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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화

깊은 밤.

강책은 정몽연과 함께 침실로 들어갔다.

그 둘은 부부였기에 본래는 같은 방, 같은 침대를 사용하는 게 이치였다.

하지만 그 둘은 방금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서먹했기에, 갑자기 한 침대에서 자려고 하니 어색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정몽연은 여자랑도 함께 자 본적이 없었는데, ‘방금 만난’ 남자랑 같이 잠을 청해야 한다니.

비록 이 남자가 그녀의 남편이어도 말이다.

강책은 그녀를 난처하게 하지 않고, 바로 침구를 들어서 바닥에 깔았다.

“뭐해?”

정몽연이 물었다.

“넌 침대에서 자, 난 바닥에서 잘게.”

“이게……”

“미안해 할 거 없어. 몇 년 동안 군 생활을 하면서 일찍부터 바닥에서 자는 게 습관 됐으니까.”

정몽연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불을 끈 뒤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캄캄한 침실에서 강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

정몽연은 몸을 움찔하며 강책이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강책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군 생활을 오래 하면서 내가 가장 미안한 사람이 둘 있는데, 한 명은 내 동생이고, 또 한 사람이 너야.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나왔어도. 백이는 죽지 않았을 텐데.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나올 수 있었으면, 너는 이렇게 억울하지 않았을 텐데.”

정몽연의 눈가에는 순식간에 억눌린 눈물이 흘러내렸다.

최근 5년 동안 그녀는 매일 각종 유언비어를 참아내며, 억울한 일들을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하소연할 대상도 없었기에 그저 인적 없는 곳에서 몰래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매우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 걱정하지마, 내가 돌아왔으니까 이제 한 점의 억울함도 겪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할게.”

동생에게 빚진 것을 메울 수 없게 되었으니, 최소한 아내에 대한 부족함이라도 메우는 데 최선을 다해야 했다.

……

이튿날 새벽.

강책은 일찌감치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정몽연을 깨웠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취임식에 참석하려고.”

정몽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무슨 취임식?”

“오늘 세 구역 책임자의 취임식이잖아, 내가 친구한테 부탁해서 두 자리를 구해 놨으니 너도 같이 가면 돼.”

정몽연은 조금 의아했다. 그녀가 정계산에게 물어본 바로는 취임식을 참여 자격의 부여는 매우 까다로웠고, 정계산같이 시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도 몇 번의 심사를 거쳐 겨우 얻어낸 자격이었다.

한 자리도 구하기 힘든데, 두 자리는 더욱이 말할 것도 없다. 당문호 같이 직급이 높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강책을 보면 또 농담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반신반의하던 정몽연은 옷을 차려입고 서둘러 아침식사를 한 뒤 차를 몰고 강책과 함께 취임식이 열리는 빌딩 문 앞에 도착했다.

이 곳에 주차하는 차들은 모두 1억 상당의 호화로운 차들로, 참여 인원의 신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정몽연의 차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강책, 우리가 정말 참여 자격이 있는 거 맞아?”

정몽연이 다시 한번 의구심을 품으며 물었고, 후에 큰 소동을 피워 창피를 당할까 걱정이었다.

“나만 믿으면 돼.”

강책은 정몽연을 데리고 빌딩 출구 앞으로 걸어갔고, 마침 이때 세 사람의 그림자가 뒤쪽으로 걸어왔다.

“오, 큰누나, 큰형부, 저기 누가 왔는지 봐.”

정몽연은 목소리만 들어도 둘째 오빠 정봉성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몸을 돌려 보자 과연 정봉성과 정자옥, 당문호가 함께 그녀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정봉성이 실실 웃으며 말을 건넸다.

“어떻게 이런데서 다 마주치네. 아니, 또 너희 집 폐물을 데리고 왔어? 너희 둘은 뭐하러 온거야?”

“당연히 취임식에 참석하러 온 거 아니겠어?”

강책이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정봉성은 순간 멈칫 하더니, 당문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부, 이 두 사람한테 참가 자격을 줬어요?”

당문호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내 권한으론 기껏해야 세 자리밖에 못 구해.”

“응? 그럼 정계산이 한 짓인가?”

정봉성이 또 물었다.

그러자 당문호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 사람이 무슨 권한이 있다고? 그 사람 조차도 관리한테 선물을 주고 부탁해서 얻은 자리인데, 무슨 권한으로 남에게 자리를 내어 주겠나.”

이 말을 듣자, 정봉성이 웃으며 말했다.

“동생아, 그럼 너희는 들어갈 자격이 없어. 근데도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여기가 무슨 장터인 줄 알고 들어오려는 거야?”

정몽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여전히 속으로는 강책이 얻어 온 자리를 의심했다.

지금 당문호에게 자격이 이토록 어렵게 얻을 수 있다는 걸 들으니 더더욱 강책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떄, 강책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우리가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가 더 잘 알아. 너희같이 자신이 자격이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불쌍할 뿐이지.”

이 말은 분명 당문호와 세 사람을 겨냥한 것이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네가 우리 정 씨 가문으로 장가 왔다고 해서 네가 정 가네 사람이 됐다고 착각하지 마. 한 번 떠 그 따위로 말하면 내가 귀싸대기를 갈겨 버릴 테니까.”

그러자 당문호가 정봉성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여긴 소란을 피울 공간이 아니니, 이 일은 돌아가서 얘기하자.”

“알겠어요 형부.”

당문호는 강책을 몹시 깔보며 말했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아는 게 가장 중요한 법인데, 자신의 힘에 부치는 일을 하면 치욕만 자초할뿐이거늘.”

말을 마치자 그는 몸을 돌려 빌딩 정문으로 향했다.

정자옥이 정몽연에게 다가와 ‘좋은 뜻’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동생아, 내 남편이 군인이라 성질이 좀 나쁘고 말이 험한 거니 나쁘게 여기진 말고. 하지만 너도 마찬가지야, 매일 저 물건을 데리고 나와서 망신을 당하니 너도 덩달아 고생하잖니. 난 취임식에 참석해야 하니까 길게 말은 안 할게. 넌 먼저 돌아가렴, 알겠지?”

겉으로는 듣기 좋게 말하지만 사실은 구구절절 가슴 한 켠을 후벼 파는 말들이었다.

정자옥은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겼고, 만족스럽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정몽연에게 눌려 살았는데, 이렇게 그녀를 시원하게 면전에서 망신 주다니. 그녀는 낭군님에게 시집 간 것에 매우 감사했다.

정몽연의 안색이 새까맣게 변하여 한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냥 집에 가만히 있었으면 될 걸, 왜 이런 곳에 와서 모욕을 자초하는 거지?

“가자.”

강책이 담담하게 말했다.

“가? 어딜?”

정몽연의 말투는 서늘했다.

“말했잖아, 취임식 간다고.”

“제발 그만 좀 해!”

정몽연은 끝내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네가 능력이 없는걸 탓하진 않아. 하지만 제발 허세 좀 그만 부리고 이기려고 노력이라도 하면 안 돼? 계속 이런 식이면 날 기쁘게 해주기는커녕 내가 널 더 무시하게 만든다고!”

휙휙휙, 사방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강책은 제 자리에 서 있었고, 3초 뒤 그는 살짝 미소를 띄며 차분하게 말했다.

“몽연아, 날 한 번만 믿어줘. 만약에 내가 널 취임식에 데려가지 못한다면, 난 즉시 돌아가서 너랑 이혼도 할 수 있어.”

정몽연은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는 너무나 단호했고, 전혀 농담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진지했다.

정몽연은 망설이다 이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내가 기회를 한 번 줄게!”

그녀는 빌딩 정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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