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 가문 본가.박민정은 아침 일찍부터 조하랑 등쌀에 못 이겨 일어나게 되었다.자연스레 윤소현의 기사를 보게 되기도 했다.“민정아, 봤지? 기자들이 이런 빅뉴스를 그냥 놓칠 리가 없어.”박미정은 잠시 훑어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들은 한둘씩 삭제되기 시작했다.아침을 먹는 동안에 조하랑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불만을 토해냈다.“기사 내리는 속도가 너무 무서울 정도로 빠르지 않아?”“돈이 좋은 거지.”박민정이 말했다.박예찬과 박윤우도 윤소현에 관한 기사가 실시간 검색어에서 내려온 것을 알고 있었다.박예찬은 본래 해킹을 더 하면서 윤소현의 이름 석 자를 실시간 순위에 올리려고 했지만, 상대방이 이미 알아차리고 방화벽까지 가강하고 지키고 있었다.만약 또다시 해킹하러 들어간다면 정체가 드러날지도 모른다.박예찬은 이쯤에서 멈추면서 윤소현에게 이 정도의 교훈밖에 남기지 못했다.오늘, 한수민이 하관하는 날이다.박민정은 현장으로 가지 않았지만, 가족 채팅방에는 각종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한수민이 바람을 피운 일이 밝혀지면서 박씨 가문의 친척들은 한수민을 박형식 옆에 하관하는 것을 반대했다.박민호는 하는 수 없이 다른 자리를 알아봐서 하관할 수밖에 없었다.채팅방에 올라온 내용을 확인하고서 박민정은 그 채팅방에서 나와버렸다.앞으로 더는 한수민의 딸로 지낼 필요가 없게 되자,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다.“오늘 점심은 밖에서 먹자.”박민정이 제안했다.“좋아.”조하랑과 두 아이는 단숨에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박민정 일행은 근처에 리뷰가 좋은 식당으로 향했다.오늘은 보슬비가 종일 내리고 있다.박민정과 함께 며칠 동안 있었던 조하랑은 김훈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박예찬을 그리워하자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민정아, 미안해. 예찬이 좀 빌려줘야 할 것 같아.”박민정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오히려 괜찮다고 해주었다.“괜찮아. 어르신께서도 우리 예찬이 예뻐해 주시고 자기 손자처럼 여겨주고 계시는 데 우리야말로 고마운 일이야.”“엄
전화가 끊기고 나서 박민정은 더는 유남준을 걱정하지 않았다.한편.서다희는 지금 중환자실 밖에 서 있다.지금까지 유남준은 깨어나지 않았다.김인우가 들어가서 유남준의 몸 상황을 체크해 보았다.“아무 문제도 없는데... 왜 아직도 깨어나지 않는 거야...”“우리 대표님 깨어나지 못하시는 건 아니겠죠?”서다희는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물었다.지금까지 함께해 온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자기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기다려 봐요.”김인우는 서다희의 등을 토닥이면서 위로해 주었다.바로 그때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뭡니까? 여긴 개인 병원입니다.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왜 손찌검을 하고 그러는 겁니까!”이윽고 물건을 깨부수는 소리와 더불어 싸우는 소리 비명까지 들려왔다.김인우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누구지? 죽으려고 환장했나?”서다희 역시 믿어지지 않았지만, 곧 상대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블랙 코트를 휘날리며 성큼성큼 걸어서 들어오는 유남우가 보였다.유남우의 뒤에는 인상이 험상궂은 경호원들은 많았다.“유남우!”김인우는 멍해졌지만, 곧바로 깨닫게 되었다.어제 유남우는 김인우한테 유남준을 좀 더 신경 쓰라고 경고했었다.‘젠장! 당해버렸어!’유남우는 김인우를 상대조차 하지 않고 중환자실 밖으로 다가와서 안을 들여다보았다.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형 데리고 집에 가려고 온 거예요.”“장난해? 내가 있는 한 절대 그 누구도 남준이 데리고 갈 생각하지 마!”김인우가 말했다.서다희 역시 경계하면서 유남우를 바라보았다.“남우 도련님, 저희 대표님과 친형제 사이 아닙니까? 지금 상황으로는 절대 병원에서 모시고 나갈 수 없습니다.”“서 비서님도 말했다시피 우리 친형제 사이에요. 어떻게 자기 친형을 해칠 수가 있겠어요.”“오히려 두 사람이야말로 우리 형한테 무슨 짓을 한 거죠? 왜 저렇게 병상에 누워있는 거죠?”유남우가 물었다.유남준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도 모두 거짓말이었고
