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혁은 하현이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설씨 어르신을 보며 말을 하려다 잠시 멈칫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봐.”설씨 어르신은 지금 설민혁에게 조금 실망스러워 말투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설민혁도 분명 잘 알고 있었다. 이 순간 그는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제가 방금 너무 욕심이 많다고 생각하셨죠……”“어? 네 스스로 알아차렸어?” 설씨 어르신이 냉담하게 말했다. “할아버지, 저를 오해하셨군요. 저는 결코 정말 그 시계를 원한 게 아니에요. 저는 단지 하현을 시험하려고 했을 뿐이에요. 지금 사실을 증명할게요. 설은아의 신분이 올라가면서 하현도 점점 날뛰고 있잖아요……”설민혁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넌 어떻게 준비했어? 네가 회장이 되야 한다는 그딴 소리는 다시는 하지 마라.”설씨 어르신은 담담하게 말했다. “제 말 뜻은 우리가 설은아를 조금 귀찮게 만들자는 거죠. 당연히 우리 설씨 집안의 이익과 근본과 관련되어서는 안되겠죠. 설은아가 그렇게 순조롭게 권력을 쥐게 해서는 안돼요. 이렇게 하면 설은아를 압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현도 그렇게 날뛸 수 없을 거예요.”설민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지금 총명함을 배우고 있으니 이런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물어보고, 보고 해야 한다. 일이 잘못되면 설씨 어르신이 또 그를 처리해야 한다. “그럼 네 생각을 말해봐……”설씨 어르신은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설민혁은 재빨리 설씨 어르신의 귀에다 대고 가는 목소리로 잠시 속삭였다. 설씨 어르신은 의아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잠시 후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네가 가서 한 번 해봐. 하지만 만약 실패하면 나는 책임지지 않을 거야. 그 결과는 네가 책임져야 해.” “할아버지. 안심하세요. 이번만큼은 확실해요. 우리는 어떻게 해도 손해 볼 게 없어요.”설민혁은 가슴팍을 두드리며 반드시 얻어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설씨
“그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요구 하시는 게 무슨 뜻이겠어? 그는 우리 설씨 집안의 데릴사위니 우리 설씨 집안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아직도 잘 모르겠니? 네 할아버지가 벌써 화를 내셨잖아. 그 분의 성격상 만약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보다 네가 더 잘 알잖아.” 희정이 깨우치며 말했다. 설은아도 당연히 설씨 어르신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 만약 그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이후에 자신은 설씨 집안에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물론 그녀의 신분이 박탈당하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권력이 약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현재 설씨 집안의 쇼핑몰 프로젝트 사업은 시작단계로 설은아는 다른 일로 인해 사업이 막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다시 생각해볼게.”설은아가 말했다. 희정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빨리 결정해. 이게 얼마나 큰 일이야! 네 이모랑 요가도 하러 가야 돼!”“엄마, 먼저 가. 내가 잘 생각해볼게……”희정이 떠나자, 설은아는 침대에 누웠다. 하현은 이미 그녀를 너무 많이 도와주었다. 심지어 그녀를 위해 다른 사람한테 10억을 빌렸고, 거기다 자신이 그 빚을 떠안았다. 물론 안씨 집안의 골동품 품평회에서 하현이 적지 않게 이익을 얻었지만 문제는 그 꽃병이 현금화된 후에야 비로소 이전의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설은아는 하현이 그 골동품 시계를 아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왜냐하면 그가 특별히 그것을 가져가 닦고, 재차 시계줄을 다시 조절했기 때문이다. 현재 둘의 관계는 냉랭했다. 설은아는 서연뿐만 아니라 안수정 때문에 하현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됐다. 왜! 그는 왜 그렇게 수려한 여인들과 이토록 친하게 지내는 거야? 나를 등에 업고 밖에서는 다른 여자를 만나다니? 거기다 또 한 명 더? 설은아도 하현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그러는 지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서연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거기다 안수정의 모습까지 번개처럼
