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는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저희가 보낸 사람들도 사진 찍는 데 애를 먹었어요. 박민정 씨 뒤에 도련님 측 사람들이 따라다니고 있어서 우리 쪽 사람들이 가까이 갈 수가 없어요.”전에 박민정과 예찬을 조사하러 보냈던 사람들이 유남준에게 발각된 이후, 고영란은 더욱 조심했고 그곳에 보냈던 사람들은 감히 그들이 사는 곳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했다.고영란은 지금 사진을 보니 자신이 모르는 게 아직 더 많은 것 같다.“계속 조사해. 박민정에게 또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아내야겠어.”“네.”...한편 박민정과 조하랑은 윤우를 데리고 몇 시간 동안 놀다가 윤우의 몸이 감당할 수 없어 급히 돌아왔다.그들은 설 전에 윤우를 데리러 가기로 약속했고 병원을 나와 차에 앉은 조하랑은 박민정을 위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배 속의 아기가 태어나 제대혈이 나오면 윤우도 수술받을 수 있어. 수술 끝나면 예찬이처럼 될 수 있을 거야.”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배를 만졌다.“이번엔 아들일지 딸일지 모르겠네.”“딸이면 좋겠네. 그럼 아들딸 다 있는 거잖아. 윤우와 예찬이도 여동생 갖고 싶어 했잖아.” 조하랑이 말했다.물론 박민정도 딸을 원했지만 아들이든 딸이든 둘 다 좋았다.“그런데 하랑아, 넌 어떻게 할 거야?”“뭘 어떻게 해?”“아저씨 쪽은 해결됐어?”박민정은 조하랑이 아직 첫사랑 강연우와의 관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조하랑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모르겠어. 사실 지금 너랑 유남준, 윤우랑 예찬이를 보니까 그냥 아빠 말 듣고 결혼하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해.”“하랑아, 단순히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는 건 절대 안 돼.” 박민정이 말하자 조하랑은 한숨을 내쉬었다.“현실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거 아니야? 민정아, 지금까지 결혼한 거 후회 안 해?”후회?“유남준과 결혼한 건 후회하지만 윤우와 예찬이를 낳은 건 후회하지 않아. 그래서 네가 진지하게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조하랑은 고개를 저었다.“
“눈사람 만들러 갈래?”유남준이 갑자기 물었다.그는 박민정이 눈을 좋아하고 어린아이처럼 눈사람 만들기를 좋아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예전에는 항상 유치하다고 나무랐었다.박민정은 눈사람을 만들자는 그의 제안을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순간 눈에 이채가 돌았지만 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요, 밖이 너무 추운 데다 너무 유치해요.”유남준은 목이 메었다.박민정이 안으로 걸어오며 말했다.“나 좀 쉴 테니까 나가요.”그녀는 유남준이 어젯밤처럼 고집을 부리며 나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순순히 밖으로 나갔다.박민정은 그를 쫓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곧바로 방 문을 잠그고 무언가로 바리케이드를 쳤다.침대에 누운 그녀는 금세 잠에 빠졌다.다음 날 이른 아침.박민정이 눈을 떴을 때 밖에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고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커튼을 열고 씻으러 가려는 순간, 갑자기 눈 속에 무수히 많은 귀여운 눈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놀란 눈으로 통유리창을 열고 발코니로 나간 박민정은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유남준을 발견했다.유난히 복잡한 기분으로 그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눈을 밟으며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눈사람 만들어.”유남준의 얇은 입술이 움직이며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하지만 박민정은 남자가 이를 절대적으로 경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저 멀리서 검은색 링컨 차량이 천천히 다가왔다.박민정은 차의 번호판을 알아봤다. 유씨 저택 차량이었다.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고영란 옆에 있던 여비서가 마당에 눈사람이 가득한 것을 보고 약간 놀란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박민정과 유남준을 발견했고, 유남준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곧 예의 바른 태도로 그녀는 시선을 거두었다.“박민정 씨, 도련님.”비서는 눈을 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사모님께서 앞으로 이틀 후면 둘째 도련님의 약혼식이니 두 분을 모
