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예찬은 카카오톡 계정에 로그인한 후, 김인우한테 영상통화를 걸었다.김인우가 의료계의 전문가들과 머리 수술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화면에 뜬 ‘박예찬’이라는 글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핸드폰은 회의용 모니터에 연결했는데 박예찬의 비고에 ‘전생의 빚쟁이’라고 되어있는 것을 모두가 보고 있다.그는 휴대폰과 모니터의 연결을 취소한 후 밖으로 나가면서 응답을 눌렀다."무슨 일이야?" 화면에 잘생긴 녀석의 얼굴이 나타나는 순간, 김인우는 질투 난 듯 물었다.김인우가 서 있는 배경을 본 박혜찬은 물었다."아저씨, M 국에 출장 간 거 맞아요?"박예찬을 어린애로 취급하는 김인우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그래, 왜? 할아버지가 또 날 찾았어?"역시, 눈치는 고물만큼도 없는 김인우였다.박예찬은 김인우의 등위의 진주시에서만 있을 수 있는 식물을 보고 그곳이 M 국이 아니라고 판단했다.“아니요, 하랑 이모가 저한테 전화 왔는데 아저씨가 그쪽에서 잘 보내고 있는지 좀 알아보라고 해서요.”박예찬은 태연스럽게 대답했다.“뭐? 조하랑이 언제 나한테 관심이 있었다고.”김인우는 약간 놀라면서 조하랑이 늦게야 철들었느냐고 생각했다.“하랑 이모가 겉으로는 기가 센 척하지만, 속은 여러 터졌어요. 아저씨와 이모가 서로 안면을 익힌 지가 1년은 넘었을 텐데 어쩜 그렇게도 이모를 몰라요. 이모가 직접 묻기 쑥스러우니 저한테 시킨 거죠.”김인우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럼 내가 너무너무 잘 있다 이모한테 전해줘. 그리고 이모는 아저씨의 이상형이 아니니깐 나한테 반하지 말라고 전해줄래?”따라서 또 한마디 보충했다.“얘, 여기에 금발에 파란 눈동자 미녀가 엄청 많다, 돈 많으면 그래도 싱글이 좋다.”통화를 마친 김인우는 조하랑이 자기를 관심한다는 말을 듣고 왜선지 가슴이 약간 설렜다. 비록 말로는 조하랑이 싫다고 했지만.박예찬은 김인우와의 통화 시간만으로 충분히 김인우의 현재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다.“단양길에 있는 사립병원에 있어.”
“잘했어. 아무나 주는 선물을 함부로 받으면 안 돼, 덫에 걸리기 쉬우니깐, 알았지?”조하랑은 박예찬을 칭찬했다.“알았어, 이모.”박예찬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오랫동안 옆에서 형의 일거일동을 쭉 살펴온 박윤우는 탄복했다. 새빨간 거짓말을 하면서 어쩜 낯빛 하나 안 변할 수가 있지? 어쩜 형이 자기를 늘 이렇게 속여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어서 빨리들 씻고 자야지?”“알았어, 이모.”둘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아이들을 재운 후, 세 여자는 소파에 앉아서 이것저것 먹으면서 수다를 떨었다.박민정이 제일 먼저 피곤하다면서 방으로 들어갔다.조하랑은 참지 못한 채 민수아한테 물었다.“수아야, 넌 다희씨와 같이 있을 때 감각이 어땠어?”기억 속에 서다희는 말수도 적고 성격도 도도하여 여자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차가운 남자다.“괜찮아, 왜?”“그럼 요즘 유남준에 대한 아무런 얘기도 못 들었어? 왜 갑자기 민정이랑 이혼 못 해서 안달이 났던 건지 통 이해가 안 돼서.”조하랑은 사탐 하는 어조로 조심스럽게 물었다.사실, 민수아도 이 일이 무척 궁금했었댔다. 하지만 최근에 서다희는 유남준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사실은 나도 다희 씨가 일부러 뭔가를 숨기려 하는 것 같았어. 근데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거든.”민수아가 갖은 수단을 부렸지만, 서다희는 입을 꼭 다물고 말해주지 않았다.“그렇구나.”조하랑이 소파에 기댄 채 수심에 잠겼다.민수아는 이튿날에 출근해야 하기에 두 사람은 금방 잠자러 들어갔다.조용히 잠자리에 누운 조하랑은 옆에 누운 박민정이 자지 않고 핸드폰만 만지는 것을 보고 말했다.“피곤하다면서, 왜 아직 안 자?”박민정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잠이 잘 안 와서 좀 봤어.”조하랑은 박민정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넌 임신부야, 수면시간은 꼭 지켜야 해, 그만 보고 자?”“알았어.”박민정은 방금 핸드폰으로 한수민이 돌아가는데 관한 기사를 보고 나서 잠을 들이지 못하고 있었다.보도에는 한
