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한 사람은 김인우였다. 그의 뒤에는 표준적인 제복을 입은 보디가드가 열몇 명이 있었다. 박예찬의 소식을 받고는 금방 달려왔다. 선생님 사무실에서 말하는 듯하여 밖에 서서 좀 들어보니 그냥 빽으로 사람을 누르려 하는 놈들이었다.김인우는 상류사회뿐만 아니라 국내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다. 제일 큰 의약그룹의 도련님으로서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 담이 없었다.김인우의 출현으로 라이브를 보고 있는 사람은 3000만에서 1억으로 되었다.너무 사람이 많아 라이브가 렉이 걸릴 뻔했다.하민 아빠는 여기에서 김인우를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순간 식은땀이 났다.누구나 김인우가 유남준 다음으로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리고 유남준은 다른 사람을 손을 쓰는 것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김인우는 그저 누가 꼴 보기 싫으면 누구를 건드린다.방우석의 기세등등한 모습은 순간 사라졌다.“김 이사님, 전 그저 장난을 쳤을 뿐입니다. 저희 그 작은 회사가 어떻게 엠에스 그룹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김인우는 방우석을 무시하고 물었다.“내 수양아들을 학교에서 자르라고 했다구요?”이와 동시에 차에서 김인우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던 유남준은 녹음을 듣고 이맛살을 찌푸렸다.수양아들?언제 김인우더러 박예찬을 수양아들로 해라고 허락했던가.유남준은 오는 길에 마침 김인우를 마주쳐 김인우 들어 이 일을 처리하라고 했다.필경 자신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옆에서 녹음을 듣고 있던 보디가드들도 놀랐다.교실 내.방우석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이 아이가 수양아들이라고요?”다른 세 아이의 부모들도 모두 믿기 힘들어했다.모두 박예찬이 김인우를 의부로 삼았다고 생각지 못했다. 김씨 가문에 김인우 독자여서 김씨 가문은 모두 김인우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죽고 싶지 않고는 누가 감히 건드릴 수 있겠는가.먼저 박민정이 유치원의 최대 주주이고 다음으로는 김인우가 박예찬의 의부라니. 모두 아이들을 위해 다투기보다는 어떻게 박민정에게 줄타기할지 생각했다.박민정
하민엄마와 아빠, 그리고 성훈엄마가 모두 고개를 떨구고 박민정에게 말했다.“죄송합니다.”박민정은 눈앞의 모든 것이 우스웠다.만일 자신이 돈이 있어서가 아니고 김인우가 오지 않았다면 이 사람들은 사과했을까.아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돈이 있다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다.이 사람들은 조사하지 않아도 반드시 악행을 많이 저질렀을 것이다.지금 사과를 해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필경 아이들의 앞이니 다른 말은 하지 않은 채 그저 이렇게 해결했다.방우석과 그의 와이프는 한숨을 내어 쉬었다. 만약 김인우가 책임을 묻는다면 머리가 아픈 일들이 산더미처럼 생길 것이다.옆에 성훈엄마도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났다.그러나 마음을 놓기에는 너무 일렀다. 방우석이 사무실을 나간 후 비서의 연락을 받았다.“무슨 일인데 이렇게 연락을 해. 확 잘라버렸으면 좋겠는 건가. 진주시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게 해줘?”비서가 조심스레 말했다.“회장님, 아까 도련님의 학교에 가셨죠?”“어떻게 알아 그걸.”방우석이 물었다.“회장님과 사모님이 한 아이를 욕하고 때리려고 한 것이 라이브로 퍼져 지금 우리 회사 주가가 폭락하고 있습니다.”방우석의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어 비서가 말했다.“지금 주주들이 회사에 오셨습니다. 빨리 회사에 오셔야 할 거 같아요. 지금 회장님의 직위를 파면하겠다고 하십니다.”방우석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이와 동시에 성훈엄마가 나대는 모습도 라이브로 나갔다.그 모습을 성훈아빠가 봤고 성훈엄마는 연락을 받았다.“오늘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아요?…”애교를 부리려고 했으나 말이 끝나기 전에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사람을 보내 아이를 데려오라고 할 테니까 앞으로는 내 와이프가 아이를 보게 될 거야. 다시는 날 찾지 마.”성훈엄마는 뉴스를 보니 자신이 어떻게 박예찬을 욕하고역했고 뻔뻔하게 자신의 아이가 99%의 아이들보다 잘났다고 으스대는 모습이 그대로 송출되었다.그렇지만 이건 당시 본처정부인에게 했던
