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하현은 방금 태국 3대 마승의 손에서 날 구출해 주었어!”“그런데 지금 네가 하현을 총으로 쏴 죽이려 하다니?!”“소혜, 너 행동이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구나! 우리 화 씨 집안이 너의 배은망덕한 행동 때문에 온 천하의 손가락질을 받았으면 좋겠느냐?”“사과하거라! 지금 바로 하현에게 사과하라구!”“사과하지 않으면 바로 집에서 내쫓아 버릴 것이야!”“우리 화 씨 집안에는 너 같이 옳고 그름도 분간 못하는 분별없는 자식은 필요 없다!”화풍성은 진심으로 화가 많이 나 보였다.자신을 구해준 하현에게 분별없이 대하는 딸의 모습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화옥현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의아한 눈빛으로 화풍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하현과 화풍성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화풍성이 대노하며 그를 감싸는 것일까?하지만 그런 호기심도 잠시 대부분의 화 씨 집안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화풍성을 포함해서 그의 부인과 자식들 모두는 하현에 대한 악감정 때문에 그를 찾아 혼을 내주려고 궁리를 하고 있었다.그런데 지금 화풍성은 애지중지하는 딸 화소혜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그것도 하현을 대하는 화소혜의 분별없는 행동 때문에.이를 지켜보던 화 씨 가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찻잔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화소혜의 얼굴에는 어느새 하현에 대한 분노는 온데간데없이 두려움에 휩싸였다.오냐오냐하며 컸던 그녀에게 화풍성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이었다.그러나 이 광경을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차가운 아우라를 풍기고 있던 바로 그 여도사였다.그녀는 아무런 표정 없이 일어서서 화소혜 곁으로 다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르신, 소혜는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그만 철없이 행동했을 뿐이에요.”“이제 열일곱 여덟 살 소녀라구요. 무슨 나쁜 마음이 있어서 그랬겠어요?”“이분이 어제 용전에서 용전 항도
”그래, 소혜야 너무 풀이 죽어 있을 필요는 없어.”“사람이 잘못했으면 인정해야 하는 거야!”“앞으로는 그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여도사는 미소를 머금고 화소혜를 위로했다.화소혜는 교활하고 제멋대로였지만 여도사의 말은 잘 따랐기에 더 이상 그녀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화풍성도 더 이상 화소혜를 꾸짖지 않고 미소를 띤 채 하현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하현, 내가 가정 교육을 그리 엄하게 하지 못해서 미안하오. 용서하시게.”“아, 어떻게 하다 보니 소개가 늦었구만.”“이분은 오매 도교 사원의 사송란이라네. 내 여식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네.”“내 여식 소혜도 오매 도교 사원 문하에서 수행을 하고 있다네.”“우리 집안 사정을 듣고 이분이 와서 돌봐주고 있어.”“사송란, 이미 알고 있다시피 이분은 하현이야. 하 세자, 하 지회장이시지. 지금 항성과 도성에서 가장 귀한 분이셔.”화풍성은 두 사람을 서로에게 소개하며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하현은 예의상 오른손을 내밀었다.“사송란, 반가워요.”하지만 하현은 조금 놀랐다.오매 도교 사원은 그도 들은 적이 있다.오매 도교 사원은 200년 전에 세워졌으며 강남 지방의 무예 성지였다고 한다.오매 도교 사원이 배출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영충권이었다.그는 강남 지방에서 천하무적이라 불렸다.이 여도사는 그런 명망 있는 오매 도교 사원에서 왔던 것이다.그러니 그 기질이 보통 여자와 달랐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하 세자, 반가워요.”사송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하현과 잠시 눈을 마주 보는 그녀의 눈에 경계의 빛이 돌았다.게다가 하현을 심하게 의식하는 듯한 눈빛도 스쳐 지나갔다.사소란은 화풍성에게 시선을 돌리며 당당한 태도로 거침없이 말했다.“어르신, 화 씨 집안에 일어난 일에 대해 우리 성녀께서 이미 들어서 알고 계십니다.”“성녀께서 어르신 집안의 일을 해결하라고 특별히 절 보내셨습니다.”“괜찮
