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담담한 기색이었다. 그도 의학과 약리학을 확실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말한 상황이 박 교수의 검사 결과와 같다는 것이다. 박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김애선은 기껏해야 하루 밖에는 시간이 남지 않았다. 이쯤 되자 왕화천은 김애선이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하현이 말한 주화입마의 상태라고 믿었다. 이 두 가지 계통은 원래 함께 사용할 수 없다. 의학계의 수단으로는 김애선의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생각에 미치자 왕화천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도련, 기왕 김애선의 상황을 알고 있으니 그녀를 구해 줄 수 있겠어?”“별 일 아니죠.”하현은 담담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내 조건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살려 줄게요.”“첫째, 주아와 그의 어머니에게 진상을 밝히고 해명 할 것.”“둘째, 주아를 회장 자리에 앉히도록 할 것.”“이 조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미안하지만 다른 훌륭한 사람을 찾아 보는 게 좋을 거예요.”왕주아는 자신의 아버지 얼굴에 구름이 짙게 깔리는 것을 보고 노발대발 화를 낼까 봐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 “그래, 약속하지.”왕화천은 하현을 깊이 쳐다보았다. 하룻밤을 보내며 그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 지금 그가 손짓을 하자 여지원이 서류를 가지고 왔다. “이건 임명 문서야. 지금부터 주아는 우리 왕씨 그룹의 회장이야. 그룹의 모든 업무를 책임지게 될 거야.”“주아가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이사회는 주아를 해고할 수 없어.”“주아는 원래 왕씨 그룹의 3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다 회장 자리까지 앉았으니 주아의 능력으로는 분명 잘 감당할 수 있을 거야.”왕화천은 복잡하기 그지 없는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는 여태껏 주아를 상석에 앉힐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김애선을 위해 그는 이 중요한 자리를 내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왕주아의 총명함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단 그녀에게 그룹을 장악할 시간을 주면 그때
하현이 승낙하는 말을 듣고 왕화천은 한숨을 내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현, 비록 네 조건은 내가 다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미 성의를 다했어.”“너도 선이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어.”“내일까지 기다리라고는 하지마. 내일까지 기다렸다간 아마 평생 식물인간이 될 거야.”하현이 웃으며 말했다. “성의는 나쁘지 않았어. 적어도 나한테 태도를 보였으니.”“걱정 마. 나 하현은 말한 대로 하니까.”이어 손을 흔들며 다른 사람들에게 떠나라고 손짓을 하고 자신은 김애선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김애선을 보며 하현은 무작위로 메스를 꺼내 그녀의 정맥을 잘랐다. 한기를 머금은 핏방울이 튀어나와 병실의 온도를 몇 도 떨어뜨렸다. 이 장면과 함께 김애선의 몸은 눈에 보이는 속도로 부드러워졌다. 그러자 하현은 김애선의 이마를 두드렸고 그녀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몇 분 후 하현은 가볍고 여유로운 얼굴로 병실을 나왔다. 하현이 몇 분 만에 나오는 것을 보고 왕화천은 황급히 앞으로 나가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 도령, 어떻게 된 상황이야?” 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김애선의 한증을 해결했어요.”“짧은 시간 안에 깨어날 테니 당신들이 직접 한의사를 찾아가 관리를 해주면 됩니다.”“좋아! 너무 잘 됐네! 너무 잘 됐어!”하현의 말에 왕화천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얼굴의 초췌함과 피로가 싹 가셨다. 박 교수와 사람들은 더 이상 김애선과 함께 고생할 필요가 없어 반가운 기색이었다. 그리고 난 후 검사를 통해 김애선의 온몸이 경직되어 있던 것이 실제로 완화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몸조리만 잘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왕화천은 결과를 보고 참지 못하고 말했다. “하 도령, 역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네. 감탄했어!”이때 왕화천은 정말 하현을 좋게 보았다. 만약 쌍방이 대립하지 않았더라면 왕화천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현을 자신의
