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미의 뒤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따라왔다.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온몸이 다부지고 건장했다 얼굴 역시 단단해 보이는 것이 딱 봐도 고수들이었다. 문에 들어선 후 모두 살기등등하게 동혁을 노려보았다. 분위기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룸 안 공기는 마치 납처럼 무거웠다. 세화 등은 질식할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천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사람들을 더 숨 막히게 했다. “언니,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해. 동혁 씨가 어떻게 장 회장님을 죽일 수 있어?” 세화는 반사적으로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동혁 씨가 장 회장님을 살해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동혁 씨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어디 있어?’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의아해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탁! 천미가 손을 휘둘러 탁자 위에 사진들을 던졌다. 세화가 그 사진들을 들고 살폈지만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진들은 강오빌딩 CCTV에서 추출한 거야.” 천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전 10시 반에 보안부 사람들이 함께 강오빌딩의 안전에 대한 일상적인 조사를 실시한 일이 있었어. 그런데 도중에 이동혁이 혼자 아버지의 개별 사무실 층으로 이동한 거야. 아버지는 그때 평소처럼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 그곳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계셨어.” “그렇게 얼마 후 이동혁이 당황한 채 계단을 뛰어내려와 강오빌딩 밖으로 나갔어!” “그리고 다시 얼마 후 아버지의 비서가 올라가 오후 일정을 보고하는데 아버지가 등나무 의자에 누워서 몇 번을 불러도 안 일어나시는 거야. 바로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 사람들을 불러서 살펴보니까...” 천미는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눈빛만은 오히려 동혁을 차갑게 째려봤다. 손에 쥔 칼이 자꾸 떨려왔다. 지금 천미는 언제라도 동혁의 머리를 단칼에 베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이미 숨을 거두셨어!”헉! 세화의 가족들이 이 말을 듣는 순간 놀라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장
지금 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동혁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세화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쳐다보았다. “동혁 씨, 왜 도망가려고 했는지 말해봐? 무언가 본 게 있는 거야?” “난 장 회장님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 동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계속 말했다. “여보의 구조 문자를 받고, 바로 여보를 도우러 내셔널센터로 간 거야.” 말을 들은 천미가 세화를 바라보았다. “구조문자라고? 세화 너 위험했던 적이 있었어? 아니면 동혁이가 또 우릴 속이는 거야?” “난 동혁 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는데, 동혁 씨가 그런 문자를 받았다고 해서 그때 우리는 누군가 장난을 한 거라고 의심했었어.” 세화는 동혁을 주시하며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니까 그것도 다 동혁이의 일방적인 얘기잖아?” 천미는 죽일 듯이 동혁을 노려보면서 단칼에 동혁을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있었다. 세화는 자신이 동혁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동혁은 세화가 주저하는 것을 눈치채고 말했다. “여보, 나를 믿어. 내가 하지 않았다고 하면 하지 않은 거야.” “변명은 그만둬!” 천미는 소리를 지르더니 갑자기 사진 몇 장을 더 동혁의 몸에 던졌다. 그 사진에 뜻밖에도 동혁이 백세종과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천미가 이를 갈며 말했다. “이동혁, 이건 천일이 나에게 준 사진이야. 염동철의 부하가 얼마 전에 너를 찾아가서 너에게 슈퍼카 두 대, 벤츠 7인승 미니밴 한 대를 선물했어. 맞지?” “염동철은 우리 아버지의 오랜 앙숙이었으니, 분명 그들이 너를 사주했을 거야.” ‘뭐라고!’ 세화의 가족은 모두 자리에서 멍해졌다. 제시된 각각의 증거들이 동혁이 장해조를 죽일 충분한 동기가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세화조차도 마음속으로 사진 속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을 정도였다. 류혜진이 분노하여 말했다. “동혁이 네가 태휘, 화란이 우리 집을 판 돈으
