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빌어먹을 계집애! 이건 우리 임씨 가문을 체면을 깎아내리는 짓이야!”“임씨 가문 같은 일류 가문에 어떻게 저런 여자가 나타났지!”“어쩐지 저 여자가 감히 우리 임씨 가문에 도전장을 내밀더라. 설마 돈 많은 남자를 꼬셨다고 이제부터 부귀영화를 누릴 줄 알았나?”화가 잔뜩 난 임씨 가문 사람들이 너도나도 말을 보탰다. 임씨 가문이 일류 가문이긴 하지만 사실 임무경 혼자의 지위로 겨우 버티고 있었던 것이며 가문 배경이 튼튼하지 않았기에 심지어 보통 이류 가문보다 뒤떨어졌다.이번에 백운 그룹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 임씨 가문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기회에 휘황찬란한 인생을 즐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정민아가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돈까지 흥청망청 쓰자 임씨 가문 사람들이 보기엔 이건 반항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일편단심으로 백운 그룹을 삼킬 생각만 하는 임옥희는 이번 기회에 임씨 가문을 최고의 가문으로 만들고 싶었기에 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으며 심지어 몸까지 부들부들 떨었다.“이건 우리 임씨 가문에 대한 모욕이야! 우리 임 씨 가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저 계집애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무경아! 네가 방법을 좀 생각해 봐. 난 저 계집애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야!”지금, 이 순간 임옥희는 당장이라도 정민아의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어르신, 너무 화내지 마세요. 정민아가 먼저 시작했으니, 저희도 못 할 거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 경기도 성남에서의 지위로 정민아를 상대할 방법은 많아요. 전화 한 통이면 발등에 아주 불똥이 튈 거예요!”한편, 임씨 가문이 떠난 뒤, 정민아는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었으며 절대 임 씨 가문에 그녀의 회사를 빼앗기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이 회사는 그녀가 힘들게 차려서 지금까지 유지했기에 그 누구에게도 쉽게 내어줄 수가 없었고 임씨 가문을 거절한 대가에 대해서는 정민아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어찌 됐든 임씨 가문은 그녀의 외갓집이었기에 심할 정도로
김예훈의 말에 직원이 코웃음을 쳤다.“저희 대리점 식당이 오늘 청소 중이라 손님을 실망하게 할 수밖에 없겠네요. 여기서 좌회전하시면 벤츠 대리점이 있거든요. 거기 고객 식당도 꽤 맛있어요.”카센터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으며 차를 보러 온 손님 중 점심시간을 마주치게 되는 손님들은 대리점에서 고객 식사를 대접했다. 그래서 일부러 점심시간에 차를 보러 오는 손님들이 많았으며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해결했다. 솔직히 진심으로 차를 사러 온 고객은 대리점에서도 두 팔 벌려 환영이지만 눈앞의 김예훈은 아무리 봐도 차를 살 능력은 없어 보였다. 주머니에 돈도 없으면서 차를 보러 온 척하며 점심까지 먹고 가는 고객에 대해 직원들도 너무 지겨웠기에 보통은 말 몇 마디로 대충 돌려보내곤 했다.그들이 보기엔 김예훈이 차를 살 능력이 전혀 없어 보였기에 이번에도 대충 말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걱정하지 마세요. 밥 먹으러 온 거 아닙니다. 그런 거에 관심 없어요.”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하던 김예훈이 대리점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직원이 또다시 그를 막았다.“손님, 죄송한데 저희 대리점에서 차를 구매하려면 사전에 예약하셔야 합니다. 예약을 안 하셨으면 들어갈 수 없어요.”대리점 주제에 고고한 자태로 대단한 척하는 직원을 보며 김예훈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가 BMW 대리점을 떠나려던 순간, 정장을 입은 남자 몇 명이 다가왔고 김예훈을 내쫓던 직원이 반짝이는 두 눈으로 다급하게 달려 나갔다.“손님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저희 대리점은 소중한 고객님들을 위해 점심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천천히 둘러보세요!”정장 차림을 한 남자들은 김예훈이 보는 앞에서 직원의 안내에 안으로 들어갔고 갑자기 고개를 돌린 직원은 벤츠 대리점으로 향하던 김예훈을 보며 비꼬았다.“봤죠? 진짜 차를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은 고객들은 저희가 이렇게 안내해요. 근데 당신은 딱 봐도 공짜 점심을 먹으로 온 거 같은데 저희 대리점은 당신 같은 사람을 환영하지 않아요! 그