유남우는 서서히 힘에 손을 더하기 시작했다.만약 지금 이대로 유남준이 죽게 된다면 김인우와 서다희가 몰래 유남준을 죽인 것으로 덮어씌우면 그만이다.유남준에게 어떤 수술을 했는지 바로 죽었다면서.“형, 나 너무 탓하지 마. 뭐나 나하고 다투려고 빼앗으려고 했던 형 자신을 탓해.”유남우는 유남준의 입과 코를 꼭 막았다.“내가 먼저 민정이를 만났고 형이 없는 것을 나도 드디어 얻게 되는 줄 알았었는데, 민정이마저 형이 빼앗아갔어.”“그것만으로 부족하여 왜 날 가만히 두려고 하지 않았던 거야? 맨날 붙어 다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아? 민정이가 형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알아?”말하다 보니 유남우는 눈시울이 약간 붉어지기도 했다.“이제 다 끝났어. 형이 가고 나면 내가 형 대신 형수님 잘 챙겨줄게.”유남우는 일부러 ‘형수님’ 세 글자에 어세를 높였다.유남준에게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마냥 속이 시원하기만 했다.호흡이 가빠와서였는지 수술한 뒤로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유남준은 갑자기 눈꺼풀을 움직이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유남우의 손목을 꽉 잡았다.순간 유남우는 당황하면서 이를 악물고 힘을 더했다.안타깝게도 워낙 체질이 허약한 유남우인지라 유남준이 깨어난 뒤로 더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경호원!”유남우는 주저 없이 경호원을 불러들였고 차가 멈춰서자 장한 몇몇이 올라왔다.“남우 도련님.”지시를 내리려고 할 때 유남준이 두 눈을 벌떡 떴다.차 안의 모든 것이 똑똑히 보였다.그런 유남준을 바라보면서 유남우는 차갑게 웃었다.“형, 자는 척 한 거였어?”유남준은 대답하지 않았다.“척이든 아니든 오늘 형은 반드시 죽어야 해.”유남준은 그 말을 듣고서 오히려 의혹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물었다.“너 누구야? 나 집에 갈래.”순간 유남우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뭐라고?”“집으로 보내 줘. 배고파. 배고파.”유남준은 일어나서 앉더니 다짜고짜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배
유남준을 빼앗긴 뒤로 김인우와 서다희는 미친 듯이 찾아다녔지만, 유남우 그 미친놈을 찾아내지 못했다.두 사람 모두 크게 다친 상황이라 부하에게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남준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기게 된다며 나 평생 지옥에서 살 거야.”방비하고 있지 않았던 자신이 무척이나 한스러운 김인우이다.그에 비해서 서다희는 그나마 이성이 좀 있었다.“아직 들려오는 나쁜 소식도 없고 대표님 괜찮을 겁니다.”“무슨 근거라도 있어요?”김인우가 물었다.“만약 제가 유남우였다면 대표님을 죽이고 저희한테 뒤집어씌웠을 겁니다. 이렇게 질질 끌지 않고 말입니다.”두 사람은 지금 온몸이 아파서 간단한 대화조차 어려운 상황이다.잠시 말하고 나서 두 사람은 각자 쉬기로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서다희의 핸드폰이 계속 울려왔고, 민수아였다.민수아에게 다친 것을 들키게 될까 봐 서다희는 바로 받을 수 없었다.김인우는 다시 눈을 뜨면서 짜증이 잔뜩 서려 있는 말투로 말했다.“좀 받아요! 시끄러워 죽겠네.”만약 두 사람이 함께 유남준을 빼앗겨버린 게 아니라면 절대 서다희와 같은 방에서 지내지 않았을 것이다.서다희는 부하에게 핸드폰을 귓가에 좀 놓아달라고 했다.“수아야.”“왜 이제서야 받는 거야? 요즘 뭐 하고 다녔어? 전화도 없고 톡도 업고 나 말고 다른 여자라도 생긴 거야?”민수아가 퉁명스럽게 물었다.서다희는 부랴부랴 설명하기 시작했다.“그럴 리가... 요즘 야근하고 시간이 없었어. 며칠 지나서 너 찾으러 갈게.”“흥!”민수아는 화난 척하더니 진지한 모습으로 말머리를 돌렸다.“너희 대표님은 요즘 좀 어때? 민정이가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너희 대표님과 연관된 것 같아서 그래.”서다희는 자기 역시 유남준이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다.“수아야,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나중에 알게 될 일이니 그만 신경 끄는 게 좋을 거야.”“알았어. 나 안 보고 싶어?”민수아는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보고 싶지. 우리