“내가 안씨 대가에게 가서 설씨 집안을 도와 달라고 하길 바라는거야?”하현이 직접 입을 열었다. 설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반응도 없었다. 하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보아하니 자신이 잘 맞춘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설은아는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네가 고개만 끄덕이면 나는 널 위해 가서 그 일을 할 수 있어. 하지만 안씨 집안이 설씨 집안을 안중에 둘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현은 이어서 입을 열었다. 설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하현은 어떤 원망도 하지 않았고, 은아에게 어떤 불만도 품지 않았다. 화제를 바꾸어 말했다. “설민혁을 무릎 꿇게 한 게 너도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설은아는 죽을 한 모금 먹고 자리를 떴고 그러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 가득 쓴웃음을 지었다. 그 역시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이 지경이 되었다. ……5성급 풍경이 있는 호수 별장 안. 안수정은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내일 제주로 돌아간다. 오늘 하현을 만나자고 약속을 잡고 싶었지만 마땅한 핑계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까마득히 높은 안씨 집안의 큰 아가씨인데 자신의 자긍심과 냉랭함을 한꺼번에 바닥에 버리라는 말인가?안수정의 탄식을 듣던 안흥섭이 빙그레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뭐야? 아무런 자신감도 없는 거야? 내가 네 대신 말해줄까?”안수정은 한숨을 내쉬며 담담하게 말했다.“할아버지. 저에게 온 물건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할아버지도 알고 계셔야 해요.”“만약 제가 떠나기 전에 그가 저를 배웅하고 싶어한다면 먼저 전화를 할 거예요!”“그렇지 않으면 제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제가 찾고 있는 사람과 다르다는 뜻이겠죠.”안수정이 꾸밈없이 말을 하자 안흥섭은 알아들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계산해 볼 때 마음도 없는 놈
“저를 만나고 싶으신 거예요? 아니면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으신 거예요?”안수정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안씨 대가님과 상의할 일이 좀 있는데, 간 김에 두 분을 만나 뵈려고요.” 하현이 말했다.“당신은 여기가 무슨 포장마차처럼 아무 때나 아무나 올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안수정은 조금 화가 났다. 이놈은 할아버지를 만나러 오는 것이지 특별히 자기를 만나러 오는 게 아니었다. “힘드시면 됐어요.” 전화 맞은편에서 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설씨 집안의 일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기에 안흥섭이 그를 거절한 이상 그도 뻔뻔하게 얼굴을 내밀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이 말을 듣자, 방금 전까지 시크했던 안수정은 섭섭한 표정으로 안흥섭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서둘러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나가셨다가 마침 돌아오셨어요. 언제 오실 거예요?”이 말을 들은 하현은 어리둥절했다. 지금 보니 이 안수정 아가씨는 6월의 하늘 같은 아이의 얼굴처럼 표정을 바꾸는 속도가 사람을 놀라게 했다. 하현은 쓴웃음을 지었고, 안흥섭 역시 말문이 막힌 얼굴이었다. 모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좋아요. 그럼 제가 지금 갈게요.”하현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여기서 안수정은 평정을 되찾는 게 쉽지 않았다. 웃는 듯 마는 듯한 안흥섭의 표정을 보자 그녀는 조금 멋쩍게 말했다. “할아버지. 방금 제가 조금 흥분해서 우리 안씨 집안의 체면을 구겼네요.”안흥섭은 웃으며 말했다.“사람이 흥분할 때가 있지. 하지만 다음엔 더 조심하면 좋겠다.”안흥섭 같은 사람은 남녀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 안수정에게 반항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큰일이다. 더군다나 만약 안수정이 정말 하현을 취하게 된다면 안씨 집안에게 역시 좋은 일이다. 하현을 대응하는 수단으로 안흥섭은 많은 일을 했다. 그가 정식적으로 안씨 집안의 데릴사위가 되기 전까지 안흥섭도 크게 걱정하지는
