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파... 아파... 내 다리...”극심한 고통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추경은.이지원에게 아무리 간절하게 애원해 보아도 달라지는 것이 없자, 추경은은 박민정에게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새언니, 신고라도 좀 해봐요... 어떻게든 저 좀 살려주세요.”이지원은 그제야 다리를 내리면서 고개를 돌려 박민정을 보게 되었다.“내가 하마터면 널 잊을 뻔했어.”세상 도움이 되지 않은 추경은을 한번 흘겨보고 난 뒤 박민정은 이지원에게 말했다.“난 지금까지 네가 나한테 했었던 그 말을 기억하고 있어.”“무슨 말인데?”이지원은 마냥 의혹이 들었다.“우리 사이에 유남준만 얽힌 게 아니었다면 그 어떠한 모순도 없을 거라는 그 말을.”“우리 꽤 친한 친구 사이었고 나중에는 유남준으로인해 라이벌 사이가 된 거야. 아니야?”박민정이 말했다.이지원은 자기가 했었던 그 말이 마침내 떠오르게 되었다.하지만 눈동자가 흔들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 손을 꼭 움켜쥐었다.“그래! 너랑 나의 첫 시작은 좋았었어. 그 어떠한 원한도 없이 말이야.”“근데 너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지경이 된 거잖아. 평범하게 살지도 못하고 명예고 지위고 모두 바닥나 버리고 심지어 숨어서 지내고 있잖아!”“내가 지금 바라는 건 네가 죽는 것, 그거 하나뿐이야.”박민정은 시종일관 덤덤한 모습을 유지했다.가능한 한 시간을 끄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시급한 일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정민기 일행이 달려와서 자기를 구조할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나 때문에 그 지경이 된 거 확실해?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지, 너한테는 문제가 없는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라도 있어?”박민정은 덤덤하게 되물었다.“내가 너한테 시켰어? 나 사칭하면서 인우 씨랑 어머님 살리라고 내가 시켰어? 임수호 꼬셔서 그 사람 집안 파탄 내라고 내가 시켰어? 기어이 다른 남자 빼앗아 와서 또다시 버리라고 내가 시켰어?”연달아 날아 오는 폭격 질문에 이지원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단숨에 박민
권해신은 박민정과 배 속의 아이를 살리고 싶으면 혼자 오라고 유남준에게 분명히 말했다.공갈장을 들여다보면서 서다희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간사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기 그지없는 놈이네요! 대표님께서 앞이 보이시지도 않는데, 혼자서 오라는 게 말이나 돼요?”유남준은 두 손을 꼭 움켜쥔 채로 권해신의 또 다른 메시지를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권해신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는데, 역시나 ‘전용차’가 기다리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그 누구든 몰래 ‘전용차’를 따라와서는 안 된다고 미리 경고까지 했다.“아래까지 데려다줘.”덤덤한 얼굴로 유남준이 말했다.“대표님, 권해신 그자의 함정이 분명합니다. 만약 이대로 가시게 되면 절대 대표님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제가 몰래 사람들 데리고 사모님 찾아내겠습니다. 무사히 사모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미 애간장이 타들어 가고 있는 유남준이다.그렇다, 박민정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약점이다.“민정이 목숨으로 감히 모함할 수 없어. 얼른 가자.”유남준이 어떠한 결정을 하게 되면 그 누구도 그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는 점을 서다희는 잘 알고 있다.따라서 하는 수 없이 유남준의 말대로 일단 데려다 줄 수밖에 없었다.유남준은 ‘전용차’에 오르기 전에 서다희에게 덤덤하게 부탁했다.“나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기게 된다면, 나 대신 우리 아이들 좀 챙겨줘.”서다희가 두 아이에게 잘 해주리라 믿으며 제법 진지하게 말했다.그와 반대로 유남준의 입에서 이러한 말을 처음 듣게 된 서다희는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대표님, 그런 말씀 마세요. 절대 그 어떠한 일도 없을 겁니다.”유남준은 마치 그의 위안 따위를 듣지 못한 것처럼 계속 다른 부탁을 이어갔다.“앞으로 회사도 네가 책임져. 우리 아이들은 그냥 성인이 될 때까지만 챙기면 돼.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살지, 어떠한 미래를 선택할지 그건 걔들 인생이야.”자기 아이들이 절대 자기한테 의지하면서 숨 쉴