장효진을 아래위로 훑어보던 김예훈은 그제야 어렴풋이 생각나는 듯했다. 장효진은 몇 년 전에 김 씨 가문에서 일하던 하인이었으며 화장실 청소나 그릇을 닦는 일을 했었다.그때 당시 나대는 성격이 아니었던 김예훈은 가끔가다가 백운 병원에 나타났었고 장효진은 김예훈의 신분에 대해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가 김 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으며 그를 만날 때마다 무릎을 꿇었던 기억이 났다. 김예훈은 안 본 사이에 장효진이 BMW 대리점의 대리가 되어 있었을 줄은 몰랐으며 그래도 꽤 충실하게 살고 있는 듯했다.“아, 장효진 씨, 오랜만이네요. 근데 부하 직원들 관리를 좀 더 신경 써야겠네요. 제가 고객이고 차를 사러 왔는데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건 말도 안 되죠.”김예훈이 웃으며 말하자, 장효진이 콧방귀를 뀌며 입을 열었다.“친애하는 도련님, 제 생각엔 직원들 행동에 문제가 없는 거 같은데요! 제가 뉴스도 안 보고 사는 줄 알아요? 김 씨 가문은 얼마 전에 파산해서 자금이 CY 그룹에 전부 넘어갔잖아요. 우리 김 씨 가문의 도련님은 예전에 명품만 입으셨는데 이제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을 전부 합쳐도 2만 원은 못 넘네요. 딱 봐도 차를 살 능력이 없는데 저희 직원이 안내할 필요가 전혀 없잖아요? 저희는 1분 사이에도 몇백만 원씩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라 시간이 곧 돈이거든요!”상대방의 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김예훈은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굳어 있다가 옛정을 생각해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너무 치밀어 올랐기에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차를 살 돈이 없다고 누가 그래요? 제가 원하기만 하면 이 대리점까지 살 수 있어요.”“풉!”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장효진이 말을 이어갔다.“그만 해요, 도련님, 제 앞에서는 허세를 안 부려도 돼요. 당신네 김 씨 가문이 어떤 상황인지 제가 모를까 봐요? 그리고 우리 도련님은 지금 데릴사위 노릇까지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먹고 자고 입는 것까지 아내 돈으로 살고 있는데 좋게 말해서
김예훈은 뒤도 안 돌아보고 벤틀리 대리점으로 들어갔고 지켜보던 BMW 대리점 직원들은 호탕하게 웃으며 수군거렸다.“대리님, 저 사람 웃음거리 되는 걸 보러 가실래요?”“그럴 가치도 없어요. 돈도 없는 주제에 뭘 사기나 하겠어요? 벤틀리는 고사하고 입구에서 바로 쫓겨날 거예요!”웃으면서 말하던 장효진은 돌아서서 대리점 안으로 들어갔다.한편, 벤틀리 대리점에 도착하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직원은 김예훈을 난감하게 만들지 않았다.“고객님,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차가 있나요? 아니면 제가 간단하게 설명을 해드릴까요?”긴 다리를 자랑하는 직원 양정아가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김예훈에게 말을 걸었고 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저기 BMW 대리점 바로 맞은편에 있으면서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모를 수가 없을 텐데 너무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네요. 제가 공짜 점심밥을 노리고 왔으면 어쩌려고요?”“고객님, 식사가 필요하시면 저희 벤틀리도 고객을 위한 식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대리점이 영업을 하는 한, 오시는 모든 분은 저희의 소중한 고객입니다. 고객님이 저희 제품을 사든 안 사든 저는 직원으로서 고객님에게 제품을 소개해 드릴 의무가 있습니다. 고객님이 지금은 저희 제품을 사지 않더라도 일 년 뒤에 살 수도 있잖아요? 그때 가서 꼭 저희를 우선으로 고려해 주면 고맙겠습니다.”양정아가 웃음을 유지한 채 상냥하고 친절하게 설명했고 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손가락으로 전시 차량을 가리키며 말했다.“이 차로 구매할게요.”“고객님, 이 차량은 저희 대리점에서 옵션이 가장 화려하고 좋은 모델로 가격이 10억이 넘습니다. 이 차량으로 드릴까요?”흠칫하던 양정아가 확실하지 않아서 다시 한번 물었고 김예훈은 가볍게 미소를 보이며 까만 카드 한 장을 건넸고 그 카드를 받은 양정아는 너무 놀라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블랙카드였다!벤틀리 판매원인 양정아는 이런 카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블랙카드는 한도가 제한되어 있지