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늙은 여우들은 단지 말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의 면전에서는 상대가 무슨 목적과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모두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 생각이 미치자 하현 역시 군말 없이 바로 직접 차를 한잔 들고 마신 후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위장을 튼튼하게 하는 차네요. 한 근에 몇 십만 원하니 무섭겠네요?”“몇 십만 원이라고?” 하현의 말을 듣고 안흥섭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건 무이산의 대홍포야. 절벽 위에 있는 저 나무에서 경비원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어. 이 차는 1년 생산량이 10근 남짓인데 밖으로 나가는 건 5근을 넘지 않고 한 근에 1억이 넘어.” “이런 차를 몇 십만 원이라고 말해?”하현은 차에 대해 그다지 정통한 편은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안씨 집안의 인맥은 보아하니 자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종류의 차는 돈이 있다고 인맥이 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씨 집안은 아마도 최고위층 인사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정도겠지?안흥섭이 일부러 이 차를 꺼내서 자신의 기세를 꺾으려 하는 건가? 하현은 할 말을 잃었다. 보아하니 안수정의 일 이후에 골치 아픈 데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그는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 “기왕 안씨 대가님이 이미 저의 의도를 아셨으니 바로 말씀드리죠. 오늘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안흥섭은 하현의 뻔뻔함과 직접적인 태도에 놀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물었다.“네가 정말 감히 나에게 입을 열어? 내가 너를 설씨 집안과 이혼시키려고 하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네가 설씨 집안을 대신해서 말하겠다는 거야?” 하현은 부인하지 않았다. “설씨 집안은 대가님의 인정을 받고 싶어해요. 도와주실 수 없으신가요?” “도움을 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하면 보잘것없는 2류 가문은 내 눈에 안 들어와.” 안흥섭의 반응은 당연했다.
“얘야, 너의 인심이 이렇게까지 값어치가 있어?” 안흥섭은 웃을 듯 말 듯 입을 열었다. “분명 그럴 거에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좋아, 그럼 네가 그렇게 자신만만 하다면 우리 안씨 가문의 가업이 상당히 많으니 아무거나 하나 찾아서 설씨 가문과 합작해봐. 이것도 설씨 가문의 체면을 세워주는 셈이야.”안흥섭은 보잘것없는 사소한 일을 말하는 것처럼 큰 손을 흔들었다.그러나 이런 2류 가문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가치가 될 것이다. 비록 보잘것없는 작고 사소한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안씨 집안의 허락이 없어도 안씨 집안과 합작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것이다. “안씨 대가님. 큰 은혜를 소홀히 대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이후에 저에게 뭘 시키신다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하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안흥섭은 웃으면서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는 하현의 잠재력을 보고 그를 도왔지만 지금의 하현이 그렇게 큰 실력을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은 다 끝난 거죠?”안수정이 옆에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일 다 끝났으면 나랑 같이 밥 먹으러 가요.” 하현은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아가씨, 이제 9시가 넘었어요. 우리 방금 아침을 먹었는데 어떻게 밥을 또 먹겠어요? 아니면 오늘 저녁에 데리러 올까요?”“좋아요.”안수정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하현이 떠나자 그녀의 얼굴 표정은 무너져 내렸고 못마땅해 하며 말했다. “이 찌질한 남자. 하루도 나랑 함께 하려고 하지를 않네. 할아버지 그를 돕지 말았어야죠!”“왜 돕지마? 이건 내가 너에게 기회를 만들어 준거야. 이 기회에 설씨네 가서 한 번 놀아봐.” 안흥섭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해다. “설씨네 뭐 재미 있는 게 있어요?”안수정은 본래 냉랭한 성격으로 오직 하현을 만났을 때만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설씨네 가서 그들에게 알려줘. 우리가 설씨 집안을 도와 준건 하현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하현이 없었으면
