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마영아가 물러가 일을 처리하려고 했을 때 용 씨 가문 별채의 집사가 숨을 헐떡이며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용천오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왜 그래?”“하현이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용천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왜? 왜 날 만나자는 거야?”“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떠보려고?”“아니면 뭐 우스갯소리라도 할 생각인가?”집사는 망설이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물건을 사러 왔고 도련님과 화해를 하고 싶다며 도련님을 만나길 원합니다.”용천오는 원래 하현을 상대할 마음이 없었지만 물건을 사고 화해를 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다.잠시 후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들어오라고 해.”하현이 평화 회담을 원한다면 그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계속 싸우다 보면 양쪽이 다 다칠 수 있다.곧이어 두 손을 뒷짐진 채 하현이 별채 안 다이닝에 모습을 드러내었다.아직 아침식사 중이던 용천오를 보고 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용천오, 너무 여유로운데. 이런 상황에서도 아침밥을 먹을 수 있다니 말이야. 당신의 담력과 정신력은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해! 인정! 인정!”“오죽하면 와신상담을 몇 년 동안 하면서 결국 용 씨 가문 중심에 우뚝 섰을까, 안 그래?”“내가 당신 처지였다면 당신처럼 그렇게 냉철하지 못했을 거야.”혼잣말을 하듯 말을 늘어놓는 하현을 보고 용천오는 치즈 한 조각을 뚝 잘라 삼키며 말했다.“하현, 당신과 난 그럴 얘기를 주고받을 만큼 좋은 사이는 아니잖아? 할 말이 있으면 얼른 하고 물러가!”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용천오, 따지고 보면 우리 사이에는 그리 원한이 쌓일 일이 없었어.”“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은 내 아내를 때렸을 뿐만 아니라 내기에 졌으면서 승복하지도 않고 조한철과 브라흐마 아부 등과 야합해서 나쁜 짓을 꾸몄어...”“그래서 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꼼수를 부릴 수밖에 없었어.”“결국 일이 지금
위협하는 용천오의 말에 하현은 가타부타 대답은 없이 담담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용천오, 당신이나 나나 둘 다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야.”“똑똑한 사람들끼리 빙빙 돌려 말할 필요가 뭐 있어.”“이런 잔꾀로 날 망칠 수 있었다면 무성에서의 당신 능력으로 진작에 난 망했을 거야.”“그런데도 당신은 아직도 날 협박하는 거야?”“당신이 지금까지도 날 어떻게 하지 못한 것을 보면 알잖아? 지금 당신의 그런 협박이 나한테 먹힌다고 생각해?”마영아는 하현의 오만함과 불손함에 격노하며 테이블을 탁 쳤다.“하현! 당신 분수를 좀 알고나 말해!”“협박이 먹히겠냐고?”“그 사람들은 모두 당신 사람들이야. 그들이 진술을 번복하면 당신이 자작극을 벌인 거라는 걸 세상이 다 알게 될 거야!”“그러면 당신은 끝장이야! 알기나 해?!”“지금 당신을 떠받드는 그 사람들, 아마 그때쯤이면 당신을 죽이고 싶어 안달일 거야!”“나무가 쓰러지면 원숭이들은 다 흩어지고 만다는 걸 몰라?!”“쫙쫙쫙!”하현이 손뼉을 치며 만면에 미소를 내걸었다.“용천오, 당신 주변 사람들 말주변 한번 좋군!”“단지 머리가 좀 나쁠 뿐이야.”하현은 관자놀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진실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모른다는 게 문제지.”“그 학생들이 믿겠어?”“그 가족들이 당신 말을 믿겠어?”“그들은 무성 상맹, 용천오가 날 제압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 모함했다고 생각할 뿐이야.”“그렇게 되면 당신들은 더 골치가 아프게 돼!”하현이 머리가 나쁘다고 하자 마영아는 몹시 언짢은 듯 날카롭게 핏대를 세우며 맞섰다.“하 씨! 머리가 나쁜 사람은 바로 당신이야!”“여론의 힘은 쇠도 녹인다는 말 몰라?”“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거짓 행동에 대해 증언하는데 어떻게 믿지 않을 수가 있겠어?”“그때 우리가 기자회견을 하면 당신은 그냥 매장이야!”마영아는 여기서 한 수만 더 쓰면 하현은 반드시 이 사회에서 매장당할 거라고 굳건히 믿고
