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청각장애인인 박민정이 무슨 수로 그토록 훌륭한 곡을 써낼 수 있겠어. 지금 생각해보니 결국 모두 민 선생님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었군.이를 포착한 윤소현은 곧바로 박민정이 앞으로 음악계의 비난을 받고 다시는 곡을 쓰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한편, 박민정의 곡 댓글 창에서는 호평 일색에서 슬슬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이 노래도 들어보니 그저 그런데.”“뭔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그래, 나도 느꼈어. 박민정이라는 작곡가 말이야, 설마 인터넷 인플루언서들처럼 여기저기에서 베껴오는 건 아니겠지?”“윗댓 말이 맞아. 애초에 더 물어볼 게 있나? 이건 분명 베껴온 작품이야. 그렇지 않으면 신인이 무슨 수로 이렇게 훌륭한 노래를 써내겠어.”“나도 들어봤는데 이 곡 분명 민 선생님 작품을 베낀 거야.”“설마 외국에서 유명한 대가에게 빌붙으려고 이름을 다 바꾸고 같은 민자를 따서 민정이라고 지은 건 아니겠지?”“...”각종 혹평이 호평을 모두 잠식시켜버렸고 정상인이라면 이 변화가 마냥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그러나 박민정은 댓글들을 읽지 않았고 오히려 진서연이야말로 가끔 박민정이 표절했다는 말을 듣고는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이 사람들 지금 뭐라는 거야? 애초에 민 선생님과 대표님은 동일인물인데 말이지.”애초에 대회의 공정성을 위해, 다른 선수들이 대회에 무슨 내막이 있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박민정은 자신이 민 선생이라는 것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그런데 오히려 지금 일부 네티즌들에게 이 사실을 들킬 줄 생각지도 못했다.“그런데 이런 혹평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진서연이 기술 부서 사람을 불러 조사에 들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곧 이 혹평들의 IP 주소가 거의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러고 보니까 이게 전부 댓글 알바라는 거네.앞서 2위 의 재생횟수와 다운로드 데이터를 올려준 것도 박민정에게 악플을 단 이들과 같은 IP 주소였다.진서연은 기술 부서
한 시간 뒤.박민호가 출근하고 있는 호산 그룹 지사에 이른 박민정.다가오고 있는 그녀를 직접 마중하고자 박민호가 회사 앞으로 나왔다.“누나, 사무실 구경시켜 줄 테니 얼른 올라가자.”정장으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박민호는 그렇게 박민정을 이끌고 사무실로 향했다.걸어가고 있는 내내 직원들은 박민호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올렸다.“박 대표님.”180도 달라진 박민호의 현재 모습에 박민정은 그저 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사무실로 들어온 두 사람, 박민정은 소파에 자리를 잡았고 박민호는 그녀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자, 물이라도 한잔해. 배 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커피는 삼가는 게 좋잖아.”“고마워.”섬세하게 자신을 챙겨주는 동생이 마냥 기특한 순간이었다.“나한테 고맙다고 하지 않아도 돼. 누나, 우리 어릴 적에도 자주 같이 놀았었잖아.”말하면서 앉는 박민호에게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네 모습 아주 보기 좋아.”‘아빠, 아빠도 그렇게 생각하지? 민호 지금 아주 잘살고 있어.’후회라는 것을 하고 있는 듯한 박민호의 모습이다.“이렇게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대표님 덕분이야. 정말 좋은 분이시고 평생 고마워하면서 지내야 하는 분이셔.”박민호가 말하고 있는 대표님은 바로 유남우이다.박민정 역시 유남우가 좋은 사람임을 잘 알고 있으나 둘 사이에 약간의 오해가 생겼다.“그래. 알고 있어.”“참, 누나, 볼일 있어서 나 찾아온 거 아니야?”박민호가 물었다.박민정은 그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윤석후를 상대로 네가 소송을 제기했으면 좋겠어. 돈 좀 갚으라고.”잠시 멈칫거리다가 박민정은 결국 두 사람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그 사실을 박민호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말이다.“윤씨 가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라고? 누나 이미 하지 않았어? 나까지 나서면 좀 그렇지 않겠어?”박민정이 어떠한 속셈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박민호이다.자기한테 박씨 가문 재산을 절
