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인 수가 억 단위가 된 것은 물론 선물공세도 160억이 넘었다.한 라이브에 물건을 팔지 않고도 160억의 수입이 생겼다.박예찬은 인사말을 하고는 라이브를 껐내렸다.김인우는 아직도 자신이 뉴스에 오른 것을 모르고 있었고 라이브에 나온 것도 몰랐다.그리고 스마트 워치멀티시계를 만지작거리는놀고 있는 박예찬에게 말했다.“전자제품 적당히 해놀아야지. 많이 하놀면 눈에 안 좋아.”“네.”박예찬은 스마트 워치멀티시계를 껐다.김인우는 이 개구쟁이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을 잘 듣는지 이상했다.집에 도착하여 조하랑이 물었다.“예찬이 괜찮아?”박예찬이 고개를 저었다.김인우가 물었다.“일이 있었던 걸 어떻게 알아?”“라이브로 나왔으니까요. 모르고 있었어요? 실시간 검색 순위에도 올랐는데.”조하랑이 말하고는 김인우에게 보여줬다.김인우가 핸드폰을 보니 왜 박예찬이 말을 들었는지 알았다.“너 이 녀석.”박예찬을 찾으려 하니 이미 방에 돌아가 문을 잠갔다.조하랑은 인제야 김인우가 이 일을 몰랐다는 것을 알았다.“됐어요. 예찬이도 그 부부의 진실한 모습을 밝히려고 한 거일 뿐인데요. 쪼잔하게 화내진 말고요.”김인우가 가방을 조하랑에게 넘겨줬다.조하랑은 한눈에 박민정이 자신에게 주겠다고 했던 가방임을 알아봤다. 아주 좋아했다.조하랑은 가방에 뽀뽀했다.김인우는 질색하며 말했다.“그냥 가방일 뿐이잖아. 그렇게 기뻐할 일이야?”“모르면 입 다물고 있어요.”조하랑이 김인우를 째려보고는 방으로 돌아가 김인우 홀로 거실에 남았다.김인우는 병원으로 갔다.…...다른 한편, 두원으로 돌아가는 길.유남준이 박민정에게 물었다.“예찬이 한테 일이 생겼는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나도 도착한 후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게 된 거예요.”유남준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별장에 도착한 후, 박민정이 먼저 차에서 내린 후 유남준은 전화를 걸어쳐 물었다.“다 처리했어?”“대표님, 이번에 작은 도련님께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라이브로 퍼져 방우석은
“그럼 내가 나중에 물어봐 줄까?”박민정은 장난치듯 말했다.“좋아. 나는 민기 씨가 우리와 함께 라이브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 계정의 이름을 ‘예찬의 예쁜 이모’로 바꿀 생각이야.”전에 계정 이름을 ‘예찬이 엄마’로 설정했던 건 주로 박민정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였지만 이젠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 박예찬의 엄마가 라이브에서 얼굴을 비춘 이상, 조하랑은 이제 이 이모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박예찬도 동의했다. 어차피 박예찬의 이 계정은 일 없는 이모를 위해 만들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민기 씨는 무조건 동의하지 않을 거야.”박민정은 정민기한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래.”조하랑은 조금 서운해하며 또 물었다.“민정아, 우리가 너 몰래 계정 만든 것에 대해 기분 나쁜 건 아니지?”“당연히 괜찮지. 그런데 너희 인터넷 방송하면서 꼭 안전에 주의해야 해. 개인 정보 같은 거 많이 노출하지 마.”박민정은 아이들과 친구의 발전을 가로막지 않는다. 그녀는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해 자기가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조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조하랑과 전화를 끊은 박민정은 박윤우가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 유남준이 들어왔을 때 그에게 물었다.“윤우네 학교에 학부모 단톡방이 있나요?”“다희한테 물어볼게.”“알겠어요.”유남준이 전화를 걸어 물어본 지 얼마 안 되어 누군가가 박민정을 학부모 단톡방에 초대했다.이 반에는 아직 학부모 위원회의 단톡방이 따로 없었다.선생님이 찍어 보내 주신 박윤우의 학교생활 동영상을 보니, 박민정은 자기 아들이 학교에서 인기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윤우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윤우는 오자마자 저희 반 여자아이들과 전부 다 친해졌어요.”중점은 여자아이들이었다...박민정은 조금 걱정하며 물었다.“그럼, 남자아이들은 어떤가요?”“남자아이들도 윤우를 아주 좋아해요.”이 얘기를 듣고 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모니터를 좀 더 보고서야 박민정은 남자아이
