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어르신! 왕 어르신! 움직이질 못하겠어요!”“움직일 수가 없어요!”이때 김애선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몸이 굳고 머리만 조금 움직일 수 있었지만 이내 자신의 혀에까지 마비감이 전해지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두려움이 들었다. “선아, 너 왜 그래?”왕화천은 자기도 모르게 김애선을 꼭 끌어안았고 그의 안색은 극도로 안 좋아졌다. 이때 김애선의 온몸은 얼음장같이 한기가 감돌았다. 분명 그녀의 한기가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떻게 이럴 수가? 의사가 올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거야?”왕화천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김애선을 정말로 좋아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의 본처를 불구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딸과 사이가 틀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김애선이 이렇게 된 것을 보니 그는 가슴이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김애선은 마지막 힘을 다해 대소변이 흘러나가지 않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애썼다. 그녀는떨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내가 다시 발작을 일으키면 다시는 회복하지 못하고 꼼짝 못하는 식물인간이 될지도 몰라요……”“왕 어르신, 살려 주세요. 식물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요……”이때 김애선은 이전의 거만하고 오만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온통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식물인간이 되는 것은 죽기 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당신은 식물인간이 되지 않을 거야!”왕화천은 아내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보배 병원 교수님이 이미 말하지 않았어?”“당신 병세는 루게릭병과 비슷하지만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고 했잖아. 일상에서 관리만 잘하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했잖아.”“게다가 이 병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킬 수 있는 거야? 어떻게 이럴 수가!?”“모르겠어요. 나도 모르겠어요.”김애선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하현! 하현이 틀림없어!”“전에 집에서 그가 하는 말이 내가
왕주아는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하현의 분석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애선이 뺨을 때렸다고 하더라도 차가 뒤집어 질 정도라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자, 많은 생각은 하지 말자. 여기 4조원 우리 절반씩 나눠 갖자.”하현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사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지회장 영패는 만년 얼음 옥을 조각한 것으로 원래 뼈에 사무치는 한기를 담고 있었다. 만약 고대 무술을 수련한 사람이 장기간 착용하면 나쁜 점이 없을 뿐 아니라 기를 모아 자신에게 이로운 점이 무수히 많았다. 보통 사람이 접촉하면 어느 정도 감기에 걸릴 확률이 있었다. 김애선과 같은 한기가 있는 사람은 이 물건에 닿으면 바로 발병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현이 왕화천이 이 지회장 영패를 가져가봐야 소용이 없다고 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이미 진주희와 조남헌에게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지회장 영패는 더 이상 인기 있는 물건이 아니라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왕화천의 상황을 생각하니 하현은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이 바로 소위 화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용문 대구 지회장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니 생각이 너무 많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왕주아는 이 안에 그렇게 많은 길이 있는지 몰랐다. 지금 그녀는 차를 몰면서 말했다. “하현, 4조원을 받아서 뭐 하러 나에게 나눠주는 거야?”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2조가 많은 건 아니지만 절대 적은 건 아니잖아.”“2조가 있으면 왕 아가씨의 능력으로 대구에서 자립할 수 있을 거야.”“그때가 되면 너는 더 이상 네 아버지와 김애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그리고 너도 네 어머니 병원비를 스스로 부담할 수 있잖아.”“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네가 이 돈을 받기를 바라.”그리고 하현이 말하지 않은 것이 한 가지가 있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그는 장북산을 왕주아에게 소개시켜
