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틀 뒤, 반승제가 깨어났다.하얀 천장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고 여자의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반승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이마를 만지려던 순간 반태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래서 우리 승제가 진짜 그 여자를 임신시켰단 말이야? 언제 적 일인데? 아무 여자나 들쑤시고 다니더니, 이 자식 깨어나기만 해봐 아주 그냥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릴 것이야.”이 말을 들은 반승제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머리가 더 아파오는것 같았지만 그는 계속 자는 척하기로 마음먹었다.반태승은 지팡이를 짚고 손자의 병상 옆에 있었고 라미연도 울음을 그치고 안절부절 해하며 앉아있었다.반태승은 그녀의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언제쯤 일이에요? 아가씨는 언제부터 우리 손자를 알게 되었어요?”라미연은 반태승이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것을 알기 때문에 그에게 밉보일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상상치도 못한 인물을 접한 그녀는 이것이 자신이 출세할 기회라고 생각했다.그녀는 그날 반승제와 네이처 빌리지에서 만난 이유를 반태승에게 알려주었다.하지만 매사에 철두철미한 그는 라미연의 말이 믿음직스럽지 않았는지 심인우더러 네이처 빌리지의 CCTV를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다.그 동시, 반태승은 옆에 서 있는 의사에게도 물었다.“배 속에 아이도 친자 검사를 할 수 있나요?”그의 질문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반태승은 두 손으로 지팡이를 꼭 잡더니 이내 담담한 말투로 말하였다.“그럼 친자확인을 진행하죠. 만약 진짜 우리 반씨 가문의 핏줄이라면 당연히 재산의 일부를 물려주겠지만 우리 가문의 핏줄이 아니라면...”그 뒤의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반태승의 뜻을 알 수 있었다.진짜 핏줄이 아니라면 라미연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기에 그녀는 자신의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원래 겁이 많았던 라미연은 반태승의 말에 두려움을 느껴 떨고 있었다. 그러고는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온시환을 쳐다보았
온시환은 얼른 옆에 있는 따뜻한 물을 받아 그의 입에 갖다 댔다.“무슨 아직도 다른 사람 걱정을 하고 있어. 네가 보름이나 의식을 잃고 있었는데도, 성혜인 씨는 너 보러 오지도 않았어.”반승제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의 입술은 바짝 마른 핏자국이 있는 검붉은 색을 띠고 있었으며, 보기만 해도 심한 탈수 상태였다.피부는 유난히 하얗고 살이 많이 빠졌으며 눈빛은 어두컴컴한 게... 그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어딘가 좀 쓸쓸해 보였다.“진짜?”그는 성혜인이 이렇게 모질게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진짜가 아니면? 네가 그 사람 마음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봐. 아니, 너도 완전히 모르고 있는 건 아니겠지.”반승제는 그 남자의 손톱도 따라갈 수 없다는 성혜인의 말을 순간적으로 떠올렸다.그는 확실히 잘 알고 있다. 다만 믿고 싶지 않을 뿐.반승제는 늘 성혜인이 냉정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이렇게까지 냉담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매번 그렇듯, 두 사람이 서로 포옹한 다음 순간에 그녀는 상처 주는 말을 할 수 있다.진퇴양난의 길에 빠져 생사를 같이하던 감동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반승제는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동자가 마치 깊은 안개에 가려진 듯, 혹은 진흙으로 가득 찬 연못과 같았다.온시환은 그가 이러는 것을 보고 등을 뒤로 기댔다.“그러니까 내가 진작에 말했잖아. 왜 사랑을 믿기는 믿어.”하지만 이내 반승제가 화가 나 마음이 흔들릴까 봐 재빨리 한마디 고쳤다.“네가 나으면 마음대로 아무 여자나 다 만나도 돼. 요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네 소식을 묻는지 알아? 제원 사람도 있고 연예계 사람도 있어. 만약 예쁜 여자가 이상형이라면 내가 성혜인 씨보다 더 예쁜 여자 보내줄 수 있어. 그것도 하루에 한 명씩 바꿔도 된다고. 너 라미연이랑도 잤잖아, 엄청 좋지 않았어? 그치?”반승제는 피곤함을 느꼈다. 피
