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관련된 법규라도 있어?성혜인은 다시 한번 반승제의 뻔뻔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가슴 쪽의 상처가 보여서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떨구고 묵묵히 다리에 묻은 물방울을 깨끗이 닦아 주었다.그러고 나서 옆에 있는 가운을 반승제에게 걸쳐주고 손이 가는 대로 매듭지었다.모든 걸 마치고 성혜인은 욕조의 물을 버리려고 허리를 굽혔다.허리를 굽히자마자 갑자기 반승제가 뒤에서 꼭 끌어안는 바람에 성혜인은 순간 흠칫거렸다.“왜 이렇게 무덤덤해?”아직 목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반승제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이때 성혜인의 손끝은 마침 물에 닿아 따뜻하기 그지없었다.“콸콸콸.”욕조의 마개가 열리자 물은 천천히 흘러 내려갔다.반승제는 비록 몸에 반응이 왔지만, 그럴 힘이 없었고 한참을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니 졸음이 밀려왔다.그런 반승제를 성혜인은 침대로 부축해 갔다. 반승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에는 병색이 역력했다.밤도 깊고 인적도 드문 이 시간, 성혜인은 여전히 병상 옆에 앉아 반승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실은 한참 동안 반승제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피부도 좋고 이목구비도 또렷한 것이 안색이 창백함에도 불구하고 미모는 여전했다.주위에 아무도 없고 복도의 불도 어두운 틈을 타서 성혜인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 반승제의 얼굴을 살짝 건드렸다.성혜인이 무덤덤한 것이 아니라 반승제와 함께 하기로 일단 마음을 먹으면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아서다.성혜인은 마침내 온시환의 그 말뜻을 깨달았다.“그 정도의 용기도 없으면 반승제 보러 가지 마.”반승제와 함께 있기 전부터 성혜인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일단 함께하기로 마음을 먹기만 하면 이 방면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하지만 반승제에게 빌붙어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만약 지금처럼 언제나 반승제가 자기를 구하러 오기만을 기다린다면, 도움이 되기는커녕 부담만 될 것이다.반승제에게는 그의 사명이 있는데, 그 사명은 바로 반씨 가문이다.물론 성
물론 라미연도 이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다.한 방에 훅 들어가서 반승제의 마지노선을 건드리면 자기를 더욱 싫어하리라는 것도분명하다.하여 거실로 들어가고 나서 라미연은 딱 1층에서만 반승제를 내내 기다렸다.하지만 완쾌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알고 있는 라미연은 요즘 반승제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렇게 다음 날까지 이곳에 머물다가 정원에 하얀색 강아지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라미연은 반승제에게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 줄 모르고 그가 키우는 애완견으로 착각했다.하인들이 겨울이에게 가장 좋은 고기를 먹이고 있을 때 라미연은 한걸음에 다가갔다.“내가 먹일게요. 반 대표님이 키우는 강아지예요? 너무 귀여워요. 근데 이름은 뭐예요?”하인들은 라미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대꾸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이에 라미연도 하인들이 사람을 무시한다고 여기며 속으로 차갑게 비웃었다.‘허허, 두고 봐, 결혼하는 즉시 싹 다 잘라버릴 거야.’그때가 되면 친구들을 불러 자기를 사모님처럼 모시게 할 생각이다.이러한 생각을 품으며 라미연은 씩 웃더니 소고기를 들고 겨울이를 찾아갔다.도중에 두 하인이 하는 얘기를 라미연이 듣게 되었다.“아직 겨울이가 성혜인 씨 애완견이라는 거 모르고 있는 거 같아. 우리 대표님이 얼마나 좋아하시는데.”“개털 알레르기가 있으신 우리 대표님이 강아지를 키울 리가 있겠어.”“어떻게든 대표님께 빌붙어 살려고 하는 거 볼 때마다 짜증 나. 성혜인 씨보다 잘난 것도 하나도 없으면서.”순간 라미연의 얼굴은 더없이 험상 궂어졌다.그리고 반승제에게 개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도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잠깐, 개털 알레르기도 있으면서 성혜인 그 여자 애완견을 여기에 둔다고?”‘성혜인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생각하면 할수록 열이 나 라미연은 손에 들고 있던 고급 소고기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짐승 따위는 이런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러고 나서 라미연은 겨울이가 자는 곳으로 왔다