조하랑은 성격이 데면데면한 축이다. 박예찬은 오늘 동생이랑 똑같은 옷을 입었다.“윤우야, 잠시 후 연기 잘할 수 있지?”“형, 걱정하지 마.”여전히 애티가 풀풀 나는 말투로 대답했다.집에 남은 사람이 조하랑만 아니어도 이런 하책은 쓰지 않을 거다. 한데 동생이 자기와 너무나도 달라서 이럴 수밖에 없었다.“간다.”박윤우가 박예찬의 팔을 붙잡으면서 말했다.“형, 돌아와서 무슨 일인지 꼭 얘기해줘.”찌질남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너무나 궁금했다.“알았어, 걱정하지 마.”박예찬은 동생의 팔을 밀어낸 후 뒷문으로 빠져나갔다.그가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조하랑은 방문 앞에서 노크하면서 말했다.“얘들아, 나와서 과일 먹자.”박윤우는 아주 자연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가면서 말했다.“이모, 윤우는 잠자고 있으니 내버려 둬요. 내가 먹을게요.”조하랑은 약간 놀라워했지만, 박윤우가 형으로 가장했는지는 몰랐다.“윤우는 괜찮은 거지? 왜 이 시간에 잠자?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박윤우는 포크로 과일을 찍어서 입으로 넣으면서 잘래잘래 머리를 흔들었다.“필요 없어요. 동생의 병은 원래 이래요. 습관적으로 잠자요.”“그렇구나.”조하랑은 종래로 박예찬을 어린애로 본 적이 없었는지라 의심하지 않았지만, 볼이 미어지게 먹고 있는 애를 보면서 물었다.“예찬아, 예전에 너 과일 싫어하지 않았나?”박윤우는 흠칫하며 먹던 것을 내려놓았다.“배불러. 방으로 돌아가서 놀래, 부르지 마.”시간이 길면 들통날까 봐 방 안에 숨어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알았어, 녀석.”조하랑은 못 이기는 척하면서 웃었다.박예찬은 별장 안팎에 설치된 CCTV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쥐도 새도 모르게 별장을 빠져나와 길옆에 서서 택시를 불러 탔다.“아저씨, 단양길에 있는 이곳으로 데려다주세요.”어제 카메라에 찍힌 길거리 화면을 기사한테 보여주었다.몇 살 안 돼 보이는 어린이를 본 기사는 의아스러웠다.“아가야, 엄마, 아빠는?”“아빠가 그곳에서 일해요. 지금 아빠
박예찬은 택시에서 내려 즉시 김인우를 추적한 위치에 따라 사립병원을 찾기 시작했다.드디어 눈에 잘 띄지 않는 병원 대문 앞에서 여러 명의 변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지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박예찬은 조심스럽게 대문으로 다가갔다. 워낙 체격이 작은 어린애라서 가림물을 쉽게 찾아 끝내 대문 근처까지 접근했다.대문 앞에는 가림물이 없었다. 그리고 뒷문도 어딘지 모른다.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뾰족한 수가 안 생겼다. 박예찬은 큰 나무 뒤에 숨어서 김인우한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때마침, 두 의사가 병원으로 들어갔다.딴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 박예찬은 두 의사의 뒤를 따라 들어가려고 시도했다.과연, 경호원들이 쫓아와서 앞길을 막았다.“얘! 저리 가서 놀아.”그중 무뚝뚝하게 생긴 경호원이 막아 나섰다.평범한 애들이라면 벌써 무서워서 울음보를 터뜨렸을 것이다.근데, 박예찬은 아주 태연하게 안을 가리키면서 말했다.“우리 아빠는 이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선생님이에요. 아빠가 나더러 오라고 했어요.”이 도발적인 상황에 경호원은 잠깐 망설이었다. 이 병원 직원들은 아직도 우에서 내린 명령을 받지 못해 애를 여기까지 데려왔나 싶어서 확인 전화를 걸려는 참이었다.“아!”갑자기 앞에 있던 애가 배를 그러안고 처참한 신음을 냈다.“왜 그래?”경호원이 급히 다가가서 물었다.“제 배가 너무 아파요… 똥 마려워요. 병원 안에 있는 화장실에 가서 똥 싸야겠어요. 전에 자주 왔댔어요… 나와서 아저씨랑 다시 얘기해요.”말도 끝내기 전에 박예찬은 안쪽으로 줄행랑을 놓았다.어린애가 거짓말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한 경호원은 행여나 해서 뒤쫓아 갔다.화장실의 표식을 본 박예찬은 재빨리 뛰어갔다.경호원은 밖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애가 화장실에서 나오면 밖으로 데리고 나갈 예산이었다.힘들게 병원까지 들어왔는데 순순히 나갈 수는 없었다.박예찬은 화장실 안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이때, 두 사람이 들어와서 작은 소리로 얘기를 나누
“아까부터 전화벨 소리가 계속 울리던데,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간호사가 다가와서 말했다.그 말에 박예찬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벨 소리가 울리지 않자, 간호사는 더는 다가오지 않았다.박예찬은 본래 3층으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위로 올라가는 모든 통로가 봉쇄되어 있었다.박예찬은 고사하고 파리 한 마리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다.하는 수 없이 2층의 어느 한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호산 그룹, 마케팅 부서.오늘 왠지 모르게 일하는 내내 마음이 불안한 박민정이다.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긴 하지만, 정확히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몰라 싱숭생숭하기만 했다.