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이 눈에 띄게 조바심을 내는 것을 보고 점장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네네!”곧 몇 명의 점원은 조심스럽게 ‘그린드림’을 포장한 후 공손한 얼굴로 하현에게 건넸다. 거기에 좀 예쁘게 생긴 사람이 있었는데, 계속해서 하현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무의식적으로 하현의 손을 한 번 건드렸다. 그러나 하현은 그녀를 반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몇 분 후 하현은 보석상자를 들고 방금 왔던 곳으로 돌아왔다. 이 때 구본영, 박수진 두 사람이 안수정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하지만 안수정은 원래 그 두 사람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대구 구씨 가면의 체면을 생각해서 참을성을 가지고 그들과 대화를 나눈 것이다. 이 때 하현이 다가와 손에 든 선물 상자를 안수정에게 건네며 웃으며 말했다. “내일 떠나잖아요. 이건 제 작은 성의예요. 다음에도 계속 서울에 방문해주세요.”안수정은 속으로 기뻤다. 하현이 이때 특별히 선물을 사러 갔다는 것은 그의 마음에 여전히 자신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홍조를 띠며 말했다.“감사합니다.”그러더니 선물 상자를 열어보려 했다. 하현이 선물해 준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지금 보지 마세요.”하현이 웃으며 말했다.“비싼 건 아니지만 기념으로 드릴 테니 제주로 돌아가서 보세요.”필경 이 물건의 값은 만만치 않았다. 혹시라도 안수정이 받지 않으려 한다면 번거로울 것이다. 안수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세요. 나는 다른 사람한테 선물을 받지 않지만, 받았다는 건 그만큼 내가 마음에 들어 한다는 뜻이에요.” 바로 이때 박수진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안수정. 우리도 보게 한 번 열어봐. 네 하얀 얼굴이 무슨 선물을 줬는지 나도 보고 싶다. 너무 재미있다.” 박수진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했다.선물을 샀는데 제주로 돌아가서 보라고?선물이 너무 값어치가 없어서 비웃음 당할까 봐 그런가?안수
이 작고 하얀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안수정도 100억에는 이런 목걸이를 살 수 없을 것이다!이건 확실히 도둑질을 한 거야!어쩐지 하얀 얼굴이 꼭 집에 가서 열어보라고 강조를 하더라니, 들킬까 봐 두려워서 그런 거구나! 구본영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안수정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안 보이니? 안수정. 너 지금 마음이 정말 어렵겠다. 뜻밖에도 도둑을 찾아내다니?”“근데 네가 찾아낸 이 도둑놈은 손이 아주 민첩하네! 몇 분만에 100억의 물건을 가져오다니! 대단해!”안수정은 얼굴이 차가워 지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구본영. 내가 경고하나 할게. 음식은 아무거나 먹을 수 있지만 아무렇게나 막말을 하면 안돼.”“막말? 내가 막말을 했다고?”구본영이 깔깔거리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난 후 박수를 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여기 좀 보세요. 여기 훔친 물건이 있어요! 100억짜리 물건을 훔쳤어요. 이거 영화에서 연기하는 것보다 멋지네요! 모두 저 사람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세요!”와르르잠시 후, 주위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현을 에워싸고 수군거렸다. 특히 하현 곁에 시크한 여신이 있는 것을 보고 질투심이 발동해 참지 못하고 욕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돈이 없으면 연애를 하지 말든가! 여자한테 선물을 한다고 도둑질을 하다니?”“점잖게 생겨 가지고 인간 쓰레기네.”“대낮에 도둑질을 해? 이놈 배짱이 너무 센 거 아니야?”“이 미인도 눈이 멀었군. 이런 사람을 좋아하다니!”“……”사방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자 하현은 구본영을 차갑게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구씨, 당신이 가난해서 살 수 없다고 다른 사람도 다 당신처럼 감당할 수 없다는 건가?”“가난해? 내가 가난하다고?”구본영은 웃으며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주위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이 도둑놈이 나한테 가난하다고 하네요. 여러분 시비를 가려주세요!”구본영은 오늘 비록 캐주얼하게 입었지만 오른 손목에 금