“그래?”또다시 부하에게 그만하라고 손짓하고 있는 권해신이다.“인질로서 쓸모가 있는 여자야? 추씨 가문과 유씨 가문이 연락을 끊은 지도 오래되었잖아.”“아니!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거든.”“유남준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촌 동생이 바로 추경은이야. 이따가 유남준이 와서 나를 살리려고 하지 않더라도 추경은은 살리려고 할 거야. 그러한 의미에서 큰 쓸모가 있는 여자라는 말이야.”박민정이 말했다.권해신은 유남준에게 이러한 정이 있고 아끼는 동생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윽고 부하에게 그만두라고 사인을 주었다.“눈이 멀면서 마음마저 멀었나 봐? 천하의 유남준이 여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예전과 같았더라면 여자고 뭐고 아주 흘겨보지도 않았었는데.”유남준이 차에 올랐다는 메시지를 보고서 권해신은 자기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박민정 역시 그가 자기를 구하러 올 것으로 생각지 못한 모습이다.홀로 D국으로 갔을 때, 위험에서 벗어나자마자 박민정을 탓했던 유남준이기때문에 더더욱 놀라운 것이다.모두가 유남준이 오기를 기다렸고 추경은은 지금 그 구덩이 안에 외롭게 누워있다.오늘 박민정 따라서 산책을 나온 것에 대해 무척이나 후회하면서 말이다.만약 따라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일도 없었을 텐데 억울하기도 했다.“아파요.”그리고 박민정은 바로 옆에 있는 구덩이로 이미 던져졌다.“살고 싶으면 아파도 참아요.”추경은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실은 살리고 싶어서 나선 것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옆에 있으면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 그러한 것이다.만약 추경은이 바로 자기 앞에서 생매장을 당하게 된다면 그 즉시 침착을 잃을 것만 같았다.지옥 같은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소리를 듣자마자 추경은의 두눈이 번적거렸다.바로 밖을 향해 내다보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남준 오빠, 남준 오빠 맞아요?”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권해신 부하들과 함께 유남준이 들어왔다.“둘째 도련님, 데리고 왔습니다.”권해신은 기고만장
권해신 부하들은 곧바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흙은 어느새 구덩이 절반을 가득 채워져 갔다.흙투성이가 되어 버린 추경은은 살고 싶어서 애원했다.“남준 오빠, 나랑 새언니 좀 살려줘. 허리까지 묻혔단 말이야.”그와 반대로 박민정은 손으로 배를 꼭 감싸안기만 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이치대로라면 권해신은 절대 유남준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고 하여 자기와 추경은을 봐줄 리가 없음을 박민정은 잘 알고 있다.유남준에게 더욱더 과분한 일을, 존엄이 바닥나는 일을 시킬지도 모르고 말이다.“남준 오빠, 나는 그렇다 쳐도 되는데, 새언니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생각해야 할 거 아니야!”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박민정은 조금 전 그녀를 그냥 죽게끔 방치해 두지 않은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었다.“경은 씨, 제발 입 좀 다물어요!”권씨 가문 둘째 도련님인 권해신이 얼마나 독하고 음험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 박민정은 천천히 배를 거두었다.권해신은 그제야 박민정의 배에 시선을 쏠리게 되었다.“쯧쯧쯧, 또 임신했어? 깜빡했지 뭐야.”“유 대표 사모님 어서 일으켜드려.”권해신 부하들은 바로 박민정에게 다가갔고 내내 덤덤했던 박민정은 마침내 당황하고 말았다.장정 몇 명이 강제로 일으키는 바람에 어찌할 사이도 없었다.유남준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서 나지막이 소리 냈다.“그손놔!”손을 놓기는커녕 권해신은 다른 이들에게 비아냥거리면서 묻기까지 했다.“너희들 유 대표 사모님처럼 임신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아름다우신 여성을 본 적이 있어?”그들은 음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아니요.”“그럼, 오늘 아주 제대로 맛보게 해줄까?”순간 박민정은 머리가 윙윙거렸다.별의별 생각을 속으로 다 해보았으나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박민정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소리쳤다.“오지 마!”“그만해! 민정이한테 손대지 마! 무릎... 꿇을게.”그리 크지 않은 소리임에도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렸다.그 말을 듣게 되
그 장면을 목격한 박민정은 순간 숨이 턱 멈추는 것만 같았다.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나올 정도였다.“남준 씨!”그와 반대로 유남준은 덤덤한 모습으로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차분하게 박민정을 위안해 주었다.“나 괜찮아. 두려워하지 마.”빨갛게 물들어버린 그의 흰 셔츠를 보고서 박민정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달려가고 싶었으나 누군가가 박민정을 확 잡아버렸다.하는 수 없이 큰 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남준 씨, 인제 그만 해요! 남준 씨가 나를 신경 쓰지도 않고 마음에 두고 있지도 않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남준 씨가 신경 쓰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내 배 속에 있는 아이잖아요. 근데 그거 알아요? 이 아이는 남준 씨 아이가 아니에요.”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박민정에게 쏠렸고 놀라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추경은은 그 말을 듣고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미친년! 감히 남준 오빠를 배신해?”그러자 박민정은 차갑게 웃으며 바로 윽박질렀다.“왜? 네 오빠는 날 배신해도 되고 난 배신하면 안 돼? 그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야? 