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도 윤소현을 알아봤다. 윤소현은 한 무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반면 한수민은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 구석에 몰려 있었다.박민정은 잠깐 복잡한 감정을 느꼈지만 곧 시선을 돌렸다.“가자.”“그래.”다른 한편.한수민은 사람들 사이에서 불편한 자세로 서 있었다.윤소현을 불러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누군가가 그녀를 밀어 앞으로 넘어졌다.한수민은 바닥에 넘어졌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병이 발작하면서 복부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고 바닥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한수민은 윤소현을 바라봤는데 그녀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사인하고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천천히 일어나려고 했다.이때 머리 위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한 여사님, 도움이 필요하신가요?”한수민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박민정의 차가운 얼굴과 마주치자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그녀는 당장이라도 쥐구멍을 찾아 숨고 싶었다.“왜 여기 있어? 너 같은 불효자식의 도움은 필요 없어!”한수민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하고는 박민정을 쏘아봤다.“너 일부러 나 비참한 모습을 보려고 온 거지?”박민정은 코웃음을 쳤다.조하랑은 옆에서 설명했다.“여사님. 나랑 민정이는 우연히 이 뮤지컬을 보러 온 거거든요.”한수민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세상에 이런 우연이 어디 있는가?그녀는 꼴이 말이 아니었는데도 여전히 박민정을 노려보며 말했다.“거짓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박민정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친딸처럼 예뻐하시는 분은 왜 여사님이 넘어져 있는 것을 보고도 부축하지 않는 거죠?”한수민은 윤소현을 보더니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박민정을 비꼬았다.“소현이는 내가 넘어진 것을 못 본 거야. 너랑 같은 애인 줄 알아?”“소현이는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무용가라고. 하지만 너는 장애인일 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쓰레기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소현이와 비교해?”“
박민정은 어렸을 때 한수민을 위해 산 위에서 꽃을 따려고 하다가 산 밑으로 굴러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한수민은 팔짱을 끼고서 말했었다.“민정아,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배워야지. 세상의 모든 일을 남에게만 의지하면 안 돼.”박민정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한수민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을 가리켰다는 걸 말이다.박민정은 조하랑과 함께 한수민의 저주와 욕설을 뒤로 하고 떠났다.“이 못된 년. 넌 이 세상에 있을 년이 아니야...”일면식이 없는 남을 욕해도 이 정도로 욕하진 않을 것이다.조하랑은 한수민의 욕설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어떻게 자신의 딸을 죽도록 저주하는 어머니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밖으로 나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박민정은 한동안 서 있었다. 그녀는 결국 지나가던 직원에게 말했다.“안에 사람이 넘어졌어요.”한수민이 도움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박민정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조하랑은 박민정이 마음이 약한 사람인 걸 잘 알고 있어 그녀의 팔을 끌어안고는 말했다.“민정아, 너 너무 착해.”조하랑은 전에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한수민을 보니 박민정이 한수민을 도와주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 말을 들은 박민정은 이미 어두워진 밤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도 조금 어두워졌다.“하랑아, 그거 알아? 한 여사님은 항상 내가 자기 딸 같지 않다고 했어. 내가 너무 나약하다고 했지. 정말 그런가 봐.”“그 사람처럼 마음 독하게 먹지 못하겠어.”조하랑은 그녀의 팔을 더 꽉 끌어안았다.“민정아, 너무 속상해하지 마. 한 여사님도 벌을 받았잖아.”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나 괜찮아. 이미 익숙해졌어.”조하랑은 그녀와 함께 차에 탔다. 밖은 너무 추웠다.차에 올라탄 후 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민정아, 뭐 하나 물어봐도 돼?”“응.”“한 여사님이 네 친엄마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조하랑은 이 질문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세상에 자기 자식을 그렇
