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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8화

작가: 윤지
유남준은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안 가.”

유남준은 갑자기 울려 퍼진 벨 소리에 박민정이 걸어온 전화인 줄 알고 냉큼 받았다.

“남준 오빠, 새언니가 나 혼자 남겨두고 두원 별장을 나가서 심심해. 오빠 집에서 지내면서 챙겨줄 테니까 보디가드한테 문 열라고 해줘.”

추경은이 별장 앞에 서 있었다.

“필요 없어.”

유남준은 전화를 끊고는 휴대폰을 서다희한테 건넸다.

“얘 번호를 차단해 버려.”

“알겠어요.”

서다희가 추경은의 전화번호를 차단했기에 추경은이 다시 전화를 걸어도 연결되지 않았다. 박민정이 출근했다고 생각한 추경은이 호산 그룹으로 향했지만 도착한 뒤에야 박민정이 휴가를 냈다는 소식을 접했다.

“빌어먹을 년, 휴가는 왜 낸 거야?”

추경은은 박민정의 사무실 앞에서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은아, 방금 뭐라고 했어?”

추경은은 깜짝 놀라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유남우의 차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느꼈다. 유남우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추경은은 등골이 오싹했다.

“아무 말도 안 했어. 새언니가 갑자기 휴가 냈다는 게 이상해서 와본 거야.”

유남우는 피식 웃더니 추경은한테 다가갔고 추경은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추경은은 유남우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유남우는 악독한 수법으로 소문난 유남준한테 가려졌기에 아무도 유남우가 소름 끼치는 사람인지 몰랐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다정한 유남우 곁에는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고 인기가 많았다. 추경은도 한때는 유남우를 사랑했었지만 그 일이 일어난 뒤로 유남우를 피하게 되었고 마주치면 몸이 덜덜 떨려왔다.

“네가 형수님을 돌보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형수님이 왜 휴가를 냈는지 모른다고?”

유남우의 질문에 추경은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말했다.

“새언니가 아무 말 없이 가버려서 나도 몰라. 어제 집에 들어오자마자 짐을 싸더니 바로 나갔어. 아마 남준 오빠랑 싸운 것 같아.”

‘싸웠다고?’

유남우가 씩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왜 싸웠는지는 모르고?”

추경은이 고개를 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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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39화

    이때 유남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화 안 났으니까 걱정하지 마. 안 가도 돼.”추경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치를 살폈다.“네가 형을 좋아한다면 곁에서 챙겨줘야 하지 않겠어? 만약 두 사람이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만나게 되면 진심으로 축복해 줄게.”추경은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진짜?”“당연하지. 그런데 하나 주의할 게 있어.”유남우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박민정은 건드리지 마. 만약 박민정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내가 직접 너에게 벌을 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추경은은 유남우의 의도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새언니를 건드리는 일은 없을 거야. 유씨 가문의 대를 이을 아이를 낳아준 사람이니 늘 고맙게 생각해.”“앞으로 형과 박민정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나한테 연락해.”“그렇게 할게.”추경은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남우는 뒤돌아 나갔고 추경은은 그제야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추경은이 식은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유남우와 다시 마주치기 전에 회사를 급급히 빠져나가 택시에 앉았다.휴대폰 문자 알림음과 함께 문자가 떴다.“박민정은 지금 박씨 가문 옛 저택에 있어.”최현아가 보낸 문자였다. 어제 박민정이 별장을 나간 뒤로 종적을 감추었기에 추경은이 진주시에 대해 잘 알고 박민정을 꿰뚫고 있는 최현아한테 알아보라고 부탁한 것이다.추경은은 운전기사를 재촉했고 차는 저택으로 향했다.“나한테서 도망갈 생각하지 마.”한편 박씨 가문 옛 저택.집으로 돌아온 박민정은 저택 안을 청소하다가 박형식이 쓰던 서재의 문을 열었다. 기억을 더듬으며 서재의 서랍 제일 아래층을 열어 박형식이 아끼던 사진을 찾아냈다.그것은 네 식구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가족사진을 찍을 때 한수민이 기어코 박민정을 빼놓고 찍었지만 박형식은 박민정을 달래기 위해 포토샵으로 박민정의 사진을 가족사진에 붙여 넣었다.박형식은 한수민한테 들키지 않고 매일 가족사진을 보기 위해 서랍의 제일 아래층에 넣어뒀던 것이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40화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추경은은 머뭇거리다가 문 앞에 앉았다.“새언니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여기에 있을 거예요.”“마음대로 하세요.”박민정은 저택으로 들어가 깨끗하게 씻은 사과를 한입 베어먹고는 최근에 어떤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는지 검색했다. 막장 드라마는 박민정을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마음에 드는 드라마가 없는지 박민정은 뉴스를 시청했다.“지난주 YN 그룹의 주가가 하락세를 보였고 7일이 지난 오늘, 회장 윤석후가 자신의 지분을 모두 넘겨 IM 그룹이 YN 그룹을 인수한 것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IM 그룹이라고?”박민정은 귀에 익은 이름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생각에 잠겼다. 이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고 발신자는 박민호였다.“누나, 기사 난 거 봤어? 윤석후 회사 망했잖아.”윤석후는 박민호가 박씨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것을 도와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각종 트집을 잡으며 깔보다가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박민호가 흥분할 만했다.“봤어.”박민정은 박민호가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만약 한수민의 말이 사실이라면 박민호는 박민정의 친동생이 아닐 것이다.“윤석후 그놈이 나한테 회사를 경영할 줄 모른다고 하더니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회사가 윤석후 회사를 인수했잖아. 속이 다 시원하네.”박민호가 말을 이었다.“누나, 윤씨 가문에서 배상금은 줬어?”“몇백억밖에 못 받았어.”“내가 윤씨 가문한테 준 돈만 해도 1200억인데 고작 몇백억이라고? 누나 혼수랑 예물까지 하면…”박민정은 박민호의 말이 귀에 거슬렸다.“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네가 멍청해서 그런 거잖아.”박민호는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재산을 넘겼었다.“엄마가 시킨 대로 한 건데 왜 나한테 그래? 윤석후는 착하게 살다가 죽은 사람이라고, 결국 내가 재산을 물려받을 거라고 해서 믿었던 거야. 엄마가 윤소현을 위해서 그랬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박민호는 생각할수록 화가 솟구쳐 올랐다.“며칠 전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41화