한편, BMW 대리점에서.사장인 김광수가 시끌벅적한 맞은편 가게를 보며 감개무량한 듯이 말했다.“벤틀리 대리점에 재력가가 또 납셨다고 들었는데 한정판 전시 차량을 바로 구매했네. 참 대단해. 우리 가게에는 언제 저런 재력가가 오셔서 7시리즈를 사갈까?”김광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현재 BMW 가게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건 1시리즈로 가격은 2천만 원 정도였는데 2억을 넘는 7시리즈는 꽤 오래전부터 전시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팔리지 않았다. 김광수는 저러다가 녹이라도 쓸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아참, 장효진 씨를 불러와요. 어마어마한 재력가님에게 애마를 뽑은 걸 축하한다고 선물이라도 드리러 가야죠. 나중에 또 우리 가게도 방문해 줄 수도 있으니까요.”김광수는 장사 머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내, 장효진이 들뜬 표정으로 손에 꽃다발까지 들고 나타났으며 벤틀리를 구매하는 재력가와 안면을 틀 수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기에 김예훈과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한편, 김예훈은 벤틀리 대리점 VIP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으며 다른 직원은 전부 거절한 채, 양정아와 둘이 흥미진진하게 바둑을 두고 있었다.바로 이때, 장효진과 최홍이 김광수를 따라 벤틀리 대리점에 들어섰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장효진은 문득 김예훈이 생각이 나서 중얼거렸다.“그 비렁뱅이는 어디 갔을까요? 안 보이네요?”“벤틀리 대리점에 고객 식당이 잘 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은 공짜 밥을 먹느라 정신없겠죠.”최홍이 웃으며 대답하자 장효진도 웃음을 터트렸다.“최홍 씨 추측을 맞을 거예요. 그 사람은 여기서 저녁밥까지 해결하고 갈 수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우리 BMW를 살 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염치도 없이 본인들 배 채우기 바쁘거든요!”이때, 앞에 서 있던 김광수가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그만 하세요! 여긴 벤틀리 대리점이에요. 말조심하세요. 그러다가 재력가 고객 눈 밖에 나기라도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사장님이 화를 내자 장효진과
김예훈의 냉랭한 표정에 깜짝 놀란 김광수가 얼른 말을 돌렸다.“고객님, 저희는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축하하는 마음으로 온 겁니다. 혹시 고객님께 불편을 드렸다면 사과하겠습니다.”김광수가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이런 재력가들은 이런 요청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김광수는 혹시라도 자신이 성격이 괴팍한 고객을 만난 건가, 눈치를 보고 있었다.“얼른 와서 고객님에게 사과해요!”이때, 장효진과 최홍이 재빨리 앞으로 다가왔고 재력가 고객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두 사람은 눈앞이 까매진 채,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김예훈이라니! 한정판 벤틀리 차량을 구매한 재력가가 비렁뱅이 취급을 받았던 김예훈이라니!저 사람은 진짜 차를 사러 온 것도 모자라 주저 없이 11억이나 되는 차를 구매하다니!장효진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사장인 김광수도 김예훈 앞에서 쩔쩔매는데 그녀는 조금 전에 김예훈을 BMW 매장에서 쫓아낸 것이다. 그녀는 김광수가 혹시라도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되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식은땀까지 흐르기 시작했다.이때, 김광수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김예훈이 냉랭하고 싸늘한 눈빛으로 BMW 직원들을 쳐다보았으며 마치 더러운 벌레를 쳐다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자신을 축하해 주러 온 사람들한테 저런 표정은 짓지 않을 것이기에 잠시 생각하던 김광수가 옆에 있던 비서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김예훈을 한눈에 알아본 비서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김광수의 귓가에 대고 조금 전에 있었던 상황을 얘기했으며 비서의 말을 듣고 있던 김광수는 하마터면 뒤로 쓰러질 뻔했다.“뭐라고?”재력가 고객이 그들 대리점에 다녀갔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장효진에게 쫓겨났다고? 저 빌어먹을!“멍청한 놈!”벌떡 몸을 일으킨 김광수가 장효진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사장님, 제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팍!”김광수는 장효진의 말에 다시 한번 뺨을 때렸다.“너희들은 우리 가게로 오신 고객님을 욕설로 쫓아냈을 뿐
