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게 대체?” 천미가 먼저 달려들어 원로 몇 명과 함께 장해조를 관에서 나오게 부축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자.” 장해조는 고개를 돌려 동혁을 향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나오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관 뚜껑이 너무 꽉 닫혀 있어서 미처 열지 못한 겁니다.” “이왕 나오셨으니 이제 앞에 닥친 일은 스스로 처리하세요. 저는 단지 대신 관을 열어드린 거뿐입니다.” 동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천미 등의 의심스러운 시선들이 모두 동혁에게 향했다. 각자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많은 의혹들이 생겼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동혁의 행동은 관을 부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장해조를 풀어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장해조, 너, 네가 어떻게...” 백세종은 장해조를 가리켜며 귀신을 본 듯 놀랐다. 장해조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상하지? 내가 천기독에 중독되었으니 분명 죽어야 하는데, 왜 다시 살아났는지?” 백세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저 의아한 듯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아직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다. “안구정 선생님 어디에 계신가요?” 그때 갑자기 장해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들 사이에서 갑자기 두루마기를 입은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진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N도 최고의 의사, 신의 안구정!” 홀에서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가 간간이 울려 퍼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인의 정체를 알아챘다.장해조는 땅바닥에 누워 죽은 지 오래인 선도일을 가리키며 주먹을 불끈 쥐고는 공손히 부탁했다. “안 선생님, 죄송하지만 제 늙은 형제도 다시 한번 치료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안구정은 곧장 선도일에게 와서 잠시 들여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치 선생도 장 회장님과 마찬가지로 천기독에 중독되었군요.” “그럼 우선 중독이 된 경로를 찾고 다음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는 이전에 장해조가 독성이 작용해 혼절하는 과
“안 선생의 제안에 따라 저도 모험을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해조는 여기까지 말하고, 얼굴이 이미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린 나천일을 바라보며 다시 차갑게 입을 열었다. “먼저 계획을 세워 내부자가 제게 약을 쓰게 해 독이 작용하게 한 다음 가사 상태에 들어간 겁니다.” “역시 안 선생은 N도 최고 의사답게 독이 작용하는 매개의 출처를 알아낸 뒤 재빨리 치료법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계속 관에 누워 이틀 동안 몸속의 독소를 제거해 왔고.” “오늘 새벽에야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장해조가 전체 일의 경과를 짧게 설명하자 사람들 사이에서 벌써 말들이 분분했다. 안구정은 역시 N도 최고 의사다웠다. 바로 이 짧은 순간에 그는 이미 선도일을 위한 치료를 마쳤다. 방금까지 의식을 잃고 누워있던 선도일이 갑자기 바닥에 일어나 앉았다. 가슴이 심하게 출렁이더니 목구멍에서 꿀렁하며 무언가 거꾸로 나오려는 소리가 들렸다. “푸우!” 검은 피가 순간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와 바닥 타일을 적셨는데 그곳에서 사르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마치 귀신과 같았다. 뿜어져 나온 혈액 속에는 천기독의 독소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안구정의 뛰어난 침술로 선도일의 신체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게 되었다. 이때 원래 윤기가 흘렀던 선도일의 얼굴이 병든 붉은색으로 변했다. 선도일은 무술을 익힌 사람이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어렵지 않게 자신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공손히 안구정을 향해 인사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치 선생, 감사 인사는 저기 저 젊은이에게 하시지요.” 안구정은 명망 있는 인사답게 겸손하게 대답하며 동혁을 가리켰다. “이 젊은이가 선생이 중독된 천기독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면, 저는 이렇게 빨리 선생을 해독할 수 없었을 겁니다.”그러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동혁을 쳐다보았다. ‘이 진씨 가문의 바보 사위가 N도 최고 의사 안구정의 입을 통해 칭찬을 듣다니!’ ‘설마 이 바
