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가 없어서. 세화야 지금 할아버지를 쫓아내는 게 네 잘난 남편이라고?” 진한영은 진세화를 차갑게 바라보며 진씨 가문의 주인의 권위를 내세웠다. “이건 가주로서의 명령이야. 당장 이혼해!” “진세화, 할아버지께서 이혼하라고 하셨는데, 감히 네가 말을 안 듣고 버틸 수 있겠어?” 진씨 가족들은 모두 냉소적으로 진세화를 비웃었다. 진한영이 진씨 가문의 최고 어른인 만큼, 아직 아무도 감히 그를 거역하지 못했다. “할아버지, 제 결혼은 제가 알아서 해요.” 진한영은 갑자기 펄쩍 뛰었다. “세화야, 네 눈에 이 할아버지가 안 보이니?” 진세화가 입술을 깨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그는 다시 진창하와 류혜진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 둘, 당장 너희 딸과 동혁이를 이혼시켜라!” 진창하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류혜진이 말했다. “아버님,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세화가 동혁과 이혼하고 나면, 누구를 의지하고 살라고 하시나요? 진씨 가문이요?” “세화의 회사가 파산 직전일 때, 그저 세화에게 표범을 찾아가서 돈을 빌리게 했지요.” “세화가 하정훈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는, 가족들은 진씨 가문이 피해를 받을까 봐 또 세화에게 자수를 강요했어요.” “저희가 부모로서 아버님말처럼 냉혈하고 무자비하게 자기 딸을 불구덩이에 밀어 넣을 것 같습니까?” 류혜진은 말할수록 흥분했고, 분노로 표정이 흉악해졌다. 몇 년 동안 겪었던 억울함을 이 순간에 모두 토해내는 듯했다. 그녀는 갑자기 원소강을 향해 소리쳤다. “뭘 멍하니 있어요? 저들을 내쫓아요. 모두 내쫓아!” 원소강은 그녀의 고함에 흠칫 놀라더니, 손으로 신호했다. “쫓아내.” 경호원에 진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쫓겨났다. “이동혁, 이 개X식, 네가 감히 우리에게!” 진태휘는 나가면서 말했다. “두고 봐, 내가 앞으로 어떻게 복수할지.” 이동혁은 차갑게 말했다. “잊었어? 방금 내기했잖아, 이제 네가 졌으니 호수에서 헤엄쳐 돌아가야지?” “젠장! 무슨 내기? 난 기억에 없는데
이동혁은 말했다. “장모님, 전 찬성입니다.” “그래도 사위가 뭘 아네, 흥, 당신들은 아직 동혁이보다 못해!” 류혜진은 이동혁이 자신을 지지해 주니 너무 기뻤다. “됐어요, 엄마, 하고 싶으면 하세요.” 진세화는 말하면서, 한편으로 류혜진이 이동혁에게 말투를 바꾸자 마음이 매우 기뻤다. 식탁에서 진세화는 내일 청풍 회사에서 사람들을 모집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회사는 이전에 많은 사람들을 떠났고, 현재 일손이 심각하게 부족했다. “이제부터 청풍 회사는 제 회사입니다. 반드시 다시 일으켜 세울 거예요.” 이 말을 하는 진세화의 눈에는 아쉬움과 슬픔이 있었다. 그녀는 졸업 후, 진성그룹에 들어가 많은 애정과 정성을 쏟았다. 더구나 회사 부흥시켜 아버지의 그룹 내 입지를 바로 세우는 것이 그녀의 오랜 꿈이었다. 다만 이번에 진씨 가문과 사이가 틀어졌으니, 이후로 그녀는 아마 진성그룹의 도움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동혁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진세화의 그릇에 음식을 놓으며 말했다. “여보, 걱정하지 마, 내가 진성 그룹으로 돌아가게 해 줄게.” “오늘 할아버지랑 그렇게 뻣뻣하게 싸웠는데, 앞으로 허락하실리 없어요.” 진세화도 말하며 이동혁의 그릇에 음식을 놓았다. 이동혁은 말했다. “그렇게 될 거야. 지금 진성 그룹은 죽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 처해 있거든. 살기 위해서 뭐든 할 거야.” 식사를 마치고 이동혁은 평소대로 설거지를 하러 갔고, 진세화는 소화를 위해 부모님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 주변 환경이 너무 익숙했다. 그들은 오늘 이사하느라 미처 저택 주변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이동혁은 설거지와 집안일을 하고, 휴대폰에서 새로운 소식을 보았다. 그가 대저택을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선우설리가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회장님, 오늘 오후에 주원풍이 황사장님을 보러 왔습니다. 그러더니 더는 회장님을 보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선우설리가 저택으로 올라와서 말했다. 지금도 이씨 가문은 황사장이 그를 후원하는
