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한동안 대답할 말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주건국도 아주 난처했다. 좋은 물건이든 아니든 이것들은 하현이 그에게 준 성의였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그는 조금 미안해하며 말했다. “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밥이나 먹자!”바로 이때 하현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전화를 받았고 맞은편에서는 임정민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 도련님, 일이 생겼어요. 빨리 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고 하현이 다시 전화를 했을 때는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임씨 집안에 일이 생겼다! 비록 하현은 임씨 집안의 일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는 임정민이 조금 걱정이 되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재빨리 말했다. “아저씨, 제가 잠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천천히 드세요. 다음에는 제가 식사를 대접할게요!”말을 마치고 그는 주건국이 만류하는 것을 뒤로하고 자리를 떠났다. “허, 그가 준 버섯이랑 보이차로 요리를 했는데 이게 무슨 태도야?”하현이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것을 보고 이소연은 화가 나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폐인 놈이 우리한테 기대길래 밥도 주고 일 거리도 줬는데 이게 뭐야? 몇 마디 했다고 우리한테 눈치 주는 거야?”“이게 바로 천성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특징이야. 기본이 안됐어!”주시현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를 쫓아 다니는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 하현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저급한 사람이었다. 주건국도 아주 난처했지만 그는 여전히 해명을 했다. “하현이 잠시 일이 생겼다고 한 말 못 들었어? 방금 누가 전화했잖아?”“무슨 일? 그 촌뜨기가 방금 시골에서 왔는데 우리 대구에서 무슨 일이 있겠어?”“공짜 쌀이라도 뺏으러 간 건가?”“그랬겠지. 그가 이런 일 말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이소연은 냉소를 연발했다. “주씨,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앞으로 다시는 시현이와 그를 엮지마. 그 사람이
주건국은 장인 어르신이 뭘 하려는지 모르고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조카가 선물해 줬어요……”“조카? 좋네. 좋아. 그 조카한테 잘해줘!”아버지는 찻잎 찌꺼기를 조금 집어 입에 물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건 운남의 얼음종 보이차야. 국경지대에 이 차 나무는 딱 3그루 밖에 안 남아있어. 1년 생산량이 백병이 안돼.” “내가 전에 경매에서 본적이 있어. 경매 가격이 한 병에 거의 1억이었어. 이런 보이차를 너한테 선물하다니 너한테 엄청 효도했네!”주건국 일가는 멍해졌다.“네? 얼음종 보이차요? 한 병에 1억?”아버지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설마 내가 잘못 봤겠어? 연아, 이 보이차 반만 줘봐. 찻잎은 어디에 있어? 한번 보자!”주건국의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식탁 위의 냄비로 떨어졌다. 아버지는 이것을 본 순간 눈알이 튀어나왔다. “차 계란찜? 너희들 1억짜리 보이차로 차 계란찜을 한 거야!?”이소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버지, 그렇게 놀라게 하시지 좀 말아 주실래요? 이건 가난뱅이가 준 선물이에요. 어떻게 한 병에 1억짜리 보이차 일 수가 있겠어요?”아버지는 그녀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버려진 차 한 그릇을 따라 맛을 보더니 가슴을 부여 잡고 분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벌 받을 짓을 했네!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1억짜리 보이차야. 1억짜리 보이차로 계란찜을 만들다니……”“이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그럴 리가요!?”이소연은 아버지의 광기 어린 모습을 보고 잠시 동안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 수가 없었다. 1억짜리 찻잎이 자신에 의해 차 계란찜이 되었다. 관건은 자기는 먹어보지도 못했고 전부 주건국이 먹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소연은 피를 토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 이 냄새는 하수오 냄새인데?”원망이 극에 달해있던 아버지는 또 다른 냄새를 맡고는 식탁 위에 남아 있던 국물을 보더니 몇 번 살펴보고 난 후 화가 나서 펄쩍 뛰기
