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근수는 순간 몸이 차가운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등골이 오싹했다. 하지만 마영관 앞에서 질우안에게 뺨 세 대를 맞던 장면이 갑자기 떠오르자 화를 참지 못하고 계속 소리 질렀다.“보긴 뭘 봐! 내 말이 틀려? 그래도 동창이니까 미리 경고하는 거야. 아직도 사리분별하지 못하겠어?”진루안은 장근수가 본인을 욕하는 틈에 그의 앞에 다가갔다.장근수는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지만 진루안은 그에게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다리를 들어 장근수를 차버렸으니까. 그 힘은 여느 때보다도 강했기에 장근수는 공격 한 방에 5미터 밖으로 날아가더니 바닥에서 또 몇 미터를 더 미끌었다. 순간 그의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볼품없게 되었고 살이 바닥에 쓸려 상처가 났다. 더욱이 그 한방으로 장근수는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안명섭은 순간 식은땀이 흘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진루안은 그를 노려보고는 이내 무시한 채 다시 한준서 앞으로 다가갔다.그 시각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한준서는 왼팔을 부여잡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진루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의 눈에는 살의가 피어올랐고 일그러진 얼굴에는 원한이 가득했다.“진루안, 내가 너 꼭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라고! 나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지금껏 한 명도 없었어. 그런데 천것 주제에 감히 내 팔을 부러트려?”“닥쳐!”천것이네 뭐네 주제가 어떻네 하는 한준서의 말에 진루안은 순간 살의를 뿜어냈다.‘이겨서 내기대로 했는데 내가 작못했다고? 네가 한준서라서 한씨 가문 첫째 도련님이라서 내가 너한테 잘 보여야 하고 이겼어도 꼬리 내리고 떠나야 한다고? 네가 뭔데 내가 계속 참아야 해? 결혼식장에서 한 번으로 이미 족하잖아!’진루안의 기에 눌린 한준서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때문에 화가 났지만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진루안이 그를 바라보며 울부짖듯 소리쳤다.“사람은 누구나 평등해. 태어날 때부터. 네가 남들보다 잘났다는 생각은 버려. 한씨 가문 도련님이면 뭐? 그렇다고 내가
어둠이 깃든 밤, 한씨 가문 저택 정원.쾅!한성호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그는 깁스를 한 채 창백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있는 아들을 보자 진루안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깊어졌다.“건방진 것! 감히 천것 주제에 한씨 가문을 건드려? 숙부님, 들어오세요!”한성호는 노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정원을 향해 소리쳤다.그러자 곧바로 청록색 옷을 차려입은 노인 한 분이 정원에서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그는 비쩍 마른 데다 눈이 움푹 파여 뼈밖에 남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어 무척 무서웠다.그는 바로 한영길, 한씨 가문의 무인이며 무공에 능한 노인인 데다 한성호의 먼 친척이기도 하다.“가주님!”한영길은 안으로 들어서자 두 손을 맞잡은 채 허리를 살짝 굽히며 한성호에게 예를 표했다.한준서의 꼴을 보는 순간 그도 속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사실 그도 한준서와 진루안 사이의 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지금껏 그저 어린애들의 장난 수준으로만 생각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다.그런데 한준서가 팔이 부러진 걸 보자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장난 수준을 벗어났다는 걸 깨달았다.‘감히 한씨 가문 장자를 이렇게 대하다니 진루안 그놈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나?’그는 한성호가 본인을 불러들인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했다.“숙부님, 숙부님이 서씨 가문 저택으로 가 진루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세요! 만약 내일 아침까지 진루안 그 자식을 내놓지 않으면 저 한성호의 화를 감당해야 한다는 말도 전해주세요!”한성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순간 그의 손등에 울퉁불퉁한 힘줄이 튀어 올라왔다.한준서는 아버지의 분노한 모습에 다급히 소파에서 일어나 앉더니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한영길에게 부탁했다.“할아버지, 저 진루안 그 자식이 처참하게 죽는 꼴 꼭 보고 싶어요!”“걱정 말거라. 이 할아비가 반드시 복수해 줄 테니.”한영길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가 몸을 돌리는 순간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순간 가문 저택