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화소혜는 이미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하현을 노려보았다.“하 씨, 당신 이게 무슨 짓이에요?”“방금 송란 언니가 날 옹호하는 말을 했다고 지금 불만을 품고 오매 도교 사원의 귀한 물건을 부숴 버린 거예요?”“화가 났으면 나한테 분풀이를 했어야죠! 우리 송란 언니가 뭘 어쨌다고 이러는 거예요?”“이 풍수판에 문제가 있어요”하현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화소혜를 바라보았다.“아니면 풍수판의 재질에 문제가 있든가요.”“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사송란은 매서운 눈빛으로 하현을 쏘아보았다.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숨길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우리 오매 도교 사원의 풍수판은 거의 200년 가까이 전승되는 보물이에요. 천금과도 바꿀 수 없다구요!”“매번 밖으로 풍수를 보러 갈 때마다 이 풍수판을 사용해야 해요. 그리고 이 풍수판 덕분에 그동안 우리 오매 도교 사원이 많은 일을 해결했구요!”“지금 우리 오매 도교 사원의 풍수판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이 일은 지금 분명히 말하지 않으면 절대 넘어갈 수 없어요!”화소혜는 냉랭한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방금 하현이 사송란의 풍수판을 망가뜨리는 걸 보고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다.어떻게 감히 사송란의 풍수판을 던져버릴 수가 있는가?아무리 마음을 진정시키려 해도 도무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하현, 오매 도교 사원은 무예의 성지이지만 의술, 풍수, 관상 등에도 선대에서 내려오는 공력이 대단한 곳이에요. 보통의 풍수사나 의사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구요.”“이 풍수판은 나도 여러 번 본 적이 있는데 오매 도교 사원의 보물임에 틀림없어요.”말을 아끼고 있던 화풍성이 결국 앞으로 나서서 입을 열었다.“방금 자네가 부순 것은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오매 도교 사원의 풍수판이 확실하다네.”“만약 하현이 잘못 보았거나, 실수로 이런 거라면 내가 대신 보상하겠네. 우리 서로 아는 사이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렇게 처리하면 안 되
”이런 무례가 어디 있어요?”“오매 도교 사원이 어떤 곳인지 알고나 하는 거예요?”“우리 오매 도교 사원은 강남 지방의 무예 성지라구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싶어 하는지 알기나 해요? 10년 동안 노력해도 들어오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구요?”“그리고 어르신은 매년 우리 사원에 많은 돈을 기부하시고 있어요. 그만큼 어르신과 우리 사원은 돈독한 사이라는 거죠!”“그래서 항상 우리 사원은 화 씨 집안을 물심양면으로 지켜주고 도와주고 있다구요!”“당신이 지금 하는 짓은 우리 사원과 어르신과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거예요!”“당신이야말로 무슨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군요! 속이 아주 시커먼 사람이네요!”사송란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화풍성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얼른 미소를 띠며 말했다.“사송란, 당신이나 하현이나 모두 내 사람들이야. 서로 이렇게 얼굴 붉히지 마. 하현도 그런 뜻이 아닐 거야. 좋은 마음으로 한다는 것이 그만...”“좋은 마음?!”사송란은 화풍성의 말을 잘랐다.“이게 어디 봐서 좋은 마음이에요?”“어르신, 저는 오매 도교 사원에서 핵심 인물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원에서 수련한 제자입니다!”“외부에서는 제가 오매 도교 사원을 대표한다는 말이에요!”“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의심을 받고 귀중한 보물까지 망가졌으니 제가 어떻게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겠어요?”“저 사람이 우리 오매 도교 사원을 모함한 것은 바로 어르신을 모함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그러니까 하 씨!”사송란은 하현에게 매서운 시선을 옮기며 단호하게 말했다.“당신이 실증을 제시하지 않는 한 우리 오매 도교 사원의 풍수판에 음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어요!”“당신이 증명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린 당신을 사원으로 데려가서 처단할 겁니다!”“하 씨. 능력이 있거든 어디 증거를 내놓아 보세요!”“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많은 돈을 내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오매 불교 사원 문 앞에