홍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어쩔 수 없이 홍주영은 사무실에서 나왔고 앞으로 기나긴 시간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유남우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 홍주영은 윤소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윤소현 씨, 도련님께서 지금 회의 중이십니다. 저녁에 중요한 손님과 만나야 하므로 오늘은 시간이 좀 힘들다고 하십니다. 안타깝지만 연출은 함께 보러 가실 수 없을 것 같습니다.”웨딩드레스를 보고 있던 윤소현은 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바로 발끈하고 말았다.“정말로 시간 없는 거 맞아요? 알리지도 않고 지금 이렇게 전화하는 건 아이고요?”유남우 곁에 있는 여자라면 그게 누구든 윤소현은 늘 지금처럼 이렇게 날이 서 있다.홍주영은 거듭 사과하면서 똑같은 말을 전했다.“죄송합니다만 부탁하신 대로 도련님께 전달하고 연락드리는 바입니다.”말하면서 홍주영은 대표이사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유남우를 바라보았는데, 대신 거짓말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도련님께서 사죄의 의미로 선물을 준비해달라고 하셨습니다.”유남우가 자기한테 선물을 준비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윤소현은 화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앞으로 오늘처럼 이렇게 거절하지 말라고 전해줘요.”“네.”기나긴 시간을 끝으로 홍주영은 고객에게 드릴 선물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윤소현에게 가져다주라고 분부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남우가 사무실에서 나왔다.“주영아.”그의 부름에 홍주영은 바로 다가갔다.“도련님.”“잠깐 일 보러 나갈 건데 혹시나 회사에 일 있으면 전화해.”“네.”“참, 윤소현 씨 화 좀 풀어드리려고 도련님 명의로 선물을 보냈습니다. 고객에게 드리려고 준비했던 선물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보냈습니다.”유남우의 수석 비서로 홍주영에게는 그럴만한 권력이 있다.하지만 유남우는 그 말을 듣고서 눈빛이 차가워졌다.“앞으로 네가 그 사람에 관해서 어떻게 해결하든 묻지 않을 건데 내 이름 걸고 그 무엇도 하지 마.”순간 홍주영은 어리둥절하기만 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네.”...박
여자아이를 지켜주고자 앞으로 나서는 박민정을 보고서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언짢아했다.“누구시죠? 이 꼬마 우리 정 대표님께서 데리고 가셔도 된다고 보호자인 할아버지께서 이미 동의하셨다고요.”“그쪽이 지금 이 아이를 유괴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증명할 수 있어요?”박민정이 되물었다.여자는 오히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내가 누구 비서인지 알기나 해요? 우리 정 대표님께서 유괴한다고요? 그럴 필요가 있는 분이신 것 같아요?”“그쪽이 누구든 그쪽 대표님이 누구든 제가 알 바 아니에요. 대낮에 거리에서 싫다는 아이를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고 있는데 그럼 보고만 있을까요?”박민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말했다.이윽고 여자아이를 품에 꼭 안고서 핸드폰을 꺼내 신고하려고 했다.“괜찮아. 경찰에 신고하면 돼.”박민정이 신고하려고 하자 여자는 바로 나서서 그녀를 말렸다.“잠시만요.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억한 심정으로 그런 건 아니에요.”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여자아이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일인지 아줌마한테 말해주면 안 될까?”여자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닦으면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랑 길거리에서 꽃을 팔고 있었는데 저 아줌마들이 저를 입양하겠다고 다가왔었어요.”“예쁜 언니, 저 할아버지랑 영원히 같이 살고 싶어요. 저 아줌마랑 가고 싶지 않아요.”여자는 그 말을 듣고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참으로 어리석은 아이구나. 네 할아버지 얼마나 가난한지 몰라서 그래? 그렇게 계속 네 할아버지랑 같이 살게 되면 너만 힘들어질 거야. 나중에 어른이 돼서 후회할지도 모른다고.”경제가 상부구조를 결정하고 있다 보니 돈이 ‘왕’일 때도 많다.여자아이는 바로 여자의 말에 반박했다.“저 어리석지 않아요. 할아버지만 있으면 되고 돈은 필요 없어요.”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여자아이가 터득하지 못하고 있자,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숨만 내쉬었다.두 사
정수미의 손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여자아이는 정수미의 손 대신 박민정의 손을 꼭 붙잡았다.“예쁜 언니, 저 좀 바래다 주시면 안 돼요? 저 무서워요... 할아버지한테 가고 싶어요.”지금으로서는 박민정이 그녀에게 가장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듯한 심정으로 자신의 손을 잡은 여자아이를 바라보면서 박민정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그래.”박민정은 여자아이의 손을 꼭 잡고서 정수미에게 말했다.“정 대표님, 정말로 이 아이를 입양하고 싶으시다면 일단 아이의 생각부터 확인하고 존중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정수미는 얼어붙었던 손을 서서히 내렸다.“같이 가자. 나도 같이 바래다줄게.”앞장선 여자아이의 뒤를 따라서 좁고 좁은 골목길을 여러 개나 지나서야 아주 평범한 저택 앞에 이르게 되었다.