하지만 그가 일어나서 성혜인을 찾아가기도 전에 온시환이 옆에서 말했다.“내가 먹여줄까?”“꺼져.”반승제의 얼굴색은 마치 횡격막이 올라간 것 같이 매우 검었다.온시환은 어깨를 으쓱하고 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그는 일이 있어 이만 떠나야 했다.“그래, 내일 다시 보러 올게.”그가 떠나자 서주혁도 일어났다.“나는 저쪽 조사 진도가 어떤지 지켜봐야 해서, 너 먹여줄 사람 부를게.”“필요 없어.”반승제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었다.하지만 서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옆 병실로 갔다.성혜인은 사실 오늘 아침에 퇴원할 수 있었지만, 무슨 마음에서인지 그녀는 줄곧 퇴원 수속을 밟지 않았다.그때, 서주혁이 그녀의 병실 문을 두드렸다.“승제 깨어나면, 혜인 씨가 가서 도우미 역할 좀 해줘요.”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성혜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발길을 돌려 떠났다.이윽고 그녀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반승제의 병실로 향했다.잠시 문 앞에서 망설이기는 했지만, 결국 안으로 들어갔다.반승제는 서주혁이 정말 간호사를 불러온 줄 알고 기분 나빠 했다. 그래서 더욱 얼굴을 찌푸린 채 숟가락을 다시 집어보려고 했다.“꺼져.”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병실 문이 누군가에 의해 열리며 성혜인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반승제의 꺼지라는 말에 성혜인은 정말 떠날까 말까 하며 망설이고 있었다.“여기 침대 옆으로 오라고, 뭘 넋 놓고 서 있어?”그녀가 있는 것을 보고, 반승제는 손에 든 숟가락을 그릇에 툭 떨구며 능청을 부렸다.“힘이 없어.”성혜인은 자신이 그에게 빚진 것을 알기 때문에, 결국 침대 옆으로 와 문을 닫았다.반승제는 마음속의 화가 많이 풀렸지만 여전히 불편함을 느꼈다.‘이제야 온 거야? 아주 내가 죽은 다음에 오지 그냥.’성혜인은 병상으로 가서 숟가락을 들고 죽을 몇 번 저은 다음 반찬을 얹어 그의 입에 넣었다.“반... 반승제 씨.”원래는 대표님이라 부르려고 했지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이름
이에 관련된 법규라도 있어?성혜인은 다시 한번 반승제의 뻔뻔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가슴 쪽의 상처가 보여서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떨구고 묵묵히 다리에 묻은 물방울을 깨끗이 닦아 주었다.그러고 나서 옆에 있는 가운을 반승제에게 걸쳐주고 손이 가는 대로 매듭지었다.모든 걸 마치고 성혜인은 욕조의 물을 버리려고 허리를 굽혔다.허리를 굽히자마자 갑자기 반승제가 뒤에서 꼭 끌어안는 바람에 성혜인은 순간 흠칫거렸다.“왜 이렇게 무덤덤해?”아직 목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반승제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이때 성혜인의 손끝은 마침 물에 닿아 따뜻하기 그지없었다.“콸콸콸.”욕조의 마개가 열리자 물은 천천히 흘러 내려갔다.반승제는 비록 몸에 반응이 왔지만, 그럴 힘이 없었고 한참을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니 졸음이 밀려왔다.그런 반승제를 성혜인은 침대로 부축해 갔다. 반승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에는 병색이 역력했다.밤도 깊고 인적도 드문 이 시간, 성혜인은 여전히 병상 옆에 앉아 반승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실은 한참 동안 반승제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피부도 좋고 이목구비도 또렷한 것이 안색이 창백함에도 불구하고 미모는 여전했다.주위에 아무도 없고 복도의 불도 어두운 틈을 타서 성혜인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 반승제의 얼굴을 살짝 건드렸다.성혜인이 무덤덤한 것이 아니라 반승제와 함께 하기로 일단 마음을 먹으면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아서다.성혜인은 마침내 온시환의 그 말뜻을 깨달았다.“그 정도의 용기도 없으면 반승제 보러 가지 마.”반승제와 함께 있기 전부터 성혜인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일단 함께하기로 마음을 먹기만 하면 이 방면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하지만 반승제에게 빌붙어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만약 지금처럼 언제나 반승제가 자기를 구하러 오기만을 기다린다면, 도움이 되기는커녕 부담만 될 것이다.반승제에게는 그의 사명이 있는데, 그 사명은 바로 반씨 가문이다.물론 성
