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은은 값비싼 명품 옷들을 입고 있었다. 몸에 걸고 있는 가방도 샤넬 가방이었다. 한껏 부잣집 아가씨 티를 내며, 한 남자에게 기대어 있었다. 그 남자는 이미 지난번에 봤던 남자가 아니었다. 이 남자는 마흔 살이나 넘어 보이는 아저씨였다.역시나,양지은의 남자친구를 바꾸는 속도는 아무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바로 이때 양지은도 임건우를 보았다.그녀는 임건우라는 걸 인지하자마자, 곧바로 매섭게 노려보았다.지난번 만성 주얼리에서 자신이 맞은 따귀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임건우에게 달려가 따지고 싶었다. 그녀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더 이상 두렵지가 않았다.그는 곧바로 임건우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야, 임건우! 이 망할 놈아! 여긴 도대체 왜 온 거야? 아, 설마 여기서 뭐라도 너한테 떨어지는 게 있을까 해서 찾아온 거야? 그렇다고 네가 떨어진 걸 받아먹을 수나 있겠어?”임건우는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줍든 안 줍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양지은은 말했다. “상관이 왜 없어? 여기가 얼마나 성스러운 곳인데. 너같이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거지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너 같은 사람이 여길 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을 망신시키는 행동이라는 걸 몰라?”양지은 이 여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주위에 있던 많은 여자들은 임건우를 노려보았다.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임건우를 가리키며 속닥거렸다.“생기기는 평범한 사람처럼 생겼는데,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거지라니. 정말 사람은 역시 자세히 봐야 한다니깐?”“쯧쯧. 요즘 젊은이들은 돈을 쉽게 벌 생각만 한다니깐. 그러니 여자한테 저렇게 빌붙어 살 생각만 하는 거겠지.”이때 양지은 옆에 있던 아저씨가 양지은에게 물었다. “자기야, 저 남자 누구야? 자기랑 도대체 무슨 사이야?”양지은은 차마 대학 시절에 자신을 찬 남자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지금의 남자친구가 알게 된다면 얼마나 창피하겠는가? 그녀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 이 개 자식? 예전에 병원에서 치료
양지은 같은 일반인이 유화의 신분을 알 리 없었다.게다가 자칭 만리상맹 부장이라는 지정수조차도 유화를 알지 못했다. 마동재의 양딸로 만리상맹에서 공주님으로 떠받들리는 유화였기에 프라이빗 클럽의 핵심 요원들에게만 잠깐씩 얼굴을 비춘 것이 원인이었다.지정수는 만리상맹에서 어느 작은 부서의 부장에 지나지 않았다.원지혁은 유화를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가 직접 나서서 유화의 신분을 밝힐 이유는 없었다. 그는 사람들 틈에 서서 명을 재촉하는 양지은의 모습을 비웃음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재밌군!’누구든지 유화의 심기를 거스른 날은 사방에 피가 튕긴다.하지만 이곳에는 그걸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양지은의 선동에 넘어간 사람들은 자신이 뭐라도 된 것처럼 유화를 향해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얼굴도 예쁜데 술집 일을 하는 여자인 줄은 몰랐네.”“어디 술집이야? 나도 한번 가서 보고 싶어.”“저 외모와 몸매면 하룻밤에 2백만 원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어!”임건우는 조용히 유화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예쁜 눈동자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그녀는 양지은에게 다가가서 차갑게 물었다.“말 다 했어?”양지은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유화를 쏘아보며 받아쳤다.“뭐? 네가 한 짓을 생각해 봐. 대낮에 이런 차림으로 다니는 게 정상이야? 술집은 아직 문도 열지 않은 시간인데 넌 참 부지런하게도 벌써 영업 준비를 끝냈네? 내가 아는 재벌 도련님들이 좀 되는데 소개 좀 시켜줘?”짝!유화는 양지은을 내려다보며 손바닥을 들어 그녀의 귀뺨을 날려 버렸다. 유화는 여자들 중에서도 키가 꽤 큰 편이었고 양지은보다 족히는 10cm 정도 키 차이가 났다.양지은의 한쪽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부어올랐다.그녀가 비명을 지르자 이빨 한 조각이 입에서 튀어나왔다.“악! 이 미친 여자가 감히 나한테!”양지은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유화에게 달려들었다.짝!하지만 또 한번의 귀뺨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이번에는 이빨 두대가 부러졌다.코에서도 피가 나고 한쪽 눈도
필두에 선 남자가 지정수에게 고개를 돌렸다.지정수는 미리 준비한 사원증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필두에 선 남자는 만리상맹의 경호 팀장 중 한 명이었다. 사원증을 확인한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우리 만리상맹의 영업부장을 건드린 자가 누구지? 당장 앞으로 나와! 그러면 똑같이 다리 하나 부러뜨리는 거로 마무리할 테니까.”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던 양지은이 유화를 가리켰다.“저 여자예요. 저 술집 여자가 제 남자친구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제 이빨까지 부러뜨렸어요. 당장 때려눕혀서 철창에 가두어요!”유화에게 시선을 돌린 남자의 표정이 당황함으로 달아올랐다.“유화….”“나야!”유화는 상대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담담하게 대꾸했다.경호 팀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지정수는 유화의 얼굴을 모르고 있었지만 경호 팀장인 그는 오고 가며 유화와 몇 번 마주친 적 있었다.지정수가 신분을 믿고 나대다가 제대로 임자를 만난 상황이었다.‘아니지! 저 미친 여자가 우리 유화 아가씨를 감히 술집 여자라고!’양지은이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뭘 머뭇거리고 서 있어요? 