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훈의 말을 들은 정민아는 그대로 얼어붙었다.진짜로 속은 건가? 김예훈이 혼자서 도망쳐 온 것이라고?자세히 생각해 보니 시간이 맞지 않았다. 임무경은 24시간안에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김예훈은 사라진 지 한 시간 만에 나타났다.“김예훈, 지금 허세를 부릴 때야?!”“너를 잡아간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 강원도 변경의 강도들이야! 사람을 죽이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강도라고!”“마침 임씨 가문이 경기도를 주름잡고 있으니 형사들을 풀어서 이 강도들이 무서워서 너를 놓아준 것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네가 어떻게 살아서 돌아오겠어.”“시체가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지금 길에 전부 경찰들인 것 안 보여? 네 일 때문에 성남시의 순찰이 강화되었어!”정군과 임은숙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서 김예훈에게 화를 쏟아붓고 있었다.그들의 눈에 허세만 가득한 김예훈은 진짜 재수였다.정민아가 모든 것을 걸고 그를 구해주었는데 오히려 자기 혼자서 탈출한 것이라니.이때 정민아가 입을 열었다.“아빠, 엄마.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나한테 중요한 건 우리 가족이 무사하다는 거예요.”정민아가 이렇게 얘기하자 김예훈이 계속 해명하기 어려웠다.그 강도들을 본인의 손으로 다 죽이고 나왔다는 것을 정민아에게 알려줄 수가 없었다.이런 일은 마치 신화나 전설 같아서 믿지 않을 테니.드라마도 아니고 한 사람이 총을 든 여러 강도들을 혼자서 제압한다는 것을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임무경 그쪽은, 예외지만. 그저 그의 연기가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김예훈이 무사히 돌아온 것은 임무경 덕분이라고 생각할 테니.솔직히 이 모든 것이 우연에 우연이 겹친 일들이었다.“김예훈, 민아가 너를 위해 이렇게 할 때 너는 민아를 위해서 생각해주면 안 돼? 허세나 부리지 말고.”“백운 그룹의 주식이라니, 적어도 4000억은 될 거야.”정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김예훈의 말에 정군과 임은숙 두 사람 다 할 말을 잃었다.잠시 후 정군이 한숨을 내쉬었다.“됐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뭐라고 하지 않으마.”“너도 오늘 힘들었을 텐데 빨리 쉬어.”말을 마친 정군이 임은숙을 데리고 떠났다.실망이었다.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실망밖에 남지 않았다.이런 상황에도 김예훈은 허세만 떠니 그들은 이제 뭐라고 꾸짖을 힘도 없었다.그들의 눈에 김예훈은 허세 병 말기에 걸린 사람처럼 구할 방법도 없는 것 같았다.오히려 정민아는 웃으며 얘기했다.“여보, 그래도 듣기는 좋네.”“우리 그냥 작은 사업이나 해. 먹고 살 만큼만 벌어도, 그렇게 한 평생 살아도 난 괜찮아.”“정 안되면 노점상이라도 하지. 요즘 그게 유행이라던데? 바로 오늘 밤부터 할까?”정민아는 말한 대로 하는 성격이었다. 행동력이 매우 좋았다.그녀는 바로 인터넷에서 주변의 도매상을 찾은 후 김예훈을 끌고 물건들을 입고시켰다.김예훈은 어이가 없어졌다.하지만 정민아는 이미 빠르게 팔 물건들을 준비하고 길에 자리를 잡았다.정민아의 말대로라면 오늘 그들 부부는 이미 개업을 한 셈이었다.정민아가 선택한 자리는 길에서도 주요한 도로라서 평일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갔고 저녁에는 더욱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었다.물건을 입고하는 센스가 좋고 가격도 착한데다가 정민아 본인도 아름다운 미녀였기에 그들의 장사는 순식간에 인기가 많아졌다.이렇게 천천히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물건들은 어느새 거의 다 팔렸다.김예훈은 정민아가 웃는 것을 보고 따라 웃었다. 무슨 일이 있든 간에 그녀가 기쁘면 된 거다.노점상이 어때서? 노점상도 일종의 창업이 아닌가.“어? 정민아, 정 대표님 아니신가? 정 대표 회사가 몇천억으로 커서 벤틀리를 몰고 다닌다고 하던데.”“그 고귀하신 정 대표님이 오늘은 서민 체험이라도 하는 건가요?”이때 사람들 중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자가 걸어오며 정민아를 향해 비웃음을 던졌다.중년 남자의 이름은 이서재로 전에 백운 그룹의