유남준은 더 이상 박민정과 냉전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을 이렇게 오랫동안 속여온 것이 내키지 않았다.“그럴 거라면? 겁나?”유남준이 물었다.유남준이 이렇게 물어볼 걸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박민정은 멍해 있었다.예전의 성격대로라면 유남준은 보통 이렇게 묻고 나면은 무조건 행동을 취했다.박민정은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만약 내가 무섭다고 말하면 남준 씨는 그냥 넘어가 줄 거예요?”유남준은 박민정의 팔을 꽉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런 침묵은 박민정을 저도 모르게 당황하게 했다.결국, 유남준은 박민정을 놓아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체구가 큰 그는 박민정 앞의 빛을 거의 절반이나 가렸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지만 유남준이 지금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분명 보지 못하는데도 이렇게 얄미울 수가.’박민정은 눈시울을 살짝 붉히며 유남준이 가려는 걸 보고 의자 하나를 들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유남준은 부딪힐 수밖에 없었으며 눈살을 찌푸렸다.“민정아!”“남준 씨가 먼저 저랑 결판을 내리려고 했어요. 저는 그저 미리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거예요.”이렇게 말하고는 박민정은 유남준에게 경고했다.“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당신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한다면 난 더 이상 예전처럼 양보하지 않을 거예요.”박민정은 말하면 꼭 말한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유남준은 웃음이 나기도 하면서 화가 나기도 했다. 유남준은 진짜 박민정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다면 진작에 하고도 남았다.하루 종일 박민정은 유남준이 정말 자신을 상대할까 봐 저도 모르게 걱정했다.비록 유남준은 지금 앞이 보이지 않지만, 저번에 블랙 카드를 꺼낼 수 있는 것을 보아하니 박민정은 유남준이 아직도 자기한테 많은 일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저녁때 박윤우가 집에 돌아온 후, 박민정은 그를 따로 방에 데려가서 물었다.“우리 윤우 저번에 아빠 화사에 가 본 적 있지?”박윤우는 엄마가 왜 갑자기 아빠 회사에 관해 물어보는지 의문스러웠다.‘설마 아빠가 돈도 있고
메시지를 보내 놓고서 최현아는 두 엄마를 차단했다. 최현아는 가루를 다 빻고 나서 당나귀를 죽이는 일을 유난히 잘했다.그러나 최현아는 두 엄마가 아직도 학부모 위원회 단톡방에 있다는 걸 까먹고 있었다.저녁 10시, 박민정은 핸드폰이 계속 울려 이 시간에 누가 메시지를 보내는지 의아해하면서 핸드폰을 열어보자, 단톡방에 메시지가 폭발한 걸 보았다.방하민 엄마는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다들 사람을 꼭 잘 보세요. 절대로 예찬이 어머님을 내쫓으면 잘 대해주겠다는 최현아의 빈말을 믿지 마세요.][지금 문제가 생기니까 최현아는 우리를 바보라고 욕하면서 스스로 책임지라고만 하잖아요.][애초에 분명히 문제가 생겨도 자기가 힘써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성훈 엄마도 단톡방에 이렇게 올렸다.[최현아, 이 가증스러운 여자야, 난 너 때문에 남편한테서 버림받았어!]박민정은 메시지를 대충 읽어보니 다들 최현아를 욕하는 메시지들이었다.아마도 최현아는 지금 다른 일이 있어서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아 아직 두 사람을 단톡방에서 내쫓지 않은 모양이었다.다른 엄마들도 전부 구경만 할 뿐 누구도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고 그저 못 본 척했다.지금 성훈 엄마와 방하민 엄마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 두려워할 것이 없어 각종 욕설을 퍼부었다.최현아가 메시지를 확인했을 때 단톡방의 욕설은 이미 99개를 넘었다.최현아는 화가 났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두 여자를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그저 단톡방에서 내쫓았다. 그러나 쏟아진 물은 퍼 담을 수 없듯 그들이 올린 욕설 메시지는 이미 취소할 수 없었다.최현아가 아무리 내키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할 수밖에 없었다.지원 엄마는 이 기회를 잡아 아부하듯 이모티콘을 여러 개 보내고는 재빨리 사과를 올렸다.[죄송해요. 우리 아이가 실수로 누른 모양이에요.]사실 지원 엄마처럼 눈치가 빠른 사람은 사회생활이 나쁘지 않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녀는 양쪽 모두에게 잘 보이기 좋아했다.박민정은 이번 일로 대다수 엄마가 최현
박민정은 먼저 정리하고 아침을 먹고 나서 다시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박민정은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유남준이 오늘도 출근하지 않고 거실에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아래층으로 걸어 내려가며 물었다.“오늘도 출근 안 해요?”“어.”유남준은 이미 회사의 대부분 업무를 잘 안배해 놓았기에 딱히 처리할 일이 없었다.박민정은 마음속으로 역시 회사가 너무 작아서 할 일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 놓고 날 협박하다니...’박민정은 주방에 가서 아침을 대충 때우려다가 식탁에 가득 차려진 영양 식단을 보고 역시 집에 요리사와 도우미가 있는 게 뭘 하든 편리하다는 걸 느꼈다.