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기 뜨거운 눈물을 만지고 나니 자기가 울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눈물을 닦고 뒤돌아 가려 했는데 바닥에 빨간색 액체가 보여 자세히 보니 피였다.연아의 눈빛이 달라졌고 다시 술에 취한 민지훈을 보고 그의 겉옷을 벗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어깨 쪽 상처가 터져 와이셔츠가 빨갛게 물든 거다.“민지훈 상처 터졌는데 아무 감각 없는 거니?”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듯한 민지훈은 자기 가슴 쪽에 손짓하며 안쓰럽게 웃음을 지었다. “여기가 더 아파.”그는 마치 상처받은 아이처럼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미친놈!” 연아는 어쩔 수 없는 듯 입술을 깨물었고 약상자를 들고 가위로 그의 어깨 쪽 셔츠만 찢었다. 그건 나중에 또 자기 몸을 봤다고 덮어씌울까 봐 걱정해서 그런 거다.방송 녹화인 이유로 방마다 간단하게 상처 치료할 수 있는 약상자를 준비했다.연아는 재빨리 그의 상처에 소독하고 다시 밴드를 묶었다. 전에 매화마을에서 해본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능숙하게 끝냈다.밴드를 묶은 뒤 전에 매화마을에서 자기를 구하기 위해 낸 상처를 보니까 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거 같았다. 사실 이 상처보다 더 신경 쓰이게 한건 등 뒤에 있는 상처였다.매화마을에 있을 때 그의 등 뒤에 있는 화상으로 인한 상처를 보게 되었는데 그때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그 상처가 어떻게 되었든 더는 자기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더는 물어볼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밴드까지 다시 묶어 준걸로 감지덕지하게 여겨야 된다고 생각했다.“오민이가 네 전화 안 받아. 밖에 다 카메라니까 오늘 저녁 소파에서 하룻밤 보내. 네가 많이 취했으니까 내가 봐주는 건데 내일 아침 술 깨면 당장 돌아가. 알았지?”연아의 말이 끝나고 다시 일어나려고 했는데 민지훈은 또 그녀를 안았다.“민지훈! 너! 술김에 뻔뻔스럽게 뭐 하는 짓이야? 얼른 놔!”“말랑말랑하고 좋은 냄새 나는 거 보니까 우리 와이프 맞네.”“미친놈!”이 사람이 술을 마셔서 이렇게 뻔뻔스럽게 변했는지 모
민지훈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입에 입맞춤을 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정말 술 취해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어?”연아는 잠이 들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술 몇백 박스? 네 남편을 너무 모른다.” 그는 몇만 박스 살 거라고 생각했다.연아는 면 소재의 잠옷을 입고 있었다. 민지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무 거치적거린다.”그리고 어깨에 상처가 있는 채 그녀의 옷을 다 벗겼다.연아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잠을 잤다. 지금 밖에서 천둥번개가 쳐도 아무것도 모른채 잘 텐데 이 정도로는 잠에서 깰 일이 없다.......다음날 아침 여름철의 햇빛이 커튼을 통해 방안으로 비쳤다. 연아의 하얀 얼굴에 비쳤다.그녀는 눈이 부신지 손을 들고 햇빛을 막으려고 했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몸을 돌려 햇빛을 피해 다시 자고 싶었지만 뭔가 익숙한 냄새를 맡게 되었다.연아는 갑자기 정신이 들어 일어났고 긴 머리 밑에 그녀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연아는 이불에 자기를 꽁꽁 싸 동시에 옆에 자고 있던 남자를 침대 밑으로 찼다.“민지훈! 나쁜 새끼야!”민지훈은 잠귀가 밝아 연아가 하루 저녁에 몇 번 몸을 돌렸는지도 다 알고 있었는데 방금처럼 일어나 이불 잡은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는 자기 꼬마 아가씨가 어떤 반응일지 궁금했을 뿐이다.일 년이 지나니 순한 토끼였던 연아가 어느새 날카로운 고양이로 변했고 힘도 세져 자기를 차기까지 했다.“자기야?” 그의 잠긴 목소리가 더 매력적이었다.하지만 연아는 너무 화가 나 미칠 지경이다.“뭐라고? 자기?” 그녀가 물었다.“나랑 한 침대에 잤는데 아니야?”“민지훈 나쁜 자식! ” 연아는 너무 화가 나 욕설을 퍼부었다. “내가 선심 써서 여기서 하룻밤 자게 했는데 어디 침대까지 올라와서 같이 자? 그리고 그리고......” 그녀는 생각이 짧았다. 어제 술 취한 민지훈을 보고 술김에 다음 날 아침까지 잘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된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리고 뭐?” 그는 그녀가 화난 모습을 지