한편, 병원에서 성혜인은 오전 내내 반승제를 돌보고 있었다.의사에게 언제쯤 퇴원할 수 있는지 묻자 의사는 적어도 보름은 걸리며 환자의 회복 상태에 달렸다고 했다.퇴원에 관해 묻고 나서 성혜인은 점심밥을 들고 반승제 병실로 들어섰다.반승제의 손에는 핸드폰 한 대가 더 생겼는데, 아마 심인우가 준비해 준 것으로 보인다.반승제는 물론이고 자기 핸드폰도 새로 갖춰졌다.이제 막 핸드폰을 열었는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며 네이처 빌리지 하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마침 식사하려고 했던 반승제는 손에 힘도 별로 없어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무슨 일이야?””대표님, 라미연 씨께서 밤새 대표님을 기다렸습니다.”이에 반승제는 온몸이 굳어지더니 저도 모르게 성혜인의 눈치를 살폈다.그날 홧김에 라미연과 결혼하겠다고 한 말을 잊은 건 아니다.하지만 성혜인처럼 고집이 센 사람은 아마 믿었을지도 모른다.어젯밤 겨우 몰래 손을 다시 잡을 수 있었는데, 다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원점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당장 쫓아내! 누가 들인 거야? 당장 경호원한테 전화해서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게 똑똑히 말해.”“근데 라미연 씨께서 임신한 일로 자꾸 협박 아닌 협박을 해서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임신이라는 말이 나오자 반승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날 밤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이런 여자와 잠자리했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늘 그 방면에서 확고한 편이고 성혜인 앞에서만 와르르 무너지는 반승제이다.“쫓아내!”반승제는 주저없이 또박또박 말했다.이에 하인은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고 했지만, 성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겨울이 네이처 빌리지에 있어요?”성혜인은 의사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수색 구조 그날에 하얀색 강아지가 매우 적극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절대 도망쳐 나오지 못할 거 같아 성혜인은 겨울이를 풀어 주었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겨울이가 무척이나 걱정되는 성혜인이다.하인의 성혜인의 목소리를 듣고 얼른 대답했
서둘러 달려온 성혜인도 동물 병원에 도착했다.현장에는 여러 명의 하인이 서 있었고 겨울이는 이미 검사받으러 들어갔으며 검사 결과에 따라 지금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학대 당했습니다. 폭행자가 누군지 얼른 알아내세요.”급하게 달려온 성혜인은 이제 겨우 마음을 추슬렀는데, 의사의 말에 다시금 화가 용솟음치면서 제대로 폭발해 버렸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의사는 성혜인을 한 번 보고는 강아지 주인임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안경테를 위로 밀면서 다시 설명해주었다.“말 그대로입니다. 외부 충격으로 기절한 겁니다. 만약 폭행자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살려낸다고 해도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성혜인은 이를 악물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인들을 바라보았다.하인들도 의사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무릎까지 꿇었다.“아닙니다. 저희는 겨울이한테 그런 적 없습니다. 대표님께서 겨울이를 얼마나 끔찍이 여기시는데, 간이 배 밖으로 나온다고 하더라도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성혜인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말했다.“감시 카메라 돌려보세요.”이에 하인들은 잠시도 지체할 수 없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감시 카메라를 보러 갔다.성혜인은 지금 온몸에 힘이 다 빠진 것만 같다. 의사한테서 겨울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들을 때도 미친 듯이 후회했다.겨울이 데리고 산책은 왜 갔는지, 네이처 빌리지 사람들이 겨울이를 잘 챙겨줄 거라고 왜 자신만만했는지, 모든 것이 자기 잘못만 같았다.어느새 눈물은 하염없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 나서도 성혜인은 울지 않았다.하지만 겨울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만 참지 못하고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성혜인은 이를 악물고 주먹도 불끈 잡아당겼다.‘내가 어떻게든 알아내고 말 거야. 우리 겨울이 학대한 범인이 누군지 꼭 찾아낼 거야.’두 시간 동안 지나서 네이처 빌리지에서는 감시 카메라 동영상을 성혜인에게 보내주었고 동시에 반승제에게도 보내주었다.감시 카메라에 찍힌 동영상을 보면 라미연이 어떻