박민정은 지금 식탐이 늘어나 한꺼번에 2인분을 먹을 수 있었다.아침을 거의 다 먹은 후 박민정이 조금 볼록해진 배를 잡고부추기며 일어나서 치우려고 할 때, 유남준이 주방으로 걸어 들어왔다.“가서 쉬어. 좀 있다가 알바시간제 도우미가 와서 치울 거야.”“괜찮아요. 저도 좀 움직여야죠.”“움직이고 싶으면 나가서 산책이나 하고 산책하는 김에 의사 선생님도 만나보고 와.”유남준이 말했다.의사를 만나라는 말을 듣자, 박민정은 저도 모르게 걱정이 들었다.“의사 선생님을 왜 만나요?”“당연히 산전 검사를 받는 거지. 아니면 할 게 뭐 더 있어?”유남준은 요즘 박민정이 점점 많이 먹는 걸 느꼈고 서다희도 유남준한테 박민정의 배가 조금 나올라온 게 보인다고 말했다.박민정은 앉아서 곡을 쓰지 않으면 유치원에 가서 각종 잡일을 처리하기만 했지, 자기 몸을 정기적으로 검사받을 줄은 몰랐다.“필요 없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한 달에 한 번 검사받으면 된다고 했어요. 아직 검사받을 시간이 안 됐어요.”박민정은 병원이라는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그냥 가보기만 하자.”유남준이 덧붙여 말하자 박민정은 지금 그의 행동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분명히 어제만 해도 나를 위협하던 사람이 오늘에는 또 나와 함께 산전 검사를 받으러 가겠다고 하네.’“싫어요.”박민정은 가기 싫었다. 그냥
유남우와 약혼을 한 이후 윤소현은 더 이상 결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형 입에서 결혼 두 글자를 들은 유남우는 자기도 모르게 박민정한테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얼굴색이 태연한 박민정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래. 그건 내가 알아서 잘할게.”이렇게 얘기한 후 유남우는 윤소현이 껴안은 팔짱을 뿌리쳤다.“형, 임신 검사받으러 가 봐. 우리도 이만 갈게.”유남우가 떠나고서야 박민정은 정신을 차렸다.유남준은 박민정의 손을 꼭 잡은 채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속상해?”박민정은 조금 어리둥절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박민정은 그제야 유남준이 언제 자신의 손을 잡았으며 그것도 아주 꽉 잡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남준 씨 손 놔요.”유남준은 손을 놓지 않았다.“벌써 화 난 거야?”박민정은 고개를 숙여 유남준의 손을 물었다.유남준은 진작에 익숙해져서 여전히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을 지나다니던 의사와 환자들이 그들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박민정은 몹시 난처해하며 입을 떼고 똑바로 섰다.사실 박민정이 넋을 놓았던 건 속상해서가 아니라 믿어지지 않아서였다.왜냐하면 얼마 전까지 만해도 유남우는 박민정한테 다시 예전처럼 함께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근데 지금은 윤소현과 결혼하지도 않았는데 아이까지 생겼다.그러고 보니 아무리 사랑을 논한다 해도 사실상 다들 엄청 현실적이었다.“난 그저 두 사람한테 이렇게 빨리 아이가 생긴 게 놀라웠던 거지 다른 생각은 하나도 없어요.”박민정은 손을 뿌리쳐 보았지만, 여전히 손을 빼내지 못했다.‘남준 씨는 도대체 뭐로 만들어진 거지, 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거지?’유남준은 박민정의 변명을 믿지 않았지만, 더 묻지도 않았다. 더 캐묻다가 박민정이 화낼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박민정을 검사실에 들여보낸 후 유남준은 밖에서 기다렸다.병원 문 앞, 윤소현과 유남우 두 사람이 차에 탄 후 윤소현은 머리를 숙인 채 말했다.“남우 씨, 도와줘서 고마워요.”윤소현 배 속의 아이는
유남준은 길을 잘 알고 있지만 눈이 안 보여서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사람을 부딪치기 일쑤였다. 길을 더듬으면서 다니기도 싫어하는데 맹인 안내봉을 들고 다닐 리가 없었다.병원문 앞에 차가 많이 놓여있어서 기사님은 차를 겨우 길옆에 세웠다. 유남준은 한참 서서 차가 오길 기다렸다.유남준은 한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바로 밖에서 박민정 또는 임산부를 화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사님은 박민정이 시력을 잃은 유남준을 밖에 혼자 내버려 둘 줄 몰랐다. 그도 처음 유남준이 그렇게 불쌍하게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쩔뻔했냐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대표님, 괜찮으세요?”기사님은 빠른 걸음으로 유남준을 데리러 갔다.유남준은 오래 기다려서 살짝 지친 듯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다음부터는 일찍 좀 다녀.”“죄송합니다, 대표님… 차를 길옆에 세우기 어려워서…”유남준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기사님은 한숨을 돌리고 유남준을 데리고 차 쪽으로 길을 안내했다.두 사람이 도착해보니 길옆에 세워져 있던 차가 사라졌다. 기사님은 금방 바닥에 있는 벌금 딱지를 봤다. 