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자식!”용천오는 화가 나서 테이블을 탁 쳤다.“하현, 당신 꿈도 꾸지 마!”“무성 신시가지는 썩어 문드러져도 나 용천오가 가져갈 거야. 내가 가난해서 굶을지언정 당신한테는 안 팔아!”“자, 그럼 무성 신시가지 건은 관둘게!”“무성 상맹에서 운영하는 무학당 체인점이 몇 개더라....”하현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다른 우회로를 제안했다.“어쨌든 당신들 무학당은 지금 매일 사람들이 찾아와 물건을 때려 부수는 통에 장사도 할 수 없잖아. 평판도 나빠져서 거의 폐업 상태나 마찬가지고.”“내가 천억에 인수할 테니 차라리 나한테 넘겨. 교관과 직원, 심지어 청소부까지 다 내가 그대로 떠안을게, 어때?”“이봐, 이거 내가 당신 많이 생각해 줘서 가격을 쳐 준 거야. 당신은 이 기회에 골치 아픈 무학당을 처분하고 현금을 손에 쥐는 거라고!”“역시 난 좋은 친구야, 안 그래?”“꺼져! 당장!”용천오의 낯빛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내 무학당이 이렇게 된 건 모두 당신의 그 파렴치한 수법 때문인데 이제 와서 뭐? 인수하겠다고?”마영아 일행은 하현의 말을 듣고 감정이 격앙되어 죽일 듯이 하현을 쏘아보았다.하현 이놈은 정말 악랄하기 그지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감히 이런 말로 용천오를 면전에서 업신여기다니!“이 무학당을 창고로 쓸지언정 절대 팔지 않을 거야!”“꿈도 꾸지 마!”용천오는 당장이라도 하현의 얼굴을 때려눕히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하지만 그는 감히 하현을 건드릴 수 없어 끓어오르는 화를 억눌렀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용천오를 느긋하게 바라보았다.“이 두 가지 물건을 팔지 않겠다니 그럼 시내에 있는 백화점은 어때? 그건 팔 의향 있어?”“어쨌든 이런 큰일을 당했고 무성 상맹도 반쯤 폐업 상태인데 앞으로 몇 년 동안 백화점도 장사가 안 될 텐데 말이야.”“만약 이 부동산들을 나한테 잘 넘긴다면 내가 섭섭지 않게 쳐 줄게.”“내가 당신을 친구로 생각해서 흥정 같은 건 하지 않을게. 게
하현은 웃으며 일어섰지만 바로 떠나지 않고 용천오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 그의 오른쪽 뺨을 툭툭 건드리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용천오, 천리 밖에서 온 귀인을 이렇게 거절할 필요있어?”“지금 이 상황에서 당신 혼자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해?”“물건도 팔지 않고 돈을 빌려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아?”“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당신한테 돈을 빌려줄까?”“조한철? 김준걸?”“눈앞의 이런 어려운 상황도 함께 견딜 만큼 그들이 당신과 가깝다고 생각해?”“순진한 생각 하지 마...”“조만간 부동산을 팔아야 할 거야. 누구한테 파느냐가 문제지.”“나한테 직접 파는 게 꺼려진다면 중개업자를 불러서 얘기해도 돼.”“결국 내 손에 넘어오게 될 테니까.”“게다가 당신이 이렇게 시간만 끌면 가격만 점점 더 낮아져. 하루에 10% 정도?”“그러니까 누가 먼저 굴복하나 보자고! 누가 더 오래 버티나 두고 보지 뭐!”“내 생각엔 결국 당신이 얼마 못 버틸 것 같긴 하지만.”말을 마치며 하현은 테이블 위에 놓인 반찬을 손으로 슬쩍 집어서 오물오물 씹으며 돌아섰다.하현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용천오의 도도한 눈꺼풀이 자꾸 떨렸다.만약 자신이 여기서 정말 무너진다면 그건 여러 가지 일이 어쩌다가 겹쳐져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하현 저놈이 파놓은 구덩이에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6년 만에 무성의 중심인물로 부상했고 무성 상업 질서를 재창조했다는 명성을 들었던 용천오가 지금 이런 꼴이 되다니 억울하고 분하기 그지없었다.그는 잠시 이를 악물고 험악한 얼굴로 하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마영아, 플랜 B를 실행해. 하현 저놈이 강한지 내가 강한지 두고 보자구!”...바깥으로 나온 하현은 태연하게 용 씨 가문 별채를 떠났다.국술당으로 돌아온 하현은 몇 명 학생들에게 지도를 한 후 업무용 차로 들어가 잠깐 휴식을 취했다.현장의 질서를 담당하던 진주희도 지금 현장을