    에리의 말에 박민정은 재빨리 패드로 검색했고 2라운드 진출 명단을 확인했다. 총 3라운드까지 진행되는데 마지막 라운드에서 시합에 참여한 곡을 공개해 투표 순위에 따라 1등을 선발하고 일주일 뒤에 결과를 발표할 것이다.“고마워. 금방 확인했어.”“이번 주말에 시간 돼?”에리는 부모님께서 진주 공원 근처에 벚꽃이 가득 피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던 것이다. 공원의 안쪽에는 캠핑장도 있어서 아이들을 데려가면 좋아할 것 같았다.“주말에는 애들이랑 캠핑하러 가기로 했어.”박민정의 말에 에리가 웃으며 대답했다.“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가자. 내가 있으면 든든하잖아! 너 진주 공원 가봤어? 공원 뒤쪽에 있는 산에 벚꽃이 피어서 얼마나 예쁜지 몰라.”박민정은 진주 공원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었다.“너랑 같이 가면 어쩐지 더 위험해질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에리처럼 유명한 연예인이 관광지에 나타난다면 팬들이 모여들 것이다.“걱정하지 마. 마스크랑 선글라스만 끼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거야.”박민정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아이들한테 물어보고 다시 연락할게.”오후 5시.박윤우가 돌아온 뒤, 박민정은 박예찬에게 전화를 걸었다.“얘들아, 오늘 에리 삼촌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우리랑 같이 캠핑 가고 싶대. 삼촌이랑 가고 싶어?”박민정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박윤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박예찬은 동의했다. 이때 박윤우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엄마, 나는 에리 삼촌 말고 아빠랑 가고 싶어.”박예찬도 뒤질세라 말했다.“엄마, 에리 삼촌이랑 가도 괜찮아. 예전부터 자주 같이 놀았는데 뭐가 문제야?”박민정은 쌍둥이 형제의 말에 고민이 깊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 소란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려왔고 박민정은 밖으로 나갔다.“무슨 일이지?”알고 보니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민수아가 문 앞에 자리 잡고 앉아 있던 추경은과 마주치면서 말다툼이 일어난 모양이었다.“언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42화