뭔가 있었던 일을 본 것처럼 말하는 하현을 보고 화 씨 가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화소혜가 냉소적인 표정으로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하현, 무슨 점쟁이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반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다고 그러는 거예요?”하현은 담담한 눈길로 화소혜를 쳐다보았다.“넌 아직 공부 중이라 평일에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잖아?”“너한테는 음산한 기운이 없어.”화소혜는 하현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하지만 다른 화 씨 가족들은 다들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그러다가 누구랄 것도 없이 표정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맞아. 요즘 도박장에 가기만 하면 잃는다니까.”화천강은 가벼운 기침을 여러 번 하더니 얼굴이 창백해졌다.화 씨 집안 부녀자들도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확실히 그들은 예전보다 자주 아팠다.비록 가벼운 병치레 정도라서 약을 먹고 금방 나아지긴 했지만 말이다.사람들은 저마다 곰곰이 되새겨보면 볼수록 오싹한 느낌이 엄습해 왔다.화 씨 가족들의 체질상 항상 귀한 보양식을 일 년 내내 복용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일 년에 한 번 아플까 말까 했다.화풍성도 곰곰이 생각에 잠긴 뒤 슬슬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그래, 맞아. 지난 반년 동안 나도 몸이 좀 안 좋았어. 각혈도 여러 번 해서 살 날이 석 달도 안 남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저도 들었습니다.”사송란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당신 말이 옳다고 치자구요. 화 씨 집안에 음기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우리 오매 도교 사원 풍수판에 음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해요!”“우리 풍수판이 화 씨 가족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은 더더욱 증명되지 않았어요!”하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사송란, 만약 이것이 정말로 증명된다면 그건 너무나 큰 비극입니다. 사람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니까요.”“하지만 당신의 풍수판에 음기가 짙게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후 화소붕은 화 씨 집안 주치의에게 응급처치를 받았다.그러나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거워졌다.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풍수판 조각을 보고 있자니 화 씨 가족들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이제 믿겠어?”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화소혜는 얼굴이 굳어지며 말했다.“하현, 셋째 오빠가 쓰러진 건 우연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 이것으로 실증되었다고 할 수 없다구요!”“실증까지 해야 해?”하현은 소리 없이 웃으며 조각을 집어 들어 손가락으로 튕겨 다시 떨어뜨렸다.한낮의 빛나는 햇살이 조각 위에 부서졌다.이윽고 ‘피'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검은 음기가 하늘로 치솟아 흉악한 몰골을 한 귀신의 형상을 만들었다.마치 원망과 독기가 가득 서린 귀신의 비명 소리를 내며 햇빛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차롹.”음기가 가시는 순간 남은 조각이 살짝 요동치더니 한 덩어리 가루가 되어 연기처럼 사라졌다.“이게 실증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파편일 뿐인데 이 정도야. 만약 가족 중 누군가가 이 풍수판을 건드렸다면 아마도 큰 재난이 벌어졌을 거야!”“그리고 이 풍수판으로 보는 풍수에는 절대 음기가 깃들어 있어. 설령 이 풍수로 현재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임시방편에 불과해!”“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3년 혹은 5년 뒤 가족이 하나둘 병으로 죽을 수도 있어.”“나도 오매 도교 사원이 일부러 이 일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우연이었으면 좋겠어...”하현의 말을 듣고 화풍성은 눈을 가늘게 떴다.그 모습에 사송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 버렸다.“아버지, 왜 이렇게 하현을 믿으세요?”화소혜가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리며 화풍성을 바라보았다.“지금 보고도 모르시겠어요? 하현은 지금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라구요! 우리 집안과 오매 도교 사원을 이간질하려는 수작이에요!”화소혜는 지금 정말로 하현의 목이라도 조르고 싶은 심