관람인 수가 억 단위가 된 것은 물론 선물공세도 160억이 넘었다.한 라이브에 물건을 팔지 않고도 160억의 수입이 생겼다.박예찬은 인사말을 하고는 라이브를 껐내렸다.김인우는 아직도 자신이 뉴스에 오른 것을 모르고 있었고 라이브에 나온 것도 몰랐다.그리고 스마트 워치멀티시계를 만지작거리는놀고 있는 박예찬에게 말했다.“전자제품 적당히 해놀아야지. 많이 하놀면 눈에 안 좋아.”“네.”박예찬은 스마트 워치멀티시계를 껐다.김인우는 이 개구쟁이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을 잘 듣는지 이상했다.집에 도착하여 조하랑이 물었다.“예찬이 괜찮아?”박예찬이 고개를 저었다.김인우가 물었다.“일이 있었던 걸 어떻게 알아?”“라이브로 나왔으니까요. 모르고 있었어요? 실시간 검색 순위에도 올랐는데.”조하랑이 말하고는 김인우에게 보여줬다.김인우가 핸드폰을 보니 왜 박예찬이 말을 들었는지 알았다.“너 이 녀석.”박예찬을 찾으려 하니 이미 방에 돌아가 문을 잠갔다.조하랑은 인제야 김인우가 이 일을 몰랐다는 것을 알았다.“됐어요. 예찬이도 그 부부의 진실한 모습을 밝히려고 한 거일 뿐인데요. 쪼잔하게 화내진 말고요.”김인우가 가방을 조하랑에게 넘겨줬다.조하랑은 한눈에 박민정이 자신에게 주겠다고 했던 가방임을 알아봤다. 아주 좋아했다.조하랑은 가방에 뽀뽀했다.김인우는 질색하며 말했다.“그냥 가방일 뿐이잖아. 그렇게 기뻐할 일이야?”“모르면 입 다물고 있어요.”조하랑이 김인우를 째려보고는 방으로 돌아가 김인우 홀로 거실에 남았다.김인우는 병원으로 갔다.…...다른 한편, 두원으로 돌아가는 길.유남준이 박민정에게 물었다.“예찬이 한테 일이 생겼는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나도 도착한 후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게 된 거예요.”유남준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별장에 도착한 후, 박민정이 먼저 차에서 내린 후 유남준은 전화를 걸어쳐 물었다.“다 처리했어?”“대표님, 이번에 작은 도련님께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라이브로 퍼져 방우석은
“그럼 내가 나중에 물어봐 줄까?”박민정은 장난치듯 말했다.“좋아. 나는 민기 씨가 우리와 함께 라이브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 계정의 이름을 ‘예찬의 예쁜 이모’로 바꿀 생각이야.”전에 계정 이름을 ‘예찬이 엄마’로 설정했던 건 주로 박민정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였지만 이젠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 박예찬의 엄마가 라이브에서 얼굴을 비춘 이상, 조하랑은 이제 이 이모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박예찬도 동의했다. 어차피 박예찬의 이 계정은 일 없는 이모를 위해 만들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민기 씨는 무조건 동의하지 않을 거야.”박민정은 정민기한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래.”조하랑은 조금 서운해하며 또 물었다.“민정아, 우리가 너 몰래 계정 만든 것에 대해 기분 나쁜 건 아니지?”“당연히 괜찮지. 그런데 너희 인터넷 방송하면서 꼭 안전에 주의해야 해. 개인 정보 같은 거 많이 노출하지 마.”박민정은 아이들과 친구의 발전을 가로막지 않는다. 그녀는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해 자기가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조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조하랑과 전화를 끊은 박민정은 박윤우가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 유남준이 들어왔을 때 그에게 물었다.“윤우네 학교에 학부모 단톡방이 있나요?”“다희한테 물어볼게.”“알겠어요.”유남준이 전화를 걸어 물어본 지 얼마 안 되어 누군가가 박민정을 학부모 단톡방에 초대했다.이 반에는 아직 학부모 위원회의 단톡방이 따로 없었다.선생님이 찍어 보내 주신 박윤우의 학교생활 동영상을 보니, 박민정은 자기 아들이 학교에서 인기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윤우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윤우는 오자마자 저희 반 여자아이들과 전부 다 친해졌어요.”중점은 여자아이들이었다...박민정은 조금 걱정하며 물었다.“그럼, 남자아이들은 어떤가요?”“남자아이들도 윤우를 아주 좋아해요.”이 얘기를 듣고 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모니터를 좀 더 보고서야 박민정은 남자아이
유남준은 더 이상 박민정과 냉전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을 이렇게 오랫동안 속여온 것이 내키지 않았다.“그럴 거라면? 겁나?”유남준이 물었다.유남준이 이렇게 물어볼 걸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박민정은 멍해 있었다.예전의 성격대로라면 유남준은 보통 이렇게 묻고 나면은 무조건 행동을 취했다.박민정은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만약 내가 무섭다고 말하면 남준 씨는 그냥 넘어가 줄 거예요?”유남준은 박민정의 팔을 꽉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런 침묵은 박민정을 저도 모르게 당황하게 했다.결국, 유남준은 박민정을 놓아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체구가 큰 그는 박민정 앞의 빛을 거의 절반이나 가렸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지만 유남준이 지금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분명 보지 못하는데도 이렇게 얄미울 수가.’박민정은 눈시울을 살짝 붉히며 유남준이 가려는 걸 보고 의자 하나를 들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유남준은 부딪힐 수밖에 없었으며 눈살을 찌푸렸다.“민정아!”“남준 씨가 먼저 저랑 결판을 내리려고 했어요. 저는 그저 미리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거예요.”