조동래의 말이 끝났다. 그러자 뒤에 있던 경찰들이 방으로 뛰어들어 동혁을 데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천미가 데려온 사람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경찰관들이 잇달아 화를 냈다. 천미가 데려온 부하들은 모두 오랜 세월 동안 칼에 피를 묻혀온 사람 들인 만큼 이 정도쯤으로 놀라지 않았고 전혀 물러섬 없이 경찰과 맞섰다. “선 부사장님, 이게 무슨 뜻인가요?” 조동래는 안 좋은 표정으로 천미를 바라보았다. “조 경감님, 이 사람은 저희가 강오그룹으로 데려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천미가 차가운 음조로 대답했다. 조동래가 콧방귀를 뀌었다. “심 부사장님, 분명히 말하는데 여긴 엄연히 법치 사회입니다.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시 경찰서에 입건되었으니, 이 일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조동래가 다시 손을 흔들었다. 철컥! 경찰관들이 잇달아 총을 꺼내 들었다. 이번엔 강오그룹의 사람들의 안색이 잇달아 크게 변했다. 천미는 심호흡을 하더니 동혁을 차갑게 한번 쳐다보았다. “우린 가자!”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세화의 표정마저 못 본 척했다. 강오그룹의 사람들이 떠나고 동혁도 경찰에게 끌려갔다. 룸 안의 팽팽했던 공기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벋어 난 류혜연의 가족은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이동혁의 인품이 그렇게 비열하다니. 죽은 장 회장이 호의로 자신을 발탁해 줬는데, 세화의 그 친구에게 몇 마디 훈계를 들은 것을 가지고 사람을 죽일 줄은 정말 몰랐어!” “세상에 별 나쁜 놈들이 천지라니까요!” “그러니까 이동혁은 세화 누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제가 진작에 말했잖아요!” 류혜연의 가족들의 의견이 분분했다.세화의 가족들은 이 말들을 듣고 가슴 찔리듯이 아팠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세화와 류혜진도 동혁이 이런 미친 짓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언니와 세화도 너무 열내지마. 이동혁이 잡힌 건 좋은
조동래가 나지막이 의견을 말했다. 방금 동혁이 끌려올 때, 그는 동혁의 가족조차도 동혁을 위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조동래는 동혁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지금 중상모략을 당했는데, 가족들까지도 이 선생을 믿지 않는다니.’ 동혁은 시큰둥하게 손사래를 쳤다. “깡패 같은 소인배들이 수작을 부리는 곳에서 굳이 내가 신분을 공개하면서 까지 내 무죄를 증명할 필요 없어요.” “그냥 한번 보고 싶군요. 대체 이 깡패들이 무슨 장난을 치려고 하는지.” 동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동혁 조차도 누군가가 자신을 버리는 바둑알로 삼아 음모를 꾸밀 줄은 몰랐다. 조동래의 마음은 더 아팠다. 그는 동혁이 신분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H시의 모든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 경감님, 시 경찰서는 갈 필요 없고, 그냥 바로 구치소로 데려다주세요. 괜히 시 경찰서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동혁이 말했다. 조동래가 재빨리 말했다. “이 선생님 그런 말씀 마세요. 선생님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구치소에는 나쁜 놈들이 뒤섞여 있어서 시 경찰서보다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강오그룹 사람들이라면 가만있지 않을 거고, 이 선생을 죽이려 아마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동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시 경찰서에 있으면 저들이 어떻게 수면 위로 뛰쳐나오겠습니까?” 조동래는 그제야 동혁이 자신을 미끼로 낚시를 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하지 않았다.그래서 바로 동혁을 구치소로 보냈다. 경찰 병력도 추가해 대기하게 했다. 이어서 조동래가 심문을 책임질 담당 실무진을 보내왔다. 여기서 동혁에 대한 조사를 벌이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이다. ... 망원각. 여기는 예전 강오맹의 본거지였다. 강오맹이 강오그룹으로 바뀐 후, 사업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강오빌딩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망원각은 장해조의 암흑가 일을 처리하는 부하들이 모이는 곳이 되
