것 같
프리미엄 가든 아래에, 핑크색 롤스로이스 팬텀 한 대가 전용 주차장에 주차돼 있었다.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부러운 표정을 짓곤 했다.훤칠한 김예훈이 차 옆에 기대어 있었다.롤스로이스와 김예훈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심지어 많은 여자들은 그를 백마 탄 왕자라고 생각했다.잠시 후, 절세미인이 프리미엄 가든 안에서 걸어 나왔다.김예훈을 보자 정민아는 어안이 벙벙했다.‘이 사람, 내 데릴남편이 맞아?’김예훈은 정민아를 보더니 그녀를 차에 모시는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공주님, 어서 타세요!”두 사람이 올라타고, 차는 곧바로 출발했다.도로를 질주하는 롤스로이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차 안에서 김예훈이 서류를 정민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필요한 서류는 여기 다 있어.”정민아는 어안이 벙벙한 채 서류를 건네받고는 자세히 살펴봤다. 그 위에 쓰인 자기 이름을 보다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그 이성택이라는 사람이 순순히 롤스로이스를 넘겨줬어? 서류도 다 마쳤고?”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이성택은 철이 없는데 이형택이라고 형이 하나 있더라고. 그 사람은 꽤 말이 통했어.”정민아는 더는 물어보지 않고 화두를 돌렸다.“오늘 밤 나 계약을 하나 따내기 위해 비즈니스 파티에 참가할 거야. 내 운전기사가 되어줄래?”“좋아, 같이 가자.”아내의 요구이니 김예훈은 당연히 거절할 리가 없었다.롤스로이스는 번화한 거리를 질주하다가 잠시 후 분당의 로얄 펍 앞에 멈춰 섰다.“이런 곳에서 비즈니스를 해?”김예훈이 바를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정민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번 클라이언트는 진주에서 온 도련님이야.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진주 4대 도련님 중 한 명의 부하라고 하더라고.”“진주 4대 도련님?”김예훈은 이에 대해 처음 들었다.“진주 4대 도련님이란 바로 진주 4대 명문가의 후계자들이야. 그런데 재밌는 건 진주 이씨 가문의 후계자는 이름이 김병욱이더라고.”정민아가 말했다.김예훈이 덤덤한 얼굴로 물었다.“그럼 오늘
정민아가 앞으로 다가가고는 그녀들과 악수를 하고 미소를 지은 채 김예훈을 소개했다.“이 사람이 바로 내 남편 김예훈이에요. 여보, 이분들 소개해 줄게. 이분은 진주 이씨 가문의 이유빈 아가씨야. 유빈이는 이씨 가문의 방계 자제이지만 능력이 워낙 출중하거든. 이번에 시장을 개척하러 특별히 성남으로 왔어... 이분은 진주 곽씨 가문의 곽연록 아가씨야... 이분은...”정민아는 한꺼번에 테이블에 앉은 미녀들을 모두 소개했다.김예훈은 그녀들이 모두 진주 4대 명문가 출신이거나 진주 4대 명문가와 연관이 있는 사람인 것을 발견했다.김예훈은 일부러 이유빈을 몇 번 더 쳐다봤는데 이번 일에 김병욱이 참여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이번에 이유빈과 정민아가 비즈니스를 하게 된 건 우연에 가까웠다.그 생각에 김예훈이 예의를 차리고는 미소를 지었다.“안녕하세요, 저는 김예훈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이유빈은 김예훈을 위아래로 훑어봤다.특히 김예훈의 옷차림을 보고서는 콧방귀를 뀌더니 전혀 악수를 받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심지어 눈도 피했다.“민아 씨, 무슨 생각으로 남편을 데려온 거예요?”곽연록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우리 서로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됐지만 우리는 모두 민아 씨에게 진심이라고요. 오늘 밤 정말 비즈니스 상대를 소개해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왜 쓸모없는 데릴남편을 데리고 온 거예요? 왜요? 우리 무시하는 거예요?”다른 여자들도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김예훈은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이곳에 있는 여자들이 자기를 반기지 않는 걸 그도 물론 알고 있었다.그녀들은 김예훈이 당장 꺼지길 바랐다.하지만 정민아가 여기 있으니 김예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뜨지 않을 것이다.정민아는 미안한 마음에 김예훈에게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여러분들이 나에게 비즈니스 상대를 소개해 줄 것을 알고 일부러 남편을 데려온 건데요. 성의를 보이기 위해 말이에요. 부부가 동반으로 파티에 참석하는 것보다 더 성의를 표할 수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