서씨 가문 저택 정원 내부.서호성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책을 내려놓았다. 그는 오늘 한준서와 진루안이 내기 때문에 싸움을 벌였다는 소식을 이미 전해 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의 상상을 벗어났다.그는 진루안이 이동근을 이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동강시에서 가장 강한 권술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진루안이 그를 이길 수 있다는 건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설명한다.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진루안은 한준서를 건드려서는 안 되며 더욱이 그의 팔을 부러트려서는 안 됐었다.그런데 그렇게 했다는 건 반드시 한씨 가문의 원한을 살게 뻔했다. 때문에 그는 이 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그나마 다행인 건 조영화가 가문 저택에 없다는 거다. 그렇지 않았다간 그녀가 그의 귓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잔소리를 해댈 게 뻔했으니.그러던 그때.“서호성, 당신이 딸 얼마나 잘 키웠는지 봐봐!”정원에서 분노 섞인 고함소리가 들려왔다.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서호성는 조영화가 돌아왔다는 걸 알았고 얼굴에는 이내 씁쓸한 빛이 감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조영화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홀 안으로 들어왔다.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눈은 더없이 싸늘했다.“당신 딸 좀 봐봐. 어쩜 하루가 멀다고 한씨 가문을 건드리냐고. 이번엔 아예 그 호구마저 나서서 한씨 가문 도련님의 팔을 부러트렸다고. 대체 무슨 생각이래? 우리 집안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대? 내가 말해두는데, 당신 이 일 제대로 해결해. 안 그러면 나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한씨 가문 건드리는 게 우리 집안에 얼마나 손해인지 알기나 해?”조영화는 팔짱을 끼며 쉴 새 없이 푸념하며 노여움을 표출했다.그녀는 화투를 치러 밖에 나갔다가 진루안이 한준서의 팔을 부러트렸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황급히 돌아왔다. 그 때문에 이미 예약한 마시지도 받지 못해 화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당신도 그만해. 그렇게 소리친다고 문제가 해결돼?”서호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짜증 나기는 마찬
관장을 떠난 뒤 서경아는 진루아를 마영관에 내려주고는 서화 그룹으로 향했다.마영관에서 진루안은 마영삼에게 정도헌을 소개해 주었다. 진루안은 정도헌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마영삼에게 정도헌이란 인물은 무척 대단했다.“정 대신님, 차 드세요!”다실에는 도합 세 명이 있었는데 진루안과 정도헌 외에 마영삼도 함께 있었다.마영삼은 본인도 분명 대단한 인물이면서 정도헌에게 불만 없이 차를 타 줬다.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있어 상대방은 오히려 건드릴 수 있는 대단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진루안에 대한 두려움도 더욱 커졌다. 진루안은 전광림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성의 언론 대신, 정도헌도 알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들이 보통사람이라면 모를까 모두 높은 곳에 있어 평소에 만나기도 어려운 사람들이다.하지만 그런 정도헌마저 진루안 앞에서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마영삼은 그게 모두 진루안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감사합니다!”정도헌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영삼을 향해 미소 짓고는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진루안을 바라봤다.“진루안 씨, 동강시 언론 대신 건은 이미 마 사장한테 일러뒀어요. 아마 내일 중으로 언론대신의 직위가 박탈될 거예요.”정도헌은 지금껏 꼬박 하루 동안 동강시의 허위 보도 건을 처리했다. 진루안에 관련된 일은 그도 감히 소홀히 할 수 없었다.그 시각 옆에서 차를 따르던 마 영감은 두 사람의 대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동강시의 언론 대신이 두 사람의 말 때문에 파면당한다고? 이거 너무 무서운 거 아니야?’그는 허위 보도 때문에 진루안의 명예가 손상됐을뿐더러 서화 그룹이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일로 진루안이 동강시의 언론 대신을 처리하려 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는 건 사실이었다.‘정말 대단하고 무서운 사람이네.’순간 진루안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강해졌다.그 시각, 차를 들고 마시던 진루안은 정도헌의 말에 만