주위에서 왈가왈부하는 소리가 들리자 안수정도 눈썹을 찡그렸다. 이런 보통 사람들과 골동품 시계의 가치를 이야기 해 봤자 말이 안 통한다. 골동품을 하지 않고서는 이런 물건의 가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안수정이 구본영을 보며 말했다.“구본영. 너는 대구 구씨 집안 사람이야. 설마 하현이 차고 있는 이 시계가 진짜 인지 모르겠어? 그는 몇 백억의 시계도 마음대로 손에 넣을 수 있어. 너는 가서 이 사람이 100억짜리 목걸이를 훔쳤다고 생각해? 여기서 괜히 트집 잡지 말아 줄래?”“몇 백억?”구본영이 비웃으며 말했다.“만약 그 시계가 전설의 시계라면 몇 백억 정도 하겠지. 하지만 이건 가짜니 몇 만원이면 나쁘지 않지!”“안수정. 너희 안씨 집안은 골동품 장사를 시작한 집안이잖아. 이 도둑놈을 감싸지 마. 안씨 집안의 명예를 실추 시켰으니 안씨 대가님도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너……”안수정은 이 때 참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데도 말이 안 통할 수가 있나?이 때 주위의 여론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구경꾼들도 점점 많아졌다. 몇몇 상점 직원들도 건너와 핸드폰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했다. 100억짜리 목걸이를 훔쳤으니 이건 정말 큰일이군!이 때 군중 속에서 한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그 사람은 도둑일 리가 없어요!”입을 연 사람은 서연이었다. 그녀는 오늘 길을 지나가다가 하현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를 보자 하현도 어리둥절해졌다. 오늘 서연은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더욱 드러내주었다. 게다가 그녀는 원래 첫사랑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로 더욱 청순했다. “와!”서연이 나타나자마자 남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구본영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보았는지 참지 못하고 침을 삼키며 슬며시 흘겨보았다. 뭐지?그가 서울에 여행하러 오지 않았으면 평생 이
박수진은 자신의 외모에 조금 자신이 있긴 했지만 서연을 질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오늘 만난 두 여인의 시크하고 청순한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풍기는 아우라에서도 이미 그녀는 졌다. 박수진은 기분이 더 언짢아 그 순간 비웃으며 말했다. “너 그가 결백하다고 말했니? 그가 결백하다고? 이 목걸이 가격은 100억이야.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너를 팔아도 이렇게 큰 돈은 못 벌어!”“이 하얀 얼굴 행색을 좀 봐라. 어디 100억이란 재산이 있겠니? 이런 사람이 훔치지 않고서 이런 물건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어? 백일몽으로?”서연은 여름에 피는 연꽃처럼 살짝 웃었다. “나는 그가 물건을 훔치지 않았을 거라 믿어요. 제가 보증인이 될게요!”이 말을 듣자 박수진이 ‘피식’하더니 일부러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보증인? 네가 누군데? 네가 착한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대낮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누구를 꼬시려고 했는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보증인이 되겠다고?” 이 말이 나오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수군거렸다. 박수진은 서연이 분명 인격이 전혀 없는 그런 업종에서 일을 할 거라고 암시를 했다. 서연은 화를 내지 않았고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는 손서연이라고 합니다. 서울종합병원 부원장이에요.”뭐?이렇게 젊은 사람이 서울종합병원의 부원장이라고?이 말이 떨어지자 거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서울종합병원은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으로 이야기에 따르면 그곳의 의사는 의술이 좋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둘 도 없는 품성을 가졌다고 한다. 거기 응급실에 손선생님이라는 분이 있는데 환자를 돕기 위해 여러 차례 자신의 월급을 가지고 의약비를 대신 지불했었다. 설마 눈앞에 있는 분이 그분은 아니겠지?만약 그렇다면 그분의 인품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다. 이 때, 사람들 중에 한 노인이 돋보기를 들고 자세히 한 번 둘러본 뒤 큰 소리로 말했다.“손선생. 정말 당신