이곳은 도시 중심이라 이치대로라면 여자아이의 생활환경도 조건도 그리 나쁘지 않아야 한다.여자아이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여자아이는 갑자기 박민정의 손을 뿌리치고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 곁으로 달려갔다.“할아버지.”“사랑아.”“할아버지, 저 다른 사람 딸로 살고 싶지 않아요. 평생 할아버지 곁에서 살고 싶어요. 그러니 할아버지도 저 버리지 말아 주세요. 네?”어르신은 단번에 손녀인 사랑이를 꼭 껴안고서 정수미를 바라보았다.“정 대표님, 죄송합니다만 저 사랑이 보내지 못할 것 같아요.:이윽고 주머니에서 은행 카드 한 장을 꺼내 건네주면서 덧붙였다.“돈은 다시 돌려드릴게요.”사랑이를 정수미에게 입양 보낸다고 마음을 먹고 은행 카드까지 받았었으나 텅텅 비어 버린 집을 보게 된 순간 후회하고 말았다.아내도 아들도 며느리도 모두 잃은 어르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라곤 사랑이 하나뿐이다.사랑이 역시 할아버지가 세상 전부였다.앞으로 사랑이 곁에 얼마 있어 주지 못할 것 같아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낫은 집안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입양을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다.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의 ‘이별’을 겪고서 그 마음이 달라졌다.
우연인지 아닌지 얼마 걷지 않아 차 한 대가 박민정 곁에 서서히 멈춰 섰다.차창이 내려오자 유남우의 또렷한 이목구비가 시야로 들어왔다.“민정아.”박민정은 걸음을 멈추고서 그를 바라보았다.“여기서 다 보네요.”지난번 유남우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고 지금의 박민호가 있게끔 그가 도와준 바도 있으므로 박민정은 어느새 그에 대해 생각이 좀 달라져 있었다.“여기서 뭐 해? 내가 바래다줄까?”유남우의 물음에 박민정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이따가 택시 타고 가면 돼요.”유남우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나 더는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박민정의 거절에 유남우는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고 하였다.이윽고 그가 차에서 내려왔다.“그럼, 같이 좀 걷자.”더는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 박민정은 묵인해 버렸다.선남선녀가 따로 없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몸은 좀 괜찮아졌어?”유남우가 적극적으로 화제를 찾아 나섰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많이 좋아졌어요. 고마워요.”한수민에 관해서 자기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박민정을 바라보면서 유남우는 더는 묻지 않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묵묵히 함께 걸었다.그렇게 한참을 걷고서 박민정은 시간을 확인했는데, 이미 늦은 시간이라 제자리에 멈춰 섰다.“그만 가 봐야겠어요.”“그래.”이윽고 박민정은 택시 한 대를 잡았다.그녀가 탄 택시가 사라질 때까지 유남우는 홀로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았다.이미 떠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유남우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시간이 모든 걸 해결하고 변화한다는 말이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전에 그 박민정이 자기와 점점 멀어지고 어색해지고 있으니 말이다....집으로 돌아온 박민정은 가정부와 함께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그때 박윤우가 달려왔다.“엄마, 서연 이모한테서 전화 왔어.”박민정은 바로 손을 닦고서 전화를 받았다.“서연아, 무슨 일이야?”“보스님, 누가 댓글알바
“알겠습니다.”진서연 역시 박민정의 뜻을 잘 알고 있다.“이번 기회에 아주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고 말 것입니다.”온라인으로 여론은 계속 부풀어지고 있었다.진실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많은 이들이 박민정의 노래에 악플을 달았다.박민정은 심한 말을 뒤로 한 채 일이 점점 더 커지기를 바라고 있었다.불과 하루만이면 모두가 알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박민정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저녁 먹으러 갔다.민수아 역시 때마침 돌아왔고 그들은 식탁을 둘러앉아 저녁을 즐기기 시작했다.늦은 밤.잠에 들기 전에 박윤우는 라이브를 시작했고 바로 실시간 검색어를 보게 되었다.다들 박민정이 민 선생을 표절했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을 말이다.“엄마가 자기를 표절했다고? 그게 말이 돼?”박윤우는 자기 엄마를 상대로 심한 말을 하고 있는 네티즌들이 싫었다.이윽고 바로 박예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형, 지금 기사 난 거 좀 봐봐.”“이미 봤어.”박예찬이 대답했다.“우리 엄마한테 심한 말 한 사람들 혼내줘!”박윤우의 뜻은 박예찬이 해킹으로 복수해 줬으면 하는 것이었다.