정민아의 낯빛은 조금 어두웠다. 그녀는 노점상을 하면서 이서재같이 더러운 사람을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이 주임님, 이 스타킹은 좀 안될 것 같습니다.”“그러게요!”이서재는 부하 앞에서 여러 번 정민아에 관해 얘기했다.안 봐도 비디오였다. 정민아가 자기를 해고한 것에 불만이 많아 계속 정민아를 싫어했을 것이다.이때 김예훈이 뒤에서 걸어와 미간을 찌푸리고 이서재를 쳐다보았다.정민아가 노점상을 하는 데에 즐거워하고 있어서 말리지 않았는데 어디서 이런 자식이 나타나 기분을 잡치게 하는 것인지. 김예훈은 짜증이 치밀어올랐다.김예훈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저 눈빛뿐이었지만 이서재는 목덜미가 시린 것 같았다.김예훈의 등장에 정민아가 오히려 놀라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예훈아, 이런 사람은 상관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는 돈을 벌려고 나온 거니까 태도가 좋아야 해.”그녀는 김예훈이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를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이제 정민아는 백운 그룹의 대표도 아니었다. 김예훈이 주먹질을 해서 사람을 다치게 해서 경찰서에 가면 그때는 방법이 없었다.김예훈은 정민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그리고는 이서재를 슥 쳐다보고 차갑게 대답했다.“우리는 너 같은 손님한테 물건 안 팝니다. 꺼지세요.”김예훈의 말에 이서재의 표정이 구겨졌다.그는 김예훈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갑자기 피식 웃고는 말했다.“이게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정 대표님의 데릴 남편이죠?”“남한테 빌붙어 사는 걸 가장 잘한다는, 정 대표랑 결혼한 지 3년 동안 아무것도 못 해 줬다면서요?”“지금 정 대표 회사도 남의 손에 들어갔으니, 정 대표가 노점상이라도 해서 먹여 살려야죠.”“빌붙어 사는 능력은 인정해 줘야 한다니까요.”“그 능력으로 책이라도 쓰는 거 어때요, 내가 한 권 정도는 꼭 사주죠.”그 말에 주위는 웃음바다가 되었다.이서재의 부하 중 한 명이 김예훈을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이 주임님, 빌붙어 사는 주제에 얼굴
정민아가 먼저 숙이고 말을 하자 이서재는 더욱 득의양양해져서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정 대표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럼 사업을 도와줘야죠.”“이 스타킹들, 내가 다 사도록 하겠습니다.”말을 마친 이서재의 표정은 엔간한 변태들의 표정보다 더 더러웠다.“저도 하나!”“하하하.”이서재의 부하들도 그 더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기 시작했다. 그들이 정민아를 쳐다보는 눈길에는 더러운 생각이 잔뜩 묻어있었다.이서재도 그런 생각을 감추지 않고 웃으며 얘기했다.“정민아, 내가 듣기로는 이미 백운 그룹의 주식을 다 넘겨주어서 한 푼도 없다는데 이래서야 셋집이라도 맡을 수 있겠어요?”“이렇게 합시다. 마침 우리 회사에서 내 비서를 찾고 있어요, 한 달에 백만 월급입니다.”“아직 적합한 사람을 찾지 못했는데 만약 당신이 숙이고 들어온다면 이 자리를 드리죠.”“하지만 내 비서는 한가지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바로 무슨 일이든지 비서가 해야 한다는 겁니다.”김예훈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자식의 말이 얼마나 더러운지 바로 얼굴에 주먹을 꽂아주고 머리를 화장실 변기에 박아넣어 주고 싶은 지경이었다.하지만 정민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여보, 됐어. 우리가 피해야지.”“이후에도 노점상을 하면서 이런 일들이 많을 거야. 그럴때마다 주먹질을 한다면 어떻게 이 노점상을 이어 하겠어.”정민아의 표정을 본 김예훈은 그녀를 실망하게 하기 싫어 그저 차갑게 이서재를 노려보았다.하지만 김예훈이 주먹질을 할 담이 없다고 생각한 이서재는 호탕하게 웃었다.“정민아, 당신 남편은 정말 안 되겠어요. 바로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데 잘도 참네요. 이런 것도 남편이라고 데리고 다녀요?”“생긴 것도 꽤 괜찮은 정민아가 이런 쓰레기를 끼고 다니다니. 차라리 나랑 하는 건 어때요? 생긴 게 너무 아깝잖아요.”이번에 이서재는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다가와 정민아의 얼굴에 손을 대려고 했다.퍽.옆의 김예훈은 결국 참지 못하고 다가오는 이서재를 향해 주먹을 꽂아버렸다.
