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시, 양씨 가문 저택.“정말이야? 진루안이 정말 한씨 저택에 쳐들어가 소란을 피운 것도 모자라 한영길의 손가락을 망가트리고 한준서의 다리를 부러트렸다고?”잠에서 갓 깨어난 양서빈은 세수하기 바쁘게 부하의 보고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는 한씨 가문이 어떤 집안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진루안이 그렇게 대담한 일을 저지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한씨 가문의 보복을 정말 두려워하지 않는 건가?’그는 분명 뭔가 있다는 생각에 아침밥을 먹을 겨를도 없이 아버지의 방으로 달려갔다.양씨 가문 저택은 한씨 가문 저택과는 완전히 다른 인테리어였다. 한씨 가문 저택은 유럽풍이라면 양씨 가문 저택은 한옥이었다. 그 한옥은 양씨 가문 본가인데 지금의 시가로 따지면 400억 이상을 호가한다.양서빈은 본인의 방에서 나오기 바쁘게 정원을 지나 다른 방으로 향했다. 그곳은 어르신들이 묶는 곳이다.“아버지, 한씨 가문 소식 들었어요?”양서빈은 안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문밖에 서서 기다렸다.“서빈아, 들어오너라!”그리고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진 뒤에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방 안의 장식은 매우 간단했지만 고풍스럽고 정교했으며 가치가 상당했다.그 안에는 60대의 노인 한 분이 서 있었는데 말끔한 흰 두루마리를 입은 채 식사를 마친 뒤 차를 끓이고 있었다.그가 바로 양씨 가문 가주 양태식이다.양서빈은 양씨 가문의 첫째인데 양태식이 늦게 결혼해 40살에 양서빈을 낳았기 때문에 둘은 나이 차이가 꽤 된다. 물론 노년에 득남한 건 아니지만 거의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양태식은 차를 끓인 뒤 양서빈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한씨 가문에 무슨 일이 있길래 이렇게 긴장했어?”그의 눈에 양서빈은 그를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는 양씨 가문 젊은 세대의 자랑거리이다.게다가 양원 그룹도 잘 키워 가고 있었던 아들이 이토록 긴장한 모습을 보이자 양태식은 더욱 의아했다.‘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긴장했지?’아버지의 물음에 양서빈은 쓸데없는
서경아는 얼굴에 눈물범벅이 된 채 여전히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그녀는 지금껏 할아버지가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이제 그녀에게 가족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그녀의 눈에 서씨 가문 다른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었기에 식구에 속하지도 않았다.그러던 그때.“네 약혼자는 어디 갔어?”서호성이 고개를 들더니 눈살을 찌푸린 채 서경아에게 물었다.“그러게 말이야, 설마 한씨 가문 사람들 손에…… 죽은 건 아니지?”조영화도 옆에서 입을 가리며 놀란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지만 그녀의 눈에는 비아냥과 조롱이 섞여 있었다.하지만 조영화의 그런 비아냥에 이미 적응한 서경아는 눈살을 찌푸리기만 할 뿐 전혀 개의치 않았다.그녀가 눈살을 찌푸린 것도 그저 진루안이 어디 있는지 걱정해서였다. 어제 분명 그녀에게 본인의 안부를 전했는데 지금까지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물론 그녀는 오늘 할아버지 장례식이라는 걸 진루안에게 알리지 않았다. 솔직히 시간이 너무 긴박한 원인도 있었다.전에 진루안은 그녀에게 할아버지를 서안산에 묻자고 한 적이 있었지만 그녀도 그저 그러기를 바랄 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아니나 다를까 오늘 할아버지를 묻는 곳은 예전에 묻기로 했던 교외의 땅이었다.한편 조영화는 서영아가 눈살을 찌푸린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본인의 생각이 맞는 줄 알고 가식적인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어떡해, 정말 세상일은 모른다더니. 너무 상심하지 마.”서성호의 얼굴에도 약간의 슬픈 기색이 맴돌았다. 물론 이렇게 된 이상 진루안이 서씨 가문 사위가 될 수는 없지만 그의 아버지를 묻을 이 땅은 진루안이 돈을 들여 산 거였으니 말이다.서씨 가문 사람들이 서경아를 계속 괴롭히지 않은 것도 진루안이 큰돈을 들였다는 사실을 관련 부서와 확인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때.“상심하지 말라니 무슨 소리죠?”익숙한 목소리가 그들 귀에 들려왔다.사람들은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더니 본가