한동안 집안에 정적이 흘렀고 고영란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맞아, 걔야.”윤소현은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제 새어머니의 딸이에요. 언니인 저도 돌아온 후로 한 번도 못 봤네요.”천 년 묵은 여우에게 가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영란은 윤소현을 집에 들이는 데 동의하기 전 당연히 그녀에 대해 조사했었다. 한수민이 그녀를 어쩌지 못한다는 것과 생모인 정수미의 힘을 알고 나서야 허락한 것이었다.박민정처럼 쓸모없는 며느리는 더 이상 원치 않았다.“앞으로 만날 기회가 많을 거야. 밥 많이 먹어.”고영란은 박민정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 듯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윤소현은 미래의 시어머니가 맏며느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시험해 본 것이었다. 이제 보니 유씨 가문에 들어오면 경제권은 확실히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식사를 마친 윤소현은 유남우를 따라 산책을 나갔다.그녀는 이곳에서 지내라는 고영란의 말을 거절하지 않았다.유남준이 어떤 여자와 결혼했는지도 알고 싶었다.“남우 씨, 형님 말이에요, 제가 다 안타까워요. 박민정 같은 여자는 형님과 전혀 어울리지 않잖아요.”유남우의 걸음이 느려지고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덤덤하게 그녀를 응시했다.“형수님에 대해 잘 아나 봐?”형수님이라는 말에도 윤소현은 오만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쉴 틈 없이 떠들었다.“새어머니로부터 박씨 가문의 딸로 태어나 태어날 때부터 청력이 약하고 잘하는 게 없다고 들었어요. 회사 운영할 줄도 모르고 배운 기술도 없어서 쓸모가 없다네요.”유남준은 약혼녀의 입에서 박민정의 이러한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회사를 운영할 줄 모른다고? 잘하는 것도 없고?자신이 그토록 힘들게 구한 곡이 사실은 박민정이 쉽게 쓴 곡이라는 걸 윤소현은 알까.적어도 박민정은 스스로 회사를 차려 아버지에게 의지해 먹고사는 그녀보다 훨씬 나았다.유남우가 얇은 입술을 달싹였고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했지만 어딘가 서늘
유씨 가문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도우미가 와서 문을 열어주었다.“도련님, 박민정 씨, 저녁 준비 다 끝마치고 두 분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유남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도우미에게 물었다.“내 아내를 뭐라고 불렀지?”그는 기억을 잃기 전에 모든 도우미들에게 박민정이 유씨 가문의 사모님이라고 했던 걸 떠올렸다.도우미는 그 말에 고개를 숙이고는 곧바로 말을 바꿨다.“사모님.”유남준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유남우가 책임자이고 과거에 박민정을 막 대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박민정은 유남준이 자신을 변호할 줄은 몰랐기에 깜짝 놀라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한 생각이 조금 더 바뀌었다.두 사람은 함께 차에서 내려 부엌으로 향했다.유남우와 윤소현은 이미 도착했고,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윤소현은 어렴풋이 불쾌감을 느꼈다.곧 유남준과 그의 아내를 본 윤소현의 시선은 순식간에 박민정에게 고정됐다.과거 윤소현은 박민정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잠깐 조사만 한 적이 있었다.눈앞의 여자는 자신과 조금 닮아있었지만 박민정의 눈은 맑은 물이 가득 찬 듯 더욱 아름다웠고, 첫눈에 잊을 수 없는 첫인상을 남겼다.박민정이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윤소현의 내면에 있던 질투심이 조금은 누그러지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주버님, 형님.”박민정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래도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이곳에 와서 그녀도 윤소현을 유심히 살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영상에서 본 모습과 똑같았고 풍기는 분위기마저 한수민과 똑같았다.그 순간 유남우가 두 사람 앞에 다가와 유남준을 불렀다.“형.”유남준은 잘생긴 얼굴에 차가운 기색이 가득했다.“그래.”박민정이 유남준을 도와 자리에 앉자 식사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졌다.고영란은 여전히 방에서 유명진에게 오라고 연락하고 있었다.유명진은 기본적으로 중요한 일이 아니면 이곳에 돌아오지 않았다.통화를 끝내고 고영란이 부엌으로 왔다.부엌 안의 네 사람을
