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가을 옷의 소녀는 고성용의 이런 모습을 보고 더 크게 웃었다.“나를 보고 실망하지 않았어?”“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경성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젊은 인재였는데 너를 만나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내가 어떻게 세속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겠어?” 연신 고개를 젓는 고성용의 말투는 아주 침착하고 단호했다.그 말을 들은 가을 옷을 입은 여자의 얼굴에는 웃음이 더욱 찬란해졌지만, 웃음의 깊은 곳에는 씁쓸함이 숨어 있었다.“앉아서 이야기하자!”여자가 앞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킨 후 평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앉는 풍속은 R국의 특색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일찍이 용국의 고대 2천년 전에도 무릎을 꿇고 앉는 풍속이 있었다. 다만 후에 R국에서 다도를 통해 더욱 빛을 발한 것이다.고성용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티테이블 맞은편의 평상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우아한 다실에서, 차도 마시지 않은 채 서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이런 장면은 다른 사람이 보면 절대 정상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이렇게 잘 어울렸다.지금 누가 말을 하면 이런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았다.물론 이런 분위기와 분위기는 결국 깨져야 한다. 그리고 깨진 사람은 고성용이다.“내가 오늘 한 일을 다 알았어?” 고성용은 흰 가을 옷을 입은 여자를 바라보며 간절한 눈빛을 드러냈다.그는 마치 여자가 이 모든 것을 알기를 갈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여자가 이 모든 것을 알까 봐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난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심리적 저항 과정은 아주 괴로웠다.고성용의 질문을 들은 여자는 더욱 크게 웃으면서 대답했다.“물론, 네가 한성호를 계략에 빠뜨리는 여러 가지를 포함해서 나도 훤해!”헉 소리와 함께 놀란 고성용은 바로 튀어 올라서 아주 복잡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여자는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어떤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이미
“진루안 같은 사람은 냉혈한이야. 또 도처에서 자신을 정의의 화신으로 치켜 세우는 것에 대해서, 나는 반감을 가지고 있어!”고성용은 냉담하게 비웃으며 진루안에 대해서 바로 이렇게 평가했다.자신이 결코 진루안에게 졌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고의로 진루안을 겨냥한 마음이 있다. 실제 자신은 진루안의 행동과 태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정의와 공평을 위해 싸우는 걸 표방하기를 좋아하는데 이런 말은 모두 거짓이다.‘자신이 권력층의 일원으로 이미 고생과 가난하고 초라한 생활, 우매하고 가소로운 서민 계층에서 벗어났는데, 무엇때문에 또 스스로 타락하려는 거야? 그 사람들의 사활을 돌보겠다고?’고성용은 이 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루안은 완전히 자신의 신분과 지위, 그리고 수중의 권리를 낭비하고 있다고 느꼈다.“무슨 목적이 있으면 바로 말해.”“여자들은 모두 시시콜콜한 것을 좋아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한 고성용은 마음이 좀 시원찮으면서 경솔한 느낌이 들어서 바로 맞은편의 여자에게 물었다.고성용의 묻는 말을 듣고 또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고성용의 표정을 보고서, 좀 짜증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그래도 좋아. 고성용의 조급하면 내 목적도 좀 빨리 달성할 수 있어.’“너처럼 총명한 지혜로 짐작할 수 없겠어?” 여자는 고성용에게 직접 대답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반문했다.이 말을 들은 고성용은 먼저 멍해졌고,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자신이 여자가 자신을 만날 가능성을 결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다만 이런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 같았는데, 뜻밖에도 고성용 자신이 맞춘 것이다.‘이 여자가, 정말 이렇게 계획하다니!’“너는 진루안을 상대하고 싶은 거야? 차씨 가문의 복수를 하고 싶은 거야?” 고성용은 깊은 목소리로 물으며 맞은편 여자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그래, 나는 당신과 협력해서 진루안을 상대하고 차씨 가문의 복수를 하고 싶어!”여자의 눈동자는 매우 밝았지만, 의심할 여지가 없는 단호함과 또 살기가 배어
