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우는 유지훈이 곧바로 자기 쪽으로 넘어오는 것을 보고 움찔했다.다행히 박예찬은 빠르게 박윤우를 자기 옆으로 끌어당겼다.유지훈은 박윤우와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는데 도저히 멈출 수 없었고 또 발밑이 미끄러져 바닥에 ‘쿵’하고 넘어졌다.“엉엉...”이어서 유지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최현아가 이 상황을 보더니 빠르게 그에게 달려갔다.“지훈아, 괜찮아?”박민정도 윤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앞으로 걸어왔다. 예찬이가 윤우를 보호했기 때문에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했다.지금 박윤우의 눈동자는 한껏 어두워졌다. 그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는 유지훈에게로 향했다.그는 유지훈이 방금 자신을 밀려고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최현아는 흙투성이인 유지훈을 일으켜 세우고는 고개를 돌려 박윤우와 박예찬을 노려봤다.“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우리 지훈이를 밀어?”적반하장도 유분수지.박민정이 미간을 구겼다.“형님, 어딜 봐서 윤우가 지훈이를 밀었다는 거예요? 분명 지훈이가 혼자 달려와 윤우를 밀칠 뻔했잖아요. 그리고 스스로 넘어졌고요.”“동서는 당연히 자기 아들 편을 들겠지. 난 저놈이 우리 지훈이를 밀치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말을 마친 후 그녀는 또 유지훈에게 물었다.“지훈아, 안 그래?”유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박예찬과 박윤우가 같이 저를 밀었어요.”이곳에는 CCTV도 없었기 때문에 최현아는 그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히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이때 유남준은 박예찬과 박윤우에게 다가가 물었다.“지훈이를 밀었어?”박윤우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빠, 우리는 유지훈을 밀지 않았어요.”최현아가 또 말했다.“남준 씨는 눈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잖아요. 자기 아들이라고 편을 드는 거예요?”유남준은 미간을 찌푸렸다.“편을 든다고 해도 어떻게 할 건데요?”멀지 않은 곳에서 이 말을 들은 유명훈이 다가왔다.“남준아, 그게 무슨 소리야?”“부모로서 아이들에
“여러분, 잠깐만요. 먼저 유지훈이 처음 넘어졌을 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봐주시겠어요?”박예찬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처음 넘어질 때와 뭐가 다르다는 거지?최현아가 목소리를 높였다.“이 못된 녀석아. 지훈이를 밀친 것도 모자라 이제 지훈이를 놀리려는 거야? 내가 정말 너 못 때릴 줄 알아?”“어디 한 번 때려봐요!”박민정은 예찬이의 말을 들은 후 바로 그의 뜻을 알아챘다.최현아는 박민정의 눈빛을 보고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뭐가 다르다는 거야?”그중 어떤 여자애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아빠, 엄마, 저기 보세요. 지훈이가 처음 넘어졌을 때는 엎드린 상태였지만 지금은 누워 있잖아요.”그 말을 듣고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유지훈은 처음에 얼굴이 흙탕물에 젖었지만 지금은 등 쪽이 젖어 있었다. 하지만 이게 무엇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어떤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예찬이가 참 장난꾸러기네. 처음에는 지훈이를 흙탕물에 얼굴을 박고 넘어지게 하더니 지금은 엉덩방아를 찧게 했네.”박예찬은 지금조차 진실을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 계속 설명했다.“유지훈이 넘어지기 전 여러분들도 똑똑히 보셨을 겁니다. 나와 윤우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마주 보고 있었죠. 만약 내가 유지훈을 밀었다면 지금처럼 하늘을 보며 등으로 넘어졌겠죠. 처음에는 얼굴을 흙탕물에 박고 넘어졌잖아요.”“그건 혼자 발이 미끄러져 넘어진 거예요.”“여러분이 더 명확하게 보실 수 있도록 저는 작은 실험을 해본 것뿐입니다.”말을 마친 후 그는 유지훈 앞에 다가갔다.“처음에 난 너를 밀지 않았으니까 사과할 필요가 없지. 하지만 네가 두 번째로 넘어졌을 때 나는 밀기 전에 미리 사과를 했어.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서로 빚진 게 없는 거야.”이런 박예찬의 행동에 모두가 감탄했다.그들은 아까 CCTV를 찾을 생각만 했지, 이렇게 뻔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박윤우는 하품을 하더니