하지만 박예찬은 그 말을 듣고서 덤덤하게 웃기만 했다.“서두를 것 없어.”“그게 무슨 말이야?”“서연 이모도 가만히 계시잖아. 엄마 비서로서 가장 먼저 이 일에 대해 알고 계시지 않았겠어?”박예찬의 말을 듣고서 박윤우는 그제야 깨달은 듯했다.“그 말은 엄마가 지금 가만히 보고만 있다는 거야?”“그래.”박예찬은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덧붙였다.“그러니 너도 걱정하지 마. 엄마가 나설 때 나 역시 나설 거야.”“알았어.”박윤우는 그제야 안심하고 라이브를 하기 시작했다.한편, 조하랑은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자본가에게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열심히 판매할 상품을 준비하면서 말이다.그동안 박윤우와 합작하면서 손에 쥐가 날 정도로 셀 수 없을 만큼의 돈을 벌어온 건 사실이다.하지만 일이 하도 많아서 핸드폰을 볼 시간조차 없는 조하랑은 박민정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
저녁 식사를 마치고 윤소현은 자기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비서한테 전화를 걸었다.비록 유씨 가문에서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임신했다는 핑계로 유남우는 그녀와 함께 지내지 않고 있다.“돈 따위 생각하지 말고 오늘 어떻게든 이슈로 만들어. 박민정 이름 석 자가 실시간 검색어에 도배되었으면 좋겠어.”일단 유남우가 손을 쓰기 시작하면 기사 열기가 내려오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윤소현이다.그러한 의미에서 오늘 밤이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네.”비서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밤새 댓글알바를 구하고 언론에 돈을 뿌리면서 열기를 올렸다.밤새 열심히 움직인 덕분에 여러 플랫폼에서 박민정 표절에 관한 내용을 의논하는 네티즌들이 많았다.해외에 있는 에리마저 볼 정도로 말이다.민 선생의 곡을 표절하고서 대회에 참가한 박민정이 후안무치하다는 소리가 일쑤였다.시차로 아직 낮인 에리는 그러한 기사를 보고서 어안이 벙벙해졌다.“장난하는 거야 뭐야? 민정이가 자기 곡을 표절했다고?”매니저 역시 기사를 보게 되었다.“민 선생이 너랑 새로 계약한 노래 아니야? ‘네버엔딩’말이야.”“맞아.”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일단 그 곡으로 대회에 참가해 보고 싶다고 민정이가 그랬거든.”“그랬구나.”그때 매니저는 문뜩 무엇인가 떠오른 듯했다.“누구한테 당하고 있는 거 아니야? 나도 여러 번 들어온 곡인데, 예전 작곡 스타일과 별반 다른 게 없었어. 자기 곡을 표절한다는 건 좀...”에리 역시 똑같은 생각이었다.박민정을 도와주고자 고민하고 있던 그때 에리는 그만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좋아요’를 누르고 말았다.“제길! 잘못 눌렀어.”에리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취소’를 누르려고 했지만 매니저의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이미 늦었어. 네가 ‘좋아요’를 누른 바람에 점점 더 이슈가 되고 있어.”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헤드 라인이 시야로 들어왔다.[유명 가수 에리마저 ‘좋아요’를 누른 박민정 표절 기사. 민 선생을 위해 소리를 내고 있는 에리.]그러한
유남우는 오늘따라 이상하게 윤소현을 밀어내지도 않고 오히려 위로해 줬는데 이런 모습을 일부러 박민정에게 보여주려는 건지 아니면 홍주영에게 보여주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홍주영과 박민정 두 사람은 그저 한쪽에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만 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이때, 의사가 수술실 문을 열고 나오더니 그들에게 말했다.“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거부 반응은 없는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의사가 떠나간 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박민정과 조하랑도 그곳에 한참 동안 머물다가 병원을 빠져나왔다.돌아오는 길에 조하랑은 이상하게 마음이 착잡했다.그녀는 원래 뱃속의 아이를 지우려 했지만 오늘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유다혜를 본 뒤로는 이상하게 망설여지기 시작했다.모든 아이한테 이 세상에 태어날 기회가 주어지는데 괜히 그 기회를 마음대로 저버리는 게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김인우 씨가 혹시나 아이를 원치 않으면 어떡하지?’“민정아, 내가 임신한 사실은 일단 비밀로 해줘. 특히 인우 씨한테.”박민정은 왜 그래야 하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 갔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먼저 조하랑을 데려다준 뒤 박민정은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에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민정아, 아까 급하게 나가더니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박민정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별일 아니야. 그저 하랑이 만나고 왔어.”“그럼 됐어.”그렇게 사람들이 다 떠나갔지만 에리만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민정아, 저번에 그 뉴스 기사 봤어?”‘기사?’순간 저번에 최현아가 에리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에리가 다급하게 해명하기 시작했다.“민정아, 난 극히 정상적인 남자야. 절대 게이가 아니니까 믿어줘.”그의 말에 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그래. 믿을게.”박민정이 웃자 에리