한수민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팀장님, 윤소현 씨께서 또 부르십니다.”노크하고 들어온 팀원이 박민정에게 말했다.박민정은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면서 물었다.“지금 어디에 있는데요?”“바로 옆 사무실에 계십니다.”“네, 지금 바로 갈 테니 그만 가서 업무 보세요.”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박민정은 눈앞이 흐려지면서 약간 휘청거렸다.바로 사무실 테이블을 짚긴 했으나 불안감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겨우 정신을 부여잡은 박민정은 팀원에게 손을 흔들면서 괜찮다고 표시했다.“나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이윽고 천천히 걸음을 내디디며 사무실을 나왔다.옆 사무실 안에는 윤소현, 최현아 그리고 추경은이 한창 웃음 보따리를 풀고 있었다.세 사람은 박민정을 보게 된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민정 씨, 오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내로 올 생각 없었죠?”윤소현이 먼저 비아냥거리면서 운을 떼기 시작했다.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아가 말리는 척하면서 맞장구를 쳤다.“엄마를 잃은 사람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 동서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줘.”“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잖아요.”윤소현은 한 손으로 턱을 괴면서 잔뜩 비꼬는 모습으로 덧붙였다.“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
단양길 개인 병원.구석에서 몸을 숨긴 채 이곳을 지키고 있던 박예찬.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으나 위층에서 진행하고 있는 수술은 끝나지 않았다.점심시간이 되었지만, 의사들은 그마저 반납해 버렸다.박예찬은 박윤우의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어떻게 됐어?][뭔가 좀 알아내긴 했어. 근데 좀 더 지켜봐야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박예찬이 바로 답장을 보냈다.답장을 보내자마자 꽁꽁 봉쇄해 놓았던 위층의 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의사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이 계단을 타고 우르르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김인우도 있었다.잔뜩 엄숙한 얼굴로 김인우가 입을 열었다.“다들 수고 많았어요. 주문해 놓았으니 얼른 식사부터 하시죠.”“네, 잘 먹겠습니다.”박예찬은 의료진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는데, 그중 연세가 좀 있어 보이는 몇몇은 확실히 의료계에서 유명한 의사였다.그중 박예찬이 알고 있는 신경과 전문의도 있었다.순간 박예찬은 모든 퍼즐이 맞춰졌고 ‘답’을 얻어낼 수 있었다.수술받은 사람은 바로 쓰레기 아빠 유남준이라는 것을.“근데 왜 엄마한테 직접 말씀드리지 않고 이혼하려고 한 걸까? 굳이 왜?”유남준에 대한 태도와 생각이 좀 바뀌게 되는 순간이었다.김인우 일행이 가고 나서도 박예찬은 3층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3층 문이 곧바로 닫혔을뿐더러 아직도 경호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 박예찬은 더는 병원에 머물지 않고 점심 먹으러 나서는 간호사들을 따라서 몰래 나왔다.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박예찬.때마침 박윤우도 조하랑에게 들통나기 일보 직전이었다.“예찬이 일어날 때 되지 않았어? 왜 못 나오게 하는 거야?”“비켜 봐봐. 들어가 봐야겠어. 무슨 일이라도 난 거 아니야?”조하랑은 박윤우의 방어를 뚫고 박예찬의 방으로 들어갔다.문이 열리는 순간 박윤우는 모든 게 들통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박예찬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이불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이모, 나 괜찮아.”무탈해 보이는 박예찬을 확인하는 순