다른 강오맹 원로들도 이 말을 듣고 격분한 표정이었다. “심천미, 네가 어제 그놈을 강오그룹에 취업시키자마자 오늘 형님을 모해했어. 그런데 네가 지금 또 그놈을 보호하려고 경찰이 연행해 가는 걸 지켜보다니. 혹시 너도 형님을 모해하는 계획에 가담한 거냐?” “형님의 죽음은 천미와도 관계가 없지 않아.” “천미는 원래 출신이 불분명한 데다 H시 출신도 아닌데 영문도 모른 채 형님 곁에서 의붓딸이 되었어. 내가 보기에 누군가 저 아이를 형님 곁으로 가게 해 형님을 해친 것 같아!” 원로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천미도 동혁처럼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면서도 변명을 할 수 없는 기분이 무엇인지 맛보게 되었다. “아저씨들, 천미는 우리 아버지가 인정한 의붓딸입니다. 증거가 없다면 함부로 비난하지 마세요. 잘못해 무고한 사람들이 연루된다면 아버지께서는 구천에서도 눈을 편히 감기 어려울 겁니다.” 그때 침묵하고 있던 나천일이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원로들은 화가 났지만 입을 다물었고, 여전히 천미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비록 천미가 장해조를 모해한 살인자가 아니더라도, 동혁은 천미가 데려온 사람이었다. 이런 이유로 원로들은 지금 천미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했다. “지금 문제가 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다는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야!” 그러자 조기천은 다시 천미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사건이 모두 밝혀질 때까지 강오그룹의 모든 일에서 손 떼고 이제부터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마.” 천미는 자책감을 크게 느끼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전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바로 여기서 아버지의 빈소를 지킬게요.” 이어서 천미는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장해조의 시체 앞에 묵묵히 무릎을 꿇고, 아무 말 없이 향을 피웠다. 그녀는 죄책감을 조금이라고 덜기 위해서, 열심히 정성을 다했다. 이때 천미를 보고 있던 나천일의 눈에 탐욕스러움이 떠올랐다. 그는 여우 같은 여자인 천미를 오랫동안 노려왔다. 그래서 일찌감치 마음속으로 계획을 세웠었
장해조의 죽음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사실 장해조의 친구들이다. 장해조는 20년 전에 이미 시대를 주름잡던 암흑가 은둔고수로서 수많은 제자들이 있었고, 그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도 수없이 많았다. 현재 그 사람들은 모두 각지에 흩어져 었었는데 모두 이미 각 지역을 주름잡는 깡패들이었다. 이 힘이 거대해서 천하의 염동철조차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장해조를 처리할 때 끝없는 후환을 초래할까 봐 직접 하지 못하고 남의 손을 빌렸다. 장해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해조의 친구들은 장해조의 복수를 하겠다고 각지에서 H시로 달려왔다. 짙은 먹구름을 보면 이제 곧 큰 비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장해의 죽음으로 버러 진 일들을 보며 H시의 혼란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한동안 H시 이름 있는 조직 수장들의 움직임이 없어졌다. 그들은 최대한 몸을 낮추고 각자 부하들을 단속하여 되도록 남의 이목을 끌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모두 괜한 불란이 생기지 않게 조심하며 이 혼란을 넘어가려 했다. “염동철이 장 회장님을 모해한 배후이지만, 지금 장 회장님이 막 돌아가신 마당에 크게 싸움을 일으킬 수는 없어. 먼저 장 회장님을 편하게 보내드린 후에 염동철에게 복수를 해야지.” “하지만 지금 염동철에게 복수하지 않는다고 해서, 장 회장님을 모해한 범인이 법을 이용해 우리에게서 빠져나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어.” “진씨 가문의 그 바보 같은 사위는 직접 장 회장님을 죽인 살인범이야. 우리가 그의 가족 전부의 목숨으로 장 회장님의 넋을 위로해야 해!” 망원각에서 강오맹 원로들이 복수를 논의하고 있다. “진씨 가문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 정도 이류 가문은 그냥 싹 죽여버리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지금 그 이동혁이란 놈은 시 경찰서에 끌려가 H시 구치소에 갇혀버리는 바람에 우리 손이 쉽게 닿질 않아 죽이기 어려워! 그렇다고 시청에 사람을 내놓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잖아? 하 시장이 승낙하겠어?” 이 말을 듣고 나천일은 깜짝