하현은 농담조로 말했다. “왕 부회장님, 이렇게 오랫동안 사시면서 평범한 이치도 하나 모르셨어요?”“사람을 해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사람을 경계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내가 당신을 왜 이렇게 경계하는 지 설마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왕화천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하 도령이 공연한 걱정을 하네. 나는 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 너에게 맞춰줬어.”하현은 웃으며 왕주아를 데리고 떠났다. 하현의 모습이 사라지자 왕화천은 눈을 번뜩이더니 잠시 후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정 세자, 내일 내가 왕가 가족 회의에서 왕주아에게 해명을 할 거야.”“그와 동시에 너와 주아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거야!”“참, 그 하현이라고 하는 남자는 청허 도장을 쉽게 이겨서 나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그건 세자가 방법을 생각해 보길 바라.” “가장 좋은 건 주아가 해명을 받은 후 우리가 그를 마음껏 가지고 노는 거야.”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 될 거야.”전화는 소리 없이 끊어졌고 왕화천의 얼굴에는 잔인한 웃음이 떠올랐다. 내일, 모든 것은 내일 이뤄질 것이다!내일, 그는 김애선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것이다! 내일, 그는 대구 정가와 가족이 될 것이다!그리고 내일, 그는 용문 대구 지회장 자리에 성공적으로 오늘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자 왕화천의 얼굴에는 싸늘한 웃음이 떠올랐다. ……왕화천이 뒤에서 칼을 꽂는 것에 대해 하현은 잘 알지 못했다. 설사 알게 되더라도 그는 큰 반응이 없을 것이다. 이런 행동 스타일이 왕화천의 성격에 부합하기 때문에 만약 왕화천이 그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면 그는 손을 쓰기도 민망할 것이다. 향산 별장으로 돌아가 하현은 진주희와 조남헌에게 각각 연락해 내일 해야 할 일들을 준비했다. 최근 이 두 사람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은 이미 다 끝내 놓았다. 이제 하현이 마지막 일만 완성하면 용문 대구 지회를 완전히 통합할
10시, 나가주, 왕씨 그룹 빌딩 대회의실. 회의실에는 그룹의 모든 고위층 임원이 앉아 있었고 각 사람 모두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어, 그룹 내에서 엄청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왕주아와 담담한 기색의 하현이 들어오자 장내는 온통 자세히 살펴보는 눈빛이었다. 이 시선들 중에는 경멸하고 의심하고 오만불손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하현이 보고 싶어하는 순종의 눈빛은 없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왕주아가 갑작스레 상석에 앉는 것이 그들의 이익을 해치고 심지어 그들이 과거에 운영해오던 모든 것들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반항을 했다. 그 중에서도 아르마니 정장에 시가를 물고 건들건들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가 가장 못마땅해했다. 텅 빈 회의실에서 그는 연기를 뿜어대며 거리낌없이 행동했다. 왕주아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주석의 자리로 가서 앉아 마이크를 켜고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아셔야 할 겁니다.”“오늘 제가 정식적으로 회장 자리에 취임했습니다. 다른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김애선 전 회장을 지지해 주신 것처럼 변함없는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앞으로 더 잘 하시면 연말 보너스와 배당금이 모두 오를 것이라고 믿습니다.”“지금 제가 오늘 초빙한 하현 집행 회장님을 소개합니다.” “앞으로 우리 왕씨그룹에서 이 분이 저의 뜻을 대변할 겁니다.”“이 분이 한 말은 제가 한 말과 같습니다!”“이 분의 명령은 어김없이 완수되어야 합니다!”“반대하는 사람은 알아서 물러 나세요!”왕주아의 싸늘한 얼굴에는 한기가 가득했다. “제 말 다들 이해하셨죠?”장내는 조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하현을 쳐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평상복을 입은 하현은 위아래 입은 옷을 다 합쳐도 20만원을 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대구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무슨 큰 인물도 아닌 셈이었다!그래서 이 임원들은 모두 의아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아르마니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동시에 손에 들고 있는 자료들을 뒤적거렸다. 이 녀석은 제멋대로 굴면서 체면을 전혀 세워주지 않는 내력이 있었다. 곧 하현은 그의 자료를 찾았다. 김정준, 김애선의 사촌 동생이자 금정 김씨 집안의 방계였다. 가장 중용한 것은 그가 전 집행 회장이었다는 것이다. 하현이 상석에 앉는다는 것은 이제 그가 이미 평범한 임원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하현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왕주아는 차가운 눈동자를 쓸어 내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김정준씨, 좀 더 머리를 써서 말씀을 해주세요.”“내가 무슨 근거로 상석에 앉았는지 알고 있다면서요. 당신의 몇 마디 말로 저를 깎아 내릴 수는 없어요.”“그리고 내가 회장이 된 이상 집행 회장으로 누구를 임명하든 내가 믿을 만한 사람으로 임명할 권한이 있습니다.”“불만이 있다면 이사회에 가서 저를 고소할 수 있어요!”“그밖에 당신의 태도에 주의해 주세요. 여기는 회의실이지 당신네 집 거실이 아닙니다!”“만약 당신이 회의를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짐 싸서 나가세요. 아무도 안 막으니까요!”“허, 나보고 꺼지라고요?”김정준은 거드름을 피우며 곧장 일어나 시가에 불을 붙이며 앞으로 나가 왕주아의 얼굴에 연기를 한 모금 내뿜었다. “왕 회장님, 내가 전 집행 회장으로 매일 밥만 축낸 줄 아십니까?”“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저는 벌써 상성재벌 대구 대표와 대리권을 따냈습니다.”“지금 왕씨그룹 전체와 심지어 주주총회 사람들도 다 알고 있어요.”“이 계약만 확정되면 우리 왕씨그룹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거고 두 배로 오르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간단히 말씀 드리자면 제가 상성재벌과의 계약만 따내면 모든 사람의 재산을 두 배로 늘릴 수 있어요!”“하지만 방법이 없네요. 오늘 아침 집행 회장직에서 해임이 됐어요.”“이렇게 된 이상 저는 계속 이 계약을 얘기할 수 없을 겁니다.”“협력을 못하면