저녁 식사 후.유명훈은 박예찬에게 몇 가지 기초적인 지식을 물어보았다. 박예찬은 역시 모두 정확하게 답했다.유명훈은 김훈처럼 그와 바둑을 두려 했지만 예찬이는 내일 학교에 가야 해서 다음에 다시 바둑을 둘 수밖에 없었다.집으로 돌아갈 때 고영란은 문까지 배웅하며 그들이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다.“며칠 후에 또 할머니 보러 와.”“알겠습니다.”두 아이가 동시에 대답했다.차가 출발하더니 빠르게 본가를 떠났다.가는 길에, 박윤우는 박예찬의 작은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박민정은 화목한 두 형제의 모습을 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내일이면 유산 상속 소송이 시작될 것이다.집에 도착한 후 박민정은 장명철 변호사가 보낸 서류를 다시 살펴 그 어떤 돌발 상황도 방지하고자 했다.한수민과 윤씨 가문 사람들은 그들이 박민정의 재산을 빼돌렸다는 증거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이번 소송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하지만 그들은 유남준이 박민호가 재산을 이전한 서류를 포함한 박씨 가문의 모든 서류를 백업한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다음 날, 두 아이는 유치원에 갔다.유남준은 박민정을 법원 앞까지 데려다주고 차 안에서 그녀를 기다렸다.“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유남준이 말했다.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그녀가 떠난 후 유남준은 서다희에게 물었다.“YN그룹은 요즘 무슨 소식 있어?”“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정씨 가문이나 둘째 도련님께서 나서면 어떡하죠?”서다희가 말했다.회사를 전혀 운영할 줄 모르는 윤석후는 그동안 박씨 가문의 재산을 축내며 살아왔다.유남준은 정수미와 유남우를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정수미가 아무 짓도 못 하도록 잘 지켜봐.”“그리고 유남우는.”유남준은 잠깐 멈칫했다.“요즘 권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던데 위험할 것 같으면 약간 귀띔해 줘.”권씨 가문 사람들은 재주가 없지만 음흉하기 때문에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런 음흉한 자들이 실력이 대단한 사람들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돈은 모두 윤씨 가문으로 넘어갔는데 무슨 수로 박민정에게 돌려준단 말인가?그리고 한수민은 돈이 있어도 박민정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한수민은 자기를 등진 박민정을 붙잡고는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고 간청했다.“민정아, 내가 가진 돈은 다 윤씨 가문에 줬어. 너에게 줄 돈이 없다고.”박민정은 걸음을 멈추고 한수민을 돌아보았다.“그래요? 그럼 강제 집행을 신청할게요.”그녀는 한수민과 박민호가 비상금 정도는 남겨두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한수민은 박민정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는데 더 이상 이전의 기세는 없었다.“정말 나를 죽이고 싶니? 난 얼마 살지도 못해.”박민정은 차분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이건 다 한 여사님이 자초한 일이에요.”“나는 네 친엄마야! 만약 내가 아무것도 없게 되면 너도 가만두지 않겠어. 알겠니?”한수민은 박민정을 협박하기 시작했다.박민정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지금 제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한수민은 말문이 막혔다.박민정은 그녀를 노려보았다.“당신의 협박은 두렵지 않아요. 아버지의 재산은 반드시 되찾을 거예요. 아버지의 돈을 다른 남자에게 준 게 정말 역겹네요.”“아버지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했는데 아버지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자궁경부암 말기라고 했죠? 이게 다 당신이 응당 받아야 하는 벌이에요!”박민정이 말을 마치고는 돌아섰다.한수민은 잠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박민정의 뒷모습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이 못된 년! 너도 잘 되지 못할 거야!”주변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자 한수민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었다.박민정이 차로 돌아오고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유남준은 한수민이 박민정을 저주하는 말을 들었다.서다희마저 분노가 끓어올랐다.세상에 자기 딸을 저주하는 어머니가 어디 있단 말인가?‘사모님을 못된 년이라 말할 게 아니라 자기부터 돌아보는 게 좋을 텐데. 자기는 무슨 좋은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내려.”유남준이 운전기사와 서다희에게 명령했다.운전기사와 서다희는
