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미친 듯이 백현문의 팔을 두드리며 아등바등했다.어느 한순간에는 정말로 오빠의 손에 죽을 것만 같았다.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눈알이 당장 튀어나올 듯이 부릅뜬 채로 발버둥을 쳤다.백현문은 그런 그녀를 꽉 조른 채 강 속으로 확 던져 버렸다.강 둔덕의 물은 아주 옅고 백지영은 물에 풍덩 빠져 온몸이 젖었다.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듯한 눈빛으로 백현문을 바라보며 자기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았다.몇 분 지나고 나서 백지영은 낭패한 모습으로 뒤로 황급히 물러났는데, 더욱 깊은 물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순간 겁먹은 백지영은 허둥지둥하며 뭐라도 잡고 싶었고 하마터면 질식할 뻔했다.하지만 백현문은 그런 백지영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수색하고 있는 배들을 계속 바라보았다.백지영은 겨우 발버둥을 치며 언덕으로 기어 올라왔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성깔을 부리기 시작했다.“오빠! 미쳤어! 나 죽일 뻔했다고!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눈물범벅이 된 백지영은 낭패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눈물을 닦으며 소리를 질렀다.백지영에 밀려 백현문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고, 정작 본인은 무척이나 억울한 듯이 땅에 주저앉아 울부짖었다.“지금 저 천한 X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거야? 엄마한테 평생 나 지켜준다고 약속하지 않았어?”백지영은 히스테리를 부리며 목청 터지게 대성통곡했다.하지만 백현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손까지 부들부들 떨렸다.“내가 얼마 전에 유해은 부모님 죽일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왜 장하리때문에 이러는 거야? 장하리 하나 때문에 왜 이렇게까지 성을 내는 거냐고! 유해은 질렸어? 그래서 장하리 데리고 놀고 싶은 거야?”“그만 해.”백현문은 이 말을 내뱉을 때 그 어떤 감정도 띠지 않았다.평온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조용히 강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백지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2시간 동안 욕설을 퍼부었지만, 점점 소리가 작아졌다.그렇게 또 2시간이
장하리는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어 조용히 차만 몰랐다.다만 먼 곳에 세워져 있는 차 한 대를 보고서는 온몸이 굳어졌다.그늘에 가려진 그 차의 형태는 장하리가 알고 있는 차 한 대와 너무 비슷했다.눈살을 찌푸리며 차창을 열고 명문을 확인하려고 했으나, 그 차는 이미 가뭇없이 사라져 버렸다.순간 나타난 환각이 아니었는지, 장하리는 그 남자가 병원으로 자기를 보러 왔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하여 차창을 올리고 묵묵히 차를 몰고 회사로 돌아갔다.성혜인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른 차 한 대가 바로 앞에서 멈추는 것을 보게 되었다.그 차에서 백현문은 성큼성큼 내려와 성혜인을 무시하고 건물로 들어섰다.차가운 빛이 성혜인의 두 눈에서 번쩍였으나 경비에게 막으라고 하지 않았다.강에서 유해은을 건지지 못했으니, 유해은 스스로 회사로 돌아왔을 것이라며 헛된 희망을 품고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백현문은 최근 들어 일 벌레나 다름없었던 유해은이기에 지금 S.M에 있으면서 자기한테 일부러 알려주지 않고 있다며 생각했다.하지만 가장 위층에서 샅샅이 찾아봐도 유해은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S.M 직원들은 지금 모두 정신병 환자를 보고 있는 듯한 시선으로 백현문을 바라보고 있다.성혜인은 엘리베이터에 올라 가장 위층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에워싸 왔다.“사장님, 조금 전에 어떤 미친 X이 쳐들어왔습니다.”“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성혜인은 덤덤한 투로 말하고 나서 바로 자기 사무실에 들어섰다.이제 막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펑”하고 문이 확 열렸다.백현문은 단번에 문을 차버리며 사무실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왔다.“성혜인, 네가 유해은 숨겼지?”이에 성혜인은 마냥 우습기만 하며 천천히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백현문 씨, 나한테 물어보는 게 아니라 그쪽 동생한테 그동안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물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학창 시절에 아주 좋은 기회가 주어져 해외로 유학 갈 수 있었던 유해은 씨였는데, 당신 동생이