유씨 가문에서 대체 날 어떻게 본 거야? 왜 나라고 저 인간 배신하면 안 되냐고!”“파렴치한 년!”추경은은 침까지 뱉으며 욕설을 퍼부었다.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이 쏠린 권해신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쯧쯧쯧, 내가 오늘 막장 드라마까지 보게 되는구나.”“유남준, 너도 배신당한 거야? 하하.”유남준은 바보가 아니다.박윤우와 박예찬은 날짜가 맞지 않아 처음에 자기 아이가 맞는지 의심했었지만 지금 배 속에 있는 아이는 확신할 수 있었다.자기가 한 일인데 모를 리가 없다.지금 그러한 말을 하고 있는 박민정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박민정은 지금 다른 이들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그러한 의도를 캐치하고 유남준은 비수를 확 멀리 던지고 나서 비틀거리면서 박민정에게 다가갔다.“박민정! 네가 어떻게 날 배신할 수 있어?”
그러한 의미에서 만약 박민정이 정말로 연지석의 여자라고 한다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게다가 권해신은 처음부터 박민정에게 나쁜 짓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유남우 역시 박민정을 끔찍이 여기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권해신은 아직 유남우에게 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지금의 권씨 가문 실력으로는 유씨 가문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자라 알고 있으니 말이다.“그 말에 신비성이 있는지 내가 무슨 수로 확인하지?”이윽고 권해신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연지석 아이를 품고 있는 거라면 적어도 연지석 번호는 알고 있지?”속으로 무척이나 당황한 박민정은 정민기가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당연하지.”박민정의 바람대로 정민기와 서다희는 사람들을 이끌고 이미 이곳으로 와 있었다.주위를 모두 포위하고서 만일을 위해 공사장 안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내 핸드폰에 있어.”권해신은 부하를 바라보았고 눈치를 챈 부하는 바로 박민정의 핸드폰을 가지고 왔다.연락처를 좀 훑어보니 과연 연지석의 전화번호가 시야에 들어왔다.“내 앞에서 연지석한테 전화 걸어. 만약 날 속이는 거라면 그땐 네가 상상치도 못하는 일들이 펼쳐질 거야.”박민정에게 이렇게까지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단지 유남준이 조금이라도 더 난처해졌으면 하기 위함이다.유남준을 바로 죽이는 것보다 이처럼 조금씩 죽여나가는 것이 훨씬 짜릿하고 좋았다.드디어 풀려난 박민정은 권해신의 윽박으로 연지석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받지 마.’전화를 걸고서 박민정은 스피커를 눌렀다.주위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고 유남준은 박민정 쪽의 소리에 집중하며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계산하면서 위치를 알아내려고 했다.연결음이 계속 들려왔고 연지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렇게 박민정의 바람대로 전화가 끊기려고 할 때 연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민정아.”다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권해신은 살짝 당황했다.얼굴에 보기 흉한 흉터가 있는 박민정이 무려 연씨 가문의 도련님을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지석아
공사장 밖에서 정민기는 이미 부하들과 함께 비밀리에 장애물을 처리해 버렸다.유남준과 박민정이 지금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정민기와 서다희는 서로 사인을 주고받고서 바로 안으로 달려들었다.하도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권해신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의 부하 역시 어안이 벙벙해졌다.“둘째 도련님!”권해신은 그제야 알았다.지금껏 시간을 끌려고 모든 꼼수를 총동원했다는 사실을 말이다.하지만 서다희가 어떻게 위치를 알고 찾아왔는지 궁금하기도 했다.일이 이 지경으로 번진 마당에 권해신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음을 알고 유남준 일행의 목숨이라도 빼앗을 생각이었다.“저 두 여자랑 유남준만 죽이면 내가 10억을 주려고 한다.”“만약 죽이는 도중에 함께 죽게 된다면 그 몫은 그 사람 가족한테 줄 것이다.”10억?일반인이 평생을 소처럼 일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만질 수 없는 금액이다.권해신 부하들은 두 눈을 이글거리면서 박민정을 향해 다가갔다.박민정은 바로 유남준의 손을 잡고서 소리쳤다.“얼른 가요.”칼날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귓가에 퍼졌고 박민정은 으스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게다가 추경은의 소리까지 들려왔다.“남준 오빠, 나 좀 살려줘!”다리를 다친 추경은, 아이를 품은 박민정, 손을 다친 유남준...세 사람은 순순히 도망칠 수 없었다.권해신 부하가 휘두른 칼날이 박민정 코 앞으로 다가왔다.박민정은 본능적으로 배를 감싸며 아이부터 지켰다.이대로 죽게 되는 줄 알았으나 유남준이 또다시 앞을 가로막으면서 그녀를 살려주었다.다만 이번엔 피가 박민정의 두 눈을 물들여 버렸다.“남준 씨!”배가 아파지면서 숨쉬기조차 어려웠으나 박민정은 그부터 꼭 껴안았다.“남준 씨!”때마침 정민기가 조금 전 그 사람을 처리하고 다가왔다.불과 10분 만에 모든 적을 물리 세웠고 도망치려던 권해신까지 기절시켜 버렸다.박민정은 다른 이들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뼛속 깊이 파고드는 아픔을 참으면서 유남준을 꼭 껴안았다.어디가 다쳤는지 지금 박