“그렇구나.”하현은 완전히 이해를 했다. “어쩐지 네 아버지와 김애선이 그렇게 너를 빨리 시집 보내고 싶어 하더라니.”“네가 가지고 있는 주식 때문이었구나.”“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계속 널 돕고 싶어. 내가 너에게 왕씨 그룹의 통제권을 되찾아 줄게.”하현은 왕화천을 제압하는데 관심이 갔다. 게다가 왕주아를 도울 수 있는 일이니 왜 안 하겠는가?“응. 고마워.”왕주아는 하현이 자신을 도와 왕씨 그룹을 되찾는 일이 터무니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하현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으려 했다. 차를 몰고 두 사람이 별장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하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하현은 핸드폰을 들고 한번 쳐다보았는데 안색이 좀 이상해졌다. 주시현?두 사람은 접촉이 많지 않았다. 주시현이 왜 지금 자기에게 전화를 한 거지?하현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왕주아에게 차를 길가 한 쪽에 세우라고 했다. 그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 “시현아, 무슨 일이야? 나 점심 사주려고?”“먹는 거, 먹는 거, 먹는 거, 너는 먹는 거 밖에 몰라?”전화 맞은 편에서 주시현은 매우 화가 났다. “너 무슨 일이야? 어제도 무단 결근하고 오늘도 안 오고. 너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너 내가 너 들여 보내려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지 알아?”“근데 이렇게 게으르다니. 이건 나를 안중에 두지 않는 다는 거야!”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난 벌써 3일 휴가를 냈어.”“3일 휴가? 너 정말 네가 무슨 높은 사람인 줄 알아? 아무렇게나 한 마디 하면 3일을 쉴 수 있게?”전화 맞은 편에서 주시현은 하마터면 화가 폭발할 것 같았다. “왕 도련님이 그렇게 말했다고 너 정말 진심으로 받아들인 거야?”“제발 부탁이야. 너는 신입사원이야. 출근하는 거에 신경 좀 쓸래?”하현은 싱긋 웃었다. “이렇게 말하면 왕 도령이 한 말이 방귀나 다름없게 되는 거 아니야?”“하씨, 너 왕
운전석에서 왕주아는 몸을 돌려 하현을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왕동석? 어떻게 된 일이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와 친분이 있는 아저씨가 있는데 아저씨 딸이 대성그룹의 영업사원 자리를 구해줬거든. 그래서나보고 출근 잘 하라고 그러는 거야.”“아니, 우리 왕동석 도련님이 왕 아가씨의 이름을 빌려 나한테 2억짜리 주문서를 찾아줬다는데 내가 왕동석 식구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거야?”왕주아는 ‘피식’ 가볍게 웃었다. “하현, 웃기지 좀 마. 아무렇게나 2조를 준 네가 한 달에 2백만 원을 받으면서 일을 하겠다고?”하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쩔 수 없어. 어른들 보기에 내가 지금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 아니면 왕 아가씨가 나한테 고위 임원 자리를 소개해줄래?”“좋아. 그럼 너 왕씨 그룹 임원 해. 내가 직접 권한을 줄 테니. 다만 이 임원자리를 맡고 있기는 쉽지 않을 거야.”왕주아는 웃으며 농담을 했다. 하현은 웃으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곧 페라리 488은 대성그룹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하현은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특별히 왕주아에게 자신을 먼 곳에 내려달라고 했다. 하현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왕주아는 액셀을 밟지 않고 흥미롭게 하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현은 확실히 정말 매력적이다. 하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구름 속에 있어서 너무 높아 도달할 수 없다고 느끼게 했다. 하지만 지금 출근하는 하현은 마치 옆집에 사는 오빠 같아서 손에 잡힐 듯 했다. 왕주아는 눈빛이 약간 흐리멍덩해져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진짜 하현인가?안타깝게도 그녀는 여자가 한 남자의 진면목을 연구하기 시작할 때 이미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대성그룹 업무부. 하현이 나타나자마자 주시현은 회의실로 그를 끌고 갔다.이때 회의실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모두 표정이 굳어 있었다. 왕동석은 이때 메