“도일 형님, 이게 무슨...” 강오그룹의 사람들이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선도일이 도착하자마자 장해조가 봉인된 관을 다시 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형님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내가 봐야겠어.” 선도일의 차가운 시선이 장내를 둘러보았다. 마치 현장에 있는 모두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선을 느끼며 잇달아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사람들은 선도일이 장해조의 부검을 위해 관을 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을 더 이상 아랑곳하지 않고 선도일은 허리를 굽혀 손을 뻗어 관 안의 장해조의 시신을 살폈다. 잠시 후 그는 허리를 다시 펴고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관을 다시 닫아라.” 시신을 지키는 강오맹 고수들이 바로 다시 관 뚜껑을 닫았다. 관 뚜껑은 네 사람이 들기에도 벅찬 무게였는데 방금 선도일은 그것을 혼자 쉽게 연 것이었다. 선도일은 돌아서서 땅에 세워 든 검을 두 손으로 쥐고 무심히 물었다. “누가 형님을 독살한 거야?” “도일 아저씨, 진씨 가문의 데릴사위 이동혁의 짓이에요. 어제 강오그룹에 출근해서 우리 아버지에게 보안부 부장으로 발탁되었는데, 그놈이 염동철의 부하인 백세종의 사주를 받았어요.” 나천일이 재빨리 말했다. “이런 배은망덕한, 쳐 죽일 놈!” 선도일의 몸에서 갑자기 살의가 터져 나왔다. 검과 지면이 맞닿은 곳의 대리석 벽돌이 갑자기 파열되며 균열이 생겼다. 그곳을 중심으로 거미줄 같은 균열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한동안 홀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고 식은땀을 줄줄 흘렸는지 모른다. “그놈은 어디에 있지?” 선도일이 다시 물었다. “H시 구치소예요.” “알았다, 내가 가서 그놈을 죽여 버려야겠어.” 선도일은 말을 마치고 모든 사람을 등뒤로 한 채 떠났다. 홀 안의 사람들은 선도일이 나가자 비로소 무섭게 느껴지던 압박에서 벗어났다. “오랜만에 보니 선도일의 살기가 더 심해졌어. 전에는 이렇게 무섭지 않았는데.” 어느 원로
진한영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안달 난 진씨 가문 사람들을 데리고 급히 하늘 거울 저택으로 왔다. “세화야, 내가 진작에 이동혁 그놈이 조만간 진씨 가문을 해 할 거라고 말했잖아. 그래서 너보고 그놈과 이혼하라고 해도 네가 말을 듣지 않더니, 지금 봐라. 강오그룹은 이미 진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다고 공언했어!” “이동혁이 화근이야! 세화 너도, 너희 가족은 모두 화근이라고!” “세화 네가 강오그룹 사람들에게 복수하려면 네 가족에게 오라고 말해. 그리고 진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하라고!” 진씨 가문 사람들은 오자마자 세화 가족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진한영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그는 온통 분노가 가득한 찬 눈빛으로 세화 가족을 노려보며 지금 당장 칼로 베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진씨 가문의 사람들이 아무리 분노를 표출한다 해도 눈 속의 공포와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진씨 가문은 이번에 완전히 망한 거야.’ ‘우리 같은 작은 진씨 가문이 어떻게 강오그룹의 복수를 막을 수 있겠어?’ 모두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잠깐 자리를 비웠던 백천기가 돌아왔다. “제가 강오그룹의 진씨 가문에 대한 보복을 멈추게 할 수 있어요!” 그의 한마디는 모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진한영은 감탄하며 물었다. “이 분은 누구시지?” 류혜연이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맞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천기의 아버지가 N도 군부 부지휘관이에요.” “N도 군부 부사령관의 아들이라고?” 진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뜨거운 눈빛으로 백천기를 주시했다. “천기 씨, 정말 우리 진씨 가문을 구할 수 있어요?” 류혜진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급하게 물었다. 류혜연이 말했다. “언니, 천기 아버지의 신분으로 진씨 가문을 좀 구해 달라고 부탁을 좀 하면...” “그만해!” 류혜연의 남편 장영동이 갑자기 말을 끊으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N도 군부에 신임 심석훈 총지휘관이 부임하는
“내 말이 틀렸어? 이게 다 저 이동혁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누나는 괜히 엮인 거고. 그런데도 계속 이동혁 편을 들겠다는 거야?” 현수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동혁을 쏘아보았다. “이 찌질한 놈이 어떻게 했는지 봐봐. 그저 뒤에 숨어서 끽소리도 못하고 있잖아.” “누나는 이런 인간을 그렇게 감싸주고 싶어?” 현소와 현수 남매가 말다툼을 벌이자 지켜보던 배경문 등이 또 한바탕 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아주 쇼를 해라. 처남은 매형을 넘긴다고 하고 그 누나는 형부를 감싸고.” “그런데 저 형부라는 인간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네.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맞는구먼.” “하하, 저 데릴사위 놈이 겁에 질려서 그런 거겠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동혁을 또 비아냥거렸다. “그만, 입 닥쳐.” 