30분 후, 무성 상맹의 주가는 원래 가격에서 10%이상 하락했다.주가가 약간 올랐을 때 큰 자금이 시장에 유입되었다.이 자금은 바로 무성 상맹을 향해 돌진했고 팔자마자 바로 공매도로 들어갔다.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공매도를 던졌다.그러자 시장의 개미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 넋이 나갔다.모두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식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거의 같은 시간에 모든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팔아버렸다.전후 불과 십여 분 사이에 무성 상맹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6만 원에서 4만 원까지 떨어졌다.오천억의 시가총액에서 순식간에 3분의 1이 증발한 것이다.무성 상맹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무성 사람들을 제외한 외지 투자자들은 어리둥절했다.그러나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일단 손실을 막는 것이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개인투자자들은 더욱 매도에 집중했고 무성 상맹의 주가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한 시간 후, 무성 상맹은 처참하게 무너졌다.이를 악물고 버티던 용천오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개인 금고를 모두 내놓았고 무성 상맹 장부의 모든 유동 자금을 빼내 주식시장에 퍼부었다.이렇게 방어를 한 결과 무성 상맹의 주식은 그나마 20% 정도 끌어올렸다.다만 이러는 사이 용천오의 손에 있던 유동 자금은 완전히 고갈되었다.그가 조한철과 김준걸에게 전화를 걸고 있을 때 이슬기가 지휘하는 대성그룹 자금도 때맞춰 시장에 들어왔다.이슬기는 우윤식보다 더 악랄하고 치밀하게 움직였다.그녀는 오전 최저점을 뚫고 주가를 원래의 40%까지 끌어내렸다.원래 6만 원이던 주가가 오전을 지나면서 2만원이 되었다.돈을 빌리려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리던 용천오는 이를 보고 피를 토할 뻔했다.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가 돈을 빌릴 수 있겠는가?조한철과 김준걸이 아무리 바보라고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오전장이 끝나고 잠시 한숨 돌릴 시간을 갖
오후 1시, 다시 주식시장이 열렸다.하현은 용 씨 가문 별채 대문을 떠나다가 주식 거래창을 열고 무성 상맹의 주식을 던져버렸다.하현의 행동은 사람을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완전히 송두리째 사람을 멸망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였다.이 모습을 보고 용천오에게 불만을 품은 용 씨 가문 사람들도 함께 뛰어들었다.다들 무성 상맹에서 탈출하려 하고 있으니 이럴 때 따라가지 않으면 나중에 혼자만 손해를 보게 되는 거 아닌가?주식시장에서 피 튀기는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무성 황금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설은아의 핸드폰이 다급하게 울렸다.전화를 받으려고 핸드폰에 눈길을 돌리던 설은아는 화면에 뜬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한숨을 크게 내쉬며 설은아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엄마, 내가 말했잖아! 주식 투자하지 말라고. 주식에 함부로 투자하지 말랬잖아!”“”왜 내 말 안 들어?”“모든 재산을 다 무성 상맹에 퍼부었을 뿐만 아니라 뭐? 융자까지 받았다고?”“예전의 3분의 1 가격도 안 되지만 앞으로 계속 주가가 더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래?”“그때가 되면 본전도 못 찾고 은행에 빚만 지게 될 거야!”“알았어. 지금 엄마한테 돈 보낼 테니까 손실만 메워지면 바로 주식 팔아야 해!”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으려던 설은아는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아냐, 엄마. 주소 좀 줘. 내가 지금 갈게. 내가 직접 주식 처리할게!”“걱정하지 마. 내가 최대한 물 타기를 해서 손해를 줄여 볼 테니까!”“어, 알았어. 기다려. 곧 갈게.”전화를 끊은 뒤 설은아는 벌떡 일어서서 하현이 자신의 곁에 배치해 준 경호원 몇 명을 동원해 얼른 사무실을 떠났다.최희정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설은아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직접 자신이 주식을 처리하지 않으면 최희정이 더 깊이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고 결국 막심한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설은아의 마이바흐 차령이 시내 고가도로에 진입한 지