이때 주시현의 눈에 하현은 간신히 합격했던 것이 다시 낙방한 것으로 보였다. 자신의 큰 오빠는 말할 것도 없고 하현은 왕동석과 비교해도 하늘과 땅 차이였다. 주시현은 이때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앞으로 자신과 하현의 관계를 다시 맺어주지 않기를 바랬다. 꿩이 어찌 봉황과 어울릴 수 있겠는가?하현은 주시현의 표정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료를 몇 번 훑어 보고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육재훈이 전에 대성그룹에서 상품을 주문했고 약속한 대로 한 달 안에 대금을 결제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 결제를 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 같았으면 대성그룹의 이름으로 그냥 쳐 부셨을 것이고, 누구든 공포에 질렸을 것이다. 그러나 육재훈은 달랐다. 그는 임복원의 처남이었다!누가 감히 대구 1인자의 처남에게 강압적으로 대할 수 있겠는가? 무슨 웃기는 소리인가! 이 일은 평범한 일이라 할 수 있지만 상대방의 신분이 너무 평범하지 않기 때문에 일이 더 없이 번거로워졌다. “회의! 회의!”“오전 내내 회의를 했는데!”“너희들 중에 누가 가능성 있는 방안을 내놓은 사람 있어?”“만약 이 돈을 돌려 받지 못하면 우리는 올해 심사에서 다 영향을 받을 거야!”“그때가 되면 모두들 일 년 내내 헛수고 한 게 되는 거야. 몇 천만 원의 배당금은 아무도 받을 생각 하지마!”왕동성이 이 정도까지 말을 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퍽!”왕동석은 손에 든 커피잔을 바닥에 사납게 내리쳤다. “너희들 시도해 볼 용기도 없는 거야?”“너희들 말해봐! 너희들 밥 먹고 잠 자는 거 빼고 또 뭘 할 수 있어?”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고 재빨리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 도련님, 우리가 열심히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할 수가 없어요!”“육 도련님이 어떤 신분이신지는 저희들보다 더 잘 아시잖아요!”“가장 중요한 건 그가 최근에 손발이 잘
“첫째, 이건 작은 일이야. 내가 직접 처리하면 그만이야. 왕화천이나 왕주아에게 알릴 필요가 없어.”“둘째, 돈을 돌려 받을 수 있다면 나는 20%의 공제금을 원해.”“어때?”하현?돈을 돌려받겠다고?20%의 공제금?하현의 가볍고 여유로운 표정을 보고 다들 코웃음을 쳤다. 이 녀석은 자신이 누구를 상대하는 지 모르는 것 같다. 육재훈 같은 인물이 아무에게나 체면을 세워주겠는가?모르는 사람이 찾아가면 아마 발로 걷어차여 바로 기절할 것이다. 물론 그는 지금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그에게는 부하가 많다!하현이 나서는 것을 보고 주시현도 멍해졌다. 자기도 모르게 하현을 잡아 당기며 말했다. “하현, 너 헛소리 하지마!”“이 일은 네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너 허풍 좀 그만 떨 수 없어?”왕동석은 이때 살짝 어리둥절해하더니 하현을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왜 아직 정호준에게 죽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어쨌든 왕동석은 기껏해야 상류층의 변두리 사람이었다. 정호준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려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때 왕동석은 하현을 흥미롭게 쳐다보며 말했다. “하현, 너 이 돈을 돌려 받을 수 있겠어?”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전화 한 통이면 되는 일이야.”“좋아. 기왕 네가 이렇게 확신을 하고 말을 하니 그럼 이 임무는 너한테 맡길게!”“네가 정말 능력이 있어서 2백억을 돌려 받으면 내가 지금 당장 40억의 공제금을 줄게.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이 다 증인이야!”“그리고 오늘부터 너는 출근할 필요 없어. 매달 월급만 받으러 오면 돼. 약속할게.”이때 왕동석의 눈빛은 이상했다. 정호준이 아직 손을 대지 않았으니 육재훈의 손을 이용해 하현을 죽이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왕 도련님, 하현은 입만 번지르르할 뿐인데 그가 어디 이런 능력이 있겠어요?”“절대 상대하지 마세요!”주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현을 끌어당겼다. “하현, 너 빨리 자리 앉아.