윤소현도 뒤따라 일어서서 같이 가려고 할 때 유남우가 그녀를 말렸다.“소현아, 넌 내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고영란 앞이라 윤소현도 거절할 수 없었다.그러나 마음속으로 내키지 않았다. 자신은 곧 그의 약혼녀가 될 사람이었기에 자신을 먼저 데려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유남우가 나가자 그녀는 조용히 주먹을 꽉 쥐었다.밖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고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쳤다.박민정은 유남우가 문 앞까지만 배웅해 줄 거라 생각하고 거절하지 않은 채 유남준의 옷자락을 잡고 앞으로 걸어가는데, 왠지 눈앞이 흐려져 길도 흐릿하게 보였다.그녀는 정신을 차리려고 손을 꽉 쥐었다.유남준은 유남우가 따라오며 손을 뻗는 것을 알고 박민정의 손을 따뜻하게 잡았다.박민정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손을 빼려고 했지만, 유남준이 박민정을 더 꽉 잡고 뒤에 있던 유남우에게 말했다.“여기까지 왔으면 됐어. 이런 일 할 시간에 회사나 잘 경영해.”유남우는 멈칫하며 곧바로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다.유남준은 그가 약을 탔다는 걸 아는 것이다.어쩐지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더라니. 그는 도리어 비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형,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뭐가 문제야?”두 사람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박민정은 정신이 흐릿한 탓에 눈치채지 못했다.너무 졸렸던 그녀는 자꾸만 닫히는 눈꺼풀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유남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유남준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안아 들었다.박민정은 그의 넓은 등에 기대어 버티지 못하고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몸에 불이 붙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유난히 불쾌했다.박민정이 잠든 것을 확인한 유남우는 더 이상 빙빙 돌리지 않고 유남준에게 말했다.“형, 이제 물건을 제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때야. 민정이가 사랑하는 사람은 형이 아니야.”유남준은 그 말에 웃음이 났다.“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법적으로 내가 남편인데. 탓하려면 애초에 나를 사칭한 너 자
차 안.박민정은 무척 괴로웠다. 의사도 과실주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몸이 힘들고 졸리고 더운 것 같았다.“유남준 씨,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나 차멀미 날 것 같아요.”“나한테 기대서 자면 어지럽지 않을 거야.” 유남준이 그녀를 따뜻하게 달랬다.박민정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두 사람은 유남준이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희미한 향기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목울대가 일렁거리면서 심장의 욱신거림을 억지로 누르고 있었다.드디어 차가 병원에 도착했다.박민정은 유남준의 부축을 받으며 곧장 개인 접견실로 향했다.두 사람은 한 시간 정도 검진을 받았고, 다행히 와인에 첨가된 물질이 몸에 아무런 손상을 주지 않아 약효가 떨어지기만 기다리면 괜찮을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김인우가 병실로 급히 달려왔다.“남준아, 무슨 일이야?”그 시각 박민정은 이미 잠이 들어 있었고 유남준은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한 뒤 두 사람은 병동 밖으로 나갔다.“남준아, 박민정 씨가 무슨 일로 병원에 온 거야?”“먹지 말아야 할 것을 좀 먹었어. 심각한 건 아니야.”유남준은 처음에는 너무 걱정돼서 김인우에게 와달라고 말했다.그는 앞이 보이지 않았으니까.오늘 일로 인해 더욱 짜증이 났고, 눈으로 볼 수 있었다면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괜찮아서 다행이야.”김인우의 긴장된 마음이 조금 풀렸다.박민정은 자신의 은인이고 아직 은혜를 갚지도 못했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된다.김인우는 유남준과 함께 남아 박민정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쫓는 말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유남준은 박민정을 데리고 돌아갔다.밤이 깊어질 무렵 박민정은 정신을 차린 듯 천천히 눈을 뜨고 방 안의 모든 것을 둘러보았다.살짝 움직이자 갑자기 그녀의 손이 따뜻한 무언가에 닿았고 조심스럽게 잡자 유난히 단단했다.박민정은 뒤돌아 유남준의 차가운 얼굴과 마주했고 그제야 방금 꽉 쥔 것이 유남준의