이서재가 급히 바닥에서 기어서 일어났다.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그는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올라 바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파리 형님, 접니다! 저 이서재입니다.”“저 지금 길에서 노점상 하는 사람한테 얻어맞았습니다.”“여기가 형님네 지역 아닙니까! 꼭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파리 형님이라는 말에 주변 사람들의 낯빛이 변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누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저기, 혹시 말씀하신 파리 형님이 이 거리의 깡패 조직...”“그래! 바로 그 파리 형님이야!”“파리 형님은 조직 보스 중의 1인이야. 이 거리는 다 그분이 관리하고 있다고!”“파리 형님이 바로 내 큰형님이다!”이서재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낯빛이 다 어두워졌다. 그중에서도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은 표정이 싹 구겨졌다.이때 마음씨 착한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이봐, 아가씨. 얼른 돌아가요.”“파리 형님이라는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한테서 자릿세를 받는다니까요.”“자릿세를 주지 않으면 완전 싹 엎어버리고 사람까지 패요.”“게다가 얼마나 여색을 밝히는지 예쁜 여자들은 다 좋지 못한 일을 당했어요.”“남편분도요, 지금은 빨리 도망가는 게 좋아요. 물건도 그냥 버리고 도망쳐요.”“그렇지 않으면 파리 형님이 오면 도망칠 수도 없어요!”몰려든 사람들 가운데도 착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그들의 말은 과장된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다 사실에 기반을 둔 말이었다.서민들은 서민의 생활이 있다.이 길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한테서 자릿세를 뜯어가는 조직. 어찌 보면 정상적인 일이다.다들 싸움 구경을 하러 왔지만 정민아처럼 예쁜 아가씨가 파리 형님 같은 사람한테 걸리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이때 이서재는 차갑게 웃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도망가? 지금 와서 도망치기에는 늦었어.”“다들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파리 형님이 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움직일 생각 하지 마!”이서재
파리 형님은 차갑게 웃으며 얘기했다.“감히 내 지역에서 장사하면서 자릿세를 안내? 재밌는 놈이네.”“이런 정신 없는 놈은 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말하더니 파리 형님이 퉤하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 새끼, 이 침부터 깨끗하게 핥아야 나랑 대화할 수 있을 거야.”“그렇지 않으면 네 손발부터 잘라버릴 거다!”파리 형님이 나서주자 이서재와 그의 부하들은 비웃음을 지었다.이서재는 김예훈을 향해 눈을 흘기고는 말했다.“이 새끼야, 귀가 먹었냐? 얼른 꿇지 못해?”“지금이라도 순순히 말 들으면 살려는 줄 거야.”“말을 듣지 않는다면 기어서 집에 가고 싶어도 못 갈 거야.”김예훈은 그 말들을 들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이서재를 광대 보듯이 보고 있었다.이때 정민아가 급히 김예훈의 앞을 막아 나서서 그를 보호하려고 했다.“예훈아, 이 사람들은 다 조직의 사람들이니 우리가 나서기엔 역부족이야.”그러고는 파리 형님을 향해 사과를 했다.“파리 형님, 저희가 오늘이 처음이라서 이곳의 규칙을 몰랐네요.”“어떻게 자릿세를 내면 되는지 알려주시면 곧 내겠습니다.”파리 형님은 정민아를 보지 못했다가 지금 이렇게 매력적인 미녀를 보니 흠칫했다.잠시 후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가씨, 이거 아가씨 장사야?”“사람을 때린 건 아가씨 남편이고?”“네, 만약 치료비도 원하신다면 저희가 내겠습니다.”정민아가 말했다.“치료비? 그런 건 필요 없어.”파리 형님이 호탕하게 웃었다.“이렇게 하지. 아가씨가 오늘 나랑 가서 재밌게 놀면 이제 내 사람이 되는 거야. 자릿세 걱정은 안 해도 되고 남편이 주먹질을 한 것도 그저 넘어가 줄게.”그 말을 마친 파리 형님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정민아를 쳐다보았다.이 거리에서 이 수법으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짓밟았는지 모른다.길에서 장사하러 나오는 여자들이 무슨 힘이 있을까.