    박민정은 멈춰서더니 보디가드를 향해 풀어주라고 손짓했다.“달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경은 씨가 저를 보살피러 온 건 고맙지만 저의 손님한테 무례를 범한 건 사과해야죠.”추경은이 유씨 가문에 금방 들어왔을 때, 박민정과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박민정을 모욕하고 연못에 빠뜨려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박민정은 당했던 것을 몇 배로 추경은한테 돌려주면서 괴롭힐 생각이었다. 추경은은 박민정이 일부러 그러는 줄 알면서도 저택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새언니, 죄송해요. 욱해서 실례를 범했어요.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을게요.”“알겠으니 따라와요.”박민정 뒤를 따라 들어가던 추경은은 주먹을 꽉 쥐며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박민정이 남준 오빠랑 이혼하면 내가 오빠랑 결혼할 거야. 박민정, 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한편, 주방.박윤우와 민수아는 식탁 위에 수저와 반찬을 올려다 놓았다. 추경은이 식탁 앞에 앉으려 하자 박민정이 앞을 막아섰다.“경은 씨, 저를 보살피러 왔다는 분이 손님과 같이 식사하면 안 되죠. 우리가 식사를 마친 뒤에 드세요.”추경은은 식탁 옆에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민수아와 싸운 후, 얼굴이 얼얼했고 두통이 밀려왔다. 민수아는 추경은이 유남준의 친척인 것을 알고 있었고 박민정이 허락해서 추경은이 들어왔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큰 별장에 사람이 한 명 더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었기 때문이다.“수아야, 밥 다 먹고 약부터 바르자. 서랍 안에 연고가 있을 거야.”박민정의 말에 민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박윤우는 식사하는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다.‘에리 삼촌과 캠핑하기 싫다고! 조용히 아빠를 불러서 아빠랑 엄마가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려고 했단 말이야.’“윤우야,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민수아의 질문에 박윤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수아 이모, 주말에 캠핑하러 가기로 해서 기분 좋았었는데요… 형이랑 엄마만 같이 가니까 아쉬워서 그래요.”박민정은 사람이 적어서 재미없다는 뜻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43화

    유남준은 박윤우의 애교에 넘어가지 않았다. 애교를 싫어하기보다는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다 큰 남자아이가 애교를 부려?’“안 가.”유남준은 YN 그룹을 인수한 후 각종 서류를 검토하느라 바빴다. 박윤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싫으면 어쩔 수 없죠. 그럼 에리 삼촌과 민기 삼촌이랑 같이 텐트를 칠 수밖에요. 저희 다섯이 재밌게 놀게요. 아, 에리 삼촌은 엄마가 해준 요리만 고집한다면서요?”‘에리가 누구지?’유남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대답했다.“시간 나면 가볼게.”유남준의 말에 박윤우의 두 눈이 반짝였다.“약속한 거예요!”“그래. 일찍 자.”유남준은 전화를 끊었고 박윤우는 미소를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몸이 덜 아프니까 살 것 같아. 모레면 다 같이 캠핑하러 가서 너무 기뻐.’저택에서 지내게 된 추경은이 유남우에게 문자를 보냈다.“모레 새언니가 진주 공원에 캠핑하러 간대.”시간은 빠르게 흘러 캠핑 가는 날 아침이 되었다. 박민정과 민수아는 네 박스에 필요한 물건을 가득 채웠고 박스를 건네받은 정민기가 짐을 차에 실었다.“민정아, 무슨 보디가드가 힘이 이렇게 세대? 저 큰 상자를 혼자서 네 개나 들다니…”“힘뿐만 아니라 싸움도 잘해.”박민정은 연지석이 배정해 준 보디가드 정민기를 곁에 두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너무 멋져!”민수아는 진주 공원에서 톱스타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정민기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때 추경은이 박스를 끌고 나왔다.“새언니, 저도 같이 진주 공원에 가도 돼요?”“미안해서 어쩌죠? 차에 남는 자리가 없어서요. 가고 싶으면 알아서 가세요.”박민정의 말에 정민기는 일부러 남는 자리에 박스를 하나 올려두었다. 그 모습을 본 추경은은 어이가 없었지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럼 저는 택시 타고 갈게요.”박민정은 고개를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윤우야, 얼른 출발하자.”먼저 김씨 가문에 가서 조하랑과 박예찬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박윤우는 옷을 입다가 무슨 문제가 생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44화