“민정아, 하랑 씨.”다름 아닌 정수미와 윤소현이었는데 그중 정수미는 빠르게 두 사람에게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민정아, 병원에는 웬일이야? 어디 아픈 거야?”이때 조하랑이 갑자기 일부러 기침하더니 박민정 대신 답했다.“콜록! 콜록! 제가 감기 걸려서 민정이랑 같이 왔어요.”그러나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의사가 진료실에서 나오더니 보고서를 그녀에게 건네줬다.“조하랑 환자분, 임신 보고서를 두고 가셨어요.”순간 조하랑은 온몸이 굳어버렸다.그녀의 거짓말이 이렇게 빨리 탄로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박민정은 재빨리 일어나 보고서를 건네받았고 조하랑도 멋쩍게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왔던 김에 산부인과에도 와봤어요.”정수미는 그녀의 말에 활짝 웃었다.“축하해요.”“감사합니다.”그러나 조하랑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옆에 서 있던 윤소현은 김씨 가문의 후계자를 임신했다는 소리에 또다시 질투심이 마구 불타올랐다.이렇게 되면 김씨 가문에서 조하랑의 입지가 더욱 확고해진다고 볼 수 있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신분이나 지위, 외모 면에서 조하랑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밀려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멀지 않은 곳에서 유남우와 홍주영 두 사람도 손에 한 무더기 결과서를 갖고 이쪽으로 걸어오다가 문득 박민정 손에 들린 검사 보고서를 본 순간 표정이 변했다.‘임신 보고서인가?’‘또 임신했다고?’유남우의 의미심장한 눈빛에 윤소현이 빠르게 다가와 그에게 물었다.“남우 씨, 우리 다혜는 어떻게 됐어요?”“방금 수술이 끝나서 이제 회복 결과를 지켜봐야지.”윤소현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사람들 앞에서 유남우의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만약 우리 다혜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 그러면 저도 그냥 죽어버릴래요.”유남우는 그녀를 밀쳐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보는 눈이 많아 애써 참고 그녀를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야.”“너무 무섭지만 남우 씨가 제 옆에 있어서 다행이에요.”윤
박민정은 왠지 조급하게 들리는 조하랑의 목소리에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하던 일을 멈추고 답했다.“그래.”한 시간 뒤, 어느 작은 내과 병원.박민정은 허름한 병원 외부와 안절부절못해 보이는 조하랑에게 의아해서 물었다.“하랑아, 대체 이런 곳에는 왜 온 거야?”조하랑은 그녀의 말소리에 화들짝 놀라더니 급하게 그녀의 입을 막았다.“조용히 해.”그리고 주머니에서 마스크 두 장을 꺼내더니 하나는 박민정에게 건네며 다시 말을 이었다.“민정아, 나 아무래도 임신한 것 같아서 검사해 봐야겠어.”“뭐?”박민정은 진짜 큰 일인 줄 알고 가슴을 졸였는데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런 건 먼저 테스트기로 확인해 볼 수 있지 않나?’조하랑은 단번에 그녀의 마음을 읽었는지 재빨리 해명했다.“임테기도 다 정확한 건 아니잖아. 무조건 병원에 와서 초음파 검사를 하는 게 제일 확실할 것 같아서.”“그렇지만 꼭 이런 곳에서 검사해야 해?”박민정은 이곳의 위생 상태가 너무 걱정되었다.그러나 진주시의 크고 작은 병원들은 거의 다 김씨 가문 산업이다 보니 조하랑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혹시나 김씨 가문에서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나중에 김인우랑 김훈한테 해명하기조차 어려워질 것이다.“가자. 걱정하지 마.”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들어가서 더러운 의료 기기들을 보고는 기겁하더니 빠르게 뛰쳐나왔다.“그냥 다른 병원으로 가자.”두 사람은 다시 짐을 싸서 결국에는 큰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소변 검사와 초음파 검사까지 마친 조하랑은 검사 보고서에 임신 4주 차라는 글씨를 본 순간 눈앞이 아찔해 났다.“어떻게 4주가 되는 거예요?”“마지막 생리 주기를 계산해 본 결과가 그렇게 나왔습니다.”조하랑은 지금 온몸에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았다.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박민정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아줬다.“좋은 일인데 인우 씨한테 빨리 알려줘.”그러나 조하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아니, 절대 안 돼.”자신도 아직 받아 들을 준비가 안