“엄마, 이제 괜찮으세요?”윤소현은 침대 옆에 앉았다.한수민은 윤소현이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자기 곁에 있어 주는 것을 보더니 이전의 불만이 모두 사라졌다.“많이 좋아졌어. 오늘 수고했어.”“아니에요. 엄마는 제 친엄마니까 효도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윤소현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엄마가 혹시 불쾌하게 생각하실까 봐 걱정돼서요.”“무슨 일? 말해 봐.”“엄마 지금 몸 상태를 생각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준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윤소현은 최대한 에둘러 말했다.하지만 한수민은 여전히 그 말속에 숨겨진 뜻을 알아챘다.“네 말은 유언장을 준비하라는 거야? 의사 선생님도 말씀하셨잖니. 내가 치료를 잘 받으면 2년은 더 살 수 있다고.”“엄마, 화내지 마세요. 저도 당연히 엄마가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다만 어떤 일들은 미리 대비하는 게 좋잖아요.”“만약 오늘 같은 일이 엄마에게 또 생긴다면.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엄마가 남긴 것들을 남겼는지 저는 모를 거란 말이에요.”그 말을 들은 한수민은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소현아, 엄마 돈 얼마 없어.”한수민이 계속 알려주지 않으려 하자 윤소현은 화가 났다.“엄마, 저를 못 믿으시는 건가요? 제가 엄마 비상금을 노린다고 생각하세요?”“잊으셨나 본데 저는 엄마와 아빠의 딸일 뿐만 아니라 정수미의 양녀이기도 해요. 정수미는 이미 모든 재산을 저에게 남겨주겠다는 유언장을 작성해 두셨다고요.”“정씨 가문이 그렇게 돈이 많고 권력도 대단한데 제가 엄마 비상금을 탐내겠어요?”“그리고 정수미는 제 양어머니지만 엄마는 제 친어머니잖아요. 양어머니보다도 저를 못 믿으시는 건가요?”윤소현의 마지막 한마디는 한수민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한수민은 윤소현을 낳은 후 윤석후와의 관계 때문에 그녀를 버렸었다.그래서 그녀는 항상 윤소현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딸이 친어머니보다 양어머니가 더 낫다고 하자
윤석후는 돈을 받자마자 회사의 운영 자금으로 사용했다. 그는 최근 회사가 왜 이렇게 어려워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예전에 수익을 많이 내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큰 손해는 보지 않았다.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무슨 일을 하든 방해를 받았고 대부분의 거래처가 IM 그룹이라는 회사에 빼앗겼다. 그래서 그는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한수민은 아직 자기 돈이 윤소현에게 넘어간 뒤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 기사 하나가 실검에 떴다.[국제 유명 무용가, 아픈 계모를 뮤지컬 극장으로 데려가다.]클릭해 보니 윤소현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계모를 돌보고 있는지, 얼마나 효심이 깊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그녀는 계모가 병이 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더럽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직접 계모를 병원으로 모셔갔다고 적혀 있었다.박민정은 이 기사를 보더니 어이가 없었다.어젯밤 그녀는 윤소현이 한수민을 병원으로 데려가지도, 직접 돌보지도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박민정은 기사를 잠깐 읽다가 바로 꺼버렸다.박민정은 소송에서 이겼기 때문에 한수민은 반드시 15일 내로 돈을 반환해야 했다. 만약 반환하지 않으면 강제 집행을 신청할 수 있다.한수민과 윤씨 가문이 이 기간에 자산을 빼돌릴 것을 염려해 박민정은 정민기에게 사람 시켜 감시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정민기는 그녀에게 몇 장의 사진과 자료를 보내왔다.“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수민은 상당한 금액의 저축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윤석후가 그 돈을 인출했어요.”박민정은 미간을 구겼다.역시 그들은 돈을 반환할 생각이 없었다.“아쉽게도 15일은 기다려야 하네요.”이 증거들은 나중에 강제 집행을 위한 증거로 그들이 돈을 어디로 빼돌렸는지 찾는 데 사용될 수 있었다.박민정은 정민기에게 말했다.“계속 감시해 줘요. 무슨 증거가 있으면 즉시 확보하고요.”