진한영은 바로 강진강에게 연락해서, 내일 가서 하늘 거울 접수해 오라고 하고, 일이 잘 끝내면 1억 원을 주라고 했다. 그냥 몇 명 보내서 겁주는 데, 1억 원이라니. “하늘 거울? 최고급 저택인데, 하늘그룹의 보안도 전문 보안회사에서 관리하는 거고, 이번건은 좀 까다롭군.” 강진강은 전화로 난처함을 표했다. 진태휘는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 “금강형님, 형님이 김 어르신 밑에서 최고 아닙니까? 형님이 나서면 아무리 전문적인 보안도, 벌벌 떨지 않겠습니까? 그간 정을 생각해서라도, 동생 체면 좀 세워주세요.” “좋아, 그렇게 하지, 태휘 동생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이번 일은 받아줄게.” 진태휘가 감동하고 있을 때 강진강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돈이 조금 더 필요해.” “할아버지, 10억 원을 요구하는데요?” 진태휘는 휴대폰을 움켜쥐고 진한영을 바라보았다. 놀랄만한 액수였다. 10억 원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진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고 해, 10억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하늘 거울 저택을 차지할 수만 있다면, 10억원이 아깝지 않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서둘러 돈을 보냈다. 진씨 가문도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한꺼번에 10억 원을 쓰는 그들 역시 약간의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 이튿날 오전. 진세화는 아침을 먹고 바로 회사에 갔다. 오늘 지원한 사람들의 면접이 있었기 때문이다. 류혜진은 진창하와 함께 산책하러 나갔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보기로 했다. 이동혁은 여전히 집에 남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안일을 했다. “크크, 상부의 어른들이 그 위풍당당한 전신이 뜻밖에도 H시에 숨어서 가정주부가 되었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화가 나서 피를 토할지도.” 바로 그때 설전룡이 왔다.이동혁이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것을 보고는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설전룡은 이동혁의 가족이 알아볼까 봐 걱정돼, 오늘 평상복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이
그는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잠깐 거기 두 늙은이, 멈춰!” 류혜진은 고개를 돌려 이 많은 깡패들을 보자 깜짝 놀라 꼼짝도 하지 못했다. 강진강은 거들먹거리며 다가왔다. “당신들이 바로 하늘 거울 저택에 사는 진씨 가족 맞지? 오늘 안에, 집을 비워줘야겠어!” “당신이 무슨 권리로 우리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하는 거죠?” 류혜진은 새하얗게 질려도 이치를 따졌다. 하지만 이 깡패들은 이치 따위는 몰랐다. 짝! 강금강은 그녀의 뺨을 때리며 위협했다. “누구의 집이건 간에, 내가 옮기라고 하면 너희는 옮겨!” “우리가 옮기지 않으면?” 밖의 기척을 듣고 이동혁은 설전룡을 데리고 나왔다. 그는 류혜진이 얼굴을 감싸고 있는 것을 보고, 눈에서 갑자기 살기가 번쩍였다. “어허, 여기 굴러다니는 쇠붙이가 있네.” 강금강은 고개를 돌려 이동혁을 쳐다보고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졌다. “가서 저 놈의 혀부터 뽑아!” 갑자기 깡패 한 명이 이동혁을 향해 돌진했다. 그는 눈에 흉광과 함께 손바닥으로 이동혁을 향해 후려쳤다. 퍽! 그의 손이 이동혁의 얼굴에 닿기 전에, 큰 발 하나가 갑자기 그의 배를 걷어찼다. 그 깡패는 비명을 지르며, 그의 100킬로가 넘는 몸이 날아가 십여 미터 떨어진 호수에 처박혔다. 이 한 번의 타격으로도 그 사람은 이미 쓸모없게 되었다. 꿀꺽! 강금강을 비롯한 깡패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모두 놀란 눈으로 갑자기 나타난 설전룡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에 악랄함과 잔인함으로 잘 알려진 그들이었지만, 설전룡과 같은 이는 본 적이 없었다. “감히 우리 형님 뺨을 때리려고? 죽고 싶냐?” 설전룡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강금강은 몸을 부르르 떨며 뒤로 물러섰다. “내가 누군 줄 알고? 나는 김 어르신의 부하다. 너는 죽음이 두렵지 않냐?” “무슨 김 어르신이과 나발이고!” 설전룡은 아까 류혜진을 때렸던 팔을 비틀어 쥐어짜며 힘주어 부러뜨렸다. 강진강은 표정이 흉악할 정도로 일그러지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설전룡은
이동혁은 장인 장모를 잠시 달랬다. 그리고는 방금 너무 놀란 두 사람을 저택에서 좀 쉬게 했다. 그가 다시 저택을 나왔을 때, 원소강이 일단의 사람들을 이끌고 재빠르게 달려왔다. “이 선생님, 저희 경호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그 깡패들이 설치게 놔둬서 정말 죄송합니다.” 원소강은 이동혁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그러게요. 보안이 정말 형편없습니다.” 이동혁은 냉담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그 경호원들은 평범한 아파트의 문을 지키는 나이 든 경호원이 아니라, 전문 보안 회사에서 고용한 것인데, 뜻밖에도 깡패들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선생님, 다 김 어르신의 이름에 겁을 먹어서 그렇습니다. 이미 경호원들에게 죽을 각오로 상대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제대로 상대하겠습니다.” 원소강도 유감스러워했다. 아무리 상대가 커도, 하늘 그룹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그들을 흔들 수 있었다. 하지만 돈에 목숨을 걸고 덤비는 놈들을 만나면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아닙니다. 