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못 먹은 사람도 있어요.”서다희는 추경은이 보기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안 후로 추경은의 목소리만 들어도 역겨웠다.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그러면 둘이 조금만 더 구우면 되잖아요. 재료도 이렇게나 많은데.”추경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정민기와 서다희가 담아주려 하지 않자 직접 다 구운 꼬치를 전부 접시에 담아 들고 가려 했다. 그러자 두 접시는 거뜬히 채웠다.서다희가 추경은을 막아서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접시 두 개를 도로 가져갔다.“먹고 싶으면 직접 식자재 사서 직접 구워요.”서다희가 얼굴을 굳히고는 말했다.“대표님 꼬치는 내가 담아서 가져다드릴게요. 경은 씨가 신경 쓸 필요 없어요.”박민정과 민수아가 아이 둘을 데리고 다가왔다.서다희의 표현을 보고 민수아도 접때 서다희가 추경은과 단둘이 밥 먹은 일을 완전히 용서할 수 있었다.민수아가 앞으로 다가가 넋을 잃은 추경은을 밀어내더니 서다희의 손에서 고기 꼬치와 야채 꼬치를 조금 가져다 두 아이에게 나눠줬다.박윤우는 지금 몸이 좋지 않았기에 맛보기로 조금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박민정이 특별히 준비한 도시락을 먹었다.“수아 이모 고마워요. 다희 삼촌, 민기 삼촌도요.”아이들도 추경은보다 예의가 발랐다.민수아가 웃으며 말했다.“고맙긴. 아이고, 우리 아기들 어쩜 이렇게 예의 바를까. 웬만한 어른들보다 낫다니까.”웬만한 어른이 바로 추경은이었다.추경은은 얼굴을 굳힌 채 옆으로 물러섰다.서다희는 잘 익은 꼬치를 한 사람씩 나눠주고는 일부를 유남준에게 직접 가져다줬다.지금 추경은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꼬치를 나눠 가졌다.만약 도시 한복판이었다면 추경은은 꼬치에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전부터 꼬치는 위생적이지 못한 음식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산속이었고 유남준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밥을 먹지 못했다. 게다가 트렁크에는 죄다 화장품과 옷들만 가득했다.지금 고소한 꼬치 냄새를 맡노라니 배가 연신 꼬르륵댔다.김인우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추경
조하랑의 기분이 순간 잡쳤다.“김인우 씨. 왜 추경은 씨는 도우라고 안 하는데요? 추경은 씨도 임신했어요?”김인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손님이잖아요.”“손님은 무슨. 민정이랑 유남준 씨 보살피러 왔다면서요. 그런데 왜 우리가 보살피고 있는데요?”조하랑은 전에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던 유남준은 시중을 들어도 추경은의 시중은 싫었다.“왜 그렇게 쪼잔하게 굴어요?”“내가 쪼잔하다고요?”조하랑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지금 기름 냄새를 견디면서 힘겹게 굽고 있는데 추경은은 멀지 않은 곳에서 꼬치를 든 채 벗꽃나무 아래에 앉아 온갖 교태를 부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이에 반해 박민정은 임신했어도 식자재를 건네주고 텐트마다 모기약을 뿌려주고 있었다.조하랑은 민수아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수아야, 가자. 좋은 남자 코스프레는 혼자 하라지.”“응?”민수아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조하랑에게 끌려갔다.김인우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조하랑이 서다희와 정민기를 불렀다.“두 분도 인우 씨 돕지 마세요. 지금은 친구로 있는 거지 상하급 관계로 있는 거 아니잖아요.”“혼자서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데 최선을 다하라고 해야죠.”정민기는 김인우라는 사람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서다희는 김인우에게 함부로 밉보이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조하랑은 지금 김인우를 한 치의 거리낌도 없이 막 대하고 있었다. 서다희는 그제야 왜 김씨 집안 어르신이 애도 딸린 조하랑을 며느리로 콕 집었는지 알 것 같았다.김인우처럼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간땡이가 크고 성격이 만만치 않은 와이프가 필요했다.“조하랑 씨, 이건 너무...”김인우는 참다못해 욕설을 퍼부을 뻔했다.그때 박예찬이 김인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인우 삼촌, 할아버지가 전에 저한테 그러셨거든요. 만약에 삼촌이 하랑 이모 말 안 들으면 언제든지 알려달라고요.”“할아버지가 비행기 타고 오면 아마 1시간도 안 걸릴 것 같은데요.”이 말에 김인우는 일단 이빨을 숨길