주시현은 쓰러진 엄마를 멍하니 쳐다보더니 잠시 후 정신을 차렸다. “하현 그 놈, 무슨 여 회장의 데릴사위라고 하지 않았어? 그는 분명 그 전처의 물건을 가져다가 우리에게 선물했을 거야!”“그러니 이 물건들이 다 진짜지!”이 생각에 주시현도 기절했다. 주씨 집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동시에 하현은 이미 택시를 타고 임씨 저택에 도착했다. 이때는 이미 해질녘이라 하늘 색은 아주 어두워졌고, 임씨 저택의 등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바닷바람이 부는 가운데 오래된 산장은 마치 전설의 귀신의 집처럼 보였다. “살기가……”하현은 임씨 저택에 들어가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 도련님, 오셨군요!”하현이 초인종을 누르자 곤경에 처해있던 임정민이 곧 맞으러 나왔다. 그리고 난 후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뒷마당을 향해 갔다. “방금 왜 갑자기 전화를 끊었어?”하현은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엄마한테 맞았어요. 방금 상황이 아주 엉망이었어요……”임정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걸으면서 많은 경호원과 호위병들이 앞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게다가 하나같이 군용 보호 복을 입고 방패를 들고 있었다. 이것 외에 다들 놀라고 두려워하며 안색이 안 좋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하현은 걸으면서 물었다. “하 도련님, 도련님이 떠나시고 나서 장천 사부는 두 시간 동안 뒷마당에서 술법을 썼고, 그리고 나서 그는 이미 망혼을 제도했다고 하면서 엄마의 악령을 쫓기 시작했어요.”“하지만 악령을 잘 쫓아내고 30분 정도 지나자 엄마가 깨어나더니 장천 사부를 때려 날려 버렸어요!”“열 몇 명의 경호원들이 엄마를 진압하려고 하다가 전부 중상을 입었어요!”“다행히 도련님이 마침 육재훈의 사지를 다 부러뜨려 그가 아버지께 도련님의 죄를 일러 바치러 갔어요. 아버지도 그 자리에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번엔……”임정민은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이때 땅에는 이미 20명 이상이 누워 있었는데 하나같이 모두 뼈가 부러져 있었고 심지어 일부는 숨을 많이 내쉬고 적게 들이 마시고 있었다. 도처에 사람들이 널려 있는 처참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임복원은 십여 명의 호위병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창백한 얼굴이었다. “살상무기를 사용하지 마. 아내를 다치게 해서는 안돼!”그는 자신의 아내가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임정민은 이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하 도련님이 오셨어요!”“하 형제!”이 말을 듣고 임복원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눈이 멀어서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역시 당신 말대로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하 형제님, 넒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세요. 한 번만 제 아내를 도와주세요!”“일이 잘 되고 나면 무엇을 요구하셔도 들어드리겠습니다. 제 목숨이 걸려도 문제 없습니다!”임복원은 지금 후회가 되었다. 하현은 점심때 부인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사실 이미 문제를 설명했던 것이다.말을 하면서 그는 무릎을 ‘탁’ 꿇었다. “하 형제님, 도와주세요!”한 세대 동안 집안을 다스려오면서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기력이 없어졌다. 그는 일이 계속 진행이 되면서 두 가지 선택밖에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내를 총으로 쏴 죽이거나 아니면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일시적으로 평화로운 순간을 맞바꾸는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장천 사부는 또 분명히 사기꾼이었기 때문에 그는 하현에게 밖에 희망을 걸 수 없었다. “임 선생님, 과분한 말씀이십니다!”하현은 임복원을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제가 선생님께 불만이 있었다면 이번에 오지 않았을 겁니다.”“게다가 배후에 있는 사람은 어쩌면 제가 이번에 대구에서 찾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니 도리에 맞게 제