“기껏해야 400억이라고?”윤석후가 그녀를 노려봤다.한수민은 그의 눈빛에 기분이 상했다.“왜요? 안 돼요?”윤석후는 바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냥 놀라서 그러지. 당신 돈인데 당신이 어떻게 쓰든 상관없어.”한수민은 그제야 화를 풀었다.윤석후는 여전히 그녀가 두려웠다.한수민은 그에게 딸 윤소현을 낳아줬을 뿐만 아니라 지금 그가 가진 모든 건 한수민이 준 것이기 때문이다.만약 한수민을 화나게 하면 그녀가 과거의 나쁜 일들을 모두 들추어낼까 봐 두려웠다.“여보, 시간도 늦었고 당신 몸도 좋지 않잖아. 얼른 가서 쉬어. 내일 병원에 가서 계속 검사받아야지.”윤석후가 다정하게 말하고는 그녀를 부축하여 위층으로 올라갔다.한수민을 침대에 눕힌 후 그는 거실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었다.그 모습을 본 윤소현이 물었다.“아빠, 우리 그 돈 정말 박민정에게 돌려줘야 해요?”“그럴 리가 있겠어?”상냥한 얼굴을 하던 윤석후의 얼굴색은 갑자기 어두워졌다.한 번 삼킨 돈을 다시 내놓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지금으로선 회사를 팔지 않는 한 그렇게 많은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소현아, 잘 기억해. 박민정은 한수민과 소송을 벌인 거야. 한수민이 졌으니 한수민이 갚아야 하는 거야. 박민정에게 돈을 빚진 사람이 우리가 아니라 한수민이잖아.”윤석후가 소리를 낮춰 말했다.“그런데 두 분 아직 부부잖아요...”“그게 뭐가 중요해? 얼마나 더 오래 산다고. 잘 기억해. 한수민의 비상금을 꼭 미리 확보해야 해. 아무래도 2000억 이상은 있을 거야.”윤석후가 말했다.윤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마요, 아빠.”“엄마는 나를 많이 예뻐하니까 분명 나에게 돈을 줄 거예요.”“그런데 박민호 그 멍청이는 어떻게 처리해요? 엄마가 박민호에게 돈을 줄지도 모르잖아요.”“한수민이 아픈데 박민호는 돌아오지도 않았어. 그런데 왜 그 돈을 박민호에게 주겠어? 그리고 박민호에게 주는 건 그 돈을 그냥 버리는 거나 다름없어.”윤석후 부녀는 어떻게 한수민의 비
한수민은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다음 날 아침, 윤소현은 뜻밖에도 한수민을 찾아왔다.“엄마, 몸은 좀 어떠세요?”한수민은 그녀를 보자마자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훨씬 나아졌어.”윤소현은 바로 돈을 요구할 수도 없어 한수민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오늘 날씨가 좋은데 햇볕 좀 쬐실래요?”한수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소현아, 나 사람들 춤추는 거 보고 싶어.”춤을 추는 건 한수민의 가장 큰 취미였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춤추는 걸 중단해야만 했다.“엄마, 몸이 안 좋으시잖아요. 나가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요?”윤소현은 한수민과 먼 곳을 가고 싶지 않았다. 한수민은 병 때문에 소변을 자주 봐야 했기에 혹시 무슨 사고라도 생길까 봐 두려웠다.“의사 선생님도 내가 회복이 잘 되고 있다고 했잖니? 괜찮아. 나랑 같이 가서 춤추는 걸 보자.”한수민은 기대로 가득 찬 눈빛으로 말했다.“알겠어요. 티켓 예약할 테니 저녁에 보러 가요.”윤소현은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다른 한편.박민정은 에리로부터 오랫동안 소식을 받지 못했다가 오늘 갑자기 그에게서 두 장의 뮤지컬 티켓을 받았다.에리에게서 문자가 왔다.[민정 씨, 나 빨리 돌아와서 민정 씨랑 밥 먹으려고 했는데 사장님이 더 일을 시키네. 친구한테서 티켓 두 장 받았는데 그냥 놓치기 아깝더라고. 그러니까 민정 씨가 대신 가줘.]에리는 박민정이 뮤지컬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박민정이 답장했다.[알겠어요, 고마워요.]티켓 두 장을 받은 박민정은 잠깐 고민하다가 끝내 조하랑과 같이 가기로 했다.두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같이 여유를 즐기려고 했다.오후.박민정은 준비를 하고 있었고 거실에는 유남준과 아들이 있었다.유남준은 서운한 듯이 말했다.“민정아, 왜 나랑 같이 안 가고?”“나 하랑이랑 오랜만에 만나는 거잖아요.”윤우도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엄마, 나도 엄마랑 같이 뮤지컬 보고 싶어.”“윤우야
박민정도 윤소현을 알아봤다. 윤소현은 한 무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반면 한수민은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 구석에 몰려 있었다.박민정은 잠깐 복잡한 감정을 느꼈지만 곧 시선을 돌렸다.“가자.”“그래.”다른 한편.한수민은 사람들 사이에서 불편한 자세로 서 있었다.윤소현을 불러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누군가가 그녀를 밀어 앞으로 넘어졌다.한수민은 바닥에 넘어졌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병이 발작하면서 복부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고 바닥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한수민은 윤소현을 바라봤는데 그녀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사인하고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천천히 일어나려고 했다.이때 머리 위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한 여사님, 도움이 필요하신가요?”한수민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박민정의 차가운 얼굴과 마주치자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그녀는 당장이라도 쥐구멍을 찾아 숨고 싶었다.