하지만 차는 네이처 빌리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포레스트에서 멈춰 섰다.라미연은 아직 이곳이 성혜인의 별장이라는 것을 모르고 반승제의 또 다른 별장으로 알고 있다.웃음이 만발한 얼굴로 설마 반승제가 시원하게 자기에게 별장 한 채를 선물해 주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전에 반승제에게서 20억을 받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10억을 더 받았었는데, 이는 일반인이 평생토록 노력해도 벌 수 없는 돈이다.그렇다면 지금 이 별장의 값어치는 얼마나 될까?아마 수천억은 되지 않을까?라미연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놀라워 마지 못한 채 거실까지 들어섰는데, 소파에 버젓이 앉아 있는 성혜인을 보고 눈썹을 들썩이며 욕설을 퍼부었다.“성혜인 씨,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성혜인은 지금 너무 차분하고 조용하다. 거리낌 할 정도로 너무 지나치게 조용하다.하지만 라미연은 배 속에 아이를 생각하며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아직 친자 확인도 하지 않았으니 모두가 반승제의 아이로 알고 있다.설마 반승제가 이미 이혼한 전처를 위해 자기 아이한테 손을 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성혜인 씨, 당장 이 집에서 나가는 게 좋을 거예요. 이 집은 반 대표님이 나한테 주는 선물이라고요. 이렇게 빌어 붙는다고 해도 반 대표님은 성혜인 씨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예요.”이 말을 듣고서도 성혜인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다만 라미연이 미련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 뿐이었다.가여울 정도로 미련한 사람은 처음으로 보는 것만 같았다.성혜인은 곁에 있는 경호원을 보고 덤덤하게 말했다.“잡아요.”이에 경호원들은 서둘러 앞으로 다가가 라미연의 두 손을 꽁꽁 묶었다. 그뿐만 아니라 두 다리까지 풀리지 않게끔 묶어 버렸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라미연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저기요! 나 지금 반 대표님 아이 품고 있어요. 반 대표님이 퇴원하고 나면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고요. 무섭지도 않아요?”그러나 성혜인의 라미연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경호원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병원.반승제는 네이처 빌리지에서 제공한 감시 카메라 동영상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랐지만, 클릭하고 열어 보니 그 속에 뭐가 담겨 있는지 알게 되었다.이때 하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대표님, 겨울이는 지금 응급치료받고 있습니다. 아마 다시 깨어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순간 반승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라미연은요?”“대표님께서 쫓아내시라고 하셔서 이미 가셨습니다.”반승제는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인우가 오전에 두 사람의 휴대전화를 모두 준비해 놓았기에 당연히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성혜인의 가방은 소파에 놓여 있고 무음 모드라 들리지가 않았다.하물며 지금 라미연을 혼쭐내주고 있다.라미연이 임신한 몸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성혜인은 얼굴만 때리고 있다.성혜인이 전화를 받지 않자, 반승제는 문득 라미연을 찾으러 갔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반승제는 성혜인 편이다. 이런 일을 저지른 라미연은 맞아도 싼 인간임이 분명하다.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라미연이 품고 있는 아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그날 라미연이 임신했다는 소리를 듣고 성혜인이 왜 그토록 화를 냈는지 알게 되었다.라미연이 품고 있는 아이에 대해서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반승제의 태도에 화가 났던 것이다.반승제의 태도에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아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이는 성혜인에게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가장 큰 아픔이다.하여 어젯밤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지만 아이의 일이 문득문득 튀어나와 성혜인의 신경을 자극했다.자극이 올 때마다 성혜인의 반승제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이는 실은 성혜인의 탓도 아니다. 반승제 스스로 저지른 일이기에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성혜인은 지금 한창 화가 치밀어 오른 상태라 이성을 잃고 라미연에게 무언가를 할지도 모른다.그러나 진정하고 나서 자기로 인해 한 아이가 죽게 되면 미친 듯이 괴로워할 것이다.반승제
