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천일이 동혁을 직접 죽이는 것은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잘못하면 그 일로 계속 귀찮은 일이 생길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동혁이 자결하면 시 경찰서도 나를 귀찮게 할 수는 없겠지.’ “이동혁, 네 아내와 가족이 계속 어렵게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순순히 내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나천일은 냉소하며 동혁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는 동혁이 자살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발밑의 칼을 본 동혁은 허리를 굽혀 뽑아 들어 엄지손가락으로 그 날카로운 칼날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좋아, 이따가 나천일, 네가 직접 이 칼로 자결하게 해 줄게.” 나천일은 동혁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며 미간에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네 놈이 내게 억지를 부려?’ “이동혁, 내가 여기까지 친절을 보였는데 굳이 더 큰 화를 자초하다니!” 나천일은 화가 나 이를 악물며 말했다. “좋아, 좋다고, 무릎 꿇기 싫다 이거지? 그럼 하는 수 없이 억지로 네 놈 머리를 눌러 강제로 무릎 꿇게 해 주마.” “얘들아!” 순간 강오맹의 고수 몇이 기세등등하게 걸어왔다. 모두 동혁을 상대하기 위해 나섰다. “이 고수들의 실력은 그룹의 그 쓸모없는 경비원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어.” 나천일이 말했다. 그는 동혁의 싸움 실력이 좋다는 것과 자신도 동혁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혁은 심지어 혼자의 힘으로 그룹의 수십 명의 경비원들을 물리쳤었다. 하지만. 지금 나천일이 부른 이 몇 사람은 그가 거금을 주고 초빙한 고수들이었다. 그러나 사실 오늘 망원각에 그들을 부른 것은 동혁을 상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천일이 냉소했다. “네 놈이 보는 눈이 있다면 순순히 나가서 무릎을 꿇고 다시 들어와! 내가 시키는 데로 자결하고 네 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혼을 위로해!” “나천일, 이 불충하고 불효한 놈. 양아버지를 죽인 짐승 주제에 감히 염치없는 말을 하다니!”
선도일의 말은 현장에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현우상을 참살했고, 겁에 질린 염동철은 그를 피해 황급히 도망했다. 지금 선도일의 말은 의심할 여지없이 천미의 말보다 더 힘이 있었다. “도일 아저씨, 심천미에게 현혹되지 마세요.” 나천일은 당황한 표정이 얼굴에 가득하여 말했다. “제 친아버지와 아저씨는 함께 양아버지를 도와 강오맹을 창립한 원로이시잖아요. 전 세 분을 보며 자랐고요.” “그런데 저 여자는?” 나천일은 천미를 가리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오그룹에 합류한 지 불과 몇 년밖에 안 됐고, 아직도 그 출신이 불분명해요.” “그런 저 여자의 말이 믿으시겠어요? 아니면 제 말을 믿으시겠어요?” “모두들 생각이 있으시다면 제 말뜻이 무엇인지 아실 거라고 믿어요.” 그 자리에 있던 강오맹의 원로들은 나천일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천일에 비해 천미는 확실히 기본적으로 신뢰를 얻기에 부족했다. “그럼 지금 내 말이 틀렸다는 거야?” 선도일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천일을 노려보았다. 그 눈을 슬쩍 한 번 마주친 것만으로도 나천일은 온몸이 마치 얼음 저장고에 떨어진 것처럼 뻣뻣하게 굳는 느낌을 받았다. 나천일은 선도일이 이미 자신을 장해조를 죽인 범인으로 인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이 일을 만회할 여지가 전혀 없게 되었다. “나천일, 네 아버지인 현도의 얼굴을 봐서라도 네게 자결해서 사죄할 기회를 주마.” “하지만 오래 기다리지 않을 거야.” 말을 하며 선도일은 장해조의 빈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천일을 둘러싼 고수들을 포함한 현장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안중에 전혀 없었다. 빈소 앞에 선 그는 스스로 허리를 굽혀 맑은 물이 담긴 놋대야에 두 손을 넣어 씻었다. 그 모습에 겉으로 당황해 보이는 나천일의 눈빛에 갑자기 흥분이 스쳐 지나갔다. 왜냐하면 지금 선도일이 천기독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선도일은 형님인 장해조를 매우 존경했다.요 며칠 동안 그는 망원각을 찾아올 때마다 직접 손을 씻고