“네, 지금 바로 갈게요.”홍주영과 함께 떠난 박민정을 보고서 최현아는 혼자서 중얼거렸다.“빌어먹을 년! 유남우가 유남준 동생이라는 것도 잊었나 봐?”이때 추경은이 뒤따라 왔다.“저런 사람이랑 얼굴 붉힐 것 없어요. 워낙 뻔뻔한 년이잖아요.”최현아는 자기와 함께 박민정을 욕하는 추경은을 보고서 무척이나 기뻤다.“아가씨,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이제 시간 봐서 할아버님께 아가씨 얘기 잘해 줄게요. 박민정이랑 이혼도 했겠다 유남준 곁에도 이제 여자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추경은은 감격해 마지 못했다.“고마워요, 올케언니.”유난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곧바로 후회를 금치 못하게 될 것이다.꼭대기 층, 대표이사실.박민정은 노크하고 허락을 받고 나서야 사무실로 들어섰다.고개를 푹 숙인 채 바삐 돌고 있던 유남우는 박민정이 들어오는 것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간단하게 차려입은 박민정이지만, 메이크업조차 하지 않은 박민정이지만 유난히 빛이 났다.아쉬운 점은 오른쪽 얼굴에 있는 그 흉터뿐이다.“앉아.”유남우가 말했다.박민정은 앞으로 다가가 소파에 앉았다.“대표님,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유남우는 컴퓨터를 끄고 나서야 운을 떼기 시작했다.“말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으면 좋겠어.”엄숙하기 그지없는 유남우의 모습을 보고서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네.”“형이 요즘 수술을 받았는데, 안타깝게도 수술이 잘 안 됐어.”유남우는 천천히 말했다.그 말을 듣게 된 순간 박민정은 머리가 윙 해지면서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럼, 지금...”말을 채 하지도 못한 채 박민정은 당장 자리에서 일어날 모습을 보였다.그런 박민정의 표정 변화를 살피면서 유남우는 다소 섭섭한 감정이 들었다.“상황이 많이 안 좋아.”“지금 어디에 있어요?”박민정은 손을 꼭 움켜쥐면서 가능한 한 이성을 유지하고자 애를 썼다.‘그래서 이혼하자고 했던 거야?’‘그냥 말하지 그랬어... 바보야...’“잠시 조용한 곳에서 휴양할 수 있게끔 데
유남우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저었다.“실은 그전까지만 해도 남준 씨가 나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자기 안전은 뒤로하고 나부터 살리려고 하던 남준 씨를 바라보면서 알게 되었죠. 나한테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처음에는 아이들 때문에 남준 씨랑 다시 만나기로 한 거였어요. 근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새 내 마음도 기울이고 있더라고요.”유남우는 그 모든 말을 듣고 있으면서 부드러운 눈매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그 말인즉슨,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이때 유남우는 갑자기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괜찮아요? 병원에 갈까요?”박민정이 물었다.그러자 유남우는 손을 흔들면서 기침이 좀 줄어들고 난 뒤 텀블러를 꺼내 들어 따뜻한 물 한 모금을 마셨다.“괜찮아. 고질병이라서 그래.”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운전기사는 유남준이 있는 장원 안으로 핸들을 꺾었다.아주 외진 곳으로 사방에 경호원이 깔려 있으며 바람이 풀잎에 스치기만 해도 유남우는 모두 알게 되어 있다.“여기야. 그만 내리자.”“네.”박민정과 유남우는 그렇게 차에서 내렸다.장원 안은 엄청나게 밝았고 두 사람이 아직 집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물건을 깨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집에 갈래! 집에 갈래! 집... 집에 보내줘...”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박민정은 심장이 바짝 조여왔다.이때 유남우가 입을 열었다.“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 형 더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의문을 품고 문을 여는 그 순간 박민정은 바로 알 수 있었다.널찍한 거실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놓여 있었고 유남준은 엉클어진 옷차림으로 머리까지 흐트러진 것이 꼬질꼬질한 모습이었다.유남준은 지금 한창 질서 없이 물건을 던지고 있었다.도우미들은 행여나 다치기라도 할까 봐 멀리 떨어져 있었다.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박민정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꽃병 하나가 박민정을 향