안타깝게도 그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는 유남준이다.자기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유남준을 바라보면서 박민정은 두 손을 더욱더 움켜쥐었다.피범벅인 박민정을 바라보면서 서다희 역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사모님,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선생님께 한번 봐 드리라고 할게요.”박민정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다친 데 없어요... 다친 사람은 남준 씨예요... 남준 씨만 다쳤어요.”서다희는 그제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의사의 사투로 유남준은 마침내 지혈을 할 수 있었다.“병원으로 가셔서 봉합해야 합니다. 제가 살펴본 정황에 따르면 동맥까지 다치셨습니다. 지혈했다고 한들 얼마나 유지할 수 없을 겁니다.”의사의 말에 서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유남준 오른쪽 머리에 긴 칼 상처가 있는데, 하마터면 얼굴까지 상처가 날뻔했다.조금 전에 조금이라도 더 신중하게 움직이지 못한 정민기와 자신이 한스러웠다.아니면 유남준에게 이러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말이다.하지만 그 어떠한 후회도 돌이킬 수 없는 게 이 세상의 법칙이다.드디어 병원에 도착했고 김인우가 직접 수술칼을 잡았다.함께 온 추경은은 다른 수술실로 옮겨져 갔다.복도에 멍하니 앉아 있는 박민정은 양손을 새빨갛게 물들어 버린 손을 바라보면서 파르르 떨었다.이때 정민기가 다가왔고 뭐라고 위로하면 좋을지 몰라 가만히 옆에 서 있기만 했다.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고 나서야 수술이 끝났다.집으로 돌아온 박윤우는 박민정과 유남준이 보이지 않자, 전화를 걸어왔다.아들의 목소리에 박민정은 겨우 버티면서 거짓말을 했다.유남준과 함께 볼 일이 있다면서 오늘은 집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그렇게 박윤우에게 거짓말을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마침내 유남준이 수술실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박민정은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김인우가 마스크를 벗으면서 엄숙한 모습으로 다가왔다.“어떻게 됐어요?”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박민정이 물었다.“내일쯤이면 깨어
박민정이 회사로 복귀한 후 긴장감이 감도는 사람은 윤소현뿐만이 아니었다. 이지원 역시 초조해하고 있었다.어렵사리 다시 연예계에 복귀한 그녀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들이 박민정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드러날까 두려웠다.이지원은 종종 몰래 박민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하곤 했다.그날도 촬영을 마친 뒤 그녀의 차는 PMJ 회사 앞에 멈춰 있었다.이지원은 차 안에 앉아 박민정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드디어 박민정이 회사에서 나오는 것이 보이자 이지원은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하이힐을 신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도드라진 모습으로 걸음을 옮겼다.박민정도 그녀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누군지 알아보기 전에 이지원은 그녀 앞까지 다가와 길을 막아섰다.“민정 씨, 드디어 돌아왔네요.”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박민정의 마음 한구석에 본능적인 반감이 피어올랐다.비록 그녀는 이지원이 저질렀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목소리만으로도 불쾌감을 느꼈다.이때 진서연이 재빠르게 박민정 앞을 막아섰다.“당신 누구에요?”이지원은 그제야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는데 필러로 채워진 얼굴이 드러났다. 시간의 흔적과 연예계의 생존 경쟁 속에서 그녀는 온갖 방법으로 외모를 유지하려 애썼다.진서연은 그녀를 알아보자 얼굴을 찌푸렸다.“이지원 씨, 여기 왜 온 거예요? 또 우리 보스한테 해코지하려는 거 아니에요?”이지원의 눈에 차가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천한 년!'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박민정에게 말했다.“민정 씨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상태가 어떤지 보러 온 거예요.”박민정은 냉랭하게 대꾸했다.“그렇다면 고맙네요.”그녀의 말투는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졌다.이지원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박민정이 아직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혹시라도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요. 부담 갖지 말고.”이지원은 친절한 척 덧붙였다.“우리 보스가 당신 같은 사람을 찾을 일은 없으니 그만 꺼져요!”진서연