“언니 어떻게...”추경은이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뭘요? 내가 그 댁 식구라도 돼요? 추씨 가문과 유씨 가문과 알고 지내는 사이일지 몰라도 김씨 가문과는 아무 관계가 없지 않나요? 정 마음에 안 들면 김인우 씨한테 찾아오라고 해요.”조하랑은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여자를 가만둘 리가 없었다.추경은은 조하랑이 매섭게 쏘아붙이자 말문이 막혔는지 박민정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새언니.”박민정이 친구를 두고 추경은을 도울 일은 없었다. 하여 못 들은 척 민수아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세 사람은 아예 추경은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추경은은 하는 수 없이 꼬치를 들고 남자들이 앉은 쪽으로 향했다. 제일 먼저 유남준에게 물었지만 유남준이 거절했다. 그러자 추경은은 포기하지 않고 서다희와 정민기에게로 향했다.“다희 오빠. 전에는 내가 잘못했어요. 인제 그만 화 풀어요. 이건 내가 금방 구운 거예요.”서다희는 그런 추경은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미안한데 이미 배가 다 차서요.”너무 민망했던 추경은이 정민기에게 건네주었다.“민기 씨, 먹을래요? 맛있어요.”“괜찮아요.”정민기가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이에 추경은은 목표를 아이들에게로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들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박윤우가 이렇게 말했다.“경은 이모, 우리도 싫어요.”추경은은 얼마를 가져갔으면 그대로 다시 가져갔다.김인우도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다 먹었대? 우리 더 구워? 말아?”“괜찮아. 더 굽지 뭐. 저녁에 야식으로 먹어도 되잖아.”추경은이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김인우가 추경은의 표정을 보고는 물었다.“왜? 기분이 별로인 것 같은데?”추경은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뚝뚝 떨궜다.“오빠,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다들 나 싫어하는 것 같아. 다들 나 쪽 주고 왕따시키려 들어.”이 말에 김인우가 주변을 빙 둘러보더니 말했다.“에이, 착각한 거 아니야?”“만약에 사람들이 다 너를 싫어하고 괴롭히는 거라면 네가 뭘 잘못한 건 아닌지 고민해
추경은이 갑자기 카메라 앞에 나타나 시청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안녕하세요.”댓글이 터지기 시작했다.[윤우 도련님, 이 예쁜 언니는 누구야?][예찬 도련님, 이제 우리는 뒷전인 거야?][엄청 예쁜데?]댓글은 칭찬으로 가득했다.추경은이 입꼬리를 올리며 설명했다.“저는 예찬이의...”“우리 집 가사 도우미에요. 엄마 배 속에 동생이 생겨서 엄마를 보살피러 온 이모에요.”박윤우가 정신을 가다듬고 추경은의 말을 잘라버리더니 이렇게 말했다.추경은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렸다.‘뭐? 가사도우미?’비록 박민정과 유남준을 보살핀다는 명목으로 오긴 했지만 가사 도우미라고 불리긴 싫었다. 그것도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 앞에서 말이다.추경은이 라이브 화면을 쓱 훑어봤다. 시청자가 족히 800만은 넘었다.라이브 화면에 댓글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아, 가사도우미였구나. 역시 예찬이는 타고나길 도련님이라니까. 어떻게 가사도우미까지 이렇게 예뻐?][근데 예찬 도련님 엄마가 더 예쁜 것 같지 않아? 가사 도우미는 어리기만 했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그러네. 임산부를 돌보려면 좀 나이 많고 경험도 많은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저 언니는 애도 안 낳은 걸로 보이는데?]추경은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얼굴이 망가진 늙은 여자랑 나를 비교해? 그것도 나보다 예쁘다고?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박윤우도 당연히 추경은의 기분이 잡쳤다는 걸 알았지만 일부러 추경은에게 물었다.“이모, 우리 엄마 보살펴주러 가야죠.”추경은이 멈칫하더니 말했다.“그래, 지금 바로 가야지.”추경은이 미련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라이브 시청자는 여자가 대부분이었기에 한눈에 추경은이 좋은 물건은 아니라는 걸 알아채고는 박윤우에게 말했다.[윤우 도련님, 조심해. 아빠한테 가사 도우미 좀 바꿔 달라고 해.][그래. 바꾸는 게 좋아.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 같아.]시청자들은 어린이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 돌려서 말했다.하지만