    잘생긴 남자도 온다는 말에 잔뜩 들떴던 조하랑은 한숨만 내쉬었다.‘김인우도 따라가면 잘생긴 남자한테 들이댈 수 없잖아.’“사람이 많을수록 재밌는 거지. 괜찮아.”김훈이 직접 나서서 김인우와 조하랑을 이어주려 했기에 박민정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그럼 두 사람이 같은 차를 타고 오는 거야?”“나는 엄마랑 윤우랑 같은 차에 탈래.”박예찬은 조하랑과 같은 차에 타면 조하랑과 김인우가 말다툼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민정아, 나도 같이 탈래.”말을 마친 조하랑이 김인우한테 말했다.“혼자 오세요. 저는 민정이랑 같이 가려고요.”김인우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대답했다.“그러세요.”에리가 보내준 위치에 의하면 진주 공원은 이곳에서 두 시간 넘게 달려야 했다. 조하랑과 박예찬이 차에 타자 세 여인은 수다를 떨었고 가는 내내 수다를 떨었다.에리는 구석진 위치에 있는 민박집에 머물렀기에 팬들이 찾아올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어서 아주 편했다. 박민정을 비롯한 사람들은 진주 공원 뒷산에 벚꽃이 만개한 광경을 보며 감탄했다.“와, 너무 예뻐!”민수아와 조하랑이 감탄하는 사이에 박민정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김인우와 정민기는 차 앞에 기대서서 고개를 갸웃거렸다.“저게 뭐가 예쁘단 건지…”정민기는 여인들이 왜 꽃을 좋아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김인우는 사진을 찍어대는 여인들과 아이들을 뒤로하고 정민기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그쪽은 연지석의 수하예요?”정민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랬었죠.”김인우는 비밀리에 정민기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꽤 유명한 사람이라 연지석의 수하인 것도 놀라웠는데 한 여인의 보디가드를 자처한 것이 더 의아했다.“원하는 건 뭐든 줄 테니 저랑 일하실래요?”김인우는 자신을 살려준 은인의 보디가드를 빼앗을 생각이 없었다. 단지 정민기를 테스트해 보기 위함이었고 당연히 넘어올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정민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제의는 감사하지만 거절할게요. 딱히 필요한 게 없어서요.”김인우는 고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45화

    조하랑이 먼저 입을 열었다.“에리 씨, 예전에 에리 씨 노래만 들었어요! 너무 팬인데 사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에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조하랑을 쳐다보더니 웃으며 대답했다.“그럼요. 번호도 교환하는 게 어때요? 민정이 친구면 제 친구이기도 하니까요.”“친구면 말 편하게 해야죠. 지금부터 반말하는 거야!”두 여인은 흥분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박민정은 피식 웃더니 박윤우와 박예찬을 데리고 사진을 찍었다. 박예찬은 박민정이 사준 짱구 캐릭터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예찬아, 웃어야지. 스마일!”박윤우가 박예찬 옷에 달린 코끼리 코를 잡아당기며 말했다.“형, 엄마가 웃으래.”박예찬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고 기괴한 미소를 지어서 박윤우의 환한 표정과 온도 차이가 선명했다. “자, 다른 포즈로 찍어보자.”박민정은 아이들을 달래며 사진을 찍었고 한참 후에 정민기를 불렀다.“민기 씨, 이쪽으로 와보세요. 우리 윤우랑 예찬이랑 사진 찍어야죠.”정민기는 친구이자 생명의 은인이기에 박민정은 정민기를 가족처럼 생각했고 아이들한테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당부했었다.“민기 삼촌, 빨리 와요!”박윤우는 두 손을 입가에 모으고 소리를 질렀다. 정민기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굳은 표정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한편, 김인우는 조하랑 곁으로 다가가더니 에리를 훑어보며 물었다.“하랑 씨, 이분은 누구시죠?”조하랑은 김인우도 이곳에 온 것을 깜빡했는지 당황하더니 두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에리야, 이분은 김인우 씨. 인우 씨, 이분은 톱스타 에리예요.”김인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왜 나를 소개할 때는 이름 석 자만 말하고 저 사람을 소개할 때는 앞에 수식어까지 붙이는 건데?’“아, 스폰서만 잘 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연예인이군요.”김인우는 에리 같은 연예인을 돈만 주면 뭐든지 다 하는 직업으로 생각했기에 적대적으로 대했다. 김인우의 말을 들은 에리의 눈빛에 살기가 돌았고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곁에 있던 민수아는 어찌할 바를 몰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46화