이렇게 말하고는 박민정은 유남준에게 경고했다.“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당신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한다면 난 더 이상 예전처럼 양보하지 않을 거예요.”박민정은 말하면 꼭 말한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유남준은 웃음이 나기도 하면서 화가 나기도 했다. 유남준은 진짜 박민정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다면 진작에 하고도 남았다.하루 종일 박민정은 유남준이 정말 자신을 상대할까 봐 저도 모르게 걱정했다.비록 유남준은 지금 앞이 보이지 않지만, 저번에 블랙 카드를 꺼낼 수 있는 것을 보아하니 박민정은 유남준이 아직도 자기한테 많은 일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저녁때 박윤우가 집에 돌아온 후, 박민정은 그를 따로 방에 데려가서 물었다.“우리 윤우 저번에 아빠 화사에 가 본 적 있지?”박윤우는 엄마가 왜 갑자기 아빠 회사에 관해 물어보는지 의문스러웠다.‘설마 아빠가 돈도 있고
메시지를 보내 놓고서 최현아는 두 엄마를 차단했다. 최현아는 가루를 다 빻고 나서 당나귀를 죽이는 일을 유난히 잘했다.그러나 최현아는 두 엄마가 아직도 학부모 위원회 단톡방에 있다는 걸 까먹고 있었다.저녁 10시, 박민정은 핸드폰이 계속 울려 이 시간에 누가 메시지를 보내는지 의아해하면서 핸드폰을 열어보자, 단톡방에 메시지가 폭발한 걸 보았다.방하민 엄마는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다들 사람을 꼭 잘 보세요. 절대로 예찬이 어머님을 내쫓으면 잘 대해주겠다는 최현아의 빈말을 믿지 마세요.][지금 문제가 생기니까 최현아는 우리를 바보라고 욕하면서 스스로 책임지라고만 하잖아요.][애초에 분명히 문제가 생겨도 자기가 힘써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성훈 엄마도 단톡방에 이렇게 올렸다.[최현아, 이 가증스러운 여자야, 난 너 때문에 남편한테서 버림받았어!]박민정은 메시지를 대충 읽어보니 다들 최현아를 욕하는 메시지들이었다.아마도 최현아는 지금 다른 일이 있어서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아 아직 두 사람을 단톡방에서 내쫓지 않은 모양이었다.다른 엄마들도 전부 구경만 할 뿐 누구도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고 그저 못 본 척했다.지금 성훈 엄마와 방하민 엄마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 두려워할 것이 없어 각종 욕설을 퍼부었다.최현아가 메시지를 확인했을 때 단톡방의 욕설은 이미 99개를 넘었다.최현아는 화가 났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두 여자를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그저 단톡방에서 내쫓았다. 그러나 쏟아진 물은 퍼 담을 수 없듯 그들이 올린 욕설 메시지는 이미 취소할 수 없었다.최현아가 아무리 내키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할 수밖에 없었다.지원 엄마는 이 기회를 잡아 아부하듯 이모티콘을 여러 개 보내고는 재빨리 사과를 올렸다.[죄송해요. 우리 아이가 실수로 누른 모양이에요.]사실 지원 엄마처럼 눈치가 빠른 사람은 사회생활이 나쁘지 않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녀는 양쪽 모두에게 잘 보이기 좋아했다.박민정은 이번 일로 대다수 엄마가 최현
박민정은 먼저 정리하고 아침을 먹고 나서 다시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박민정은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유남준이 오늘도 출근하지 않고 거실에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아래층으로 걸어 내려가며 물었다.“오늘도 출근 안 해요?”“어.”유남준은 이미 회사의 대부분 업무를 잘 안배해 놓았기에 딱히 처리할 일이 없었다.박민정은 마음속으로 역시 회사가 너무 작아서 할 일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 놓고 날 협박하다니...’박민정은 주방에 가서 아침을 대충 때우려다가 식탁에 가득 차려진 영양 식단을 보고 역시 집에 요리사와 도우미가 있는 게 뭘 하든 편리하다는 걸 느꼈다.박민정은 지금 식탐이 늘어나 한꺼번에 2인분을 먹을 수 있었다.아침을 거의 다 먹은 후 박민정이 조금 볼록해진 배를 잡고부추기며 일어나서 치우려고 할 때, 유남준이 주방으로 걸어 들어왔다.“가서 쉬어. 좀 있다가 알바시간제 도우미가 와서 치울 거야.”“괜찮아요. 저도 좀 움직여야죠.”“움직이고 싶으면 나가서 산책이나 하고 산책하는 김에 의사 선생님도 만나보고 와.”유남준이 말했다.의사를 만나라는 말을 듣자, 박민정은 저도 모르게 걱정이 들었다.“의사 선생님을 왜 만나요?”“당연히 산전 검사를 받는 거지. 아니면 할 게 뭐 더 있어?”유남준은 요즘 박민정이 점점 많이 먹는 걸 느꼈고 서다희도 유남준한테 박민정의 배가 조금 나올라온 게 보인다고 말했다.박민정은 앉아서 곡을 쓰지 않으면 유치원에 가서 각종 잡일을 처리하기만 했지, 자기 몸을 정기적으로 검사받을 줄은 몰랐다.“필요 없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한 달에 한 번 검사받으면 된다고 했어요. 아직 검사받을 시간이 안 됐어요.”박민정은 병원이라는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그냥 가보기만 하자.”유남준이 덧붙여 말하자 박민정은 지금 그의 행동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분명히 어제만 해도 나를 위협하던 사람이 오늘에는 또 나와 함께 산전 검사를 받으러 가겠다고 하네.’“싫어요.”박민정은 가기 싫었다. 그냥