정수미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의사한테 자신이 사인하겠다고 말하려는데 멀리서부터 유남우가 다가와 그들에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윤소현은 유남우의 목소리가 들리자 얼굴이 갑자기 돌변하더니 눈물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남우 씨, 우리 다혜가 혈액암이래요. 그래서 다른 피를 수혈받아야 한다는데 그래도 살 확률이 그리 높지 않대요. 저희 이제 어떡하죠?”유남우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그럼 빨리 수혈부터 진행하자고 해.”윤소현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재빨리 사인했다.그러나 정수미는 그녀의 빠른 태세 전환에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분명 이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유남우의 원인이 크다는 걸 윤소현도 알 텐데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그렇게 그들은 밤새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새벽 때쯤, 홍주영도 전문의들을 데리고 달려왔다.그리고 어린아이가 고생하고 있는 게 너무 안쓰러웠다.“도련님, 다혜는 괜찮나요?”홍주영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유남우는 문득 어제 하민재와 그녀가 같이 있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나도 아직 몰라. 지금 수술 중이야.”홍주영은 수술실 쪽을 바라보면서 애써 조급한 마음을 달랬다.그러나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윤소현은 그녀의 모습이 참 가증스럽다고 생각되었다.“홍 비서님, 다혜는 제 딸인데 왜 비서님이 난리예요?”그녀의 날카로운 말투에 홍주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이때 유남우가 고개를 돌리고 윤소현에게 물었다.“다혜가 자기 딸인 걸 아는 사람이 왜 지금 하나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지 않지?”그는 원래 이 계기로 윤소현에게도 만약 아이한테 사고가 일어나게 되면 어떤 느낌인지 알려주고 싶었다.그러나 이 여자는 전혀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윤소현은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이 일은 점점 크게 번져 어느새 김씨 가문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김인우는 유다혜가 병원에서 수술받는다는
“연애해 본 적 없다면서요?”하민재는 다소 의아했다.도대체 자신이 그 남자보다 부족한 게 뭐란 말인가?홍주영은 그의 말에 씁쓸하게 웃었다. “네, 연애는 해 본 적 없어요. 그냥... 짝사랑이었을 뿐이에요.” 하민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렇게 솔직한 여자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그럼 왜 고백하지 않았어요?” 그는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홍주영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그 사람은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은 절 좋아하지 않거든요.”“그럼 둘이 이어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거네요?”하민재가 다시 한번 확인하자 홍주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 가능성은 없어요.”“그렇다면 굳이 우리가 헤어질 필요도 없잖아요? 난 신경 안 써.”짝사랑이라면 아무 문제없었다.하민재는 자신만만했다. 연애 경험 없는 홍주영쯤이야 얼마든지 자신의 매력으로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홍주영이 더 말을 잇기도 전에 하민재가 가로막았다.“하지만은 무슨. 이제 이 얘긴 그만해요. 연애에 공평함 같은 게 어디 있어요? 난 주영 씨 마음속에 누군가 있는 걸 개의치 않으니까 주영 씨도 내 과거에 신경 쓰지 않으면 돼요.”하민재의 단호한 태도에 홍주영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좋아요, 약속할게요.”“네.”그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 하민재의 할머니가 다가와 넌지시 물었다.“어떻게 됐어?”“뭐가요?”하민재가 되묻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랑 주영이 말이다. 주영이 같은 아이, 꼭 소중히 여겨야 한다. 부잣집 딸들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할 것 없는 아이야.”하민재의 할머니는 함부로 연을 맺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홍주영에 대해 충분히 조사했었다. 홍주영은 비록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능력만큼은 인정할 만했다.그녀는 가문 사업에는 별 관심 없는 손자가 이런 여자를 곁에 두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하민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하민재가 아니라 유남우였다.