“왜 여기 있어? 너 같은 불효자식의 도움은 필요 없어!”한수민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하고는 박민정을 쏘아봤다.“너 일부러 나 비참한 모습을 보려고 온 거지?”박민정은 코웃음을 쳤다.조하랑은 옆에서 설명했다.“여사님. 나랑 민정이는 우연히 이 뮤지컬을 보러 온 거거든요.”한수민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세상에 이런 우연이 어디 있는가?그녀는 꼴이 말이 아니었는데도 여전히 박민정을 노려보며 말했다.“거짓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박민정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친딸처럼 예뻐하시는 분은 왜 여사님이 넘어져 있는 것을 보고도 부축하지 않는 거죠?”한수민은 윤소현을 보더니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박민정을 비꼬았다.“소현이는 내가 넘어진 것을 못 본 거야. 너랑 같은 애인 줄 알아?”“소현이는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무용가라고. 하지만 너는 장애인일 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쓰레기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소현이와 비교해?”“
박민정은 어렸을 때 한수민을 위해 산 위에서 꽃을 따려고 하다가 산 밑으로 굴러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한수민은 팔짱을 끼고서 말했었다.“민정아,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배워야지. 세상의 모든 일을 남에게만 의지하면 안 돼.”박민정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한수민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을 가리켰다는 걸 말이다.박민정은 조하랑과 함께 한수민의 저주와 욕설을 뒤로 하고 떠났다.“이 못된 년. 넌 이 세상에 있을 년이 아니야...”일면식이 없는 남을 욕해도 이 정도로 욕하진 않을 것이다.조하랑은 한수민의 욕설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어떻게 자신의 딸을 죽도록 저주하는 어머니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밖으로 나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박민정은 한동안 서 있었다. 그녀는 결국 지나가던 직원에게 말했다.“안에 사람이 넘어졌어요.”한수민이 도움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박민정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조하랑은 박민정이 마음이 약한 사람인 걸 잘 알고 있어 그녀의 팔을 끌어안고는 말했다.“민정아, 너 너무 착해.”조하랑은 전에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한수민을 보니 박민정이 한수민을 도와주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 말을 들은 박민정은 이미 어두워진 밤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도 조금 어두워졌다.“하랑아, 그거 알아? 한 여사님은 항상 내가 자기 딸 같지 않다고 했어. 내가 너무 나약하다고 했지. 정말 그런가 봐.”“그 사람처럼 마음 독하게 먹지 못하겠어.”조하랑은 그녀의 팔을 더 꽉 끌어안았다.“민정아, 너무 속상해하지 마. 한 여사님도 벌을 받았잖아.”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나 괜찮아. 이미 익숙해졌어.”조하랑은 그녀와 함께 차에 탔다. 밖은 너무 추웠다.차에 올라탄 후 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민정아, 뭐 하나 물어봐도 돼?”“응.”“한 여사님이 네 친엄마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조하랑은 이 질문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세상에 자기 자식을 그렇
아직 어린아이인데 일찍 철이 든 박예찬을 보고 박민정은 고마우면서도 괜스레 마음이 아팠다.“바보야. 넌 아직 어려서 엄마 아빠가 지켜주면 돼.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먼저 우리한테 말해줘야 해, 알겠지?”박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박민정은 그에게 몇 가지 더 당부해 주고 나서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이때, 박윤우가 방안에 들어오면서 박예찬에게 다가왔다.“형은 대체 어떻게 그 나쁜 놈을 잡은 거야?”박윤우가 궁금증을 못 참고 그에게 묻자 박예찬은 간단하게 설명해 줬다.“대박!”박윤우는 손뼉까지 치며 그를 칭찬하다가 다시 물었다.“그런데 엄마와 저 쓰레기 아빠는 이제 그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 거래?”“몰라. 그런데...”박예찬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에는 그 범인이 이제 나를 해칠 마음이 없는 것 같아.”오늘 다시 만난 정호철의 눈빛은 예전처럼 살기가 돋쳐있지 않았고 오히려 정수미가 자신을 바라보던 것처럼 따듯함이 느껴졌다.“만약 그 사람이 정수미, 그 늙은 여우 쪽의 사람이라면 아마 우리를 해치지 않을 거야. 