“민정아, 엄마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하지 말아줄래? 날 욕해도, 화를 내도 괜찮으니 제발 그렇게 차갑게만 하지 말아줘, 응?”정수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지만 박민정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저는 화낼 이유가 없어요.”박민정은 솔직하게 말했다.지금의 그녀는 예전과 달랐다. 과거에는 기억이 있었기에 정수미가 친모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에도 냉대를 받을 때마다 깊이 상처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었다.그녀는 눈앞의 정수미를 낯선 사람처럼 느꼈고 그래서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않았다.정수미는 목이 칼로 베인 듯한 고통을 느꼈다.“모두 내 잘못이야... 전부 내 잘못이야...”어떻게 해야 박민정에게 사죄하고 보상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정수미는 눈을 떨구고 등을 살짝 구부린 채 방을 떠났다.그녀가 떠난 뒤, 진서연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물었다.“보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이를 다치게 했다니, 무슨 소리죠?”박민정은 어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진서연에게 설명했고 진서연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분노를 터뜨렸다.“윤소현이 어떻게 그런 모함을 할 수 있죠? 제 생각엔 일부러 자기 아이를 다치게 한 게 틀림없어요.”그녀는 단 한마디로 진실을 꿰뚫었지만 박민정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설마. 그래도 자기 친딸인데.”“그 여자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진서연은 단호히 말한 뒤 박민정을 위로했다.“보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꼭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박민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래.”하지만 진서연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여러 차례 그녀에게 당부를 했다.박민정은 기억을 잃은 후 꽤 오랜 시간을 보냈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기억을 되찾으려 했지만 아직 성과는 없었다.그녀는 오늘도 진서연과 함께 회사로 출근했다.점심시간, 박민정은 모두가 쉬고 있을 때 잠깐 밖에 나가겠다며 자리를 떴다.그녀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주
가정부가 나가고 나자 정수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어떻게 이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지?”정수미는 깊은 후회에 사로잡혔다. 왜 하필 윤소현을 입양했을까?비서도 믿기 힘든 듯 고개를 저었다.“큰아가씨의 복수심이 너무 강해요. 자신의 딸마저 이용하다니요.”비서는 윤소현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정수미가 박민정, 그녀의 친딸을 미워하게 만들려 한 것이다.“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정수미는 스스로 중얼거리며 비서에게 묻는 듯 자신에게 묻는 듯한 말을 했다.비서는 사적인 가정사에 대해 조언할 수 없었기에 침묵을 지켰다.오랜 고민 끝에 정수미는 윤소현의 방으로 향했다.윤소현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이의 몸에 상처가 가득하고 고열까지 나고 있는데도 이렇게 편안히 잠들 수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소현아!”정수미가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녀를 깨우자 윤소현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눈을 떴다.“엄마, 이 시간에 무슨 일이길래 제 방에 오신 거예요? 쉬셔야 할 시간 아니에요?”정수미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너랑 얘기할 게 있어서 왔다.”윤소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무슨 얘긴데 내일 하면 안 돼요?”“다혜와 민정이에 대한 얘기야.”정수미의 목소리는 냉랭했다.그 말을 듣자 윤소현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엄마, 박민정한테 경고할 거죠?”흥분한 그녀의 말투에 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아니, 너한테 경고하려고 왔어.”정수미의 단호한 말에 윤소현은 멍해졌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정수미는 가정부가 털어놓은 모든 진실을 이야기했고 윤소현은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멍해졌다.“엄마, 그 여자의 헛소리를 믿지 마세요! 다혜의 친엄마인 제가 어떻게 제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처음엔 나도 네 말을 믿었다. 네가 민정이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네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민정이를 경찰에 넘긴 거였어. 그런데 네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정말 실망이야.”정수미는 깊이 한숨을