홍주영은 순간 얼어붙었다.“도련님? 어떻게 오셨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유남우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눌렀다.“별일 아니야. 네가 연락도 없고 전화도 안 받아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해서 와봤어.”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거짓말을 했다.홍주영은 황급히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제야 유남우가 여러 번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는 걸 확인했다.“죄송해요. 오늘 오후 바빠서 폰을 무음으로 해뒀거든요. 그래서 확인을 못 했어요.”유남우는 말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문득 테이블 위에 놓인 낯선 컵이 눈에 들어왔다.“누가 왔었어?”그가 아무렇지 않은 듯 묻자 홍주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오늘 남자 친구 가족을 만나고 왔어요.”‘남자 친구 가족...? 벌써 부모님을 만난 건가?’“언제 그렇게 됐어? 상대는 누구야?”유남우는 모르는 척 물었고 이 말에 홍주영은 주먹을 살며시 쥐었다.“...하민재 씨예요.”‘역시, 그놈이었군.’유남우는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을 애써 감췄다.“그때는 사귈 생각 없다고 하지 않았나?”“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많이 생겼어요.”홍주영은 손바닥을 꼭 쥐었다. 어쩐지 유남우 앞에서는 괜스레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마치 잘못이라도 저지른 아이처럼.더 이상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 그녀는 얼른 주방으로 가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 건넸다.“도련님 오늘 저한테 왜 연락하신 거예요?”“별건 아니고, 전에 고 대표 건 홍 비서가 맡았지? 그 계약서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연락이 안 되더라. 나중에 혼자 찾았어.”“아... 찾으셨군요. 죄송해요. 앞으로는 업무에 지장 없도록 할게요.”유남우는 그녀가 내민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물맛이 입안 가득 퍼졌지만 왠지 씁쓸하게 느껴졌다.“괜찮아. 이제는 홍 비서 일도 중요하니까. 홍 비서도 이제 적지 않은 나이니 결혼을 생각할 때가 됐겠지.”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차 안에 앉아 있던 유남우는 여전히 홍주영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고 그는 무심코 넥타이를 당겼다.또다시 10분이 지나도록 메시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들려온 건 차가운 자동 응답음뿐이었다.“죄송합니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가슴 한구석이 더 답답해졌다. 그는 짜증스럽게 휴대폰을 한쪽으로 던지며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운전해.”운전기사가 물었다.“어디로 모실까요?”“모르겠어. 그냥 아무 데나 가.”“네.”차는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왔고 창밖으로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한편, 홍주영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하씨 가문의 할머니와 몇 마디 더 나눈 뒤 하민재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하민재는 벌써 그녀를 미래의 아내로 여기고 있었다.“어때요? 불편한 점은 있어요?”홍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없어요. 할머니도 너무 좋으시고 아버님과 어머님도 따뜻하게 대해 주셨어요.”그때 하민재가 갑자기 등 뒤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냈다.“자, 받아요.”“이게 뭐예요?”홍주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하민재는 그녀의 손에 상자를 쥐여 주었다.“열어봐요. 우리 부모님께서 주영 씨에게 주시는 첫 선물이에요.”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고풍스러운 장신구 세트가 들어 있었다.아니, 단순한 ‘고풍'이 아니라 대대로 내려온 가문의 전통 예물이었다.하민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우리 부모님께서 주영 씨를 인정하신 거예요. 이건 우리 집안의 며느리만 받을 수 있는 거거든요.”홍주영은 너무 놀라 얼른 상자를 다시 그의 손에 돌려주었다.“이건 너무 귀한 거라 받을 수 없어요.”“왜 못 받아요? 어차피 우린 결혼할 사이인데.”‘결혼'이라는 단어에 그녀는 순간적으로 망설였다.“결혼하고 나서 받아도 늦지 않잖아요. 아직은 너무 일러요.”결혼 이야기가 나온 이상, 섣불리 받을 수 없었다. 만약 나중에