”하 세자, 농담도 참.”화풍성은 억지로 웃으며 화제를 돌려보려고 애썼다.“하지만 하 세자가 한 말은 틀리지 않았어. 지난 반년 동안 우리 집안엔 이런저런 불길한 일이 많았어. 내 몸은 차치하고라도 우리 자식놈들이 자네한테 줄줄이 밟혀 돌아오지 않았나?”“자네의 뛰어난 능력과 실력 때문에 그랬겠지만 우리 집안의 기운이 예전과는 확실히 뭔가 다르네.”“그래서 난 자네를 믿기로 했어!”화풍성은 다른 각도에서 이 일을 설명했다.하현과 가족들 사이의 불미스러운 일을 무겁지 않게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진심도 함께 덧붙인 것이다.하현은 웃으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일어서며 말했다.“그렇다면 정오에 어르신과 함께 집안을 좀 둘러보겠습니다. 좀 둘러보면 제 추측이 확실한지 아닌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화풍성이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수고스럽지만 그렇게 좀 해 주게. 이봐! 여기 정리 좀 해!”...하현이 집안의 풍수를 이리저리 살펴보려고 한 그 시각, 사송란은 뒤따라오는 화소혜를 무시한 채 얼른 도요타 엘파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차가 도성 송산 빌리지 지역을 빠져나오자 사송란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앱을 켜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전화기 건너편에서 묵직하고 온화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사송란의 눈에 부드러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하현 앞에서 보였던 거만하고 콧대 높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하구천, 상황이 좀 바뀌었어요. 중요한 순간에 하현 그 망할 놈이 나타나서...”“그리고 그의 도행은 대단할 뿐만 아니라 풍수 관상에도 조예가 깊었어요.”“글쎄 우리 풍수판을 꿰뚫어 보더라니까요.”사송란은 계속 말을 이었다.“내가 제일 걱정하는 건 그가 화 씨 집안에 도는 음기를 꿰뚫어 보고 그것을 해결한 후에 화풍성 그 늙은이의 목숨을 살리는 거예요!”“화 씨 집안 젊은 세대들은 모두 당신 진영에 들어갔지만 화풍성 그 늙은이
사송란이 하구천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을 때 화풍성은 이미 하현과 집안 내부를 한 바퀴 돌았다.화 씨 집안 조상들의 위패를 모셔 둔 사당에 도착했을 때 하현의 표정은 바로 굳어졌다.그리고 나서 그는 손짓을 하며 화풍성에게 다른 사람들을 모두 물리치고 믿을 수 있는 사람 한 명만 곁에 남기라고 했다.화풍성은 하현의 의도를 알 수는 없었지만 손을 흔들어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나가게 하고 집사 한 사람만 남게 했다.집사는 육십 대로 보이는 노인이지만 아직 원기가 왕성했다.다부진 체격과 근엄한 표정을 보니 살육을 경험한 적이 있는 거물임에 틀림없었다.“하현, 이쪽은 우리 집안 집사, 주 씨라네.”“나와 함께 자랐고 여러 해 동안 나와 함께 살아오고 있어. 내 아들들보다 더 신뢰하는 인물이지.”화풍성은 허심탄회하게 그를 소개했다.소개는 간단했지만 화풍성 곁에서 집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단번에 드러났다.“만약 험한 일을 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분부 내려 주시게. 주 씨는 날 위해 생사를 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네.”주 씨는 아무런 표정 없이 하현을 향해 그저 고개를 약간 끄덕일 뿐이었다.그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하현은 그가 말보다 주먹이 먼저인 사람임을 알아차렸다.만약 누군가 화풍성을 해치려 한다면 이 집사가 가장 먼저 나서서 그를 대신해 총칼을 막아줄 것이다.“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남기라고 한 것은 잠시 후에 그가 어르신을 보호해 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잠시 후 제가 손을 못 비울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하현은 화풍성과 집사를 화 씨 집안 사당 중심부에 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 서게 한 후 조용히 말했다.“이따가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분은 절대로 햇빛이 비치는 곳을 떠나선 안 됩니다.”하현의 진지한 얼굴에 화풍성은 절로 긴장이 되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인가?”“도대체 뭘 하려고 그러는 건가?”“설마, 그게 우리 집안에 일어나고 있는 일과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