비서는 정수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제 생각에 둘째 아가씨는 아이에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사람 같지 않아요.”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래. 하지만 소현이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 내가 그때 민정이를 도왔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거야. 어떤 난리를 칠지 몰랐겠지.”정수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혜 일은 빨리 조사해 봐.”“알겠습니다.” 비서가 대답했다.정수미는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외손녀를 바라보며 다짐했다.“다혜야, 걱정하지 마. 외할머니가 꼭 널 다치게 한 사람을 찾아낼게.”그녀는 윤소현을 편드는 것도, 박민정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지금은 윤소현을 달래며 조용히 진실을 파악하려 했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밝혀내기 위해.밤이 깊었을 때, 정수미는 아이를 돌보던 가정부를 불렀다.“자, 말해 봐. 오늘 왜 거짓말을 했는지. 누가 너한테 뭔가를 줬니?”가정부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대표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저는 거짓말 안 했습니다. 정말로 사모님께서 그랬어요.”정수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아직도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거야? 병원에서 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민정이가 다혜를 안은 뒤로 다혜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했지. 그런데 이제 와서 대체 어떻게 그게 민정이가 했다는 걸로 바뀐 거지? 네가 직접 민정이가 아이를 해치는 걸 봤어?”가정부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얼버무렸다.“민정 아가씨가 다혜를 때리는 걸 희미하게 본 것 같아요...”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희미하게 봤다고? 그럼 왜 그 자리에서 막지 않았지?”가정부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 그게 제가 혹시 잘못 본 걸까 봐...”그녀의 말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정수미는 확신했다. 이건 명백히 거짓말이었다.“분명히 말하는데 네가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하면 용서해 줄 테지만 계속 거짓말을 한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정수미의 위협에 가정부는 몸을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 이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곳을 떠날 생각하지 마.”윤소현은 박민정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며 소리쳤고 박민정은 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이 없었다.“그럼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예요?”“무릎 꿇고 사과해!”윤소현은 단호하게 네 글자를 뱉었다.그녀는 박민정이 기억을 잃은 틈을 타 그녀를 망신시키고 고통받게 하고 싶었다.‘무릎을 꿇으라고?’박민정은 아이를 해친 적이 없기에 당연히 그럴 수 없었다.“그건 못 해요.”윤소현은 다시 정수미와 고영란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보셨죠? 증거가 다 있는데도 저렇게 나오잖아요. 사과조차 하지 않겠다고요.”그녀는 이어 말했다.“이제 경찰서에 보내는 수밖에 없겠네요.”윤소현은 휴대폰을 꺼내 신고 전화를 걸었다.고영란과 정수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정말 박민정이 그렇게 어린아이를 해쳤다면 사과를 해야 하는 게 맞을 터였다.그러나 박민정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고 결국 경찰에 연행되었다.아이의 상처는 모두 목격자의 증언에 근거하고 있었고 박민정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만한 다른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그녀는 간단히 사건 경위를 설명한 뒤, 임시로 구금되었다.혼자 차가운 공간에 남겨진 박민정은 종종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마치 예전에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유남준이 그녀를 보석으로 풀어주었다.“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 유남준이 물었다.그는 본가로 돌아갔다가 박민정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하인들에게 물어본 끝에 그녀가 병원에 갔다는 사실을 알았다.이후 고영란과 연락을 취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박민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도 내가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내가 그 아이를 해쳤다고 믿어요?”유남준은 거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누가 뭐래도 네가 했을 리 없어. 넌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박민정은