그런데 만약 윤소현 쪽의 사람이라면 말이 달라지겠지.”박윤우가 세밀하게 분석했다.“네 말이 맞아. 그러니까 우리도 경계심을 높이고 조심해야 해.”“알겠어.”말하다가 박윤우는 문득 박예찬의 컴퓨터를 보며 물었다.“형, 지금 뭐 해?”박예찬은 그제야 막고 있던 손을 걷으며 말했다.“별거 아니야. 그저 지엔 그룹의 지도를 보고 있었어.”박윤우는 컴퓨터 화면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자료를 본 순간 머리가 아파졌다.“보고 있으니 벌써 눈이 침침하네. 난 그만 노래나 들으면서 그림이나 그려야겠다.”박윤우는 자신이 잘하는 것과 못 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다.박예찬도 별말 없이 계속 자기 일을 해 나가고 있는데 유지훈이 갑자기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박예찬이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화면에는 그의 작은 얼굴이 나타났다.“예찬아, 집에서 뭐 하고 있어?”“무슨 일이야?”박예
박예찬은 최근에 계속 박씨 가문 옛 저택에서 지냈다.그는 경계심도 높고 눈치도 빨랐는데 요즘 따라 누군가가 계속 자신을 미행하는 것 같았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하여 이날 박예찬은 돌아오는 길에 정민기에게 메시지를 보낸 뒤 일부러 구석으로 들어갔다가 뒤따라오는 범인을 잡을 속셈이었다.박예찬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뒤 어느 구석에 숨었다.이때, 그의 뒤를 따르던 정호철은 앞에 길도 없고 박예찬도 보이지 않자 마음이 조급해져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어디로 갔지?”이때 눈앞에 한 무리의 사람이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그를 에워쌌다.박예찬도 쓰레기통 뒤에 숨었다가 그제야 그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당신이었군요.”그때 자신을 납치했던 사람이다.정호철은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알아챘다.정민기는 재빨리 그를 제압했고 다시 박예찬에게 다가가 걱정스레 물었다.“예찬아, 괜찮아?”박예찬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괜찮아요. 아저씨, 감사합니다.”말을 마친 뒤 손가락으로 정호철을 가리켰다.“저 사람이 그때 저를 납치했던 범인이에요.”그의 말에 정민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래. 알겠어. 바로 민정 씨랑 대표님한테 보고할게.”“네.”박예찬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정호철에게 다가가 물었다.“왜 저를 계속 미행했나요? 또 납치하려고요?”정호철은 자기 다리 길이보다도 작은 아이가 뿜어내는 카리스마에 그만 기가 눌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아니. 난 그 일에 대해 사과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는 정수미의 건강 상태가 날로 악화하고 있고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동시에 박예찬이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몰래 뒤에서 보호해 주고 있었다.그의 말에 박예찬이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사과요?”“그래.”정호철은 솔직하게 말했지만 박예찬은 쉽게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그렇게 정민기와 몇 명의 보디가드는 그를 차에 태우고 저택으로 향했다.박민정과 유남준은 집에
“전 괜찮아요.”“정말 다행이다.”정수미는 수화기에 대고 말하다가 문득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도 큰 문제가 없대. 그저 저혈당으로 쓰러진 거래.”박민정은 이 말을 왜 지금 자신에게 하는지 몰랐지만 그래도 차분하게 답해줬다.“네, 그러면 다행이네요.”“내일부터 다시 내가 아침밥 가져다줄게.”“그럴 필요 없어요.”박민정은 단번에 거절했다.또다시 자신 때문에 정수미가 쓰러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고 괜히 윤소현의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뺨 맞는 일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정수미는 그녀의 단호함에 가슴이 답답했지만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다른 일 없으면 이만 전화 끊을게요.”“잠깐만. 그러면 내가 언제든지 너 보러 가도 돼?”정수미가 다시 조심스레 물었다.“아니요.”박민정은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정수미는 한참이나 이미 끊긴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나에 대해 생각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비서가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다가 오늘 윤소현이 박민정의 뺨을 때린 일을 그녀에게 말해줬다.“뭐?”정수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에게 되물었다.“그런데 왜 안 말렸어?”“말릴 새도 없이 큰 아가씨가 먼저 손을 댔습니다.”