두 경호원은 백현문을 끌고 일 층까지 왔다. 원래는 계단에서 아래로 밀치려고 했지만, 기자들에게 찍히면 S.M까지 연루될 거 같아 그러지 않고 백현문을 화단 쪽으로 옮겨 화단 안에 버렸다.백현문 혼자 차를 몰고 온 것인데, 아마 성혜인의 말을 듣고 화병이나 쓰러질 줄도 몰랐을 것이고 구급차를 불러주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던져라고 지시를 내릴 줄도 몰랐을 것이다.백현문은 화단에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다시 일어났을 때 양복에도 먼지가 가득했으며 오가는 차까지 먼지를 일으켰다.길거리의 화단에 누워있는 백현문을 병원으로 데려다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그날 성혜인이 화병이 난 백현문을 밖으로 내다 던졌다는 소문은 그들의 생활 범위에서 확 펴지고 말았다.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믿어지지 않았는데, 누구나 백현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음흉하기 그지없는 백현문은 일단 누군가가 물고 늘어지면 끝까지 가는 성격이다.게다가 백씨 가문에서도 차세대 상속자로 백현문이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며 일찍이 소문을 내보낸 적이 있다.그런 백현문에게 미움을 사다니 사람들은 성혜인이 미쳤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다들 백현문이 즉시 반격하며 모든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성혜인에게 복수할 줄 알았다.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록 사람들은 백현문의 움직임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다.새벽.유해은은 앞으로 두 달 후에 돌아올 예정이다. 떠나려는 찰나에 문득 성혜인의 두 손을 잡고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몰랐다.그러자 성혜인은 유해은 꼭 안아주며 신신당부했다.“이번에 해은 씨가 들어갈 제작팀 감독님 성질이 그렇게 좋지 않아요. 만약 서러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전화하세요. 그렇다고 해서 감독님과 맞서지는 말고요. 성질이 나쁘다고 해외에서도 명성이 자자해요. 다른 스타분들도 이미 그 감독님께 욕 많이 먹었다고 해요. 해은 씨만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 명심해요.”“사장님, 제가 꼭 보답해 드리겠습니다.”유해은은 성혜인에게 진심 어린 약속을 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주위는 온통 살의로 가득 차버리고 백지영은 비명까지 지를 뻔했다.이때 경호원이 앞으로 다가와 백지영을 부축해서 2층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백현문은 천천히 자리에 앉아 변함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다시 한번 밖으로 내보내면, 너희들도 죽을 줄 알아.”그 말에 두 경호원은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감히 지체하지 못하고 바로 백지영을 2층으로 데리고 갔다.백지영은 아직 조금 전 그가 한 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오빠인 그가 자기한테 살의를 드러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2층에 이르러 방문을 여는 순간 백지영은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우리 오빠 미친 거 아니에요?”1층에 있는 백현문은 이 말을 듣지 못했지만, 이 말을 듣게 된 두 경호원은 사색이 되어 버렸다.“아가씨, 그냥 방안에 편히 계세요. 요즘 사장님께서 화도 많이 내시는 편입니다. 그리고 백씨 가문의 사람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지 않습니까?”이에 백지영은 순간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그게 무슨 뜻입니까?”그러자 경호원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나지막이 속삭였다.“어르신까지 보내 버렸습니다.”그 말에 백지영은 다리가 나른해지며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이 순간이 되어서야 백지영은 오빠가 변했다는 것을 비로소 믿게 되었다.전에 백현문은 할아버지 말씀이라면 끔뻑 죽고 무엇이나 따르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러한 수단으로 백씨 가문을 손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모조리 없애버렸다.백씨 가문 사람들은 죽거나 아니면 외딴곳으로 보내지거나 얼마 남지 않았다.상속자 자리에 앉기까지 백현문은 난폭한 수단으로 한 걸음씩 올라왔다.하여 지금 백현문의 온몸에는 난폭하기 그지없는 기운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아가씨, 만약 방에서 나오고 싶으시다면, 더 이상 다른 일은 하지 않을 것이 좋을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누구도 사장님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백현문은 지금 해체할 수 없는 폭탄과 마찬가지로 일단 해체하려고 파고