“선생님!”잠시 후 점장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선물 상자를 새로 정리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선생님 방금 너무 빨리 가셔서 아직 영수증을 못 드렸습니다.”“거기다 높은 금액을 소비하셔서 본부 쪽에서 최고 등급 회원으로 처리해드린다고 전화가 왔는데 괜찮으시면 전화번호 남겨드릴까요? 그렇게 하시면 이후에 어떤 전시회가 열리고, 어떤 신상품이 나오는지 저희 쪽 담당자가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뭐?영수증?최고 등급 회원으로 처리를 해줘?전시회 초대까지?그러니까…… 이 목걸이, 정말 눈앞에 있는 이 놈이 산 거야?그 순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졌고 너무 놀라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100억! 엄청난 부자?박수진은 지금 바로 멍해져서는 얼굴이 새파랗게,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럴 리가!이거 딱 봐도 하얀 얼굴 놈인데, 어떻게 이걸 살 수 있지?이건 100억짜리 목걸이지! 100만 원짜리가 아니라고!이 때 박수진은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 달려와 영수증을 한 번 보았지만 이내 그녀는 멍해졌다. 영수증에 적힌 가격은 아주 확실했다. 하현이 산 것이었다. 거기다 점장의 비할 데 없는 공손한 태도를 보면 이것이 가짜 일리가 없다. 이 때 사방에 있던 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망신을 당한 느낌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은 구본영과 박수진을 한 번씩 쳐다보더니 ‘쳇’하고 비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이 두 녀석은 어디가 잘못된 건가?다른 사람이 산 목걸이를 도둑 맞았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다니게?이 두 사람이 바보가 아니라면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온 사람들 같다. 거기다 저 남자는 데이토나 그린 옐로우골드로 겨루려고 하다니? 결국 사람들 앞에서 개뿔도 아니었다. 핸드폰 번호를 그대로 남겨두고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행사가 있거나 신상품이 나오면 문자를 주세요. 다른 일 없으면 전화는 하지 마세
하현은 무의식적으로 안수정을 힐끗 쳐다보았다.안수정이 멍청하지 않다면 자연히 이 눈 앞에 있는 손서연 역시 하현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더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오늘 저에게 이렇게 비싼 선물을 해주셨는데 오늘 저녁은 아무거나 먹을게요.”이 말을 듣자, 서연은 의아해 하며 안수정을 한 번 힐끗 쳐다보더니 좀 놀란 눈빛이었다. 하현이 이렇게 비싼 선물을 설은아에게 주었다면 그녀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근데 딱 봐도 시크한 이 언니는 또 뭐지?바로 이 때 서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의 교수님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자 맞은편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서연아, 너랑 네 선배는 왜 아직도 안 오니? 둘이 몰래 데이트 하는 건 아니지?”서연과 강천 두 사람의 지도 교수 역시 의학 강좌에 참석했다.하지만 분명 지금 그 두 학생을 찾지 못하자 전화를 걸어 농담을 던진 것이다. 서연은 겉모습과 속내가 잘 어울리는 강천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교수님. 농담하지 마세요. 방금 우연히 친구 두 명을 만났을 뿐이에요. 저랑 강천 선배는 곧 도착할거에요. 맞다. 제 두 친구도 같이 데리고 가도 될까요?“괜찮아. 이 의학강좌는 친구들이 모이는 것뿐이라, 네 친구들을 데리고 오고 싶으면 나는 아주 환영이야. 얼른 와라.”맞은편에서 교수님은 신이 난 목소리였다. 분명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서연은 기분 좋게 전화를 끊고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안수정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고 나서 그녀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하현씨 죄송해요. 우리 할아버지께서 조금 급한 일이 생기셔서 지금 바로 제주로 돌아가야 되요. 식사는 다음에 하죠.”“배웅해 드릴까요?” 하현은 조금 미안했다. “아뇨. 할아버지가 벌써 백화점 입구에 도착하셨대요. 저 혼자 가면 돼요. 마침 손서연씨 의학강좌가 있다고 하니 거기에