“설마 저 광도 하종운이 선도일이 무서워 핑계를 대고 사생결판을 피한다고?” 망원각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 지금 선도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존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20년 동안 암흑가에서 물러났던 검치가 다시 산에서 나온 후, 염동철의 수하 중 제일 강한 고수를 단숨에 죽였어.’ ‘거기에 함께 암흑가를 주름잡던 그 유명한 도광 하종운도 승부를 피하다니.’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과는 달리 선도일은 동혁을 쳐다보았다. ‘하종운은 떠나기 전 내 눈을 피하지 않았어.’ ‘그렇다는 건, 하종운은 사실 저 이동혁이 두려워서 떠난 거야!’ 하종운이 떠나자 남겨진 백세종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그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틈을 타 조용히 현장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강오그룹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고, 그에게 몰래 도망칠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백세종, 거기 서!” 백세종이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하자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 몸을 돌려 빈소 앞 장해조를 바라보았다. “장 회장님께서 죽었다 다시 살아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 추모제는 의미 없게 되었으니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파렴치 한 놈! 바로 네놈들이 독을 써서 장 회장님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그냥 이렇게 가겠다고?” 강오그룹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온 암흑가의 거물들도 잇달아 욕설을 퍼부었다. 암흑가는 본래 음모와 계략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독살하는 일은 암흑가에서도 여전히 용납할 수 없는 큰 금기 중 하나이다. 그런데 장해조가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이 아무도 쓰길 원하지 않는 방법인 독살을 당했다. “장 회장님, 덕망이 높은 암흑가 선배로서 이번 일은 회장님뿐만 아니라 저희 암흑가의 형제들을 위해 염동철에게 본보기를 보여야 합니다.”많은 사람들이 잇달아 장해조에게 제안했다. 장해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운 눈으로 백세종을 바라보았다. “백세종, 자결해!” 담담하게 내뱉은 말 한마디에 백세종의 얼
강오그룹의 원로들 눈에 나천일은 그들의 가족이었다. 하지만 천미는 그들에게 정체불명의 남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장 회장님이 심천미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 하셨다면.’ ‘내가 나천일이라도 똑같이 불복했을 거야.’ ‘단지 나천일이 이번에 조금 극단적이었을 뿐.’ 몇 명의 원로들이 나서서 나천일의 목숨을 구하려 했다. “형님, 천일이 말이 맞아요. 천일이는 우리 형제들이 보살펴 자란 아이입니다. 이번에 남에게 속아서 잠시 어리석게 큰 잘못을 저지른 거뿐이에요.” “맞아요, 형님. 염동철의 그 천기독에 형님도 감쪽같이 중독되었는데, 하물며 천일이는 어떻겠습니까? 다른 사람에 의해 약을 먹어 판단력이 잠깐 혼미해졌을지도 몰라요.” “저희가 어른들이니, 천일이에게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줘야죠.” 장해조는 이런 원로들의 말을 듣자 망설여졌다. 나천일의 생부 나현 도는 장해조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죽었다. 그래서 장해조는 나천일을 양아들로 거두어 자신의 친아들처럼 키웠다. “그럼 네 생부의 얼굴을 봐서라도 이번엔 살려주마.” 장해조가 차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장해조의 말을 들은 나천일은 자신이 죽을죄를 면하게 되어서 미친 듯이 기뻤다. ‘됐어. 목숨은 건졌어!’ 나천일이 죽음을 피했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칼 한 자루가 갑자기 그의 발밑으로 날아와 박혔다. 나천일은 순간 얼떨떨했다. 그는 눈앞의 칼을 알아봤는데 바로 아까 전에 자결하라며 동혁의 발밑에 던진 칼이었다. “장 회장님, 누가 회장님에게 그놈의 목숨을 살려줄 권한을 준 건가요?” “오늘, 저는 저 놈이 자결하는 걸 지켜봐야겠습니다!” 동혁의 냉혹한 목소리가 홀 전체에 갑자기 울려 퍼졌다. “이동혁, 쓸모없는 데릴사위 주제에 네놈이 감히 나를 자결하게 하겠다고?” 나천일은 고개를 돌려 동혁을 노려보며 미친 듯이 외쳤다. “진씨 가문 같은 이류 가문의 데릴사위가 장 회장님께 발언을 하다니? 네 주제에 감히