당장 때려눕히라니까요?”짝!남자의 손바닥이 양지은의 얼굴을 쳤다.양지은은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코와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악! 저 미친 여자를 치라니까 왜 나를 치고 있어요!”짝! 짝!계속되는 마찰음.바닥에 쓰러진 양지은은 말할 기운조차 없었다.당황한 지정수가 따지듯 물었다.“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이 미친 여자를 혼내달라고 했지 언제 내 여자를 때리라고 했습니까?”그랬다. 경호 팀장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이유는 뭘까?구경하던 사람들도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경호 팀장이 말했다.“당신이 눈이 멀어서 건드려서는 안 될 존재를 건드렸기 때문이야.”말을 마친 그는 다리를 들어 지정수의 성한 다리를 걷어찼다.“만리상맹에서 만리상사 영업부장으로 일하면서 유화 아가씨를 몰라보다니! 그런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부장 배지를 달아?”“악!”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유화가 임건우의 팔을 잡아당겼다.“오빠, 우리 가자! 돌덩이로 도박하는 건 이길 확률이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대. 오빠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이런데 관심 가질 이유가 없잖아? 우리 돌아가서 약이나 가지고 놀자!”약을 가지고 논다는 표현이 그들을 모르는 사람들 귀에는 다른 의미로 들렸다.두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미묘해졌다. 만리상맹의 유화 아가씨가 사적으로는 이렇게 개방적인 사람이었던가?하지만 그런 말을 감히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간 큰 자는 없었다.임건우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몇 개만 사서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유화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그럼 마음에 드는 거 골라. 내가 들어줄게.”전형적인 현모양처의 모습이었다.사람들은 부러움과 질투의 눈빛으로 임건우를 바라보았다.유화의 신분을 제치고라도 외모만 봐도 그녀와 비길 수 있는 여자가 거의 없었다. 유화의 마음을 얻은자는 만리상맹에서 자연스럽게 떠받들리는 존재가 될 테니 신분 상승까지 되는 셈이었다. 바보 온달도 평강공주 덕분에 장군으로 이름을 날리지 않았는가.임건우는 가게 안의 원석을 한번 둘러보고 영기를 내뿜는 원석 세 개를 골라냈다. 그는 유화의 도움도 거절하고 직접 다가가서 원석을 골라냈다.하나는 좀 크고 나머지는 작은 원석이었다.큰 원석은 크기가 의자 하나만 했다.작은 원석도 농구공과 비슷한 크기였다.원석 도박 마니아인 원지혁은 임건우가 고른 원석을 보자 고개를 흔들며 다가와서 말했다.“임 선생님, 이것들은 잘 팔리지도 않는 원석이에요. 게다가 잘게 쪼개도 옥을 건질 확률이 거의 없고요. 다른 걸 골라 보실래요? 제가 옥석에 관해 잘 알거든요. 제가 한번 봐 드릴 수 있어요.”임건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괜찮습니다. 제가 필요한 건 이 세 개예요.”원지혁은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결국엔 입을 다물었다.그는 유화가 오빠라고 부르는 이 남자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유화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구경꾼들도 백무령의 등장에 용기를 얻은 듯, 제 의견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저 원석은 마 사장 가게에 일 년이나 묵혀 있었던 건데 사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광택도 없는 것이 딱 봐도 그냥 돌덩이 같은데 전문가라면 저런 돌을 안 사죠. 원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면 모를까.”“유화 아가씨의 친구라는 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사람들의 말을 들은 유화는 살짝 원망 어린 눈빛으로 임건우를 흘겨보았다.임건우는 백무령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여기서 옥이 나오면 어쩌실 겁니까?”백무령이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대꾸했다.“똥통을 구르던 돌에서 옥이 나오면 내가 이 돌을 삼킬게요.”“좋아요. 그럼 약속한 겁니다?”임건우는 전에 모소정도 백무령과 비슷한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따지기 귀찮아서 도망치게 내버려 두었지만 백무령은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사장님, 이거 절단해 주세요. 조심스럽게 부탁해요.”임건우가 말했다.유화가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그냥 갈까?”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백무령은 그녀의 오랜 라이벌이었다. 그는 풍연경의 사람이었고 두 사람은 대결을 한 적 있었는데 그때 유화가 보기 좋게 패배했다. 그래서 백무령 앞에서 만큼은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임건우는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백무령은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유화를 바라보았다. 돌을 절단했는데 꽝일 경우 어떻게 할 거라는 제안도 하지 않았다. 유화의 똥 씹은 표정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질 거라고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그래서 돌을 먹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것이다.지이잉-절단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강주 지하 세계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원석 도박을 한다는 소식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원석에서 옥이 나올까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유화의 오빠라는 사람이 망신당하는 모습을 더 기대하고 있었다.이유는 간단했다.