유남우와 약혼을 한 이후 윤소현은 더 이상 결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형 입에서 결혼 두 글자를 들은 유남우는 자기도 모르게 박민정한테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얼굴색이 태연한 박민정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래. 그건 내가 알아서 잘할게.”이렇게 얘기한 후 유남우는 윤소현이 껴안은 팔짱을 뿌리쳤다.“형, 임신 검사받으러 가 봐. 우리도 이만 갈게.”유남우가 떠나고서야 박민정은 정신을 차렸다.유남준은 박민정의 손을 꼭 잡은 채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속상해?”박민정은 조금 어리둥절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박민정은 그제야 유남준이 언제 자신의 손을 잡았으며 그것도 아주 꽉 잡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남준 씨 손 놔요.”유남준은 손을 놓지 않았다.“벌써 화 난 거야?”박민정은 고개를 숙여 유남준의 손을 물었다.유남준은 진작에 익숙해져서 여전히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을 지나다니던 의사와 환자들이 그들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박민정은 몹시 난처해하며 입을 떼고 똑바로 섰다.사실 박민정이 넋을 놓았던 건 속상해서가 아니라 믿어지지 않아서였다.왜냐하면 얼마 전까지 만해도 유남우는 박민정한테 다시 예전처럼 함께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근데 지금은 윤소현과 결혼하지도 않았는데 아이까지 생겼다.그러고 보니 아무리 사랑을 논한다 해도 사실상 다들 엄청 현실적이었다.“난 그저 두 사람한테 이렇게 빨리 아이가 생긴 게 놀라웠던 거지 다른 생각은 하나도 없어요.”박민정은 손을 뿌리쳐 보았지만, 여전히 손을 빼내지 못했다.‘남준 씨는 도대체 뭐로 만들어진 거지, 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거지?’유남준은 박민정의 변명을 믿지 않았지만, 더 묻지도 않았다. 더 캐묻다가 박민정이 화낼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박민정을 검사실에 들여보낸 후 유남준은 밖에서 기다렸다.병원 문 앞, 윤소현과 유남우 두 사람이 차에 탄 후 윤소현은 머리를 숙인 채 말했다.“남우 씨, 도와줘서 고마워요.”윤소현 배 속의 아이는
박민정이 사라졌을 무렵 유남준은 정수미와의 모든 협력을 거절했는데 이는 오로지 박민정에게 자신이 화났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하여 처음에 박민정이 찾아와서 자신이 친딸이란 사실을 확인해 줬을 때까지도 정수미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엄마의 사랑을 돌려주려고 하니 유남준이 분명 기회를 줄 것 같지 않았다.그런데도 정수미는 갖은 방법을 이용해서 PMJ 그룹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상업적 위험을 제거해 주려 했다.오늘 유남준이 없으니 진서연은 어쩔 수 없이 박민정더러 가보라고 했다.회의실 안.정수미는 떨리는 마음으로 박민정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민정아.”“정 대표님, 안녕하세요.”자신보다 한껏 덤덤한 얼굴의 박민정을 보고 정수미는 살짝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자를 당겨주며 앉으라고 했다.“민정아, 나 PMJ 그룹에 투자하고 싶어.”박민정은 아직 회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다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되자 이따 저녁에 유남준의 견해는 어떤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그러자 정수미가 재빨리 필기하고 있는 그녀를 말렸다.“적을 필요 없어.”“무슨 뜻이에요?”박민정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에게 되묻자 정수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손에 지금 적지 않은 자금이 있는데 다 너한테 줄게.”그녀의 말에 박민정은 재빨리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답했다.“괜찮습니다.”“그리 급하게 거절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정수미는 점점 마음이 조급해졌고 또 자기도 모르게 박민정을 화나게 할까 봐 매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나도 지금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고 지난번에는 내가 말실수했어. 나도 네가 내 돈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걸 잘 알아.”이 사실을 진작에 알아야 했다. 만약 박민정이 진짜 돈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박씨 가문의 재산을 전부 남동생 박민호에게 넘겨주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박민정은 다시 단호