“서안산에 가보자고? 만약 그렇게 했다가 매장 시기를 놓치면 어떡하려고?”서호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물론 마음이 동하긴 했지만 만약 그랬다가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동강시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할까 봐 걱정이었다.서호성이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검은 정장을 입은 열댓 명의 남자가 갑자기 서씨 가문 본가에 쳐들어오더니 두 줄로 나뉘어 섰다.서씨 가문 모든 사람이 어리둥절해할 때 흰 상복을 입은 마 영감이 밖에서 비통한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들어왔다.너무 갑작스러운 장면에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마 영감을 본 순간 그들은 모두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더더욱 믿기지 않은 건 마 영감이 흰 상복을 입고 있다는 거였다.“마 영감님, 여긴 어떻게…….”서호영은 예전에 마 영감과 만난 적이 몇 번 있었기에 의아함을 금치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 영감이 끼어들었다.“가주님, 저는 진 도련님의 명령을 받고 어르신의 관을 보호하기 위해 온 겁니다!”마영삼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으며 농담기가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게다가 마치 자기 가문의 어르신이 돌아가시기라도 한 듯 공손한 태도였다.‘내가 아는 그 마 영감이 지금 우리 아버지의 관을 보호해 주겠다고? 그런데 진 도련님은 대체 누구를 말하지?’“진 도련님이요? 저희는 마 영감님이 말씀하신 진 도련님을 모르는데요?”서호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듯 마영삼을 바라봤다.그뿐만 아니라 조영화 및 그 외의 친척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마영삼은 부연 설명을 보태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어르신의 관을 서안산으로 옮깁시다.”“정말 서안산으로 간다는 말입니까?”서호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마영삼은 그의 망설임을 눈치채고 속으로 혀를 찼다. 그는 서호성의 이런 우유부단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호성 같은 사람은 그가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부류이기도 했다. ‘
마 사장은 오늘 사무실에 앉아 있는 동안 내내 초조하고 불안했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뭔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그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가 다시 끄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담뱃갑 속에 있는 담배는 눈 깜짝할 새에 없어졌다.그때 그의 비서, 아주 예쁜 중년 여성이 사무실에 들어왔지만 곧바로 사무실 안의 담배 연기에 기침을 멈추지 못했다.“콜록콜록, 마…… 콜록, 사장님, 서씨 가문 사람들 모두가 서안산으로 갔습니다.”그 비서는 가슴이 깊게 파인 흰색 정장을 입고 있어 섹시하면서도 과하지 않았다.마 사장은 그녀의 말에 잔뜩 불안한 모습으로 일어났다.“저기…….”하지만 그가 말하기도 전에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전화벨이 울리는 바람에 마 사장은 이내 전화기를 들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마석호입니다!”마 사장의 본명은 마석호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 건너편에서 중후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네, 정도헌.”“정 대신님?”마석호는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이런 때에 건성의 언론 대신에게서 전화가 걸려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도헌 고작 언론 대신이라는 신분만 있는 게 아니라 건성 정사당의 대신이기도 하다.그런 신분과 배경의 인물의 심기를 마석호는 감히 건드릴 수 없었다.“마 사장, 자네 당장 서안산으로 가보게. 그쪽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정도헌의 목소리는 거절을 용납하지 않는 듯 차갑고 싸늘했다.마석호는 서안산이라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거절할 뻔했다. 그가 지금 가장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바로 서안산이다. 더욱이 본인의 원수인 서씨 가문 어르신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었다.하지만 정도헌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의 말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에서 신호음이 들려오는 걸 듣자 그는 순간 그는 가고 싶지 않다고 가지 않을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서안산으로 가게 차 대기시켜.”마석호는 고개를 들어 비서에게 명