놀란 사람은 백무령뿐이 아니었다.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눈이 휘둥그레진 채, 원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이미 핸드폰을 꺼내 촬영하는 사람도 있었다.SNS에 올려서 자랑하려는 것이다.가게 주인 마 사장은 초록빛 반짝이는 원석을 보고 눈이 돌아갈 것 같았다. 아직 절단하지 못한 면도 있는데 이미 드러난 부분만 봐도 채도나 광택이 예사롭지 않았다. 최상급 에메랄드 원석이었던 것이다. 이걸 시장가로 환산하면 최소 2백억이었다.2백억! 누가 감히 상상이라도 했을까!1년이나 이 원석을 구석에 처박아 두었는데 이런 보석이었을 줄이야! 후회막급이었다.하지만 이건 결국 운이었다.원석 장사로 생계를 유지한지 몇십 년 되는 마 사장조차 이런 최상급 원석은 오늘 처음으로 구경했다.구경꾼들 중 한 중년 남자가 입을 열었다.“이 원석 얼마에 팔 건가? 내 160억을 지불하지.”임건우는 원석에서 느껴지는 진한 영기를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중년 남자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원지혁이 콧방귀를 뀌며 끼어들었다.“이봐, 오 사장. 또 사기를 치려 드네? 160억? 이미 드러난 부분만 해도 그 가치가 160억은 훨씬 넘겠구만! 꿈도 꾸지 마.”오 사장이라 불리는 남자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원지혁 자네도 이게 마음에 들어? 그런데 돈은 있어?”임건우는 조작사에게 고개를 돌리며 담담하게 말했다.“작업 계속하시죠.”오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내 이 원석을 200억에 사겠네. 젊은 친구, 더는 못 줘.”금방 구경꾼 대열에 합류한 오 사장은 아직 유화의 신분을 모르고 있었기에 스스럼없이 다가가서 임건우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임건우는 그 손을 떨쳐내며 냉랭하게 대꾸했다.“안 팝니다. 2천억을 주신다고 해도 이건 안 팔아요.”오 사장이 차가운 비웃음을 터뜨리며 반박했다.“젊은이, 쉽게 온 행운은 쉽게 새어나가는 법이야. 값어치를 쳐주는 사람이 있을 때 파는 게 좋아.”그는 사람을 찾아 강탈을 해서라도 원석을 손에 넣을 궁리만 하고 있었다.하지만
지는 것을 싫어하는 유화의 승부욕이 발동되었다. 수련의 경지가 크게 상승하면서 이 얄미운 녀석을 언제 혼내줄까 기회만 노리고 있었기에 당연히 주먹도 가차 없었다.“하! 유화 네가 나한테 어떻게 패배했는지 벌써 잊은 거야? 팔은 아직도 아플 텐데?”그때 그와의 대결에서 유화는 한쪽 팔이 골절된 적 있었다.“도망가!”사람들은 다급히 현장을 벗어났다.하지만 격하게 붙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싸움은 생각보다 시시하게 끝났다.백무령이 유화를 향해 다리를 뻗었는데 유화가 그의 발목을 잡아 바닥에 내팽겨쳤던 것이다.백무령의 팔이 원석에 부딪치며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젠장! 언제 마스터까지 도달한 거야!”유화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야 백치, 앞으로 나 보면 피해 다녀. 그리고 내기에서 했던 약속은 지켜야지.”그녀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원석 찌꺼기를 집어 백무령의 입에 욱여넣었다. 날카로운 돌조각이 그의 입안에 생채기를 내면서 피가 흘러나왔다.그리고 그 순간, 오 사장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그제야 임건우 옆에 있던 여자가 만리상맹의 유화 아가씨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강도를 보낼 생각을 했었다니, 등 뒤에 식은땀이 돋았다.30분 뒤.임건우의 손에는 나머지 두 원석의 절단면이 들려 있었다.현장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절규했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늘이 도왔나?”“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네.”“세 개 다 에메랄드 원석이었다니! 세상에나!”일부는 사진을 찍어 SNS에 게시했다.“가자!”임건우가 유화에게 말했다.두 사람은 가치가 어마어마한 에메랄드 원석을 챙기고 원지혁에게서 낡은 화로를 챙긴 뒤, 차를 타고 태운 별장으로 돌아갔다.다행히 화로가 크지 않았고 오늘을 대비해 유화가 공간이 큰 SUV를 끌고 나왔기에 차를 따로 부를 필요도 없었다.“오빠!”유화가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임건우를 불렀다.“왜?”“오빠는 어떻게 이렇게 뭐든 다