박민정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좋아요, 신고해요. 경찰이 와서 모든 걸 조사하게 해요. 제가 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은 겁니다!”그녀는 나쁜 짓을 하기 않았기에 당당했다.윤소현은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려 했지만 고영란이 그녀를 막아섰다.“소현아, 분명 이건 오해가 있을 거야. 민정이가 그렇게 어린 아이를 해칠 리가 없잖니.”정수미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우리 모두 한 가족인데 경찰까지 부르는 건 너무하지 않니?”그러나 윤소현은 눈가가 붉어진 채 항의했다.“엄마, 지금 제 딸이 이런 상태인데도 엄마는 저를 외면하시겠다는 거예요? 우리 아이 편을 들어주실 생각은 없으세요?”박민정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그만해요. 차라리 신고해요.”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은 경찰 조사를 통해서뿐이었다.윤소현은 사실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 없었다. 아이의 일은 박민정과 무관했으며 그녀 스스로 꾸며낸 일이었기 때문이다.“민정아, 흥분하지 마. 우리 가족 일이니 우리끼리 해결해.”정수미가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윤소현은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비꼬듯 말했다.“좋아요. 우리끼리 해결하죠.”“그럼 말해봐, 박민정. 내 딸이 이렇게 됐는데 넌 어떻게 책임질 거야?”“제가 한 일이 아닌데 왜 제가 책임져야 하죠?”박민정이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되묻자 윤소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지금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야? 우리 다혜는 늘 멀쩡했어. 그런데 네가 안은 뒤로 이렇게 됐다고!”박민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이미 말했잖아요. 전 그런 적 없어요!”그녀는 어린 다혜가 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은 걸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런데도 윤소현은 여전히 공격적이었다.“엄마, 보셨어요? 얘는 끝까지 오리발만 내밀잖아요!”정수미는 한숨을 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다혜는 너무 어리고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때 고영란이 오늘 아이를 돌본 보모를 불러왔고 보모는 떨
박민정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망설일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유남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박민정은 고영란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해 윤소현이 말한 병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윤소현이 병실에서 달려나오더니 곧장 박민정에게 달려들었다.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져 주위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박민정 역시 피할 겨를이 없었고 결국 윤소현의 손바닥이 그녀의 뺨에 세게 내려앉았다.뜨겁게 달아오르는 통증이 얼굴을 타고 번졌다. 그러나 윤소현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 박민정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박민정도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고 그렇게 둘은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고영란은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도저히 가로막을 수 없었다.“박민정, 네가 어떻게 다혜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다혜는 이제 겨우 몇 달밖에 안 됐는데!”‘뭐?’박민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아요. 전 당신 딸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우리 다혜 몸에 이렇게나 많은 상처가 났는데도 끝까지 모른 척하겠다고? 너 정말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윤소현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분노를 퍼부었고 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방어에만 집중했다.고영란이 아무리 소리쳐도 윤소현은 멈추지 않았다.“소현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그만둬!”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고 윤소현은 그제야 멈췄다.박민정도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정수미가 황급히 달려와 박민정의 얼굴에 선명히 남은 손자국을 보고 안타까워했다.“민정아, 괜찮아?” 그녀가 걱정스레 물었다.하지만 윤소현은 불만을 터트렸다.“엄마, 똑같이 엄마 딸인데 우리가 싸웠으면 두 사람 다 챙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박민정만 신경 쓰는 거예요? 너무 편애하시는 거 아니에요?”정수미는 한숨을 내쉬며 윤소현을 돌아보았다.“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해봐. 왜 둘이