앞으로 하늘부동산의 경호원은 쓰지 않겠습니다.” 이동혁은 손을 내저으며 설전룡에게 말했다. “전룡아, 사람을 좀 보내라, 우리를 건드린 이유를 알아야겠다.” 원소강은 의심스러운 듯 설전룡을 쳐다보다 놀랐다. “설…… 대도독을 뵙습니다!” 2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그는 설전룡을 비로소 알아보고, 곧 놀라서 허리를 굽혔다. …… 한편, 청풍 주식회사. “다음이요.” 진세화는 방금 전 지원자 면접을 마치고 보조원에게 말했다. 곧 한 여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진 사장님, 제 이름은 서경하입니다. 아…… 세화?” 서경하는 그곳에 앉아 있는 진세화를 보고 놀라서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그날 원소강의 비서 면접에 합격하지 못했고, 요 며칠 동안 줄곧 일자리를 찾다가 청풍 회사의 채용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다. “세화, 네가 청풍 회사의 사장이었어?” 서경하는 착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며칠 전만 해도 자신보다 키가 큰 진세화
“여자?” 진세화는 눈살을 찌푸렸다. “음, 딱 봐도 부잣집 여자 같던데? 차가 벤츠 마이바흐에다, 기사도 있고, 그 넘치는 카리스마에, 하늘 그룹의 원 회장도 그녀를 깍듯하게 대하던데?” 서경하는 진세화의 표정을 살피며 계속 말했다. “진짜 모르는 거야? 네 남편이 산 가구는 모두 그 여자가 낸 돈인데...” “내가 그날 왜 면접을 까였는 알아? 그때 네 남편과 그 여자를 만나서 그런 거야.” 서경하는 말하면서 자신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여기 찍힌 자국을 봐, 그때 원 회장이 원래 날 합격시켰는데, 네 남편의 한마디에 경호원에게 내던져졌어.” 진세화는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경하, 네 말 다 사실이야?” 서경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를 속여서 뭐 하게. 어차피 좋은 직장도 잃고, 사람들 앞에서 창피하게 쫓겨났어. 이런 일을 내가 꾸며내서 너를 속일 수 있겠어?” 진세화는 순간 의심이 들었다. ‘그래, 남편과 서경하는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데, 왜 그녀의 일을 망치려고 해?’ ‘만약 남편이 서경하에게 어떤 일을 들켜서 그랬다면?’ 게다가 그들은 막 하늘 거울 저택으로 이사했고, 서경하가 하늘 그룹에 근무한다면 앞으로 많이 부딪히게 될 거라 생각했다. 서경하는 그녀가 의심하는 것을 보고 더 의기양양했다. 휴대폰의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말했다. “세화야. 날 믿어. 속이는 거 아니야. 봐봐 여기. 네 남편이 그 여자와 차에 탔을 때 사진도 찍었어.” 진세화는 그것을 보고 갑자기 안색이 돌변했다. 사진 속의 그 여자의 뒷모습, 그녀는 어젯밤에 자신과 만났었다. 부모님과 함께 산책하고 돌아왔을 때, 마침 그 여자가 저택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남편에게 물어보니 친구라고 했다. 이 모습을 본 서경하는 말했다. “세화야, 동혁 씨가 너희 집에서 별 대접도 받지 못했으니 인정받고 싶은 것은 이해해.”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동혁 씨가 이러면 안 되지. 생각해 봐. 아무리 사회에서 졸부로 불리는
“서경하. 너 정말 대단한데? 술도 안 마시는 사람인데 벌써 이렇게 만들다니.” 주태진은 그녀의 붉고 예쁜 얼굴을 보며 탐욕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몇 년 전에 그는 이 여자를 차지하려고 시도했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소원을 이루게 됐다. “제가 먹인 게 아니라, 직접 마신 거예요.” 서경하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도련님, 제가 세화를 침대로 데려다줄 테니, 제게 약속하신 일자리 잊지 마세요.” “너도 지금 이동혁에게 복수하려고 이러는 거 아니었어?” 주태진은 그녀의 허리를 움켜쥐고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그깟 일자리 하나 네게 주는 거 일도 아니니.” 진세화의 생일잔치 후, 주태진은 원래 천룡투자그룹에 다리를 놓으려 서경하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서경하는 이미 해고되어서,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야합하여 새 일을 꾸몄다. 주태진은 서경하가 진세화의 동창이라는 것을 알고, 서경하의 도움을 받아 진세화를 차지하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의 이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주태진은 진세화를 보고 여기서 안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손을 내저었다. “일단 네가 그녀를 부축해서 호텔로 가서 네 신분증으로 방을 예약해. 내가 뒤따라 갈게.” 주태진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듯 자신이 직접 하기보다 서경하에게 방을 예약하라고 했다. 만약 일에 문제가 생기면, 그가 어떻게 화를 낼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서경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진세화를 부축해 레스토랑을 나와 인근 호텔로 향했다. 진세화의 휴대폰이 테이블에 그대로 남겨졌고, 마침 휴대폰 벨이 다시 울렸다. 주태진은 휴대폰을 보니 이동혁으로 표시돼 있었다. 그는 일부러 전화를 받아 말했다. “이동혁, 무슨 일 있어?” “주태진?” “내 아내가 왜 너랑 같이 있지?” “그건 내가 아니라 그녀에게 직접 물어봐야지. 하지만 어쩌지 지금 네 전화를 받을 수 없는데.”주태진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호텔에 도착하면 내가 네 아내를 잘 돌봐줄게.