임건우는 우나영과 유화에게 외출을 알린 뒤, 다급히 유가연의 집으로 향했다.가는 내내 그는 마음이 착잡했다.심수옥이 골동품 거리에서 원석 도박을 했을 줄이야! 그녀가 자신을 봤을지가 가장 궁금했다. 만약 자신이 산 세 개의 원석이 전부 최상급 에메랄드 원석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심수옥 성격에 당장 내놓으라고 윽박지를 것이 분명했다!퇴근시간이라 차가 많이 막혔다.임건우는 40분이나 걸려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아니나 다를까, 세 모녀가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제외하고도 2남 1녀가 거실에 있었는데 여자는 임건우도 아는 사람이었다. 평소 심수옥과 언니 동생 하면서 자주 집을 들락거리던 장평이었다.장평은 평소처럼 심수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수옥 언니, 수철이 좋은 사람이야. 내가 자라는 걸 다 지켜봤거든? 지금은 대기업 부장까지 달아서 연봉도 2억이나 받아. 이런 남자를 어디 가서 찾아? 빨리 승낙해. 언니만 승낙하면 이제 가족이 되니까 저번에 빌려 간 1억은 없던 걸로 해준다니까?”그 말을 들은 임건우는 순간 분노가 치솟았다.아직 대학을 다니고 있는 유지연이 결혼상대는 아닐 것이다.그는 홧김에 달려가서 다짜고짜 따졌다.“내가 눈 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지금 누구 마누라를 넘봐요? 내 마누라 넘본 놈은 평생 후회하며 살게 해줄 겁니다!”장평은 임건우를 힐끗 보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이 무능한 놈이 어디서 대화에 끼어들어? 네가 대화에 낄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 네가 뭔데?”그녀의 태도가 이런데는 평소 심수옥이 임건우 험담을 많이 한 까닭이었다.유가연은 다급히 임건우의 손을 잡아끌며 작은 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나 아니야. 상대가 원하는 건 우리 엄마야.”“뭐… 뭐? 장모님?”유가연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장수철을 바라보며 말했다.“저 자식이 우리 엄마를 좋아한대.”임건우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심수옥은 올해 46세, 장수철은 많아봐야 30살 좌우였다. 그런데 자기보다
임건우는 임하나를 안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점점 가까워지자, 임건우가 바라본 궁전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이 궁전은 뼈로 지어진 궁전이었고 곳곳에 해골이 가득 차 있었다.그 해골들은 기괴한 대문을 형성하고 있었다.문 앞에는 거대한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비석 위에는 천신의 무덤이라는 고풍스러운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천신의 무덤?’이게 무슨 뜻일까?임건우는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의 자복궁 안에서 강한 진동이 일어났다.마치 혼돈 구슬이 무언가를 찾은 듯 흥분한 느낌이었다.한편으로는 여기서 일어나는 폭풍이 더욱 거세졌다.모래바람이 얼굴에 맞아 아프기 그지없었다.임건우는 어쩔 수 없이 딸의 얼굴을 자신의 품에 묻고 진원을 돌려 딸을 보호했다. 하지만 이 폭풍은 단순한 모래바람이 아니었다.그것은 죽음의 기운과 다양한 부정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었고 피부를 베는 듯한 아픔을 안겨주었다.붉은 달이 서서히 내려가며 폭풍은 더욱 거세졌다.“방법이 없겠군!”“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가야겠다!”임건우는 깊은숨을 들이쉬고 백골 궁전 안으로 발을 들였다.순간, 임건우는 끝없는 원망과 분노가 그를 덮치는 걸 느꼈다.슬프고 비통한 신음이 임건우의 의식 속을 채우고 있었다.정신력은 이전에 겪어본 적 없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임건우는 딸이 걱정되어 바로라도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그 순간 해골 대문이 갑자기 쾅! 하고 닫혔다.뒤를 돌아보니 그 대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마치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으앙!”갑자기 딸이 큰 울음소리를 질렀다.임건우는 깜짝 놀라 딸이 혹시 원령의 영향을 받아 불편해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딸의 울음소리에는 어떤 신비한 힘이 담겨 있었다.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신격의 힘이었다.딸의 신격이 원망의 기운을 전부 흡수하고 소멸시킨 것이다.딸의 이마에 있는 신격에서 희미한 녹색의 빛이 퍼져나와 두 사람을 감쌌다.“착한 내 딸, 아빠를 구해줬구나!”임건우는 기쁨에 못 이겨