왕범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람들의 말을 멈추게 하고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현소를 응시했다. “봤지? 이런 인간이 바로 네가 그렇게 보호하고 싶은 형부야. 놈에 비하면 나 왕범현이 훨씬 남자답지 않아?” “내가 다시 네게 내 정식 여자친구가 될 기회를 줄게. 그러면 앞으로 H시에서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하하하.” 왕범현은 거만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는 예전에도 이런 심리적 설득으로 많은 순진한 여자들을 사로잡았었다. 현소는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꿈 깨요. 난 죽어도 당신의 여자친구는 되지 않을 거니까.” 왕범현은 웃음소리를 뚝 그치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할 수 없네. 네가 정말 끝까지 그렇게 고집을 부릴 수 있는지 한번 봐주지.” 왕범현이 바로 현소에게 다가갔다. 현수가 재차 말리려 했다. “스승님, 이 제자의 얼굴을 봐서라도 제발...” “꺼져!” 왕범현은 발로 현수를 차서 바닥에 쓰러뜨렸고 현수는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현소야, 날 받아줘. 네게 오늘 좋은 밤을 약속할게. 하하하.” 다음 순간 왕범현이 현소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을 만지려고 했
현수린의 말을 들은 현소의 작은 얼굴이 분노로 붉게 상기되었다. 그녀는 왕범현이 정말 그런 음흉한 속셈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러니까 형부를 괴롭히고 그 기회에 나를 자기와 잠자리하게 하겠다고? 그런 천한 여자들이나 하는 일을 내게 하라고 하는 거야?’ “흥, 그런 징그러운 일을 어떻게 해요?” 현소는 현수린을 노려보며 말했다. “전 당신 같이 싸구려가 아니에요. 목적을 위해서 쉽게 남자와 잠자리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요.” 현소의 말은 현수린을 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수린의 화장을 한 얼굴이 불쾌함으로 일그러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고하게 순결을 고집하다니, 그럼 네 형부 팔다리가 부러지는 수밖에 더 있겠어?” 현수린이 비웃으며 말했다. “겉으로는 자기 형부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 이익이 걸리니까 역시 뒤로 물러나는 군.” 현수린만큼 말주변이 좋지 않은 현소는 전혀 그녀에게 반박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들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동혁을 바라볼 뿐이었다. “형부!” 현소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저 여자 말은 신경 쓸 거 없어. 넌 형부인 나를 생각해 주는 좋은 사람이라는 걸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동혁은 현소의 눈물을 닦아주고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를 생각해 준다는 핑계로 자신의 깨끗한 몸을 가져다가 망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 “그리고 누군가가 널 그렇게 만들고 싶은 이유는 그 사람의 몸이 이미 더러워졌기 때문이야. 그래서 너까지 끌어들여 자신처럼 만들고 싶기 때문이지.” “한마디로 저 여자는 단지 너를 질투해서 그러는 거야.” “응응, 형부 말이 맞아요.”현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름 안심했다. 동혁은 현수린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고, 동혁의 말을 들은 그녀는 화가 나서 표정이 일그러졌다. 현수린이 고개를 돌려 왕범현에게 소리쳤다. “범현이 오빠, 저 인간들에게 더 이상 쓸데없는 말 할 필요 없잖아요? 그냥 바로 손을 봐주세요. 그리고 현소, 저년도 그저 순
“아래층에서 술을 마신다고? 알았어.” 오반석이 몇 마디를 하고서 전화를 끊고 왕범현에게 말했다. “아래층에서 친구 몇 명이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좀 내려가야 할거 같아.” “왕 사장이 나 대신에 고생 좀 해줘. 나중에 이번 일은 내가 후하게 갚아줄게.” 말을 마친 오반석은 동혁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돌아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왕 사장의 솜씨를 본 적이 있지. 역시 용비무술학교 교장 왕용비의 아들답게 깡패 몇 명을 상대하는 게 아주 우스웠어.’ ‘이동혁, 저놈이 상대가 될 리 없지.’ “범현이 형, 빨리 손 좀 봐줘요. 일단 저 데릴사위 놈 무릎부터 꿇려 놓고 보자고요.” “맞아요. 저흰 아까부터 저 쓸모없는 인간이 눈에 거슬리던 참이었어요.” 오반석이 떠나자 배경문, 현수린 등은 소란을 피우며 왕범현이 동혁을 패는 모습을 보고 싶어 안달을 냈다. “하하, 급할 거 없어.” 왕범현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담담한 눈빛으로 동혁을 바라보았다. “쓸데없는 놈 하나 처리하는 건, 아무 때나 상관없어. 