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길입니다.”운전기사가 대답했다.유남준의 기억대로라면 단양길에는 차도 사람도 드문 편이다.그러한 점을 감안하여 유남준은 운전기사에게 분부했다.“따라가.”“네.”실은 몇 년 전에 단양길이 속해 있는 이쪽 구역을 호산 그룹에서 도맡아서 상업 거리로 탈바꿈해 버렸다.인적이 드문 예전과 달리 지금은 북적북적한다는 말이다.차에서 내린 박민정은 급히 처리할 일도 없고 하여 온 김에 둘러보기로 했다.마침 계절도 바뀌게 되고 하니 박윤우와 박예찬에게 새 옷을 사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길을 따라서 걷다 보니 많은 이들이 자기 쪽을 향해 지켜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얼굴에 흉터를 보고서 다들 수군거리는 줄 알았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멀지 않은 곳에 승합차 한 채가 내내 쫓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승합차는 7, 8미터 정도 되고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의 차가 아니라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박민정은 유남준이 홧김에 이미 가버린 줄 알았는데, 내내 뒤에서 쫓아올 줄은 몰랐다.그대로 제자리에 멈춰 선 박민정은 심호흡을 한번하고서 승합차를 향해 걸어갔다.다가오는 그녀를 보고서 운전기사는 당황해 마지 못했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사모님께서 이리로 오고 계십니다.”유남준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윽고 박민정이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운전기사는 차창을 내려주었고 박민정은 뒤에 있는 유남준을 바라보면서 언짢아했다.“대체 뭐 하려고 따라오는 거예요?”“나 지금 임신한 몸이라 정서 파동도 꽤 심한 편이에요. 싸우고 싶으면 남준 씨가 내려와요. 내려와서 싸우자고요.”“...”유남준은 어이가 없었다.그냥 박민정 홀로 이 거리를 걷기에는 위험할 것 같아 뒤에서 지켜주고 있었던 것뿐인데 말이다.하지만 임신한 걸 감안하여 유남준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타, 두원으로 바래다줄게.”병 주고 약 주는데 일가견이 있는 유남준이다.먼저 차로 강제로 끌고 올라와서 한바탕 모욕을 주더니 인제 집으로 바래다주
갑자기 뒤에 나타난 차를 보고서 민수아는 적지 않게 놀랐다.이윽고 고개를 돌리자마자 서다희가 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여긴 왜 왔어? “의혹투성이인 두 눈으로 서다희는 민수아에게 물었다.“수아야, 너 여기서 지내는 거야?”민수아는 그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근데 그게 왜?”“어떻게 이 집에 들어오게 된 거야?”“내가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민수아는 자기와 박민정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서다희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수아야, 여기는 박씨 가문 옛 저택이야. 절대 내놓을 리가 없다는 말이지. 너 누구한테 속은 거 아니야?”민수아가 누군가에게 속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불법으로 비밀번호를 알아내서 민수아에게 거액의 돈을 받고 사기를 친 것이라면서.민수아는 그 말을 듣고서 진상을 털어놓았다.“걱정하지 마. 그런 거 아니야. 민정이가 나한테 빌려준 거야.”‘민정이?’서다희는 더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박민정 씨 그러는 거야? "“그래.”민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서다희는 아직 추경은과 밥을 먹었었던 그날의 일에 박민정 역시 연관되어 있음을 생각지도 않았었다.단지 민수아가 우연히 지나가다가 본 것으로 생각해 왔었다.“어떻게 알게 된 거야?”“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나랑 민정이 친구야.”서다희는 도저히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며칠 못 본 사이에 약혼녀가 자기 회사 대표님의 아내와 친구가 되었으니 말이다.다른 이들이라면 좋아서 방방 뛸 지도 모른다.하지만 서다희는 그렇지 않다.유남준과 박민정 사이의 러브 스토리가 하도 우여곡절이 많기 때문이다.“수아야, 박민정 씨 사람은 괜찮은데 우리하고는 신분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잖아. 그래서 난 네가 박민정 씨와 만나면서 더 깊이 알아가는 걸 바라지 않아.”“우리 신분이 어때서? “민수아는 지금 갈수록 그의 말에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두 사람에게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박민정은 경비실로 몸을 숨겼다.경비원은 갑자기 들이닥친 박민정을 바라보면서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사모님, 괜찮으세요?”