박예찬은 마냥 의문이 들기만 했다.“익숙한 회사라고? 그럴 리가... 혹시 이 회사 본 적이 있어?”박윤우는 자기 노트북을 펼치고서 IM 그룹의 외부 사진을 자세히 훑어보았다.“쓰레기 아빠 회사인 것 같아.”그 말에 박예찬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말도 안 돼!’IM 그룹은 진주시뿐만 아니라 국내 곳곳에서 이름만으로 간담이 서늘해지는 존재이니 말이다.하물며 앞이 보이지도 않은 유남준인데, 회사를 차리다니 놀라울 따름인 일이다.“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박예찬이 물었다.“그럴 리 없어. 내가 형만큼 문자에 대한 기억력은 강하지 않지만, 그림에는 꽤 익숙하거든.”박윤우는 어느 한 건물 이미지를 가리키면서 덧붙였다.“쓰레기 아빠 회사에 간 적이 몇 번 있는데, 매번 여기로 들어갔었어.”박예찬은 박윤우가 가리키고 있는 건물을 보았는데, 그곳은 IM 그룹에 속하지 않은 곳이었다.따라서 모든 게 공교로운 일이라면서 마침 잇닿아 있는 회사라고 생각했다.“여긴 IM 그룹 영역이 아니야. 쓰레기 아빠 회사 규모도 얼마 되지 않을 거야.”박예찬의 말을 듣고서 박윤우는 더는 따지지 않고 그의 생각을 인정했다....호산 그룹.윤소현 일행은 박민정을 괴롭히려고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하지만 박민정은 앞으로 며칠 동안의 업무를 모두 마치고 가버렸다.“그냥 이렇게 간 거야?”화가 치밀어 올라 펄쩍펄쩍 뛰고 있는 윤소현이다.이때 마케팅 5팀의 팀원이 다가와서 말했다.“무슨 문제라도 있으시면 직접 저희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 팀장님께서 가시기 전에 저희한테 당부하셨습니다. 팀원으로서 저희도 팀장님 못지않게 프로젝트에 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윤소현은 모든 팀원을 흘겨보고 난 뒤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이윽고 바로 위층에 있는 대표이사실로 올라갔다.“남우 씨는 어디에 있어?”유남우는 대표이사실에 없었다.“대표님께서 요즘 바쁘십니다.”유남우 비서의 대답에 윤소현은 의혹만 들었다.‘뭐가 바쁘다는 거?
노크도 하지 않은 채 부랴부랴 들어온 윤소현을 보고서 정수미는 당황했다.서두도 없이 바로 친딸에 관해 묻자 그 역시 약간 언짢았다.“누구한테 들은 거야?”정수미는 아직 이에 대해 윤소현에게 알린 적이 없다.이성을 부여잡은 윤소현은 그제야 약간 뻘쭘하기 시작했으나 바로 기특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다름이 아니라 저 역시 동생에 관해서 알아낸 게 있어서 그래요.”“뭐라고?”정수미는 흥분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뭘 알아냈는데?”“동생에 관해서 알고 난 뒤로 저도 한번 알아봤는데, 한수민 씨 간병인의 딸이 바로 제 동생이었어요.”윤소현은 정수미가 이미 알아낸 내용을 다시 한번 말했다.그 말을 듣고 난 정수미는 그리 흥분하지 않았다.“나도 이제 알게 됐어.”“네? 이미 알고 계셨군요. 아직 모르시는 줄 알고 급히 달려온 건데...”그 모습을 보고서 정수미는 자기가 윤소현을 오해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소현아, 힘써줘서 고마워.”“그리고 미리 하는 말인데, 엄마가 설령 딸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절대 너에 대한 사랑은 줄지 않을 것이니 절대 걱정하지 마.”윤소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속 연기했다.“알고 있어요. 엄마야말로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동생이랑 서로 챙겨주면서 꼭 잘 지낼 거예요.”잘 지내기는커녕 정수미의 친딸이 바로 죽었으면 하는 윤소현이다.“그래.”정수미는 친딸을 찾아서 그동안 못 해준 것을 모두 해주고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정씨 가문의 재산을 모두 친딸에게 주려는 마음도 없었다.왜냐하면, 비서가 준 자료에 따르면 지금 친딸의 교육 배경으로는 정씨 가문을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윤소현의 마음이 결코 그리 순수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러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회사를 관리할 수 있고 절대 손해를 보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참, 소현아, 한수민 부고 소식 듣지 않았어? 인사는 하고 왔어?”정수미는 매정한 사람이 아니다.어찌 됐든 윤소현의 친엄마는 한수민이고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끊었다