하현은 보이차 한 잔을 따라 마셨다.용천오는 확실히 멋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한 근에 수천만 원이나 하는 차를 마시다니.“바깥에서는 다들 하현 당신을 두고 여자 치마폭에 둘러싸여 그 힘으로 권력을 잡았다고 하던데.”“실제로 보니 당신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군.”용천오는 손에 든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하현을 바라보며 치켜세웠다.“당신은 능력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천하를 다스리는 능력이 있어.”“당신이 이번 일을 벌이기 전에 내가 당신을 어쩔 수 없다는 걸 이미 계산했겠지, 안 그래?”“바깥에서는 형님의 기세를 등에 업고 나를 압박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하지만 당신은 나 같은 사람을 꿰뚫어 본 거지. 당신의 수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어!”하현에게 당한 것이 처음이 아니지만 이번 일은 하현의 기가 막힌 수완에 용천오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용천오는 쓸데없는 반격을 깔끔하게 접은 것이다.쓸데없이 반격했다가는 자신의 처지가 더 수렁으로 빠질 수도 있고 외부에서 아무 자극이 없다고 하더라도 까딱 잘못하다간 스스로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게까지 치켜세워주니 고마운데. 뭐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어야지.”“용천오 당신이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나도 더 이상 다른 수단을 쓸 필요가 없어진 거지, 안 그래?”용천오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힐끔 바라본 뒤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이제 말해 봐. 화해를 하러 왔다고 했잖아? 물건을 사러 왔다고? 어떻게 할 건지 말해 보시지?”“간단해. 용천오 당신이 한 가지 조건만 들어준다면 우린 지금부터 서로 웃으면서 지난날을 얘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아침에 곰곰이 생각해 봤지. 당신의 무성 신시가지에는 아직 팔리지 않은 부동산이 몇천 채나 있지?”“한 채에 십억이
”개자식!”용천오는 화가 나서 테이블을 탁 쳤다.“하현, 당신 꿈도 꾸지 마!”“무성 신시가지는 썩어 문드러져도 나 용천오가 가져갈 거야. 내가 가난해서 굶을지언정 당신한테는 안 팔아!”“자, 그럼 무성 신시가지 건은 관둘게!”“무성 상맹에서 운영하는 무학당 체인점이 몇 개더라....”하현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다른 우회로를 제안했다.“어쨌든 당신들 무학당은 지금 매일 사람들이 찾아와 물건을 때려 부수는 통에 장사도 할 수 없잖아. 평판도 나빠져서 거의 폐업 상태나 마찬가지고.”“내가 천억에 인수할 테니 차라리 나한테 넘겨. 교관과 직원, 심지어 청소부까지 다 내가 그대로 떠안을게, 어때?”“이봐, 이거 내가 당신 많이 생각해 줘서 가격을 쳐 준 거야. 당신은 이 기회에 골치 아픈 무학당을 처분하고 현금을 손에 쥐는 거라고!”“역시 난 좋은 친구야, 안 그래?”“꺼져! 당장!”용천오의 낯빛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내 무학당이 이렇게 된 건 모두 당신의 그 파렴치한 수법 때문인데 이제 와서 뭐? 인수하겠다고?”마영아 일행은 하현의 말을 듣고 감정이 격앙되어 죽일 듯이 하현을 쏘아보았다.하현 이놈은 정말 악랄하기 그지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감히 이런 말로 용천오를 면전에서 업신여기다니!“이 무학당을 창고로 쓸지언정 절대 팔지 않을 거야!”“꿈도 꾸지 마!”용천오는 당장이라도 하현의 얼굴을 때려눕히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하지만 그는 감히 하현을 건드릴 수 없어 끓어오르는 화를 억눌렀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용천오를 느긋하게 바라보았다.“이 두 가지 물건을 팔지 않겠다니 그럼 시내에 있는 백화점은 어때? 그건 팔 의향 있어?”“어쨌든 이런 큰일을 당했고 무성 상맹도 반쯤 폐업 상태인데 앞으로 몇 년 동안 백화점도 장사가 안 될 텐데 말이야.”“만약 이 부동산들을 나한테 잘 넘긴다면 내가 섭섭지 않게 쳐 줄게.”“내가 당신을 친구로 생각해서 흥정 같은 건 하지 않을게. 게
하현은 웃으며 일어섰지만 바로 떠나지 않고 용천오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 그의 오른쪽 뺨을 툭툭 건드리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용천오, 천리 밖에서 온 귀인을 이렇게 거절할 필요있어?”“지금 이 상황에서 당신 혼자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해?”“물건도 팔지 않고 돈을 빌려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아?”“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당신한테 돈을 빌려줄까?”“조한철? 김준걸?”“눈앞의 이런 어려운 상황도 함께 견딜 만큼 그들이 당신과 가깝다고 생각해?”“순진한 생각 하지 마...”“조만간 부동산을 팔아야 할 거야. 누구한테 파느냐가 문제지.”“나한테 직접 파는 게 꺼려진다면 중개업자를 불러서 얘기해도 돼.”“결국 내 손에 넘어오게 될 테니까.”“게다가 당신이 이렇게 시간만 끌면 가격만 점점 더 낮아져. 하루에 10% 정도?”“그러니까 누가 먼저 굴복하나 보자고! 누가 더 오래 버티나 두고 보지 뭐!”“내 생각엔 결국 당신이 얼마 못 버틸 것 같긴 하지만.”말을 마치며 하현은 테이블 위에 놓인 반찬을 손으로 슬쩍 집어서 오물오물 씹으며 돌아섰다.하현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용천오의 도도한 눈꺼풀이 자꾸 떨렸다.만약 자신이 여기서 정말 무너진다면 그건 여러 가지 일이 어쩌다가 겹쳐져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하현 저놈이 파놓은 구덩이에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6년 만에 무성의 중심인물로 부상했고 무성 상업 질서를 재창조했다는 명성을 들었던 용천오가 지금 이런 꼴이 되다니 억울하고 분하기 그지없었다.그는 잠시 이를 악물고 험악한 얼굴로 하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마영아, 플랜 B를 실행해. 하현 저놈이 강한지 내가 강한지 두고 보자구!”...바깥으로 나온 하현은 태연하게 용 씨 가문 별채를 떠났다.국술당으로 돌아온 하현은 몇 명 학생들에게 지도를 한 후 업무용 차로 들어가 잠깐 휴식을 취했다.현장의 질서를 담당하던 진주희도 지금 현장을