천미의 말에 수많은 시선이 일제히 나천일에게 쏠렸다. 하지만 나천일은 이미 마음속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냉소하며 말했다. “심천미, 네가 급하게 내게 누명을 씌우려고 하는 것을 모를 줄 알고?” “여기 모두가 똑똑히 보았어. 방금 네가 먼저 아저씨에게 달려갔잖아. 난 오히려 네게 묻고 싶은데? 네가 그렇게 급하게 달려간 건 증거를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야?”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시선이 다시 천미에게 향했다.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다들 오늘 현실의 마피아 게임을 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도대체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그들은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 나천일의 심복인 운전기사 현성태가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형님, 백세종과 그가 데려온 사람들을 저희가 발견해 잘 주시하고 있습니다. 모두 홀 안에 있어요.” “마침 잘 됐어. 심천미이든, 백세종이든, 오늘 모두 죽여주겠어!” 나천일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단호하게 소리쳤다. “모두 닥쳐!” 성난 목소리에 홀 전체가 즉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나천일은 갑자기 손을 뻗어 사람들 속의 백세종을 가리키고 시선은 천미에게 향한 채 말했다. “심천미, 넌 몰래 염동철의 부하를 데리고 추모제에 와서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네 삼촌을 살해하게 했어. 이러고도 무슨 변명할 말이 있어?” 천미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천일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향했다. “허허, 형님은 정말 머리가 좋군요. 형님이 강오맹을 온전히 손에 넣는다면 아마 오래지 않아 N도 암흑가의 모든 사람들이 형님의 눈치를 볼 겁니다.” 사람들 속에서 백세종은 웃으며 머리에 쓴 모자를 벗었다. 나천일이 백세종을 가리키며 천미와 한패라고 말한 것에 대해 백세종은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해명을 해봤자 어차피 아무도 믿지 않겠지.’ “백세종, 네 놈이 감히 장 회장님의 추모제에 들어오다니
도광 하종운. 검치 선도일. 도광과 검치. 바로 20년 전 N도의 암흑가를 뒤흔든 두 명의 고수였다. 한 명은 N도 암흑가에서 제일의 킬러. 다른 한 명은 제일의 행동 대원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이 두 사람은 은거하여 종적을 감췄다. 하지만 암흑가 안에서는 그 둘의 전설이 계속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도광 하종운을 강오그룹 원로가 알아보자 사람들 사이에서 큰 파문이 일었다. 모두의 시선이 이 무표정한 거한에게 쏠렸다. 몸집이 크고 얼굴에 바늘 같이 날카로운 수염이 있는 것이 마치 전설 속에 사대천왕처럼 보였다. 동시에 그 배드민턴 라켓 주머니에는 배드민턴 라켓이 아닌 넓은 날의 중도가 들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선도일은 단검을 늘 소지했다. 하종운 역시 자신의 몸에 꼭 맞는 무기인 중도를 늘 소지하고 다녔다. 무게가 수십 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물건을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 자체가 이미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혹자는 말하길 중도에는 칼날이 없다고 했다. 칼날이 없으니 칼끝도 없다. 중도는 마치 하나의 쇳덩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종운이 단번에 강오맹의 고수를 날려버린 것을 본 사람들은 감히 이 중도의 위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나천일, 선도일은 죽었어.” “하지만 우리 동철 형님에게는 도광 종운 형님이 있지. 이제 너희 강오그룹은 무엇으로 우리 동철 형님과 싸울 거지?” 쥐 죽은 듯이 조용한 홀 안에 거만하고 득의만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오그룹의 사람들과 천미의 안색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그리고 나천일 본인은 더 당황해 손 발까지 차가워졌다. “백세종, 네 놈이 감히 날 가지고 놀아?”나천일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흉하게 변했다. ‘백세종, 저 늙은이를 산 채로 씹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구나.’ 백세종은 측은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놈은 야박하고 은혜도 모르는 데다 마음이 독하고 수단이 잔인하기까지 하지. 하지만 너무 물러서 속이기가 편해.” 사람들은 마치 벙어리처럼 아
“진씨 가문의 저 바보 사위가 지금 뭐라는 거야?” “이 정신 나간 놈이 병이 또 도졌나? 설마 장 회장님이 살아서 자기를 구해 주기라도 할 줄 아는 거야?” 예상을 깬 동혁의 행동은 모두의 비웃음을 샀다. 모두 동혁이 이미 겁에 질려, 죽은 사람인 장해조에게까지 희망을 걸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들 진씨 가문의 데릴사위인 동혁이 정신병원에서 나왔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혁이 어떤 행동을 해도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동혁아, 넌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천미도 동혁이 장해조에게 실례가 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이동혁, 그런 쓸데없는 기대는 하지 마. 장해조는 이미 죽었어. 완전히 죽었다고.” 백세종도 비웃었다. ‘우리 형님의 천기독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은 설사 화타가 살아온다 해도 살릴 수 없어.’ 