그리고 옆에 있던 차주들이 투덜대며 말했다.“요금 내려고 잠깐 세웠는데 차가 견인되었네. 에잇, 진작 알았으면 안 세웠지.”기사님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유남준한테 이 사실을 알려줬다.“대표님… 차가 견인됐답니다…”유남준은 얼굴빛이 어두워졌다.기사님은 해고될 각오를 했지만 생각 밖으로 유남준은 덤덤하게 택시를 부르라고 말했다.기사님은 놀란 듯 말했다.“예?”유남준이 말했다.“택시 부를 줄 몰라?”유남준은 택시를 부를 줄 모른다. 박민정이 전에 택시를 탄다고 말한 것을 들어본 게 전부였다. 그래서 한번 타보려고 했다.유남준의 말에 기사님은 한시름 놓고 마음속으로 유남준이 이젠 사람도 챙길 줄 아나 싶었다.박민정은 유남준이 택시를 타고 올 줄 몰랐다. 그녀는 사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밖에서 꽃에 물을 주고 있을
기사님이 불편한 마음으로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박민정은 오늘 자기가 너무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도 안 보이는데 그렇게 혼자 내버려 뒀으니 미안할 법도 하다.박민정은 꽃에 물을 주고 있다가 거실로 들어갔다. 유남준은 소파에 앉아서 눈 붙이고 있었다. 그는 박민정한테 마음의 상처를 받았는지 뾰로통해 있는 느낌이 들었다.박민정이 유남준 쪽으로 걸어가면서 무언가 말하려고 했을 때 유남준 앞에 놓여있는 문서들을 보았다. 전부 다 바움 그룹의 재정에 관한 것들이었다.박민정이 놀라서 넋 놓고 있을 때 유남준은 눈을 감은 채 숨죽이며 말했다.“민정아, 네가 달라고 했던 물건들 여기 다 있어. 빠진 부분이 있는지 한번 검사해 봐.”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문서들을 보면서 기사님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제야 유남준을 혼자 병원문 밖에서 반 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해졌다.“저기… 남준 씨, 미안해요…”유남준은 박민정이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것 때문에 미안하다고 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박민정은 생각지 못한 말을 했다.“남준 씨를 병원 문 앞에 혼자 내버려 두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앞으로 조심할게요. 미안해요.”유남준은 그 말을 묵묵히 듣고 나서 기분이 조금 풀렸다.“응, 괜찮아.”대표로 오랜 기간 일해서인지, 남의 사과를 받는 것조차도 직원들한테 임무를 나눠주는 상사 같은 태도였다. 박민정은 상위에 놓여있던 문서를 들고 말했다.“이 문서도 있네요, 고마워요.”그녀는 못 참겠다는 듯 이내 문서를 펼쳐보았다.박민정은 유남준이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을 줄 몰랐다. 유남준은 바움 그룹을 철저하게 조사했고 바움 그룹 내부에서 벌어진 재산 이동에 관한 증거들을 모조리 찾아냈다. 이 증거들은 박민정이 재판을 치를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박민정은 이 자료들을 사진 찍어서 장명철 변호사한테 보냈다. 먼저 보고 쓸모 있는 부분을 찾게 하기 위해서였다. 장명철은 효율이 높아서 한 시간 후 모든 유용한 증거들을 박민정한테 알
조하랑은 요즘 집에서 태교에만 전념하고 있었다.그녀는 요 며칠 김인우가 어쩐 일인지 늦게야 귀가하는 게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가 어디를 다녀오는 건지 궁금해져 하녀에게 슬쩍 물었지만 하녀는 말끝을 흐릴 뿐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그걸 본 김훈은 손자를 거론하며 말했다.“하랑아, 인우는 네 남편이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갈 거냐? 궁금하면 직접 전화해서 확인해. 딱 잡아봐야 정신 차리지.”그리고는 단단히 이죽였다.“만약 귀찮다느니, 피하려 든다느니 하면 내게 말해. 그놈 등짝 몇 대는 내가 책임진다.”조하랑은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거나 집착하듯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임신한 이후로는 자꾸만 불안해졌다.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그가 밖에서 사고를 당하진 않을까, 예상치 못한 위험에 휘말리진 않을까 하고.아무래도 몸 안에 김인우의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걱정도 따라온 모양이었다.“...알겠어요.”조하랑은 김훈이 자신 편을 들어준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한 듯 더는 망설이지 않고 김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김인우는 아직 클럽을 떠나지도 않은 상태였다.“하랑 씨, 무슨 일이에요?”전화가 오자 그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다정하게 받았다.“지금 어디예요?”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김인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녀가 괜한 오해를 할까 싶어 거짓말을 꺼냈다.“아, 지금? 돌아가는 길이죠.”