”청혼이요?”마영아는 어리둥절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희정을 바라보았다.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마영아는 최희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가 정신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부인, 용천오가 당연히 따님에게 청혼을 하겠죠. 그런데 오늘, 지금은 아니에요.”“오늘 설은아 사장님을 오시라고 한 건 작은 부탁이 있어서예요.”“부탁?”최희정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당신의 그 잘난 사위 하현과 용천오가 요즘 좀 사이가 그래요.”“그래서 용천오가 좀 불쾌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따님에게 부탁 좀 드리고 싶어요. 하현한테 잘 말해서 우리 용천오 사장님과 좀 사이좋게 지내라고 한마디 해 줬으면 좋겠어요.”“계속 이렇게 가는 건 누구한테도 도움이 안 되거든요!”마영아는 설은아가 아무리 뭐라고 하현에게 말한들 하현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할 거라는 걸 잘 안다.그럼에도 마영아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설은아를 이용해 하현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위함이었다.오후 주식 시장이 끝나기 전에 이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영영 때를 놓치고 만다.“하현 그놈이 감히 용천오를 건드렸어? 사이가 나쁘다고?”최희정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커졌다.“우리 은아가 편히 사는 꼴을 못 보겠다는 거지? 그놈은?”“걱정하지 마. 이따가 은아가 오면 내가 그놈을 단단히 혼내라고 이를 테니까!”“하 씨 그놈은 내 딸 말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놈이니까. 내 딸이 한마디 하면 바로 알아들을 거야.”최희정의 말에 마영아는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15분 후 설은아의 마이바흐가 별채로 들어섰다.그러나 문을 여는 순간 설은아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하현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경호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당신들 몇 명은 나와 함께 들어가고 나머지 두 명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요. 차는 시동 끄지 말고 언
”헛소리하지 마!”“당신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설은아는 잔뜩 경계하는 시선으로 마영아 일행을 바라보았다.“최 여사님이 설은아 사장에게 잘 말씀하세요.”“외부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해서 불편하겠지만.”“설 사장님이 간단한 요구만 들어준다면 우리가 약속한 건 모두 지켜질 거예요.”마영아의 말을 들은 최희정은 아주 흥분한 표정으로 설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은아야, 지금 저분이 다 말했잖아!”“하현 그 자식이 감히 용천오에게 대들다니! 하현 그놈은 지금 누가 나쁜 사람인지도 잘 모르면서 무턱대고 주식으로 용천오와 대적하려 있어!”“어서 지금 전화해!”“전화해서 지금이라도 용천오에 대한 모든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일러!”“그렇지 않으면 아마 조만간 그놈은 꼴좋게 될 거야!”설은아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약간의 노기를 띤 얼굴로 마영아를 노려보았다.“염치도 없는 여자 같으니라고!”마영아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 사장.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지금 당신한테 명령한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 어머니야.”“순순히 전화를 걸어. 그리고 하현에게 말해. 지금 용천오를 겨냥한 모든 칼끝을 내려놓으라고. 그러면 돼.”“그렇게만 된다면 당신 어머니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어.”“주가가 급락하는 일도 없을 테고!”“설 사장 당신한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안 그래?”“어쨌든 당신과 하현은 이미 이혼했으니 하현한테 손해가 나더라도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 아냐?”“내가 그와 이혼한 걸 알고 있는 모양인데, 이혼한 마당에 내가 무슨 이유로 그에게 이런 일을 요구할 수 있겠어?”설은아는 자신을 위해 하현이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다는 사실을 분명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지금 무엇을 하려든 간에 자신이 나서서 말릴 수는 없었다.“설 사장, 당신이 그를 생각하는 것만큼 그가 당신과 최 여사님을 생각해 줄까?”“우린 무성상업연맹 주식을 최 여사님께 많이 줬는데