반승제는 휠체어 밀고 천천히 다가가 라미연의 목을 조르고 있는 성혜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이미 온몸을 힘을 다 들인 성혜인이라 남은 힘도 별로 없이 아주 쉽게 반승제에게 잡혔다.라미연은 실신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는데, 반승제가 나타남으로 하여 큰 힘을 얻게 되었다.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라미연은 반승제에게 애원했다.“반 대표님,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여자가 죽이려고 그래요. 제발 아이를 봐서라도 저 좀 살려주세요.”이런 상황에서 아이에 대해 말이 나오자, 그 말은 성혜인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가 되어 버렸다.반승제의 얼굴도 순간 어두워졌지만 라미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절 위해 나설 주실 줄 알았어요. 흑흑흑… 저 지금 뱃속에 대표님 아이 품고 있어요. 저 여자가 우리 아이 죽이려고 그랬어요. 흑흑흑… 저렇게 악독하고 촌스러운 여자는 처음이에요. 더러운 짐승이나 다름없는 여자예요. 죽어가는 그 짐승하고 똑같다고요! 반 대표님, 흑흑흑… 우리 아이 목숨은 그 짐승보다 몇 배나 더 귀하단 말이에요.”“닥쳐.”차갑기 그지없는 반승제의 말투 또한 비수가 되어 라미연의 가슴을 푹푹 찔렀다.만약 평소라면 라미연은 아마 반승제가 무척이나 두려웠을 것이다.하지만 이제 막 죽을 고비를 넘은 라미연은 눈에 뵈는 게 없었다.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가능한 한 배 속에 아이를 많이 언급하고 목숨을 보존할 수 있는 지푸라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이에 반승제는 라미연의 입을 막으라고 지시를 내렸다.“우우우…”라미연은 순간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입안에는 피가 낭자했다. 반승제와 성혜인을 미친 듯이 노려보며 최대한으로 배를 드러냈다.이쯤 돼서 성헤인도 문득 정신을 차렸고 조금 전 라미연을 하마터면 죽일 뻔했다.심지어 배 속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찰나 잊게 되었다.정신을 차리고 나니 괴로움이 미친 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얼굴은 이미 사색이 되어 지나친 통증으로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을 꺼내서 보여주고 싶었다.반승제는 성혜인이 괴로워하는
반태승의 말에 반승제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뭐? 성혜인도 갔었다고?’하지만 반승제는 그런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이때 반태승의 일깨움으로 문득 뭔가가 떠올랐는데, 술에 취해 정신이 해롱해롱할 때, 성혜인의 얼굴을 본 듯했다.그때는 단지 꿈이라고 여겼을 뿐이다.꿈을 꾸고 있는 것이기에 하고 싶었던 일을 했을 것이고 가차 없이 성혜인을 창가에 밀어붙이고 욕정을 풀어 헤쳤다.허리가 부러질 지경으로 성혜인과 사랑을 나눴으며 가능한 한 몸속으로 녹이고 싶었다.그러나 반승제는 지금껏 그 모든 것이 단지 지나친 그리움으로 인해 일어난 환각이라고 생각했었다.그때 그 기분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는데, 지금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성혜인과 사랑을 나눌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만끽한 것 같았다.“할아버지, 저…”반태승은 두터운 자료를 반승제에게 던졌다.“이미 조사했다. 그날 밤 라미연은 네이처 빌리지에서 나와 남자 웨이터를 만나러 갔었다. 지금 배 속에 아이도 아마 그날에 생겼을 것이다. 같은 날이지만 우리 반씨 가문의 아이는 절대 아니야. 만약 네가 잔 사람이 혜인이라면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나눌 때 어떤 기분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반승제는 순간 말 문이 막혔다. 그날 밤 자고 나서 상대가 중간에 떠나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그래서 반승제는 모든 체면을 내려놓고 뒤에서 그 여자를 안으며 가지 말라고 애원했었다.하지만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바람에 도통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그날 밤의 감시 카메라를 다시 돌려 보았는데, 성혜인이 떠나자마자 라미연이 온 것이 보였다.이제 막 사랑을 다 나눈 상태라 다른 여자한테 반응이 생길 수가 없었다.반승제가 좋아하는 것은 성혜인의 몸에서 나는 희미하고 어렴풋한 냄새이지 향수 냄새는 아니다.그 냄새는 보디로션 아니면 성혜인이 자주 쓰는 샴푸 냄새이다.그래서 다음날 라미연을 봤을 때, 놀라워 마지 못했으며 몸에 향수를 뿌린 여자를 뿌리치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