동혁은 상대방이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강오그룹의 고수 중 한 명을 다짜고짜 붙잡아 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붙잡힌 고수는 놀라고 화가 났지만 동혁의 손에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혁은 그의 허리춤에 있는 편도를 빼서 손을 휘둘러 던졌다. 휙! 편도는 허공을 가르며 길을 따라 늘어선 많은 사람들 사이로 날아갔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칼끝이 장해조의 시신이 담긴 관 뚜껑 틈에 박혔다. 순간 “쾅” 하는 굉음이 들렸다. 뜻밖에도 무거운 관 뚜껑이 바로 관에서 땅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 산산조각이 났다. 편도도 땅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롭게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좋은 편도가 이 거대한 충돌과 함께 소용돌이 모양으로 말려 고철 더미로 변했다. 백세종의 뒤에 무표정하게 있던 도광 하종운도 이 모습을 지켜봤다.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동혁을 바라보았는데 뜻밖에도 얼굴에 약간 놀랍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십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편도 한 자루로 봉인된 관을 부수다니.’ ‘힘도 힘이지만, 그것을 컨트롤하고 운용하는 것이 보통이 아니군.’ 그러나.
“아버지? 이게 대체?” 천미가 먼저 달려들어 원로 몇 명과 함께 장해조를 관에서 나오게 부축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자.” 장해조는 고개를 돌려 동혁을 향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나오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관 뚜껑이 너무 꽉 닫혀 있어서 미처 열지 못한 겁니다.” “이왕 나오셨으니 이제 앞에 닥친 일은 스스로 처리하세요. 저는 단지 대신 관을 열어드린 거뿐입니다.” 동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천미 등의 의심스러운 시선들이 모두 동혁에게 향했다. 각자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많은 의혹들이 생겼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동혁의 행동은 관을 부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장해조를 풀어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장해조, 너, 네가 어떻게...” 백세종은 장해조를 가리켜며 귀신을 본 듯 놀랐다. 장해조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상하지? 내가 천기독에 중독되었으니 분명 죽어야 하는데, 왜 다시 살아났는지?” 백세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저 의아한 듯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아직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다. “안구정 선생님 어디에 계신가요?” 그때 갑자기 장해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들 사이에서 갑자기 두루마기를 입은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진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N도 최고의 의사, 신의 안구정!” 홀에서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가 간간이 울려 퍼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인의 정체를 알아챘다.장해조는 땅바닥에 누워 죽은 지 오래인 선도일을 가리키며 주먹을 불끈 쥐고는 공손히 부탁했다. “안 선생님, 죄송하지만 제 늙은 형제도 다시 한번 치료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안구정은 곧장 선도일에게 와서 잠시 들여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치 선생도 장 회장님과 마찬가지로 천기독에 중독되었군요.” “그럼 우선 중독이 된 경로를 찾고 다음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는 이전에 장해조가 독성이 작용해 혼절하는 과
“안 선생의 제안에 따라 저도 모험을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해조는 여기까지 말하고, 얼굴이 이미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린 나천일을 바라보며 다시 차갑게 입을 열었다. “먼저 계획을 세워 내부자가 제게 약을 쓰게 해 독이 작용하게 한 다음 가사 상태에 들어간 겁니다.” “역시 안 선생은 N도 최고 의사답게 독이 작용하는 매개의 출처를 알아낸 뒤 재빨리 치료법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계속 관에 누워 이틀 동안 몸속의 독소를 제거해 왔고.” “오늘 새벽에야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장해조가 전체 일의 경과를 짧게 설명하자 사람들 사이에서 벌써 말들이 분분했다. 안구정은 역시 N도 최고 의사다웠다. 