비서는 한껏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정수미는 이대로 병원에 누워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재빨리 몸을 일으키고는 그대로 별장에 돌아갔다.윤소현은 한창 친구들을 불러 수다를 떨고 있었고 정수미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차가운 얼굴로 그녀만 밖으로 불러냈다.“엄마, 왜 벌써 퇴원하셨어요?”윤소현이 걱정하는 척 묻자 정수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누가 너한테 민정이를 때려도 된다고 했어?”순간 윤소현은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는데 분명 박민정이 그새 고자질했다고 생각했다.“엄마, 저는 단지 엄마가 너무 걱정돼서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간 거예요. 혹시 민정이가 말해줬어요? 엄마가 걱정되는 것보다 자기가 맞은 게 더 억울했나 보네요.”윤소현의 말에 정수미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박민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떴다.정수미는 윤소현더러 그녀를 잡으라고 했지만 윤소현은 그러기 싫었다.“엄마, 너무 편애가 심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몸도 안 좋은 사람이 매일 일찍 일어나 민정이네 회사 사람한테도 아침밥 해서 가져다주니까 쓰러지죠. 전 싫어요.”“소현아, 넌 모르겠지만 방금 민정이가 아니었으면 난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을 꺼야.”정수미는 정신을 잃기 전까지 자기 몸 아래에 박민정이 깔려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또한 그녀가 기꺼이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줬다는 것도 알고 있다.하여 이 일을 윤소현에게 말해줬지만 그녀는 이 말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친딸인데 당연히 그랬어야죠. 만약 똑같은 상황이었으면 저도 엄마한테 달려갔을 거예요.”정수미는 윤소현의 단호한 말에도 이상하게 믿고 싶지 않았다.“너도 그만 가봐. 혼자 좀 쉬어야겠다.”윤소현도 마침 병원에 있기 싫었던 참에 그녀는 냉큼 답했다.“네, 그럼 이만 가볼게요.”비서는 윤소현이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정수미는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신신당부했다.“사람 보내서 민정이는 괜찮은지 알아봐. 몸도 성치 않은데 괜히 나 때문에 더 나빠지면 안 되니까.”“네.”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참아왔던 말을 토해냈다.“정 대표님, 전 그래도 둘째 아가씨가 좋아요. 큰 아가씨는 그저 빈말만 하시는 것 같거든요.”박민정은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던져 정수미를 구해줬지만 윤소현은 그저 말만 하다가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갔다.정수미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그녀는 한껏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나도 알아. 민정이는 모든 면에서 소현이보다 뛰어나지만 소현이는 어렸을 때부터 내 손에서 자랐잖아. 그 애가 지금 이렇게 변한 건 내 책임도 커.”...박민정은 병실에서 나온 뒤 의사를 찾아가 간단하게 상처를 치료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진서연은 그녀를 보자 마자 냉큼 달려와 물었다.“보스, 괜찮아요?”그녀는 박민정의 몸을 이
그러자 비서가 달려와 그녀를 말렸다.“큰 아가씨, 정 대표님께서 먼저 둘째 아가씨한테 직접 요리해 주고 싶다고 했어요. 둘째 아가씨만 탓할 게 아닌 것 같습니다.”“그럼 누구를 탓해야 하는데? 거절할 줄도 몰라? 엄마는 원래부터 몸 상태가 안 좋았잖아!”윤소현은 일부러 더 크게 화를 냈다.“난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엄마한테 저런 일을 시켜본 적이 없어.”비서도 그녀가 정수미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더는 말릴 수 없었다.박민정은 그제야 자신이 맞은 이유를 알고 윤소현의 손을 놨다.“저도 말렸는데 정 대표님께서 계속 오셨어요. 그리고 방금 제가 맞은 건 그냥 넘어가겠지만 다음번에는 참지 않을 겁니다.”윤소현은 날카로운 그녀의 눈빛에 살짝 겁을 먹었다.하여 더 때리는 건 무리인 것 같아 수술실 문을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엄마, 제발 일어나요. 이대로 가면 저는 어떡해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정수미가 빨리 죽기를 바라고 있다.그리고 며칠 전에 윤소현은 이미 유언장에도 손을 댔기에 정수미가 죽고 장 변호사까지 처리하기만 하면 장씨 가문의 모든 재산은 다 그녀의 것으로 된다.그러나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다.한 시간 뒤, 수술실의 문이 열리면서 의사가 걸어 나오자 윤소현이 빠르게 달려가 물었다.“의사 선생님, 저희 엄마는 괜찮나요?”의사가 대답 대신 깊은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고 윤소현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간신히 참았다.그러다가 의사가 겨우 입을 뗐다.“지금은 맥박이 돌아왔지만 환자분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혹시 예전에 큰 병을 앓았었나요?”의사의 말에 윤소현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다행히 모두가 지금 정수미한테에 집중되어 있어 그녀의 표정 변화는 보지 못했다.박민정은 정수미가 살았다는 소식에 그제야 마음이 살짝 놓이는 것 같았다.비서는 의사에게 정수미가 지금까지 앓던 병을 모두 알려줬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수미는 수술실에서 밀려 나왔는데 문 어구에서 두