“루안 씨 한씨 가문에서 루안 씨를 찾지 못하게 얼른 동강시를 벗어나요.”서경아는 본인의 가문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은 채 진루안의 안위만 걱정했다.한씨 가문의 분노는 일반 가문에서 감당하기 버거웠지만 그녀는 본인의 가문을 위해 진루안을 내버리는 일은 할 수 없었다.서호성을 포함한 서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진루안을 내놓기를 원하고 있었지만 그녀만은 그걸 원하지 않았고 아무리 이 일의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할지라도 후회하지 않았다.서경아의 말에 진루안은 곧바로 한씨 가문 사람들의 꿍꿍이를 간파했다.“걱정 마요, 경아 씨.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오늘은 편히 쉬어요.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나 한씨 가문 저택 갈 거예요!”도망치는 건 진루안의 스타일이 아니다. 하물며 상대가 한씨 가문이라면 도망칠 이유조차 없었다.솔직히 한씨 가문에서 그를 찾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그들 가문 저택에 쳐들어가 그들과 한바탕 놀 생각이었다.안 그래도 한준서처럼 “훌륭한” 인재를 배양해 낸 한씨 가문이 대체 어떤 집안인지 궁금했는데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아니…….”뚜뚜뚜!서경아가 설득하기도 전에 진루안은 전화를 끊어버렸다.그 시각 혼자 별장에 있던 서경아는 답답한 마음에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버렸지만 한편으로 진루안이 걱정되었다.물론 그녀도 진루안의 신분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한영길 그 괴물은 신분으로 누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의 실력이 무서울 정도로 강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진루안이 기어코 한씨 가문 저택에 가겠다니 그녀로서는 방법이 없었다.하지만 그 시각 핸드폰을 내려놓은 진루안은 기지캐를 켜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정도헌과 마영삼도 얼른 뒤따라 일어났다.“도헌 씨, 오늘은 마 영감과 시간 보내. 내일 아침 마 사장과 약속 잡는 거 잊지 말고. 나는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어.”대충 몇 마디 분부하고 몸을 돌려 다방을 나가는 진루안의 모습에 정도헌과 마영삼은 서로 눈빛을
‘내일 아침까지 한씨 가문 저택에 와서 자수하라고? 안 그러면 서씨 가문에 손을 쓰겠다고?’한씨 가문의 그 협박은 진루안 눈에 너무나도 겁 없는 행위였다. 하지만 한씨 가문과 서씨 가문을 비교해 봤을 때 한씨 가문에서 그렇게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하지만 진루안이 가장 못마땅한 건 한씨 가문에서 서경아까지 끌어들였다는 거다.만약 이 타이밍에 한씨 가문에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그들이 서경아를 계속 괴롭힐 게 뻔하다.그런 한씨 가문의 모든 사람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방법은 그의 무서움을 톡톡히 알려주는 것이다.그에게는 한씨 가문을 괴롭힐 수단은 차고 넘쳤다. 그걸 한씨 가문이 감당할 수 있을지 문제지만.어둠이 드리운 밤, 한씨 가문 저택 문 앞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하지만 정원 안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고 문 앞에 있는 두 개의 돌사자가 무서운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역시 동강시의 최고 가문 답네.’하지만 이미 세상 물정을 거의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질우안에게 한씨 가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그 시각, 갑자기 나타난 진루안 때문에 한씨 가문 저택을 지키고 있던 부하가 어리둥절했다.‘이 사람은 여기서 대체 뭘 하는 거지? 왜 자꾸 안쪽을 들여다보지?’순간 모든 부하들은 경계 태세를 취하며 모두 밖으로 나와 진루안을 막아섰다.“당신 누구야? 이렇게 늦게 한씨 가문 저택엔 웬일이지?”맨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싸늘한 표정으로 진루안을 빤히 쳐다봤다. 그들은 진루안이 조금만 선 넘는 행동을 보이면 한꺼번에 달려들 기세였다.하지만 그들의 무서운 눈빛에서 진루안은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당신들 가주한테 전해. 진루안이 약속 지키러 왔다고.”“진루안? 당신이 그 서씨 가문 데릴사위 진루안이라고?”맨 앞에 있던 남자는 잠시 멍해 있더니 얼굴에 놀란 기색을 띠었다.그는 당연히 한씨 가문에 큰일이 벌어졌고 도련님이 누군가에게 맞고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련님을 그렇게 만든 당사자가 이렇게 자