수많은 빈정거림과 무시가 동혁에게 쏟아졌다. 아무도 동혁을 안중에 두지 않고, 쓸모없는 사람의 요구라고 치부하며 신경 쓰지 않았다. 이 강오그룹 사람들의 눈에 동혁은 그저 하찮은 사람일 뿐이다. ‘우리 강오그룹이 전에 누명을 씌워 억울하다고?’ ‘하지만 이제 결백을 증명했고, 운 좋게 목숨도 건졌잖아.’ ‘그럼 우리에게 감사해야지.’ ‘어딜 감히 누구의 사과를 요구해?’ 동혁은 강오그룹의 원로들을 상대하지 않고 장해조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더 과도하고 더욱 미쳐 죽음 자초하는 요구를 했다. “장 회장님. 당신의 그 계획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인 내가 구치소에 끌려들어 갔고 당신이 이용하는 바둑알이 되었습니다.” 동혁의 말투가 차가웠다. “장 회장님, 본인도 나에게 사과를 빚진 게 아닙니까?” 장해조가 방금 전 사람들에게 설명한 데로 그는 이틀 동안 가사 상태로 있다가 오늘 아침에야 의식을 회복했다. 그러나 동혁은 장해조가 안구정과 계획을 세우고 가사 상태에 있기 전에 나천일의 음모를 밝혀낼 방법을 찾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장해조는 자신이 가짜로 죽은 후에 내가 범인으로 몰릴 것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것을 막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지.’ ‘아무리 누명을 쓴 것이 일시적이고, 장 회장이 깨어나 내 결백이 증명되었다 하더라도.’ ‘내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야.’ ‘장 회장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를 이용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거기다 이번 일로 나와 세화, 우리 가족에게 적지 않은 폐를 끼쳤어.’ ‘심지어 세화와의 결혼까지 위태롭게 했지. 그러니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머리가 정말 어떻게 된 거야? 저 데릴사위 놈이 완전 미쳤는데?” “저놈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까? 장 회장님께 직접 사과하라고 하다니!” “장 회장님이 20년 전에 암흑가를 주름잡던 시절에 저 바보는 아직 어려 이불에 오줌이나 싸고 진흙놀이나 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 햇병
“그럴 리가요. 전 이 선생의 말을 가벼이 여긴 적 없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제가 사무실에서 따로 차를 대접하고, 직접 선물로 그간의 일을 보상하겠습니다.” 장해조는 예의 있게 말했다. “제게 선물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동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동혁, 장 회장님은 암흑가 은둔고수이자 대부로서 신분이 아주 높아.” “하지만 넌 이류 진씨 가문에서도 지위가 가장 낮은 데릴사위일 뿐이야.” “장 회장님이 너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널 존중해 주는 거라고. 그러니 자꾸 뻔뻔스럽게 굴지 마!” 동혁이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미가 빠르게 동혁의 곁으로 와서 작은 소리로 훈계했다. “동혁아, 우리 아버지가 이미 네게 사과하기로 약속했잖아. 네게 좋은 일인데 그냥 받으면 돼지.” “네가 이렇게 우리 아버지를 계속 난처하게 한다면, 아버지는 관대하게 그냥 넘어간다 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가만있지 않을 거야.” “누군가는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네게 보복을 하거나 세화 가족에게까지 보복할 수 있어!” “네가 세화를 생각한다면, 세화 마음고생 좀 덜 시켜. 그래야 이모도 이혼하라고 계속 강요하지 않을 거 아니겠어?” 천미는 방금 전 동혁의 경고로 장해조가 일찍 대비해 죽음을 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예전처럼 동혁이 싫지 않고 오히려 매우 고마워했다. 그러나 동혁이 고집을 부리고, 욕심이 끝이 없다고 생각하자 천미는 조금 화가 났다. 동혁은 천미를 흘끗 쳐다보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천미 씨, 제가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하나요?” “그럼 조기천이 전에 하늘 거울 저택에 킬러들을 보내 보복하려 했을 때, 호아병단이 막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세화는 천미 씨와 R시에 갔다가 백효성에게 붙잡혔어요. 만약 제가 강철장갑 제1병단을 부르지 않았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요?” 천미는 동혁의 반문에 말문이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히 차분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말이 들리자마자 전체 홀의 소란스러움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모두가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소수의 사람들이 황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곧 바이러스처럼 홀 전체에 퍼졌다. 빈소 높은 곳에 서 있던 장해조도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고 몸을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는 허리를 크게 굽혔다. 감격에 겨운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컸다. “장해조, 설 대도독님을 뵙습니다!” “설 대도독님을 뵙습니다!” 다음 순간 망원각 전체에 큰 파도처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사람들은 강풍에 휜 갈대처럼 계속해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동시에 많은 시선들이 몰래 동혁을 향했다. 