바로 이 짧은 순간에 그는 이미 선도일을 위한 치료를 마쳤다. 방금까지 의식을 잃고 누워있던 선도일이 갑자기 바닥에 일어나 앉았다. 가슴이 심하게 출렁이더니 목구멍에서 꿀렁하며 무언가 거꾸로 나오려는 소리가 들렸다. “푸우!” 검은 피가 순간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와 바닥 타일을 적셨는데 그곳에서 사르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마치 귀신과 같았다. 뿜어져 나온 혈액 속에는 천기독의 독소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안구정의 뛰어난 침술로 선도일의 신체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게 되었다. 이때 원래 윤기가 흘렀던 선도일의 얼굴이 병든 붉은색으로 변했다. 선도일은 무술을 익힌 사람이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어렵지 않게 자신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공손히 안구정을 향해 인사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치 선생, 감사 인사는 저기 저 젊은이에게 하시지요.” 안구정은 명망 있는 인사답게 겸손하게 대답하며 동혁을 가리켰다. “이 젊은이가 선생이 중독된 천기독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면, 저는 이렇게 빨리 선생을 해독할 수 없었을 겁니다.”그러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동혁을 쳐다보았다. ‘이 진씨 가문의 바보 사위가 N도 최고 의사 안구정의 입을 통해 칭찬을 듣다니!’ ‘설마 이 바
“설마 저 광도 하종운이 선도일이 무서워 핑계를 대고 사생결판을 피한다고?” 망원각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 지금 선도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존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20년 동안 암흑가에서 물러났던 검치가 다시 산에서 나온 후, 염동철의 수하 중 제일 강한 고수를 단숨에 죽였어.’ ‘거기에 함께 암흑가를 주름잡던 그 유명한 도광 하종운도 승부를 피하다니.’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과는 달리 선도일은 동혁을 쳐다보았다. ‘하종운은 떠나기 전 내 눈을 피하지 않았어.’ ‘그렇다는 건, 하종운은 사실 저 이동혁이 두려워서 떠난 거야!’ 하종운이 떠나자 남겨진 백세종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그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틈을 타 조용히 현장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강오그룹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고, 그에게 몰래 도망칠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백세종, 거기 서!” 백세종이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하자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 몸을 돌려 빈소 앞 장해조를 바라보았다. “장 회장님께서 죽었다 다시 살아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 추모제는 의미 없게 되었으니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파렴치 한 놈! 바로 네놈들이 독을 써서 장 회장님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그냥 이렇게 가겠다고?” 강오그룹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온 암흑가의 거물들도 잇달아 욕설을 퍼부었다. 암흑가는 본래 음모와 계략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독살하는 일은 암흑가에서도 여전히 용납할 수 없는 큰 금기 중 하나이다. 그런데 장해조가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이 아무도 쓰길 원하지 않는 방법인 독살을 당했다. “장 회장님, 덕망이 높은 암흑가 선배로서 이번 일은 회장님뿐만 아니라 저희 암흑가의 형제들을 위해 염동철에게 본보기를 보여야 합니다.”많은 사람들이 잇달아 장해조에게 제안했다. 장해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운 눈으로 백세종을 바라보았다. “백세종, 자결해!” 담담하게 내뱉은 말 한마디에 백세종의 얼
우대평은 이미 동혁에게 맞아서 정신이 혼미했다.소파에 멍하니 앉은 채 동혁의 손바닥이 매번 뺨을 때려도 그저 가만히 있었다.“이동혁, 그만해! 또 때리면, 회장님은 너한테 산 채로 맞아서 죽을 거야!”나건성의 두려움과 공포가 섞인 고함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저 쓰레기는 자기 은사가 맞고 있는데도, 감히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멀리 숨어 있네.’ 방금 동혁에게 뺨을 맞았기에, 나건성은 동혁의 손이 얼마나 매운지 깨달았다.‘이미 60세가 다 된 우대평이 얼마나 맞고 견딜 수 있을까?’동혁은 당연히 자신의 힘을 당연히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었다. 비록 우대평의 얼굴이 아릴 정도로 아팠지만, 그렇다고 맞아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그러나 우대평이 맞아서 정신을 못 차리는 데다가, 이제는 동혁도 화가 많이 풀렸기에 때리던 손을 멈췄다.