박민정은 그 아기가 윤소현의 딸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다가갔다.“무슨 일이죠?”보모는 그녀를 보고도 별다른 경계 없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 하루 종일 울기만 하고 어떻게 달래도 소용이 없네요.”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따라온 보모에게 두 아들을 잘 돌보라고 지시한 뒤, 직접 아이를 안아 들어 달래기 시작했다.그러나 유다혜는 그녀의 품에서도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아마도 엄마가 된 경험 덕분인지 박민정은 아기를 돌보는 법을 잊었더라도 본능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알 수 있었다.그녀는 먼저 보모에게 아이가 충분히 먹었는지 물었고 이어 아이의 기저귀를 확인하며 배탈이 났는지 살펴보았다.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도 아기가 계속 울자 박민정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아기를 병원에 데려가 보세요. 이렇게 계속 우는 건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보모도 동의했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보모가 아기를 다시 받으려던 찰나, 멀리서 윤소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뭐 하는 거야? 누가 내 딸을 저 여자한테 맡기라고 했어?”윤소현은 높은 굽의 힐을 신은 채 빠르게 걸어와 박민정의 품에서 아이를 거칠게 빼앗아 갔다. 그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보모를 질책했다.“내 딸을 당신한테 맡겼더니 이렇게밖에 돌보지 못해? 내 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 책임인 줄 알아!”그녀는 이어 박민정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너도 아이가 있잖아. 내 아이를 왜 안고 있었던 거야?”박민정은 그 아이가 윤소현의 딸임을 알았더라면 절대 안았을 리 없었다.보모는 난처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작은 사모님, 다혜가 계속 울어서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께서 잠깐 도와주셨던 것뿐이에요. 아무런 악의도 없었습니다.”“악의가 없었다고?”윤소현은 여전히 울고 있는 딸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그 말이 사실이길 바랄 뿐이야.”그러다 보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작은 사모님, 아이를 병
윤소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선두에 있던 여하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이어 한 하인을 거칠게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섰다.들어가자마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박민정과 유남준 가족이 함께 웃으며 화목하게 있는 모습이었다.그 광경에 윤소현의 눈빛이 질투로 뒤덮였다. 그녀는 곧바로 고영란을 향해 차갑게 비아냥댔다.“어머니, 저랑 남우 씨가 비록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건 아니지만 저도 유씨 가문에서 떳떳하게 맞아들인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저를 모른 척하시겠다는 거예요?”고영란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윤소현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유남우 역시 큰 잘못을 저질렀고 이 모든 상황이 그녀에겐 큰 실수로 느껴졌다.“소현아, 내가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야. 어서 남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렴. 여긴... 당분간 환영받지 못할 것 같구나.”윤소현은 이 말을 듣고도 뻔뻔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왜요? 제가 여기 있으면 어쩌시려고요? 혹시 당신 아들 유남우가 저지른 일들을 제가 다 까발릴까 봐 그러시는 건가요?”고영란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윤소현이 마지막 퇴로조차 거부하자 냉소를 띠며 대꾸했다.“우리 아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한번 말해 보렴.”윤소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뭘 말하냐고요? 당신 아들이 자기 형의 여자를 탐냈다는 거. 이게 바로 당신들이 자랑하는 유씨 집안의 가풍인가요?”그 말이 떨어지자 방 안에 있던 하인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박민정은 옆에서 두 아이를 달래며 이 상황에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유남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다들 뭘 보고 있어? 당장 저 여자를 끌어내!”윤소현은 유남준이 자신을 쫓아내려 하자 더 큰 소리로 외쳤다.“유남준 씨, 이 말을 듣기 싫은 거죠? 뭐, 당연하죠. 형의 여자를 뺏어갔다니, 저라도 그런 꼴은 못 참겠어요!”만약 그녀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유남준은 벌써 그녀에게 직접 손을 댔을 것이다.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