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차는 네이처 빌리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포레스트에서 멈춰 섰다.라미연은 아직 이곳이 성혜인의 별장이라는 것을 모르고 반승제의 또 다른 별장으로 알고 있다.웃음이 만발한 얼굴로 설마 반승제가 시원하게 자기에게 별장 한 채를 선물해 주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전에 반승제에게서 20억을 받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10억을 더 받았었는데, 이는 일반인이 평생토록 노력해도 벌 수 없는 돈이다.그렇다면 지금 이 별장의 값어치는 얼마나 될까?아마 수천억은 되지 않을까?라미연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놀라워 마지 못한 채 거실까지 들어섰는데, 소파에 버젓이 앉아 있는 성혜인을 보고 눈썹을 들썩이며 욕설을 퍼부었다.“성혜인 씨,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성혜인은 지금 너무 차분하고 조용하다. 거리낌 할 정도로 너무 지나치게 조용하다.하지만 라미연은 배 속에 아이를 생각하며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아직 친자 확인도 하지 않았으니 모두가 반승제의 아이로 알고 있다.설마 반승제가 이미 이혼한 전처를 위해 자기 아이한테 손을 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성혜인 씨, 당장 이 집에서 나가는 게 좋을 거예요. 이 집은 반 대표님이 나한테 주는 선물이라고요. 이렇게 빌어 붙는다고 해도 반 대표님은 성혜인 씨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예요.”이 말을 듣고서도 성혜인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다만 라미연이 미련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 뿐이었다.가여울 정도로 미련한 사람은 처음으로 보는 것만 같았다.성혜인은 곁에 있는 경호원을 보고 덤덤하게 말했다.“잡아요.”이에 경호원들은 서둘러 앞으로 다가가 라미연의 두 손을 꽁꽁 묶었다. 그뿐만 아니라 두 다리까지 풀리지 않게끔 묶어 버렸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라미연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저기요! 나 지금 반 대표님 아이 품고 있어요. 반 대표님이 퇴원하고 나면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고요. 무섭지도 않아요?”그러나 성혜인의 라미연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경호원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병원.반승제는 네이처 빌리지에서 제공한 감시 카메라 동영상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랐지만, 클릭하고 열어 보니 그 속에 뭐가 담겨 있는지 알게 되었다.이때 하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대표님, 겨울이는 지금 응급치료받고 있습니다. 아마 다시 깨어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순간 반승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라미연은요?”“대표님께서 쫓아내시라고 하셔서 이미 가셨습니다.”반승제는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인우가 오전에 두 사람의 휴대전화를 모두 준비해 놓았기에 당연히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성혜인의 가방은 소파에 놓여 있고 무음 모드라 들리지가 않았다.하물며 지금 라미연을 혼쭐내주고 있다.라미연이 임신한 몸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성혜인은 얼굴만 때리고 있다.성혜인이 전화를 받지 않자, 반승제는 문득 라미연을 찾으러 갔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반승제는 성혜인 편이다. 이런 일을 저지른 라미연은 맞아도 싼 인간임이 분명하다.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라미연이 품고 있는 아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그날 라미연이 임신했다는 소리를 듣고 성혜인이 왜 그토록 화를 냈는지 알게 되었다.라미연이 품고 있는 아이에 대해서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반승제의 태도에 화가 났던 것이다.반승제의 태도에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아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이는 성혜인에게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가장 큰 아픔이다.하여 어젯밤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지만 아이의 일이 문득문득 튀어나와 성혜인의 신경을 자극했다.자극이 올 때마다 성혜인의 반승제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이는 실은 성혜인의 탓도 아니다. 반승제 스스로 저지른 일이기에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성혜인은 지금 한창 화가 치밀어 오른 상태라 이성을 잃고 라미연에게 무언가를 할지도 모른다.그러나 진정하고 나서 자기로 인해 한 아이가 죽게 되면 미친 듯이 괴로워할 것이다.반승제