털썩!동혁이 손을 멈추자 우대평은 곧장 바닥으로 쓰러졌다.원래 동혁이 백핸드로 끊임없이 때리면서 우대평의 몸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대평은 일찌감치 쓰러졌을 것이다.동혁이 더는 손을 대지 않는 걸 본 뒤에야 우시연과 나건성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그리고 땅바닥에 엎어진 채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우대평을 일으켜 세웠다.“큰아버지, 괜찮으세요? 제발 죽지 마세요, 흑흑...”“회장님 제발 버티세요. 제가 바로 구급차를 부를게요!”우시연과 나건성은 우대평의 늙은 몸을 끊임없이 흔들었다.한쪽에 서서 냉담하게 방관하던 동혁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담담하게 말했다.“이 뻔뻔한 늙은이, 너도 사람을 볼 면목이 없을 때가 있어?”“또 죽은 척하면서 나한테 누명을 덮어씌우려는 거지? 내가 두 대만 더 때려봐야겠어!”“어?”우시연과 나건성은 그 말을 듣고 멍해졌다.‘무슨 소리야, 우대평이 진짜 죽어가는 게 아니라 죽은 척하는 거야?’그런데 영혼이 없는 산송장처럼 보였던 눈꺼풀이 떨리더니, 우대평이 갑자기 눈을 떴다.우대평은 감히 더 이상 엄살을 부리지 못했다.“아아! 이 개자
동혁의 말을 듣고 우대평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우대평!H시에서 가장 오래 된 기업가이자 1세대 갑부! H시의 많은 기업가들의 존경을 받는 H시상공회의소 회장!‘동혁 씨가 아무리 간이 배밖에 나왔다 해도, 우대평에게 손을 대겠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다니!’“동혁 씨, 하지 마...”세화가 동혁을 막으려고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동혁이 정말 그렇게 한다면, 틀림없이 큰 파문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기에.‘지금 여론이 이미 동혁 씨한테 온통 욕설을 퍼붓고 있는데, 또 일을 저지르면 큰일이야!’“괜찮아, 여보, 그저 아무 능력도 없는데, 늙은 티를 내며 거만하게 행세하는 걸 좋아하는 늙은이일 뿐이야. 때리면 때리는 거지.”동혁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세화를 안심시키면서, 우대평을 향해 계속 다가갔다.그때 갑자기 나건성이 달려들어 우대평의 앞을 가로막았다.“이동혁, 네 주제를 똑똑히 파악해! 네가 뭔데 감히 회장님에게 손을 대겠다는 거야!”“네가 회장님에게 폭언을 하고 불경한 짓을 한다면, 너는 더 이상 H시에서 설 곳이 없어!”나건성은 동혁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성난 목소리로 질책했다.“말 다 했어? 말 다 했으면 꺼져.”동혁은 나건성을 힐끗 보고는 손을 들어 따귀를 때렸다.‘내가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 나건성은 줄곧 성가시게 굴었지.’동혁은 줄곧 상대하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또 앞으로 달려 나와서 난리를 치자, 동혁도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다.“아...”피를 토하며 날아간 나건성이 땅바닥에 떨어졌다.이제 동혁은 아무 장애물도 없이 우대평과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우대평은 무의식 중에 손에 든 찻잔을 움켜쥐었다.그러나 동혁의 앞에서 비겁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여전히 그대로 앉아 있었다.우뚝 솟은 산처럼 굳건한 모습은 그래도 꽤나 기백이 있어 보였다.심지어 동혁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찻잔을 들고서, 우대평이 무심코 말했다.“어린 놈이 감히 내게 손
“이동혁, 어서 무릎을 꿇고 시연 양에게 사과하고, 회장님에게 사과해. 어쩌면 회장님의 용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이 말을 들은 세화가 바로 나건성을 노려보았다.‘나도 맞았는데 왜 동혁 씨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는 거야?’동혁은 나건성을 보지도 않고 담담하게 물었다.“우 회장, 이것도 당신의 뜻이야?”“당연하지.”동혁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자, 우대평은 다시 소파에 앉았다.옆에 있던 찻잔을 들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일을 잘못했는데, 또 다른 사람의 용서를 얻으려면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 해.”“하지만 무릎을 꿇고 시연이에게 사과하는 건 네가 방금 뺨을 때린 것에 대한 대가일 뿐이야.”“내가 너를 용서할지 말지는 너의 후속 태도와 표현에 달려 있지.”짧디짧은 2분 간의 접촉에서 우대평은 동혁이 오만불손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냈다.그래서 이 기회를 빌어서 동혁의 성질을 고치고 길들일 생각이었다.‘그러면 나중에는 내가 시킨 대로 성실하게 리성투자회사와 천용훈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겠지.’‘그러면 오한민이 내게 신세를 지게 되는 거야.’“잘못했다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동혁이 냉담하게 말했다.“우 회장, 당신 수하가 당신은 정직하고 덕망이 높다고 하던데, 그럼 내가 오히려 우 회장에게 묻고 싶은데.”“내 아내가 우시연에게 뺨을 맞았을 때 당신은 뭘 하고 있었지?”“이 H시 상공회의소의 당당한 회장이 나와서 막을 수 있었을 텐데?”“그리고 저 우시연은 스타공익재단의 책임자지만, 내 아내는 두 그룹의 회장이야.” “나는 저 여자가 무슨 백이 있길래 내 아내의 뺨을 때렸는지 모르겠어. 도대체 누구의 힘을 믿는 거야!”“우시연이 맞으니까, 그제서야 튀어나와서 신분과 경력으로 사람을 억누르겠다고?”“그게 바로 정직하고 덕망이 높다는 거야?”동혁은 냉혹하고 매서운 말투로 연거푸 질문했다.동혁이 결국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자, 우시연이 갑자기 불쾌한 듯이 욕설을 퍼부었다.“개X 끼, 내가 네 마누라를 때렸는데