조하랑은 집을 깔끔히 정리한 뒤 너무 힘들어서 침대에 털썩하고 누웠다.이때 도우미가 각종 재료가 듬뿍 들어간 국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사모님, 이것 좀 드셔보세요. 어르신도 말씀하셨는데 젊은 사람들은 평소에도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기에 이런 음식으로 많이 보충해야 아이가 빨리 들어선다고 했거든요.”조하랑은 지금 국물만 봐도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아니요.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으니까 가져가세요.”“네? 벌써 입덧하나?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닐 텐데요.”도우미의 말에 순간 조하랑은 땅굴이라도 파고 들어가 숨고 싶었다.그렇게 도우미를 방에서 내보낸 뒤 그녀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민정아.”박민정은 회사에서 한창 업무 내용에 대해 숙지하고 있다가 조하랑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하랑아, 무슨 일이야?”“말하자면 길어.”조하랑은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전부 그녀에게 말해줬다.가만히 듣고 있던 박민정은 어이없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할아버지가 그런 수를 썼다고?”“그렇다니까? 나 지금 결혼한 게 너무 후회돼.”조하랑은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이상한 일이 한 가지 더 있는데...”“무슨 일?”조하랑은 또다시 자신이 결혼 전날 납치되었던 일에 대해서도 박민정에게 말해줬다.그러자 박민정이 대뜸 그녀에게 되물었다.“그날 저녁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너무 찜찜한게 그날 내가 정신을 잃으면서 분명 그 남자들을 봤는데...”뒷말은 결국 하지 못했다.“이 일은 무조건 자세히 조사해 봐야겠어.”박민정은 분명 이 일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걸 느꼈고 또 혹시나 그 남자들이 진짜 다른 나쁜 일을 했으면 어떡하나 싶었다.조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인우 씨도 이미 사람을 보내서 조사하고 있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결과가 없는 걸 보면 분명 간단한 일은 아닐 것 같아.”“그래도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지. 내가 민기 씨더러 한번 알
조하랑은 힘껏 그를 밀쳐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세 살짜리 애로 보여요?”김인우는 워낙 조건이 뛰어난 사람이니 지금까지 잠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을 리가 없었다.조하랑이 믿지 않자 김인우는 마지못해 진실을 털어놓았다. “몇 년 전에 어떤 일을 겪은 후로 여자에게 더 이상 관심이 생기지 않았어요.”조하랑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그 뒤로는요?”“그 뒤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상 남자로 보이기 위해 적지 않은 여자를 만났죠.”조하랑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무슨 일이었는데요?”김인우는 말하기 싫어했지만 결국 입을 열었다. “내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신지 알아요?”조하랑은 김씨 집안에 온 이후 김인우의 부모님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는 것만 알 뿐 구체적인 사연은 몰랐다.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출산 중 양수 색전증으로 돌아가셨어요.”처음엔 가벼운 표정이었던 조하랑은 점점 김인우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냈다.김인우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땐 끔찍한 광경만이 남아 있었어요.”조하랑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그럴 줄 알았으면 묻지 않았을 거예요.”김인우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이미 오래전 일이니까.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사실 어젯밤이 되어서야 그는 자신이 정상임을 깨달았다.조하랑은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김인우는 그녀가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못마땅했던지 화제를 돌렸다. “그러니까, 이제 하랑 씨가 나한테 책임져야 돼요.”“네?” 조하랑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책임이요?”“남자의 첫 경험도 책임져야죠. 남자의 청춘은 청춘이 아니에요? 서로 책임지기로 해요. 그게 공평하잖아요.”김인우가 뻔뻔하게 말하자 조하랑은 황당해하며 대꾸했다. “그럴 거면 우리 서로 퉁치죠. 아무도 손해 본 게 없잖아요.”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김인우가 그녀를 붙잡았다.“놔요!”“안 놔요. 하랑 씨가 내 요구를 들어줄 때