반승제는 휠체어 밀고 천천히 다가가 라미연의 목을 조르고 있는 성혜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이미 온몸을 힘을 다 들인 성혜인이라 남은 힘도 별로 없이 아주 쉽게 반승제에게 잡혔다.라미연은 실신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는데, 반승제가 나타남으로 하여 큰 힘을 얻게 되었다.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라미연은 반승제에게 애원했다.“반 대표님,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여자가 죽이려고 그래요. 제발 아이를 봐서라도 저 좀 살려주세요.”이런 상황에서 아이에 대해 말이 나오자, 그 말은 성혜인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가 되어 버렸다.반승제의 얼굴도 순간 어두워졌지만 라미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절 위해 나설 주실 줄 알았어요. 흑흑흑… 저 지금 뱃속에 대표님 아이 품고 있어요. 저 여자가 우리 아이 죽이려고 그랬어요. 흑흑흑… 저렇게 악독하고 촌스러운 여자는 처음이에요. 더러운 짐승이나 다름없는 여자예요. 죽어가는 그 짐승하고 똑같다고요! 반 대표님, 흑흑흑… 우리 아이 목숨은 그 짐승보다 몇 배나 더 귀하단 말이에요.”“닥쳐.”차갑기 그지없는 반승제의 말투 또한 비수가 되어 라미연의 가슴을 푹푹 찔렀다.만약 평소라면 라미연은 아마 반승제가 무척이나 두려웠을 것이다.하지만 이제 막 죽을 고비를 넘은 라미연은 눈에 뵈는 게 없었다.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가능한 한 배 속에 아이를 많이 언급하고 목숨을 보존할 수 있는 지푸라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이에 반승제는 라미연의 입을 막으라고 지시를 내렸다.“우우우…”라미연은 순간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입안에는 피가 낭자했다. 반승제와 성혜인을 미친 듯이 노려보며 최대한으로 배를 드러냈다.이쯤 돼서 성헤인도 문득 정신을 차렸고 조금 전 라미연을 하마터면 죽일 뻔했다.심지어 배 속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찰나 잊게 되었다.정신을 차리고 나니 괴로움이 미친 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얼굴은 이미 사색이 되어 지나친 통증으로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을 꺼내서 보여주고 싶었다.반승제는 성혜인이 괴로워하는
반태승의 말에 반승제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뭐? 성혜인도 갔었다고?’하지만 반승제는 그런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이때 반태승의 일깨움으로 문득 뭔가가 떠올랐는데, 술에 취해 정신이 해롱해롱할 때, 성혜인의 얼굴을 본 듯했다.그때는 단지 꿈이라고 여겼을 뿐이다.꿈을 꾸고 있는 것이기에 하고 싶었던 일을 했을 것이고 가차 없이 성혜인을 창가에 밀어붙이고 욕정을 풀어 헤쳤다.허리가 부러질 지경으로 성혜인과 사랑을 나눴으며 가능한 한 몸속으로 녹이고 싶었다.그러나 반승제는 지금껏 그 모든 것이 단지 지나친 그리움으로 인해 일어난 환각이라고 생각했었다.그때 그 기분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는데, 지금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성혜인과 사랑을 나눌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만끽한 것 같았다.“할아버지, 저…”반태승은 두터운 자료를 반승제에게 던졌다.“이미 조사했다. 그날 밤 라미연은 네이처 빌리지에서 나와 남자 웨이터를 만나러 갔었다. 지금 배 속에 아이도 아마 그날에 생겼을 것이다. 같은 날이지만 우리 반씨 가문의 아이는 절대 아니야. 만약 네가 잔 사람이 혜인이라면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나눌 때 어떤 기분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반승제는 순간 말 문이 막혔다. 그날 밤 자고 나서 상대가 중간에 떠나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그래서 반승제는 모든 체면을 내려놓고 뒤에서 그 여자를 안으며 가지 말라고 애원했었다.하지만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바람에 도통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그날 밤의 감시 카메라를 다시 돌려 보았는데, 성혜인이 떠나자마자 라미연이 온 것이 보였다.이제 막 사랑을 다 나눈 상태라 다른 여자한테 반응이 생길 수가 없었다.반승제가 좋아하는 것은 성혜인의 몸에서 나는 희미하고 어렴풋한 냄새이지 향수 냄새는 아니다.그 냄새는 보디로션 아니면 성혜인이 자주 쓰는 샴푸 냄새이다.그래서 다음날 라미연을 봤을 때, 놀라워 마지 못했으며 몸에 향수를 뿌린 여자를 뿌리치지 않을