“시연아!”조카딸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모습을 보자, 소파에 단정하게 앉아 있던 우대평이 놀라 울부짖었다.그리고 탁자를 치고 일어나서 찢어질 듯한 시선으로 동혁을 노려보았다.“어디서 온 나쁜 놈이 감히 우리 H시 상공회의소에서 건방지게 굴어!”“여보, 아파?”동혁은 우대평을 보지도 않은 채 세화의 손을 잡고 애틋한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아.”볼을 만지면서 바닥에 뻗은 우시연을 본 세화는, 맞은 얼굴이 덜 아픈 것처럼 느껴졌다.동혁이 자신을 무시하자, 화가 난 우대평은 이를 악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여보? 이 나쁜 새끼, 바로 진세화의 폐물 데릴사위 남편 이동혁이야?”“늙은이, 너는 또 뭐야?”동혁이 차가운 눈빛으로 우대평을 바라보았다.우대평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우시연을 부축하던 나건성이 바로 고함을 쳤다.“건방지게! 이 분은 우리 H시상공회의소의 우 회장님이셔! 감히 회장님에게 불경을 저지르다니!”“우 회장이라, 당신이 우대평이야?”우시연을 힐끗 본 동혁이 큰 소리로 물었다.“저 천한 년도 성이 우씨던데, 당신 사생아야?”“이동혁, 너 건방지게!”분노한 나건성이 고함을 쳤다.“시연 양은 우리 회장님의 조카딸이야! 정직하고 덕망이 높으신 우리 회장님을 네가 이렇게 중상모략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어!”“빨리 회장님께 잘못을 빌지 못해!”“아, 내가 착각한 모양이네.”동혁은 고개를 끄덕이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던 우대평의 표정이 약간 누그러졌다. 자신의 신분을 알았으니 동혁이 복종할 걸로 생각한 것이다.그러나 동혁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저 천한 년이 무지막지하게 날뛰면서 설치길래, 나는 집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걸로 생각했지. 바깥에 대놓고 내놓을 수 없는 사생라서 그런 줄 알았지.”“누가 가르친 모양이네... 그런데 어떻게 저따위로 가르쳤지?”동혁의 조롱하는 눈빛이 우대평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위로 떨어졌다.“피식!”세화는 바로 웃음이 나왔지만 얼른 입을 막았다.우시연에게 맞은 뺨이
“죄송합니다, 회장님. 저는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옳고 그름을 견지할 뿐입니다.”“이 세상을 비록 흑백 논리로 구분할 수 없다고 해도, 때로는 무조건 옳거나 틀린 경우도 있으니까요!”세화는 변함없이 우대평을 존중했지만 그 말투는 단호했다.우대평은 마치 발작할 듯한 기세로 코웃음을 쳤다.바로 그때, 안경을 쓴 여자가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뛰어들었다.“큰아버지, 제 화를 좀 풀어주세요!”“큰아버지, 그 이동혁이라는 폐물 데릴사위가 얼마나 날뛰는지 아세요?” “제가 그자를 자원봉사자에서 제명했을 때, 그 인간이 뜻밖에도 저를 위협했어요. 오늘이 제가 스타공익재단의 책임자로 있는 마지막 날이 될 거라고요!”“그 인간은 큰아버지를 정말 우습게 여기는 거예요. 정말 화가 나 미치겠어요!”여자는 세화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우대평의 앞에 와서 눈노를 쏟아냈다.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앞서 동혁을 자원봉사자 명단에서 제명했던 우시연이다.스타공익재단은 H시상공회의소가 출자해서 설립한 재단으로, 당연히 큰아버지 우대평 덕분에 우시연이 책임자가 될 수 있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우대평의 눈에서 노기를 드러냈다.“이동혁이 정말 그렇게 말했단 말이야?”“제가 큰아버지를 왜 속이겠어요! 그렇게 많은 자원봉사자 앞에서 저를 아주 우습게 여겼어요.” “큰아버지가 저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이 분노를 해소할 수 없을 거예요!”우대평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소연하던 우시연은, 문득 고개를 돌려 세화를 보고는 잠시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어, 저 사람은 누구에요, 큰아버지?”세화를 처음 봤지만 우시연의 마음속에서는 질투가 일었다.‘이 여자 너무 예쁜데.’ 세화의 온몸에 넘치는 자신감과, 속세를 벗어난 듯한 고귀한 기질에 우시연은 열등감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시연아, 저 여자는 바로 그 폐물 이동혁의 아내이자 혜성그룹의 회장인 진세화 씨야.”나건성이 마치 환심이라도 사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우시연이 줄곧 큰아버지 우대평의 총애를 받고 있기에