하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보고 있을 때 하현을 본 임 부인은 마치 놀란 짐승처럼 격렬하게 휘두르더니 그녀의 앞을 둘러싸고 있던 경호원 몇 명을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경호원 앞으로 가더니 주먹을 날려 쓰러뜨렸다. “아______”이 경호원은 몸이 날아갔고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갈비뼈가 몇 개가 부러졌는지 모른다. “퍽퍽퍽______”곧이어 경호원들은 하나같이 날아갔고 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분풀이할 힘만 남아 있었다. “이 마귀야, 천 사부가 이미 너를 빼냈는데도 너는 부인의 몸에서 떠나려 하지를 않는 구나!”“병사들이여, 앞으로 전진해!”“수비해!”다음 순간 장천 사부는 마호가니 검을 쥐고 돌진했다. 마호가니 검에는 노란색 종이 몇 장이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마호가니 검이 떨어지면서 임 부인은 살짝 떫은 표정을 지었다. 몇몇 임씨 저택의 여인들은 옆에서 이 연극을 지켜보며 장천 사부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듯 갑자기 모두들 환호하기 시작했다. “천 사부님은 무적이시다!”“천 사부님은 하늘 아래 둘도 없는 분이야!”“이런 술법은 드라마보다 더 멋져!”“장천 사부님, 빨리 그 마귀를 거둬가세요!”아첨하는 소리에 임복원도 이 장천 사부에게 약간의 기대를 가졌다. 아쉽게도 방금까지 조금 진정되었던 임 부인은 이때 앞쪽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몹쓸 놈, 감히 나를 속이다니, 저주를 풀어!”장천 사부는 화를 내며 소리쳤고 손에 들고 있던 마호가니 검은 날아갔다. “털컥______”임 부인은 두 손을 벌렸고 마호가니 검을 들고 비틀더니 검을 부러뜨렸다. 임 부인은 물러서지 않았고 한방에 장천 사부의 가슴과 배를 내리쳤다. “풉______”피가 한 모금 뿜어져 나왔고 장천 사부는 몸이 날아갔다. 그의 몸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의 왼손은 또 임 부인에게 붙잡혔다. 그리고는 뒤쪽으로 맹렬하게 내리쳐졌다. “퍽__
그리고 육재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이어 그의 얼굴은 멍해졌고 입은 딱 벌어졌다. 임복원도 무의식적으로 쳐다보았다. 원래 기세가 등등했던 임 부인은 걸어 나오는 하현을 보자 뜻밖에도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다음 순간 그녀는 발길을 돌리고는 도망을 갔다……육재훈은 멍해졌다!임정민은 멍해졌다!임복원은 멍해졌다!모두가 멍해졌다!비록 임복원과 임정민은 지금 하현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들은 이렇게 신통한 효력이 있을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히 걸어 나왔을 뿐인데 방금까지 놀라운 기세를 가지고 있던 임 부인을 놀라게 했다고?“지금 가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분명 빠르지는 않았지만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거리가 멀어졌다. 임 부인은 놀란 듯 속도가 더 빨라졌다. 순식간에 두 사람은 뒷 화원에 도착했다. “하현이 그렇게 무서워?”“대구 귀신까지도 그를 무서워하는 거야?”“말도 안돼. 그럴 리가 없어. 그는 촌뜨기일 뿐인데 어떻게 이런 재주가 있을 수 있겠어!”육재훈은 지금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금 그 하늘의 신과 같던 누나가 어떻게 지금 초상집 개처럼 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건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임복원과 임정민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눈동자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문점이 가득했다. 그리고 방금까지 더없이 훌륭했던 장천 사부는 이때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오후에 하현이 자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보고 지금 하현의 상태를 다시 보니 그는 쥐 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졌다. 임 부인은 끊임없이 뒤로 물러서더니 마치 무슨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현은 또 몇 미터를 더 쫓아간 후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았다. 눈동자를 살짝 번뜩이더니 몸을 돌려 뒤쪽 방향으로 손에 들고 있던 과도를 던졌다.“띵______”
이 광경을 보고 하현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전에 전쟁터에 있었을 때 그는 섬나라 사람들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섬나라의 무사들은 일단 지면 항복하기 싫어서 배를 가르고 자결을 했다. 그리고 주술을 부리던 츠치미카도 가문의 음양사는 패배하자 바로 자결해 버렸다. 이것은 하현의 예상을 뒤엎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시체를 쳐다본 후에야 하현은 임 부인을 안고 나와 임복원에게 건네며 말했다. “임 부인은 전에 그 사람이 주술을 부려 조종을 당했는데 지금 제가 주술의 도입부를 뽑아 냈습니다. 한의사를 찾아가 약 몇 첩만 먹고 몸조리를 하면 괜찮아 질 겁니다.”“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은 임 부인께 말하지 마시고 이 사실을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세요.”“네. 네. 네!”임복원은 미친 듯이 기뻤다. 아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간 후 사람을 시켜 한의사를 불러 오도록 시켰다.