너무 많은 걸 말한 것 같아 반태승은 얼른 손을 흔들었다.“뭐가 뭐야! 말썽만 부리고 다니고 일만 망치고 다니는 녀석이라곤! 아무튼 네가 알아서 해! 그렇게 잠자리하고 나서 갑을 을로 착각하면서 라미연한테 다들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네가 어떻게 하고 다녔는지 똑똑히 봐봐!”“할아버지!”반승제는 순간 목소리를 높이며 화가 난 나머지 숨까지 고르게 쉬지 못하고 있다.“겨울이 전 주인이 누구라고요? 성혜인이 좋아했던 그 남자라고요? 맞습니까?”반태승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 이 일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는 자태를 취했다.“그냥 내 생각이다.”“할아버지 생각이라고요?”이에 반승제는 우습기만 했고 숨까지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심지어 말을 뱉고 있는데 살짝 울먹이고 있다고 느껴졌다. 만약 반태승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너무 아이러니하다.알레르기를 참아가면서 겨울이를 동물 병원으로 데려갔었고 그로 인해 입원까지 했으니 말이다.게다가 성혜인과 말거리를 찾으려고 겨울이에 대해서 자주 언급했으며 조금이 나마 자기한테 반응해주기를 바랬다.근데, 겨울이가 전에 그 남자가 남겨준 애완견이라면…겨울이가 있는 한 영영 그 남자를 잊지 못하는 말이 아닌가?반승제는 순간 라이벌이 남긴 강아지를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자신이 가소로웠다.가슴도 미어지는 것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만 같았다.반태승의 말은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순간 모든 사고를 정지시켜 버렸다.그러다가 갑자기 그날 병원에서 성혜인을 돌보면서 성혜인의 입에서 나온 낯선 이름이 떠올랐다.그때 성혜인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혹시 첫사랑은 아닌지 물은 적이 있다.성혜인은 겨울이의 전 주인이라고 대답했었다.하지만 첫사랑이라고 승인하지 않았는데, 인제 와 보니 승인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다만 머리를 써가며 에둘러 말했을 뻔이다.모든 진상이 드러나자 반승제의 눈빛은 순간 한없이 험산 해졌다.반태승은 이미 포레스트를 떠났고 지금 포레스트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반승제의 기분이
홀은 순간 간담이 서늘해 질 정도로 조용해졌으며, 반승제는 순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휠체어 손잡이를 꽉 쥔 채 손등에 힘줄까지 불끈 솟아올랐다.성혜인이 조금 전 뱉은 그 말은 살상력이 만렙에 달한다. 아직 라미연이 품고 있는 아이가 반승제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에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겨울이의 목숨이 반승제 아이의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했다.여기서 가리키는 반승제의 아이란 성혜인의 품었던 아이와 라미연이 품고 있는 아이를 가리킨다.반승제의 나쁜 속마음을 질책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반승제는 헛기침하며 낭패하기 그지없어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도 몰랐다.성혜인 앞에서 반승제는 강할 수도 있고 무례하게 행동할 수도 있다.하지만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나서 반승제는 모든 반항 능력을 잃은 것만 같았다.입을 꾹 다물고 입만 오므린 채 의사에게 묻고 있는 성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겨울이 어때요?”“희망이 있어 보입니다. 선생님께서 아직 응급 치료하고 있습니다.”남은 대화는 더 이상 반승제의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사람의 대뇌는 참 이상한 것만 같다. 분명 열심히 듣고 있으나, 그 소리가 시끄럽기만 하며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반승제는 심인우가 있는 쪽으로 바라보았다.그러자 심인우는 한걸음에 뒤로 다가와 묵묵히 휠체어를 밀었다.반승제는 본래 몸이 허약하고 스스로 휠체어를 조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가만히 잡고만 있을 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사실 성혜인도 마음이 좋지 않다.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리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심인우는 지금 반승제를 밀고 병원을 떠나고 있다.성혜인이 스스로 악한 여자라며 소심하기 짝이 없다며 생각하고 있다.반승제의 상태가 자기로 인해 나빠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막말을 하고 있을 때 반격했으니 말이다.입으로만 말하고 행동으로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픈 말을 퍼부었다.성혜인은 고개를 떨