동혁을 바라보는 눈빛들에는 놀라움이 가득 차 있었다. ‘진씨 가문의 바보 사위가 전화 한 통으로 설 대도독을 불렀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도대체 저 바보 정체가 뭐길래?’ 장해조조차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동혁을 몇 번이나 쳐다봤다. ‘이 선생이 성세그룹의 회장인 건 나도 알고 있었어.’ ‘그러니 갑부 황지강도 그의 지시를 따랐지.’ ‘그런데 전화 한 통에 설전룡을 부르다니 이건 너무 상상밖이야!’ ‘설전룡이 누구인데?’ ‘전신부 중추.’ ‘이 전신 수하 8대 장군 중 한 명.’ ‘H시 군부의 수십만 대군을 관장하고 여러 도시의 군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전장의 지배자!’ ‘어떤 수식어로 불리든, 모두 최고 권세를 가지고 있는데.’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할 수 없는 일을, 이 선생이 전화 한 통으로 했다고?’ ‘이 선생이 G시 제일 이씨 가문의 자식이라는 소문이 들리긴 했어도.’ ‘그렇다 해도 G시 제일 이씨 가문은 설전룡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장해조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해조는 허리를 굽힌 채 앞
“심천미?” 설전룡은 줄곧 마음에 들지 않았던 천미를 바라보았다. ‘이 여자가 그 잘난 체하며 매번 형님에게 대들었던 그 사람이지?’ 동혁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지만 설전룡은 몇 번이나 천미를 혼내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미는 형수인 세화와 가장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설전룡은 감히 형수인 세화에게 미움 사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설 대도독님을 뵙습니다. 네. 제가 바로 심천미입니다.” 천미는 위축되지도, 그렇다고 거만하지도 않았다. ‘대놓고 나무라기는 어려워도 몇 마디 경고 정도는 해도 되겠지?’ ‘그래야 앞으로 형님 앞에서 조심할 테니. ‘ “심천미, 네가 심석훈의 사촌 여동생이라도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일 따위는 하지 마라.” “내가 석훈이와 친하지만 네가 계속 다른 사람을 무시하려 한다면 그땐 아무리 석훈이의 여동생이어도 아무 소용이 없을 테니까!” 천미는 어리둥절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왠지 이 설 대도독은 나한테 뭔가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천미는 고개를 들어 가까이에 있는 설전룡을 바라보았다. ‘왠지 낯이 익은 사람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사실 얼마 전 천미가 박용구를 찾아갔을 때, 동혁의 뒤를 따르는 설전룡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녀는 동혁을 무시했고 동혁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더더욱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천미는 설전룡을 진작에 잊었었다. 천미는 사실 그녀의 사촌 오빠인 심석훈이 설전룡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만 생각했다. ‘정말 석훈 오빠가 대도독에게 부탁했다면 나를 이렇게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해.’ ‘오빠에 대한 내 태도가 별로 맘에 안 드는 거야. 그러니 가까운 사이인 대도독이 대신 불만을 보이는 거지.’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천미는 화를 참으며 공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저희 아버지는 대도독을 속일 의도가 없었으니, 너무 추궁은 안 하셨으면 합니다.” “이건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설전룡은 꼿꼿한 천미에게 콧방귀를 뀌더니 갑자기 홀
“세화야, 이게 다 네가 이 바보를 그냥 둬서 이런 거야. 이제 너와 네 온 가족이 동혁이와 연루되게 생겼어.” “내가 너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동혁이, 저놈과 관계를 끊을 거야.” 류성중이 세화에게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화는 얼굴이 종잇장처럼 창백해져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혁 씨, 우리 그냥 빨리 돌아가자. 하늘 거울 저택으로 가자고.” 집으로 피하는 게 지금 세화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 집은 설 대도독의 경호원들이 있어서 해리슨 영사라도 감히 들이닥치지 못해.’ ‘임시방편일 뿐이지만 일단 시간을 벌고서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자.’ “여보, 겁낼 거 없어. 우린 아무 데도 안 가도 돼. 해리슨이 와서 사과할 때까지 기다리자.” 동혁은 세화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 세화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이렇게 큰 일을 벌이고도 동혁 씨는 웃음이 나와?’ 