유남준의 현재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리는 박민정이다.박민정의 말에 유남우는 걸음을 멈추었다.“안 돼.”“형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너도 봤잖아. 너랑 아이들 다칠 수도 있어. 그리고 이곳엔 의료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어. 무엇보다도 너희 두 사람 이미 이혼했는데, 형을 너한테로 보낸다고 하면 우리 집안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유남우의 설명을 듣고 나니 박민정은 자기가 조금 전에 뱉었던 말이 이상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유남준에게는 강력한 유씨 가문이 받쳐주고 있으니 이곳에서 치료를 받는 게 자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다시 판단하게 되었다.“네, 그럼, 수고하세요.”“수고라니... 우리 친형인데 동생인 나만큼 걱정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유남우는 그럴듯하게 대답했다.이윽고 유남우는 본래 직접 박민정을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했으나 회사로 돌아가겠다고 박민정이 거절했다.회사로 가면 운전기사가 데리러 온다고 말이다.유남우는 곳곳마다 자기와 거리를 두려는 박민정의 태도에 달갑지 않았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박민정이 자기 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 유남우는 다시 유남준이 있는 장원으로 돌아왔다.도착하자마자 도우미 한 명을 밖으로 불러와 물었다“오늘은 어땠어?”“도련님께서 오늘 낮에는 주무시기만 하셨습니다. 오후 3시쯤이 되어서야 깨어나셨고 깨어나자마자 물건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겨우 진정하시고 또다시 주무고 계십니다.”도우미가 공손하게 대답했다.유남우는 그 말을 묵묵히 듣고서 유남준이 있는 방으로 천천히 다가갔다.도우미의 말대로 자는 유남준이 보였다.씻지도 않은 채 온몸이 지저분한 것이 카리스마를 풍기면서 상업계를 주름잡던 그 유남준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내려가 봐.”“네.”도우미는 내려가기 전에 방문을 닫아주었다.방안에 둘만 남게 되자, 유남우는 손을 내밀어 유남준의 팔을 다쳤다.“형.”유남준은 아주 깊게 잠들어 있었다.인기척에도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유남준이다.“형!”
유명훈이 맨 앞에 앉아있었다. 고영란과 유남우는 나란히 앉아 있었고 늘 강인하기만 하던 그녀도 지금은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실려 오는 서다희의 모습에 고영란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서 비서, 어쩌다 이지경이 된 거야?”들것에 엎드린 서다희가 고개를 들어 고영란 옆의 유남우를 쳐다보았다. 이곳에 부른 이유를 아직 알 수 없었기에 서다희는 먼저 고자질 하지 않았다. “큰사모님, 어르신. 무슨 일 때문에 부르셨어요?”“남준이가 왜 머리를 열고 수술을 한 건가? 왜 미치광이가 된 거야?”유명훈이 물었다. 서다희가 순간 멍해졌다. “미치광이요?”유남우가 걸어내려 오며 말했다. “이게 바로 서 비서님이 한 짓이에요.”유남우는 휴대폰으로 영상 하나 서다희에게 보여주었다. 영상을 보던 서다희의 눈빛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이럴 리가...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는 거지?”‘결국, 수술이 실패한 건가?’유남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만약 제가 아니었다면 혹시 우리 형, 이보다 더 한 일도 겪었어야 했나요?”서다희에게 따져 묻는 유남우는 김인우의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워낙 가깝게 지내던 사이라 김인우에게 죄를 물을 수가 없었다. 영상 속 유남준의 모습을 보는 서다희의 마음은 실망으로 가득 찼다.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으니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다. “저희는 대표님 머리에서 유리 조각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 유리 조각은 대표님의 기억에 가끔씩 이지만 혼란을 가져왔어요. 그 이유로 대표님은 수술을 통해 기억력을 회복하고 싶어 하셨죠. 하지만 그 수술은 후유증을 남길 수 있었어요. 바로 지적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였죠.”서다희는 유남준의 시력 회복을 위해서였다는 얘기는 숨겼다. 유남준이 괜찮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리에 있던 세 사람은 서다희의 대답에 말을 잇지 못했다. 고영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는데 왜