그저 파리 형님의 협박에 순순히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파리 형님의 사악한 표정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이때, 파리 형님의 어린 여자친구인 이은희가 갑자기 살짝 웃으며 말했다.“자기야, 이 사람 정말 오만하다. 자기를 사람 취급도 안 하는데? 쟤 완전히 사리구별을 못 해!”이 말을 듣자, 파리 형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오랫동안 보행로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지역 경찰서 일인자라도 파리 형님을 마주치면 어느 정도 체면을 세워줬다. 그런데 지금 어디서 굴러 나왔는지 모르는 이 녀석이 감히 파리 형님을 막 대해?심지어 쓰레기통 안에 들어가서 꿇으라고? 지금 장난해?“내가 마지막으로 다시 말한다. 당장 무릎 꿇고 이거 핥아서 깨끗이 만들어놔!”파리 형님이 냉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주위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지금 감히 입을 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숨소리조차도 낼 수 없었다.왜냐하면 지금 파리 형님이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이 작은 보행로에서 파리 형님의 심기를 건드려서 제 발로 기어 나간 사람이 없었다.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김예훈만이 차가운 얼굴로 어떤 미동도 없었다.이은희가 갑자기 앞으로 걸어가더니 정민아가 잘 펼쳐놓은 가판대를 뒤집어엎어 버렸다.“사람 말 안 들려? 너보고 당장 끓어서 물건 깨끗이 핥으라잖아! 귀먹었어?”이은희는 동네 날라리 같은 여자애로 지금 완전히 일진처럼 행동하고 있다.이은희가 이런 행동을 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왜냐하면 가판대를 뒤집어 버린 것은 완전히 싸우자는 뜻이다!곧이어 많은 사람이 정민아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봤다.이은희가 급발진한 이유가 알고 보니 정민아 때문인 건가?이은희는 아마도 파리 형님의 옆자리가 갑자기 굴러들어 온 정민아한테 뺏길까 봐 겁이 나는 것이다.이때 갑자기 착한 척을 하며 누군가 입을 열었다.“젊은이, 빨리 꿇어. 네가 안 꿇으면 오늘 이 일 안 끝나!”“맞아. 저렇게 덩치 큰 사람을 너희가 어떻게 이기겠어. 젊은이들은 물러나는 법도 좀 알아야 해!”“지금이라도 파리 형님한테 머리 숙여 사과하면 분명히 아까 철
“김 씨, 너 돌았니? 파리 형님이 모시는 분이 누군지 알고서 그러는 거야? 그분이 와서 사과하면 네가 감히 그걸 받을 수나 있을 것 같아?”“그분은 조직의 진정한 보스야. 원하는 거 다 하고 사시는 분인데 그분이 너한테 고개를 숙이길 원하는 거야?”“넌 일개 노점상의 데릴사위야. 네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해? 네가 가당키나 해?”...이서재와 주위 사람이 김예훈에게 손가락질하며 욕을 퍼부었다. 이들은 김예훈처럼 사리 분별을 못하는 녀석은 살면서 처음 본 듯했다.더욱 초조해진 정민아는 발을 동동거릴 뿐이다.‘조직의 보스보고 나한테 사과하라고? 김예훈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야?’정민아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휴대 전화를 들고 임무경과 임영운한테 각각 문자를 보냈다.정민아는 정말로 도움받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자존심 버리고 임씨 가문에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김예훈이 정말 파리 형님한테 맞아 죽을 까봐 겁이 났다.파리 형님은 김예훈이 자기의 보스를 데리고 와 직접 손발을 부러뜨리고 거기에 저 계집애한테 사과하라는 말을 듣자 정말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파리 형님은 욕설을 퍼부으며 앞으로 걸어와 김예훈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퍽그러자 곧바로 김예훈이 반격하며 파리 형님 얼굴로 주먹을 날려 버렸다.팍그리고 김예훈의 다리가 파리 형님의 아랫배를 강타했다.“아...”방금까지 기세등등하던 파리 형님이 지금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며 아픔을 토하며 그대로 김예훈 앞으로 쓰러졌다.팍김예훈은 또 이은희의 뺨을 내리쳐 쓰러뜨렸다.빠르게 두 사람이 김예훈 앞에 무릎 꿇게 됐다.이 모든 장면을 본 사람들은 얼어붙었다.이 데릴사위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직접 파리 형님과 그의 여자친구를 때려눕히다니?“이 새끼야! 너 미쳤어? 감히 우리 보스를 때려? 너 그냥 오늘 죽자!”“얘들아 가자!”뒤로 열댓 명 되는 양아치들이 한 손에 쇠 파이프를 들고 소리 지르며 달려와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그러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