나건성은 세화에게 전혀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고압적인 태도가 계속 이어지자, 곧 세화는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우대평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면서 세화가 말했다.“회장님, 상공회의소에 끼친 손실에 대해서 깊이 사과를 드립니다. 그저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네요.”우대평은 가만히 앉은 채 가타부타 태도를 표명하지 않았다.나건성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회장님, 이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사과를 해도 소용없습니다.” “지금 리성투자회사에서는 당신의 남편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당신의 남편은 무법천지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스타공익재단을 통해서 원화투자회사로 연락하여 사과하라고 했습니다만 당신의 남편은 거절하고 항난그룹을 찾았습니다.”“더군다나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허, 정말 우리 H시상공회의소를 안중에도 두지 않다니.”“당신의 남편은 회원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다 해도, 진 회장 당신은 다릅니다.” “당신은 우리 H시 상공회의소의 정식 회원입니다. 솔선수범해서 회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이 말에 세화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H시상공회의소 회원이 확실하기에.앞서 H시상공회의소에서 찾아와서 입회 서류를 작성하게 했다.원래 세화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비즈니스계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늘 온갖 협회와 단체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금은 입회 서류 한 장 때문에 H시상공회의소에서 자신에게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지게 된 것이다.“H시상공회의소에서 제게 뭘 요구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세화는 염치불구하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나건성이 간단하게 대답했다.“아주 간단합니다. 남편분이 천용훈 씨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도록 진 회장님이 나서서 얘기하시면 됩니다!”세화가 우대평을 힐끗 쳐다봤지만, 우대평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무표정한 얼굴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진 회장님, 이런 작은 일에 뭘 망설입니까? 되든 안 되든 말을 해야지요!”
‘사해상공회의소의 욕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S시 재계의 거두가 되려고 할 뿐만 아니라, 지금은 또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다른 도시들의 상공회의소에 손을 대기 시작했어.’그러나 이것은 동혁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그래, 알았어.”전화를 끊은 동혁은 바로 선우설리가 보낸 주소로 달려갔다.H시상공회의소의 사무실은 다이너스티호텔에 있다.6층을 모두 사용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업무뿐만 아니라 접대와 회의에도 편리했다.세화는 동혁보다 조금 먼저 도착했다.직원의 안내로 회장실로 오자, 검은색 가죽 소파에는 우대평 회장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후배 진세화가 우 회장님을 뵙습니다.”앞으로 나온 세화가 공손하게 후배로서의 예를 취했다. 이 덕망이 높은 선배에 대해서 세화는 줄곧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60이 다 된 우대평의 귀밑머리는 벌써 반백인 상태였다.우대평이 허허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진 회장,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요. 나는 그저 나이만 먹었을 뿐입니다.” “두 회사를 지휘하는 진 회장에 비하면, 그저 좀 일찍 태어난 정도의 경력밖에 없어요.”“그리고 그 당시 내가 창업을 시작했을 때, 진씨 가문에서는 할머님이 이미 진성그룹을 세우셨지요.” “나도 마찬가지지만 그 분의 인도를 받은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은 각지에 흩어져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공을 세워 이름을 날렸고, 거부가 되기도 했어요.”“그런데 지금의 진성그룹은, 아이고,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요...”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대평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파에 앉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세화는 진성그룹의 지금 모습을 떠올리면서 마음속으로도 한숨을 내쉬었다.‘그 당시 진성그룹이 할머니 수중에 있었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지금은 전혀 존재감이 없어.’세화 일가를 제외하고는 진씨 가문 사람들 모두 성을 바꿔서, 조상마저 잊었다는 오명을 쓴 채 웃음거리로 전락했다.그러나 세화는 최근 제씨 집안에서, 할머니 제원화로 빚어진 각종 문제들을 청산하고 있는 것