윤소현의 눈가에 오만함이 가득 담겼다.“어쨌든 내 새엄마가 그쪽 친어머니잖아요.”박민정은 그 말에 직격탄을 날렸다. “유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이 되려면 당연히 나를 형님이라고 불러야겠죠.”윤소현은 말문이 막혔다.어젯밤 유남우가 박민정을 돌려보내는 것을 본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여자의 직감으로 박민정을 미워하게 되었다.“아직 유씨 가문에 시집오기 전이니까 동생이라고 부를게.”윤소현은 말을 마친 뒤 앞으로 다가갔다.“동생, 오늘 약혼식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는데 같이 가줘야겠어.”유남우만 아니었다면 박민정은 그녀를 상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네, 10분만 기다려요.”그렇게 말한 후 박민정은 윤소현을 거실에 혼자 남겨두고 씻으러 갔다.윤소현은 자연스럽게 곳곳을 둘러보았다. 유씨 가문은 진주 제일 가문답게 유남준이 머무는 것도 심플하지만 곳곳에 화려함이 엿보였다.그에 비해 유남우가 사는 곳은 훨씬 더 평범했다.윤소현은 불만이 가득했다. 앞도 못 보는 유남준이 왜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사는 건지.박민정은 짐을 챙긴 뒤 유남준에게 말하고 윤소현과 함께 문을 나섰다.저택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검은색 링컨이 주차돼 있었다.차 문이 열리고 박민정이 차에 타려는 순간, 낯익은 인물이 차 안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됐고 윤소현이 먼저 말했다. “엄마 왔어?”그렇게 말한 뒤 고개를 돌려 박민정을 바라보았다.“동생, 인사도 안 해?”윤소현은 말로는 박민정을 동생이라고 불렀지만 눈 밑에는 조롱이 가득했다.한수민은 차갑게 말했다.“소현아, 쟤가 무슨 동생이니. 얼른 차에 타. 밖이 춥다.”윤소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박민정을 돌아보았다.“차에 타, 물건 사러 가야 해.”박민정은 북 치고 장구 치는 두 사람을 보며 차에 탔다.가는 길, 차 안의 분위기는 미묘했다.한수민은 윤소현의 손을 잡고 가운데 손가락에 낀 알이 큰 반지를 보며 감탄했다.“이거 남우가 사준 거 맞지? 예쁘다.”“네, 남우 씨가 맞춤 제작해 준 거예요.
한수민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박민정에게 뭔가 아는 게 있냐고 물으려던 찰나 박민정이 덧붙였다.“친딸인 제가 왜 의붓딸보다 못한 거죠? 그렇게 미워하면서 왜 날 낳았어요?”잔뜩 긴장하던 한수민의 신경이 그제야 느슨해졌다.그녀의 차갑고 화려한 얼굴에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널 낳지 않았을 거야. 네가 태어난 건 실수였어!”박민정은 이 대답을 수없이 들었고, 더 이상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가슴은 설명할 수 없이 아팠다.어쩌면 그녀도 다른 사람들처럼 모성애를 너무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박민정은 한수민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제가 선택할 수 있다면 저도 당신 딸이 되고 싶지 않아요.”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한수민은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두 손을 꽉 쥐었다.그 순간 윤소현이 다가왔다.“엄마, 무슨 얘기 했어요?”한수민은 박민정에게 보였던 차가움은 온데간데없고 다정한 모습만 남았다.“아무것도 아니야.”“엄마 박민정 안 좋아해요?” 윤소현은 조금 궁금했다, 이 세상에 딸을 사랑하지 않는 친엄마는 없지 않나?친엄마인 정수미는 해외 업무로 바쁜 와중에도 약혼식 날에 꼭 오겠다고 했다.게다가 정씨 집안의 사업 지분을 나눠줄 거라는 말도 했다.“걔 얘기는 하지도 마. 걔만 아니었어도 난 지금도 유명한 무용수가 됐을 거고, 이렇게 추락하지도 않았을 거야.” 한수민이 차갑게 말하자 윤소현은 이해한 듯 더 이상 묻지 않았다....유씨 가문 저택.박민정이 먼저 돌아와 차에서 내리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유남우가 보였다.큰 키에 비정상적으로 하얀 얼굴, 유남준과 똑같이 깊은 눈동자는 온화하고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다 샀어? 널 힘들게 한 건 아니지?”유남우가 앞으로 걸어오자 박민정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서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소현 씨랑 엄마는 뒤차에 있어요.”어쨌든 윤소현은 유남우 미래의 아내였으니 당연히 박민정은 유남우 앞에서 그녀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