하현이 이미 큰 문제를 해결했으니 나머지 작은 문제들은 자기가 해결할 수 있었다. 이때 이미 하현의 수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모두가 방금 그 검은 옷 입은 사람을 보았는데 시체는 아직 그곳에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임 부인은 사악한 기운에 들린 것이 아니라 주술로 조종 당한 것이다. 주술을 건 사람의 목적이 무엇 인지만 생각해 볼 일이었다. 임복원이 부른 한의사에게 임 부인은 진료를 받았고 약을 처방해 마신 뒤 잠을 잤다. 그리고 나서야 임복원은 하현을 맞이할 여유가 생겼다. “하 형제님, 한의사의 말로는 제 아내가 이미 신체 기능은 회복이 됐고 정신 상태도 안정이 되었다고 해요.”“이제 그냥 쉬기만 하면 돼요.”“감사해요. 오늘 밤 저에게 큰 도움이 됐을 뿐 아니라 제 아내도 살렸어요!”“우리 가족에게 또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네요!”말을 마치고 임복원은 바로 땅에 엎드렸고 그 자리에 측근들이 있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임 선생님. 별말씀을요. 별것 아니에요.”하현은 임복원을
장천 사부는 곧 끌려 나갔다. 하현이 갑자기 담담하게 말했다. “임 선생님, 이 장천 사부는 확실히 기술이 부족하긴 하지만 본심이 나쁘진 않아요.”“제 체면 살려 주는 셈 치고 그에게 살길을 내주세요. 어쨌든 부인도 잘 회복되었으니 덕을 쌓으셔야죠.”“자, 이 모든 건 하 형제님이 결정하신 거야!”임복원은 하현이 왜 부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인물이니 그도 신경 쓰지 않았다.“그를 병원에 보내서 치료해줘. 하지만 앞으로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않도록 해!”“임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 도련님, 감사합니다!”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되찾게 되자 장천 사부는 감격해 온몸을 부르르 떨며 하현을 향해 연신 절을 했다. 하현에게는 가벼운 몇 마디 말이 그에게는 자신의 목숨이었다. “하 도련님, 큰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을 기억하겠습니다.”말을 마치고 그는 경호원에게 끌려 나갔다. 그가 계속 여기서 방해하지 않도록 했다. 장천 사부가 사라지자 임복원은 육재훈을 힐끗 쳐다보았다. 육재훈의 눈가에는 계속 경련이 일고 있었다. 이때 사람들에게 밀려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하 도련님, 죄송합니다. 제가 태산을 몰라봤습니다. 용서해주세요!”“그리고 오후의 일도 제 잘못입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포위 공격을 하라고 시켰습니다. 결국 이렇게 된 것은 제 자업자득입니다!”임복원은 담담하게 말했다.“너 내 규정 알지?”육재훈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리고는 뒤에 있는 측근들을 한번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일루 와.”그 측근은 비록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건너왔고 힘껏 육재훈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퍽퍽퍽______”열 몇 대의 뺨을 맞은 후 육재훈은 얼굴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지금 이를 갈며 말했다. “하 도련님, 용서해 주세요.”하현은 손을 뻗어 육재훈의 얼굴을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한테 밟혀서 다행이야.”“임 선생님의 체면을 봐서 살 길을
나박하는 고성양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깜짝 놀랐다.“진서기, 당신이 말한 그 사람... 중천 그룹만큼이나 유명한 장청 캐피털 로얄패밀리 고성양 말이야?”“오호! 뭘 좀 아는 모양이군!”진서기는 콧방귀를 뀌며 나박하를 쳐다보았다.“맞아. 바로 그 장청 캐피털이야.”“자산은 수조 원이 넘는 그룹이지. 그러니 현금 이천억 정도 조달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청 캐피탈이 중천 그룹과 마찬가지로 배후에 금정에서 가장 신비에 싸인 왕 씨 가문을 두고 있다는 거야!”“이제 내가 왜 이 거물을 소개하는지 알겠지?”나박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난 별로 아는 건 없지만 중천 그룹과 장청 캐피털의 배후에 금정의 유명한 가문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뭔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가문이라고 들었어. 5대 문벌인 금정 간 씨 가문이나 10대 가문인 금정 김 씨 가문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더군.”“들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예전에는 왕 씨 가문도 5대 문벌 중 하나로 꼽혔다고 해.”“그런데 그 가문은 너무 조용하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집단이라 승부조작을 많이 일삼아서 지금은 5대 문벌에 들지 못한다고 해.”“그렇다고 해도 금정에 있는 왕 씨 가문의 역량은 어마어마해.”“어쭈! 촌뜨기인 줄 알았더니 꽤나 식견이 깊은데?”임만아는 비아냥거리며 코웃음을 쳤다.“이왕 이렇게 고성양의 출신 배경도 알게 되었으니 잠시 후에 그가 오면 다들 영리하게 잘 행동해야 해. 그게 설은아를 돕는 길이야.”임민아의 말에 현장에 있던 남녀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장청 캐피털은 원래도 유명한 데다가 배후에 힘이 막강한 왕 씨 가문까지 있다니!역사와 전통이 깊은 금정에서 이 왕 씨 가문에 대적할 수 있는 세력은 정말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장청 캐피털과 고성양의 도움을 받는다는 건 왕 씨 가문을 배후에 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이것이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바였다.그래서 지금 많은 남자들