돌아가는 길이라고?그런데 조하랑의 귀에는 전화기 너머로 분명 남녀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누가 들어도 외부 소음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였다.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정말이에요?”“당연하죠. 내가 왜 하랑 씨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김인우는 그녀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필 그때, 뒤편에서 이지원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오빠,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오빠?그 말을 듣자마자 김인우는 재빨리 경호원에게 시
바로 그때였다.차가운 눈빛 하나가 이지원을 향해 날카롭게 꽂혔다.이지원도 그 시선을 느꼈고 본능적으로 그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짙은 먹빛처럼 어두운 김인우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오늘 김인우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바이어 몇 명을 데리고 식사를 하러 온 참이었다. 그런데 그가 본 것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이지원의 처참한 몰골이었다.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냉담했다.하지만 이지원은 그 눈빛마저도 한 줄기 희망처럼 여긴 듯 허겁지겁 바닥에서 일어나 울먹이며 소리쳤다.“인우 오빠! 오빠!”그녀는 그에게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김인우의 곁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즉시 그녀를 막아섰다.이지원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오빠, 제발... 날 좀 살려줘요. 나 좀 살려줘...”김인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이때 곁에 있던 바이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이사님, 혹시 아는 분입니까?”김인우는 천천히 시선을 거두며 냉정히 답했다.“제가 어떻게 저런 여자를 알겠습니까.”“그렇죠, 그렇죠.”바이어는 머쓱한 듯 웃으며 연신 사과했다.“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네요. 딱 봐도 저런 여자는 별로 좋은 사람 같지가 않더군요. 아마 이사님께 잘 보이려고 들러붙은 거겠죠.”진주시에서 김인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바이어는 이지원에게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며 옆의 경호원에게 명령했다.“저 미친 여자 좀 치워. 여기서 체면 깎지 말고.”“네, 알겠습니다.”경호원들은 말도 없이 이지원을 들쳐 업듯 끌어내어 도로가 쪽으로 내던졌다.끌려가면서도 이지원은 계속해서 외쳤다.“오빠, 왜 그래... 왜 나를 모른 척해?”“놔, 이 사람들아! 인우 오빠는 내 친구야! 그 사람이 이 일 알면 절대 너희들 가만 안 둘 거야!”그녀는 말끝마다 이를 악물며 말했다.지금의 이지원은 확실히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그녀는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과거의 자신이 잘나가던 시절의 기억 뿐이었고 김인우와
“민정 씨,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제발 나 좀 도와줘요.”이지원은 박민정의 손을 덥석 붙잡고 애원했는데 눈빛엔 간절함이 가득했다.“이제는 정말 부탁할 사람이 민정 씨밖에 없어요. 내가 한창 잘 나갈 때 일도 너무 많이 벌였고 지금은 완전히 매장돼서 진 빚이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만큼이에요.”박민정은 조용히, 그러나 아주 냉정하게 그녀를 바라봤다.“왜 내가 당신을 위해 돈을 갚아줄 거라 생각하죠?”이지원은 순간 멍해졌다.요즘 들어 그녀는 자꾸 옛날 꿈을 꾼다. 박민정과 친구로 지내며 가까웠던 그 시절, 박민정은 늘 그녀를 감싸고 누가 괴롭히려 하면 앞장서서 막아줬고 어떤 일이든 조건 없이 도와줬다.그뿐만이 아니었다. 박민정의 아버지 역시 그녀를 친딸처럼 잘해줬고 학비도 지원해주며 박민정과 같은 학교를 다니게 해줬다.가끔 꿈에서 깨면 지금의 현실이 너무 낯설어 스스로가 믿기지 않을 때도 있었다.“민정아, 나 정말 후회하고 있어. 너한테 그런 짓을 한 내가 미쳤었어, 정말이야...”이지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박민정은 아무런 감정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손을 그녀의 손에서 빼냈다.“이지원,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이지원이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자 박민정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네가 지금처럼 망가지지 않았다면 넌 후회했을까?”이지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생각해봐. 