정수미의 손이 공중에서 굳어버렸다.옆에 있던 윤소현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말했다.“혼자 사겠다니, 그럼 네가 직접 사는 거야? 아니면 남자가 대신 사주는 거야? 차라리 부모님 돈 쓰는 게 덜 창피하지 않겠어?”그 말이 떨어지자 방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옆에 있던 조하랑은 분노가 치밀어 단호히 반박했다.“윤소현 씨,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남자가 대신 사준다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정수미도 눈살을 찌푸리며 나섰다.“소현아, 말이란 건 가려서 해야 해. 할 말 없으면 그냥 조용히 있어.”윤소현은 마치 실수한 척하며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미안해요, 엄마. 알잖아요, 제가 원래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성격이라... 나쁜 뜻은 없었어요. 어제 외국에서 민정이랑 남우 씨가 같이 있는 걸 봤는데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전부 남우 씨가 돈을 쓰더라고요. 그래서... 어머, 이걸 말해버렸네.”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조하랑도 순간 입을 다물었고 박민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만약 유남우가 자신을 속였다는 걸 알았다면? 그에게 아내와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그랬다면 절대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소용없었다.정수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윤소현은 더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그 순간 유남준의 큰 키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윤소현 씨, 당신 생각에 우리 민정이가 다른 남자의 돈을 써야 할 만큼 부족한 사람처럼 보이는 겁니까?”윤소현은 말문이 막혔지만 억지로 목을 세우며 응수했다.“그럼 아니에요? 어제 민정이를 찾아갔을 때 그 장면을 똑똑히 봤잖아요?”유남준은 냉정히 되물었다.“그럼 왜 유남우가 쓴 돈이 전부 내 돈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내가 아니었으면 유남우가 어떻게 호산 그룹의 대표 자리에 올랐을 것 같아요?”윤소현은 빈정거리며 대꾸했다.“남우 씨는 자기 능력으로 성공한 사람이에요. 아
박민정은 두 아이가 자신의 뒤에 숨어버리자 조금 놀랐다.아이들에게 묘한 호감이 생긴 그녀는 진서연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서연아, 애들이 겁먹었잖아.”진서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알겠어요. 그런데 역시 보스는 애들 친엄마라 다르네요. 제가 전에 애들 볼 때마다 볼을 꼬집어도 이렇게까지 도망친 적 없었거든요.”그 말을 들은 박민정의 마음이 묘하게 따뜻해졌다. 진서연이 물러간 뒤 그녀는 뒤돌아 두 아이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자, 이제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박민정의 온화한 목소리에 두 아이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머쓱하게 형들 쪽으로 달려갔다.박윤우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두 아이를 향해 말했다.“오자마자 엄마한테 잘 보이려고 아부나 하고. 정말 짜증나.”반면 박예찬은 큰형다운 태도를 보이며 답했다.“아직 애들이잖아. 무슨 아부를 한다는 거야?”박윤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형은 몰라. 난 딱 보면 알아. 저 애들의 속셈이 뭐였는지 말이야. 참나.”형제들의 장난스러운 대화에 이어 아이들은 서로 어울려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설인하의 딸도 합류해 아이들 방이 금세 북적였다.한편, 서재에서는 고영란과 정수미가 박민정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듣고 있었다.“멀쩡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기억을 잃은 거야?” 고영란이 물었다.유남준은 가정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유남우와 관련된 이야기는 빼고 둘러대며 질문을 막아냈다.고영란은 더는 묻지 않았지만 정수미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기억 상실이 과연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서재를 나선 고영란과 정수미는 박민정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고영란은 박민정에게 유난히 다정한 태도로 손을 잡고 집안 이야기를 나누며 말했다.“기억을 잃었더라도 괜찮아. 천천히 다시 떠올리면 돼. 돌아온 이상 이제 푹 쉬면서 건강부터 챙겨야지.”박민정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그렇게 할게요.”반면 정수미는 옆에서 몇 번이고 무언가를 말하려다 망설였다. 그녀의