“당신은 이해할 필요 없어요.”안수정은 냉랭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이번엔 제가 안씨 집안을 대표해서 설씨와 합작에 대해 얘기하러 왔어요.”설씨 어르신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안수정이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현 그 폐물이 안흥섭의 마음에 이렇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단 말인가? 설마 이번에 설씨 가문이 이 데릴사위에게 기대게 된 것은 아니겠지? 이 순간 설씨 어르신의 마음은 보통 사람이 생각해 낼 수 없는 마음이었다. 안수정은 이어서 차갑게 말했다.“제가 일이 많아서 오늘은 간단하게 얘기 할게요.”“이전에 우리 안씨 집안이 뜻밖의 일로 하현에게 신세를 졌어요.”“오늘 그가 찾아와서 우리 안씨 집안의 은혜 구하면서 당신 설씨 가문을 받아 달라고 했어요.”“우리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프로젝트 하나를 골라 설씨 집안과 합작을 하는 데는 동의하셨어요. 합작을 해서 어떤 결과를 내게 될지, 설씨 가문의 지위를 높일 수 있을 지의 여부는 당신에게 달려있어요.” 설씨 어르신은 이전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소금에 절였던 생선이 죽었다 다시 살아난 듯 하현이 갑자기 개똥 운이 생겨서 안씨 가문이 그를 중요시 여긴 것이라 생각했다. 뜻밖의 일로 안씨 집안이 그에게 신세를 진 것이다. 하지만 이 폐물의 인정이 설씨 가문에게 이런 기회를 줬다면 그야말로 쓸모가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생각에 미치자 설씨 어르신은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 “안씨 아가씨, 이렇게 우리 설씨 집안에 오셔서 프로젝트 합작까지 제안을 하셨다면 우리 설씨 집안의 실력을 아가씨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우리 설씨 가문이 서울에서 비록 일류 가문은 아니지만 하엔 그룹이 저희에게 투자한 것은 우리 설씨 집안의 저력을 말해줍니다.”“우리 설씨 집안과 합작을 하면 안씨 가문은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설씨 어르신은 거만한 얼굴로 결국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서울 전 지역에서 설씨 가문만이 하엔 그룹의 투자를 받
이 순간 설씨 어르신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이 합작이 체결되자마자 설씨 집안은 정식적으로 안씨 집안과 합작을 시작하였다. 비록 이것이 안흥섭이 직접 승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설씨 집안에서는 절대 이런 기회는 얻기 힘든 것이었다. 강남 전체에서 안씨 집안과 합작할 수 있는 집안은 각 지방에서 일류 가문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번 설씨 가문이 안씨 가문과 합작할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그건 일류 가문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거기다 쇼핑몰 프로젝트를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설씨 가문은 하씨 가문과 안씨 가문 두 동반자를 등에 업은 셈인데, 들고 일어서는 것은 아직 확실치 않다. “너무 감사합니다. 안씨 집안이 우리 설씨 집안에 이런 기회를 주시다니요.”설씨 어르신은 겸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안씨 아가씨 특별히 저에게 이렇게 좋은 소식을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그리고 안씨 대가님께도 감사 인사를 전해주세요. 우리 설씨 집안은 반드시 이번 기회를 잘 잡아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게요.”설씨 어르신은 안흥섭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았지만 지금 그는 안흥섭에게 비할 수 없이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조금도 깔보지 않았다. 안수정은 하현을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는 설씨 어르신이 하현의 공로를 인정 할까봐 두려웠다. 사실, 그녀는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설씨 어르신이 이런 생각을 할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하현은 설씨 집안의 개 한 마리 일뿐, 설씨 집안을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런 일들은 다 설씨 집안에 보상하는 일일 뿐인데 그가 어떻게 이런 일을 두고 하현을 마음에 둘 수가 있겠는가? 만약 설씨 집안이 실력이 없었다면 하현이 가서 무슨 말을 하든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안수정이 떠나자 설씨 어르신은 자신의 ‘철 왕좌’에 앉아 흥분해서 온 몸이 떨렸다. 이번에는 설씨 가문의 또 다른 기회였다. 쇼핑몰 프로젝트와도 견줄 만했다.