“착한 사람이라뇨...” 조하랑은 그 말을 중얼거리며 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김인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랑 씨는 다른 여자들과는 달라요.”그렇게 말하며 어느새 몸을 조하랑 쪽으로 더 가까이 움직였다. 조하랑도 어찌된 영문인지 피하지 않았고 그렇게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김인우는 마지막 남은 이성을 붙잡고 조하랑을 안아 올려 어느 노인네의 눈을 피해 은밀한 곳으로 옮겼다. 그 노인네도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이번에는 거실에 CCTV를 설치하지 않았다.하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한 김훈은 하인에게 문 너머의 상황을 엿보게 시켰다. 잠시 후, 하인은 기쁜 표정으로 달려왔다. “어르신, 성공했습니다.”“정말인가?” 김훈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 틀림없어요.” 하인이 확신하자 노인은 마음속 무거운 짐을 덜어낸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편히 잘 수 있겠구나. 자, 우리도 잠이나 자자.”“네, 알겠습니다.”...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조하랑이 눈을 떴을 때 온몸이 쑤셨다. 전날 밤의 모든 기억이 선명했고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어떻게 그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 걸까?옆에 누운 김인우는 아직 잠들어 있었고 무의식중에 다시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조금만 더 자요.” 그는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조하랑은 갑작스러운 친밀함에 익숙하지 않아 김인우를 흔들어 깨웠다. “이거 놔요. 이제 일어나야죠.”김인우는 졸린 눈을 간신히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때리는 거예요?”어젯밤의 일은 분명 그녀도 동의했던 일이었다.조하랑은 얼굴이 붉어졌다. “어젯밤 일은 그냥 사고였어요.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잖아요. 걱정 마요, 책임지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앞으로도 예전처럼 지내요.”그녀는 관계를 명확히 하려 애썼지만 김인우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책임질 필요 없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자는 건가?김인우는 문득 깨달았다. “설마... 처음이
김인우는 이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지금 이성과 충동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조하랑 역시 불편했다. 수년간 솔로로 지낸 그녀도 결코 무감정한 사람이 아니었다.“인우 씨... 지금... ”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머뭇리자 김인우는 뭔가를 깨닫고는 얼른 그녀를 놓았다.“다른 방 좀 살펴보고 올게요.”“그래요.”조하랑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김인우와 거리를 두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조하랑은 점점 더 참기 힘들어졌다.김인우 역시 괴로웠다. 다른 방들을 확인해 보았지만 문은 모두 잠겨 있었다.지친 발걸음으로 다시 거실로 돌아온 김인우는 조하랑과 마주 앉았고 결국 두 사람은 서로 말을 건네는 것조차 어려워했다.“구조 요청이라도 할까요?” 조하랑이 드물게 기지를 발휘하자 김인우는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어요. 아까 확인했는데 핸드폰들이 다 사라졌어요.”“뭐라고요?” 조하랑은 더 깊은 절망에 빠졌다.몸의 열기는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혔고 김인우를 바라볼 때마다 그의 모든 것이 탐나기 시작했다.김인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상황을 잊기 위해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그럼, 우리 뭐라도 얘기할까요?”“좋아요. 무슨 얘기할까요?”김인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하랑 씨, 강연우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강연우의 이름이 나오자 조하랑의 마음은 얼음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금 진정됐다.“학교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그때 그 사람이 참 잘생겼고 법학과였거든요. 연애 경험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먼저 쫒아다녔어요.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사귀게 됐지 뭐예요.”과거를 떠올리는 조하랑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부드러워졌다.이를 본 김인우는 괜히 질투가 일었다. “그리고 나서는요?”“그냥 연애했죠.” 조하랑은 짧게 답한 뒤 김인우를 바라봤다. “인우 씨는요? 뉴스에서 여자들이랑 많이 엮였던데, 혹시 첫사랑한테 상처라도 받았어요?”김인우는 비웃으며 말했다. “웃기지 마요. 내가 여