“네, 알겠습니다.”정민기가 전화를 끊은 후 박민정은 아침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누나, 돈 받았지? 어젯밤에 신청했으니까 지금쯤이면 입금됐을 거야.”박민호가 말했다.박민정은 계좌에 새로 들어온 돈을 보고 말했다.“응, 들어왔어.”“그럼 다행이네. 앞으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난 누나의 친동생이잖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거 잊지 않았지?”박민호는 전과는 달리 성숙하고 진지하게 말했다.박민정은 그의 이러한 변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박민호가 정말 변했을까? 철이 든 걸까?박민정은 그 누구보다도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녀와 박민호는 같은 부모를 둔 친남매였기에 박민호가 진심으로 변하고자 한다면 그녀는 그를 다시 받아들일 의향이 있었다.“그게 진심이었으면 좋겠네.”박민정이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당연히 이렇게 쉽게 박민호를 용서할 수 없었다. 박민호는 한때 돈 때문에 그녀를 나이 많은 남자에게 팔아넘기려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박민정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훤칠한 키의 유남준이 걸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테이블 위에 디저트 몇 개를 놓았다.박민정이 정신을 차리고 유남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자기가 좋아하는 디저트가 놓여 있다는 걸 발견했다.다만 그 가게는 매일 한정된 양만 만들었다. 예약도 받지 않아서 일찍 가서 줄을 서야 살 수 있었다.“남준 씨가 직접 산 거예요?”“당연히 부하를 시켰지.”유남준이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왜 혼자 가서 줄을 서? 사람 시켜 일찍 가서 줄을 서게 하면 쉽게 살 수 있는데 말이야.’박민정은 그 말을 듣더니 머리를 콩 때렸다.“임신하면 멍청해진다더니, 진짠가 보네.”유남준은 그녀의 말에서 박민정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다른 뜻을 읽었다.그는 박민정이 자신이 직접 사지 않았다고 서운해할까 봐 생각했다.사실 박민정은 그저 자신의 질문이 너무 바보 같다고 느껴졌을 뿐이다. 유남준은 돈이 많아 굳이 직접 줄 서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물어본 것이다.유남준은 다음번에는 직접 사러 가겠다는
서다희는 30분도 지나지 않아 박민정이 오늘 유남우와 통화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유남준은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의 동생에게 완전히 실망했다. 한 번 또 한 번 자기와 박민정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니 말이다.유남준은 윤씨 가문을 무너뜨린 후 더 이상 유남우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그가 더는 박민정을 찾지 못하게 제대로 벌을 주려고 했다.YN그룹은 새로 유입된 자금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 주주들이 주식을 매도했고 많은 임원들이 이직했다.YN그룹의 주가는 급락했으며 회사 직원들의 불안한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우리 회사 망하는 거 아니야? 며칠 전에 고 매니저님도 사무실 정리하고 나가는 거 봤어.”“그래. 우리 부장님도 사표 냈다니까. 우리한테 빨리 다른 직장 알아보라고 했어.”“어떻게 된 거지?”YN그룹 본사는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윤석후는 회사 내부에서 이미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을 전혀 몰랐다. 임원들의 연이은 이직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두려움에 휩싸였다.그는 단 한 번이라도 회사를 제대로 관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회사에 문제가 발생하자 바로 자신의 딸인 윤소현에게 연락했다.“소현아, 얼른 남우 집으로 데려와. 저녁에 같이 식사 좀 하자. 아빠가 할 말이 있어.”윤소현은 임신 보약을 마시던 중 그 말을 듣고서는 의아해했다.“무슨 일 있어요?”“와보면 알게 될 거야.”윤석후는 사위인 유남우가 능력자인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니면 그는 유남준의 손에서 유앤케이 그룹을 넘겨받지 못했을 것이다.“알겠어요.”윤소현은 전화를 끊은 후 그릇을 내려놓고는 거실로 향했다. 멀리서 유남우가 베란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보였다.유남우는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윤소현이 그에게 다가갔다.“남우 씨, 아빠가 저녁에 우리 집에 가서 식사 좀 하자고 하는데요. 할 말이 있으신가 봐요.”평소 자존심이 강한 윤소현도 유남우 앞에서는 순한 토끼처럼 행동했다.그 말을 들은 유