확신에 찬 화성봉의 말을 듣고 임단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금정개발이 파산하지 않고 번창할 수만 있다면 금정개발을 하현에게 넘겨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그리고 나천우도 이 일로 인해 상류사회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아마도 후방에서 뛰어난 책략을 펼쳐 큰 성과를 이룬 전형적인 사례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임단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여웅 그놈이 이 일로 득의양양해할 것을 생각하니 이 또한 달갑지 않았다.그놈은 어릴 때부터 임단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언젠간 임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다녔다.만약 몰아치는 그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인다면 그놈은 더더욱 기고만장해질지도 모른다.아니면 소남 임 씨 가문을 직접 앞세워 이여웅을 직접 짓밟아 버릴까?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사소한 일에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인 임 씨 가문이 나서서 이여웅을 제압한다면 가문 쪽에서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을까?은둔가 나 씨 가문을 이용하는 것은 아예 처음부터 포기한 방법이었다.은둔가가 은둔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쉽게 말하자면 은둔가는 모든 일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을 좋아한다.이렇게 직접 앞에 나서서 싸우는 일은 은둔가의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임단은 자신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졌다.정말 이대로 이여웅 그 개자식의 오만한 얼굴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들 때문에 그녀는 점점 더 심난해져서 찻잔을 들어 단숨에 차를 들이켰지만 그만 찻물을 옷에 살짝 흘리고 말았다.순간 정신을 다잡은 임단은 주머니에서 아무렇게나 종이 한 장을 꺼내 흘린 찻물을 닦았다.“잠깐만요.”그때 가만히 있던 화성봉이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임 사장님, 움직이지 마세요!”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얼른 임단의 앞으로 달려가 그녀가 들고 있던 종이를 뚫어져라 응시했다.그는 방금 어렴풋이 명당자리를
임단에게 있어 금정개발은 그리 큰 존재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자신의 실패로 인해 나천우가 상류사회에서 두고두고 입방아에 올려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사업체를 향한 이여웅의 악의적인 공격을 막아야 했다.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임단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심장이 살짝 오그라 붙었다.그들은 나서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움츠러들었다.임단은 약간 실망한 듯 십여 명의 임원들을 쳐다보았다.평소에 높은 연봉과 보너스를 받으며 지내다가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입을 닫아 버린 것이다.정말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들일 줄은 몰랐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임단의 시선은 회사에서 새로 고용한 고문 풍수지리사 화성봉에게로 향했다.화성봉은 금정에서 명성이 매우 높았고 장천준과 황보동에 견줄 만한 풍수지리사였다.그는 자신의 이런 높은 지위로 일 년에 몇 번씩만 고위 관직들의 풍수를 봐주고도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 수 있었다.그가 금정개발의 수석 풍수지리사가 된 이유는 전임 수석 풍수지리사가 퇴직한 이후 아무도 대신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다가 은둔가 나 씨 가문의 많은 인맥을 동원해 겨우 화성봉을 데려온 것이다.이런 까닭으로 그는 비록 금정개발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위만은 상당히 높았다.임단은 공손한 얼굴로 화성봉을 바라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화 대사님, 방법이 없을까요?”“임 사장님, 제가 돕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방법이 없습니다...”“금정에서 시장에 나온 핵심 요지는 모두 진화개발이 가격을 올려놓았습니다.”“정말로 진퇴양난입니다.”“대체 부지를 찾는 것이 정말 어렵게 되었군요.”“요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침반만 들고 금정을 몇 바퀴나 걸었습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땅을 찾지 못했습니다.”말을 마치며 화성봉은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실제로도 그는 적잖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쓰레기 매립장에 손가락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이 땅을 차지하기만 한다면 우리 금정개발은 앞으로 분명히 번창해서 금정 부동산 업계를 싹쓸이하게 될 거야.”하현이 이곳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나천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하현이 풍수 관상에 대해서는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땅을 보는 눈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이 땅은 이미 많은 풍수 대가들이 가 봤지만 쓰레기 매립지였기 때문에 풍수가 완전히 뒤틀리고 망가진 곳이어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하현이 대충 위치만 보고 이곳을 개발한다면 분명 금정 부동산 업계의 큰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하지만 하현이 자신들에게 베푼 은혜가 깊기 때문에 나천우도 털어놓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그렇게 하면 하현의 체면을 구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나천우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금정 부동산 업계를 싹쓸이하게 될 거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하현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개발하는 주택 외에는 다른 어떤 집도 팔리지 않을 거라는 거야!”