성혜인은 서주혁의 말을 듣고 오지랖이 넓었다며 스스로 반성했다.네이처 빌리지에 하인도 한 두 명이 아닌데, 서주혁이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아마 이미 물어본 이가 있었을 것이다.하여 성혜인은 서주혁의 말에 공명하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반승제가 말꼬리를 잡았다.“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여주인이 될 수 있어.”이는 분명 서주혁이 말 한 ”여주인은 아니잖아요”에 대한 반박이다.얼렁뚱땅 성혜인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하지만 성혜인은 침대 옆에 의자에 앉아 즉시 그의 말에 반박했다.“그건 모릅니다.”성혜인은 아직 회사 고위층들과 TJ 엔터 대항 방안에 대해 의논하고 있으므로 당분간 사랑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성혜인의 말을 듣고 반승제는 이를 완곡하게 거절하는 뜻으로 받아 드렸다. 그것도 서주혁이 버젓이 보고 있는 곳에서 말이다.반승제는 고개를 들어 보지 않아도 서주혁이 지금 고소해 할 뿐만 아니라 조롱하는 눈빛으로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눈앞에 있는 작은 테이블을 보면서 반승제는 숟가락을 들어 직접 죽을 저었다.그리고 씁쓸한 기분을 겨우 억누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나도 그냥 장난한 거야. 정말로 널 좋아하기라도 하는 줄 알았어?”그 말에 성혜인은 한숨을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럼, 먼저 포레스트로 돌아갈게요. 한 시간 뒤에 회의가 있어서요.”순간 반승제의 손가락은 멈칫거렸다. 아무리 뒤늦게 반응한다고 하더라도 성혜인이 일부러 냉담한 말을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일주일 동안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던 따뜻하고 애틋했던 분위기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그러든지 말든지.”성혜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결국 입을 열어 거듭 당부했다.“격렬한 운동은 삼가는 게 좋을 거예요.”반승제는 지금 침대에서 내려와 가볍게 걸을 수밖에 없고 달리기와 같은 운동은 절대 하면 안 된다. 상처에 딱지가 앉는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이다.그 말을 듣고 반승제는 입을 꿈틀거리며 아픈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성혜인은 겨울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불현듯 그날의 영상이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린채 뚝뚝 떨어질 뻔했다.“멍!”“멍!”전에 겨울이는 기쁨이 벅차 있을 때 성혜인을 에워싸고 빙빙 돌았었다.하지만 지금은 기운이 별로 없어 겨우 버티며 몇 번 짓고는 주저앉고 말았다.“미안해, 겨울아, 다시는 네이처 빌리지에 두지 않을게.”성혜인은 겨울이를 꼭 안고 어루만져 주었다.그러자 겨울이는 성혜인의 손결에 편안했는지, 귀를 계속 팔랑거렸다.그렇게 2시간 동안 함께 있다가 차를 몰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겨울이에게 거듭 당부했다.“겨울아, 넌 아직 많이 아파. 좀 더 치료받아야 하니 아직은 데리고 갈 수 없어. 우리 겨울이 괜찮아지면, 그때 엄마가 다시 데리고 집을 갈게. 치료 잘 받고 있어.”겨울이는 주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아쉽기는 했지만, 제자리에 서서 꼬리를 흔들며 앞으로 다가오지 않았다.귀여운 겨울이의 모습에 성혜인은 심쿵하여 그만 참지 못하고 사진 한 장을 찍어 스토리에 올렸다.「회복 중인 겨울이.」즉시 반승제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알림이 떴고 성혜인은 그가 시시각각 SNS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좋아요”를 누르고 나서 반승제는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겨울이가 예쁘고 좋은 건 사실이지만, 성혜인의 첫사랑이 선물해 주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언짢았다.“심 비서.”반승제의 부름에 심인우는 다급하게 달려 들어왔다.“네, 사장님.”“애완동물 한 마리만 찾아오세요. 우람하고 위풍당당한 쪽으로요. 겨울이보다 예쁘고 당당했으면 좋겠어요.”이에 심인우는 어안이 벙벙했다. 애완동물을 두고도 상세를 다투려고 할지는 차마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심인우는 이제 막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려고 했으나, 반승제가 고개를 떨구며 음침하게 눈빛을 번쩍거렸다.“됐습니다. 해외에서 보내달라고 하겠습니다.”지하 격투장에는 맹렬한 야생 동물도 많고 전문적으로 사육하는 애완동물도 많다.그들은 주인을 잘 지켜줄 뿐만 아니라 위풍당