“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네.”박민정은 그에게 정문에 있는 감시 카메라를 켜달라고 부탁했다.이윽고 박민정은 화면을 뚫어지게 지켜보기 시작했다.문 앞에서 박민정을 기다리고 있던 서다희는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 추경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당황했다.“다희 오빠.”추경은은 서다희를 향해 수줍은 듯 종종걸음으로 달아갔고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서다희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서게 되었다.추경은에게 그 어떠한 호감도 없는 모습으로.“경은 씨, 그냥 서 비서라고 불러주시죠.”추경은은 그 말에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왜 그러는 거예요? 그 여자 때문에 나한테 화난 거예요?”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추경은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면서 세상 가녀린 척을 했다.“미안해요. 그만 화 풀어요. 그 여자한테는 제가 가서 직접 사과할게요.”“사과는 왜 하는 거죠?”서다희가 물었다.그러자 추경은은 우물쭈물하면서 대답했다.“우리 사이 오해했잖아요... 그래서 사과하려고요...”서다희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녹음을 털어놓았는데, 지금과는 정반대인 추경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오늘 다희 오빠랑 왜 사적으로 만나려고 하는 지 알아? 꼬리 치려고 그런 거야. 근데 네까짓 게 끼어들 수 있을 것 같아?”추경은은 순간 사색이 되고 말았다.서다희는 그런 그녀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추경은 씨, 앞으로 그냥 남남으로 지내시죠. 오빠니 뭐니 그런 소리도 하지 말고요. 저한테는 동생이 없거든요.”그 말에 사색이 되었던 추경은의 얼굴은 화끈 달아오르고 말았다.그날 민수아와 했던 대화가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다.‘대단한 여자였어! 감히 녹음을 하다니!’‘앞으로 조심해서 말하고 행동해야겠어!’이미 까밝혀진 상황임으로 추경은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
부정이 아니라 인정을 하고 있는 박민정의 말에 서다희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사모님, 저와 추경은 씨 사이에는 처음부터 그 어떠한 관계도 없었습니다. 수아가 지금 이 일로 저와 헤어지려고 하는 거 알고 계십니까?”“그래서요? 저한테 말한다고 뭐가 달라져요?”박민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되물었다.“만약 제가 수아한테 두 사람이 몰래 커플 레스토랑으로 간 것을 알리지 않았더라면 다음번에는 더 심한 짓까지 할 수 있잖아요. 아닌가요?”“젊은 여자가 작정하고 유혹하는데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냐 말이에요.”순산 서다희는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남자로서 그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추경은 씨는 젊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화끈하고 게다가 집안까지 좋아요. 일반인 남자들이 가만히 놔둘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요. 하물며 작정하고 들이대는데 마다할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될 것 같아요?”“수아한테 알린 것도 사심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서 비서님이 추경은한테 홀려서 앞으로 추경은 씨의 말에만 끔뻑 죽을까 봐 그런 것도 있어요.”서다희는 모든 말을 다 듣고서 한참이나 침묵을 유지했다.“추경은 씨와 따로 둘만 만난 건 잘못했습니다. 낮도 아니고 밤에 만나서 더더욱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말을 마치고 그는 다소 멋쩍은 듯이 박민정을 바라보며 덧붙였다.“조금 전에 보신 것처럼 전 이미 추경은 씨와 선을 딱 그었습니다. 그러니 수아한테대신 좀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제 얘기를 듣지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있거든요.”박민정은 조금 전에 백업한 동영상을 서다희에게 건네주었다.“수아 소중히 여기고 예쁘게 사랑해 주세요.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좋은 여자예요.”서다희는 박민정이 건네주는 USB를 받고서 다소 당황했으나 차로 돌아와서 동영상을 직접 확인하고 나니 모든 의혹이 풀렸다.그는 바로 동영상을 민수아에게 보내주었다.드라마를 보고 있던