비서의 눈에 비친 정수미는 언제나 강인한 여성의 대명사였다. 그녀는 늘 당당하고 차가웠으며 이런 냉대를 받는 모습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비서는 정수미와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가며 눈빛에 깊은 동정을 담았다.한편, 별장 안에서는 박민정과 그녀의 친구들이 아침 준비로 분주했다.잠시 후, 밖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박현진과 박현우, 두 아이는 유난히 말이 많고 활발했다.“민정아.”손자들을 데리고 들어온 고영란이 거실로 들어서며 박민정을 불렀다.박민정은 부엌에서 진서연 등과 함께 아침 준비를 하고 있다가 고영란을 돌아보았다.화려하게 차려입은 귀부인과 그녀 곁의 귀여운 두 아이를 보며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곁에 있던 조하랑이 재빨리 귀띔했다.“저분이 유 대표 어머니야. 그러니까 네 시어머니.”박민정은 왜 그녀가 어딘가 익숙했는지 깨달았다. 어린 시절 그녀는 몇 번 유씨 집안을 방문하며 고영란을 만난 적이 있었다.박민정은 그녀에게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지만 감히 ‘어머니’라고 부르지는 못했다.고영란은 박민정의 어색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보모에게 손짓하며 말했다.“현진아, 현우야, 엄마한테 인사드려야지.”두 아이는 큰 눈으로 박민정을 빤히 바라보았다.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두 아이는 박민정에게 강한 호감을 느끼는 듯했다.그러다 박현우가 갑자기 박민정의 다리를 와락 끌어안았다.“어?”박민정은 깜짝 놀라 도망치려 했지만 아이가 넘어질까 걱정되어 결국 그대로 두었다.“이 아이들이 제 아이라고요?”박민정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몰랐던 사실들이 오늘 그녀의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은 듯했다.고영란은 그녀의 말을 듣고 의아해하며 말했다.“민정아,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물론 네 아이들이지. 네가 온갖 고생 끝에 낳은 아이들이잖아. 설마... 설마 너, 다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어머니가 어떻게 자기가 낳은 아이를 잊을 수 있단 말인가!박민정은 고영란에게 무슨 말을 해
“민정아,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어. 네 친엄마는 정수미야. 아마 너의 귀국 소식을 이미 알았을 거야.” 조하랑이 말했다.“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해 둬야 해.”조하랑은 과거에 정수미가 박민정과 박윤우에게 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친구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속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어젯밤 너희가 말해준 거 전부 기억했어.”“그럼 됐어. 이후 일은 네가 알아서 처리해.” 조하랑이 덧붙였다.예상대로였다. 고영란도, 정수미도 박민정이 무사히 돌아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정수미는 특히 날이 밝자마자 급히 찾아왔지만 보안 요원에게 출입을 막히고 말았다.“죄송합니다, 정 여사님. 대표님의 허가 없이는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보안 요원이 이렇게 말하자 정수미는 다급해졌다.“부탁이에요, 제 딸이 이 안에 살고 있잖아요.”보안 요원은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딸이요? 따님은 지금 본가에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정수미는 말을 잇지 못했다.결국 그녀는 유남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옆에 있던 비서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이건 분명 유 대표님의 결정이에요. 보안 요원이 이런 권한을 가질 리가 없잖아요.”정수미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박민정에게 빚진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괜찮아. 여기서 기다리면 되지.” 비서는 이런 정수미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겨우 친딸을 찾았지만 만나지도 못하는 그녀가 너무 불쌍했기 때문이다.정수미는 차 옆에 서서 멀리 집을 바라보았는데 유독 쓸쓸해 보였다.이때 멀리서 차 한 대가 다가왔다.차 안에는 고영란과 두 명의 손자가 타고 있었다.손자들이 정수미를 보자마자 옹알거리며 말했다.“외... 할머니.”“저 여자는 왜 또 왔지?” 고영란은 차에서 내리며 중얼거렸다.보모들은 두 아이를 데리고 차에서 내렸고 박현우와 박현진은 정수미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할머니... 외할머니.