“다른 어떤 집도 팔리지 않는다고?”이 말을 듣고 나천우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하현이 아무리 기고만장하다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함부로 땅을 선정할 수 있는가?금정 부동산 업계를 휩쓸려면 쓰레기 매립장 부지 하나로 될 수 있겠는가?“금정 부동산 업계를 싹쓸이하겠다니?! 하현, 야망이 너무 큰 것 같은데...”임단도 나천우와 마찬가지로 살짝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어이가 없는 듯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는 남편과 마찬가지로 하현이 너무 허무맹랑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아무리 뛰어난 해외 개발업자가 지은 주택이라도 금정 부동산 업계를 휩쓸지는 못할 것이다.하현의 말은 너무도 순진하게 들렸다.순간 그녀는 하현에게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어쨌든 그녀가 이번에 하현을 찾아온 것은 그가 은둔가 형 씨 가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이여웅이 우리가 선택해 놓은 토지 가격을 올려놓은 이상 정부도 임의로 가격을 낮출 수는 없을 거야.”하현은 자신의 잔에 차를 따라 천천히 기울였다.“지금 우리한테 중요한 문제는 이번 위기를 어떻게 하면 말끔히 해결해서 이여웅의 음모가 물거품이 되도록 만드냐는 거야.”비록 금정개발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준 사업체이지만 자신에게 있어 이 일은 금정개발에서의 첫 사업이었다.그래서 하현은 조금 더 신경을 쓰기로 결심했다.그렇지 않으면 이제 손에 넣은 사업체가 완전히 망하는 꼴이니 얼마나 체면이 말이 아니겠는가?“우선은 이여웅이 금정개발을 전방 압박하는 모든 행위를 포기하게 만들어야 해. 관청은 이번 가격 인상 행위를 모른 척 눈감아 주는 거지. 그러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갈 거야.”임단은 찻잔을 쥐고 있었지만 도저히 목구멍으로 차를 넘길 수가 없었다.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이 통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이여웅 같은 사람이 어렵게 이런 기회를 찾았는데 그렇게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아.”“그럼 두 번째, 우리가 가능한 한 빨리 더 나은 장소를 찾아내는 거야. 심지어 금정개발의 평소 스타일에서 조금 더 변화를 줘서 더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시장을 선점하는 거지.”“이렇게 하면 상대를 한 방에 누를 수 있어.”“문제는 현재 금정 핵심 지역 토지는 이미 임자가 다 있다는 거야.”“주인 없는 남은 몇몇 땅은 기본적으로 별로 위치가 좋지 않아. 오죽했으면 새들도 똥을 누지 않는다는 말이 다 나오겠어.”“다른 쪽을 물색하기도 쉽지 않아.”임단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물론 금정개발이 리조트, 호텔 등을 조성하는 등 그룹 전략을 수정할 수도 있어.”“문제는 그룹 전략을 수정하면 우리는 주택 시장을 그냥 상대에게 내주는 것과 같다는 거지.”“이건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이야.”말을 끝내며 자존심 강한 임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새로운 부지를 찾아 새로운 상품을 만
하현은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금정개발의 수석 풍수사가 앞으로 어떤 부지를 사서 개발을 할지 도와줬고 그 모든 자료는 극비였단 말이지.”“하지만 이번에 이산들이 그 자료들을 유출했을 뿐만 아니라 경쟁사인 진화개발에 넘겨서 금정개발이 사려고 생각했던 토지의 가격을 인상해 놓았어. 그래서 지금 금정개발은 진퇴양난에 빠진 거로군.”“지금 금정개발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어, 맞지?”“맞아.”나천우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음침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오는 동안 전체 과정을 생각해 봤어.”“이전에 이여웅은 여러 차례 우리와 맞붙었지만 번번이 깨졌지. 이번에 이런 뻔뻔한 수법을 쓴 걸로 보니 여간 고심한 게 아닌 것 같아.”“우리 중 한 명이라도 부주의하게 행동하면 바로 삼켜버릴 심산인 거지.”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이 내뱉었다.“이여웅.”임단이 근심 어린 얼굴로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번에 소문을 듣자 하니 이여웅의 주도로 금정개발 경쟁자들이 모두 모였대.”“그들은 우리가 선택해 놓은 부지를 높은 가격으로 확보한 후 우리 금정개발의 반 가격으로 집을 지어 팔 생각이래.”“만약 그들이 정말로 이런 수법으로 밀어붙인다면 앞으로 우리가 지은 집은 팔리지도 않을 거야.”“비록 금정은행의 도움을 받아 운영을 할 수도 있고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우리 금정개발이 만약 명당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지금 지어 놓은 집들을 다 팔고 난 다음에는 더 이상 팔 집이 없어지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거라는 점이야.”“이런 시장 환경이 2년 내지 3년만 지속되어도 우리 금정개발은 이 바닥에서 사라지게 될 거야.”나천우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 일 때문에 이 사람이 요즘 밤에 잠도 잘 못 자.”“하현 당신한테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해.”“이런 복잡한 상황에 놓인 금정개발을 당신한테 맡긴 게 되어 버려서 속상한가 봐.