설은아의 말을 들은 진서기는 황급히 임민아에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임만아, 너도 너무해. 어떻게 그런 말을 자꾸 함부로 할 수 있어?!”“여기 왔으니 됐어! 우리 다 친구잖아!”“자,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해. 우리 고성양이 언제 오시려나?”“어차피 우리가 오늘 여기 온 목적은 설은아가 고성양한테서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거야.”하현은 살짝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자신이 이미 설 씨 집안을 도와 오백억의 빚을 받아주었는데 설은아가 또 누군가에게서 투자를 받으려고 하다니?!나박하도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며 말했다.“설은아, 무슨 일이야?”“당신은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잖아?! 이번에 금정에 온 것도 더욱 그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시장을 넓혀 보려고 온 거고!”“그런데 돈이 잘 안 도는 거야?”“음. 문제가 좀 생겼어.”설은아는 입꼬리를 살짝 가라앉히며 멋쩍은 듯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하현에게 이런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하현에게 알려지더라도 할 수 없었다.나박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설은아, 얼마나 부족한데 그래? 말해 봐!”“내 체면도 좀 세워 주면 안 되겠어?”임민아는 나박하를 보며 냉소를 흘렸다.“쓰레기 처리 회사가 이미 멈췄는데 어떻게 은아를 도와줄 수 있다는 거야?”나박하는 조금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내 회사가 동결되긴 했지만 물려받은 것을 포함해서 아직 내 이름으로 된 집이 몇 채나 있어. 만약 필요하다면 그걸 팔면 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박하를 쳐다보았다.파산 직전에 자기 앞길도 막막할 텐데 이렇게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걸 보면 의리는 꽤 있는 놈인가?조상의 집마저 팔려고 하다니?!설은아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나박하, 그 집은 당신 어머니가 당신한테 넘겨준 마지막 자산이잖아!”“그걸 판다고 해도 난 절대 그 돈 못 받아!”“이
나박하의 말에 설은아는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나박하, 그런 농담 그만해. 누가 보면 오해하겠어!”“오해? 누가 오해할 수 있겠어?”나박하는 껄껄 웃었다.“금정에서 우리 설 사장의 미모와 인품이 빼어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가 당신을 쫓아다니고 싶어 했던 일도 어제오늘 일이 아닌 걸 뭐!”“됐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옆에 있던 진서기가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내뱉었다.“은아는 이미 임자가 있어!”“이분이시지. 바로 소문난 그 데릴사위 하현. 설은아의 남편이야!”“곧 혼인신고한다고 들었어!”“그러니 당신들한텐 기회가 없다니까!”생각지도 못했던 진서기의 발언에 현장에 있던 남자들은 갑자기 된서리를 당한 듯 어안이 벙벙해졌다.나박하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고 눈동자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가득했다.이 볼품없는 남자가 설은아가 결혼했던 전설의 그 데릴사위라니!다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 같았다.“그런데 최 여사님이 아주 싫어한다던데 재결합이 과연 성사될 수 있을까?”진서기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오묘한 표정으로 말했다.“내 말인즉슨 설은아 정도의 조건이라면 이 데릴사위를 당장 발로 걷어차야 한다는 거야.”“지나가는 아무 남자나 잡아도 이 데릴사위보다는 낫지 않겠어?”“진서기!”설은아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나무라듯 진서기를 노려보았다.모두가 좋은 친구 사이이고 진서기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에 한 말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 무례했다.그러나 하현은 진서기의 말에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안녕하세요. 하현입니다.”화려한 옷차림을 한 십여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삐죽거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심지어 몇 명의 여자들은 하현의 더러운 시선에 자신의 긴 다리가 눈에 들까 얼른 다리를 모았다.그러나 나박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오히려 자신의 명함을 꺼내 하현에게 공손히 건네