    “괜찮아?”에리가 물었다.민수아는 볼을 붉히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잘생긴 남자 앞에서는 누구나 얼굴이 빨개진다.민수아는 서다희도 멋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서다희와 유남준이 이미 차를 몰고 온 줄 몰랐다.차에서도 서다희는 유남준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냥 연예인인 기생오라비예요. 요즘 회사 일이 너무 많고 바빠서 걔를 깜빡 잊었어요. 이 틈을 타 몰래 아프리카에서 왔나 봐요.”그는 이 말을 할 때만 해도 차분했다. 근데 산기슭에 도착해서 자신의 약혼녀가 그 기생오라비의 부축을 받고 볼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을 멀리서 보고는 눈빛이 이글거렸다.“이 사람이!”서다희는 유남준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말했다. “대표님, 저 먼저 내려가서 일을 좀 처리할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그래.”서다희는 차에서 내려 민수아를 향해 곧장 달려갔다.지금 그 두 사람은 이미 부축하던 손을 놓았다. 민수아는 서다희가 화가 나서 다가오는 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마워요, 에리 씨.”그녀는 좀 쑥스러운 듯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에리는 역시 톱스타 같았다. 사람이 너무 좋았고 전혀 톱스타 티를 내지 않았다.“이 정도로 고맙긴…”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먹 하나가 그를 향해 갔는데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에리가 평소에 운동했으니 마련이지, 이 주먹에 맞았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얼굴을 망가뜨렸을 것이다.“기생오라비!”서다희는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주먹을 들고 또 그를 치려 했다.서다희를 본 민수아는 그를 대뜸 껴안았다. “다희야, 뭐 하는 거야?”서다희가 잠시 멈춰서 물었다. “수아야, 방금 둘이 뭐 하고 있었어?”“아까 넘어질 뻔했는데 에리가 도와줘서 괜찮았어. 근데 왜 오자마자 사람을 때린 거야?”이쪽의 떠들썩한 소리는 박민정을 포함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조하랑과 김인우도 더는 싸우지 않았다. “왜 그래?”모두 다가와 물었다.“서 비서님이 여긴 어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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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정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좋아요, 신고해요. 경찰이 와서 모든 걸 조사하게 해요. 제가 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은 겁니다!”그녀는 나쁜 짓을 하기 않았기에 당당했다.윤소현은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려 했지만 고영란이 그녀를 막아섰다.“소현아, 분명 이건 오해가 있을 거야. 민정이가 그렇게 어린 아이를 해칠 리가 없잖니.”정수미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우리 모두 한 가족인데 경찰까지 부르는 건 너무하지 않니?”그러나 윤소현은 눈가가 붉어진 채 항의했다.“엄마, 지금 제 딸이 이런 상태인데도 엄마는 저를 외면하시겠다는 거예요? 우리 아이 편을 들어주실 생각은 없으세요?”박민정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그만해요. 차라리 신고해요.”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은 경찰 조사를 통해서뿐이었다.윤소현은 사실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 없었다. 아이의 일은 박민정과 무관했으며 그녀 스스로 꾸며낸 일이었기 때문이다.“민정아, 흥분하지 마. 우리 가족 일이니 우리끼리 해결해.”정수미가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윤소현은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비꼬듯 말했다.“좋아요. 우리끼리 해결하죠.”“그럼 말해봐, 박민정. 내 딸이 이렇게 됐는데 넌 어떻게 책임질 거야?”“제가 한 일이 아닌데 왜 제가 책임져야 하죠?”박민정이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되묻자 윤소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지금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야? 우리 다혜는 늘 멀쩡했어. 그런데 네가 안은 뒤로 이렇게 됐다고!”박민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이미 말했잖아요. 전 그런 적 없어요!”그녀는 어린 다혜가 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은 걸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런데도 윤소현은 여전히 공격적이었다.“엄마, 보셨어요? 얘는 끝까지 오리발만 내밀잖아요!”정수미는 한숨을 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다혜는 너무 어리고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때 고영란이 오늘 아이를 돌본 보모를 불러왔고 보모는 떨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07화

    박민정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망설일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유남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박민정은 고영란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해 윤소현이 말한 병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윤소현이 병실에서 달려나오더니 곧장 박민정에게 달려들었다.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져 주위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박민정 역시 피할 겨를이 없었고 결국 윤소현의 손바닥이 그녀의 뺨에 세게 내려앉았다.뜨겁게 달아오르는 통증이 얼굴을 타고 번졌다. 그러나 윤소현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 박민정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박민정도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고 그렇게 둘은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고영란은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도저히 가로막을 수 없었다.“박민정, 네가 어떻게 다혜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다혜는 이제 겨우 몇 달밖에 안 됐는데!”‘뭐?’박민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아요. 전 당신 딸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우리 다혜 몸에 이렇게나 많은 상처가 났는데도 끝까지 모른 척하겠다고? 너 정말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윤소현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분노를 퍼부었고 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방어에만 집중했다.고영란이 아무리 소리쳐도 윤소현은 멈추지 않았다.“소현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그만둬!”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고 윤소현은 그제야 멈췄다.박민정도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정수미가 황급히 달려와 박민정의 얼굴에 선명히 남은 손자국을 보고 안타까워했다.“민정아, 괜찮아?” 그녀가 걱정스레 물었다.하지만 윤소현은 불만을 터트렸다.“엄마, 똑같이 엄마 딸인데 우리가 싸웠으면 두 사람 다 챙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박민정만 신경 쓰는 거예요? 너무 편애하시는 거 아니에요?”정수미는 한숨을 내쉬며 윤소현을 돌아보았다.“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해봐. 왜 둘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06화