유씨 가문에 도착한 후.윤석후가 두 사람을 반겼다.“음식은 이미 준비했어. 얼른 들어와서 밥 먹어.”“아빠, 왜 갑자기 이러세요? 무슨 일 있으면 남우 씨에게 말하면 되죠.”윤소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녀는 유남우가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유남우도 말했다.“아버님, 소현이에게서 들었어요. 절 찾으신다고요. 먼저 본론부터 말씀하시죠.”“그럼... 식사하면서 얘기하자고.”윤석후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두 사람을 식탁으로 안내했다.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고서야 윤석후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공격당하고 있다는 상황을 천천히 털어놓았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모두 얘기하진 않았다.유남우는 아직 자신의 사위가 되지 않았다. 만약 유남우가 윤씨 가문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어 파혼하려 한다면 어쩐단 말인가?“상황은 이렇다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문제지.”윤석후는 유남우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살폈다.유남우는 조용히 듣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러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윤석후는 말문이 막혔다. 유남우가 자기에게 되물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그는 사실 아무 대책이 없어 유남우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유남우가 자기 대신 IM 그룹을 혼내주길 바랐다.“남우야, 혹시 나를 도와 내 프로젝트를 맡아주면 안 되겠나? 내가 자금이 충분해지면 다시 프로젝트를 되찾아가도록 하지. 절대로 손해 보게 하지 않겠네.”윤석후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했다.하지만 유남우는 YN그룹의 상황을 조사했기에 잘 알고 있었다.유남우는 여우처럼 교활한 그의 얼굴을 보고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호산 그룹의 CEO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큰 권력은 없어서요.”“월요일에 임원 회의를 소집해 YN그룹 프로젝트 인수 여부를 논의해 보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윤석후는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이건 명백한 거절이었다.하지만 윤소현은 유남우가 정말 난감한 상황에 부닥쳐
윤소현이 한수민의 비상금을 가지게 된 이후로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 심지어 전화도 걸지 않았다.한수민은 혼자 병원에서 지내며 딸을 몹시 그리워했다.“소현아, 보고 싶어. 언제 나 보러 올 거야?”“엄마, 죄송해요. 요즘 너무 바빠서요. 일이 끝나면 찾아뵐게요, 네?”윤소현이 대충 얼버무렸다.한수민의 눈빛은 한껏 어두워졌다.“알겠어. 근데 매일 무슨 일로...”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소현은 전화를 끊었다.한수민은 전화를 내려놓으며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오늘 한수민을 돌보는 간병인의 딸이 찾아와 간병인과 담소를 나눴다.“엄마, 나 이제 돈 벌기 시작했으니 이런 일은 그만두세요. 제가 돈을 넉넉히 드릴게요.”“괜찮아. 엄마 아직 젊으니까 조금이라도 일할 수 있어.”“엄마가 걱정돼서 그래요. 이 돈으로 맛있는 음식이나 많이 사 드세요. 돈 아까워하지 말고.”한수민은 다정한 모녀의 모습을 보더니 저도 모르게 박민정을 떠올렸다.6, 7년 전 박민정은 무릎을 꿇고 그녀 앞에서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엄마, 이제 우리 힘으로 살아가요. 제가 엄마를 모실게요.”한수민은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그녀는 베개를 집어 들어 문 쪽으로 던지며 소리쳤다.“나 돌보러 온 거야? 아니면 딸과 수다를 떨려고 왔어?”간병인이 그 말을 듣고는 바로 딸을 돌려보냈다.그리고 병실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한수민은 이미 간병인을 두 번 바꿨었다. 전에 있었던 두 명은 한수민의 성격 때문에 그만두었다.간병인은 바닥에 떨어진 베개를 주워 의자에 바로 놓았다. 그리고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의사 선생님께서 그러셨잖아요. 화를 낼수록 병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고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저에게 말씀하시면 돼요.”그 말을 들은 한수민은 경멸이 깃든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난 돈도 있고, 권력도 있어. 그런데 마음에 걸릴 게 뭐가 있어? 웃기고 있네.”한수민은 강한 척했지만 간병인은 그게 연기라는 걸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