물론 라미연도 이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다.한 방에 훅 들어가서 반승제의 마지노선을 건드리면 자기를 더욱 싫어하리라는 것도분명하다.하여 거실로 들어가고 나서 라미연은 딱 1층에서만 반승제를 내내 기다렸다.하지만 완쾌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알고 있는 라미연은 요즘 반승제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렇게 다음 날까지 이곳에 머물다가 정원에 하얀색 강아지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라미연은 반승제에게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 줄 모르고 그가 키우는 애완견으로 착각했다.하인들이 겨울이에게 가장 좋은 고기를 먹이고 있을 때 라미연은 한걸음에 다가갔다.“내가 먹일게요. 반 대표님이 키우는 강아지예요? 너무 귀여워요. 근데 이름은 뭐예요?”하인들은 라미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대꾸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이에 라미연도 하인들이 사람을 무시한다고 여기며 속으로 차갑게 비웃었다.‘허허, 두고 봐, 결혼하는 즉시 싹 다 잘라버릴 거야.’그때가 되면 친구들을 불러 자기를 사모님처럼 모시게 할 생각이다.이러한 생각을 품으며 라미연은 씩 웃더니 소고기를 들고 겨울이를 찾아갔다.도중에 두 하인이 하는 얘기를 라미연이 듣게 되었다.“아직 겨울이가 성혜인 씨 애완견이라는 거 모르고 있는 거 같아. 우리 대표님이 얼마나 좋아하시는데.”“개털 알레르기가 있으신 우리 대표님이 강아지를 키울 리가 있겠어.”“어떻게든 대표님께 빌붙어 살려고 하는 거 볼 때마다 짜증 나. 성혜인 씨보다 잘난 것도 하나도 없으면서.”순간 라미연의 얼굴은 더없이 험상 궂어졌다.그리고 반승제에게 개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도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잠깐, 개털 알레르기도 있으면서 성혜인 그 여자 애완견을 여기에 둔다고?”‘성혜인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생각하면 할수록 열이 나 라미연은 손에 들고 있던 고급 소고기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짐승 따위는 이런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러고 나서 라미연은 겨울이가 자는 곳으로 왔다
한편, 병원에서 성혜인은 오전 내내 반승제를 돌보고 있었다.의사에게 언제쯤 퇴원할 수 있는지 묻자 의사는 적어도 보름은 걸리며 환자의 회복 상태에 달렸다고 했다.퇴원에 관해 묻고 나서 성혜인은 점심밥을 들고 반승제 병실로 들어섰다.반승제의 손에는 핸드폰 한 대가 더 생겼는데, 아마 심인우가 준비해 준 것으로 보인다.반승제는 물론이고 자기 핸드폰도 새로 갖춰졌다.이제 막 핸드폰을 열었는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며 네이처 빌리지 하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마침 식사하려고 했던 반승제는 손에 힘도 별로 없어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무슨 일이야?””대표님, 라미연 씨께서 밤새 대표님을 기다렸습니다.”이에 반승제는 온몸이 굳어지더니 저도 모르게 성혜인의 눈치를 살폈다.그날 홧김에 라미연과 결혼하겠다고 한 말을 잊은 건 아니다.하지만 성혜인처럼 고집이 센 사람은 아마 믿었을지도 모른다.어젯밤 겨우 몰래 손을 다시 잡을 수 있었는데, 다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원점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당장 쫓아내! 누가 들인 거야? 당장 경호원한테 전화해서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게 똑똑히 말해.”“근데 라미연 씨께서 임신한 일로 자꾸 협박 아닌 협박을 해서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임신이라는 말이 나오자 반승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날 밤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이런 여자와 잠자리했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늘 그 방면에서 확고한 편이고 성혜인 앞에서만 와르르 무너지는 반승제이다.“쫓아내!”반승제는 주저없이 또박또박 말했다.이에 하인은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고 했지만, 성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겨울이 네이처 빌리지에 있어요?”성혜인은 의사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수색 구조 그날에 하얀색 강아지가 매우 적극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절대 도망쳐 나오지 못할 거 같아 성혜인은 겨울이를 풀어 주었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겨울이가 무척이나 걱정되는 성혜인이다.하인의 성혜인의 목소리를 듣고 얼른 대답했