세화는 할 수 없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동혁과 함께 기다렸다. ‘그래, 난 두 그룹의 회장이고, 동혁 씨는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이야. 다른 사람이 와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잖아. 기껏해야 뭔가 대가를 치르면 그만이야.’ 세화는 동혁과 관계를 끊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부라면 무슨 어려움이 있어도 함께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외교관 통행증을 단 고급 차 몇 대가 명성호텔에 들어섰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더니 신분을 묻는 호텔 경호원을 거칠게 밀치고 돌진했다. “다다다.” 바깥 복도에서 급하고 어수선한 발자국 소리가 나자 연회장 안의 모든 사람들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하, 해리슨 영사님이 오셨나 보군.” 무릎을 꿇은 대니얼이 광기가 가득 담긴 표정으로 소리쳤다.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10여 명의 사람들이 뛰어들어왔다. 그 가운데에는 외국인과 H국 사람이 있었는데 대부분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 시장님, 스탠슨은 우리 영광스러운 Y국을 위해 피를 흘려 큰 공을 세운 공신이에요.” “당신들은 반드시 스탠슨을 때린 그 범인을 내놓아야 할 겁니다. 우리가 그놈을 처리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Y국의 공식적인 항의를 받을 거예요.” H시 시청 시장실. 금발에 구레나룻이 긴 한 백인 남자가 하세량에게 거만한 표정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바로 N도 주재 Y국 영사관의 영사 해리슨이었다. 바로 그대 대니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에서 상대방의 말을 들은 해리슨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이어서 버럭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죽일 놈, 대니얼, 네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게 분명 귀찮은 일이 생긴 거지? 그래서 일부러 나를 열받게 하는 거 아니야?” “하찮은 H국 인간 놈이 감히 어떻게 내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해? 어디서 그런 거짓말이야? 네놈이 죽고 싶어?” 해리슨은 대니얼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대니얼이 언급한 일은 근본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리슨, 왜 믿지 못하겠어? 당신은 H국에서 순직한 Y국 초대 영사가 되는 거야.] 그런데 그때 다른 목소리가 전화 반대편에서 들려왔다. 뜻밖에도 누군가 자신의 죽음 언급하자 성격이 불같기로 유명한 해리슨은 다시 벌컥 화를 냈다. “이 개X식이, 너 누구야? 감히 나한테 그런 막말을 하다니.” [내가 누군지, 못 알아듣겠어?] “10분의 시간을 줄 테니 튀어와서 내 앞에 무릎 꿇어. 그렇지 아니면 어디 가서 자살이라도 해야 할 거야.” 해리슨에게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동혁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연회장 안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완전히 멍해졌다. ‘대니얼 씨를 무릎 꿇게 하더니, 이제는 Y국 영사를 무릎 꿇게 하겠다고?’그러나 상식을 벗어난 일을 모두 이미 직접 한번 본 상황이었다. 그래서 동혁이 해리슨 영사를 협박해 자살하게 하는 것도 아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설사 동혁이 지금 전화를 걸어 Y국 여왕을 무릎 꿇게 한다
털썩! 대니얼은 동혁에게 뺨을 세게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 뺨 한대에 온몸이 저려오고 얼굴에는 감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동혁은 대니얼을 그대로 두지 않고 다시 다가와 그의 멱살 잡고 강하게 걷어차 다리종아리를 부러뜨렸다. “으아.” 대니얼은 가슴이 터져나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동혁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옆에 있던 주다정은 동혁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놀라서 얼굴빛이 하얗게 변했다. “너, 너 지금 뭐 하려고... 아!” 동혁은 주다정을 붙잡아 뺨을 때려 바닥에 쓰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한 다음 발을 내밀었다. “아까 전에 말했잖아. 막돼먹은 개는 무릎을 꿇게 해서 내 신발을 깨끗이 핥게 해야 한다고.” “이 쓸모없는 데릴사위 놈, 네놈이 뭔데 내게 그딴 걸 하라고 해?” “아, 네놈 아내가 시킨 거야?” 주다정은 화가 나 소리치며 동혁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동혁에게 또다시 뺨을 맞고 바로 얌전하게 굴었고, 눈물을 흘리며 동혁의 발밑에 머리를 내밀었다. Y국 귀족인 대니얼은 데릴사위인 동혁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주다정이라는 경제채널의 미녀 진행자는 동혁의 신발 밑창을 핥았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예상이 모두 틀렸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지금 이 상황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동혁이,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아? 네놈이 감히 대니얼 씨와 그의 파트너를 이렇게 대하다니. 아주 인생 끝장을 보려고 이러는 거야?” 정신을 차린 류성중은 눈앞이 캄캄했다. 그는 동혁이 미쳐 날뛴다고 생각하고 자신까지 때릴까 봐 겁이 나 멀찌감치 서 있다가 화를 내며 다가와 동혁을 꾸짖었다. “이 사장님, 골스 재단과 완전히 적이 되려고 이러십니까?” “어서 빨리 대니얼 씨를 일으켜 세우지 않고 뭐 하고 계세요?” 오늘 밤 연회를 계획한 의료공단의 왕근식 등도 모두 이번 사태에 휘말린 것을 후회하며 잇달아 동혁에게 한 마디씩 했다. “시끄러워요.” 동혁은 잔소리하는 사람들을 쳐다보지
