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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화

목양일은 강책이 무엇을 할 건지 알아차리곤 웃어 보였다.

“맞다 형님, 방금 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소강, 진목, 회해 3개 구가 합병되어서 강남구로 통칭되고 형님께서 총책임자를 맡는다고 합니다.”

“형님, 이건 정말 짭짤한 보직이라구요.”

강책은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

“지금 나는 그런 거에 관심이 없어, 가자.”

“네? 어디로 갑니까?”

강책은 생각을 하곤, 이내 대답했다.

“온 김에 집이나 가 보지.”

반 시간 뒤, 차가 천천히 멈춰섰다.

강책은 목양일에게 먼저 가라고 한 뒤, 혼자서 명원 단지 내로 들어서 낡아 보이는 별장 한 채로 걸어갔다.

똑똑, 그가 문을 두들겼다.

“누구세요?”

문을 연 사람은 한 중년의 부인이었고, 강책의 장모인 소청이었다. 소청은 강책을 보자 몇 초 동안 얼어붙었다가 이내 반갑게 말을 건넸다.

“강책아, 언제 돌아온 거야?”

“돌아온 지 얼마 안됐어요”

“어서, 빨리 안으로 들어와 앉아.”

동생이 죽고 난 뒤, 소청은 강책의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소청은 강책을 방 안으로 들인 뒤 그를 앉혀 놓고 물을 주었다.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이때, 장인 정계산이 안방에서 나왔다.

“누가 왔어?”

“강책이요, 책이가 돌아왔어요.”

“뭐라고?”

정계산은 어이없다는 듯 강책을 흘긋 보고는 콧방귀를 뀌곤 테이블로 다가와 앉았다.

“강책, 네가 돌아올 낯짝이 있니?”

그의 말 한마디에 방 안의 분위기가 긴장되고 어색해졌다.

“영감님, 강책이 방금 돌아왔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당신은 말할 자격도 없으니, 어서 가서 몽연이나 불러와.”

“허 참, 그래요.”

정계산은 강책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

“동생 일은 들었다. 이제 침몽 하이테크는 너희 강 씨 집안이랑 아무런 관계가 없는게냐?”

“네.”

“5년 동안 군생활 하고 이제서야 돌아와서 한 자리 해먹으려고 그러나?”

강책은 어깨를 으쓱하곤 대답했다.

“한 자리 해먹을 것도 없지요.”

“못 해먹는건 아니고? 하긴, 네 머리로 한 자리 해먹는 게 더 이상하겠군.”

“그럼 돌아와서 무슨 일을 찾고 있는 거냐?”

강책은 고개를 저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습니다.”

“허허, 회사도 없어지고, 군 생활로 얻은 것도 없으면서 이젠 계획도 없이 백수생활을 하려고 하니, 네가 폐물이랑 다를게 무어냐?”

말을 하던 중, 하이힐 소리가 연신 들려왔고, 한 여성이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심플한 티셔츠는 몸에 착 달라붙어 그녀의 완벽한 몸매를 한껏 드러냈고, 데님 숏팬츠를 입은 다리는 매우 하얗고 길쭉했다.

깐 달걀 같은 피부에 오똑한 코, 새까만 머리카락은 폭포수처럼 길게 쏟아지며 어깨를 타고 내려와 있었다.

“아빠, 엄마, 나 불렀어?”

“그래, 와서 앉거라, 강책이 돌아왔다.”

정몽연은 몇 초간 얼어붙더니, 눈 앞의 낯 익은 듯 낯선 남자를 보자 마음이 이내 복잡해졌다.

그녀는 강책의 부인이었지만, 결혼 후 한달이 채 되기도 전에 강책은 서경으로 가 종군했다. 5년, 정몽연은 5년동안 생과부로 살았던 것이다.

강책이 돌아오자, 그녀는 어떻게 그를 대해야 할 지 막막했다.