서둘러 달려온 성혜인도 동물 병원에 도착했다.현장에는 여러 명의 하인이 서 있었고 겨울이는 이미 검사받으러 들어갔으며 검사 결과에 따라 지금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학대 당했습니다. 폭행자가 누군지 얼른 알아내세요.”급하게 달려온 성혜인은 이제 겨우 마음을 추슬렀는데, 의사의 말에 다시금 화가 용솟음치면서 제대로 폭발해 버렸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의사는 성혜인을 한 번 보고는 강아지 주인임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안경테를 위로 밀면서 다시 설명해주었다.“말 그대로입니다. 외부 충격으로 기절한 겁니다. 만약 폭행자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살려낸다고 해도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성혜인은 이를 악물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인들을 바라보았다.하인들도 의사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무릎까지 꿇었다.“아닙니다. 저희는 겨울이한테 그런 적 없습니다. 대표님께서 겨울이를 얼마나 끔찍이 여기시는데, 간이 배 밖으로 나온다고 하더라도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성혜인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말했다.“감시 카메라 돌려보세요.”이에 하인들은 잠시도 지체할 수 없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감시 카메라를 보러 갔다.성혜인은 지금 온몸에 힘이 다 빠진 것만 같다. 의사한테서 겨울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들을 때도 미친 듯이 후회했다.겨울이 데리고 산책은 왜 갔는지, 네이처 빌리지 사람들이 겨울이를 잘 챙겨줄 거라고 왜 자신만만했는지, 모든 것이 자기 잘못만 같았다.어느새 눈물은 하염없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 나서도 성혜인은 울지 않았다.하지만 겨울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만 참지 못하고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성혜인은 이를 악물고 주먹도 불끈 잡아당겼다.‘내가 어떻게든 알아내고 말 거야. 우리 겨울이 학대한 범인이 누군지 꼭 찾아낼 거야.’두 시간 동안 지나서 네이처 빌리지에서는 감시 카메라 동영상을 성혜인에게 보내주었고 동시에 반승제에게도 보내주었다.감시 카메라에 찍힌 동영상을 보면 라미연이 어떻
하지만 차는 네이처 빌리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포레스트에서 멈춰 섰다.라미연은 아직 이곳이 성혜인의 별장이라는 것을 모르고 반승제의 또 다른 별장으로 알고 있다.웃음이 만발한 얼굴로 설마 반승제가 시원하게 자기에게 별장 한 채를 선물해 주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전에 반승제에게서 20억을 받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10억을 더 받았었는데, 이는 일반인이 평생토록 노력해도 벌 수 없는 돈이다.그렇다면 지금 이 별장의 값어치는 얼마나 될까?아마 수천억은 되지 않을까?라미연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놀라워 마지 못한 채 거실까지 들어섰는데, 소파에 버젓이 앉아 있는 성혜인을 보고 눈썹을 들썩이며 욕설을 퍼부었다.“성혜인 씨,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성혜인은 지금 너무 차분하고 조용하다. 거리낌 할 정도로 너무 지나치게 조용하다.하지만 라미연은 배 속에 아이를 생각하며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아직 친자 확인도 하지 않았으니 모두가 반승제의 아이로 알고 있다.설마 반승제가 이미 이혼한 전처를 위해 자기 아이한테 손을 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성혜인 씨, 당장 이 집에서 나가는 게 좋을 거예요. 이 집은 반 대표님이 나한테 주는 선물이라고요. 이렇게 빌어 붙는다고 해도 반 대표님은 성혜인 씨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예요.”이 말을 듣고서도 성혜인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다만 라미연이 미련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 뿐이었다.가여울 정도로 미련한 사람은 처음으로 보는 것만 같았다.성혜인은 곁에 있는 경호원을 보고 덤덤하게 말했다.“잡아요.”이에 경호원들은 서둘러 앞으로 다가가 라미연의 두 손을 꽁꽁 묶었다. 그뿐만 아니라 두 다리까지 풀리지 않게끔 묶어 버렸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라미연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저기요! 나 지금 반 대표님 아이 품고 있어요. 반 대표님이 퇴원하고 나면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고요. 무섭지도 않아요?”그러나 성혜인의 라미연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경호원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