네가 아직도 잘나가는 톱스타였다면, 남준 씨랑 인우 씨가 아직도 진실을 모른 채 널 감싸고 있었다면 넌 지금처럼 후회하며 내 앞에 이렇게 무릎을 꿇었을까?”박민정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이지원은 아마 자신을 더 깊이 짓밟고 더 높은 곳에서 비웃었을 것이다.이지원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입술만 달싹였다.박민정의 눈은 깊고도 고요했는데 마치 파동조차 없는 죽은 물처럼 어떤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예전엔 널 정말 내 가장 소중한 친구라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사람을 잘못 봤더라. 이젠 너에게 어
윤소현의 일이 터지자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그중에는 한동안 집에 틀어박혀 지내던 이지원도 있었다.요즘 이지원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빚쟁이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와중에 박민정과 유남준이 자신을 찾아올까 봐 늘 초조한 심정으로 지내고 있었다.하지만 이지원은 몰랐다.그 불안감 자체가 박민정이 의도한 것이란 걸.박민정은 윤소현의 문제를 매듭짓자마자 곧장 정민기에게 물었다.“요즘 이지원은 어떻게 지내요?”정민기는 그녀가 어느 허름한 월셋집에 숨어 살며 배달이나 택배를 받을 때만 문을 열고 그 외엔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그 말을 들은 박민정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아하니 아직도 제정신으로 살고는 있나 보네요.”이지원은 자신뿐만 아니라 조하랑까지 위기에 몰아넣을 뻔했다. 그런 그녀를 그냥 둘 수 없었다.“이젠 그 평온한 삶에도 금이 좀 가야겠죠.”박민정은 조용히 말했다.정민기는 그 말뜻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지시를 내렸다....그날도 이지원은 언제나처럼 문 앞에 도착한 택배를 가지러 나섰다. 하지만 그 순간, 서너 명의 남자들이 그녀를 둘러쌌다.그중 선두에 선 남자가 비웃듯 말했다.“우리 대스타님, 어디 가시나?”이지원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아무 데도 안 가요. 정말이에요.”“그래서 돈은 언제 갚을 건데? 당신 같은 사람 믿고 우리 사장님이 그 딜 들어갔다가 결국 손해만 봤잖아. 안 그래?”남자는 거칠게 그녀의 팔을 움켜잡았다.“제발요. 진짜 돈이 없어요... 제발 한번만 봐주세요…”이지원은 애걸했다.“돈이 없으면 일이라도 해야지, 그렇게 방구석에 처박혀서 빚만 미루고 있으면 되겠어?”사방을 둘러싼 이들은 이지원을 완전히 포위했다.이지원은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지만 몸을 뺄 수가 없었다. 결국 일해서 갚겠다는 조건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이미 업계에서 퇴출당한 몸, 일자리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결국, 이지원은 다시 ‘제우스 클럽’으로 돌아왔다.예전에 그녀는 정
이미 손연서의 번호는 더는 연결되지 않았다.오준수가 다급하게 물었다.“어때요? 뭐래요?”차현영의 눈빛에는 짙은 분노가 어려 있었다.“손연서 저년은 아예 우리랑 인연을 끊고 살 작정이야.”그 말을 들은 옆자리의 오성훈이 발끈했다.“아빠, 할머니! 나 집에 갈래요! 나 비행기 갖고 놀고 싶단 말이에요! 도대체 언제 집에 가요?”오준수는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조용히 해! 지금 집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몰라?”하지만 오성훈은 그런 사정쯤엔 관심이 없었다.“나 금희 아줌마가 만든 대추떡 먹고 싶어요! 아줌마 불러와요! 당장!”허금희는 오씨 가문이 파산한 이후, 오준수가 내쫓아버린 가사도우미였다.차현영은 손자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렸다.“그래그래, 우리 착한 성훈이. 조금만 있으면 아줌마 다시 부를게. 그때 대추떡 많이 해달라 하자, 응?”“싫어요! 지금 당장 먹고 싶단 말이에요! 지금!”오성훈은 철없이 키워진 탓에 떼를 쓰기 시작했다.“먹을 거, 먹을 거! 입만 열면 먹을 거냐? 계속 이러면 진짜 혼난다?”오준수는 참다못해 고함을 질렀다.태어나서 처음 아버지에게 소리를 들은 오성훈은 놀란 눈으로 울음을 멈췄지만 그 잠깐의 정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내 방 안은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 찼고, 그 어떤 달램도 통하지 않았다.그렇게 오씨 가문 식구들 모두는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하지만 채권자들은 이들의 사정을 봐줄 만큼 착하지 않았다.그 다음 날 아침, 오씨 가문의 저택이 압류되었다.오준수는 하룻밤 새 작은 사업가에서 무일푼의 노숙자가 되었고 차현영은 분노와 스트레스로 결국 병이 나 병원에 입원했다.그리고 오성훈은 계속 울기만 하며 ‘집에 갈래’를 외쳤다.“연서 엄마 불러줘요. 연서 엄마 보고 싶어요!”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손연서가 곁에 있을 때 자신이 얼마나 좋은 대접을 받았는지를. 하지만 모든 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손연서는 부하에게서 이 소식을 전해 듣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그들이 과거 자신에게