“너는 진루안을 어떻게 대처할 계획이야?” 고성용은 차은서를 보면서 아주 흥미진진하게 한마디 물어본 다음 찻잔을 들고 따뜻한 차를 음미했다.차은서의 얼굴에는 여전히 원망의 빛이 어려 있었고, 눈동자 깊은 곳에는 심지어 악랄한 냉소도 있었다. 이는 차은서의 이전 성격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원한이 생긴 후부터 차은서는 조금씩 자신을 변화시키고 있었고, 지금은 아주 뚜렷하게 변화했다.지금 고성용조차도 차은서의 표정을 본 후 몸서리치는 공포감을 느꼈다. 차은서를 모르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증오가 정말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망치는 것 같았다.‘진루안, 진루안, 너는 왜 그렇게 마음이 독해. 결국 너를 좋아하는 여자를 이렇게 매일 살아있는 원한 속에서 살게 만들고, 정말 네가 바란 것이 이런 거야?’고성용은 한숨을 내쉬면서, 청순하고 사랑스러웠던 차은서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다만 진루안이 지금의 차은서가 이미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만약 알았다면 그렇게 약간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꼈을지 몰랐다.“그를 상대하는 것은 사실 절대 어렵지 않아.”“너희들이 그를 상대하는 것은 사용하는 음모도 아주 악랄하지만, 구도가 너무 커서 진루안에게 아무런 영향도 없어.”“나한테 계책이 하나 있는데, 진루안의 애간장을 타게 만들 걸 보증하겠어!”차은서의 눈에서는 악랄한 음흉함이 반짝이면서 고성용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물론 고성용은 이 음모에 대해서도 더욱 흥미가 있어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빨리 말해 봐, 무슨 계책이야?”자신은 언제나 진루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예전에에 진루안에게 패해서 백무소의 제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그리고 그는 결코 자신이 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은 진루안에 떨어지지 않는다. 지모조차도 진루안에 뒤지지 않는다.유일하게 진루안에게 진 점은 백무소와 진루안의 특수한 관계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외에 자
‘만약 이렇게 해야만 진루안을 상대할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평생 진루안이 무사하기를 바라겠어.’‘모든 사람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만약 진루안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상대한다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조만간 상처를 받게 될 거야.’‘이것이 바로 남의 눈에 눈물이 나게 하면 내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는 이치인 거야.’“왜 안 돼? 왜?” 차은서의 표정이 좀 일그러졌다. 왜 고성용이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설마 내가 틀렸단 말이야?’‘아니야.’ 차은서는 자신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이 음모는 절대 진루안의 애간장을 태우게 만들고, 진루안이 사랑하는 여자를 잃어버려서 미치게 할 수 있어.’‘일단 그렇게 되면, 진루안을 제거하기는 너무나 쉽지.’‘이렇게 쉬운 음모와 계책을 왜 승낙하지 않는 거야?’“너는 진루안을 상대하고 싶다고 말하고 왜 대답하지 않는 거야? 내게 그 이유를 알려줘!”지금 차은서는 약간 일그러진 표정으로 원망하면서, 작은 주먹을 꼭 쥔 채 화를 내면서 초조했다.고성용은 차은서가 이러는 모습을 본 고성용은 바로 조금 전의 결정을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은서와의 동맹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이 차은서는 아마 줄곧 나를 얽어 매려고 계획했을 거야. 실제로 차은서가 정말 모든 것을 계산하고 자신이 이 올가미에 걸려들기만을 기다렸을 가능성이 높아.’‘내가 한성호를 함정에 빠뜨렸을 때부터 차은서는 그를 주시하고 계산하면서 한 걸음씩 구덩이에 끌어들였어.’‘그와 차은서와 동맹을 맺게 함으로써 이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차은서와 함께 미쳐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거야.’‘그러나 차은서는 아무 직위도 직업도 없어. 