“진 회장, 아무래도 당신 남편 장례 치를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네.” 주다정은 동혁이 비명에 죽는 순간을 마치 본 것처럼 말했다. 세화는 그녀의 말을 듣고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변했고,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만해!” 대니얼은 날카로운 음성으로 주다정이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막으며 차가운 두 눈으로 동혁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이 미천한 H국 인간 놈, 네놈이 해리슨 영사님을 모욕한 것만으로도 넌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을 범한 거야.” “이 일이 해리슨 영사님에게 전해지기 전에 내가 그를 위해 먼저 나서야겠군.” 말을 하며 대니얼은 자신 뒤에 있는 경호원들에게 강하게 손짓을 했다. “저 미천한 H국 인간 놈이 우리 영사님과 Y국을 모욕했어. 먼저 저놈의 팔다리를 부러뜨려 본떼를 좀 보여줘.” 10명의 경호원이 동혁을 노려보았다. 아까 전에 동혁이 경호원들에게 전해준 두려움은 동혁이 한 무례한 말과 함께 이미 완전히 사라졌고 오히려 그들에게 끝없는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해리슨 영사님은 전쟁터에 있을 때 우리의 오랜 상사였어. 동시에 우리 Y국의 희망이신 분이지. 어느 누구도 그분을 모욕할 수는 없어.” “이 H국 인간 놈, 죽여주마.” 한 경호원의 분노 가득한 음성과 함께 다른 9명의 경호원이 주저하지 않고 동혁에게 달려들었다. “동혁 씨, 도망가.” 세화는 비명을 지르며 동혁을 잡아당겼지만 동혁은 이미 몸을 돌려 세화의 앞을 가로막았다. 10명의 늑대 같은 경호원들을 상대로 동혁은 뜻밖에도 물러서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격했다. “턱!” 그는 번개같이 손을 뻗어 가장 가까이 다가온 경호원이 휘두른 주먹을 움켜쥐고는 조금 힘을 주었다. 전쟁터에 나갔을 때 팔이 통나무처럼 굵고 힘이 강했던 에이스 경호원도 동혁의 손에서는 병아리처럼 허약하기만 했다. “으아.” 팔의 뼈가 부러지며 처절한 비명 소리가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고통에 몸이 굳어버린 순간 동혁의 발길질에 맞아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퍽!
H국에 있는 Y국의 주재기관 중 최고위급 대사관 밑으로 영사관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다. H국에는 Y국 영사관이 모두 몇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N도에 있었다. ‘영사관 하나하나가 바로 Y국 전체를 대표해.’ ‘그런데 이동혁이 지금 그런 영사에게 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하다니. 이게 정말 미친 소리가 아니면 뭐야?’ “이런 쓸모없는 놈, 지금 현직 Y국 영사가 어떤 분인지 알고 하는 소리야? Y국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외교관으로 국외전장에도 가본 적이 있는 분이야.” “그런 분에게 네놈이 감히 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하다니. 네놈이 정말 죽는 게 뭔지 알고 싶어서 그래?” 류성중이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는 동혁 때문에 미칠 것은 심정이었다. ‘이 자식이 이 정도로 생각이 없는 놈인 줄 알았다면,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오늘 연회에 이놈을 참석시키지 않았을 거야.’ ‘지금 동혁이, 이놈이 한 말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해리슨 영사 귀에 들어가 가라도 하는 날에는 어떤 풍파가 일어날지 불 보듯 뻔한 일이야.’ ‘만약 이 일이 외교 갈등으로라도 번지면 오늘 밤 연회에서 공무원으로서 가장 직급이 높은 난 상상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게 될 거야.’ ‘해리슨 영사에게 해명하기 위해 내 공무원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몰라.’ “너 정신병 있는 거 맞지? 그래서 사실 넌 Y국 영사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 류성중은 최대한 이 일을 대충 얼버무리려고 화를 내고 다그치며 동혁을 얌전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동혁의 다음 말은 그의 두 눈에서 불을 뿜게 만들며 동혁을 산채로 찢어 죽이고 싶게 만들었다. “아뇨, 알고 있는데요. 현 Y국 영사는 해리슨이라는 사람으로 겉으로는 강한척하지만 실제로는 연약한 쓸모없는 인간이잖아요.” 동혁은 차분하게 계속 말했다. “전 그 해리슨이 지금 H시에 있는 줄은 알고 있어요. 이렇게 공교롭게 그 사람에게 와서 내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할 줄은 몰랐지만요.” 연회장에 오는 길에