손연서가 전화를 끊고 막 눈을 붙이려던 참에 또다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화면을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조금 의아한 마음에 전화를 받자 익숙하면서도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손연서? 연서 맞니?”차현영이었다.예전, 오준수가 그녀와 이혼한 직후 차현영은 그녀의 연락처를 아예 차단했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사람의 전화기를 빌려 걸고 있었다.바로 옆엔 오준수가 서 있었다. 손연서가 전화를 곧장 끊을까 염려해, 그나마 그녀와 연락이 닿을 가능성이 있는 차현영이 전화를 맡은 것이다.손연서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저 맞아요.”“아이고, 다행이다. 드디어 네 목소리를 듣는구나. 언제 시간 좀 내서 집에 한 번 들르지 않겠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래, 연서야.”차현영은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손연서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오 여사님. 그쪽 아들과 저는 이미 이혼했어요. 그러니 그쪽도 제 어머니가 아니죠.”차갑고 또렷한 그 말에 차현영의 얼굴빛이 순간 어두워졌다.하지만 지금은 사정해야 할 입장이니 차현영은 억지로 분노를 눌러가며 상냥한 척 말을 이었다.“연서야, 그땐 준수가 철이 없었어. 나도 정말 많이 후회하고 있어. 왜 그때 너희를 막지 못했을까 싶어서...”“내가 준수 야단도 쳤어. 전처럼 이천애 같은 여우한테 절대 다시 안 휘둘릴 거야. 그러니까 너도 다시 돌아오면 안 되겠니?”그녀는 말을 마치고 옆에 있던 오성훈을 툭툭 건드렸다.“성훈아, 어서 엄마라고 부르렴.”오성훈은 귀찮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말은 잘 들었다.“엄마... 엄마, 돌아와 줘요. 저 엄마밖에 없어요. 엄마, 제발 돌아와 줘요.”아이의 목소리에 손연서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저려왔다.하지만 그건 오성훈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 아이에게 쏟았던 과거의 마음과 시간, 그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었다.전에 차현영은 손연서에게 오성훈의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했고 오성훈 역시 그렇게
차현영은 그래도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았다. 이천애가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자 급히 아들을 말렸다.“준수야, 그만해. 죽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오준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손에 힘을 풀며 그녀를 밀쳐냈다.이천애는 힘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거칠게 기침을 쏟아냈다. 그녀를 향한 오준수의 눈에는 단 한 치의 연민도 없었다. 그는 그대로 다가가 발로 그녀의 배를 걷어찼다.“마지막으로 한번 묻는다. 물건 어디 있냐?”이천애는 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정말이야. 켁켁... 도, 도둑맞았어.”오준수는 더는 말 섞을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는지 곧장 어머니를 불러들여 방 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였다.하지만 방을 반 이상 뒤지고 나서도 끝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이천애는 그제야 정신을 좀 차렸는지 얼굴 가득 눈물 자국을 남긴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정말이야. 나 거짓말 안 했어. 도둑맞지 않았으면 벌써 출국했겠지.”“닥쳐!”오준수는 또다시 그녀의 몸을 걷어찼고 차현영은 참담한 얼굴로 그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너 우리 준수 생각은 안 해도, 네 아들 생각은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니? 그게 우리가 가진 마지막 돈이었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이천애는 고개를 숙이고 두 주먹을 꼭 쥐었다.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오빠, 제발... 제발 이번 한 번만 날 용서해 줘. 그래도 나, 성훈이 엄마잖아. 성훈이가 엄마 없이 자라게 하고 싶어?”오준수는 그녀를 향해 침을 뱉었다.“너 같은 게 무슨 엄마야. 내가 눈이 멀었지, 너 같은 걸 좋아했던 내가 미친 거였어.”솔직히 그는 지금 누구보다 후회하고 있었다. 당시, 한낱 모델이었던 이천애에게 빠져 손연서와 아이를 저버렸던 그 선택이 뼛속까지 원망스러웠다.차현영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내가 그때 널 말렸어야 했는데... 연