“대표님, 저희 아침에 이벤트 하나 있거든요. 촬영팀이 카메라 들고 방에 들어가 촬영할 건데 지금 아마 대표님 차례예요.”이때 노크 소리가 다시 들렸다.“대표님, 준비하세요.” 그리고 PD님은 전화를 끊었다.문밖에는 촬영팀 목소리가 들렸다.“대표님, 저희 모닝콜 팀입니다. 일어나셨나요?”모닝콜이라고? 아침 깨워주는 서비스?연아가 봤을 때는 이건 놀랍게 해주는 서비스다. 지금 이 상황을 촬영팀이 본다면 어디 확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다.“민지훈, 이거 안 놔! 지금 촬영팀 왔다고!”“응. 알아.” 그는 마치 촬영팀의 노크 소리와 말소리를 못 들은 듯 자기를 놔줄 생각이 없는 거 같았다.“알면서 왜 아직 안 놓는데?”“우리 와이프가 너무 이뻐서 놓고 싶지 않아.” 그는 웃으며 말했다.피부 하얗고 연한 사람이 바로 자기 꼬마 아가씨라고 생각했다.말이 끝나자마자 민지훈은 그의 머리를 잡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이런 제기랄! 연아는 그의 입술을 깨물었고 한시 양보도 없이 세게 깨물어 바로 피가났다.민지훈이 아프다고 느낀 다음 그를 바로 밀어내 이불과 옷을 잡고 화장실로 뛰어갔다.“잠깐만!” 그녀는 바깥을 향해 말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바로 문을 닫았다.씻고 나와 보니 민지훈도 옷을 챙겨 입었다. 셔츠 어깨 쪽은 어제 연아가 가위로 찢었지만 겉옷을 입으니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아직 안 가고 여기서 뭐 해?” 연아가 화장실에서 나와 한 첫마디였다.민지훈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와이프랑 같이 촬영하려고.”뭐? 촬영? 제기랄, 누가 같이 촬영하겠데?“대표님, 다 됐나요?” 촬영팀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연아는 어쩔 줄 몰랐고 1m90cm 넘는 남자를 어디로 숨겨야 할지 몰랐다.민박집의 옷장은 다 간단하게 설치한 거라 사람 숨기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화장실에 숨기자니 혹시 화장실까지 들어갈까 봐 걱정돼 그렇게 되면 상황이 더 난감해질 거다.그러자 연아의 시선은 베란다의 유리문에 있었다. 민지훈 방이 자기 옆방이란 걸 깜빡했다.그러자
그녀는 민지훈이 싸다고 생각했다.자기가 뭐 멋있는 대표님이니까 키스하고 싶으면 하는 건가? 자기도 대표니까 깨물고 싶으면 물면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가 빨리 여기를 나가게끔 하기 위해 연아는 마음속 화를 가라앉히고 베란다의 유리문을 열어줬다. 그냥 꺼지라는 뜻이었다.그는 가겹게 옆방으로 넘어갔다. 전에 그녀를 위해 옷장에 들어가고 또 베란다를 넘는 거 보니 생전 하지 않았던 일을 다 한거 같다.민지훈은 웃으며 입술에 있는 상처를 만졌다.“헉......” 정말 아팠다. 순한 토끼였던 연아가 날카로운 고양이가 되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모든 사나움을 감췄을 뿐이다.생각해 보니 더는 웃을 수 없었다. 더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고슴도치처럼 자기 털을 세워 스스로를 보호했다. 그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때문에 세운 거라 이미 피투성이 되었다.그는 서러움을 감추지 않고 바람에 머리가 헝클어졌다. 마음속의 아픔은 여전했다. 그는 입을 열어 혼잣말을 했고 마치 다짐한 듯 단오했다.“넌 영원히 내 것이야.”......연아는 민지훈이 옆방 베란다로 넘어간 걸 보고 다시 문을 닫고 커튼을 막았다.그리고 재빨리 문을 열었다. 촬영팀은 대기 한지 꽤 됐다.“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습격입니다.” 그리고 촬영팀은 장난한 듯 그녀한테 하트 모양의 손짓을 보냈다.“좋은 아침입니다.” 연아는 촬영팀 사람들한테 고개를 끄덕이었다.촬영팀이 연아의 방에서 아무런 이슈거리도 못 찾을 때 드디어 쓰레기통에서 술병을 발견했다.“다들 아시다시피 대표님 남동생님이 조인주업의 대표님이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조인주업의 술병을 발견했네요. 어떤 술인지 같이 보고 우리 대표님이랑 같은 술을 즐기는지 확인해 보죠. 하지만 미성년자는 음주 금지입니다.”그리고 촬영팀 사람은 재빨리 술병을 들었다.연아는 그들이 이렇게 자세하게 볼지 생각 못 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민지훈보고 쓰레기통까지 같이 들고 넘어가라고 했을텐데. 깜빡했다. 자기가 먹은 술은 자기가 처리했어야지.“
촬영팀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대표님과 동생분이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 너무 부러워요.”그리고 그들은 하나둘 대표실을 나갔다.그들이 떠난 후, 조연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에 든 지갑을 소파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러자 지갑이 열렸고 안에 든 사진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눈썹을 찌푸리던 그녀가 지갑을 집어 들어 사진을 확인하니 그것은 자신이었다.이 사진은 그녀가 홀로 찍은 웨딩사진이었다.이 남자는 왜 그녀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걸까?무슨 의미인가?그녀의 사진이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그것을 회수할 권리가 있다.조연아는 지갑에서 자신의 사진을 꺼냈다.이 사진 뒷면에 자신이 뭐라고 썼던 기억이 났다.그녀가 끄적인 글귀 아래 자유분방하게 날아다니는 글자 한 줄이 추가로 적혀 있었다.한눈에 봐도 그가 쓴 글귀라는 것을 알 수 있다.-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꼭 이루어지길, 앞으로 우리 함께 웨딩사진을 찍어.