설은아의 경호원 네 명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맞섰다.설은아는 행동에는 일체의 머뭇거림도 없었다.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그렇지 않고 마영아의 손아귀에 조금이라도 놀아난다면 상대는 반드시 자신을 이용해 하현을 위협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최희정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이미 상대방과 같은 배를 탔다는 것을 설은아는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설은아가 당장 떠나려는 것을 본 최희정은 얼른 목소리를 높였다.“은아야, 넌 절대 여기서 나갈 수 없어!”설은아가 떠난다면 그녀의 주식은 완전히 바닥을 뚫을 것이 뻔했다.자그마치 이천억이었다!그러나 설은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른 걸어나갔다.“탕탕탕!”설은아가 차 옆으로 오기도 전에 뒤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곧이어 네 명의 경호원이 날아갔다.그리고 하나둘 피를 뿜으며 쓰러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마영아는 수십 명의 경호원들을 이끌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설은아를 향해 돌진해 왔다.분명 그들은 이미 플랜 B까지 준비해 둔 모양이었고 주저하지 않고 실행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마영아는 어떤 식으로든 설은아를 절대 도망치게 놔둘 수 없었다.“사장님, 얼른 들어가십시오!”보안을 책임지고 있던 경호원이 총을 꺼내 장전하면서 설은아의 몸을 보호하며 차량 안으로 들여보냈다.그러나 마영아의 눈에는 그도 일개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고 그의 동작은 그렇게 재빠르지 못했다.그가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마영아의 몸이 이미 그의 앞에 들어섰고 늘씬한 다리를 휘둘러 남자를 바로 쓸어버렸다.순간 경호원은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사장님, 얼른 가세요!”운전석에 앉아 있던 경호원이 큰소리로 소리치며 달려나와 마영아와 맞섰고 설은아가 직접 운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었다.하지만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마영아가 또 한 번 몸을 휘둘러 남자를 쓰러뜨리고 발로 걷어찼다.“뻥!”
”하현!?”“그 자식이 왜 여길 왔지?”마영아의 시선이 일순 움츠러들었고 차에 탄 사람의 실루엣을 보는 순간 그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하지만 그녀는 이내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미소를 지으며 설은아의 머리채를 힘껏 잡아당기고는 앞으로 나왔다.“아! 아!”머리채를 잡아당긴 설은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마영아는 설은아의 아름다운 얼굴에 손바닥을 내리치며 소리쳤다.“더 크게 소리쳐야지! 더 크게 불러보라고!”“당신의 그 잘난 남편이 들을 수 있게 더 크게! 우리 용천오에게 덤빈 대가가 어떤 건지 똑똑히 보여 줘야지!”설은아는 밀려오는 통증에 끙끙 앓았다.그러다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하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하현!”마영아의 무자비한 폭력에 피를 흘리고 있는 설은아를 본 하현은 눈에서 살기가 돋아 올랐다.그는 심호흡을 하며 내뱉었다.“은아, 괜찮아?”“난 괜찮아...”설은아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하현의 모습을 보자 설은아는 불안도 두려움도 모두 사라졌다.하현은 용천오가 이렇게 무자비하고 뻔뻔스러울 줄은 몰랐다.설은아에게 직접 손쓸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는 최희정을 이용해 그녀를 유인한 것이다.“괜찮으면 됐어.”하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설은아는 빙긋이 웃으며 하현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얼굴에는 커다란 손자국이 선명했지만 하현을 향한 굳건한 믿음에 마음이 어느 때보다 든든했다.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 여기 오지 말아야 했어...”“허, 헛. 정말 부부의 뜨거운 정, 못 봐주겠군!”“아무리 막장 드라마라도 이런 막장은 없을 거야, 안 그래?”“그래, 이렇게라도 애틋한 척하지 않으면 한때 부부라는 이름에 어떻게 떳떳할 수 있겠어?”하현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마영아는 손바닥을 휘둘러 설은아의 아름다운 얼굴에 생채기를 내었다.그녀는 그동안 하현에게서 받은 억울함을 설은아에게 모두 털어놓을 심산인 듯했다.설은아의 얼굴에 큼지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