“강책, 너도 봤겠지만 우리 딸이 워낙 출중해서 말이야, 티비에 나오는 모델보다 더 잘나서 매일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찾아와 구혼을 하던지. 그런데 너 때문에 우리 딸이 생과부로 지내왔단 말이다!”

정계산이 말했다.

“아빠, 그런 말을 뭣하러 해?”

정계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자네 아버지와 어렸을 때부터 봐온 친구로서, 그 친구가 침몽 하이테크를 건설하고 잘 이끌어 나가는 걸 보고 회사와의 협약을 위해 내 딸을 시집보낸 거였는데.”

“그런데, 자네 아비는 실종되고, 동생은 자살에 침몽 하이테크까지 다른 사람 손에 뺏겨 버리다니. 근데 자네는 5년 동안 군 생활로 허비를 해놓고는 아무런 성적도, 돈도 세력도 없지 않나. 자네가 직접 말해 보게나, 자네한테 우리 딸이 가당키나 한가?”

방 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방 안 사람들의 호흡은 매우 거칠었고,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잠시 뒤, 정계산이 말을 이어갔다.

“날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욕하지 말게나, 현실은 본디 잔혹하지. 원래 자네가 돌아오면 몽연과 바로 이혼시키려 했지만, 자네 아비와 몇십년의 우정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네.”

“반 년, 자네한테 반 년이라는 시간을 주지.”

“만약 반 년 안에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자네를 내 사위로 계속 받아들이지. 난 부귀한걸 바라지 않아, 적어도 관리자나 총감독 정도는 되라는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짐을 싸서 이 집을 나가게. 난 하라면 하는 사람이야.”

정몽연과 소청의 안색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두 모녀는 강책에 대한 한이 깊지 않은데, 그가 돌아오자마자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정계산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방금 연락이 와서 나는 이만 부서로 돌아가 회의를 해야 하니, 먼저 일어나지.”

“하지만 곧 있으면 하우스 파티 시작인데, 안 갈 거예요?”

소청이 물었다.

그러자 정계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안 가오, 방금 연락이 왔는데 소강, 진목, 회해 3개 구가 합병돼서 새로운 관리가 왔다는군. 그래서 빨리 부서로 돌아가 어떻게 새로운 관리를 맞이할지 상의해야 하오. 이 일은 우리 정 씨 집안과 이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지를 결정할 사안이니 한 치의 오차도 있으면 안 되지.”

“다른 부서 사람들도 이 일에 모두 혈안일텐데, 그들에게 자리를 내줄 순 없지.”

“영감님, 그럼 저 대신 말 좀 전해주세요. 아 그리고 강책아, 너도 이왕 온 김에 몽연이 따라서 하우스 파티에 참석하렴, 견문도 넓힐 겸 말이야.”

정계산은 외투를 걸치고 새 관리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 지 의논하기 위해 황급히 집을 나섰다.

방 안에서 소청은 강책을 위로하며 말했다.

“책아, 너무 좌절하지 말고, 네가 열심히만 하면 그 이가 너를 나무라지 않을 거야.”

“알겠어요, 어머니.”

이어 강책은 정몽연의 차에 올라타 심원호텔 쪽으로 향했다.

오늘은 정씨네 집에서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하우스 파티 날이었고, 각 집안을 대표하는 인물들은 모두 참석을 하는 파티였다.

강책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창밖의 경치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부부였지만, 전혀 친하지 않은 관계였다.

정몽연은 강책이 아직도 화가 난 줄 알고 침착하게 말을 건넸다.

“너무 상처받지 마, 우리 아빠 성격 알잖아. 사실 아빠 말이 맞기도 해, 네가 계속 그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사는게 맞다고 생각해?”

“나이도 적지 않은데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으니, 우리 집에서 평생 먹여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

강책은 여전히 무덤덤했고,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정몽연은 조금 화가 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아무런 방도가 없네.”

심원호텔에 다다르자 정몽연이 말했다.

“조금 있다가 들어가면 말을 삼가. 누가 너한테 듣기 싫은 소리 하면 그냥 웃어 넘기고 너무 따져들지 마,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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