“저는 남준 씨가 동서를 못마땅해하던 시절도 지켜봤어요. 그 삼 년 동안 동서는 정말 처참했죠. 아무도 동서를 사모님으로 대우하지 않았어요.” 최현아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빨리 변하다니. 나는 동서가 영영 남준 씨랑 화해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동서는 정말 너그럽네요.”유남우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으나 최현아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사실 도련님께서 돌아오기 전에 전 이미 동서한테 사람을 잘못 알아봤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동서는 그때 이미 남준 씨를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유남우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지나간 일은 이미 지나간 거니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어요.”최현아는 입을 다물었다.유남우는 시선을 거두고 돌아서서 걸어갔고 최현아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유남우는 유남준이 잘되는 꼴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두 형제가 어떻게 싸울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유남우는 차에 올라탔다.차 안에서는 홍주영이 조수석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그가 타자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도련님.”“응, 회사로 가자.”“네.”홍주영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핸드폰은 계속 진동하고 있었다.그녀는 확인하지 않았고 유남우는 그런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왜 메시지를 안 봐?”홍주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개인적인 메시지라 굳이 볼 필요 없어요.”그녀에게 계속 메시지를 보내는 건 하민재였다. 둘은 이제 화해하고 교제하기로 했는데 하민재는 예상외로 틈만 나면 연락을 해왔다.“괜찮아. 지금 업무 시간도 아닌데.” 유남우는 부드럽게 말했다.“네.”홍주영은 그제야 핸드폰을 들어 하민재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그는 오늘 오후에 그녀를 하씨 가문에 초대했다. 할머니가 그녀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홍주영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유남우에게 말했다. “도련님, 오늘 오후에 개인적인 일이 좀 있어요.”유남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
그가 고개를 숙이며 여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박민정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박민정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흔들리며 그녀는 반사적으로 입을 손으로 가렸다. 덕분에 그의 입술은 그녀의 손등에 살짝 닿고 말았다.둘의 시선이 엉키며 공기마저 뜨겁게 달아올랐다.유남준이 손을 들어 그녀의 손을 치우려 하자 박민정은 급히 외쳤다.“안 돼요!”그녀의 반응에 유남준의 동작이 멈췄다.“저... 저 갑자기 기억이 난 것 같아요.”유남준이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쥐었다.“정말?”“네! 어제, 아마도 음료에 술이 조금 섞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미안해요.” 박민정은 얼굴이 불타오를 듯이 새빨개졌으나 유남준은 오히려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당연한 거야. 너도 결국 참지 못한 거잖아.”“뭐라고요?” 박민정은 순간 주먹을 꼭 쥐었다. “내가 뭘 참지 못했다고요?”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 이제 그만. 일어나자. 예찬이랑 윤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박민정은 아이들이 밤새 자신을 찾아다니다 놀랐을 걸 생각하니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유남준은 그녀를 놓아주며 말했다.“좋아. 아침 먹고 바로 돌아가자.”그의 기분은 오늘따라 유난히 좋아 보였다. 돌아가는 길 내내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반면, 박민정은 그의 곁에 앉아 잔뜩 긴장한 채 앉아 있었다.두 사람이 부부라는 것, 이미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젯밤을 떠올릴 때마다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도대체 왜 참지 못한 거지?'유남준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 채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고 박민정은 깜짝 놀라며 손을 빼려 했다.“괜찮아요. 나 혼자 걸을 수 있어요.”하지만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이건 걷는 문제랑 상관없어.”박민정은 그의 아내였다. 그는 그녀가 항상 그의 시야 안에 머물도록 곁에 두고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유남준이 어제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어제, 최현아가 너한테 뭘 하지 않았어?”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