한겨울의 서릿발처럼 이가 덜덜 떨릴 정도의 차가운 목소리로 대니얼이 이를 갈며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온몸이 오싹하다고 느꼈다. ‘대니얼 씨가 이번에 정말 화가 단단히 났나 보네.’ “쫙!” 주다정이 갑자기 와인 한 병을 집어 들어 나오더니 동혁에게 세게 퍼부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게 만들었다.. “이 미천한 데릴사위 놈. 대니얼 씨가 살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데 감히 헛소리를 지껄여?”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대니얼 씨에게 아주 크게 혼날 테니까.” 주다정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다정 씨,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우리 남편이 언제 다정 씨에게 뭐라 한적 있어요?” 세화는 화가 난 채로 재빨리 냅킨을 동혁에게 건네주었다. 주다정은 팔짱을 끼고 거만한 표정으로 세화를 바라보았다. “사리분간도 못하는 여자 같으니라고, 뜻밖에 저런 쓸모없는 인간에게 자기 몸을 버리고 싶어 하다니. 이런 사람이 대니얼 씨의 침대에서 잠자리를 해도 그건 대니얼 씨의 고귀한 신분에 누가 될 뿐이야.” “당신은 지금 저 쓸모없는 인간을 신경 쓸 게 아니라 대니얼 씨의 화를 어떻게 풀지나 걱정해.” 주다정은 어떻게든 대니얼이 세화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하려고 계속적으로 세화를 비하했다. “당신 말이면 다인 줄 알아요?” 세화는 주다정을 가리키며 화를 냈다. 세화의 성품과 교양은 그녀 자신을 추잡하고 더러운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주다정처럼 굴 수 없게 했다. “여보, 흥분하지 마.” 동혁은 담담히 냅킨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기다려봐. 저 막돼먹은 X같은 여자를 내 앞에 무릎 꿇려서 내 발에 뿌린 술을 조금씩 핥게 할 테니까.” 세화는 동혁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그가 이미 주다정에게 화가 아주 많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 ‘동혁 씨는 원래 상대가 아무리 싫어도 그저 손바닥으로 뺨을 때려서 혼냈었는데?’ ‘뜻밖에 지금 그런 식으로 저 여자를 혼낸다고?’ “너 같은 쓸모없는 인간이, 나를?” 주다정은 시큰둥하
“진 회장님, 자고로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당신 남편이 나와 골스 재단을 무시하며 도발한 이상, 이 정도 내 요구는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대니얼은 경호원이 10명이나 있어서 믿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그는 냉소를 머금고 무심한 듯 말했다. “물론, 요구를 거절해도 상관없어요.” “그렇다면 난 당신과 당신 남편이 내 요구를 거절한 결과를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니까.” 이 말을 하고 그는 손을 내저었다. “처벅!” 그의 뒤에 있던 10명의 경호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세화는 경호원들이 낀 선글라스에서 자신과 동혁을 향한 열 줄기 야수 같은 시선을 느꼈다. 미세한 살기가 그들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역시 전쟁터에 나가서 피를 본 노병들다웠다. 그들 특유의 살기로 인해 앞에 서있는 세화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창백해졌을 뿐만 아니라 연회장 안의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여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모두들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연회장의 분위기는 극도로 무거워졌고 사람들은 처음으로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느꼈다. ‘앞으로 대니얼 씨의 눈밖에 나면 아주 큰일이 나겠어.’ 연회장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의 같은 생각을 했다. “여보, 겁낼 거 없어.” 바로 그때 동혁이 갑자기 일어나 자연스럽게 세화의 앞을 막아서자 살기가 차단되었다. 이상하게도 경호원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포스러운 살기가 동혁을 거치면서 마치 먼지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10명의 경호원들이 동혁을 주시하자 더욱 강한 살기가 동혁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그들의 폭풍 같은 살기에도 동혁은 여전히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그 순간 경호원들 마치 거대한 블랙홀을 마주한 것 같았다. 그들의 모든 살기가 그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당신들 죽고 싶나요?” 바로 그때 동혁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경호원들을 바라보았다. “윽.