조연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자신의 사진을 옆에 놔두고 펜과 종이를 가져와 거북이 한 마리 그려 다시 지갑에 넣었다.[거북이와 웨딩사진 찍어!]조금 짜증이 났던 조연아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민지훈에 문자를 보냈다: 발코니로 와.조연아는 창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갔다.문자를 받은 그도 발코니로 나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보고 싶었어?”그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음흉하게 웃었다.“헛소리하는 걸 보니 잠 덜 깬 모양이네?”민지훈은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에 일말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맞아. 와이프를 품에 안고 하룻밤을 보냈는데 어떻게 쉽게 깰 수 있겠어?”이 자식은 낯이 너무 두꺼웠다.조연아는 대꾸하지 않고 지갑을 건넸다.“당신 지갑.”그녀는 할말만 하고 즉시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창문을 잠가 이 남자가 다시는 창문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했다.그때 조연아의 휴대폰이 울렸다.그것은 제작진이 보내온 문자였다.[대표님, 오늘 아침 식사 후 간단한 게임이 있습니다!
관객은 일제히 외쳤다: “훈조!훈조!”조연아는 차분하게 마이크를 잡으며 말했다.“선택권은 나에게 있어요. 이 요망한 것들아! 그리고 멘토가 자진해서 제 파트너 자리에 자원 할 수 있다는 말은 없지 않았습니까?”그녀의 다정한 말투는 모든 멘티들을 동생처럼 대하는 느낌을 주었다.조연아은 멘토 석을 한번 훑었다. 이런 상황에 감히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민지훈의 눈빛 한번이면 적수들이 뒷걸음질 칠 정도였으니까.누가 미인을 마다할까? 하지만 저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누가 또 감히!소심한 멘토들을 바라보던 그녀는 괜히 그들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민지훈을 건너뛰고 옆에 서있는 하태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연기 게임이라면 제일 적합한 파트너인 것 같네요.”그녀의 매력적인 눈이 요염한 미소를 날렸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두근거렸다.하태윤이 곧바로 받아쳤다.“제가 마음에 든 모양이네요.”그의 말에는 다른 뜻이 있었다. 마치 조연아가 그에게 관심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무대 아래 멘티들은 더욱더 흥분했다.“민지훈 앞에서 저렇게 행동하다니. 하태윤 멋진데?”“하태윤 너무 멋져!”“둘 사이가 좋은가 봐요. 저도 어제 하태윤이 대표님을 데려다주는 것을 봤어요.”“어머, 훈조를 응원하고 있었는데 열기가 이렇게 빨리 식다니요.”“조연아가 민지훈을 선택하지 않았으니... 재혼은 민지훈만의 희망 사항이었나요?”댓글 창이 마비되었다.어제 갓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훈조커플이 오늘 이런 결론을 맞이할 줄이야.네티즌들은 너도나도 민지훈을 위로했다. 민지훈 맴찢....짧은 대본이 조연아와 하태윤에게 전달되었다.“너무 좋은데요?”하태윤은 카메라에 대본을 보여주었다.“여러분, 이렇게 짧은데 포옹 2번과 키스도 있어요. 대표님은 이렇게 예쁘신데 제가 계 탔네요.”하태윤은 너무 행복했다. 제작진에게 선물 박스를 돌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하지만 제작진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들도
그의 입꼬리는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고 눈은 살기로 가득했다.“지훈 씨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요!”멘토 강단이 옆에 앉은 다른 사람은 팔꿈치로 치며 말했다.“이 업계에서는 흔한... 포옹이잖아요. 이따 키스타임에는... 사람을 때릴 기센데요?”어깨를 으쓱이는 강단도 민지훈이 어떻게 나올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하태윤이 조연아에 진짜로 키스한다면 큰일이 벌어질 것은 분명했다.모든 이들의 시선이 조연아와 하태윤에 집중되었다.“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하태윤의 마지막 대사가 끝날 때 몇몇 연습생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다음은 모두가 기대하는 키스신이다.하태윤은 한발 한발 조영아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손을 잡고 키스하려는데 누군가에 의해 옷깃을 잡히더니 온몸이 들어 올려졌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전체 연습생들은 당황스러웠다.“저기!!”오민은 재빨리 그를 옆으로 이끌었다. 그러면서 말했다.“공항에도 질서란 것이 있으니 서둘러 비행기에 탑승하세요.”청중들 전체가 자지러졌다.오민이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러면 그를 제지한 것이 누구의 뜻인지 명백했다.조연아는 고개를 돌려 민지훈을 쏘아보았다.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도껏 해!”