“고마워. 그럼 난 이만 바빠서 회사에 들어가 봐야겠어.” 진세화는 침대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녀가 방 문 앞에 이르자 주태진이 팔을 잡아당겼다. “이렇게 술냄새 가득해서 어떻게 일하게? 샤워하고 가.” 진세화은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진세화는 지금 주태진을 화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다. 샤워하고 가야겠어.” 주태진은 그제야 웃으며 그녀를 놓아주었다. 진세화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억지로 냉정을 유지하며 샤워실로 들어갔다. 샤워실은 거친 무늬의 유리로 칸막이가 되어 있어서 밖에서는 안이 희미하게 보였다. 진세화는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녀는 경찰에 신고하려고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옷과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찾지 못했다. “뭐 찾아? 혹시 이거?” 샤워실 밖에서 갑자기 주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진세화의 휴대폰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내 휴대폰이 왜 네게 있어?” 진세화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방금 네 남편이 전화를 하도 많이 해서, 걱정할까 봐 받았거든.” 주태진은 계속 말했다. “내가 잘 돌봐주겠다고 했더니 고맙다고 하더라.” 이동혁이 정말 그렇게 말했을까? 진세화는 현재 머리가 어지러워 무언가를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주태진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휴대폰을 주태진이 가져가서, 그녀는 외부와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최대한 시간을 끌고 기회를 봐서 떠나는 것뿐이다. “태진아, 밖에 나가서 기다려. 나 샤워해야 하니.” 그녀는 화난 척 말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우리 나중에 다 볼 건데, 뭐가 부끄러워?” 주태진은 진세화가 시간을 끌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동혁이 졸부 여자와 만나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너를 배신하고 그런 역겨운 일을 저지르다니, 너도 더 이상 그놈 때문에 마음고생 할
“보상만 하면 이 고물 차를 다시 몰고 가도 돼.” 대충 내뱉듯이 사정우가 말했다. ‘내가 아까 했던 말은 소 귀에 경읽기였어?’ ‘분명히 이 인간은 자기가 고의로 추돌사고를 냈다고 인정했으면서도, 뻔뻔하게 내게 보상을 요구한다고?’ 세화는 치미는 분노에 헛웃음이 나오면서 더 이상 말로 따질 필요도 못 느꼈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세화가 말했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네요. 누가 보상해야 하는지 경찰이 판단하게 해야겠네요.” 하지만 그 순간 나태성이 다가와서 세화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리고 다른 차에서 내린 양아치들도 슬그머니 세화를 둘러싸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지금 뭐 하는 거야? 내 휴대폰 돌려줘!” 세화는 화를 내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 백주 대낮에 대놓고 핸드폰을 강탈할 줄은 몰랐기에 마음속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시민들도 이 광경을 보고 기가 찼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사정우의 패거리는 척 봐도 대단한 기세라서 평범한 시민들은 감히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세화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감히 나설 수가 없었다. “예쁜 아가씨, 그렇게 긴장할 거 없잖아. 핸드폰이 얼마나 하겠어. 보상이 끝나면 돌려줄게.” 사정우는 세화의 휴대폰을 가지고 놀면서 심지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기도 했다. 마치 세화의 체취이라도 배어 있는 것처럼. “웃기지 마. 당신이 내게 배상해야 돼.” 세화는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자 사정우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쁜 아가씨,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 당연한 이치를 모르진 않겠지?” 사정우의 시선이 세화의 몸을 훑어내렸다. “배상할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아도 돼. 나하고 같이 자면 돼.” “흠... 오늘이 내가 이 H시에 온 첫날이니까, 특별히 이렇게 하자.” “내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 당신은 내 여자가 되