어쨌든 저놈은 도망갈 수도 없으니까.” 전혀 아무렇지 않은 말투는 마치 동혁을 도마 위의 도살 직전의 생선과 고기로 여기는 것 같았다. 순간 모두들 멍해졌다. ‘범현이 형은 이동혁을 지금 처리하지 않고 또 뭘 하고 싶은 거지?’ “난 그전에 다른 얘기를 좀 하고 싶거든.” 왕범현은 실실 웃으며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현소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현소야, 방금 반석 도련님의 말을 너도 들었지? 나보고 네 형부를 혼내 주라네.” “그럼, 넌 뭐라 하고 싶은 말 없어?” 방금 동혁이 모든 사람들의 공격을 받을 때 오직 현소만이 동혁을 지키려고 했다. 이 모든 과정을 눈여겨본 왕범현은 현소가 마음속에서 동혁을 의지하는 게 매우 클거라고 생각했다. 왕범현은 보자마자 현소에게 반했고 청순하고 매력적인 그녀를 차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제멋대로 날뛰는 데만 익숙해서 여자에게 구애하는 방법을 쓸 줄 몰랐다. 그저 마
“하하하.” 오반석은 아무 거리낌 없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오한민이 이씨 가문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자신의 마음을 내비친 뒤부터 오반석의 마음속에는 이씨 가문에 대한 경외감이 줄어들었다. 그는 한때 이씨 가문의 도련님이었던 동혁을 모욕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하하하.”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배경문은 경멸의 눈초리로 동혁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발톱 빠진 호랑이 신세라는 거잖아요. 이씨 가문 도련님이라는 신분이 없으니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죠.” “어쩐지 그러니 처갓집에 기대서 사는 데릴사위 신세가 됐지.”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빈정대며 경멸 가득한 눈빛으로 동혁을 바라보았다. 동혁에게 한바탕 모욕을 주고 나니 속이 한결 시원해진 오반석은 그제야 용건이 생각났다. 그는 혼자 술을 잔에 따른 후 천천히 말했다. “이동혁, 오늘 내가 널 만나러 온 건, 사실 우리 아버지 대신 경고를 하려는 거야.” “전에 아버지는 이씨 가문을 대신해서 네놈에게 이천성을 N도로 돌려보내고 무릎 꿇고 사죄할 3일의 시간을 주었어.” “내일이 그 마지막 날인데 아직 아무런 조처도 없는 걸 보니 한번 호되게 당하고 싶은 건가?” 여기까지 말한 오반석은 갑자기 날카로운 눈빛으로 동혁을 응시하며 압박했다. “아니면 우리 아버지의 말을 무시한 건가?” 다른 사람들도 오반석이 오늘 밤 동혁을 만나러 온 목적을 알게 되었다. 순식간에 동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동정으로 변했다. ‘명문가 이씨 가문에서 쫓겨난 도련님이 이제는 이씨 가문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는 요구까지 받다니, 너무 비참하게 만드는 거 아니야?’ 현소도 이제야 이 일을 알게 되었고 그녀조차 동혁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왜 대답이 없지? 뭐라 말 좀 하지 그래?” 동혁이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말없는 것을 보고 오반석은 불만스럽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동혁은 편안한 자세로 바꾸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나 대신 잘 대답
이 말을 들은 오반석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순간 자신이 동혁의 앞에서 겁을 먹었음을 깨닫자 오반석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예전에 태백산장에서 동혁에게 하루에 두 번 맞은 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지울 수 없는 고통이었다. 지금 동혁이 그 일을 면전에서 언급하는 바람에 오반석의 체면이 또다시 구겨졌다. 왕범현은 이런 오반석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아, 반석 도련님이 저 데릴사위 놈에게 한번 당한 적이 있었구먼.’ ‘어쩐지 내가 도련님에게 이동혁과 무슨 원한이 있냐고 물었을 때, 대충 얼버무리며 그냥 이동혁을 혼내주라고 하더라니.’ 웃음은 그저 웃음일 뿐 왕범현은 이때 자신이 누구를 도와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동혁이라고 했나? 죽고 싶지 않으면 자리를 보며 까불어야지.” 왕범현은 고개를 들고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석 도련님의 아버지는 리성투자회사의 부사장이야. 네놈처럼 처갓집에 기대서 밥이나 축내는 데릴사위가 모욕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 당장 반석 도련님께 사과해.” “우와.” 왕범현의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한바탕 탄성을 질렀다. 모두 오반석의 신분 배경을 듣고 놀란 것이었다 최근 3대 가문이 몰락하면서 리성투자회사가 H시에 진출해 수많은 사업들을 벌였다. 리성투자회사에서 투자한 회사는 많은 H시 사람들에게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슈를 몰고 다니는 엄청난 자본의 회사인 만큼 H시의 시장 하세량조차도 눈치를 살피며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 때문에 리성투자회사 부사장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위치였다. “이야, 리성투자회사의 반석 도련님을 다 보네.” “오늘 반석 도련님과 이렇게 만나 술을 마시게 돼 영광이에요.” 그러자 배경문 등이 앞을 다투어 오반석에게 아부했다.여자들은 눈을 모두 초롱초롱하게 뜨고 오반석을 쳐다보았다. 여자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현수린이 애교스럽게 말했다. “도련님, 아마 H시에 오