30분 후, 무성 상맹의 주가는 원래 가격에서 10%이상 하락했다.주가가 약간 올랐을 때 큰 자금이 시장에 유입되었다.이 자금은 바로 무성 상맹을 향해 돌진했고 팔자마자 바로 공매도로 들어갔다.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공매도를 던졌다.그러자 시장의 개미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 넋이 나갔다.모두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식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거의 같은 시간에 모든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팔아버렸다.전후 불과 십여 분 사이에 무성 상맹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6만 원에서 4만 원까지 떨어졌다.오천억의 시가총액에서 순식간에 3분의 1이 증발한 것이다.무성 상맹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무성 사람들을 제외한 외지 투자자들은 어리둥절했다.그러나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일단 손실을 막는 것이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개인투자자들은 더욱 매도에 집중했고 무성 상맹의 주가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한 시간 후, 무성 상맹은 처참하게 무너졌다.이를 악물고 버티던 용천오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개인 금고를 모두 내놓았고 무성 상맹 장부의 모든 유동 자금을 빼내 주식시장에 퍼부었다.이렇게 방어를 한 결과 무성 상맹의 주식은 그나마 20% 정도 끌어올렸다.다만 이러는 사이 용천오의 손에 있던 유동 자금은 완전히 고갈되었다.그가 조한철과 김준걸에게 전화를 걸고 있을 때 이슬기가 지휘하는 대성그룹 자금도 때맞춰 시장에 들어왔다.이슬기는 우윤식보다 더 악랄하고 치밀하게 움직였다.그녀는 오전 최저점을 뚫고 주가를 원래의 40%까지 끌어내렸다.원래 6만 원이던 주가가 오전을 지나면서 2만원이 되었다.돈을 빌리려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리던 용천오는 이를 보고 피를 토할 뻔했다.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가 돈을 빌릴 수 있겠는가?조한철과 김준걸이 아무리 바보라고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오전장이 끝나고 잠시 한숨 돌릴 시간을 갖
오후 1시, 다시 주식시장이 열렸다.하현은 용 씨 가문 별채 대문을 떠나다가 주식 거래창을 열고 무성 상맹의 주식을 던져버렸다.하현의 행동은 사람을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완전히 송두리째 사람을 멸망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였다.이 모습을 보고 용천오에게 불만을 품은 용 씨 가문 사람들도 함께 뛰어들었다.다들 무성 상맹에서 탈출하려 하고 있으니 이럴 때 따라가지 않으면 나중에 혼자만 손해를 보게 되는 거 아닌가?주식시장에서 피 튀기는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무성 황금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설은아의 핸드폰이 다급하게 울렸다.전화를 받으려고 핸드폰에 눈길을 돌리던 설은아는 화면에 뜬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한숨을 크게 내쉬며 설은아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엄마, 내가 말했잖아! 주식 투자하지 말라고. 주식에 함부로 투자하지 말랬잖아!”“”왜 내 말 안 들어?”“모든 재산을 다 무성 상맹에 퍼부었을 뿐만 아니라 뭐? 융자까지 받았다고?”“예전의 3분의 1 가격도 안 되지만 앞으로 계속 주가가 더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래?”“그때가 되면 본전도 못 찾고 은행에 빚만 지게 될 거야!”“알았어. 지금 엄마한테 돈 보낼 테니까 손실만 메워지면 바로 주식 팔아야 해!”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으려던 설은아는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아냐, 엄마. 주소 좀 줘. 내가 지금 갈게. 내가 직접 주식 처리할게!”“걱정하지 마. 내가 최대한 물 타기를 해서 손해를 줄여 볼 테니까!”“어, 알았어. 기다려. 곧 갈게.”전화를 끊은 뒤 설은아는 벌떡 일어서서 하현이 자신의 곁에 배치해 준 경호원 몇 명을 동원해 얼른 사무실을 떠났다.최희정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설은아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직접 자신이 주식을 처리하지 않으면 최희정이 더 깊이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고 결국 막심한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설은아의 마이바흐 차령이 시내 고가도로에 진입한 지