세화는 조금 놀랐다. H시의 사씨 가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곳의 이씨 가문과 같은 급의 명문 가문이다. 사정우의 아버지가 사해상공회의소의 이사라는 점도 놀라웠다. 그리고 마침 자신도 사해상공회의소 가입을 앞두고 있기에, 참으로 기묘한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같은 편이 될 텐데 다투지는 않겠지.’ 하지만 세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세화가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관계 때문에 방금 있었던 일을 묵인할 생각은 없었다. “방금 일부러 차선을 바꿔 제 차를 들이받게 한 거 맞죠?” 세화는 사정우의 의도를 꿰뚫어 보았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며 접근하려는 수작이라는 걸 알아차린 세화는 손을 내밀지도 않은 채, 표면적으로는 예의를 지키며 정중하게 질문했다. 사정우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좋아요. 난 그저 당신하고 좀 친해지고 싶었을 뿐이에요.” “사고를 계기로 인연이 시작된다면 낭만적인 드라마 같지 않겠어요?” “낭만적인 드라마?” 세화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그건 낭만이 아니라 교통 법규를 무시하는 행위이고,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예요.” “당신의 행동에서 차가움과 무감각만 느꼈을 뿐이에요. 전혀 낭만적이지 않아요.” 세화의 단호한 태도에도 사정우는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이 세화를 바라봤다. 그동안 자신이 만난 여자들은 아무리 새침한 척해도 그의 신분과 재력을 알고 나면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화는 달랐다.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로 자신을 가르치려고 들었다. ‘이런 여자를 정복하는 건 아주 성취감이 있겠어.’ 사정우는 웃으며 말했다. “너무 진지하시군요. 사람 목숨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래요?” “난 예전에도 사람을 친 적이 있어요. 하지만 보상하고 합의서 받으면 끝나는 일이지.” “물론 돈을 거절하고 내 목숨을 요구하는 바보
“내려! 내려!” 차 안에 앉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세화를 본 꼬붕 놈이 차문을 더욱 세게 발로 찼다. 마세라티의 차문에는 순식간에 움푹 패인 자국들이 생겼다. 그 와중에도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미동도 없이 서서 이 모든 사태를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세화는 가슴이 아팠다. 이 차는 바로 동혁이 자신에게 사 준 첫 번째 차였기 때문이다.세화가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행인들이 많이 몰려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이 무리들이 험악해 보이긴 하지만,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거야.’ 그래서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그만 발로 차, 내리면 되잖아.” 나태성이라는 꼬붕놈은 코웃음을 치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세화는 천천히 차문을 열고 내렸다. “와, 이 여자 진짜 예쁜데? 게다가 2억 원이 넘는 마세라티를 타고 다니는 거 보니 완전 재벌이네.” “이 여자도 몰라? 혜성그룹의 회장, 진세화 씨야! 교통사고를 난 사람이 이 여자일 줄은 몰랐네...” 세화는 H시에서 너무나도 유명했다. 최근에는 주다정이 퍼뜨린 유언비어로 인해서, 더욱 사람들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 덕분인지, 세화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역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함부로 못하겠지.’‘혜성그룹 회장 진세화라고?’ 그 순간, 무표정이던 선글라스 남자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쳤다. “당신 운전을 어떻게 한 거야? 운전할 줄 모르면 아예 도로에 나오질 말든가! 김 여사가 바로 당신 같은 여자 운전자를 두고 하는 말이야.” 거들먹거리면서 세화에게 쏘아붙인 나태성은 세화가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몰아붙였다. “말해봐. 어떻게 책임질 거야?” “아니, 애초에 당신들이 불법으로 차선 변경을 해서 사고가 난 건데, 내가 왜 책임져야 해?” 세화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내 실수로 일어난 사고였다면, 주저하지 않고 피해를 보상했을