“뭐라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셈이야?”윤석후가 물었다.“당연히 엄마 말대로 해야죠. 근데 문제는 지금 한수민이 사인을 하지 않고 있다는 거예요.”윤소현은 모녀 관계를 정리하는 것에 관한 계약서까지 준비해 두었다.그 말을 듣게 된 윤석훈의 눈빛은 확 달라지면서 차갑기 그지없었다.“앞으로 우리가 걷게 될 길에서 한수민은 틀림없이 걸림돌처럼 내내 거슬리게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이쯤에서 한 방에 해결하는 게 좋겠어.”“아빠가 나서서 그 사인 받아줄게. 겸사겸사 이혼 서류도 작성해야겠어.”“네.”...아무리 흉악한 사람이라도 자기 가족은 절대 해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하지만 이 집안만큼은 그 말과 어긋나는 쪽으로 걸으려는 모습이다.오전에 한창 업무에 몰입하고 있을 때, 간병인으로부터 박민정은 또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민정 씨, 얼른 좀 오세요. 큰일 났어요.”박민정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한수민의 병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윤석후와 윤소현도 병실 안에 함께 있었는데 한수민에게 강제로 사인을 받고 있었다.간병인이 밖에서 박민정에게 알려주었다.“아침 일찍부터 오셨는데, 오자마자 사모님의 손을 잡고 사인을 강요하고 있지 뭐예요. 길 가던 행인이라도 저렇게 무정하게 굴 것 같지 않아요.”“이혼 서류에 사인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아요.”간병인은 박민정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박민정이 나서서 한수민을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박미정은 윤석후가 서둘러서 이혼하려는 그 마음을 알고 있다.한수민과 그 어떠한 관계도 엮이지 않게 빚에 시달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부녀 사이를 끊어버리는 건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으나 두 사람이 일단 이혼하게 되면 박민정은 돈을 받을 곳이 없게 된다.윤씨 가문의 모든 재산도 본래는 박씨 가문의 것이다.박민정은 핸드폰을 꺼내 들어 정민기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그러던 그때 의사 가운을 입은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박민정을 불렀다.“박민정 씨?”박민정은 그 소리에
윤소현은 순간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진작에 동의하셨으면 아까 그런 고통을 받지 않으셔도 되었을 텐데요.”말을 마친 윤소현은 합의서를 꺼내서 한수민의 앞에 내려놓았다.한수민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펜을 들어 자신의 이름을 사인하고는 또 붉은 색 지장까지 남겼다.이 모든 것을 마친 한수민이 윤소현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예전만큼의 애정이 전혀 없었다.“너 같은 배은망덕한 녀석을 애지중지 키웠으니 나도 참 눈이 멀었지.”윤소현은 한수민의 욕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누가 당신보고 절 애지중지 하랬어요? 저는 원래 당신과 정이 없었어요. 저는 정수미가 키운 거예요.”이 말을 들은 한수민는 갑자기 전에 자기가 박민호에게 박민정을 얘기한 것이 떠 올랐다. 그때 그녀는 박민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민정이는 가정부가 다 키웠어. 그래서 난 그 애한테 정이 전혀 없어.”‘다 내 업보야...’“이혼 합의서에도 사인해.”윤석후는 한수민을 빈털터리로 내쫓을 합의서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한수민은 그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이혼 합의서에는 사인할 수 없어.”만약 이 합의서에 사인을 안 하면 한수민은 그나마 절반의 부부 재산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합의서에 사인을 하면 그녀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었다.“사인 안 해?”윤석후는 또 손을 들어 한수민을 때리려고 했다.“어디 또 한 번 때리기만 해봐!”옆에서 줄곧 군소리 안 하던 박민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윤석후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박민정을 쳐다보았다.“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야?”박민정도 윤석후와 긴말하지 않고 문 쪽을 보며 외쳤다.“민기 씨.”정민기는 줄곧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며 박민정이 자기를 부르는 것을 듣고 얼른 들어왔다.윤석후는 자기보다 덩치가 크고 어린 정민기를 보더니 삽시에 깃발을 내렸다.“소현아, 가자.”“네.”윤소현은 모녀간의 연을 끊는 합의서를 잘 챙기고 떠났다.두 사람이 간 후, 한수민은 더는 참지 못하고 침대에 푹 쓰러졌다. 그녀는 가