이 모든 것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왕주아가 오늘 김정준을 해임했기 때문이다.그래서 만약 왕씨 그룹의 주식이 하한가로 떨어지면 왕주아는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마 그녀는 이것을 위해 첫날에 책임을 지고 사임을 해야 할 것이다!심지어 이것들은 모두 왕화천이나 김애선이 왕주아를 위해 파놓은 구덩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녀가 첫날 취임하자마자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임을 한다면 그것은 그녀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지 왕화천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것들을 이해하고 현장에 있는 임원들 중 아무도 바른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연극을 보듯 왕주아를 쳐다보며 그녀가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하는지 보고 싶어했다! 왕주아가 눈썹을 찡그리고 있을 때 김정준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꼬았다. “왕 회장님, 저를 집행 회장 자리로 다시 세워주실 지에 대해서는 먼저 얘기하지 않겠습니다.”“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임원들과 저에게 사과를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회장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몇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것이 허사로 돌아가고 그룹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주식을 폭락하게 만들었잖아요!”“이건 다 당신 책임입니다!”이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임원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곧 누군가가 나섰다. “맞습니다. 왕 회장님, 당신 때문에 우리가 입은 손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큽니다!”“왕 회장님, 저희들의 마음을 차갑게 만들지 마세요!”“저희들은 모두 회사 원로인데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하고 있습니다!”왕주아는 안색이 안 좋아졌다. 그녀는 이것저것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런 장면은 예상하지 못했다. 왕주아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고 있을 때 하현이 갑자기 책상을 걷어찼다. “퍽!”“개자식! 하나같이 임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소한 일 하나도 해결을 못해?”“일개 상성재벌의 대리권 하나 일 뿐인데 이럴 수 있는 거야?”“너희들을 좀 봐. 하나같이 일 없이 놀
“해명? 지금 바로 해명해 줄게.”하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가더니 담담한 표정으로 뺨을 한 대 더 때렸다. “퍽!”“조그만 임원 하나가 감히 회장과 집행 회장을 협박해?”“퍽!”“어디서 그런 패기와 용기가 나온 거야?”“퍽!”“방금 왕 회장님이 말씀하셨지? 내 뜻이 곧 회장님 뜻이라고. 내가 때리는 것도 회장님이 때리는 거랑 똑같아!”“퍽!”“전 집행 회장으로 그렇게 많은 월급을 받고 일도 제대로 하지도 않고 그룹에 기여하지도 않으면서 계약한 일을 가지고 그룹을 협박하는 거야?”“퍽!”“그룹에서 월급을 주는 건 계획을 짜내라는 거지 반란을 일으키라는 게 아니야.”뺨을 몇 대 맞자 김정준은 코가 멍들고 얼굴이 부어 올랐지만 고함을 지르며 말했다. “어린 놈이! 네가 감히 나를 때려!”“분명 너와 왕주아 때문에 상성재벌이 우리 합작을 취소할 거야!”“이건 너희 둘 책임이야!”“우리 둘 책임이라고?”하현은 미소를 지었다. “회사 임원으로서 너는 회사의 문제를 해결할 책임과 의무가 있어.”“너는 계속 연락하는 업무를 해왔잖아. 지금 네가 집행 회장 자리에서 해임됐다고 계약이 끊어졌다고? 대리권이 없어졌다고?”“이렇게 되고 보니 전에 네가 계약을 따낸 적이 있는지도 너무 의심스러운데?”“혹시 일이 진행이 잘 안된 거 아니야? 일이 탄로날까 봐 왕 회장이 상석에 앉은 틈을 타서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그러는 거야?”“이런 사소한 일이면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있는데 네가 감히 왕 회장을 협박해?”“너 머리가 망가졌어? 아니면 그만 두고 싶은 거야?”“일 하기 싫으면 지금 당장 나가!”하현은 말을 마치고 김정준은 발로 걷어차며 담담하게 명령했다. “여기, 사직서 가져와. 다시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서명하고 꺼지게 해!”말을 마치고 하현은 그곳에 있던 임원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좀 충동적이라 여러분들을 놀라게 한 것 같네요.