윤소현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 유남우가 이어서 한 말이었다.“내가 왜 너에게 아이를 낳게 했는지 알아?”윤소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왜요?”“민정이 대신 너한테 복수하려고! 네가 민정이 아이를 다치게 했잖아? 나도 너한테 아이가 다치는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하고 싶었어!” 유남우의 얼굴은 왜곡되어 있었고 그의 모습은 마치 악마 같았다.윤소현은 온몸을 떨었다.그녀는 유다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가 낳은 아이였다.“유남우 당신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이제야 그녀는 자신이 유남우를 전혀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다혜는 아직 이렇게 어린데 어떻게 그래?”“너도 아이를 아끼는 마음이 있구나?” 유남우가 되묻자 윤소현은 한순간 말을 잃었다.유남우는 그녀가 말이 없자 사람들에게 명령해 그녀를 풀어주었다.“이젠 얌전히 있네?”윤소현은 더는 감히 반항할 수 없었다.“박민정이 이렇게 하라고 시킨 거예요?”그녀는 여전히 유남우를 좋아했기에 그가 한 모든 행동이 박민정의 조종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려 했다.“네가 감히 민정이를 언급해? 너만 아니었으면 민정이는 지금도 나와 함께 있었을 거야!” 유남우는 단호하게 말했다.“박민정 같은 변덕스러운 여자가 뭐가 그렇게 좋아요? 심지어 유남준과 아이가 네 명이나 있잖아요. 그런데 왜 굳이 그 여자를 쫓아다니는 건데요? 내가 뭐가 부족해요?”윤소현이 격한 목소리로 따지자 유남우는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네가 뭐가 부족하냐고. 민정이는 모든 면에서 너보다 나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민정이는 원래 내 사람이었어. 이제 다시 찾아올 거야.”유남우의 머릿속에서 박민정은 호산 그룹과 같은 존재였다. 그녀도 그룹도 모두 그의 것이어야 했다.만약 그가 아프지만 않았더라면, 만약 어긋난 일만 없었다면 그는 호산 그룹의 주인이었고 박민정은 그의 아내였을 것이다.윤소현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눈치챘다.유남우의 마음에는 박민
유남준이 앞으로 나섰다.“안으로 들어가자. 민정아, 네가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지금 당장은 이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기억하지 못한다고?모두 놀라움에 말을 잃었다.박민정도 미안한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죄송해요, 저...”“민정아, 들어가서 잠시 앉아. 우리한테 사과할 필요 없어. 우리는 다 네 친고영란.” 조하랑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그래요, 기억이 안 나면 천천히 떠올리면 되죠. 정말 기억이 나지 않으면 우리가 다시 소개할게요.”“맞아요, 다시 소개하면 되죠, 뭐.”그들은 박민정을 거실로 안내했다. 집 안은 예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박민정이 사라진 후로 유남준은 이곳의 어떤 것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박민정은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해졌고 익숙한 풍경을 보자 머릿속에 몇몇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더 이상 떠올리려 하면 두통이 심해져 급히 생각을 멈추었다. 조하랑은 그녀를 소파에 앉혔고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차례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보스, 저는 진서연이에요. 보스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었죠. 보스랑 함께한 지...” 진서연은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했다, “벌써 5년은 넘었어요.”5년이나?박민정이 진서연의 귀여운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알겠어요. 기억해둘게요.”이상하게도 진서연을 비롯한 이들에게는 경계심이 들지 않았다.그다음은 민수아가 다가왔다.“민정아, 우리는 재작년에 처음 만났어. 난 유 대표님의 비서인 서다희의 약혼녀야. 내 이름은 민수아라고 해.”설인하도 자신을 소개하며 박민정을 자신의 은인이라고 말했다.“민정 씨, 민정 씨가 사라진 이 1년 동안 아이가 정말 많이 변했어요. 이제 거의 두 살인데 벌써 ‘이모’라고 부를 줄 알아요!”김인우도 자신을 소개했다.“민정아, 난 남준이 친구 김인우야”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눈앞의 상황을 보며 유남준이 자신을 속이지 않았음을 느꼈다.그때 유남준이 말했다.“자, 민정이가 갓 돌아오고 아직 밥도 못 먹었을 텐데, 일