“범현 오빠가 제때에 손을 써서 이 쓸모없는 인간의 음모대로 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야.” “그래, 모두 범현 형에게 감사해야 해. 오빠가 아니었다면 저 데릴사위가 방금 미친 듯이 저 형님을 도발했으니 오늘 누군가는 반쯤 죽었을 거야.” 모두들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동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깎아내렸다. 심지어 동혁이 아까 판명철 등을 제지해 그들을 구한 것조차도 동혁이 보복을 노리고 판명철을 도발한 것이라며 음모라고까지 했다. “형부, 이 언니오빠들 좀 봐요. 아주 열받아 죽겠어요.” 배경문 등의 뻔뻔스러움에 현소는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고, 큰 눈에 눈물이 맺혀 촉촉하게 변했다. 동혁이 현소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현소야, 쓰레기 같은 인간들에게 일일이 화낼 필요 없어.” “약자는 보통 남을 깎아내려야 자신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니까.” “저런 착각 속 인간들은 현실에서 언제나 패배자로 살 수밖에 없어.” “그저 파리 몇 마리가 귓가에서 윙윙거린다고 생각하고 그냥 무시해 버려.” “굳이 말을 섞어서 너까지 저런 인간들 같은 사람으로 전락하지 말고.” 동혁의 말을 듣고 현소는 마음을 다잡았고, 그녀의 작은 얼굴을 들어 동혁을 우러러보며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현장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것은 마치 폭풍이 닥치기 전에 잠잠한 것과 같았다. 배경문 등은 분노하여 폭발했다. “와, 저 아내집에 얹혀 살며 공짜밥이나 얻어먹는 쓸모없는 놈이, 다들 무시하는 개보다 못한 데릴사위 주제에 지금 누굴 가리켜 그딴 헛소리야?” “가소로워서. 데릴사위 놈이 자기가 정말 패배자인지도 모르고, 우리에게 패배자라니.” “가서 거울보고 자기 주제파악이나 해. 우리랑 말도 섞을 수 없는 쓸모없는 인간 주제에 어딜 감히.” “...”처갓집에서 미움받는 데릴사위에게 멸시를 당한 배경문 등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잠시 멍해졌다 정신을 차린 배경문 등은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듣기 싫은 말로 동혁을 욕했다. 현소는 동혁 대신 상
현수는 동혁이 항상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빈정거렸다. 하지만 동혁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방금 전 동혁이 외면하고 방관하면서 다소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인 덕분에 판명철 일당은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판명철 등은 본래 왕범현이 자신들을 발로 차면서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을 그냥 참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암흑가에서 산전수전을 겪었기 때문에 급하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비록 왕범현은 실력이 좋긴 하지만 일단 판명철 등이 그를 건드리기로 마음먹는다면 마지막 결말은 서로 몸에 피를 뒤집어쓰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젊고 생기발랄한 왕범현이 그 사실을 알 턱은 없었다. 그가 방금 판명철 등에게 아무런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고 손을 썼기 때문은 그 자신은 무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하, 현수 말이 맞아.” 현수의 말에 배경문 현수린 등도 냉소하며 동혁을 쳐다봤다. “방금 이 데릴사위가 자기가 무슨 두목인 척 저 판명철에게 사과하라고 했다니까.” “어쩐지 아까 겁 없이 나서더라니, 그게 다 범현 형님이 곧 나서실 줄 예상하고 그런 거였고만.” 한 무리의 남녀들이 모두 동혁을 향해 빈정거렸다. 방금 그들은 모두 판명철 등에게 당해 뺨을 맞았지만 동혁과 현소 남매는 지금까지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왕범현의 사람들이 매우 창피함을 느꼈다. 어쨌든 현수는 그들과 같은 편이었고 현소는 왕범현이 좋아하는 여자여서 뭐라 말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동혁에게 모든 화풀이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야 나름 구겨진 자존심을 찾을 수 있었다. 조금 화가 난 동혁의 눈빛이 다소 냉랭하게 변했다. 하지만 동혁은 그들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저런 철부지들을 상대한다고 굳이 내가 나서서 힘 뺄 필요는 없지.’ 그러나 동혁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을수록 왕범현의 제자 무리는 점점 더 흥분해 말했다. 동혁을 비하할 뿐만 아니라, 그 기회를 이용해 왕범현에게 아부했다. 현소는 그들의 말을