민지훈은 차분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자신은 아무 짓도 안 했다며 어깨를 으쓱였다.“지훈 씨... 보디가드 분이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하태윤은 민지훈을 바라보다 근육질 몸을 가진 오민을 보았다.그것은 보통 사람의 몸은 아니었다.마이크를 잡은 민지훈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이건 제작진이 일시적으로 추가한 거예요.”민지훈도 이렇게 말했는데 제작진은 감히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감독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맞아요. 이건 저희가 노린 웃음 포인트에요. 하하.”하태윤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투정 부렸다.“왜 항상 저만 당하는 거죠?”연습생들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댓글 창도 마찬가지였다.그때
“그건...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잖아? 만약 연아가 지아에 대해 폭로하지 않았다면 지아도 지금 이렇게 되지 않았잖아! 일심으로 바람 쐬러 간다고 했는데 연아가 기획한 프로그램도 거기에서 촬영 중이라 연아도 거기에 있을 거잖아?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의심스럽지 않아?”송진희는 너무 그럴듯하게 분석하고 있었다.“우리 지아는 연아의 상대가 아니야. 내가 보기엔 연아가 지아에게 함정을 파놓은 것이 분명해. 그렇게 해서 우리 민씨 가문에 복수하려는 거야...”사뭇 진지한 그녀의 말을 듣노라면 조연아는 의심받을 만해 보였다.하지만 민지훈은 기가 막혔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약 드셨어요?”“뭐?”갑자기 그녀를 관심하는 민지훈의 모습에 송진희는 기뻤다.“심장약을 말하는 거야?”심장이 약했던 그녀는 약을 복용하고 있던 중이었다.“정신질환에 관한 약이요.”민지훈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무음 상태로 전환했다.곧 오민이 뒤따라왔다.“대표님, 저도 여사님의 문자를 받았어요. 지아 아가씨가 실종되었다고 하던데요? 저희가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을 시켜 지아아가씨를 찾으라고 할까요?”“아니!”민지훈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경찰에 신고해.”“네.”오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즉시 움직였다.일심의 중심 파크에서 진행되고 있는 촬영은 막바지로 향해 가고 있었다.잠시 휴식한 후 오후에 후반 촬영이 개시될 예정이다.조연아는 방으로 돌아와 옆에 놓인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갑자기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영상 메시지 한 통이 그녀의 휴대폰에 도착해 있었다.어리둥절했던 그녀는 영상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영상이 재생되는 동시에 그녀는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그것은 바닥에 부딪히며 ‘쿵’하는 소리를 냈다.민지아의 고함소리가 영상에서 흘러나왔다.“안 돼... 하지 마... 누구야! 왜 이러는 거야! 돈이 필요하다면 다 줄게. 제발 풀어줘.”하지만 영상속의 남자는 동요 없이 바닥에 쓰러진 민지아를 사악한 눈빛으로
오민이 어떻게든 버티려는 추연을 억지로 병실에서 내보내고 다시 조용해진 병실.조연아를 꼭 안고 있던 민지훈이 한 마디 내뱉었다.“연기 좋았어.”단호한 말투에 조연아의 몸이 순간 움찔했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큭.”피식 웃던 민지훈이 하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상관없어. 연기가 맞든 아니든 난 협조할 테니까.”“...”말없이 민지훈의 품에 안긴 조연아의 눈동자가 살짝 가라앉았다.‘뭐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내 연기는 완벽했어. 그런데 왜... 들킨 걸까?’“나 피곤해.”대충 핑계를 대고 민지훈의 품에서 벗어난 조연아는 그를 등진 채 돌아누웠다.“재워줄까?”‘예전의 조연아라면 분명 그래 달라고 하겠지.’한편, 이미 들킨 거나 마찬가지지만 모르쇠를 대기로 했으니 조연아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어떻게 재워줄까?”이때 조연아의 곁으로 훅 다가온 민지훈의 숨결이 그대로 그녀의 귀를 적셨다.‘미친 변태자식.’여전히 눈을 굳게 감은 조연아의 볼이 슬그머니 달아올랐다.착잡한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건지 조연아의 볼에 뽀뽀를 하고 이불까지 잘 덮어준 민지훈은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눈을 감고 있고 돌아누워 등까지 진 상태였지만 그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어지러운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조연아는 방금 전 추연의 말과 반응들을 다시 떠올렸다.‘추신수... 그 자식이 날 물속으로 잡아당길 때 분명히 봤어. 목에 걸린 옥 목걸이를.’그 옥 목걸이는 조연아의 어머니와 추연 두 자매의 어머니, 즉 조연아의 외할머니가 두 딸을 위해 특별 제작한 유일무이한 팬던트였다.‘하지만 엄마가 하고 있던 팬던트는 6년 전에 이미 깨졌어. 유품 정리할 때 분명 확인했다고. 그럼 추신수 목에 걸린 건 이모 거란 소린데... 이모 팬던트가 왜 추신수한테 있는 거지?’한번 불씨를 튼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추신수