소항 회관 2층 888호 룸.하현 일행이 럭셔리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십여 명이 쳐다보았다.그들은 하나같이 화려하고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여자들의 목에는 커다란 보석이 달려 있었고 남자들의 손목에는 금빛이 도는 커다란 시계가 걸쳐 있었다.한 마디로 이 사람들한테서는 부귀하고 사치스러운 분위기가 풍겼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시가 몸에 짙게 베어 있는 것 같았다.설은아 일행이 들어서자 그들은 모두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사람들은 설은아를 보자마자 눈동자에 희미한 빛을 반짝였다.머리를 매끈하게 뒤로 빗어 넘긴 젊고 유능한 남자들의 눈동자엔 설은아를 향한 음흉한 기운이 가득했다.설은아 같은 미녀는 이곳 금정에서도 매우 드문 게 분명했다.“설은아, 서기, 민아! 당신들 다 같이 왔네?”그때 머리가 약간 벗겨진 남자가 싱긋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그의 용모는 잘생기지도 훤칠하지도 않았지만 온몸은 명품으로 뒤덮여 있었다.얼굴에 기름기가 줄줄 흐르고 손가락에 커다란 금반지도 여러 개 끼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졸부임이 분명했다.“나박하, 옷차림이 어떻게 아직도 이래?! 이제 육지로 올라왔으면 물속에서 놀던 티는 벗어나야지!”“좀 신경 써주면 안 돼?”“우리 모임에 자꾸 이런 식으로 오면 우린 당신이 우리의 품위까지 떨어뜨린다고 생각할 거야!”임민아는 차가운 눈길로 비아냥거리며 얼굴 가득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이 틈을 타 설은아는 하현을 향해 말했다.“이 사람은 나박하야. 금정 토박이지. 원래는 그렇게 거물급은 아니었는데 쓰레기 분류 사업에 뛰어든 뒤로 수조원의 자산가가 되었어.”“모두들 그를 두고 쓰레기 왕이라고 칭하지.”“그런데 듣기로는 최근 금정 관청에서 자체적으로 이 사업을 처리하려고 해서 나박하의 사업이 자칫 도산할 수도 있다고 했어.”하현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임민아가 왜 그렇게 무시하는 투로 그를 대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만약
하현은 두 여자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그녀들에게 힐끔 시선을 떨어뜨린 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은아, 우린 들어가자.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진서기는 소항 회관으로 들어가려는 하현의 앞을 가로막으라는 듯 임민아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하현은 무심코 발을 떼려다가 줄곧 자신을 무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임민아가 갑자기 앞을 막자 흠칫 놀랐다.“나한테 무슨 볼 일 있어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더 이상 설은아한테 찝쩍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신은 이미 설은아와 헤어졌어요. 그럼 깔끔하게 물러서요.”임민아는 차가운 말투로 내뱉었다.“사람은 눈치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설 씨 집안사람들은 당신을 전혀 반기지 않아요. 모르겠어요?”“이제 알았으면 썩 꺼져요! 어서!”“이곳은 우리 같은 상류층 사람들이 오는 곳이지 당신 같은 얼뜨기가 오는 곳이 아니에요!”하현은 냉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와 설은아 사이의 일은 당신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 않나요?”“설은아는 내 친구예요. 그러니 친구로서 당연히 이 정도는 할 수 있죠!”임민아는 턱을 치켜들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은아가 마음씨가 고와서 당신이 이러는 것도 가만히 놔두는 거예요!”“그렇지 않고서 당신같이 능력도 없고 돈도 없고 역량도 부족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은아와 함께 있을 수 있겠어요?”“은아는 타고난 미모에 붙임성까지 있는 사람이에요. 봉황이 노는 곳에 어찌 꿩이 알짱거릴 수 있겠냐구요?”“당신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요?”여기까지 말한 임민아는 콧대를 잔뜩 치켜세우며 위엄을 과시하려 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하현은 한쪽 입가를 살짝 말아올리며 냉소를 흘렸다.이윽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임민아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임민아 씨, 맞죠?”“당신은 스스로가 너무 잘난 줄 아는 사람이군요.”“내가 어떤 사람이든, 자격이 있든 없든 그건 당