서다희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제 생각엔 유남우 씨는 심리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사람 같아요.”박민정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유남준은 그녀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차 안에 먹을 걸 많이 준비해뒀어. 좀 먹어두는 게 어때? 가는 길이 꽤 멀 거야.”박민정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이제 더는 저항하지 않는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고향으로 돌아가 유남우가 자신에게 또 무엇을 숨겼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진주시.박민정이 무사히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이미 박윤우와 주변 사람들에게 전했다.두원 별장 별장에서 김인우, 조하랑, 진서연 등 모두 소식을 듣고 서둘러 찾아왔다.“윤우야,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정말로 민정이가 돌아오는 거 맞아?” 조하랑이 흥분된 목소리로 묻자 박윤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럼요! 제가 이런 걸로 거짓말하겠어요?”박예찬도 옆에서 말했다.“어제 제가 직접 엄마가 있는 도시를 검색했는데 정말로 CCTV에서 엄마가 찍힌 걸 봤어요. 엄마는 아무 이상 없었어요.”박예찬의 말에 더 신뢰가 실렸고 사람들은 더욱 기뻐했다. 이제 모두 박민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게다가 박민정을 환영하기 위해 각종 음식을 준비했다.그날 오후 비행기는 진주시 공항에 착륙했다.박민정은 차에 올라탄 후 익숙하면서도 낯선 진주시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기억 속에서는 흐릿하기만 하던 이곳이 다시 보니 이상할 정도로 친숙하게 느껴졌다.차는 드디어 두원 별장 앞에 도착했다.밖에서 본 별장의 모습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외부의 풍경은 왠지 모르게 낯익었다.‘분명 여기 온 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유남준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이미 박윤우에게 박민정이 오늘 돌아온다고 알렸는데, 설마 잊은 걸까?“들어가자. 여기가 우리 집이야.”박민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뒤를 따라 별장으로 들어갔다.문을 열자마자 별장 안의 모든 불이 켜지며 사방이 알록달록한 장식으로 물들었다.그 순간
박민정은 이미 문 앞에 서 있었다.윤소현은 박민정을 보자마자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박민정! 너... 정말 살아 있었어!”윤소현은 충격에 빠지면서도 박민정을 없애지 못한 이지원을 원망했다. 왜 박민정이라는 재앙을 없애지 않았는지, 속으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아마도 낯익은 사람을 다시 보았기 때문인지,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박민정의 머리가 은은히 아파왔다.유남우는 박민정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가 막을 새도 없이 윤소현이 곧장 박민정에게로 달려갔다.“박민정, 왜 이렇게 집요하게 따라오는 거야? 왜 내 남편을 유혹했어? 너도 남편과 아이가 있는 사람이면서 왜 이렇게 뻔뻔한 거야?”그녀의 남편을 유혹했다고?박민정은 유남우를 바라보았다.유남우는 급히 다가와 윤소현의 손목을 잡고 박민정에게 설명했다.“민정아, 이건 다 헛소리야. 우린 혼인 신고도 하지 않았어. 우리는 단지 비즈니스 결혼이었고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거야.”윤소현은 이 말에 완전히 무너졌고 분노에 차서 말했다.“뭐라고요? 우리가 혼인 신고를 안 했다고요?”유남우는 그녀에게 더 말할 틈을 주지 않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며 밖으로 나갔다.“유남우, 이 자식아! 놔! 놓으라고!” 윤소현은 계속해서 소리쳤다.“우리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딸은 뭐가 돼요? 나는 당신의 합법적인 아내라고요!”박민정은 멀리 서 있으면서도 윤소현의 말을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머리가 더 아파졌고 약을 가지러 가려 했다.그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민정아.”박민정이 멍하니 돌아보자 유남준이 시야에 들어왔다.“무슨 일이에요? 손 놓아요. 저는 약을 가지러 가야 해요.”“그 약은 이제 먹으면 안 돼. 그건 기억을 회복하는 약이 아니야.” 유남준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녀를 덥석 안았다.박민정은 몸이 휙 들려 올라가며 무의식적으로 그의 옷을 붙잡았다. “뭐 하는 거예요?”“너 지금 상태가 심각해.