새파랗게 질린 김정준을 보며 하현은 자료 하나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상성재벌이 별거야? 중국의 재벌일 뿐이야!”“대리권을 따기가 어려워? 이런 일을 회장이나 집행 회장이 나서야 하는 거야?”“여기 있는 어떤 임원도 다 따낼 수 있는 거야!”“그러고서도 너희들이 매년 2억 이상의 월급과 배당금을 받을 자격이 있어?”“그룹이 너희들에게 마른 밥 먹이려고 키우는 거야?”하현은 사직서를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 “만약 누구든 나 하현이 너무 날뛴다고 생각하면 그건 말이 안 되는 생각이야.”“혹시 자기 실력에 한계가 있다고 느끼거나 이런 업무를 감당할 수 없다면 간단해. 썩 꺼져!”“지금 물러 나는 사람은 내가 올해 월급과 배당금은 한 푼도 깍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하현의 말을 듣고 장내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처음에 소란을 피우던 김정준조차도 지금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 하현을 계속 도발하고, 뻐기다가는 하현에게 차여 그룹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주아도 차가운 눈빛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 그녀는 하현과 한 편이여야만 했다. 그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이견이 있으면 방금 하현이 한 모든 말은 우스갯소리가 될 것이다. 게다가 요 며칠 함께 지내면서 그녀는 하현에 대해 100% 신뢰하게 되었다. 그의 이러한 행동들은 모두 의도적인 것이지 제멋대로 하는 행동이 하나도 없었다. 김정준의 안색은 변하고 또 변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오늘 왕주아를 강제로 퇴진시키지 못한다면 그는 왕화천과 김애선에게 해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 두렵긴 했지만 김정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안 좋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씨! 이 말들이 다 무슨 뜻이야?”“배은망덕하네?”“우리 임원들 한 사람 한 사람 다 고생해서 일을 했기에 오늘의 그룹이 있었다는 걸 분명히 알
최희정은 하현이 어디서 이 명함을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맞아. 정말로 형홍익 명함인데?”우다금은 최희정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를 버럭 내었다.“아휴! 잘난 데릴사위가 형홍익의 명함을 얻었으니 이제는 금정 최고 거물의 명함도 받을 수 있겠군그래!”“설 씨 집안도 대구 정 씨 가문과 연락이 닿아 아홉 번째 집안이 되어 꽤나 번성하고 발전했을 텐데 왜 이렇게 변한 거야?”“도와주고 싶지 않으면 그냥 말로 하면 되지 생색은 한껏 내면서 이런 핑계나 대고 있으니 원!”“정말 실망이야!”“이렇게 우릴 무시할 거면 확실히 말할 것이지! 앞으로 내가 절대 이 집안에 얼씬을 하나 봐! 절대 안 올 거야!’우다금은 노점에서 사 온 선물 꾸러미를 떠올리자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이 쓴 돈을 만회하기 위해 거실에 있는 찻주전자라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우다금의 말에 최희정과 설재석은 어이가 없어서 몸을 부르르 떨었고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설은아는 이 광경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손을 잡아끌었다.“하현, 당신이 좀 도와줘.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이 정말...”이쯤 되니 설은아도 자신의 행동이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다.하현과 최희정은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런 하현이 최희정을 위해 나서서 우 씨 고모를 도와주려 하겠는가?설은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듣고 하현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이런 사소한 일로 형홍익 어르신을 귀찮게 할 필요도 없어. 내 하녀한테... 그러니까 내 친구한테 말 한마디만 꺼내면 돼.”말을 마치며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형나운에게 전화를 걸어 우소희의 취업 문제를 도와달라고 했다.그는 1분도 되지 않아 전화를 끊었고 우다금 모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잘 해결되었습니다.”“거짓말하지 마!”“어디서 계속 장난질이야!”“데릴사위인 주제에 금정 최고 책임자라도 되는 양 허