    박민정은 그 아기가 윤소현의 딸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다가갔다.“무슨 일이죠?”보모는 그녀를 보고도 별다른 경계 없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 하루 종일 울기만 하고 어떻게 달래도 소용이 없네요.”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따라온 보모에게 두 아들을 잘 돌보라고 지시한 뒤, 직접 아이를 안아 들어 달래기 시작했다.그러나 유다혜는 그녀의 품에서도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아마도 엄마가 된 경험 덕분인지 박민정은 아기를 돌보는 법을 잊었더라도 본능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알 수 있었다.그녀는 먼저 보모에게 아이가 충분히 먹었는지 물었고 이어 아이의 기저귀를 확인하며 배탈이 났는지 살펴보았다.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도 아기가 계속 울자 박민정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아기를 병원에 데려가 보세요. 이렇게 계속 우는 건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보모도 동의했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보모가 아기를 다시 받으려던 찰나, 멀리서 윤소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뭐 하는 거야? 누가 내 딸을 저 여자한테 맡기라고 했어?”윤소현은 높은 굽의 힐을 신은 채 빠르게 걸어와 박민정의 품에서 아이를 거칠게 빼앗아 갔다. 그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보모를 질책했다.“내 딸을 당신한테 맡겼더니 이렇게밖에 돌보지 못해? 내 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 책임인 줄 알아!”그녀는 이어 박민정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너도 아이가 있잖아. 내 아이를 왜 안고 있었던 거야?”박민정은 그 아이가 윤소현의 딸임을 알았더라면 절대 안았을 리 없었다.보모는 난처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작은 사모님, 다혜가 계속 울어서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께서 잠깐 도와주셨던 것뿐이에요. 아무런 악의도 없었습니다.”“악의가 없었다고?”윤소현은 여전히 울고 있는 딸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그 말이 사실이길 바랄 뿐이야.”그러다 보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작은 사모님, 아이를 병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05화

    윤소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선두에 있던 여하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이어 한 하인을 거칠게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섰다.들어가자마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박민정과 유남준 가족이 함께 웃으며 화목하게 있는 모습이었다.그 광경에 윤소현의 눈빛이 질투로 뒤덮였다. 그녀는 곧바로 고영란을 향해 차갑게 비아냥댔다.“어머니, 저랑 남우 씨가 비록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건 아니지만 저도 유씨 가문에서 떳떳하게 맞아들인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저를 모른 척하시겠다는 거예요?”고영란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윤소현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유남우 역시 큰 잘못을 저질렀고 이 모든 상황이 그녀에겐 큰 실수로 느껴졌다.“소현아, 내가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야. 어서 남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렴. 여긴... 당분간 환영받지 못할 것 같구나.”윤소현은 이 말을 듣고도 뻔뻔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왜요? 제가 여기 있으면 어쩌시려고요? 혹시 당신 아들 유남우가 저지른 일들을 제가 다 까발릴까 봐 그러시는 건가요?”고영란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윤소현이 마지막 퇴로조차 거부하자 냉소를 띠며 대꾸했다.“우리 아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한번 말해 보렴.”윤소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뭘 말하냐고요? 당신 아들이 자기 형의 여자를 탐냈다는 거. 이게 바로 당신들이 자랑하는 유씨 집안의 가풍인가요?”그 말이 떨어지자 방 안에 있던 하인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박민정은 옆에서 두 아이를 달래며 이 상황에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유남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다들 뭘 보고 있어? 당장 저 여자를 끌어내!”윤소현은 유남준이 자신을 쫓아내려 하자 더 큰 소리로 외쳤다.“유남준 씨, 이 말을 듣기 싫은 거죠? 뭐, 당연하죠. 형의 여자를 뺏어갔다니, 저라도 그런 꼴은 못 참겠어요!”만약 그녀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유남준은 벌써 그녀에게 직접 손을 댔을 것이다.곧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04화