[사해 상공호의소에서 우리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해서 살펴봐야 해.] 세화가 차분하게 말했다. [H시의 시장은 너무 작아. S시의 세방그룹이든 혜성그룹이든 앞으로는 반드시 전국으로 시장을 확대해야 해.] [그리고 N도의 시장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N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해상공회의소의 문을 두드려야 해.] [마침 사해상공회의소에서 고급 회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연락을 해 온 거야.]세화도 이 기회를 잡으려고 했기에 쌍방은 자연스럽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남편이 별로 탐탁치 않아 한다는 걸 알아차린 세화가 동혁에게 말했다. [당신도 같이 가. 이미 사해상공회의소 대표하고 약속을 했어,] [새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당신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야.] 동혁의 주량이 좋기도 하지만 동혁을 데리고 가는 데에는 세화가 고심한 또다른 목적이 있었다.바로 사해상공회의소 사람들과 만나면서 동혁을 위한 인맥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세화의 말에서 자신에 대한 관심을 느낀 동혁은 마음속으로 기뻐했다.‘아내가 이렇게 나를 챙겨 주는데 내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너무 눈치가 없는 것이겠지?’동혁은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래, 알겠어. 당신을 위해서라면, 불 속이라도 기꺼이 뛰어들어야지.” “하물며 술마시는 건데 말이야. 오늘 술 마시러 온 사람들은 다 뻗게 해주겠어!” 동혁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세화는 진지하게 말했다. [좀 진지하게! 이번엔 사고 치면 안 돼. 지난번처럼 술 마신 사람들 병원으로 보내지 말고!] 지난번에 동혁은 몇 개 부문의 책임자들과 술을 마시고 전부 뻗게 만들어서 세화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알았어. 쓸데없는 말은 안 할게. 명성호텔로 와서 나하고 합류하면 돼. 내가 지금 차를 가지고 갈게.]다시 한마디 한 뒤 세화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세라티를 몰고 출발했다.세화가 명성호텔 근처에 왔을 때, 옆 차선에서 오픈 스포츠카 한 대가 세하의 차에 접근해서 나란히 달렸다. 빵! 빵! 선글라스를 낀
한 무리의 기자들이 떠드는 소리가 천진과 주다정의 귀에도 들렸다. 이는 자신들에 대한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였다.30분도 안 되어 천진이 주다정을 폭행한 사실이 인터넷어 폭로되었고, 사방으로 떠들썩하게 퍼져 나갔다.이로써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 주다정과 천진이 결탁해서 간통을 저질렀고, 항난그룹을 삼키려고 작당한 두 사람은 오히려 동혁과 수소야가 간통을 저질렀다고 유언비어를 퍼트렸던 것이다.‘정말 파렴치하기 짝이 없지!’두 사람을 향한 욕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악명을 세상에 날리게 된 주다정과 천진은, 모든 사람들의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이튿날 H시 방송국에서는 성명을 발표했다, 동혁과 세화 일가에 사과하는 동시에 경병수와 주다정을 파면했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그 뒤로 이 양아버지와 수양딸은 H시에서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소문에 따르면, 주다정은 한 지방 도시의 고급 클럽에서 명문가의 자제들과 고위 관리들을 정성껏 접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다만 예전에는 자신이 기꺼이 원해서 그랬지만, 지금은 억지로 웃음을 보여야 했다.그리고 이 여론을 통해서 먹칠을 했던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수소야도 여러 매체들이 공동으로 증인을 서는 가운데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천진의 파렴치한 행동이 사람들에게 공개된 데다가 동혁도 이 소송에 특별히 관심을 보였다. 법원에서는 신속하게 두 사람의 이혼을 판결했다.결국 천진은 원래 자신의 가문에 속했던 재산을 제외하고, 항난그룹에 대해서는 동선 하나도 건질 수가 없었다.법원의 판결에 불복한 천진은 수소야가 보유한 항난그룹의 지분은 부부의 공동 재산이므로 당연히 자신이 절반을 가져야 한다고 항변했다.하지만 수소야는 항난그룹의 지분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동혁이 전후로 나눠 준 지분은 처음부터 백마리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화가 머리끝까지 난 천진은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인다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항난그룹의 지분을 수중에 넣으려고 할 때마