우시연은 믿는 구석이 있기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스타공익재단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어서, 우시연이 자원봉사자로 뽑지 않겠다고 하면 자원봉사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좋은 일을 하는데 너희 동의가 필요하다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자원봉사자들은 모두 분개했고, 몇몇 여성 자원봉사자들은 곧 울음이 터질 듯했다.그들 모두 대학생으로 현실은 어둡고 오싹하기만 했다.“나를 제명하겠다는 거지? 내가 가면 되겠네.”바로 그때 불쑥 말을 내뱉은 동혁이 레드 재킷을 벗으면서 그 여학생들을 위로했다.“모두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안 돼요. 우리가 자원봉사를 하는 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잖아요.”“걱정 말아요, 나중에 내가 모두를 위해서 공정한 도리를 되찾아 줄 테니까요. “모두가 열심히 땀을 흘렸는데 또 눈물까지 흘리게 할 수는 없지요!”수위 변동이 긴급했기에, 동혁은 이 일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이 대거 떠나게 되거나 구조가 지체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그래서 잠시 화를 참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레드 재킷을 우시연의 옆에 있는 직원에게 던진 동혁이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우시연, 스타공익재단의 책임자, 맞지? 기억해 두겠어.”“내가 한마디 충고하지. 내가 간 후에 너는 절대 이 자원봉사자들을 난처하게 해선 안 돼. 자신의 앞날이 걸린 문제니까 잘 생각해.”“오늘이 네가 스타공익재단 책임자를 맡은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야!”말을 마친 동혁은 돌아서서 바로 가버렸다.“흥, 항난그룹 회장 아주 대단해?”“우리 큰아버지 우대평에 비하면 너는 X도 아니야! 발톱의 때도 안 되는 주제에! 내가 무서워할 것 같아?”동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우시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조롱했다.동혁은 상대하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밤을 새운 데다가 또 반나절 동안 구조에 참여했기에, 피곤해서 좀 쉴 생각이었다.그러나 집에 돌아오자마자 장모가 동혁을 붙잡고 면전에서 퍼부어댔다.“이동혁, 이 나쁜 놈! 괜찮다고 해놓고서 왜 또 그 천용훈
장가연의 말을 듣자, 동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장가연과 H시상공회의소는 리성투자회사의 흉악한 속셈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어.’‘소위 법적 절차를 밟는다는 건 말짱 헛소리야.’‘증거가 확실하기 때문에, 리성투자회사에서 소송을 한다 해도 절대 이길 수 없어.’‘만약 내가 압력에 못 이겨서 정말로 사과를 한다면, 평생 그 누명을 안고 가야 해.’‘더군다나 상대방이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한 건, 나를 마음껏 모욕하겠다는 수작에 지나지 않아.’동혁은 확신했다.‘일단 내가 공개적으로 사과하면, 사건이 마무리되는 게 아니라 시작되는 거야!’“투자회사의 뜻? 장가연 씨, 당신이 투자회사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사장인 내가 잠시 떠나 있을 뿐입니다.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장가연이 자신의 사과를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상 동혁도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때로는 양보할수록 더 욕심을 내는 법이지.’[이동혁, 당신!]동혁의 태도가 이렇게 강경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장가연은 화를 참지 못하고 식식거렸다.“어차피 나는 절대 사과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요. 나는 또 구조 작업에 가야 합니다.”동혁도 장가연이 화가 나든 말든 전화를 끊어버렸다.“당신이 이동혁 씨입니까?”몇 분 후 동혁 등 구조대원들은 계속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갑자기 레드 재킷을 입은 사람들이 바로 동혁을 찾으며 다가왔다. 기세등등한 태도에 눈빛도 곱지 않았다.“내가 바로 이동혁입니다. 왜요?”동혁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물었다.선두에 선 젊은 여자가 안경을 고쳐 세우고는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했다.“나는 스타공익재단의 책임자 우시연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우리 자원봉사자 명단에서 제명되었음을 알립니다!”이 말을 듣고 멍해진 주변의 구조대원들이 곧 우시연을 에워쌌다.“왜 이동혁 씨를 제명하는 겁니까?” “이동혁 씨는 우리 자원봉사자들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데요!” “더럽고 피곤한 것도 전혀 마다하지 않았어요.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