“너무 무리하지 마.”민지훈이 조연아를 끌어안았다.아무런 저항 없이 얌전히 안긴 모습, 모든 게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이때 밖에서 요란스러운 인기척이 들려왔다.“뭐? 연아가 기억상실증?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당장 들어가서 확인해야지.”“이모님,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나 연아 이모야. 무슨 자격으로 날 막아!”그렇게 막무가내로 문을 열고 들어온 추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리고 다급하게 그 뒤를 따르던 오민도 눈을 질끈 감았다.‘세상에 두분 지금... 서로 안은 거 맞지?’“이모.”이때 추연을 발견한 조연아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이모도 왜 병원복 차림이에요? 이모도 어디 아파요?”“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충격을 받은 추연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너... 진짜 아무것도 기억 안 나는 거야?”“네.”그리고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미는 추연이었다.“민 대표, 두 사람 이렇게 스킨십하는 거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봤어 봐. 우리 연아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지겠어? 두 사람 이미 이혼한 사이잖아.”“이혼이요?”조연아가 깜짝 놀란 얼굴로 민지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우리 언제 이혼한 거야?”“이혼”이라는 단어에 기분이 상한 민지훈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이모님, 이만 나가주시죠. 이모님도 다치셨는데 푹 쉬셔야죠.”오민 역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네, 의사선생님께서 이모님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셨으니까 얼른 가시죠.”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추연이 아니었다.“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기억상실증에... 걱정하지 마. 잃어버린 기억은 천천히 되찾으면 되니까. 아니, 영원히 찾지 못해도 상관없어. 그 동안 있었던 일 이모가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 줄 테니까. 네 옆에 서 있는 이 남자 때문에 네가 무슨 일을 당할 뻔했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왜 이혼하게 된 건지 전부.”하지만 조연아의 맑은 눈동자는 여전히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이모 말
“환자분,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십니까?”검사를 마친 의사가 물었다.말없이 고개를 저은 조연아는 또다시 공허한 눈빛으로 민지훈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대표님, 환자분 뒤통수에 생긴 상처는 아마 며칠 동안 통증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외상이고 뇌출혈 증상도 없으니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네.”의사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민지훈의 시선은 여전히 조연아를 향해 꽂혀있었다.“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민지훈을 향해 꾸벅 인사를 남긴 의사가 병실을 나서려던 그때, 조연아의 목소리가 조용한 병실의 정적을 깨트렸다.“저... 어떻게 다친 거죠?”그 질문을 들은 순간, 의사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환자분, 어떻게 다치셨는지 기억 안 나십니까?”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던 조연아는 민지훈을 돌아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여보, 나 어떻게 다친 거야?”“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여보?’확실히 어딘가 이상한 모습에 민지훈은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아, 남편이라는 호칭 불편해? 미안. 그러니까 그렇게 화난 표정 짓지 말아줘.”3년 전 그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조심스럽고 겁 많은 새 같은 모습. ‘뭐지?’혼란스러웠지만 민지훈은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아니. 남편 맞아. 화난 거 아니야.”그리고 다시 의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 민지훈이 꾸짖 듯 물었다.