다만 정수미는 최근에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오전 10시가 넘으니 그녀는 더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소파에 누워 잠깐 눈을 붙였다.“혹시 저희한테 매일 음식을 가져다주랴, 회사도 관리하랴, 그러면서 몸이 힘들어진 게 아닐까요?”진서연이 걱정스레 물었다.박민정도 마침 걱정되었던 일이라 정수미가 깨나자마자 그녀에게 말했다.“정 대표님, 이제 매일 오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끼리 밥 먹을 수 있잖아요.”그녀의 말에 정수미의 얼굴은 순간 어두워졌다.“민정아, 혹시 내가 뭘 잘못했어?”그러자 박민정은 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단지...”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망설이던 찰나에 진서연이 먼저 말했다.“어떤 마음으로 저희한테 매일 음식을 가져다주는지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마음만 받을게요. 정 대표님께서 하루가 다르게 안색이 안 좋아지는 걸 보면 분명 많이 피곤할 텐데 돌아가서 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거든요.”진서연의 말에 정수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전 괜찮아요. 몸은 안 힘든데 아마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봐요.”“안 돼요.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일부러 단호하게 말했다.그러자 정수미는 한껏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민정아...”“그만 돌아가서 쉬어요.”아무리 정수미가 자기 친어머니가 아니더라도 노인이 쉬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해서 매일 배달해 주는 모습을 더는 원치 않았다.정수미는 그녀의 단호한 말투에도 자신에 대한 걱정이 담겨있는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래. 그러면 오늘에는 일단 돌아가서 쉬겠는데 괜찮아지면 꼭 다시 올 거야.”말을 마친 뒤 가려고 일어섰는데 몇 걸음 못 가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면서 앞으로 몸이 쏠리게 되었다.깜짝 놀란 박민정은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달려갔고 정수미는 다행히 박민정의 몸 위로 떨어지면서 두 사람이 같이 바닥에 쓰러지게 되었다.진서연이 빠르게
정수미는 자신에게 직접 가져다준 우유 한 잔을 보더니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우리 딸, 고마워.”말을 마친 뒤 그녀는 단번에 우유를 다 마셔버렸다.윤소현은 그 모습을 차가운 얼굴로 지켜보다가 컵을 건네받고는 깨끗이 씻어놓았다.“엄마, 제가 재료 손질하는 거라도 도와줄까요?”마침 혼자 하기에는 양이 많다고 생각했던 정수미는 선뜻 그러라고 했다.“그래 주면 고맙지.”말을 마친 뒤 그녀는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는 것 같아 소파에 앉아 쉬게 되었다.이상하게 최근부터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았고 시도 때도 없이 졸렸다.윤소현은 그녀가 주방에서 나가자마자 대충 정리해 주는 척하다가 결국에는 도우미에게 맡겼다.한밤중이 되어서야 정수미는 갑자기 잠에서 깼는데 무심결에 자기 코가 축축해져 있는 걸 발견했다.이때 도우미가 급히 다가오더니 그녀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소리쳤다.“사모님, 코피 나요!”정수미는 티슈 한 장을 뽑아 닦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괜찮아.”그러다가 살짝 피곤한 얼굴로 주방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재료들은 다 정리되었어?”도우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큰 아가씨가 아주 깔끔하게 정리하셨어요.”이 말은 윤소현이 시켰다.그러나 정수미는 도우미의 말에 깊이 감동했다.“내가 민정이한테 진 빚을 소현이한테 떠넘기면 안 되는데.”그리고 갑자기 기침하기 시작했다.이대로는 절대로 잘 수 없을 것 같아 아예 일어나서 아침밥을 만들기 시작했다.그리고 오늘에는 특별히 윤소현에게 전복죽을 끓여줬으나 그녀는 깨나자마자 죽을 보고 차갑게 한마디 했다.“식어서 안 먹을래.”그리고 도우미더러 몽땅 버리라고 했다....정수미는 오늘 아침밥을 많이 해뒀기에 두 어린이에게도 도시락을 하나씩 가져다줬다.“고맙습니다. 그런데 전 필요 없어요.”박예찬은 공손하게 인사라도 했지만 박윤우는 한껏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런 쓰레기 같은 음식은 안 먹을래요.”정수미는 너무 속상했지만 그래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