”아니야.”하현은 설은아가 갑자기 간민효를 언급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얼른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엄도훈이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어.”“우리 쪽이 계약할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본 거야.”“그래서 회사 법무팀에 직접 물어보라고 연락한 거야.”하현의 설명을 들은 설은아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아, 갑자기 생각났어. 엄도훈이 당신한테 이러는 걸 보니 간민효가 당신한테 엄청 많은 도움을 줬었나 봐, 그렇지?”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이런 조그만 일에 간민효를 들먹일 필요는 없어.”설은아는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만약 무성이나, 혹은 남원이나, 대구였다면 그녀도 그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그러나 금정은 역사와 유서가 깊은 곳이었다.다른 곳과 비교할 곳이 아니었다.금정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하현이 이런 말을 하니 설은아는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는 억지로 자신의 마음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왜냐하면 하현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분명 금정에도 그의 포석을 두었음이 틀림없다.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이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인정하기 싫은 질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이런 생각에 사로잡히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슬기를 떠올렸고 왕주아를 떠올렸고, 동리아를 떠올렸다.그녀의 마음은 더욱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거렸다.질투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그들의 차는 그렇게 달리고 달려 으리으리한 소항 회관에 다다랐다.화려한 불빛이 눈앞에 일렁거렸고 많은 차들이 오갔다.곳곳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퍼졌고 많은 미남미녀들이 드나들었다.차가 멈춘 후 하현은 설은아를 따라 걸어 나왔고 곧이어 마세라티가 멈추어 서는 것이 보였다.빼어난 몸매에 세련된 메이크업을 한 두 여자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두 여자는 설은아가 금정에서 안 지 얼마 안 된 비즈니스 파트너였다.한 사람은 진서기이고 다른 한
”그래, 맞아! 아들이 하는 말에 무슨 토를 달아?”최희정은 이 기회를 틈타 자신이 한 말을 완전히 뒤집을 모양이었는지 싸늘한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네, 그렇게 능력이 많아?”“그렇게 은아랑 재결합하고 싶어?”“그럼, 좋아!”“자네가 우리 은아를 대구 정 씨 가문 수장으로 만들면!”“나도 두 사람의 재결합을 승낙할게!”“둘이 같이 살고 싶으면 살아도 돼. 그건 내가 허락해 줄 수 있어.”하현은 최희정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나이에 비해 여전히 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최희정이 표독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는 이렇게 계속하다간 양측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질 거란 걸 잘 알았다.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설은아의 모습을 보던 하현이 옅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대구 정 씨 가문 수장이요? 문제없죠!”“설은아를 그 자리에 올려놓겠습니다!”“그래! 알았네! 자네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두고 보겠어!”최희정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며 하현이 식탁에 않는 걸 더는 막지 않았다.식사 자리는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어색하고 불편한 식사를 마친 뒤 이영산 부부가 떠나자 하현은 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그때 발코니에 있는 설은아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설은아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오늘 저녁 소항 회관에서 모임이라고?”“그래, 꼭 시간 내서 갈게.”“그런데 내가 말씀드린 그 일은 가닥이 좀 잡혔어?”하현은 이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후 내내 휴식을 취한 설은아는 저녁 6시가 되자 단장을 하고 차를 몰고 어딘가로 떠나려고 했다.차에 시동이 걸리자마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하현이 불쑥 조수석 문을 열고 히죽히죽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여보, 어디 가게?”설은아는 원래 하현을 소항 회관에 데리고 갈 생각이 없었지만 하현이 조수석에 올라타는 걸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오늘 저녁 중요한 비즈니스 모임이 있어. 친구가