진루안은 고개를 들어 갑자기 등장한 사람을 보는 순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일주일 넘게 코빼기도 비추지 않던 조윤이었기 때문이었다.조윤은 조영화의 친남동생이자 서화 그룹의 부대표이기도 하다. 전에 그는 온갖 수단을 써 서경아를 대표직에서 끌어내려 본인이 서화그룹을 차지한 뒤 그의 누나 조영화와 함께 서화 그룹을 해체할 계획을 세웠었다.하지만 진루안이 그의 계획을 망치고 대중 앞에서 그를 망신 준 데다 그의 발을 밟아 발가락을 부러트려 고통을 안겨줬었다.그 일이 있은 뒤 그는 한동안 사라졌었는데 마침 오늘 어르신의 장례식 날에 나타난 거다.아직도 절뚝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니 그의 발가락이 아직 완전히 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조영화는 동생을 보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요 며칠 동안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진루안이 서씨 가문 저택에서 지내기 시작한 뒤로 그녀는 뭘 하든 편안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동생이 돌아왔으니 그녀를 도와 아이디어도 생각하고 고민도 덜어줄 수 있게 되었다.“정 대신님, 죄송합니다. 진루안 이놈이 참 세상 물정 몰라서 무례를 범했네요. 너그러이 용서하세요.”조윤은 다급히 정도헌 앞에 다가가 아첨하는 얼굴로 진루안을 대신해 사과했다. 그리고 말을 마친 뒤 노발대발하며 진루안을 향해 소리쳤다.“멍하니 서서 뭐 해? 당장 가서 관 들지 않고?”“정 대신님, 정말 죄송합니다. 진루안은 그저 우리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입니다. 그냥 넘어가 주세요.”조윤은 계속 정도헌에게 사과를 하다가 아직 떠나지 않은 진루안을 보자 버럭 화를 냈다.“안 꺼져?”정도헌은 그 틈에 진루안을 힐끗 바라보며 눈으로 “이건 어디서 온 멍청이냐”는 듯 물었다.그의 눈빛에 진루안은 그저 어깨를 으쓱거리고 입을 삐죽거리며 “나도 모른다”는 뜻을 전했다.조윤은 그런 두 사람의 동작을 당연히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아마 눈앞에서 보더라도 진루안이 예의 없다고 언성을 높일 게 뻔했다.정도헌은 눈살을 찌푸린 채 조우를 무시
“기다리긴 누굴 기다려? 설마 돈 한 푼 없는 자네 친척이라도 불렀어?”조영화는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 진루안을 바라봤다. 게다가 진루안의 친척들이 올 걸 생각하니 소름이 돋고 구역질이 났다.“이건 어머님이 상관할 일이 아닐 텐데요?”진루안은 언짢은 표정으로 조영화를 바라봤다.조윤은 진루안이 자기 누나한테 그런 태도로 말하는 걸 보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버럭 소리질렀다.“씨발. 네가 감히 우리 누나한테 그따위로 말 해? 네 놈이…….” 짝!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루안이 그의 뺨을 때리는 바람에 그는 뒤로 멀리 날아갔다.“입에 걸레를 물었나? 제가 외삼촌한테 빚진 건 없는 거로 아는데. 다시 한번만 더 그딴 말 하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걸 후회하게 해드릴 수 있어요!”진루안의 눈에는 한기와 살기가 가득했다.‘같잖은 게 대우를 해줬더니 감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한다고? 체면을 봐서 참아줬더니 어디서! 맞고 싶어 환장했나?’조윤은 멍한 표정으로 본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조영화 역시 얼굴을 가렸다. 진루안이 본인의 뺨을 때릴 때가 갑자기 생각나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매번 그럴 때마다 진루안이 뿜어내는 살기가 너무 무서웠으니까.그 모습을 본 정도헌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그는 조윤을 비아냥거리듯 바라봤다.‘감히 궐주님을 욕하고도 살아남다니 궐주님 참 사람이 너그럽네.’갑자기 벌어진 일 때문에 서씨 가문의 그 누구도 감히 진루안을 뭐라 하지 못했다. 어찌 됐든 진루안의 성격이 나쁜 데다 걸핏하면 사람을 때리는 건 사실이었으니.그가 서씨 저택에 온 뒤로부터 먼저 조영화로부터 시작해 집사도 때리고 심지어 서경아의 고모 서지숙도 때렸었다. 그런데 이젠 조윤마저 그의 폭력을 피해 가지 못했으니 사람들은 아무 이유 없이 그를 건드려 고통을 자처할 리가 없다.“아버님, 제가 누구를 기다리려는지 보면 아실 겁니다.”진루안은 서호성에게 설명했다. 그는 그나마 장인어른인 서호성한테만은 존중을 유지하고 있다.서호성도 진루안이