자기 마음대로 소란을 피울 수 있지만, 누구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어.’그러나 고성용은 자신은 그렇지 않다. 자신은 13번째의 재상으로, 미래의 전도는 한정할 수 없다. 진루안을 상대한다고 해서 미래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고성용과 차은서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 데도 마지노선이 필요해!”“네가 만약 정말 이렇게 진루안을 상대한다면, 반드시 후회할 거라고 단언할 수 있어. 진루안은 반드시 너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야!”“역린은 건드려서는 안 돼!”고성용은 험악한 표정으로 차은서를 노려보았다. ‘이 미친 여자는 이미 이전의 모습을 완전히 잃었어.’‘지난날의 차은서는 클래식한 여자처럼 청순하고 사랑스러웠지.’‘지금의 차은서는 미친 X이야. 심지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만두지 않겠다고 맹세할 정도로 독한 X이야.’‘도대체 차은서가 원한으로 인해서 인성이 크게 변한 거야, 아니면 원래 이런 여자였는데 원한이 이 여자의 뼛속의 악독함을 불러일으키게 된 거야.’“호호호, 정말 웃기네. 네가 상대하는 건 적이지 친구가 아니야!”“어쩐지 네가 진루안에게 졌던 게, 알고 보니 이런 하찮은 인정 때문이었어!”“네 생김새가 이 모든 것을 충분히 설명하는 것 같네. 미숙하게 생긴 데다가 하찮은 인정이나 베풀다니. 쯧쯧!”차은서의 눈에는 경멸과 조롱의 빛이 가득했다. 정말 고운 고성용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는 질투가 났다.고성용은 여자보다도 더 아름답게, 정말 아름답게 생겼다. 피부는 여자보다도 더 부드러웠다.만약 그가 남자라는 것을 알지 않았다면, 절대로 남장을 한 줄 알았을 것이다.“차은서!!”“너는 정말 다시 불장난을 하는 거야. 너는 알고 있어?”“네가 일찍이 진루안을 좋아했으니까, 진루안의 기질과 성격을 알고 있을 거야. 네가 만약 정말로 서경아를 상대한다면, 반드시 너를 죽일 거야!”“나 고성용은 앞으로 탄탄대로가 열려 있는데, 너와 함께 이런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어. 너는 또 왜 나를 핍박하는 거야?” 고성용은 몹시 일그러진 표정으로 차은서를 향해 분노의 말을 쏟아냈다.지금 그야말로 차은서에게 협박을 당하자, 자신을 놓아주기만 바라면서 차은서에게 애걸복걸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차은서는 이미 이 모든 것을 다 계산했다. 또 고성용이 자신의 복수를 돕도록 계획을
“너,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고성용은 격노한 표정으로 차은서를 노려보면서 멱살을 잡으려 했지만, 어지러워서 똑바로 서기도 어려웠다.차은서는 냉담하게 웃으며 고성용을 밀어 바닥에 넘어뜨렸다.고성용을 안고 함께 바닥에 누운 차은서는 처음에는 좀 망설이는 기색이었지만 곧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다.‘차씨 가문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야!’차은서는 이렇게 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너, 너 뭘 하려는 거야?” 고성용의 눈이 분노에서 경악으로 변했고, 긴장해서 떨리는 말투로 물었다.차은서는 하나씩 옷을 벗고 적나라한 모습으로 고성용을 대했다.차은서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음산하고 공포스러웠다. 이를 본 고성용은 가슴이 떨렸다. 이미 뭔가 깨닫고 안색이 바싹 하얗게 질렸다.“안 돼, 차은서, 너 이러면 안 돼!”“고성용, 네가 이렇게 한성호를 함정에 빠뜨렸으니 당연히 나도 내 몸으로 너를 다스리는 거야!”차은서의 얼굴에는 수줍음이 드러났다.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랬지만, 결국 여자이기에 당연히 부끄러운 것이다.다만 이 부끄러운 표정 아래에는 음험하고 교활한 의미가 더 많았다.그래서 고성용은 그 모습을 보자 혐오감이 일어났다. 여자에 대한 그런 부드러움과 동정은 전혀 없었다.“차씨 가문은 안정이 필요하지, 이렇게 의기소침하고 퇴폐적이어서는 안 돼.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진루안에게 복수하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어. 반드시 토대가 필요해.”“쯧쯧, 고성용 큰도련님, 너는 고씨 가문의 적장자이자, 미래의 13 번째 재상이지.”“내가 너와 함께 한다면 차씨 가문은 반드시 상승일로를 걷게 될 거야. 심지어 이전보다 더 발전할 수도 있어.”여자처럼 보이는 고성용의 부드럽고 작은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차은서의 마음속에서는 더욱 질투가 일어났다. 어느 순간 고성용의 얼굴을 망가뜨리고 싶었다.‘그러나 장기적인 계획을 위해서, 차씨 가문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고성용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로 간주해야 해.’“내가 벗겨 줄게!”