“이거 큰일이네!”임건우는 뒤쫓아오는 불사족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그동안 도망치면서도 수많은 불사족을 베어냈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대가 점점 더 강해졌다.바로 직전에는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불사족 두 마리를 상대했는데 그들은 단순한 해골이 아니라 온몸이 가시와 고깃막으로 뒤덮인 괴물이었고 방어력이 엄청나게 강했다. 임건우는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지금 이 순간, 뒤쫓아오는 불사족의 기운이 점점 더 강력해지는 것이 느껴졌다.그 모습을 확인한 임건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런 젠장, 또 불사의 왕좌가 나왔네.”더 충격적인 건 이번엔 그 왕좌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이었다.“설마 저놈의 여자 친구인가?”“지금 내 상태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어.”처음에는 싸워볼 생각도 했지만, 상대를 보자마자 임건우는 마음을 접었다.저 여왕좌는 입만 벌리면 거대한 진공청소기처럼 모든 걸 빨아들일 것처럼 보였고 힘의 격차가 어마어마했다.“나모 아미타불, 도라 야야!”임건우는 바로 종이인형 하나를 꺼내 던졌다.그것은 바람을 타고 커지더니 황금빛 부처로 변했다.임건우는 딸을 안고 서둘러 도망쳤다.그러나...뒤따라오던 여왕좌는 금신의 허상을 단숨에 깨부수고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그를 추격해왔다.“젠장, 이러다 잡히겠네!”임건우가 초조하게 도망치는 순간, 갑자기 그의 자복궁에 있던 혼돈 나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모든 혼돈 구슬이 빠르게 떨려왔다.이 익숙한 감각은 임건우에게 명확히 알려주고 있었다.‘이건 뭔가 좋은 물건이 근처에 있거나, 아니면 다른 혼돈의 파편을 발견했을 때의 반응이야. 이 정도로 강하게 떨리는 걸 보니 아마 후자겠지.’“혼돈의 파편이라고?”“제발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란다!”어차피 곧 잡힐 상황이었다.임건우는 이를 악물고 도박을 걸기로 했다.혼돈 나무가 떨리는 방향을 따라 혼돈의 파편을 찾아 나선 것이다.그 앞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었다.거기에 더해 거센 바람이 일으킨 모래폭풍까지 휘몰
“딸아, 이 낯선 곳에서 내가 어디서 젖을 먹일 사람을 찾겠어?”임건우는 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주변은 끝없이 황량한 땅뿐이었고 그 광경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하지만 곧 임건우는 뒤에서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불사족이 쫓아오는 게 확실했다.대지가 흔들리며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젠장, 이렇게 멀리 도망쳤는데 또 쫓아오다니?”“정말 끈질기게 따라붙네.”임건우는 어쩔 수 없이 딸을 안고 다른 방향으로 전력 질주했다.가던 길을 계속 바꾸며 피했지만, 너무나 답답했다.분명히 한 번은 떨쳐냈는데 곧 불사족이 다시 나타났다.이런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임건우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곰곰이 생각해보니...“젠장!”이곳은 영기조차 없고 공기 속엔 죽음의 기운만이 가득했다.그 죽음의 기운을 막기 위해 자신의 금단이 계속 돌아가며 대위신력의 에너지도 끊임없이 빠져나갔다.그 외에도 딸의 자연신격이 자동으로 그녀를 보호하며 희미한 녹색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그들은 이 불사의 땅에서 마치 바다 위의 등대와도 같았다.“어떻게 해야 하지?”하지만 방법은 없었다.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대위신력과 자연신격 없이는 정말 힘들었다.그리고 더 큰 문제는 가나절의 통로 문을 원래 자리에 두고 나온 것이다.예전에 전소은을 쫓아가기 위해 가나절의 전송문을 통해 만요곡으로 갔는데 그 문을 그대로 두고 온 것이다.만약 그 문이 함께 왔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힘겹게 도망치진 않았을 것이다.딸의 울음소리는 임건우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그러던 중, 문득 임건우의 머리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아, 그렇지! 생명의 신천이 있었지!”“젖을 먹일 사람은 없지만, 물이라도 마시며 좀 진정시켜야겠다.”임건우는 예전에 생명의 우물에서 모은 신천을 떠올렸다.이제 그 신천이 딸에게 필요한 순간이었다.딸은 자연의 여신이 될 존재이기에 생명의 신천은 거부할 리 없을 것이다.임건우는 그녀에게 조금만 마시게 해줬다.그러자, 딸은 울음을 멈추고 행복한