유남준은 곧 전화를 받았다.“어머니, 무슨 일이세요?”“남우가 돌아왔는데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아. 시간이 나면 남우를 잘 살펴봐줘.” 고영란이 말했다.유남준은 그 말을 들었지만 고영란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네.”전화를 끊고 그는 거실에서 박민정과 함께 쉬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는데 그들은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오늘 여기서 자고 갈 거예요?” 그의 어조는 다소 차가웠다.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면 이미 떠날 준비를 했을 테지만 이들은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입을 모아 말했다.“네, 저희 이미 생각해뒀어요. 잠시 후에 이모님께 이불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할게요. 우리 다 같이 거실에서 잘 거예요.”박민정은 이런 분위기가 재밌게 느껴졌는지 거절하지 않았지만 유남준은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겨우 아내를 데려왔는데 둘만의 시간을 가질 여유조차 없다니...그는 이들을 내쫓고 싶었지만 박민정이 이들과 함께 웃으며 과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는 멈췄다.어쩌면 이런 대화가 그녀의 기억을 더 빨리 되찾게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호산 그룹.유남우가 회사에 도착했을 때 홍주영이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용히 깨웠다.“여기서 잠들다니, 무슨 일이야?”홍주영이 눈을 뜨고 그를 보자 기쁜 듯 말했다.“도련님, 돌아오셨네요.”“응.”유남우는 다시 물었다.“고향에 갔다고 하지 않았나? 왜 이렇게 빨리 회사로 돌아왔어?”“회사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걱정돼서 서둘러 왔어요.” 홍주영이 대답했다.“앞으로는 네 일에 더 집중해.” 유남우는 의자 하나를 빼며 앉았고 홍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유남우의 피곤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도련님, 혹시 해외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그녀는 그가 일 때문이 아니라 어떤 여자와 관련된 일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그녀는 억지로 웃으며 담담한 척했다.“아무 일도
윤소현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 유남우가 이어서 한 말이었다.“내가 왜 너에게 아이를 낳게 했는지 알아?”윤소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왜요?”“민정이 대신 너한테 복수하려고! 네가 민정이 아이를 다치게 했잖아? 나도 너한테 아이가 다치는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하고 싶었어!” 유남우의 얼굴은 왜곡되어 있었고 그의 모습은 마치 악마 같았다.윤소현은 온몸을 떨었다.그녀는 유다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가 낳은 아이였다.“유남우 당신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이제야 그녀는 자신이 유남우를 전혀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다혜는 아직 이렇게 어린데 어떻게 그래?”“너도 아이를 아끼는 마음이 있구나?” 유남우가 되묻자 윤소현은 한순간 말을 잃었다.유남우는 그녀가 말이 없자 사람들에게 명령해 그녀를 풀어주었다.“이젠 얌전히 있네?”윤소현은 더는 감히 반항할 수 없었다.“박민정이 이렇게 하라고 시킨 거예요?”그녀는 여전히 유남우를 좋아했기에 그가 한 모든 행동이 박민정의 조종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려 했다.“네가 감히 민정이를 언급해? 너만 아니었으면 민정이는 지금도 나와 함께 있었을 거야!” 유남우는 단호하게 말했다.“박민정 같은 변덕스러운 여자가 뭐가 그렇게 좋아요? 심지어 유남준과 아이가 네 명이나 있잖아요. 그런데 왜 굳이 그 여자를 쫓아다니는 건데요? 내가 뭐가 부족해요?”윤소현이 격한 목소리로 따지자 유남우는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네가 뭐가 부족하냐고. 민정이는 모든 면에서 너보다 나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민정이는 원래 내 사람이었어. 이제 다시 찾아올 거야.”유남우의 머릿속에서 박민정은 호산 그룹과 같은 존재였다. 그녀도 그룹도 모두 그의 것이어야 했다.만약 그가 아프지만 않았더라면, 만약 어긋난 일만 없었다면 그는 호산 그룹의 주인이었고 박민정은 그의 아내였을 것이다.윤소현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눈치챘다.유남우의 마음에는 박민
유남준이 앞으로 나섰다.“안으로 들어가자. 민정아, 네가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지금 당장은 이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기억하지 못한다고?모두 놀라움에 말을 잃었다.박민정도 미안한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죄송해요, 저...”“민정아, 들어가서 잠시 앉아. 우리한테 사과할 필요 없어. 우리는 다 네 친고영란.” 조하랑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그래요, 기억이 안 나면 천천히 떠올리면 되죠. 정말 기억이 나지 않으면 우리가 다시 소개할게요.”“맞아요, 다시 소개하면 되죠, 뭐.”그들은 박민정을 거실로 안내했다. 집 안은 예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박민정이 사라진 후로 유남준은 이곳의 어떤 것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박민정은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해졌고 익숙한 풍경을 보자 머릿속에 몇몇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더 이상 떠올리려 하면 두통이 심해져 급히 생각을 멈추었다. 