박용구와 김대이의 처지는 암흑가 사람들에게 낯선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J시 쌍살과 같은 야인에게 당하고도 목숨을 건졌다면 모두 조상의 은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왕범현처럼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는 젊은 세대는 달랐다. 그에게 김대이는 그저 한 명의 늙은이 일뿐이었다. 그는 애초에 자신이 쌍살의 눈에 들었다면 거꾸로 쌍살을 반죽음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판명철은 왕범현의 말을 듣고 더 이상의 대꾸를 포기했다. ‘끝이야. 김 회장님도 왕범현, 이 자식을 어찌할 수 없을 거야. 골드스타필드가 오늘 이놈에 의해 발칵 뒤집히게 생겼어.’ “경문아, 이리 와봐.” 왕범현은 배경문을 곁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사나운 눈빛으로 판명철과 그 부하들을 훑어보더니 냉정하게 말했다. “방금 누가 네게 손을 댔는지 전부 다 가리켜봐. 내가 그놈들을 모두 무릎 꿇려서 너희에게 머리 머리 숙여 사과하게 하고 너희들이 당한 만큼 마음껏 뺨을 때리게 해 줄 테니까.” 이 말을 듣고 현수린 등은 미친 듯이 기뻐했다. ‘방금 맞아서 너무 분했는데, 이렇게 복수할 수 있게 되다니. 원수 같은 놈들을 때려주면 아주 통쾌할 거야.’ “스승님, 저 깡패 놈들 모두 손을 댔어요.” 배경문은 맞은편 깡패들을 가리키며 신이 나서 말했다. 왕범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판명철의 부하들을 째려보았다. “아직도 멍하니 뭐 하고 있어? 내 말 못 들었어?” 깡패들은 모두 자존심이 생명이라 도저히 바닥에 무릎 꿇어 머리 숙여 사과하고 뺨 맞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왕범현의 정체를 알고 다소 꺼려하며 감히 어찌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이 모욕을 당하자 더 이상 참기 어려웠다. “젠장, 모두 덤벼.” 깡패들이 모두 주먹을 쥐고 왕범현에게 돌진했다. 왕범현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가소로운 것들.” 말과 함께 과감하게 맞받아치며 주먹과 발을 내질렀다. 왕범현은 역시 왕용비의 아들다웠다. “퍽퍽” 하는 몇 번의 둔탁한 소리와 몇 번의 비명이 들려
“범현 형님 오셨군요.” 판명철은 왕범현을 알고 있었는지 인사를 하며 물었다. “여기 몇이 형님 제자예요?” “아주 건방지던데요? 특히 저기 배경문이라고 하는 놈은 다짜고짜 내 뺨을 때려서 제가 가만둘 수가 없었어요.” 배경문은 왕범현이 판명철의 배경 때문에 자신을 다시 한번 때릴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재빨리 다가가 억울해하며 설명했다. “형님, 그게요. 현수가 자기 누나인 현소를 데려왔는데 저 형님이 오자마자 현소에게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해서 저희는 현소가 형님이 마음에 들어 할 여자라 막다가 충돌하게...” 왕범현은 고개를 돌려 소파에 앉아있는 현소를 힐끗 보고는 갑자기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10대 때부터 유흥가를 배회했고 지금까지 본 미녀는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유흥가에 있는 여자들은 많이 봐서 싫증이 났다. 하지만 청순하고 귀여운 현소를 보고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왕범현의 시선이 이어서 동혁에게로 향했다. “반석 도련님, 저놈이 바로 도련님이 말한 그놈이죠?” 배경문은 거만하고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왕범현이 동혁을 아는 것을 보고 바로 동혁이라는 사람이 그저 단순한 데릴사위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 저놈이야.” 오반석은 음흉한 눈빛으로 동혁의 몸을 한 바퀴 훑어보더니 약간의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급할 거 없어. 먼저 네 일부터 처리하고 다음에 저놈을 혼내주면 돼.” 말을 마치고 오반석은 바로 옆 좌석에 앉아 구경하는 자세를 취했다. “알겠어요.” 왕범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테이블 위의 맥주 한 병을 집어 들어 판명철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퍽!” 예고 없이 들이닥친 습격에 판명철은 전혀 반응할 수 없었다. 술병이 그의 이마에 세게 부딪혀 바로 깨져버렸다. 판명철은 비틀거렸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네놈이 형님 대접을 해줬더니, 감히 날 쳐? 죽고 싶나 보구나? ” 얼굴에 온통 뒤덮인 핏물과 술 때문에 판명철이 유난히 흉악해 보였다. 그러나 왕범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