결국 격하게 맞은 장효진은 이까지 몇 개 빠졌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김광수가 그녀의 무릎을 팍 차더니 장효진은 그대로 김예훈 앞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고객님, 이 버르장머리 없는 직원은 제가 제대로 교육했습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세요!”김광수는 자신도 무릎을 꿇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런 거물급 인물이 그에게 어떤 파괴적인 타격을 줄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만에 하나라도 장효진 저 멍청한 직원 때문에 파산이라도 하게 되면 김광수는 벽에 머리를 박고 죽을 생각이었다.바로 이때, 김예훈이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사과는 받아줄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좀 바빠서 그러는데 길 막지 마세요.”벼락이라도 맞은 듯 깜짝 놀란 김광수가 재빨리 말했다.“고객님, 제가 지금 당장 저 몇몇 직원을 자르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절대 이 업계에 발도 못 들이게 블랙리스트에 올리겠습니다. 저희 BMW 회사는 물론 성남시의 그 어떤 카센터에서도 절대 저 사람들을 채용하지 못하게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김광수의 말에 장효진 등 직원들은 기절할 뻔했다. 몇 대 맞은 것도 괜찮고 뺨이 퉁퉁 부을 정도로 후려 맞은 것도 참을 수 있었지만 해고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게 되면 모든 게 끝장나는 셈이다. 이렇게 높은 월급을 주는 회사를 찾기 힘들었기에 앞으로 살아가는 것이 문제며 연봉을 1억 정도 받는 그들은 집 대출과 차 대출도 많이 남았기에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되면 큰일 날 것이다.이건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벌이었다.이때, 벤틀리 대리점의 사장이 적절한 타이밍에 입을 열었다.“저희 업계는 막말로 물건을 파는 직업입니다. 저희가 사업을 하면서 제일 중요한 원칙은 바로 고객님을 왕으로 모시는 겁니다. 이런 원칙조차 지키지 못하고 본인들이 대단하다고 착각하는 그런 사람은 저희 업계에서 일할 자격이 없습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물을 흐릴 수가 없죠! 그러니 전 해고를 찬성합니다!”“저희 포르쉐도 찬성합니다!”“저희
”마음은 감사하지만, 전 택시 타면 됩니다.”정민아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방현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아가씨,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전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조금 전에 보니 백운 빌딩에서 나오시던데 전 옆에 있는 로열 빌딩에서 근무하고 있거든요. 전 로열 가든 그룹 프로젝트 부서의 부총관 방현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저희가 합작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요.”훤칠한 외모를 자랑하는 방현은 지적이고 겸손해 보였으며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정민아에게 건넸다. 방현이 정민아에게 접근한 것은 의도적이었다. 점심때 우연히 정민아를 본 적이 있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한눈에 반했으며 이렇게 말을 걸 기회만 내내 엿본 것이다. 심지어 차에서 내리기 전에 친구들에게 길가에 서 있는 정민아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기까지 하며 오늘 어떻게든 정민아를 그의 여자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예의상 상대방의 명함을 받은 정민아가 자신의 명함도 방현에게 건넸다. 어찌 됐든 이 바닥에서 일을 하려면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했다.정민아의 명함을 받은 방현이 두 눈을 반짝거렸다.“백운 그룹의 정 대표님이셨네요. 이런 우연이 다 있다니. 저희 로열 가든 그룹도 건축업을 종사하고 있는데 앞으로 업무적으로 교류할 일이 많겠네요. 아참, 이 차는 제가 며칠 전에 새로 뽑은 BMW 7 시리즈로 가격이 2억 정도 되거든요. 제일 중요한 건, 제 조수석에 타본 사람은 아직 없다는 거죠. 정민아 씨가 그 첫 사람이 되면 너무 영광일 것 같습니다.”“괜찮습니다. 제가 이따가 택시 타고 가면 됩니다.”정민아가 예의 바르게 거절하자 방현이 일부러 화난 척하며 말을 이어갔다.“정민아 씨, 뭘 그렇게 경계해요? 설마 제가 정민아 씨를 잡아먹기라도 하겠어요? 제가 좋은 마음으로 바래다 드리려고 하는 건데 이렇게 나오시면 제 체면이 말이 아니죠! 이렇게 합시다. 정민아 씨가 제 차에 타 주시면 고마움 표시로 제가 오늘 저녁 성남 타워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어때요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