텐트는 총 5개가 있었다. 정민기 하나, 김인우 하나,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아이들 하나, 민수아와 서다희 하나, 조하랑 하나 이렇게 모두 5개였다.다들 텐트로 돌아가 잠을 청하려 하자 추경은이 김인우의 팔을 잡고는 말했다.“오빠, 나는 텐트가 없어.”“산으로 캠핑 오면서 텐트도 안 가져왔어?”김인우는 이제 슬슬 어이가 없었다. 하필 이때 비가 조금씩 떨어졌다.다른 사람은 이미 텐트로 들어간 상태였다. 어두운 불빛 아래 추경은만 김인우의 팔을 잡은 채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산에 파는 거 있는 줄 알고 안 가져왔어.”김인우가 이를 듣더니 추경은을 데리고 조하랑의 텐트로 향했다.조하랑은 오늘 캠핑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남포등까지 켜둔 상태였다.남포등에 불을 붙이자마자 텐트 지퍼가 열리고 김인우의 잘생겼지만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은 얼굴이 나타났다.“용건 있어요?”조하랑이 퉁명스럽게 말했다.김인우가 조하랑의 핑크색 텐트를 빙 둘러봤다. 크지는 않았지만 여자 둘이 지내기엔 문제없을 것 같았다.“경은이가 잘 곳이 없다는데 같이 자요.”“네?”조하랑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추경은이 김인우의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언니. 밖에 비 내리는데 들어가서 얘기하면 안 될까요?”조하랑은 정말 자기가 무림 고수가 아닌 게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만약 그녀가 무림 고수였다면 겁도 없이 덤비는 김인우와 온갖 착한 척은 다 하는 추경은을 같이 뻥 차버렸을 것이다.“나가요. 어림도 없는 소리하지 말고. 추경은 씨가 어디서 자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김인우 씨랑 같이 자도 상관없으니까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마요. 부정 타니까.”처음 만난 사람과 같이 잔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추경은은 오늘 알게 모르게 그녀를 여러 번 깎아내렸기에 조하랑은 지금 약이 잔뜩 올라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같이 잔다면 아마 화병 나서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김인우는 조하랑이 이렇게까지 흥분할 줄은 몰랐다.“싫으면 싫은 거지 왜 화를 내고
“추경은, 어르신께서 너에게 자중이 뭔지 가르쳐 주신 적 없어?”유남준이 얇은 입술로 입을 열었다. 그의 가벼운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날카로운 칼날과 같이 그녀의 마음을 후벼팠다.그리고 추경은은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남준 오빠, 이건 오해예요. 전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유남준이 그동안 그녀의 만행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은 단지 추재훈의 체면을 생각해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보니 이 여자는 정말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같았다.“그런 뜻이 아니라면 더 조심했어야지.”다른 여자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막상 자신이 좋아하던 유남준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추경은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빨갛게 달아올랐다.자신이 성급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추경은이 다급하게 해명을 늘어놓았다.“미안해, 오빠, 그리고 새언니. 부모님이 워낙 일찍 돌아가셔서 나에게 이런 걸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어. 정말 미안해. 오늘 밤은 내가 밖에서 당신들을 위해 밤을 지새울게. 나 오늘 안 잘 거야.”그렇게 말을 마치고 추경은은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마치 박민정이 그녀를 괴롭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박민정은 추경은의 뻔뻔한 태도에 감탄하며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는데 유남준이 그녀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물었다.“어디 가?”“잠깐 나가보려고요.”“밖에 비 와. 나가지 마. 별로 볼 것도 없어.”“비가 온다고요?”손을 뻗어보니 과연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유남준은 비록 앞을 볼 수 없지만 청력은 일반인보다 더 좋아진 모양이다.하지만 유남준과 달리 박민정은 줄곧 보청기에 의지하고 있다. 손끝에 닿은 빗물을 느끼며 고개를 내밀자 김인우 앞에 서서 흐느끼며 무언가를 하소연하고 있는 추경은이 눈에 들어왔다.이미 자리에 누운 박윤우와 박예찬 두 형제는 방금 유남준이 추경은을 쫓아내는 것을 보며 두 사람 모두 그에 대한 호감도가 조금 더 상승했다.“정말 비가 오네요. 이만 자요.”박민정이 가장자리에 누웠다.그리고 두 아이는 두 사람 사