심인우는 반승제를 밖으로 밀고 나오면서 감히 한 마디도 묻지 못했다.차 앞에 이르러서도 문을 열고 나서 포레스트로 갈 것인지 아니면 네이처 빌리지로 갈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고개를 떨구고 있는 반승제의 모습이 곁눈으로 보였다.아마 빛이 너무 어두워서 환자복에 떨어진 그 물방울은 자기의 착각이라고 심인우는 생각했다.“대표님, 네이처 빌리지로 모시면 되겠습니까?”“음.”차에서 눕혀진 사다리 같은 것이 펼쳐져 나왔는데, 이에 따라 휠체어는 그대로 차에 오를 수 있다.그러고 나서 심인우는 운전석으로 달려가 앉았다.병원을 떠났을 때, 반승제는 이미 모든 퇴원 절차를 마쳤고 의사한테 집에서 휴양하고 매일 시간 맞춰 의사 더러 집으로 방문하라고 했다.병원 측에서도 뭐라고 할 수 없었고 다만 의사의 지시에 맞게 엄격하게 움직이라고 당부했다.네이처 빌리지로 돌아와서 반승제가 심인우에게 말했다.“전에 혜인이가 무슨 이유로 차로 네이처 빌리지 대문을 들이박았는지 알아봐요.”심인우는 반승제의 성격대로라면 앞으로 성혜인과 다시는 보지 않고 지낼 줄 알았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반승제는 성혜인을 변함없이 관심하고 있다.심인우는 지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반승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온몸에 땀이 흥건하여 샤워할 필요도 있다.하지만 반승제는 남자든 여자든 자기 몸에 손대는 것을 싫어하며 그 누구든 자기 몸을 닦아주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한다.하지만 성혜인은 예외이다.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절대 오지 않을 성혜인이다.하여 하는 수 없이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세안대에 지탱하여 천천히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허약하기 그지없는 몸뚱어리라 순간 무력해지면서 머리까지 어지러웠다.의사는 머리에 입은 상처가 심각하다고 했었다.반승제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는데, 얼굴은 종잇장처럼 하얗고 병세가 역력하다.한쪽에 있는 수건으로 몸을 깨끗이 닦고는 옆에 잠옷으로 갈아입었다.그러고 나서 다시 휠체어에 앉았고 때마침
“아니, 너 진짜 성혜인 때문에 돌았어?”반승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고개도 뚝 떨구면서 꼭 쥐고 있던 주먹까지 풀어지면서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온시환은 한참 동안 기다렸는데, 아마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으로 생각했다.반승제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억울한 일이라고 대충 짐작했다.성혜인에게 맞서면 반승제는 하찮은 원한이라도 결코 갚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승제야,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X스하기 젤 좋아! 됐어?”전화는 그대로 끊기고 온시환은 끊어진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이 세상에서 고집이 가장 센 사람은 아마 반승제일 것이다.온시환은 휴대전화를 한쪽에 던지고 경찰서에 다시 전화해서 라미연을 도로 보내려고 했다.필경 이 일로 반승제와 성혜인 사이가 뒤틀어졌기 때문이다.하지만 아직 전화를 걸기 전에 문득 반승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반승제는 그저 성혜인에게 사과만 하라고 했고 라미연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혼자서 라미연 해결했나?’‘라미연 배 속의 아이에 대해서도 이미 사실을 알아냈나?’온시환은 재빨리 전화를 끊고 다음 날 S.M으로 직접 찾아가 성혜인에게 사과하려고 했다.한편, 반승제는 전화를 끊고 침대에 누웠다.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고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아팠다.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데 콕 집어서 말하라고 하면 어디가 아픈지 말 할 수 없었다.그렇다고 해서 가슴 쪽 상처를 억누를까 봐 함부로 뒤척이지도 못했다.심지어 만약 가능하다면 시간이 딱 그때 소로 길에서 멈췄으면 했다.그때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아픈 소리도 하지 않았고 서로에게 기대며 시간을 보냈었다.그 순간 생사마저도 한낱 보잘것없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다.반승제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한참 지나서 눈을 다시 뜨고 옆에 있는 휴대전화를 쥐고서는 붉어진 눈시울로 타자하기 시작했다.먼저 이렇게 여섯 글자만 적었었다.「내가 잘못했어.」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