만약 하현이 이곳에 있었다면 지금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사람이 하선미였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강남에서 비바람을 부르는 것으로 알려진 하선미는 비할 데 없이 세련된 화장을 했지만 얼굴은 창백했고,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 앞에 10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기껏해야 스물다섯 살로 보이는 준수한 얼굴의 청년이 한복을 입고 바둑을 두고 있었다. 흑과 백을 동시에 장악해 바둑판 위에서 피를 흘리게 했다. 광활한 대청마루에서 대국을 시작하는 소리만이 간간이 울렸다. 하선미는 떨고 있었지만 감히 작은 소리도 내지 못했다. 30분 후 ‘퍽’하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 한 조각이 떨어지자 옥으로 된 바둑판은 이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마치 옥 접시에 큰 구슬과 작은 구슬이 떨어진 것처럼 딩딩동동 소리가 났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하선미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지만 숨을 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소리가 전부 사라지고 나서야 하선미는 이마를 땅에 대고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부하들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벌을 내려 주세요!”침대 위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나 손을 뻗어 자신의 왼손을 보면서 잠시 후에야 작은 소리로 말했다.“네가 그 사람을 만났구나?”“만났습니다!”하선미가 대답했다.“어땠어?”“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하선미는 한 참을 숙고한 끝에 천천히 말을 꺼냈다.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여기 강남에서도 몇 명 안 되는데……”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그럼 나랑 비교해서는 어때?”하선미는 순간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해졌다. 그녀는 잠시 몸을 떨고 나서야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개미와 진짜 용을 어떻게 비교 할 수 있겠습니까?”“따귀를 때려라.”남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선미는 감히 한 마디도 못하고 자신의 손을 들어 ‘짝짝짝’하며 바로 뺨을 몇 번 크게 때렸고 금세 얼굴이 부어 올랐다. 그
하민석은 여전히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지만 지금은 눈을 가늘게 뜨고 홀 입구를 바라보았다. 흰 치마를 입고 꾸미지 않은 채 그림 속에 있는 것 같은 여자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만약 안수정이 시크하다고 한다면, 그녀는 뭔가 속세와는 동떨어진 우아하고 고상한 모습으로 그녀를 한 번 쳐다보기만 해도 그녀의 기운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떨리던 하선미는 이제 더 떨렸다. 하수진. 하씨 가문의 5번째, 대문호 중 유일한 여성이다. 그녀는 하씨 가문의 혈통이 아니고 더욱 무섭고 오래된 가문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이 일의 진위여부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수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 순간 하민석을 쳐다보며 말했다.“그 사람의 두려움은 우리가 몇 년 전에야 알았어.”“그 한 사람의 빛이 우리를 십 수년 동안이나 짓눌렀지. 3년 전만해도 여러 가지로 계획을 세울 수 없었고, 거기다 위에 있는 누군가가 그를 쓰러뜨리려고 했어. 지금도 하씨 가문은 여전히 너와 나의 자리가 없는 것을 두려워해.” “그런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데 둘째 오빠가 사소한 일에 얽매여 있으면 쉽지 않게 시작한 경영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 같아.” 하민석은 여전히 자신의 왼손바닥을 보며 위쪽의 금이 간 곳을 자세히 눈 여겨 보다가 한참 후에야 손바닥을 내려 놓고 웃을 듯 말 듯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다섯째 여동생이 직접 끝낼 준비를 하고 있는 거야? 만약 그렇다면 형을 위한 큰 연극을 볼 수 있겠네.”“군자는 주방을 멀리한다는 이런 이치를 둘째 오빠가 모를 리가 없겠지?” 하수진은 담담하게 말했다.“둘째 오빠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이런 작은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아쉽겠지만 서울은 청담동이 아니야. 비록 가담한지 3년 밖에 안돼서 손이 그렇게 길지는 못했지만, 다섯째 여동생은 항상 원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잖아. 기꺼이 손을 내민다면 반드시 내 오랜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을 거야.”하민석은 웃으며 말했다.“서울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