김인우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그야 당연하죠. 내가 하랑 씨가 좋아했던 그 녀석보다 훨씬 잘생겼거든요.”“그 녀석이요?” 조하랑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강연우 말이에요.” 김인우는 여전히 그를 경쟁자로 여기고 있었다.이 말에 조하랑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나 그 사람 안 좋아한지 꽤 됐거든요.”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김인우는 그녀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정말 신경 안 써요?” 김인우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잡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물었다.조하랑은 왠지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숙였다.“네, 신경 안 써요.”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말할수록 김인우는 더 의심스러웠다.김인우는 이미 조하랑과 강연우의 과거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당시 조하랑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청년과 결혼하려 했고 강연우 역시 그녀를 위해 목숨까지 걸 뻔했다.그런 뜨거운 사랑, 그런 소중한 기억을 과연 쉽게 잊을 수 있을까?김인우는 생각할수록 묘한 질투심에 사로잡혔다.“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조하랑은 그의 침묵에 조심스럽게 물었다.오늘따라 몸이 이상했다. 김인우 곁에 있으니 더더욱 불편했고 머릿속에는 온갖 이상한 생각들이 스쳤다. 그가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몸매도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까지 들 정도로.김인우는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그래요, 병원 가요.”그는 조하랑의 손을 잡고 현관으로 향했다.하지만 문에 도착한 순간 잠겨 있다는 걸 깨달았다.“문 열어요!” 김인우는 화가 나서 소리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하인들 역시 모두 사라진 듯했다.조하랑은 문에 기대며 말했다.“누가 문을 잠갔죠? 할아버지는 어떻게 들어오시려고요?”“그 양반이 들어온다면 완전 변태인 거예요.” 김인우가 이를 악물고 중얼거리자 조하랑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할아버지한테 그런 말 하지 마요.”김인우는 그녀가 아직도 김훈을 두둔하는 걸 보며 답답해했다.‘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나중에
하인은 김훈의 뜻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주방으로 가더니 국 한 냄비를 들고 왔다.“국 좀 마셔라.” 김훈은 두 사람에게 국을 권했다.김인우는 거절하려다 김훈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는 멈칫했다.“왜? 할아버지가 증손주를 보고 싶다는데 안 되겠냐? 국 한 그릇 마시라는 것도 거부하는 거냐?”이 말을 듣고 나니 김인우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할아버지, 앞으로 재촉만 안 하신다면 국 한 그릇이 아니라 열 그릇도 마시겠습니다.”조하랑도 분위기에 따라 국을 한 그릇 들이켰다.“할아버지, 이 국 정말 맛있어요.”김훈은 인자한 표정을 지었으나 눈빛에는 슬쩍 장난기가 스쳤다.“맛있으면 더 마셔라.”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중얼거렸다.‘하랑아, 인우야, 이 할애비를 원망하지 말아라. 나도 너희 둘의 감정에 불 좀 지펴주려는 거니까.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언제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겠니?'김인우와 조하랑은 김훈이 뭔가 꾸미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국 한 냄비를 모두 비워버렸고 거기에 밥과 반찬도 푸짐하게 먹었다.김인우는 심지어 겉옷까지 벗으며 말했다.“할아버지, 이 국 정말 보양에 좋은가 봐요. 몸이 엄청 뜨겁고 힘이 넘칩니다.”김훈은 그 말을 듣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렇지. 내가 좋은 재료를 듬뿍 넣었거든.”김인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앞으로 이렇게 몸에 좋은 건 밤에 먹지 말아야겠어요. 너무 덥네요.”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는데 이때 김훈이 그를 불러 세웠다.“어디 가려고?”“너무 더워서 바람 좀 쐬려고요.”김인우가 문으로 향하자 김훈은 단호하게 말했다.“나가지 마. 예찬이도 아직 안 돌아왔고 너희 둘 다 이 늙은이와 함께 있어야지.”김훈의 강한 말에 두 사람은 거절할 수 없어 그대로 남았고 결국 가족 셋이 거실에 앉아 TV를 보았다.오늘따라 김훈은 평소 즐겨보던 뉴스 대신 로맨스 드라마를 틀었다.이를 본 김인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할아버지, 이런 거 좋