박민정은 젓가락을 들지 않았는데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왜 그래?” 유남우가 묻자 박민정은 폰을 유남우에게 건넸다.“오빠, 인터넷에서 저랑 유남준 씨에 관한 많은 정보를 찾아봤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저를 속이지 않았더라고요. 오히려 오빠가 말한 것과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이 말에 유남우는 박민정에게 음식을 담아주던 손을 멈췄다. “민정아, 사실 몇 가지 일은 내가 너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어. 네가 더이상 상처 받는 걸 원하지 않았으니까.” 유남우가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말하자 박민정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진실을 말해줄 수는 없어요?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른 채 바보처럼 속고 싶지 않아요.”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진실보다도 지금 오빠가 저를 속이는 게 더 상처받는 일이에요.”유남우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유남준이 말한 건 사실이야. 너는 유남준과 결혼했고 아이도 있었어.”박민정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유남우의 입에서 직접 듣게 되니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그 다음은요?”“너희는 이미 이혼했어. 유남준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고 너를 잘 대해주지 않았지.” 유남우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어릴 때 너한테 내 이름이 유남준이라고 말한 거 기억나? 그건 네가 사람을 잘못 알아봤기 때문이야. 내가 심각한 병으로 해외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너는 유남준을 나로 착각하고 결혼했지.”박민정은 그 모든 이야기가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느껴졌다.“그리고요?”“결혼 후에도 유남준은 늘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 유남우는 사진 한 장을 꺼내 박민정에게 보여주며 말했다.“이 사람 기억나?”박민정가 어떻게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수 있겠는가?그녀는 바로 어릴 적부터 박씨 가문의 지원을 받았던 이지원이었다. 박민정은 어린 시절부터 이지원과 함께 자랐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박민정의 마음 한구석에 설명할 수 없는 반감이 솟아올랐다.“유남준
박민정은 온몸이 얼어붙은 듯했다. 그 순간, 그녀는 입을 벌려 유남준의 팔을 물어버렸다.유남준은 팔에 느껴지는 고통에 숨을 들이켰다. “박민정!”박민정이 입을 약간 열며 말했다.“얼른 나가요! 안 나가면 저 정말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그녀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한 유남준은 서서히 두 손을 놓았다.“몸이 괜찮아지면 인터넷에서 찾아봐. 나는 절대 널 속이지 않았어.”그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다.그가 떠난 후 박민정은 즉시 발코니의 유리문을 닫았다.머리가 그리 아프지 않게 된 그녀는 폰을 꺼내 유남준의 이름을 검색했다.곧바로 유남준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예전 호산 그룹의 대표였다는 것과 한 번 결혼을 했다는 내용뿐이었고 그 외의 정보는 거의 없었다.그가 유남우의 형이라는 건 사실이었다.박민정은 다시 자신과 유남준을 검색해 보았고 결국 두 사람에 관한 몇 가지 뉴스 기사를 발견했다.뉴스에 나온 내용은 유남준이 말한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녀는 유남준과 정말로 결혼한 적이 있었다.이 사실은 박민정에게 마치 번개처럼 강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믿었던 유남우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왜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야? 왜?”그녀는 혼잣말을 했다.박민정은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았고 과거의 자신이 작곡가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그랬구나, 그래서 그 곡들이 그렇게 익숙할 수밖에 없었어...”하지만 왜 이 모든 것을 지금은 기억해낼 수 없는 걸까?그날 밤, 박민정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하루 종일 자신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며 결국 그녀는 한 아이의 방송을 발견했다. 바로 유남준이 그날 영상 통화를 하자고 했던 그 아이였다.“엄마, 지금 어디 있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언제 돌아와요?”“여기 계신 아저씨, 아줌마들! 제 엄마 보시면 꼭 알려주세요.”박윤우는 카메라 앞에서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하며 끝으로 박민정의 사진이 나왔다.이 영상은 올해 초에 공개된 것이었다.만약 유남준이 아이를 시켜 연극을 하게 한
박민정의 마음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빨리 나가요!”유남준은 그녀가 너무 흥분할까 봐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조용히 해.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네가 봐야 할 사진도 있고 여러 가지 보여줄 것도 많아.”박민정은 무서워해야 마땅했지만 이상하게도 유남준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졌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유남준은 그제야 그녀를 놓아주고 자신의 폰을 건넸다.“지금 진주시에 없으니 내가 사람을 시켜서 보내온 사진이야. 우리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도 있어.”박민정이 무심코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화면을 열어보니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했다.사진 속에는 그녀, 또 두 명의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 그리고 유남준이 있었다.또한 그녀가 조하랑, 그리고 다른 몇 명의 여성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유남준은 그녀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조하랑 기억나? 네 가장 친한 친구야. 그리고 이 사람들, 네 친구들인데 이름은 설인하, 진서연, 그리고 민수아야.”박민정이 그 말을 들으면서 믿을 수가 없었다. 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을까?“진짜예요?”그녀는 사진을 자세히 보았지만 편집된 것 같지 않았다.“당연히 진짜야.” 유남준은 대답했다. “내가 널 속일 리가 없잖아. 널 속인 사람은 유남우야.”박민정은 계속해서 다음 사진들을 넘겨보았는데 이번에는 아직 포대기에 싸여 있는 쌍둥이 아기들의 사진이 나왔다. “이건 작년에 네가 막 낳은 아이들이야. 여긴 박현우, 박현진. 우리 아이들은 네 성을 따랐어. 나는 네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고.” 유남준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박민정은 아기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속에서 묘한 감정이 피어났다.그녀는 폰을 꽉 쥐며 말했다.“말도 안 돼요.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다고요.”그녀는 기억해내기 위해 애썼지만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다.유남준은 그런 박민정을 보며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안았다.“괜찮아?”“약... 약 가져다줘요. 서랍에 있어요.”