거의 동시에 임건우의 몸속에 있는 진혼종이 슬픈 울음을 토해내며 그의 자복궁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이 불교의 법보이자 지장왕이 준 신기는 차원의 붕괴한 공간 속에서 큰 타격을 입었고, 앞으로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사용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휴...”임건우가 눈을 뜨자마자 보인 첫 장면은 엄청나게 커다란 붉은빛 달이었다.주위 모든 것이 어두운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는 기묘한 풍경이었다.그제야 임건우는 자신이 높은 하늘에서 직선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이런 젠장!”임건우가 옆을 돌아보자마자 깜짝 놀랐다.“여기가 대체 어디야?”임건우가 떨어지고 있는 아래쪽을 바라보니 수없이 많은 해골 병사와 불사족의 괴물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아이코, 맙소사!”“차원 통로가 붕괴하면서 내가 불사의 땅으로 빨려 들어온 건가? 여기 아마도 불사의 문을 통과하려는 불사 대군들이 모여 있는 곳일 거야! 그런데 나랑 딸아이가 이런 곳에 떨어지다니 그야말로 호랑이 굴에 들어온 꼴 아니야?”임건우는 급히 견곤검을 소환해 검에 올라타고 비행하며 이곳을 벗어나려 했다.하지만 곧바로 깨달았다.이 괴이한 장소는 비행이 금지된 지역이라는 것을.견곤검 위에 서 있어도 움직일 수 없었고 발밑으로는 엄청난 중력이 임건우를 끌어당기고 있었다.강력한 인력이 임건우와 그의 딸을 땅으로 내리쳤다.쾅!엄청난 굉음과 함께 임건우는 딸을 꼭 안은 채로 땅에 세차게 떨어졌다.그 충격으로 수많은 불사 대군을 깔아뭉개며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갑작스러운 사태는 이곳에 있던 불사 대군도 예상치 못한 듯했다.주위에 있던 적어도 수만 개의 눈이 일제히 임건우를 주시했다.“아이고, 이거 큰일 났네.”임건우의 마음이 순식간에 무거워졌다.그다음 순간, 굉음과 함께 거대한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앞쪽에 있는 거대한 불사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아마도 장군급의 존재인 듯했으며 해골 형태의 그것은 입을 벌려 알 수 없는 언어로 무언가를
임건우는 딸을 꼭 안고 당자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불과 1미터의 거리였지만, 마치 천지의 깊은 절벽처럼 느껴졌다.아무리 애써도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었다.“남편!”당자현은 손을 뻗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었다.눈물이 터져 나오며 절망적인 표정으로 임건우를 바라보았다.“빨리 가! 빨리!”“생명의 우물 공간이 무너지려고 해. 나는... 나는 너와 딸을 지킬 거야. 반드시 지킬 거라니까!”임건우는 절박하게 외쳤고 금단의 신력이 몸을 휘감으며 혼돈의 기운이 그들을 감싸 안았다.그 순간, 차원의 통로는 강력한 힘으로 삼켜져 모든 공간이 거대한 불사의 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아아!”당자현은 울부짖으며 애절하게 소리쳤지만, 그 순간, 그 연결은 끊어졌다.“주인님, 빨리 가셔야 합니다. 이 차원의 통로도 곧 사라질 겁니다.”박철호는 한 마디로 재촉하며 백옥은 당자현을 안고 급히 말했다.“가자!”모두가 생명의 우물의 좁은 통로로 빠르게 뒤돌아갔다.그들은 필사적으로 위로 올라갔다.그때 뒤에서 거대한 에너지 소리가 울려 퍼지며 거대한 힘이 우물 속으로 밀려 들어와 모두를 위로 밀어냈다.쿵! 하는 소리와 함께 생명의 우물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그 속의 수많은 생명의 샘물이 쏟아지며 사람들은 우물 밖으로 튕겨 나갔다.바닥에는 물이 고여 웅덩이가 되었다.웅!차원 통로 속에서 임건우는 딸을 꼭 안고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에너지가 갑자기 되돌아가며 모든 물질은 압축되어 한 덩어리가 되었다.그 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단 한 순간, 임건우는 온몸이 터져 나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그의 강력한 뼈마저도 끊어지는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하지만 임건우는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았다.반드시 딸을 지켜야 했다.“진혼종!”임건우는 서둘러 진혼종을 소환하고 딸을 종 안으로 감쌌다.둥둥둥! 둥둥둥!진혼종은 깊고 울리는 소