”청혼이요?”마영아는 어리둥절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희정을 바라보았다.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마영아는 최희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가 정신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부인, 용천오가 당연히 따님에게 청혼을 하겠죠. 그런데 오늘, 지금은 아니에요.”“오늘 설은아 사장님을 오시라고 한 건 작은 부탁이 있어서예요.”“부탁?”최희정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당신의 그 잘난 사위 하현과 용천오가 요즘 좀 사이가 그래요.”“그래서 용천오가 좀 불쾌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따님에게 부탁 좀 드리고 싶어요. 하현한테 잘 말해서 우리 용천오 사장님과 좀 사이좋게 지내라고 한마디 해 줬으면 좋겠어요.”“계속 이렇게 가는 건 누구한테도 도움이 안 되거든요!”마영아는 설은아가 아무리 뭐라고 하현에게 말한들 하현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할 거라는 걸 잘 안다.그럼에도 마영아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설은아를 이용해 하현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위함이었다.오후 주식 시장이 끝나기 전에 이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영영 때를 놓치고 만다.“하현 그놈이 감히 용천오를 건드렸어? 사이가 나쁘다고?”최희정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커졌다.“우리 은아가 편히 사는 꼴을 못 보겠다는 거지? 그놈은?”“걱정하지 마. 이따가 은아가 오면 내가 그놈을 단단히 혼내라고 이를 테니까!”“하 씨 그놈은 내 딸 말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놈이니까. 내 딸이 한마디 하면 바로 알아들을 거야.”최희정의 말에 마영아는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15분 후 설은아의 마이바흐가 별채로 들어섰다.그러나 문을 여는 순간 설은아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하현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경호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당신들 몇 명은 나와 함께 들어가고 나머지 두 명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요. 차는 시동 끄지 말고 언
최희정은 하현이 어디서 이 명함을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맞아. 정말로 형홍익 명함인데?”우다금은 최희정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를 버럭 내었다.“아휴! 잘난 데릴사위가 형홍익의 명함을 얻었으니 이제는 금정 최고 거물의 명함도 받을 수 있겠군그래!”“설 씨 집안도 대구 정 씨 가문과 연락이 닿아 아홉 번째 집안이 되어 꽤나 번성하고 발전했을 텐데 왜 이렇게 변한 거야?”“도와주고 싶지 않으면 그냥 말로 하면 되지 생색은 한껏 내면서 이런 핑계나 대고 있으니 원!”“정말 실망이야!”“이렇게 우릴 무시할 거면 확실히 말할 것이지! 앞으로 내가 절대 이 집안에 얼씬을 하나 봐! 절대 안 올 거야!’우다금은 노점에서 사 온 선물 꾸러미를 떠올리자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이 쓴 돈을 만회하기 위해 거실에 있는 찻주전자라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우다금의 말에 최희정과 설재석은 어이가 없어서 몸을 부르르 떨었고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설은아는 이 광경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손을 잡아끌었다.“하현, 당신이 좀 도와줘.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이 정말...”이쯤 되니 설은아도 자신의 행동이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다.하현과 최희정은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런 하현이 최희정을 위해 나서서 우 씨 고모를 도와주려 하겠는가?설은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듣고 하현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이런 사소한 일로 형홍익 어르신을 귀찮게 할 필요도 없어. 내 하녀한테... 그러니까 내 친구한테 말 한마디만 꺼내면 돼.”말을 마치며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형나운에게 전화를 걸어 우소희의 취업 문제를 도와달라고 했다.그는 1분도 되지 않아 전화를 끊었고 우다금 모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잘 해결되었습니다.”“거짓말하지 마!”“어디서 계속 장난질이야!”“데릴사위인 주제에 금정 최고 책임자라도 되는 양 허