“3일이나 필요 없다고?”예쁘장하게 생긴 판매원이 긴 다리를 흔들며 웃을 듯 말 듯한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며 말했다.“지난번처럼? 전화 한 통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하현은 화면을 누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응. 전화 한 통이면 돼.”“피식______”한 무리의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하현을 쳐다보는 눈빛은 비웃음으로 가득 찼다. 다들 하현이 심지은 그 두 사람과 계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왕동석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다. 주시현의 체면을 봐서 하현을 정식적으로 입사시켜주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현 이 날뛰는 어릿광대가 그것을 자신의 공로라고 생각하는 건가?이렇게 웃길 수가?지금 이 순간 현장에 있던 직원들은 경멸이 가득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몇 명의 여직원들은 하현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 놈은 촌놈일 뿐인데 자기가 정말 대구에서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왕동석이 주시현을 쫓아 다녀 하현의 체면을 조금 세워준 게 아니었다면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이런 폐물, 쓸모없는 인간이 정말 자신을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주시현은 원망하는 얼굴이었다. “하현, 됐어. 그만하면 됐어!”“그 동안의 일은 다들 알고 있어!”“너 아직도 시치미를 떼는 거야?”“이렇게 계속 시치미를 떼봐야 어릿광대처럼 보일 뿐이야. 알겠어?”왕동석은 옆에서 담담하게 말했다. “하현, 좀 착실하게 살아. 못하면 못한다고 해. 억지로 나선다고 좋을 게 없어.”왕동석은 맞아 죽어도 하현이 전화 한 통으로 육재훈을 평정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보잘것없는 하현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왕화천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해도 이 일은 성사될 수 없을 것이다. 하현은 담담한 기색으로 다이얼버튼을 눌렀고 곧 전화가 연결 되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육재훈, 30분 안에 대성그룹으로 와서 네 2백억 빚 청산해.”말을 마치고 하현은 상대방에게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고 전
하현이 병원으로 달려 갔을 때 상동수는 이전에 설유아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뺨을 몇 대 맞은 천명진 감독 등 사람들을 데리고 병원 1인실 입구에 앉아 있었다. 원래 하현의 압박으로 이미 그의 루나 시네마는 파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대구 여섯 세자 중 한 사람인 간 도련님의 보호를 받고 난 후 상동수는 의기양양해졌다. 그는 하현의 빽이 누군지 묻는 것도 귀찮았다. 직접 사람을 데리고 와서 위세를 떨쳤다. 특별히 천명진은 분명 작은 인물인데 병원에 도착한 후 병원 손수레를 걷어차거나 환자를 내쫓았다. 설유아의 병실 입구에서 하현에게 나와서 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병원 전체가 순간 난장판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멀리서 구경만 했는지 모른다. 설유아의 병실에는 대도 경수, 공해원과 변백범이 있었다. 원래 대도 경수가 사람들을 데리고 상동수를 해치우려고 했는데 어쨌든 여기는 대구지 남원은 아니었다. 그는 변백범 옆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범 형님, 하 도련님이 우리에게 설 아가씨를 보고 있으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이 날뛰는 어릿광대들이 여기 와서 행패 부리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건가요?”“그들을 죽이면 안되나요?”“죽여?”변백범이 담담하게 입을 열며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너 매일 때리고 죽이기만 하면 안돼. 게다가 여기는 대구지 우리 남원이 아니야.”“네가 여기서 손을 댔다가 상대방이 관청에 신고해서 너를 데리고 갈 수도 있잖아!”“자기 구역이 아니면 조용히 하고 있는 게 나아.”대도 경수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범 형님께서 아주 잘 가르쳐주시긴 했는데 문제는 우리가 여기서 이 사람들이 날뛰고 있는 걸 눈뜨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하 도련님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겠어요? 너무 만만하게 볼 거 같은데요?”변백범은 깊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체면이라는 게 지금 너한테 의미가 있어?”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