    박민정의 시선이 우연히 유남준과 마주쳤고 그 순간 그녀는 그대로 얼어붙었다.유남준은 숨이 가빠지며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입술이 닿기 직전 박민정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저기... 어젯밤 감사했어요.”박민정은 짧게 말한 뒤 유남준의 품에서 빠져나가려 했다.유남준의 품이 순식간에 비어지며 허전함이 밀려왔지만 그녀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억지로 붙잡지 않았다.그도 조용히 일어났다.창밖에는 두껍게 쌓인 눈이 온 세상을 덮고 있었다.“기억나? 재작년 이맘때도 우리 여기 머물렀었잖아.” 유남준이 말을 꺼냈다.박민정은 그의 말을 들었지만 머릿속엔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두 사람은 먼저 읍내로 나가 식사를 한 뒤 어머니 같은 존재였던 은정숙을 찾아가 제사를 지냈다. 이후 차를 타고 진주시로 향했다.진주시는 여전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길 위에는 삼삼오오 모여 눈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지나갔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민정은 잠시 멍해졌다.‘만약 내가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나도 지금쯤 저렇게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을까?’하지만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몇 개의 희미한 기억의 조각들뿐이었다.“잠시 후 우리 집, 본가로 갈 거야.” 유남준이 그녀를 바라보다 나지막이 말했다.박민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본가요?”“응, 우리 집.”유남준의 대답에 박민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마침 그녀도 그곳에서 두 아이를 보고 싶었다.유씨 가문의 저택에서 고영란은 요즘 완벽한 가정의 화목을 누리고 있었다.자식과 손자들이 곁에 머물렀고 두 아이는 날마다 그녀를 웃게 했다.박민정이 온다는 소식에 그녀는 하인들에게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도록 했다.차가 저택 입구에 도착하자 고영란은 직접 마중을 나왔다.“민정아, 어서 와서 앉아.”박민정의 기억 속 고영란은 어린 시절에만 머물러 있었다.그때의 고영란은 차갑고 냉담한 분위기를 풍기며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사람이었다.박민정은 어릴 적 그녀를 조금 두려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03화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박민정과 유남준은 오늘 하루 동안 많은 곳을 둘러보며 꽤 많은 기억을 떠올렸다.저녁이 되어서야 둘은 시골의 집으로 돌아왔다.박민정은 약간의 후회를 드러냈다.“벌써 열 시가 넘었네요. 지금 진주시로 돌아가면 새벽이 되어야 도착하겠어요.”유남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럼 오늘은 여기서 묵자. 밤늦게 운전하는 건 위험하니까. 게다가 돌아가면 다른 사람들을 깨울 수도 있잖아.”박민정은 타인의 사정을 가장 먼저 고려하는 성격이었기에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여기서 자는 걸로 할게요. 그런데 괜찮을까요?”“물론 괜찮지.”유남준은 내심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 몹시 반가웠다.박민정이 말한 건 두 개의 방이 있다는 뜻이었지만 유남준은 하나의 방을 생각했다. 그녀는 집 안을 둘러본 뒤 침실이 하나뿐임을 깨닫고 이렇게 말했다.“그럼 저는 거실 소파에서 잘게요.”여기는 박씨 가문의 본가와는 달랐다. 박씨 가문의 저택은 침실 안에도 넉넉한 공간이 있어 소파를 두는 게 가능했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유남준은 단 한 순간도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그럼 나도 소파에서 같이 잘게.”그의 대답에 박민정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그러지 말고 각자 따로 자요.”박민정은 비록 기억의 조각들을 조금씩 되찾고 있었지만 유남준과의 관계가 너무 빨리 진전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유남준은 억지로 그녀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혼자 침실에서 자게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여기는 외딴곳이라 네가 혼자 소파에서 자는 건 걱정돼. 침실 침대는 넓으니까 네가 불편하면 이불 하나로 우리 사이를 막아두면 되잖아. 어때?”그는 마치 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말했다.박민정은 망설이면서도 밖에서 들려오는 거센 바람 소리에 마음이 흔들렸다.“...좋아요.”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남준은 곧바로 이불을 가져와 침대 가운데를 나누고 각각 이불을 하나씩 준비했다.유남준이 침대에 눕고 나서야 박민정도 몸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02화

    전날 밤 악몽 탓에 잠을 설친 박민정은 차 안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어느덧 차는 어느새 시골에 도착해 있었다.유남준은 그녀를 깨우지 않고 운전기사에게 차를 잠시 멈추게 했다.박민정은 깊이 잠들지 못했는지 몸을 비틀다가 그만 유남준의 품으로 넘어질 뻔했다.그는 재빨리 그녀를 받아 안았다.박민정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다가 자신이 그의 몸에 기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당황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유남준은 고개를 저었다.“사과할 일은 아니야. 가자, 다 왔어.”벌써 도착한 걸까?박민정은 창밖을 보았는데 새하얀 눈 아래 작은 집 한 채가 서 있었다. 그곳은 어린 시절 그녀와 정숙 아줌마가 함께 살던 집, 그녀의 진짜 집이었다.어릴 적 기억의 단편들이 박민정의 머릿속에서 하나둘 떠올랐다.“맞아요, 여기가 바로 그 집이에요.”그녀는 유남준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가가 뜨거워졌다.“아줌마, 나 돌아왔어요.”박민정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지만 이제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차가운 바람이 귀를 스치고 박민정은 눈 덮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집으로 향했다.안으로 들어가려던 그녀는 문이 잠겨 있다는 것을 깨닫고 멈칫했고 그때 유남준이 다가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박민정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당신한테 여기 열쇠가 왜 있어요?”“예전에 네가 나한테 맡겼잖아. 우리 여기서 잠시 함께 살았었지.”“우리가 여기서 같이 살았다고요?”박민정은 이 말에 믿기지 않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명품 정장에 품격이 넘치는 태도를 지닌 그가 이렇게 낡은 집에서 자신과 함께 살았다는 사실이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유남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응. 예전에 네가 자꾸 삐져서 가출했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도 따라왔지.”그의 농담 섞인 말에 박민정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놀랐다.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집 안을 둘러보았다. 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01화