이쯤 되니 김인우는 진심으로 추경은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진주산 정상은 도심에서 한 네댓 시간 거리 떨어져 있는데 인제 와서 사람을 불러오라니...김인우가 추경은을 떠나보내려고 하는 그때, 조하랑이 램프를 들고 텐트 밖에 나타났고 그녀의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여기에는 어쩐 일이에요?”어리둥절한 김인우가 물었다.“어르신께서 전화하셨어요.”“할아버지께서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전화를 합니까?”그러나 조하랑은 안색이 좋지 않았고 추경은도 곁에 있는 것을 보아 말을 꺼내기 난감해져 김인우에게 눈짓했다.“무슨 일입니까, 그냥 말씀하세요.”그러자 조하랑도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어르신께서 인우 씨가 왜 제 텐트 안에서 저와 함께 자고 있지 않냐고 물으셨어요.”순간 난처해진 김인우가 추경은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먼저 나가주면 안 될까?”“알겠어.”추경은은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반강제로 자리를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그냥 말하라고 할 땐 언제고... 인제 와서 난처해지니까 사람을 내보내?“그리고 할아버지께서 또 뭐라고 하셨어요?”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김인우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발신자는 다름 아닌 김훈이었다.“예찬이가 곁에 없어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저희와 얘기 좀 나누재요. 그래서 저희더러 먼저 함께 누워있으라고 하셨고요...”“이 늙은 영감탱이가 진짜.”김인우는 어이가 없었다.그러나 조하랑도 어쩔 수 없었다.어르신은 정말 진심으로 그녀에게 잘해 주셨고 그동안 어딜 가든 항상 맛있는 먹거리와 재밌는 물건을 선물해 주시곤 했다.게다가 그저께 경매에 나갔는데 조하랑이 예쁘다고 한 목걸이를 사기 위해 역대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해 인기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정말 친할아버지보다 더 가까운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어서 받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할아버지께서 또 이상한 생각 하시겠어요.”그 말에 김인우도 마지못해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왜 이제야 전화를 받는 것이냐?”핸드폰 저 너
같은 시각, 바깥에 쫓겨난 추경은은 추위에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라는 김인우의 답이 없자 초조해진 추경은이 참다못해 김인우의 텐트 앞으로 걸어갔지만 텐트의 지퍼가 모두 안에서 닫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그리고 램프까지 꺼진 것을 보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추경은이 발을 동동 굴렀다.하지만 조하랑이 이곳에서 자고 있다는 건 추경은에게도 남은 텐트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여 그녀는 재빨리 그 텐트를 찾아 안으로 쏙 들어갔다.침낭을 가져오지 않았더니 산이 엄청 추워요.추경은은 텐트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 몇 벌로 겨우 몸을 녹일 수 있었다.살면서 정말 오늘처럼 비참한 적이 없었다.게다가 하필이면 옆 텐트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는데 다름 아닌 서다희와 민수아였다.“젠장...”이에 추경은은 더욱 견디기 힘들어졌다.한편, 박민정은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며 두 아이를 재우고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바깥에는 매서운 바람이 윙윙 휘몰아쳤고 그 소리는 마치 사람이 울부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침낭 안에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어 이리저리 뒤척였다.“이리로 올래?”유남준이 갑자기 말을 건넸다.“네?”유남준 역시 박민정의 두려움을 눈치채고 먼저 제안을 건넸다.“와서 내 옆에서 자.”“싫어요.”그러나 박민정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단칼에 거절해버렸다.유남준도 별로 권하지는 않았다.그렇게 다시 눈을 감았다. 1분이 지나고, 2분, 10분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았다.박민정이 목소리를 낮추어 입을 열었다.“남준 씨, 자요?”“아직.”“남준 씨도 무서운 거예요?”유남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박민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으로 갔다.“무서워하지 마세요. 세상에 귀신은 없어요.”유남준은 그녀 자신을 위로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를 위로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박민정의 말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원래는 무섭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