“별문제 없다면서요. 이게 무슨 상황이죠?”당황스러운 건 의사도 마찬가지였다.“그러게 말입니다. 뒤통수 가격으로 인해 출혈이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외상일 뿐입니다. 기억상실증까지 올 수준은 아닌데요... 물에 빠진 뒤 잠깐의 익수가 있었지만 구조가 빨랐기에 뇌손상도 거의 없었고요. 그런데도 기억을 잃은 거라면 트라우마로 인한 단발적인 기억상실증이 큽니다. 이 문제는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그럼 가장 실력 좋은 의사로 컨택해 주세요.”“네.”의사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빠르게 병실을 나서고 조용해진 병실, 조연아의 옆에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걱정스레 민지훈을 바라보던 오민은 뭔가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그래. 욕 먹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할 얘기는 해야 해.’“저기... 대표님. 지금 총알을 빼내지 않으면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연아 씨가 깨어나고 나서 대표님 이런 모습 보면 얼마나 속상해하겠어요. 아니, 어쩌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행여나 앞으로 팔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면 큰 결함을 가지게 되는 거잖아요. 다른 라이벌들 이길 수 있으시겠어요?”민지훈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건 조연아뿐이라는 걸 알고 있는 오민은 자극 요법을 사용했다.“대표님. 제발 연아 씨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세요!”그제서야 살짝 흔들리던 민지훈이 결국 일어섰다.“그래요. 치료하죠.”“네, 네.”잠시 후, 역시 수술실로 옮겨진 민지훈은 바로 총알 제거 수술을 받은 뒤 마취가 풀리기도 전에 바로 조연아가 있는 응급실로 달려갔다.그리고 조연아가 이런 저런 검사를 받고 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그녀와 함께 VIP 병동으로 입원까지 할 수 있었다.한편 이 모든 걸 지켜보는 오민은 걱정되는 마음에 그저 발만 동동 구를뿐이었다.누구보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민지훈이 사랑 때문에 이 정도로 충동적으로 움직이다니. 이게 사랑의 힘인가 싶었다.‘연아 씨,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연아 씨가 깨어나야 저희 대표님 좀 쉬실 거 같으니까...’...조용한 병실, 차가운 달빛이 커튼을 넘어 침대를 비춰주었다.민지훈은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조연아의 손을 꼭 잡았다.‘연아야... 제발... 제발 정신 좀 차려봐. 널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힘든 건 다 내가 감당할 테니까 넌 그냥 행복만 해줘.’...한편 조연아는 깊은 꿈속을 걷고 있었다.오로라를 기다리던 그날 밤, 그토록 그리워했던 남자가 나타나 그녀를 꼭 끌어안고 귓가에 다정한 사랑의 말을 건네는 꿈이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남자는 잔인한 얼굴로 그녀를 불바다 속으러 밀어버리고
가슴을 움켜쥐고 바다에 추락하는 걸 바라보는 조연아의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왔다.그리고 그런 조연아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고 있던 민지훈이 한 마디 내뱉었다.“겁 먹지 마.”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조연아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핏기도 느껴지지 않았다.민지훈의 요트가 빠르게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이제 정말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바다에 빠졌던 추신수가 불쑥 수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요트 난간을 부여잡은 추신수가 악에 받친 얼굴로 조연아의 다리를 잡아끌었다.“으악!!”비명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사방에 튕기고 그와 동시에 민지훈은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다.“대표님!”이에 오민 역시 짧은 고함과 함께 바다에 몸을 던졌다....두려울 정도로 조용한 바다...방금 전까지 시끌벅적하던 소음이 전부 사라지고 턱턱 막히는 숨이 이곳이 물속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아... 이렇게 죽는 건가...’의식이 아득하게 사라지고 천근만근 무거운 몸에선 더 이상 바닷물의 차가움마저 느껴지지 않았다.바로 그때, 탄탄한 팔이 그녀를 꽉 껴안고 빠르게 수면위로 올라갔다.하지만 민지훈과 조연아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탕탕탕 소리가 들려왔다.갑판 위에 남은 남자들이 해수면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한 것이다.