”그래요?”하현은 최희정에게는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며 이영산을 쳐다보았다.“우리 처남, 어서 밥이나 먹어!”이영산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아예 하현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겠다는 듯 시치미를 뗐다.최희정은 하현이 자신의 양아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마음 같아서는 하현을 향해 뺨이라도 한 대 갈기고 싶었다.그러나 문제는 하현이 내놓은 수표와 계약서가 모두 사실이어서 그녀로서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가짜 처남! 당신은 신분도 가짜라서 한 마디 못하고 있는 거지?”“남자가 되어서 남아일언중천금이란 말도 몰라? 본인이 한 말도 수습하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당신은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나 같은 사람보다 훨씬 못한 거 아냐?”하현이 이영산의 체면을 사정없이 깎아내렸다.그는 자신의 아내를 무시했던 이영산을 조금도 봐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지금 간이 너무 싱거워? 그렇다면 내가 좀 더 끓어줄까? 그러면 당신의 입맛에 맞게 될 텐데. 어때?”“자네, 그만해!”이때 최희정이 테이블을 세차게 내리치며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아주 기고만장하군!”“오백억 돌려받고 계약 한 건 따낸 것뿐이잖아?”“뭐가 그렇게 기고만장할 게 있어? 뭐가 그렇게 당당하냐고?”“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자네더러 능력 있다고 추켜세울 줄 알았어?”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어쨌든 장모님이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래서 난 돈을 받아왔구요.”“그러면 이제 저는 설은아와 재혼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호적등본은 어딨죠?”“제가 가져가도 되는 거죠?”하현의 말을 들은 최희정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눈앞의 하현이 못마땅해 죽을 지경이었다.그녀는 절대로 두 사람의 재결합을 승낙할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허락하지 않으면 하현의 비아냥에 더욱 설 곳이 없어져 도저히 끝까지 버틸 수가 없었다.“설은아, 장모님이 별로 이의가 없으신 것 같으니
말을 마치며 최희정은 그릇을 꺼내 대문 앞에 세차게 던졌다.이어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어서 사죄해!”“저기 가서 무릎을 꿇으란 말이야!”딸과의 재결합을 허락받기 위해 온 남자라면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왔을 것이다.그런데 엄도훈한테서 오백억을 받아왔다고?허튼소리도 정도껏이지!이를 본 설유아는 급기야 울상이 되어 말했다.“형부, 그냥 지금 엄마한테 사과하세요. 대단한 일도 아니잖아요...”“수표도 계약서도 진짜입니다. 거짓 하나 없는 사실이라구요!”하현은 설은아가 건네주는 물컵을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그런데 제가 무슨 죄를 인정해야 합니까?”“허허! 하현! 쓴맛을 봐야 피눈물을 흘리며 단념할 모양이군!”하현이 완강한 자세를 보이자 이영산은 한껏 비웃으며 말했다.“저따위 가짜 계약서와 수표는 인터넷에 뒤져보면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어! 당신 같은 사람이 이걸 모른다고?”“만약에 저것이 가짜로 판명된다면!”“당장 이 집에서 나가! 절대 돌아올 생각하지 마!”설은아를 포함해 설 씨 집안의 모든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이영산은 하현이 철저히 없어져 주길 간절히 바랐다.하현이 끼어들어서 그의 수많은 계획들이 틀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으로 관련 사이트를 열어 계약서 번호를 입력해 조회하기 시작했다.최희정은 하현이 하루아침에 오백억이라는 거금을 받아왔다는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고 계속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조회는 왜 해 보는 거야?”“거두절미하고 당장 무릎 꿇어! 무릎 꿇기 싫으면 당장 꺼지라고!”말을 마치며 최희정은 경호원 몇 명을 부르려고 핸드폰을 들었다.“어?!”순간 이영산은 온몸에 전율이 올랐다.“이럴 리가 없는데? 이, 이게 어떻게 진짜일 수가 있어?”“믿을 수 없어!”당황한 이영산의 목소리에 최희정은 어리둥절해하며 이영산을 쳐다보았다.그러고 나서 이영산의 핸드폰을 잡아채듯 가져와 계약서와 대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