박민정은 자기 그릇에 가지런히 담긴 하트 모양의 계란 후라이를 보고 마치 바늘로 심장을 찌르듯 아파져 왔다.자신도 예전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음식을 차려줬던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한수민이었다.그러나 매번 돌아온 건 차가운 말들뿐이었다.“겨우 계란 하나로 참 별짓도 많이 하네. 그리고 넌 박씨 가문의 큰딸이지 도우미가 아니야. 창피해 죽겠네.”그 후로부터 박민정은 자신의 노력을 몰라주는 일은 일절 하지 않았다.하여 자신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정수미를 보고 있자니 또다시 그때의 일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심란해졌다.“민정아, 왜 안 먹어? 맛없어? 네가 먹고 싶은 음식을 나한테 알려주면 내가 배워볼게.”정수미는 한껏 다정하게 말했다.그 모습에 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먹을게요.”거액의 자산과 정수미가 직접 한 음식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그녀는 당연히 덜 부담스러운 음식을 선택할 것이다. 또한 처음으로 엄마의 사랑이 뭔지 느낄 수 있었다.박민정이 말없이 자신이 한 요리를 먹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정수미는 그제야 젓가락을 들고 같이 먹기 시작했다.그렇게 박민정은 자기 밥을 깨끗이 비웠다.“더 먹지 않을래? 여기 더 있어.”정수미는 그릇에 남은 음식을 그녀 쪽으로 밀어주며 말했다.박민정은 이미 배불렀지만 성의를 봐서 몇 젓가락 더 먹은 뒤 답했다.“배불러요.”오늘 정수미는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도 좋은 것 같았다.하여 활짝 웃으며 그들에게 물었다.“내일에는 뭐 해줄까요? 메뉴를 말해주면 제가 배워볼게요.”진서연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빠르게 답했다. “전 닭강정이랑 탕수육 먹고 싶어요!”민수아도 뒤질세라 그녀에게 말했다.“저는 게 요리 먹고 싶어요. 어떻게 해주셔도 다 좋아요.”매일 먹는 배달 음식은 진작에 질려버렸다.정수미의 요리 실력은 거의 호텔 셰프급이였는데 맛있는 건 물론이고 건강하게 느껴졌다.두 사람의 대답을 듣고 정수미는 신나
박민정이 사라졌을 무렵 유남준은 정수미와의 모든 협력을 거절했는데 이는 오로지 박민정에게 자신이 화났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하여 처음에 박민정이 찾아와서 자신이 친딸이란 사실을 확인해 줬을 때까지도 정수미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엄마의 사랑을 돌려주려고 하니 유남준이 분명 기회를 줄 것 같지 않았다.그런데도 정수미는 갖은 방법을 이용해서 PMJ 그룹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상업적 위험을 제거해 주려 했다.오늘 유남준이 없으니 진서연은 어쩔 수 없이 박민정더러 가보라고 했다.회의실 안.정수미는 떨리는 마음으로 박민정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민정아.”“정 대표님, 안녕하세요.”자신보다 한껏 덤덤한 얼굴의 박민정을 보고 정수미는 살짝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자를 당겨주며 앉으라고 했다.“민정아, 나 PMJ 그룹에 투자하고 싶어.”박민정은 아직 회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다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되자 이따 저녁에 유남준의 견해는 어떤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그러자 정수미가 재빨리 필기하고 있는 그녀를 말렸다.“적을 필요 없어.”“무슨 뜻이에요?”박민정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에게 되묻자 정수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손에 지금 적지 않은 자금이 있는데 다 너한테 줄게.”그녀의 말에 박민정은 재빨리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답했다.“괜찮습니다.”“그리 급하게 거절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정수미는 점점 마음이 조급해졌고 또 자기도 모르게 박민정을 화나게 할까 봐 매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나도 지금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고 지난번에는 내가 말실수했어. 나도 네가 내 돈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걸 잘 알아.”이 사실을 진작에 알아야 했다. 만약 박민정이 진짜 돈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박씨 가문의 재산을 전부 남동생 박민호에게 넘겨주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박민정은 다시 단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