    박민정은 방을 옮기면 더 편히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밤새 끊임없이 악몽에 시달렸다.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꿈, 정숙 아줌마의 죽음, 그리고 한수민의 죽음까지...꿈속의 모든 일들이 희미하고 불분명했지만 그 슬픔은 그녀의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아침에 눈을 뜨고 나니 꿈에서 겪은 구체적인 상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모든 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박민정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꿈을 되짚어보려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떠오르는 게 없어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했다.세수를 마치고 거실로 나온 박민정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누나.”동생 박민호였다.박민호는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박민정은 그를 보고도 별다른 반가움을 느끼지 않았다. 지난 1년 동안 그녀는 박민호를 몇 번이나 마주쳤기 때문이었다.“응, 여긴 웬일이야?”박민정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유남우가 그녀를 속이고 있을 때, 박민호는 늘 유남우를 도와 거짓말을 꾸미는 데 일조했다.박민호도 그녀의 냉랭한 태도를 눈치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박민정 앞으로 다가왔다.“누나, 설마 나한테 화난 거야? 나도 남우 형한테 속았던 거라고!”박민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속았다니, 무슨 말이야?”“남우 형이 그러더라고. 유 대표가 진심으로 누나를 대하지 않는다면서 오직 형만이 누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나도 예전에 유 대표가 누나에게 잘못했던 걸 생각하니 누나가 더 사랑받는 사람이랑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형 말을 믿었지.”박민호는 한 단어 한 단어 신중히 말했지만 박민정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그래? 알겠어. 그럼 이제 무슨 일로 온 건데?”박민호는 비로소 본론으로 들어갔다.“누나, 기억은 얼마나 돌아왔어? 뭐라도 생각난 거는?”박민정은 솔직히 말하지 않고 고개만 저었다.“아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그래? 괜찮아, 천천히 떠올리게 될 거야.”박민호는 옆에 있는 과일 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00화

    비서는 정 대표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고 재빨리 나서서 말을 보탰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아가씨를 정말 많이 보고 싶어 하십니다. 한 번만이라도 시간을 내서 찾아뵐 수 있을까요?”“대표님께서 예전에 잘못하신 건 전부 아가씨의 정체를 모르셨기 때문이에요. 이제 모든 걸 아시고 정말 많이 후회하고 계십니다.”이 말을 듣자마자 박윤우가 재빨리 박민정 앞을 막아서며 외쳤다.“당신들은 다 나쁜 사람들이에요! 우리 엄마를 데려갈 생각하지 마요!”“윤우 군, 저희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대표님은 윤우 군 엄마의 친엄마세요. 절대 두 분을 해칠 분이 아니세요.” 비서는 간절히 설득했지만 박윤우는 냉소를 띠며 되받아쳤다.“그럼 예전에 우리 형이 죽을 뻔한 건 누가 그랬는데요? 엄마 얼굴이 이렇게 된 건 또 누구 탓인데요?”비서는 말문이 막혔고 ‘그건 전부 오해’ 라고 간신히 변명했다. 하지만 그녀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정수미가 그녀를 제지했다.박윤우는 여전히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그럼 하나만 물어볼게요. 우리 엄마가 정 대표님 딸이 아니었다면 자기 잘못을 인정했을까요? 우리 엄마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냥 끝까지 괴롭혔겠죠?”“옳고 그름도 모르는 사람이 자기 딸만 감싸고 우리 엄마를 다치게 했어요. 이제 와서 용서를 구한다고요? 웃기지 마요!”박윤우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 정수미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새삼 절실히 깨달았다.“미안하다...”정수미는 고개를 숙이며 박민정에게 사과했다.“민정아, 엄마가 잘못했다. 엄마가 옳고 그름도 모르고 소현이만 감싸느라... 그래서 이렇게 됐어.”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목소리는 점점 떨려왔다. 하지만 박민정은 그녀의 이런 모습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아이조차 아는 간단한 이치를 성인이자 회사 대표인 그녀가 몰랐다는 것이 더 의아했다. 그저 자기 편을 감싸기에 바빴던 사람일 뿐이었다.“정 대표님, 더 할 말이 없으시면 저희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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