장용호에게 자리를 맡긴 후 하현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장생전을 어떻게 함정에 빠뜨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그가 차를 몇 잔 따라 마시고 있을 때 나박하가 두 사람을 데리고 빠르게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자세히 보니 편안한 마음으로 후세를 생산하는 데 힘써야 할 나천우와 임단 부부였다.하현은 이전에 황보정이 가장 즐겨 앉았던 정자로 세 사람을 데리고 갔다.그들에게 차를 한 잔씩 따라준 뒤에야 하현은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두 사람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한쪽에 앉아 있던 나박하는 풀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미안합니다.”하현은 급히 그를 일으켜 세우고 얼굴을 찌푸렸다.“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세 사람이 이렇게 찾아온 거야?”이 세 사람의 조합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이건 나박하 잘못이 아니야. 내가 사람을 잘못 쓴 거야.”온화하고 정숙한 분위기의 임단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금정개발이 나박하의 전 여자친구를 해고한 후 그 여자는 직업윤리를 무시하고 금정개발에 관한 자료를 모두 우리 경쟁자에게 넘겼어.”“이로 인해 몇몇 동업자들이 가격을 조정했어. 특히 우리 핵심 사업 단지 가격에 타격을 주어 가격 인하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지.”“물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가장 중요한 것은 이산들이 우리가 이전에 고용한 최고 풍수지리사와 결탁하여 우리의 주택 설계도를 전부 팔아넘겼다는 거야.”“우리 금정개발의 가장 큰 특징은 실용적인 디자인이었어. 방향도 좋아 채광이 탁월했고 공용 공간이 적어서 실면적이 훨씬 넓었지.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선택한 부지가 미래 가치도 아주 높은 명당이라는 거야.”“하지만 이산들이 이 모든 자료들을 팔아넘긴 후 우리 경쟁자들은 우리가 이미 선택해 놓은 토지 가격을 한껏 올려놓았어.”“그래서 우린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어.”“예전에 선택해 놓은 토지를 매입하자니 비용이 너무 높아.
신사 상인 연합회 무리들은 부리나케 화장실 쪽으로 달려갔다.이를 본 종여군은 넋이 나간 듯 멍한 눈빛으로 서 있었다.그들은 도저히 눈앞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신사 상인 연합회 사람들이 하현 앞에서 찍 소리도 못하고 굽신거리다니!“좋아! 돈도 받지 않고 이렇게 도와주러 오다니! 사람들 괜찮군!”하현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더 올 사람 없어? 있으면 또 오라고 해!”“여기 아직 사람이 부족하거든!”종여군은 바보가 아니다.이 광경을 보고 하현의 신분이 비범하다는 걸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그러니 하현의 말에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저렇게들 부리나케 달려가는 게 아니겠는가?종여군은 하현을 깊은 시선으로 쳐다본 뒤 부하들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가자!”칠팔 명의 사람들이 돌아서려던 찰나 하현이 입을 열었다.“뭐 하는 거야?”“당신들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야?”“함부로 와서 협박 섞인 말들을 잔뜩 퍼부은 것도 모자라 공사하는 데 방해를 하지 않나 죽여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질 않나!”“날 뭘로 보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하현은 차가운 미소를 보였다.“당신이 바라는 게 뭐야?”종여군이 이를 갈며 내뱉었다.“저쪽에 가서 사흘 동안 같이 일을 해야지. 그래야 이 일은 넘어갈 수 있겠어.”“내가 사람이 좋아서 먹고 자는 건 다 책임질게. 매일 16시간씩 열심히 일만 해주면 돼!”하현이 별일 아니라는 듯 가벼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하현의 말을 듣고 가뜩이나 결벽증이 있는 종여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그녀는 매서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몇몇 싸움꾼들한테 겁 좀 줬다고 나 종여군을 함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난 LS건축자재 사람이야!”“똑똑히 들어! 지금 떠나려는 내 앞길을 막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참담한 결과를 맞이할 거야!”“참담한 결과?”하현은 웃으며 손