서호성이 직접 마석호의 차 문을 열어주자 그는 몹시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의 불안도 모두 사라진 채로 서호성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서호성은 그의 갑작스러운 호의에 놀라기라도 한 듯 이내 손을 뻗어 마석호의 손을 잡았다.“호성 형님, 너무 상심해 마세요!”마석호는 빙그레 웃으며 말하고는 서호성의 손을 놓았다.“마 사장님이 오신 건 저희 가문 영광입니다.”서호성은 그런 마석호의 미움을 사기라도 할까 봐 황급히 대답했다.그는 아무리 가주라고는 하지만 마석호와는 레벨이 다른 사람이다.마석호는 동강시의 가장 큰 주인이나 다름없으니까.하지만 그런 그도 정도헌을 보자 쪼르르 달려가 아부를 떨었다.“아이구, 정 대신님도 오셨군요.”마석호는 열정적으로 손을 뻗어 정도헌과 악수하려고 했지만 정도헌 그저 차가운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전에 진루안이 마석호를 처리하겠다고까지 했는데 그 악수를 받아주면 오히려 진루안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니까.어떤 것이 중요한지 그는 매우 잘 알고 있다.마석호는 그의 행동에 멍해졌고 순간 불안이 마음속에서 다시 피어올랐다.‘내가 언제 정 대신님의 미움을 샀나? 왜 이러시지?’만약 정도헌이 그저 건성의 언론 대신이라면 그도 이렇게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하필이면 건성 정사당 사람 중 하나였으니 그가 절대 미움을 사서는 안 될 인물이다.“당신이 마석호야?”마석호가 멍하니 서 있을 때 옆에서 갑자기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진루안과 눈을 마주치고 멈칫했다.‘이 사람 기사에 났던 서씨 가문 데릴사위잖아? 그런데 감히 나한테 이런 태도로 말한다고?’마석호의 낯빛은 갑자기 어두워졌다.하지만 그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그 대신 나설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진루안, 자네 그게 무슨 태도인가? 어떻게 마 사장한테 그런 말투로 말하나?”서호성이 맨 먼저 달려와 화가 난 얼굴로 진루안에게 따져 물었다.“진짜 머리가 어떻게 돼 버린 거 아니야? 감히 그런 태도로 마 사장과 말한다고
진루안이 자기한테 무례한 태도로 말하는 바람에 화가 나 있던 마석호는 그가 서씨 가문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것을 보자 매우 흡족했다.이에 그는 호의에 찬 말투로 끼어들었다.“됐습니다. 젊은 사람이 철없어 그런 것이니 다들 그만 하세요. 이보게, 앞으로 윗사람을 만나면 예의를 갖춰. 알겠나?”마석호는 마치 대인배인 것처럼 진루안을 향해 미소 지으며 사람들을 말렸다.그러자 주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서씨 가문 사람들은 저마다 엄지를 쳐들며 그에게 아첨하기 시작했다.“역시 마 사장님은 배포도 남다르다니까.”“마 사장님이 어떤 분인데 이런 가난한 놈과 같게 굴겠습니까?”“오늘 마 사장님이 온 것만으로도 우리 서씨 가문의 영광입니다.”“마 사장님, 진루안 저 자식은 원래부터 사고를 잘 치고 다니는 놈이니 상대하지 마세요.”그들은 저마다 진루안에게 호통치며 그의 무례함과 방자함을 비난해 댔다.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서경아는 낯빛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녀는 친척들이 진루안을 모욕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진루안이 손을 저으며 그녀의 흥분을 가라앉혔다.“마 사장,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전에 어르신을 묻으려고 했던 교외의 부지는 분명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왜 갑자기 주택지로 변경하여 경매로 넘겼지? 설마 서씨 가문을 골탕 먹이려던 건가?”진루안은 여전히 싸늘한눈빛으로 마석호를 바라보며 그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그의 말투와 태도에 서씨 가문 사람들은 또다시 화가 나 그를 비방하며 욕설을 퍼부었다.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정도헌은 눈살을 찌푸렸다.‘이 사람들 감히 궐주님을 이렇게 업신여기고 모욕한다고? 당장 입 닥치게 해서 궐주님이 마석호 제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겠네.’“그 입 다물지 못할까! 이건 당신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좀 빠져 있어!”정도헌은 서씨 가문 사람들을 향해 노호하며 그들을 매섭게 쏘아보았다.그의 위엄은 마석호보다도 강했기에 진루안을 모욕하려던 서씨 가문 사람들은 곧바로 입을 다물고 찍소리도 내지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