유남우는 예전처럼 그만두지 않았고 계속해서 다가갔다.박민정은 자신이 왜 이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불편했다.“그만...!”박민정이 손을 들어 유남우의 접근을 막았다.“오빠, 지금은 정말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유남우가 잠시 멈추더니 목젖을 살짝 움직였다.하지만 이번엔 그는 신사답게 멈추는 대신 박민정의 옷을 풀기 시작했다.“민정아, 우리 진주시로 돌아가자. 가서 결혼해. 응?”박민정은 그의 손을 막으며 말했다.“저... 결혼은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그녀는 유남우에게서 몸을 빼내려 했지만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유남우는 박민정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오빠, 이러지 말아요. 나 무서워...”그 순간, 박민정은 몸과 마음이 유남우와의 접촉을 거부하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분명 이전에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인데 왜 이렇게 거부감이 들까?그 이유를 그녀 본인도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확실히 원하지 않았다.유남우는 그런 박민정의 반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왜 박민정이 기억을 잃고 나서도 여전히 자신을 거부하는 걸까.그는 멈추지 않았다.박민정은 자신이 그를 거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연인 관계였고 지난 1년간은 그녀의 병 때문에 각방을 써왔었다.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박민정은 자신이 유남우를 선택했다는 것을 기억했다.기억을 잃기 전이라면 분명 그를 좋아했을 것이다.그리고 그녀는 이미 자신의 첫 잠자리를 다른 사람과 가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유남우가 이렇게 오래 참아왔는데 그녀가 계속 거부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더 이상 거부하지 않았고 유남우는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그러나 그가 더 나아가려던 순간, 손끝이 차가운 감촉에 닿았다.고개를 들어보니 박민정이 눈을 꼭 감은 채 눈물 한 방울이 눈가에서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이 순간, 그의 가슴은 깊고 날카로운 고통으로 가득 찼다.유남우는 곧바로 옆에 있던 담요
“무슨 일이야?”유남우가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도련님, 큰일입니다. 회사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많은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매도하면서 주가가 폭락했어요. 게다가 유석진이 다시 주주총회를 소집하려 하고 있습니다.” 홍주영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유남우는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일단 상황을 최대한 안정시켜. 곧 돌아갈게.”“도련님, 저 혼자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요. 고 사모님도 이미 도착했는데 유석진이 회의에서 그분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습니다!” 홍주영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났다.그녀는 유남우가 해외에서 무슨 중요한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회사를 방치하고 떠날 일이 있는지 의문이었다.유남우는 핸드폰을 쥔 채 눈앞의 박민정을 바라보며 한순간 갈등에 빠졌다.유남준은 그의 통화 내용을 알아채고는 비웃듯 말했다.“회사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민정이를 책임지겠다는 거지?”말을 마친 유남준은 핸드폰을 꺼내 박민정의 눈앞에 내밀었다.“민정아, 이걸 봐. 이건 우리 결혼 증명서야.”박민정이 핸드폰 화면에 비친 결혼 증명서를 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사진 속에서 자신은 하얀 셔츠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고 옆에는 유남준이 앉아 있었다.그리고 증명서에는 두 사람 선명히 적혀 있었다.유남우는 더 이상 전화를 이어가지 않고 홍주영과의 통화를 끊어버렸다.“민정아, 이런 증명서는 원하는 만큼 만들어낼 수 있어. 전혀 믿을 가치가 없어.”그러자 유남준이 도전적으로 물었다.“그렇다면 민정이가 나와 함께 진주시로 돌아가는 걸 허락할 수 있겠어?”유남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민정이는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 돌아가는 건 무리야.”“어디가 아픈 건데?” 유남준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묻자 유남우는 비웃음을 섞어 말했다.“민정이 몸 상태조차 모르는 주제에 남편이라니. 우습지 않아?”그는 유남준을 무시한 채 대놓고 박민정의 손을 잡았다.“가자, 민정아. 방으로 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