”허! 제부! 시도도 안 해 보고 노력도 안 했는데 당신들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잖아요!”“그게 도와주겠다는 사람 태도예요?”우다금은 냉소적인 얼굴로 쏘아붙였다.“당신들이 우릴 친척이라고 생각했으면 어떻게 우리 소희를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제부, 난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내가 자존심도 다 버리고 도와달라고 이렇게 애원하는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정말 너무 뻔뻔들 하네!”최희정은 자신보다 더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정신을 다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찾아온 언니를 내가 영광으로 생각하며 대했어야 한다는 거야?”“엄마, 아빠...”설은아는 또 말다툼이 시작되려 하자 걱정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하현, 혹시 이모 도와줄 수 있겠어?”설은아는 하현이 금정은행에서 형홍익의 개인 명함을 내놓은 것이 문득 떠올랐다.그렇다면 하현과 형홍익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얘기였다.그래서 하현이 방금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는 걸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허풍이 아니라 정말로 도와줄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눈앞의 난처한 상황을 보고 설은아는 어쩔 수 없이 하현에게 입을 열었다.“하현, 정말 도와줄 수 있어?”설은아의 말에 우다금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은아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면 안 되겠니?”“네 전 남편이 얼뜨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어?”“도와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면 되지!”“능력이 없다는 둥 변명만 늘어놓더니 이제는 얼뜨기를 내세워 나한테 헛바람이라도 넣으려고 그래?”“놀리는 거야? 놀리니까 재미있어?”“우린 바보가 아니야!”말을 마치며 우다금은 화가 나서 숨을 헐떡거리며 눈을 부라렸다.그녀는 설은아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이런
”제부, 희정아, 은아야. 이 일은 아무래도 너네들이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어쨌든 너네들은 매일 친구 모임에도 다니면서 여러 거물들과 친분도 있고 인맥도 많을 거 아냐?”“너네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 같은 과부와 내 딸은 어떻게 살아?”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희정의 식구들은 신세한탄과도 같은 말을 내뱉는 우다금을 보고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너네들, 우리 소희가 일자리도 없이 집에서 폐인이 되어 가는 걸 차마 볼 수 있겠어?”“양심에 찔리지 않겠냐고?”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우소희는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손을 놓은 뒤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쳤다.“엄마, 희정이 이모나 이모부가 별로 능력이 없는 것 같아.”“이 사람들은 이제 돈이 많아서 우리 같은 가난한 친척들은 아예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나 봐!”“돈푼깨나 좀 있다고 잘난 줄 알아?”“능력 있다고 자랑이나 하지 말던가!”하현은 우소희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머리가 텅텅 빈 데다 당돌하기까지 했다.이 말을 듣고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모, 우리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은 금정에서 확실한 인맥이 없어요.”“게다가 형 씨 가문 그룹은 금정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로 미술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굴지의 그룹이에요.”“매년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 넘어요.”“그중에는 배경도 대단하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도 널렸고요.”“그런데 형 씨 가문이 우리가 뭐라고 우리 요구를 들어주겠어요?”“형 씨 가문 고위층과 아는 사이긴 하지만 취업 청탁을 할 만한 위치는 아니에요. 그럴 능력도 없고요.”“물론 우리도 최선을 다해 볼 거예요!”설은아는 냉정하게 말했다.그녀의 성격은 최희정과는 완전히 달랐다.겉으로 매정한 말을 못 한 채 질질 끌려가지 않았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고 실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지금 이렇게 말한 것도 한편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