하현은 종여군의 말에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내가 세상사를 많이 겪어보진 않았지.”“그래서 오늘 감히 내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똑똑히 보려고.”“흥! 그럼 보여드리지!”종여군은 냉소를 흘리며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그때 자동차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뒤이어 오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개자식! 감히 내 사촌을 건드려?”“요즘엔 죽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 얼뜨기들이 너무 맣아!”순간 누군가가 차 문을 발로 걷어차며 나왔다.“이봐! 똑바로 말해 봐! 당신 뭐야?”“난 아무 배경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는 건드린 적이 없었어.”선글라스를 낀 한 남자가 걸어 나왔고 그의 뒤에는 칠팔 명의 껄렁껄렁한 사람들이 뒤이었다.앞장섰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내가 누군지 알아?”“난 신사 상인 연합회 사람이야!”“우리 형님이 누군지 알아? 바로 엄도훈이야!”“우리 형님한테 미움을 사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비참하게 죽는 일 밖에 없어!”“당신이 조금이나마 내세울 명성이 있어서 날 좀 두렵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당장 저세상 문턱을 넘을 거야!”종여군은 이 말을 듣고 비웃으며 하현을 바라보았다.“어유 어떻게 해? 당신 이제 완전히 끝난 것 같은데!”“신사 상인 연합회? 엄도훈?”하현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내 이름 알고 싶어?”“내 이름은 하현이야.”“헉!”이 말을 듣고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치다 바닥에 넘어졌다.그리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일어섰다.“뭐? 하, 하현?!”하현의 얼굴을 똑똑히 본 종여군 일행은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떠올리며 방금 이억 운운하며 의기양양할 때와는 딴판으로 누구랄 것 없이 바로 무릎을 꿇었다.금정바닥을 휩쓸고 다닌 무리들은 방금 자신들이 거들먹거리던 일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하현은 선글라스
”동의?”하현이 웃었다.“당신은 LS건축자재 사람에 불과해. 그런데 왜 이러는 거지? 자기가 무슨 관청이라도 되는 줄 알아? 오지랖도 참 넓군!”“어디서 이렇게 건방지게 구는 거야?!”종여군이 노발대발하며 한바탕 고함을 질렀다.“당신은 설마 이 바닥의 규칙도 모르는 거야?”“이 구역의 모든 인테리어와 자재 수송은 우리 LS건축자재와 계약이 되어 있어!”“인테리어를 하려면 누구나 우리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우리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건축자재를 구매하고 인테리어를 한다면 계약을 위반한 거니 우리한테 처벌을 받아야 해!”“알아들었어?”여기까지 말하고 난 종여군은 테이블을 두드리며 거만하게 지시했다.하현이 싸늘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이해할 수 없군. 내가 내 건물에 인테리어를 하는데 당신들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종여군은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예의상 곱게 말하려고 했더니 안 되겠군. 저기 이봐. 정말 모르는 척하는 거야? 아니면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인 거야?”“내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잘 이해하도록 말했잖아?”“우리가 이 구역의 인테리어를 전담하고 있다고!”“우리 쪽에서 건축자재를 사서 우리의 동의를 얻어야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잖아!”“그렇게 안 하면 벌금 이억을 내야 해!”“어떻게 할 거야? 당신이 선택해!”말을 마치자마자 종여군은 동료에게 눈짓을 하며 하현에게 건축자재 가격표를 던져주라고 일렀다.하현은 그것을 들고 한 번 쭉 훑어보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신들 물건은 너무 비싸. 내가 직접 건축자재 시장에서 사는 것보다 열 배는 더 비싸군. 당신한테 안 살 거야!”“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그 벌금도 내지 않을 거고.”“여기 당신들 환영하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부탁인데 이만 가 줘!”“허! 세상 물정이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멍청이를 만날 줄은 몰랐네!”종여군이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건축자재를 사지도 않고 처벌도 받지 않겠다?! 간덩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