경병수는 마침내 주다정이 요 며칠 동안 온갖 방송국 자원을 동원해서 유언비어를 날조해서 얼굴에 먹칠을 하게 만들었던 대상이 동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경병수가 아무리 용서를 빌어도 동혁의 태도는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동혁이 냉혹한 말투로 경병수에게 말했다.“경 국장, 내가 잘못 들었나?” “나는 해고하는 건 못 봤어. 오히려 당신이 가지고 놀다가 질린 음탕한 여자를 나한테 꽂아 넣으려고 한 걸 봤는데.”“경 국장, 당신은 나 이동혁을 얼마나 무시하는 거야?”털썩-경병수는 눈빛마저 초점을 잃은 채 털썩 주저앉았다.이제는 자신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동혁이 이렇게까지 말했다는 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작정임을 드러낸 것이다.더 중요한 건 경병수가 반박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그건 바로 경병수가 생각한 방법이었기에.동혁은 경병수를 더 이상 보지도 않은 채 담담하게 임창호에게 말했다.“방송국 위아래 모두 대청소를 해야겠군요.”“시 방송국의 바로 H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곳인데, 오히려 온갖 오물과 비리가 난무하는 곳이 되었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됩니까?”“네!”임창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경병수의 접견을 자신이 주선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자신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웠다.이제는 자신이 시장에게 점수를 잃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반드시 만회해야 해!’임창호는 곧바로 사정 파트의 직원들을 호출했다.“경병수와 주다정은 모두 즉시 파면 처분했다고 공고하도록 해. 그리고 내가 직접 방송국에 주재하면서 대대적으로 정리하겠다.”임창호의 말은 경병수와 주다정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과 마찬가지였다,두 사람은 완전히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야 했다주다정은 자신이 어떻게 시청에서 나왔는지,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줄곧 멍한 표정이었다.똑똑-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천진이 나와서 문을 열었다.그러나 주다정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드러냈다.“다정아, 어떻게 된 거야? 누가 널
동혁의 이런 비난에 경병수는 놀라서 쓰러질 지경이었다.‘주다정 저 멍청한 X이 자기만 망친 게 아니라 나까지도 망쳤어.‘시장님의 말은 우리 방송국 전체에 아주 불만이 많다는 걸 드러낸 게 분명해.’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면서 경병수는 꽉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시, 시장님... 저 주다정이 갑자기 미친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방송국 직원들은 모두 시장님을 존경하고 있고, 불경한 의도를 품은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말을 하면서 경병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장의 싸늘한 태도를 보자 주다정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다.‘이 멍청한 X이 나까지 말려들게 하다니!’경병수는 갑자기 주다정을 걷어차서 바닥에 쓰러지게 만들었다.거기서 그치지 않고 두 발로 계속 거세게 걷어찼다. 퍽! 퍽! “아악! 아파요. 양아버지 제발! 제발 그만 때리세요!!”주다정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누가 네 양아버지야!”주다정의 입에서 양아버지란 말이 나오자, 경병수는 넋이 나갈 정도로 놀랐다.재빨리 달려들어 주다정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연달아 따귀를 때렸다.짝! 짝! 짝!“악! 제발 그만!” “나는 너하고 아무 관계도 없어! 함부로 친척이라고 하지 마!” “한 번만 더 주둥이를 놀리면 때려 죽여버리겠어!”경병수는 이번에 정말 필사적이었기에 온 힘을 다해 주다정을 때렸기에, 주다정은 너무나 비통한 나머지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경병수가 아무리 둔하다 해도 동혁과 주다정 사잉에 원한이 쌓여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주다정은 이미 시장님의 마음 속에서 끝났어.’‘지금 만약 주다정이 내 수양딸이라는 게 들통나면 이동혁이 나를 그냥 두겠어?’주다정의 얼굴이 엉망이 되도록 때리던 경병수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때리던 걸 멈췄다.지금 주다정은 갯벌의 진흙처럼 엉망이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마치 숨이 간들간들한 강아지마냥 입으로는 연신 끙끙 신음소리를 내