홍주영은 하민재가 자신을 위해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지만 머릿속에선 박민정이 오늘 했던 말들이 자꾸만 맴돌았다.유남우는 정말 겉모습처럼 좋은 사람일까?예전엔 그녀가 유남우에게 너무 마음을 줬던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외국에 있을 당시, 병을 앓고 있던 그를 안쓰럽게 여겼던 것일 수도 있다.그녀는 유남우의 좋은 면만을 보며 그를 받아들였지만 지금 점점 그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됐어요, 그 얘기는 그만해요.”하민재는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어두운 기색을 보고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홍주영도 더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한편, 손연서도 박민정 쪽 상황이 잘 풀리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약간은 실망스러운 기색이었지만 입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다혜를 입양하지 못하더라도 전 종종 찾아가 볼 생각이에요.”박민정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할 때 손연서가 말을 이었다.“맞다, 민정 씨. 저 이천애 찾았어요.”“이렇게 빨리요?”박민정이 놀라서 되물었다.“전 오히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는걸요.”손연서는 이천애의 얄미운 얼굴을 떠올리면 지금도 분이 치밀었다.“그럼 이제 찾았으니 어떻게 할 건데요?” 박민정의 물음에 손연서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깊이 고민하지도 않고 대답했다.“일단 이천애 주소를 오준수에게 흘려뒀어요. 둘이 알아서 치고받게 두는 거죠.”그녀는 이천애를 감시하라고 사람을 붙여두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곧바로 손연서 쪽에 영상이나 소식이 들어왔다.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곧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이천애는 오준수의 어머니가 아끼던 액세서리를 훔쳐 출국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도망치듯 허름한 여관에 숨어 있었다.오준수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그곳까지 찾아가 문을 박차고 들어갔는데 차현영도 함께였다.모자는 마치 원수를 만난 듯 이천애를 노려봤다.“이 죽
잠시 후, 홍주영은 병원에 도착했다.병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문 너머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몰래 엿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 안에서 ‘유남우’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그녀의 발걸음이 저절로 멈췄다.결국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그 유남우란 사람, 설마 자기 형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그럴 리 없어. 유남우랑 유남준 사이 엄청 안 좋았어.”하민재가 친구에게 단언하듯 말했다.“이번 일은 내가 졌다고 인정해야지. 세상에, 이렇게까지 음험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 나를 해치려고 일부러 교통사고를 꾸미다니.”그 말에 홍주영은 그 자리에 굳은 듯 멈춰 섰다.유남우가 하민재를 해치려고 사람을 시켜 교통사고를 냈다고? 그게 정말 사실일까?하지만 왜? 이유가 뭐지?“난 이만 간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대화를 나누던 하민재의 친구가 자리를 뜨려는 기색이었다.홍주영은 재빨리 복도 모퉁이로 몸을 숨겼다. 사람이 완전히 떠난 뒤에도 한참을 기다렸다가 마음을 다잡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주영 씨, 안 오는 줄 알았어요.”하민재는 그녀를 보자 두 눈이 반짝였는데 정말 기뻐하는 게 느껴졌다.홍주영은 조용히 다가가 그의 곁에 앉았다.“밥은 먹었어요?”하민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주영 씨가 시켜준 음식 진짜 맛있었어요.”“그래요?”홍주영은 속으로 좀 민망했다. 배달 음식이 맛있을 게 뭐가 있다고...그녀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고 조심스레 물으며 분위기를 살폈다.“근데 말이에요, 이번 교통사고에서 혹시 다른 사람은 안 다쳤어요?”하민재는 그녀가 건넨 물을 한 모금 마시곤 그대로 숨기기로 마음먹었다.“아니요, 나만 다쳤어요. 내가 좀 재수가 없었죠.”그는 알고 있었다. 유남우가 홍주영에게 어떤 존재인지. 혹여 진실을 말하면 그녀는 자신을 도와주기는커녕 화를 낼지도 몰랐다.하지만 홍주영은 감정에는 조금 둔할지 몰라도 바보는 아니었다. 하민재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