차은서는 냉소를 연발하며 고성용의 유일하게 걸치고 있던 속옷을 잡아당겼다.결국 고성용은 한 걸음씩 차은서의 함정에 걸려들었고, 차은서 앞에 모두 드러내게 되었다.“안 돼, 어!”“어머!”“차은서, 내가 반드시 죽이겠어... 아!”“응, 응...”간간이 혼란스러운 소리와 퇴폐적인 음악 소리가 이어지면서, 찻집 2층에 재미를 더했다.다만 당당한 고성용이 진루안에게 승복하지 않은 유일한 적수인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한 여자에 의해서 실신할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만약 진루안이 알게 된다면 믿을 수가 없어서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그러나 이는 사실이다. 방 안의 더러운 장면이 바로 가장 좋은 증거였다.30분 뒤 혼자 바닥에 누워 있는 고성용은 눈물을 흘리면서, 눈을 감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옷을 입은 차은서는 피 묻은 삼각팬티를 쓰레기통에 버렸다.“전 과정이 모두 녹화되었어. 설사 고성용 네 수완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 일을 해결할 수는 없어.”“그러니 순순히 내 말을 들어. 진루안을 죽이면 조만간 너의 자유를 돌려줄 거야!”차은서는 비웃음을 담은 차가운 눈빛으로 바닥에 누워 있는 고성용을 힐끗 쳐다보았다.고성용은 여태껏 여자를 미워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 여자에게 혐오감을 느꼈고, 평생 여자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이것은 그의 심신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 만약 진루안이 그의 적수라면, 차은서는 이미 그의 마음속의 치명적인 화근이다.그러나 이런 마음속의 화근인 이런 혐오스러운 여자에 대해서는, 전혀 반항할 수가 없었다.차은서는 고성용의 모든 것을 다 철저하게 계산했다. 한 걸음씩 정확하게 덫에 걸리도록 해서 반항할 자격조차 없게 만들었다.일단 고성용이 차은서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는 순식간에 명예를 잃는 신세가 될 것이다. 더 이상 진루안의 이름보다 못하지 않은 고성명은 더 이상 없게 될 것이다.“네가 13 번째 재상이 된 후에, 고씨 가문의 사람을 우리 차씨 가문에 보내서 혼담을 꺼내야 하는 걸 기억
줄곧 음모를 많이 꾸몄던 그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현재 상황을 해소할 좋은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설마 용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은 차은서가 나를 핍박해서 한 거라고 말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실제로 나는 피해자일 뿐인데 말이야?’여자가 남자를 밀어내는 것 자체가 일종의 굴욕이다.다만 이 굴욕은 고성용 그가 반드시 감당해야 한다.“진루안, 다 너 때문이야!”“네가 아니었으면 나도 귀국하지 않았을 거고, 당하지도 않았을 거야...”고성용은 억울했고 무력감을 느꼈다.대단한 명성을 가진 고성용이 지금 가지고 있어야 할 패기도 전혀 없이, 마치 연약한 여자처럼 두 다리를 껴안고 있었다. “고 선생님, 우리 아가씨가 진루안을 상대하려면, 반드시 서경아를 이용해야 한다고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만약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동영상이 아마도 온 인터넷에서 폭발할 겁니다!”바로 그때, 입구에 찻집의 사장인 한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다만 지금 찻집 주인의 얼굴에는 많은 조롱기를 띠고 있었다.그는 차씨 가문의 아가씨와 함정을 잘 파서, 고성용을 철저히 구덩이에 빠뜨리도록 만들었다.“꺼져!”“고 선생님, 당신은...”“꺼져, 꺼져!”팍!고성용은 찻주전자를 잡고 입구를 향해 던졌다. 팍 소리와 함께- 찻주전자가 깨지면서 뜨거운 차가 바닥에 쏟아졌다.다행히 찻집 주인이 먼저 뛰어나갔다. 그렇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찻물에 덴 채 바닥에 뒹굴었을 것이다.고성용의 안색은 아주 좋지 않았다. 일이 끝난 뒤, 또 차은서로부터 자신을 이용하려는 위협을 받았다. 이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큰 수치였다.“나와 진루안은 단지 업무상에서의 경쟁일 뿐, 생사를 걸고 서로 싸울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았어.”“하지만 차은서 네가 뭔데 감히 내 몸을 빼앗고, 나 고성용을 함정에 빠뜨렸어, 허허!”“네가 죽고 싶은 거지!”여태까지 여자를 미워한 적이 없었던 고성용의 눈에서, 강렬하고 험악한 살기가 드러났다.그러나 지금은 미움이 극에 달했다.차은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