‘세상에는 어떻게 이토록 나쁜 사람이 있을 수 있지?’박민정은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지금 거짓말을 하는 거죠?한수민은 목구멍이 쌉쌀했다.“민정아, 나도 확실히 임신했었어. 하지만 그때 윤석후가 내게 찾아와 재결합을 원했어. 난 그 사람을 위해 아이를 지웠어.”한수민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하지만 내가 아이를 지우고 나니, 윤석후는 또 나랑 결혼하기 싫다고 했어. 그러더니 정수미랑 결혼을 했더라. 난 형식 씨가 의심하지 않게, 출산 예정인 날에 맞춰서 갓난아기를 구했어. 그 갓난아기가 바로 너야.”한수민은 이 말을 마친 뒤,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난 형식 씨에게 미안해. 그 사람한테 미안해... 전에 거의 만삭인 그 아이를 지워서 내가 지금 이런 병에 걸렸나 봐. 다 내 업보야.”한수민은 울다가 또 웃었다.박민정은 지금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갑자기 박씨 가문의 따님에서 고아가 되었다.이 모든 것들의 변화가 너무나도 커서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어쩐 지,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당신은 저를 좋아하지 않았어요.”박민정은 목이 멘 소리로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근데 아버지는 죽기 전까지도 진실을 몰랐어요... 당신 참으로 독하네요.”박민정은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애썼다.한수민도 오늘에서야 자기가 정말 잘못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녀는 눈시울을 붉힌 채 박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아버지의 죽음은 확실히 단순한 사고는 아니야. 네가 결혼하기 전날, 난 그 차를 타고 윤석후를 만나러 갔었어. 근데 난 정말 그 차에 손을 댄 적이 없어. 차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건 아마도 윤석후가 한 짓일 거야.”그날 한수민은 윤석후와 만난 후, 두 사람의 차는 같이 지하 주차장에 한동안 놓여 있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박민정은 지금 한수민가 한 말이 어느 말이 진실이고 어느 말이 가짜인지 알 수 없었다.“이번에는 저한테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를 바라요.” 말을 마친 후, 박민정은 떠나려고 했
정민기는 차 안에 앉아서 가벼운 소리로 박민정에게 말했다.“며칠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하시네요.”“네.”“이제 돌아갈까요?”정민기가 물었다.박민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서교로 가주세요.”“네.”정민기는 서교로 차를 몰았다.박형식이 그곳의 묘원에 묻혀있었다.도착한 후, 박민정은 정민기더러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그녀는 자기 혼자 이곳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네.”정민기는 비록 박민정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몰랐지만, 그녀가 하는 말이라는 정민기는 무조건 따르곤 하였다.박민정은 박형식의 묘비 앞으로 걸어와, 위에 걸린 자상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목구멍이 칼에 베이는 것처럼 아팠다.“아버지, 전 아직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러도 되는 거예요?”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쳐 지나갔다.박민정은 가슴이 더더욱 답답해 났다.“아버지, 저 지금 너무 괴로워요. 어떡해요?”안타깝게도 박형식은 더 이상 그녀에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라고 알려 줄 수 없었다.박민정의 눈 밑에는 온통 슬픔으로 가득했다. 박형식의 묘비 앞에 앉은 채, 그녀의 머릿속은 엉망이었다.찬 바람이 휙휙 불었으며 묘비 앞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박민정은 머리가 무거워져 가는 것만 같았다.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시야가 희미해졌다.마침, 이때, 고급 차 한 대가 달려왔으며, 차 안의 남자는 단번에 박민정을 발견했다.그는 단김에 차에서 뛰어 내려와 재빨리 박민정에게 달려갔다.유남우는 오늘 박민정이 황급하게 회사를 떠나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사람을 시켜서 그녀를 지켜보라고 했다.박민정이 혼자 묘원에 있다는 것을 듣자마자 유남우는 바로 달려왔다.“민정아.”박민정은 정신이 몽롱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준 씨, 이제 눈이 보여요?”유남우는 이 말에 목이 멨다.그가 자기는 유남준이 아니라 유남우라고 정정하려고 할 때, 박민정은 두 눈을 꼭 감고 중얼거렸다.“남준 씨, 나 지금 머리가 너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