안쪽은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 속에는 마치 무수한 원혼이 울부짖는 듯한 환청이 퍼져 나왔다.하지만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정신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어떤 파장이었다.게다가 몸 또한 보이지 않는 힘으로 만져지고 짓눌리며 마치 수많은 손이 그의 몸을 더듬어 뜯어내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임건우는 자신이야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갓 돌이 지난 딸이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그러던 찰나, 어둠 속에서 갑작스럽게 어떤 힘이 딸을 덥석 잡아채 임건우의 품에서 떼어내려고 했다.그 힘은 적고 연약한 딸을 감싸 안으며 강한 압력을 가해왔다.임건우의 금단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대위신력을 폭발적으로 방출했다.임건우는 딸을 단단히 품에 안고 버텼다.하지만 불사의 왕좌가 가진 힘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으악!”임건우는 고함을 지르며 외쳤다.“저승 다리! 당장 와서 도와라!”임건우는 자신의 자복궁에 남은 대위신력을 한꺼번에 쏟아부었다.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비록 저승 다리의 소환은 값비싸고 매번 신력을 소모했지만, 지금은 대위신력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천만이면 어때! 줘버리자!’슛!붉은 옷을 입은 어린 소녀가 튀어나왔다.그리고 이전보다 조금 자란 듯한 모습이었다.“어? 여긴 어디야?”소녀는 태연하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얼굴을 구기며 발을 동동 굴렀다.“이 멍청아!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겨우 그따위 실력으로 불사의 왕좌의 뱃속에 들어오다니 죽으려고 작정한 거야?”“공주님, 내가 원해서 들어온 줄 알아? 끌려온 거라고!”임건우는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빨리 시작해. 안 그러면 나 죽고 너도 대위신력을 못 받을 거라고!”소녀는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네가 죽으면 새로운 계승자가 나타날 뿐이야.”임건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계승자는 무슨! 너도 알잖아? 지장왕이 3천 년을 기다려 나를 찾은 거라고. 네가 그 불사의 왕좌 뱃속에서 3만 년을 기다릴 자신 있으면 말이야.”소녀는 이를 꽉
“큰일 났어!”임건우는 겨우 딸을 안아 들고 있을 때 갑자기 100미터 높이의 불사의 왕좌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임건우는 몸을 돌려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다.하지만 불사의 왕좌가 임건우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하나의 임건우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신격이 담겨 있는 작은 소녀는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만약 소녀를 놓친다면 이 통로는 즉시 사라지고, 불사군단은 통로를 통해 다시 인간 세계로 침입할 수 없게 된다.“크앙!”“도망가려고? 그렇게 쉽게는 안 된다!”슥!불사의 왕좌는 입을 벌려 포효하며, 입속에서 몇 개의 검은 기운을 내뿜었다.그것들이 순식간에 임건우의 앞을 가로막았다.그 검은 기운은 꿈틀거리며 변형되었고, 그 속에는 신비한 문자가 흐르고 있었다.바로 그 순간, 이차원 통로의 벽과 합쳐지며 방금까지 칠흑 같던 통로의 양측이 갑자기 안정되기 시작했다.빛이 반짝이며 문자가 그 위에서 떨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이지?”“일단 도망가자!”임건우는 더는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딸을 안고 혼자 도망칠 수는 없다.싸워야 한다면 외부의 동료들과 힘을 합쳐야 했다.임건우는 한 걸음 내딛으며 급히 통로 입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차원 통로에서 순간이동은 불가능했다.그렇지 않았다면 금방이라도 도달할 수 있었을 텐데.몇 천 미터의 거리도 몇 번의 눈 깜짝할 사이에 해결될 거리였다.통로 입구 밖에 있던 백옥과 당자현은 여전히 걱정하며 급히 소리쳤다.“빨리! 서둘러!”당자현은 다시 한번 통로 안으로 들어가서 지원하려 했지만, 그 순간, 당자현의 머리가 통로 입구의 무언가에 부딪히며 이마에 혹이 생겼다.쿵!“아!”“뭐야? 입구가 막혔어?”“뭐라고? 어떻게 된 거지?”백옥은 급히 손을 내밀어 입구를 탐지했으나, 그곳에 벽처럼 딱딱한 무언가가 있었다. 백옥은 즉시 진원을 모아 주먹을 한 대 세게 날렸다.쿵!거대한 폭음이 울렸다.입구의 공간 벽에는 수많은 검은 문자가 빛을 내며