”허! 제부! 시도도 안 해 보고 노력도 안 했는데 당신들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잖아요!”“그게 도와주겠다는 사람 태도예요?”우다금은 냉소적인 얼굴로 쏘아붙였다.“당신들이 우릴 친척이라고 생각했으면 어떻게 우리 소희를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제부, 난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내가 자존심도 다 버리고 도와달라고 이렇게 애원하는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정말 너무 뻔뻔들 하네!”최희정은 자신보다 더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정신을 다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찾아온 언니를 내가 영광으로 생각하며 대했어야 한다는 거야?”“엄마, 아빠...”설은아는 또 말다툼이 시작되려 하자 걱정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하현, 혹시 이모 도와줄 수 있겠어?”설은아는 하현이 금정은행에서 형홍익의 개인 명함을 내놓은 것이 문득 떠올랐다.그렇다면 하현과 형홍익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얘기였다.그래서 하현이 방금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는 걸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허풍이 아니라 정말로 도와줄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눈앞의 난처한 상황을 보고 설은아는 어쩔 수 없이 하현에게 입을 열었다.“하현, 정말 도와줄 수 있어?”설은아의 말에 우다금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은아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면 안 되겠니?”“네 전 남편이 얼뜨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어?”“도와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면 되지!”“능력이 없다는 둥 변명만 늘어놓더니 이제는 얼뜨기를 내세워 나한테 헛바람이라도 넣으려고 그래?”“놀리는 거야? 놀리니까 재미있어?”“우린 바보가 아니야!”말을 마치며 우다금은 화가 나서 숨을 헐떡거리며 눈을 부라렸다.그녀는 설은아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이런
”제부, 희정아, 은아야. 이 일은 아무래도 너네들이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어쨌든 너네들은 매일 친구 모임에도 다니면서 여러 거물들과 친분도 있고 인맥도 많을 거 아냐?”“너네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 같은 과부와 내 딸은 어떻게 살아?”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희정의 식구들은 신세한탄과도 같은 말을 내뱉는 우다금을 보고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너네들, 우리 소희가 일자리도 없이 집에서 폐인이 되어 가는 걸 차마 볼 수 있겠어?”“양심에 찔리지 않겠냐고?”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우소희는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손을 놓은 뒤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쳤다.“엄마, 희정이 이모나 이모부가 별로 능력이 없는 것 같아.”“이 사람들은 이제 돈이 많아서 우리 같은 가난한 친척들은 아예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나 봐!”“돈푼깨나 좀 있다고 잘난 줄 알아?”“능력 있다고 자랑이나 하지 말던가!”하현은 우소희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머리가 텅텅 빈 데다 당돌하기까지 했다.이 말을 듣고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모, 우리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은 금정에서 확실한 인맥이 없어요.”“게다가 형 씨 가문 그룹은 금정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로 미술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굴지의 그룹이에요.”“매년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 넘어요.”“그중에는 배경도 대단하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도 널렸고요.”“그런데 형 씨 가문이 우리가 뭐라고 우리 요구를 들어주겠어요?”“형 씨 가문 고위층과 아는 사이긴 하지만 취업 청탁을 할 만한 위치는 아니에요. 그럴 능력도 없고요.”“물론 우리도 최선을 다해 볼 거예요!”설은아는 냉정하게 말했다.그녀의 성격은 최희정과는 완전히 달랐다.겉으로 매정한 말을 못 한 채 질질 끌려가지 않았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고 실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지금 이렇게 말한 것도 한편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