진루안이 골동품을 구경하고 있을 때 한성호와 한준서는 옆 방 CCTV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다.“진루안 이놈 배짱 한번 두둑하네.”진루안의 모습에 한성호는 놀란 듯했다. 진루안의 배짱에 그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만약 다른 사람이 한씨 가문 저택 거실에서 반시간 동안 혼자 방치되어 있었다면 이미 정신이 무너졌을 텐데 진루안은 그러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한가하게 골동품이나 구경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감탄도 여기까지였다. 그가 아무리 배짱이 두둑하다고 해도 본인 아들 팔을 부러트린 그를 한성호는 용서할 수 없었다.“아버지, 저는 저 자식 죽는 꼴 꼭 보고 싶어요!”한준서의 눈에는 원망과 살기가 묻어 있었다. 그는 진루안이 미워이가 갈렸고 그가 처참하게 죽기를 그 누구보다 바라고 있었다.여러 번 자기를 모욕한 것도 모자라 그가 차지하려는 여자를 빼앗은 분노를 한준서는 쉽사리 삼킬 수 없었다.‘나 한씨 가문 도련님이야! 감히 천박한 천것 주제에 어디서 내 머리꼭대기에 기어오르려고 하고 있어?’한성호는 아들의 분노를 이해했다. 사실 그도 한준서 못지않았다.한준서의 팔이 부러졌다는 사실이 동강시 고위층들에게 알려지면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쪽팔려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된다.그런데 그게 모두 진루안 때문이다.“그래. 내가 꼭 그 자식 죽이마!”한성호는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진루안이 아무리 서씨 가문의 데릴사위라 할지라도 그의 눈에 그는 그저 아무 뒷배도 없는 천민이었기에 죽는다 한들 아무 영향도 없었다.“내가 가서 상대해보마!”한성호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도 재미 없을 테고 진루안의 정신력도 무너트릴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곧바로 거실로 나갔다.그리고 한준서는 싸늘한 미소를 지은 채 CCTV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그 시각 진루안은 사람 키만큼 높은 꽃병 하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꽃병은 양쪽에 손잡이가 있는 청화자였다. 만약 명조 시기의 진품이라고 하면 100억은 족히 넘을 거다.그러던
한성호의 분노는 점점 짙어졌다. 그는 진루안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는 순간 그가 한씨 가문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는 걸 알아챘다.이렇게 건방진 청년을 그는 처음 본다.“진루안, 다시 한번 묻지. 밖에서 한씨 가문에 대한 소문 못 들었나? 너 지금 있는 곳 한씨 가문 저택이야. 그런데도 감히 이런 일을 벌인다고?”진루안을 바라보는 한성호의 눈에는 살의가 번뜩였다.그는 전에도 물은 적 있는데 오늘 다시 묻는 거다. 진루안은 그의 물음에 경멸하는 듯 입을 삐죽거리며 웃었다.“안다면 어떻고 모른다면 어떤데? 내가 한씨 가문 저택에서 소란 피운다는 거 알고 있으면 어쩔 건데?”진루안이 강경한 어투로 응수하며 한성호의 질문에 받아쳤다.그가 여기로 온 건 당연히 소란을 피우기 위한 거다. 그렇지 않으면 꽃병과 찻주전자를 부술 일도 없을 테니까.그 말을 들은 한성호의 눈에 드리운 살기가 점점 커지더니 눈꺼풀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천민이 감히 한씨 가문 저택에 소란 피우러 왔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까.그건 한성호에게 너무나도 큰 모욕감을 줬다. 한씨 가문이 힘도 백도 없는 천민 따위한테 모욕당한다는 건 선조에게 부끄러운 일이었다.“집안 곳곳에 가짜 공동품들로 가득 차 있다니. 한씨 가문이 그래도 유서 깊은 집안인 줄 알았는데 순 허세였군.”진루안은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봤다. 거실에 놓인 골동품들은 십중팔구 모두 가짜로 되어 있어 그야말로 고상함을 가장한 겉치레였다.진루안이 이걸 감별할 줄 아는 건 당연히 그가 스승님 백 군신한테서 배운 기술 때문이다. 그의 스승님은 못 하는 게 없는 데다가 골동품을 감별하는 것도 그에게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뭐라고?”한성호는 이를 갈며 살기를 내뿜었다.그는 다른 사람이 본인을 허세 부린다고 말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 그건 그의 마음 속 치유할 수 없는 상처나 마찬가지다. 그도 한때는 그저 배운 것 없는 부잣집 도련님이라서 사람들의 무시당한 적 있다. 그때부터 그는 점차 본인의 학문을 닦아 상류층에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