“이건 죽음의 기운이야! 이곳의 죽음의 기운은 독성을 띠고 있어!”임건우가 재빨리 약병을 꺼내 들어 모두에게 나눠주었다.하지만 약을 삼킨 후에도 이상한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당자현이 급히 말했다.“이건 독이 아니야. 죽음의 기운이 우리의 영력을 억누르고 있는 거야. 우리가 죽음의 기운을 들이마실수록 체내 진원이 더 강하게 억압받는 거지.”박철호가 말했다.“그럼 어쩌죠? 전투력이 점점 약해지는 게 느껴져요. 이러다간 버틸 수 없을지도 몰라요.”“크앙!”금강마원이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그 거대한 몸 위로 벌레들이 달려들어 미친 듯이 물어뜯고 있었다.이 벌레들은 진원 방어막조차 뚫고 들어올 수 있었고 물어뜯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거대한 금강마원의 살과 피는 이들에게 한층 더 쉽게 씹히는 먹잇감이었다.금강마원의 하얀 털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고, 몸 여기저기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사람들이 재빨리 달려가 벌레를 제거했지만, 금강마원의 상처는 이미 깊어져 있었다.그 와중에 임건우의 시선은 아직 천 미터나 떨어진 딸에게 고정돼 있었다.임건우의 눈빛은 단호했다.“여러분은 물러나세요. 이곳은 제가 해결하겠습니다.”백옥이 말했다.“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도 이렇게 버거운데 혼자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벌레들에 금방 잠식당할 거야!”임건우는 단호히 말했다.“괜찮아요. 전 죽음의 기운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요.”다른 이들의 전투력이 점점 약해지는 가운데 임건우의 힘은 약화되지 않았다.임건우의 체내에는 혼돈 나무와 혼돈 구슬이 있었고, 대위신력이 임건우를 지탱하고 있었다.이 모든 것은 죽음의 기운을 억제하고 상쇄할 수 있었다.그때 당자현이 외쳤다.“저 앞을 봐! 저건 뭐지?”모두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회색빛이 짙은 안개가 물결처럼 밀려오고 있었다.“저건... 죽음의 기운이야! 그것도 엄청난 양의 죽음의 기운!”“불사족의 문이 점점 더 열리고 있어! 불사족이 나오려고 하고 있잖아!”임건우는 망설임 없이 결정을 내렸다.“
풍덩!임건우는 바로 그 자리에 뛰어내렸다.당자현도 뒤를 따르며 빠르게 내려갔다.백옥은 추하게 변한 전소은을 한 번 쳐다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모든 경맥을 봉인한 뒤, 그제야 우물 안으로 뛰어들었다.“이 우물은 정말 특이하군, 생명의 기운이 이렇게 진하다니?”임건우가 말했다.“맞아, 이게 바로 내가 말한 생명의 천수야. 이 물이 강아연의 영맥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야.”당자현이 대답했다.임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물의 깊은 곳으로 빠르게 나아가면서 여러 번 생명의 우물을 모았다.“그렇다면 그들이 딸의 신격과 이 천수를 이용해 통로를 열려는 거라면 우리가 이 물을 모두 빼내면 그 문이 열리지 않을까?”당자현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그건 소용없어. 그들은 생명의 우물을 이용한 거지, 생명의 천수는 아니야.”임건우는 그 말을 듣고는 그만 그 생각을 접었다.지금은 딸을 구하는 게 우선이다.하지만 생명의 우물의 깊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음침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정말 계속 가면 저기 끝에 통로의 입구가 있을까?”백옥이 뒤에서 물었다.“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인데?”백옥이 말했다.백옥 뒤로 여러 명의 요족도 우물 안으로 들어왔고 나머지 요족들은 안전을 위해 바깥에 남았다.그때 앞서 달려가던 임건우가 갑자기 넓어진 공간을 느꼈다.그 느낌은 마치 지하수로에서 기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넓은 바다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다.눈앞은 황망하게 펼쳐져 있었고 먼 곳까지 흐릿하게만 보였다.“여기가... 어딘가?”뒤에서 박철호가 물었다.“이곳은 이차원 공간이야!”당자현이 대답했다.“빨리, 통로의 결점을 찾아봐. 보통 이런 곳에는 에너지 소용돌이가 있는 결점이 있어.”모두들 급히 그 결점을 찾기 시작했다.“여기 있어!”백옥이 외쳤다.입구 결점에 있는 소용돌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거기서 임건우의 딸이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빛이 흔들리며 그 모습이 흐릿하게 비췄지만, 분명 그녀였다.“들어가자!”모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