설인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문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며 결국 방성원의 모습은 그녀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머리가 지끈거렸고 손에 쥔 휴대폰은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휴대폰 화면 속에는 과거 설씨 집안이 어떻게 경쟁자에게 모함당하고 함정에 빠졌는지, 그 모든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방씨 집안의 이름은 없었다.설인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아빠, 설마... 아빠가 잘못 알고 계셨던 거예요?”하지만 허공은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고 텅 빈 방안엔 그녀의 메마른 목소리만 메아리쳤다.설인하는 너무 지쳐 있었고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수년간 품어왔던 증오. 그토록 미워했던 사람을 단 하루 만에 오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그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한편, 방성원은 당시 설인하의 아버지가 누구를 만났는지 조사하고 있었다.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버린 탓에 많은 것들이 이미 사라지고 희미해져 있었다.방성원은 담배를 연달아 피웠다. 한 개비, 또 한 개비. 하지만 짙은 연기가 그의 답답한 마음을 조금도 풀어주지 못했다.그때, 아이의 작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방성원은 화들짝 놀라 담배를 급히 비벼 끄고 창문을 활짝 열고는 소리쳤다.“아주머니!”보모가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대표님!”방성원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애가 어떻게 나왔어요?”보모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아까부터 은정이가 계속 울면서 엄마, 아빠를 찾길래... 제가 잠깐 데리고 나왔어요.”방성원은 혹여나 딸이 자신의 담배 냄새를 맡을까 걱정이 앞섰다.“애 데리고 가서 설인하랑 놀게 해요. 다만, 설인하가 애를 데리고 도망치진 못하게 조심하고.”“네.”보모는 활짝 웃으며 아이를 안고 설인하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둘이 사라지자 방성원은 욕실로 향했다. 그는 찬물로 샤워를 하고 옷까지 갈아입은 후 설인하의 방 앞에 섰는데 멀리서부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설인하와
방성원이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일이었다.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설인하 앞에 섰고 차가운 눈빛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은정아, 아빠한테 와.”방은정은 방성원의 손길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작은 두 눈 가득 망설임과 혼란이 서려 있었다.설인하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더 꽉 끌어안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뒤쪽 문이 쾅 하고 닫혔고 설인하는 당황해 외쳤다.“방성원, 당장 문 열어! 날 내보내!”방성원은 비웃듯 미소를 지었다.겨우 이 안으로 끌어들였는데 다시 나가게 해달라고?“만약 내가 안 열어주면?”설인하는 한 손으로 방은정을 안고 다른 손으로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그러나 방성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품에서 아이를 낚아챘다.아직 어린 방은정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단순한 놀이로 착각하고 까르르 웃었다.설인하의 품이 텅 비자 그녀는 휴대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성원의 팔에서 아이를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한 여자가 성인 남성을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방성원은 한 손으로 설인하를 가볍게 제압한 채 다른 손으로 아이를 보모에게 넘겼다.“방으로 데려가요.”“네”보모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고 감히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설인하는 방성원에게 억눌린 채 그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그녀는 분노에 치를 떨며 외쳤다.“방성원, 이 개자식아! 은정이를 돌려줘! 은정이는 내가 열 달 동안 품어 키운 내 딸이야! 넌 고작... 고작 삼 초면 끝났잖아! 대체 무슨 권리로 내 아이를 빼앗는 거냐고!”방성원은 그녀의 새로운 욕설에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새어 나왔다.‘밖에서 안 좋은 것들만 배워온 모양이군.’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좋아, 이제 말발이 꽤나 늘었네?”그는 설인하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었다.“어딜 데려가는 거야? 놓으라고!”설인하는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어딜 가겠어. 네 정신 좀 차리게 하려는 거지.”방성원은 그녀를 과거 함께 지냈던 방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