조연아를 꽉 끌어안은 민지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총 따위 무섭지 않아. 난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연아만 무사하다면...’한편, 거센 기침과 함께 눈을 뜬 조연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바닷물에 엉망으로 젖었음에도 여전히 멋진 민지훈의 얼굴이었다.쿵.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과 함께 위급한 이 상황이 잊혀질만큼 마음속 한 구석에 묘하게 따뜻해졌다.“탕!”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이 민지훈의 팔을 관통하고 피가 뿜겨져나왔다.“민지...”바다 내음인지 피냄새인지 헷갈리는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지만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조연아의 의식은 다시 저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경호원들이 갑판
추신수의 말대로 저 멀리 수평선 뒤로 다가오는 요트들을 발견한 조연아는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마음이 다시 무겁게 가라앉고 말았다.‘또... 민지훈이라고? 또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되는 건가?’이때, 그녀의 머리채를 홱 잡은 추신수가 총구로 그녀의 머리를 겨누었다.“허튼 짓 할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아무리 구조 요트로 도망쳐 봤자 쾌속 요트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추신수는 조연아를 미끼로 쓰기로 결정했다.“민지훈. 이 여자 머리에 구멍나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멈춰.”추신수가 무전기를 사용해 소리쳤다.한편, 인질로 잡힌 조연아를 발견한 민지훈은 말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곧 모든 요트들이 멈춰서고... 방금 전까지 당황한 표정이던 추신수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소리쳤다.“하, 전 와이프한테 남은 미련이 그렇게 많아? 그 유명한 민지훈 대표가 이렇게 순정남일 줄 몰랐어. 우리 동생 어디가 그렇게 매력적이길래 잊지를 못하실까? 뭐 침대에서 끝내주나 보지? 하하하.”추신수의 음담패설에 오민이 확성기를 빼앗아들고 소리쳤다.“추신수 씨, 이쯤에서 그만 하십시오. 당신이 저희 대표님한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세요? 괜한 발버둥치지 말고 조연아 대표 풀어주세요. 목숨이라도 건지고 싶으면.”하지만 오민의 경고가 굉장한 농담이라도 되는 듯 추신수는 웃음을 터트렸다.“그만 해? 의미없는 발버둥? 하하하, 정말 의미없는 발버둥일까? 조연아가 내 손에 있는 한 민지훈은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어. 너희 잘난 대표님 얼굴 좀 봐. 날 찢어죽이고 싶은데 어쩌할 방도가 없는 저 모습을.”“원하는 게 뭐야?”민지훈이 물었다.“아, 역시 통쾌하셔.”추신수가 피식 웃었다.“요트 한 대만 가까이 붙여. 조종수 한 명만 남겨두고.”잠시 후, 그의 주변으로 다가오는 요트를 바라보며 추신수는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그만!”“너, 뛰어내려.”추신수가 배에 타고 있는 오민을 향해 말했다.조연아가 인질로 잡힌 상황인데다 어차피
정신을 잃기 일보 직전인 추연의 모습에 조연아가 소리쳤다.“이모, 이모. 정신 좀 차려봐요. 이모.”겨우 눈을 뜬 추연아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털썩.남자들의 손길대로 움직이다 그대로 갑판 위에 쓰러진 추연을 바라보는 조연아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지만 그녀 역시 꿈쩍도 할 수 없는 터라 그저 애타게 소리칠 뿐이었다.“이모! 이모!”그녀의 목소리가 추연에게 닿아 정신을 지키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이모랑 사이가 이렇게 좋았어?”한편, 흥미롭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추신수가 피식 웃었다.“너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연이 이모는 너한테도 이모잖아.”“동생아, 내가 그걸 모를까 봐? 내가 가족, 핏줄 그런 데 얽매이는 사람처럼 보여? 그럴 거면 애초에 납치도 하지 않았어. 너희 두 사람 오늘 절대 살아서 여기서 못 벗어날 거니까 쓸데없는 기대 따위 하지 마.”추신수가 음침한 미소에 순간 소름이 돋는 조연아였다.“너... 진짜 미쳤구나? 왜? 나랑 이모 다 죽이고 스타엔터 네가 차지하려고?”“그래. 네 말이 맞아.”그 와중에 여유롭게 총구를 닦던 추신수가 말을 이어갔다.“솔직히 널 죽인다고 해서 내가 스타엔터를 차지할 거란 보장은 없지. 하지만 확실한 건... 네가 살아있는 한 그 회사가 내 몫이 될 수는 없다는 거야. 그리고 어차피 사람들도 내가 널 죽였다곤 상상도 못할걸. 여기서 물고기밥이 되어서 시체도 못 찾을 텐데. 안 그래?”“너... 신수야, 너 어떻게 그런 짓을.”바닥에 쓰러져있던 추연이 소리쳤다.“아무리 미워도 우린 피를 나눈 가족이야. 어떻게 가족한테 이런 짓을 해... 넌 죄책감 같은 것도 없어?”“죄책감?”한발 앞으로 다가간 추연이 일그러진 얼굴로 물었다.“죄책감 그게 밥 먹여줘? 돈만 가질 수 있으면 난 뭐든 할 수 있어.”