“진 회장님, 당신의 저 쓸모없는 남편은 이제 끝이야.” 주다정의 목소리는 득의양양하며 독기가 가득했다. 대니얼은 동혁을 보고 비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동혁에게 두 번이나 뺨을 맞은 일로 복수를 고민하다가, 특별히 사람을 소개받아 이 열 사람을 자신의 경호원으로 고용했다. “헉.” 주다정의 말에 사람들은 놀라 한번에 숨을 들이마시는 듯한 소리를 냈다. ‘경호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대단해 보이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열 명이나 오다니.’ 사람들은 순간 동혁이 뼈가 부러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대니얼의 발밑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면서 모두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세화는 마음속에서 점점 두려움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녀는 동혁을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설득했다. “동혁 씨, 저 대니얼이라는 사람하고 맞서지 말아. 괜히 화풀이를 당할 필요는 없잖아. 우리 방법을 생각해서 어떻게든 부드럽게 넘어가자.” “걱정 마. 내가 절대 동혁 씨를 무릎 꿇리지 않을 거니까. 기껏해야 돈으로 조금 보상해 주면 그만 일거야.” 세화는 동혁의 성격이 강하지만 때로는 마음 약한 구석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혁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일어나서 대신 사과했다. “대니얼 씨, 제 남편이 저 때문에 아까 괜한 실수를 한 거 같네요.” “어떻게 하면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 주시겠어요?”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건 좀 지나치니, 다른 방식으로 사과를 대신할게요.” 세화가 저자세로 나오자 대니얼은 웃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두 눈으로 세화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는데, 세화는 마음이 불안해지며 상대방이 무슨 부당한 요구를 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니얼은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냉랭하게 말했다. “만약 진 회장님이 제 요구를 들어준다면, 쓸모없는 남편에 대한 회장님의 헌신적인 노력을 생각해 지난 모든 무례한 일들을 묻지 않고 관대하게 용서하죠.” 세화는 마음속에서 더욱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요구가 뭔지 말
류성중은 자신의 말에도 동혁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시 세화를 노려보았다. “세화야, 쓸모없는 네 남편 놈이 아직도 뭘 모르는구나. 그리고 너는 또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빨리 네 남편이 대니얼 씨에게 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해.” “대니얼 씨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혼내줄지 각오해.” 류성중의 말에 분노한 세화의 하얀 얼굴이 더 차갑게 변했다. ‘저 사람이 정말 내 친외삼촌 맞아? 어떻게 조카의 기분은 전혀 신경 쓰지도 않지?’ ‘내 남편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니얼, 저 사람에게 무릎을 꿇게 하라니?’ ‘단지 저 외국인이 Y국의 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러는 거야?’ 세화는 너무나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바로 그때 동혁이 그녀의 손을 힘껏 잡았다. “여보, 별것도 아닌 두 사람 때문에 이렇게 화낼 필요 없어. 그냥 동네의 개가 짖는다고 생각해.” “난 오히려 오늘 누가 날 사과하게 만들 수 있는지 한번 보고 싶은데?” 동혁은 세화를 끌어당겨 앉혀 뜨거운 물 한 잔을 따라주고, 자신도 한 잔을 따른 다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연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마치 공기처럼 그저 안 보이는 사람 취급하며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동혁의 모습을 본 류성중은 화가 나 표정이 구겨졌다. ‘지금 동혁이, 저놈은 상황이 어떤지 이해를 못 하는 건가?’ ‘여기서 가장 신분이 미천하고 지위도 가장 낮은 놈이 감히 대니얼 씨를 도발해?’ ‘정말로 죽고 싶어서 저러는 거야?’ “대니얼 씨, 저 부부가 정말 예의가 없네요. 대니얼 씨와 골스 재단을 완전 무시하고 있어요.” 대니얼 곁에 있던 주다정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녀의 관심은 동혁이 아니라 줄곧 세화에게 쏠려 있었다. 세화와 동혁이 대니얼을 이렇게 화나게 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도리어 기뻐했다. 그녀는 세화가 외모, 신분, 지위에서 자신보다 몇 단계나 높은 위치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많이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