그러나 똑똑한 겨울이가 “동종”이 나타남에 따라 초조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잇따라 들었다.성혜인은 고개를 숙여 덩치가 엄청 난 “개”를 보면서 반승제에게 물었다.“이름은 뭐예요?”반승제는 아직 미처 이름을 짓지 못했고 성혜인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뭐라고 부르고 싶은데?””그럼, 흰둥이라고 해요.”성혜인은 본래 애완견들 속에서 겨울이가 건장한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흰둥이를 보자 겨울이는 새 발의 피라고 느껴졌다.지금 성혜인은 흰둥이를 마음에 들고 있긴 하지만, 겨울이의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일단 여기서 키워요. 겨울이 돌아오고 나면, 그때 두 강아지가 서로 맞는지 다시 봐요.”‘강아지?’반승제는 그 말에 멍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성혜인이 생각나는 대로 놔두려는 생각이다. 게다가 일반인들은 흰둥이가 지나치게 건장하다고만 생각할 것이지 늑대라고 감히 상상도 못할 것이다.성혜인은 일단 흰둥이의 목줄을 풀고 늑대 킹에게 있어서 치욕스럽기 그지없는 나비넥타이와 방울을 떼어 주었다.흰둥이는 땅에 앉아 고개를 바짝 들었는데, 성혜인의 가슴팍에 거의 이를 지경이다.지금껏 성혜인은 이렇게 큰 “개”를 본 적이 없다.여자라면 본래 예쁜 사물에 저항력이 없는 편이다. 하여 성혜인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흰둥이 사진을 찍어 스토리에 올렸다.「겨울이 친구 흰둥이.」올리자마자 “좋아요”가 잇따라 들어왔고 어떤 이들은 흰둥이가 늑대임을 알고 댓글까지 남겼다.「화이트 킹은 보기 드문 품종인데, 어디서 구했어요?」「순수한 화이트 킹 혈통으로 보이는데, 아마 성년 남자 10명 정도는 거뜬히 제압할 거 같은데요.」「보통 늑대보다 훨씬 커 보여요. 혹시 늑대 킹 아닌가요?」성혜인의 SNS에는 그 동안 합작해 왔던 상업 에이스들이라 모두 견문이 넓은 편이다.하지만 성혜인은 보통 댓글을 보지 않은 습관이 있기에, 올리고 나서는 흰둥이의 머리만 어루만졌다.흰둥이는 성혜인의 몸에서 다른 동물, 즉 겨울이의 기운을 느끼며
성혜인은 즉시 손에 들고 있던 주걱을 내려놓았다.그러고 나서 반승제의 손을 잡고 그가 들고 있던 칼도 옆에 내려놓았다.“화장실로 가요.”반승제는 눈을 절반쯤 가늘게 뜬 채로 1층 화장실에 밀려들어 갔다.들어가자마자 성혜인은 두 손으로 맑은 물을 적셔 그의 눈에 대고 뿌리기 시작했다.“몸 좀 숙여봐요. 아니면 옷 다 젖을지도 몰라요.”그 말에 반승제는 즉시 몸을 숙였으나 눈은 아직도 따끔거리며 아팠다.성혜인은 같은 동작으로 반승제의 눈을 여러 번이나 씻어 주었다.이제 거의 괜찮아진 것 같았을 때, 성혜인은 손에 핸드 워시를 발라 반승제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꼼꼼하게 씻겨 주었다.거품을 씻어 내고 또다시 핸드 워시를 손에 발라 다시 씻겨주고 나서야 손에 남아 있던 마늘 냄새를 완전히 없앨 수 있었다.모든 걸 마치고 성혜인은 옆에서 종지를 뽑아 손을 깨끗이 닦아주고는 한 손으로 반승제의 턱을 잡고 살짝 들어 올렸다.“어때요? 아직도 아파요?”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서로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다.반승제의 눈 밑은 여전히 빨갛고 아직도 따끔거렸지만, 참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눈이 멀 거 같아.”그말에 성혜인은 다시 맑은 물로 몇 번 더 씻겨주었다.“많이 아프면, 병원에 갈 수밖에 없어요.””그 정도는 아니야. 소파에서 좀 쉬면 돼.”하여 성혜인은 그를 부축하여 소파로 갔고 상처에 무리가 갈까 봐 신신당부했다.“가만히 누워만 있어요. 잔치 국수는 먹을래요?”조금 전 반승제의 턱을 들어 올릴 때, 성혜인은 형언할 수 없는 그의 외모에 다시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지금까지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있으니 말이다.반승제는 쿠션을 머리 뒤에 대고 소파에 기대어 성혜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으나, 하필이면 이때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본래 받고 싶지 않았으나, 반씨 고택에서 걸려 온 전화라 수신 버튼을 눌렀다.이윽고 집사의 다급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들려왔다.“도련님, 회장님께서 저녁 6시에 외출하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