“이, 이동혁?!” 주다정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설마 요즘 내가 너무 잠자리에 탐닉하느라 피곤해서 환각을 보는 건가?’ 자시을 때려 죽인다 해도 동혁이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여기는 시장님의 관저이자 H시 권력의 중심지야. H시에서 가장 존귀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이동혁 같은 쓰레기가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어?’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나와서 자세히 보고는, 주다정은 다시 한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책상 뒤에 있는 남자는... 정말로 이동혁이 맞아!’주다정은 완전히 멍한 상태였다.요 며칠 동안 주다정은 전력을 다해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모두가 욕을 퍼붓자, 동혁은 H시에서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주다정의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동혁은 집 밖에도 못 나오고 쥐 죽은 듯이 지내거나, 몰래 H시에서 도망칠 계획을 세우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동혁이 당당하게 시장실 한가운데 서 있다니?’ ‘이게 말이 돼?’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주다정은 무의식적으로 동혁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화를 냈다. “야, 이동혁! 너 같은 쓰레기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넌 인간 말종인 쓰레기야! 이곳이 어디라고 너 따위가 감히 들어와?” 주다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장실 안은 이미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시장실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부시장 임창호와 방송국 국장 경병수. 그리고 그들을 안내한 시장실 직원들까지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마치 바보를 보는 것처럼 주다정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사람들의 눈길을 느끼자, 주다정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자신감이 없어졌다. 불안해진 주다정이 주변을 둘러보니, 시장실 안에는 동혁 외에 임창호 부시장과 시장실의 직원들이 있었다.‘시장님은?’주다정은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동혁이 이런 중요한 장소에 버젓이 나타난 데다가, 부
“시장님, 경병수 국장은 오랫동안 방송국에서 근무한 베테랑입니다. H시 내에서도 명망 있는 인물이고도 하고요. 만나보시겠습니까?” 임창호가 허리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송국 국장이?” 동혁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답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곧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남성이 임창호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시장님, 이쪽은 시 방송국의 경병수 국장입니다.” 임창호가 간단하게 소개했다.동혁을 본 경병수는 첫눈에 새 시장이 과연 바깥에 떠도는 소문 그대로라는 느낌이 들었다.‘정말 너무나 젊은데!’시장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인 경병수가 겸손하게 인사했다. “시장님, 그냥 ‘경 국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가볍게 대답한 동혁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임 부시장이 보고할 게 있다고 하던데 이번 우수직원 선발과 관련된 건가요?” “아, 네! 그렇습니다, 시장님!” 순간 당황했던 경병수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이번에 저희 시 방송국에서 선발된 우수직원은 주다정이라는 경제 뉴스 앵커입니다.” “어제 시장님께서 지시하신 뒤에, 저희도 내부적으로 철저한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동혁은 담담하게 물었다. “아 그래요? 조사 결과는 어떤가요?” 경병수가 몰래 동혁의 표정을 살폈지만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주다정이 앞서 시장이 단독으로 자신을 접견하기로 했다고 말한 걸 떠올리고, 시장이 주다정에게 악의가 있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주다정의 직속 상관인 자신이 주다정에게 좋은 얘기를 하라고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경병수가 얼른 입을 열었다.“네! 시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내부 조사 결과 주다정 기자는 진지한 태도로 업무를 책임지고 있고 업무 능력도 아주 뛰어납니다.” “게다가 도덕성과 인품 면에서도 방송국 내에서 아주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주다정 기자가 몇 년 간 연속해서 우수직원에 선정된 것은 바로 방송국 전체 직원들의 지지를 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