말을 마친 추신수는 추연의 배를 거칠게 걷어찼다.“이모!”“왜 그런 눈으로 봐?”추신수가 증오로 번뜩이는 눈빛의 조연아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배 위야. 동해일 가능성이 크고.”망망대해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순 없었지만 임천시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동해라 그렇게 추측한 것이었다.“신수가... 신수가 벌인 짓이야. 네 얼굴 직접 보고 사과하려고 했는데 거기서 추신수 그 자식을 만났어. 그리곤 바로 쓰러졌고.”피 묻은 추연의 옷을 바라보던 조연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이모, 자세한 설명은 안전해지면 그때 해주세요. 지금은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해요.”‘추신수 그 미친 자식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몰라. 구조정... 이 정도 규모의 배라면 구조 보트 같은 건 있을 거야. 그걸 타고 여기서 벗어나야 해.’하지만 추연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연아야. 난 신경쓰지 말고 너 먼저 가... 이모는 도저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괜히 따라나서봤자 너한테 짐만 될 거야.”“이모...”“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얼른 가. 이러다간 우리 둘 다 꼼짝 못하고 여기서 죽는 거야.”어느새 추연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려왔다.“아니요.”하지만 조연아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저 이모 버리고 못 가요.”“어차피 신수 타깃은 내가 아니라 너야. 당장 나한테 무슨 짓을 하진 못할 텐까 너라도 일단... 일단 도망쳐. 그리고 사람들이랑 다시 와서... 날 구해줘.”출혈이 너무 심해서인지 어느새 힘이 빠진 추연은 자꾸만 의식이 흐릿해져만 갔다.“그러니까 어서 가.”그리고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추연은 조연아의 손을 뿌리쳤다.“얼른 가. 얼른!”“그럼... 저 올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해요. 알겠죠?”조연아가 입술을 깨어물었다.추연 말대로 지금은 쓸데없는 고집이나 부릴 때가 아니었다.어떻게든 누구라도 도망쳐 사람들을 불러오는 것, 그게 두 사람 모두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마음을 독하게 먹고 갑판으로 나선 조연아는 한쪽에서 구조 요트를 발견했다.‘저기 있다.’그런 그녀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차가운 총구가 그녀의 뒤통수를 겨누었다.“하, 내가 정말
꽤 규칙적인 흔들림 속에서 조연아는 부스스 눈을 떴다.머리는 지끈거리고 사지에 힘은 풀린 와중에 피 냄새까지 풍겨왔다.칠흑같은 어둠속 나무판 사이 틈으로 흘러드는 빛 한줄기 덕에 조연아는 본인이 어디 있는지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여긴 배...잖아?’조연아는 정신을 잃기 전 상황을 다시 돌이켜보았다.‘이모가 쓰러져있는 걸 발견하고 나서 나도 공격받았어. 아, 이모... 이모는 어디 계시지?’조연아가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잡동사니로 가득 들어찬 방에는 그녀 한 사람뿐이었다.그렇게 한참을 더 주위를 둘러보던 조연아는 구석에서 날카로운 철편 하나를 발견했다.어두운 이 공간에서 밧줄을 자를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도구.힘겹게 꿈틀거리며 조금씩 이동하던 그때, 바깥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헉, 뭐지?’당황한 조연아는 바로 그 자리에 누운 채 아지 깨어나지 않은 척 눈을 질끈 감았다.역시나 다음 순간, 문이 열리고...조연아가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는 걸 확인한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 여자 상당히 발칙한 X이라니까 조심해. 그리고 이 여자 이모는 옆방에 있으니까 종종 들여다보고. 어촌에서 잡아온 여자들이랑 노닥거리지 말고.”“참나. 형님, 저도 사내입니다. 저딴 여자 두 명 상대 못할까 봐요. 걱정하지 마십시오.”그럼에도 “형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당부를 이어갔다.“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 스타엔터 조연아 대표라고. 보통 여자가 아니야.”“대표면 뭐요. 결국 힘없고 약한 여자 아닙니까. 게다가... 얼굴에 몸매도 반반한 것이... 한 번 건드려보고 싶은데요?”“어허. 너만 그러고 싶은 줄 알아? 나도 사실은... 엘리트 여자랑 해보는 건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거든.”역겨운 주제에 배멀미까지 더해져 순간 밀려오는 구역질을 조연아는 억지로 참아냈다.잠시 후, 남자들이 방을 나서자 다시 번쩍 눈을 뜬 조연아는 꿈틀거리며 철조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으윽...”겨우 철조각에 손이 닿아 손발을 묶은 밧줄을 풀어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