조하랑은 그녀를 소파에 앉혔고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차례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보스, 저는 진서연이에요. 보스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었죠. 보스랑 함께한 지...” 진서연은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했다, “벌써 5년은 넘었어요.”5년이나?박민정이 진서연의 귀여운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알겠어요. 기억해둘게요.”이상하게도 진서연을 비롯한 이들에게는 경계심이 들지 않았다.그다음은 민수아가 다가왔다.“민정아, 우리는 재작년에 처음 만났어. 난 유 대표님의 비서인 서다희의 약혼녀야. 내 이름은 민수아라고 해.”설인하도 자신을 소개하며 박민정을 자신의 은인이라고 말했다.“민정 씨, 민정 씨가 사라진 이 1년 동안 아이가 정말 많이 변했어요. 이제 거의 두 살인데 벌써 ‘이모’라고 부를 줄 알아요!”김인우도 자신을 소개했다.“민정아, 난 남준이 친구 김인우야”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눈앞의 상황을 보며 유남준이 자신을 속이지 않았음을 느꼈다.그때 유남준이 말했다.“자, 민정이가 갓 돌아오고 아직 밥도 못 먹었을 텐데, 일
서다희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제 생각엔 유남우 씨는 심리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사람 같아요.”박민정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유남준은 그녀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차 안에 먹을 걸 많이 준비해뒀어. 좀 먹어두는 게 어때? 가는 길이 꽤 멀 거야.”박민정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이제 더는 저항하지 않는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고향으로 돌아가 유남우가 자신에게 또 무엇을 숨겼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진주시.박민정이 무사히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이미 박윤우와 주변 사람들에게 전했다.두원 별장 별장에서 김인우, 조하랑, 진서연 등 모두 소식을 듣고 서둘러 찾아왔다.“윤우야,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정말로 민정이가 돌아오는 거 맞아?” 조하랑이 흥분된 목소리로 묻자 박윤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럼요! 제가 이런 걸로 거짓말하겠어요?”박예찬도 옆에서 말했다.“어제 제가 직접 엄마가 있는 도시를 검색했는데 정말로 CCTV에서 엄마가 찍힌 걸 봤어요. 엄마는 아무 이상 없었어요.”박예찬의 말에 더 신뢰가 실렸고 사람들은 더욱 기뻐했다. 이제 모두 박민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게다가 박민정을 환영하기 위해 각종 음식을 준비했다.그날 오후 비행기는 진주시 공항에 착륙했다.박민정은 차에 올라탄 후 익숙하면서도 낯선 진주시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기억 속에서는 흐릿하기만 하던 이곳이 다시 보니 이상할 정도로 친숙하게 느껴졌다.차는 드디어 두원 별장 앞에 도착했다.밖에서 본 별장의 모습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외부의 풍경은 왠지 모르게 낯익었다.‘분명 여기 온 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유남준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이미 박윤우에게 박민정이 오늘 돌아온다고 알렸는데, 설마 잊은 걸까?“들어가자. 여기가 우리 집이야.”박민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뒤를 따라 별장으로 들어갔다.문을 열자마자 별장 안의 모든 불이 켜지며 사방이 알록달록한 장식으로 물들었다.그 순간
박민정은 이미 문 앞에 서 있었다.윤소현은 박민정을 보자마자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박민정! 너... 정말 살아 있었어!”윤소현은 충격에 빠지면서도 박민정을 없애지 못한 이지원을 원망했다. 왜 박민정이라는 재앙을 없애지 않았는지, 속으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아마도 낯익은 사람을 다시 보았기 때문인지,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박민정의 머리가 은은히 아파왔다.유남우는 박민정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가 막을 새도 없이 윤소현이 곧장 박민정에게로 달려갔다.“박민정, 왜 이렇게 집요하게 따라오는 거야? 왜 내 남편을 유혹했어? 너도 남편과 아이가 있는 사람이면서 왜 이렇게 뻔뻔한 거야?”그녀의 남편을 유혹했다고?박민정은 유남우를 바라보았다.유남우는 급히 다가와 윤소현의 손목을 잡고 박민정에게 설명했다.“민정아, 이건 다 헛소리야. 우린 혼인 신고도 하지 않았어. 우리는 단지 비즈니스 결혼이었고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거야.”윤소현은 이 말에 완전히 무너졌고 분노에 차서 말했다.“뭐라고요? 우리가 혼인 신고를 안 했다고요?”유남우는 그녀에게 더 말할 틈을 주지 않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며 밖으로 나갔다.“유남우, 이 자식아! 놔! 놓으라고!” 윤소현은 계속해서 소리쳤다.“우리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딸은 뭐가 돼요? 나는 당신의 합법적인 아내라고요!”박민정은 멀리 서 있으면서도 윤소현의 말을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머리가 더 아파졌고 약을 가지러 가려 했다.그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민정아.”박민정이 멍하니 돌아보자 유남준이 시야에 들어왔다.“무슨 일이에요? 손 놓아요. 저는 약을 가지러 가야 해요.”“그 약은 이제 먹으면 안 돼. 그건 기억을 회복하는 약이 아니야.” 유남준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녀를 덥석 안았다.박민정은 몸이 휙 들려 올라가며 무의식적으로 그의 옷을 붙잡았다. “뭐 하는 거예요?”“너 지금 상태가 심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