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의 눈빛은 매우 포악한 기운을 뿜고 있었다. 주위를 한 바퀴 뒤졌으나 성혜인의 행방을 발견하지 못해 결국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하지만 겨울이는 주인을 찾지 않으면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겨울아.”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가자. 지금 안 가면 너 여기 버릴 거야.”겨울이는 잔디밭에 앉아 있었는데 하늘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는 탓에 털이 전부 홀딱 젖어버렸다. 겨울이가 아무리 반승제를 좋아한다 해도, 이번만큼은 꿈쩍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그렇게 겨울이와 반승제는 서로 잠시간 대치를 벌였다. 얼마 안 지나 결국 반승제가 먼저 타협하기로 했다.그는 자신의 양복을 벗어 겨울이를 감싸고 차가운 표정으로 내려갔다.‘주인이 나한테 성질을 부리면 됐지, 이제 그 개도 내 머리 위에 올라타려고 하네.’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짜증도 나고 화도 났지만, 겨울이가 단지 자신의 주인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개들은 때때로 충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매우 서투르다.많은 개는 주인이 죽은 후에도 묘비에서 잠을 잔다.그들은 죽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 단지 입을 열 수 없을 뿐.반승제가 아래로 내려갈 때, 마침 심인우가 차를 몰고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대표님, 혜인 씨는 별장에 없습니다.”‘혜인이한테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크군.’“주변의 모든 CCTV를 찾아봐요. 땅을 모두 뒤진다 해도 반드시 찾아내야 합니다!”심인우는 이미 그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분부한 지 오래였다. 지금으로서 그는 알레르기가 있는 반승제가 겨울이를 안고 있는 게 심히 걱정될 뿐이었다.반승제는 조심스럽게 겨울이를 차에 싣고 자신도 따라 탔다.네이처 빌리지로 돌아와, 겨울이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내내 밖에 앉아 비를 맞았다.하지만 반승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성혜인의 소식을 기다렸다.샤워를 마친 후 밖으로 나오니 겨울이는 여전히 입구에 앉아 있었다. 마치 성혜인이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려는 것처럼 말이다.반승제
현장의 사람들도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어찌 감히 반승제를 홀로 이곳에 둘 수 있겠는가.하지만 반승제는 손을 들어 손목의 시계를 쳐다보기만 했다.“다들 지진 감시국에서 안전하다고 할 때 다시 오세요.”“하지만 대표님...”그러나 반승제는 이미 길을 떠나고 있었다.결국 다른 사람들은 겨울이를 목줄에 묶어 하나둘 헬리콥터에서 내려온 줄을 잡았다....정신을 차린 성혜인의 귀에는 물이 똑똑 떨어지는 주변의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하도 고요해도 그 소리는 유난히 더욱 또렷이 들렸다.그녀는 앞으로 가려고 노력했지만, 동굴은 너무 어두웠고 산소마저 약간 부족한 정도였다.“콜록콜록.”두어 번 기침하자 메아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여긴 어디지?’눈앞에 물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성혜인은 자신이 한 동굴에 있고 사방에 CCTV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더듬더듬하며 앞으로 나아가다가 발을 다친 탓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그때 기계적인 음성이 들려왔다.“배현우가 준 물건, 어디에 있어? 네가 말하지 않으면 나는 네가 여기에 평생 갇혀 죽게 만들 거야.”소리는 카메라가 있는 방향에서 나왔는데, 아마 그녀를 납치한 사람일 것이다.성혜인은 이곳보다 더 무서운 검은 방에 갇혀 있은 적이 있다. 그 방안에는 뱀도 있었고 지네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긴 어둠만 있을 뿐, 적어도 사람의 두피를 저리게 만다는 동물은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벽을 따라 길을 찾기 시작했다.그러나 꽉 막힌 공간인지 사방에는 문이 없었고 그 목소리는 아직도 묻고 있었다.“그 물건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로즈 가든에도 없고, 포레스트 안에 있는 거야? 아니면 다른 곳에 숨겨 뒀어?”성혜인은 로즈가든의 빽빽한 감시 카메라가 생각나자 등에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이 사람인가? ’하지만 그녀는 아직 이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도대체 당신 누구야?”남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이내 목소리는 사라졌으며 주변은 고요해졌다.성혜인은
반승제는 얼굴을 찡그리며 문을 닫았다. 이 벽에 나타난 문은 모두 이런 절벽으로 통하는 함정이었다.‘혹시 숨어있는 문이 존재하는 건가?’그때, 그의 귓가에 성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반승제!”반승제는 순간 멈칫하며 이내 한 방향으로 걸어갔다.“혜인아.”이곳으로 꺾어 들어간 후, 반승제는 성혜인의 뒷모습을 보았다.얼른 몇 걸음 빨리 갔지만, 다음 순간에 총이 그를 겨눴고 곧이어 총알이 발사되었다.다행히 반사신경이 빠른 덕분에 총알은 반승제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그러고는 다시 성혜인이 있던 곳을 바라봤더니, 어느새 사람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반승제는 이내 어두운 눈빛으로 그림자가 있던 곳을 쫓아갔다.성혜인은 구덩이 안에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위에 있던 문이 열리며 불이 켜졌고, 곧이어 밧줄 하나가 내려왔다.그러자 성혜인은 눈빛을 반짝이며 서둘러 밧줄은 허리에 묶었다.누군가가 그녀를 끌어올리고 있었다.지면에 이르자 그녀는 가슴에 핏자국이 묻은 반승제를 보았다.그가 어떻게 찾아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벽에 난 흔적을 가리켰다. “이건 내가 만든 표시야. 이걸 따라가.”그것은 올바른 기억을 하기 위해 그가 가슴의 피를 이용해 만든 표시였다.올바른 길을 알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성혜인은 그의 이런 허약한 모습을 보고, 두 손으로 서둘러 반승제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대표님은 괜찮아요?”반승제는 그저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누군가 네 목소리를 흉내 내더라. 그래서 내가 찾아서 죽였어”“일단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성혜인은 그를 일으켜 세우고 그의 손에 든 총을 주웠지만, 총알은 이미 비어있었다.악전고투를 치른 게 분명해 보였다.손이 덜덜 떨리는 상황에서 그녀는 감히 반승제의 가슴에 있는 상처를 살피지 못했다.‘상처가 마침 심장 쪽에 있는 것 같은데... 죽기 전에 지금
지면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통로 위에 돌이 떨어지기 시작했다.성혜인은 악바리로 버티며 반승제를 일으켜 피할 곳을 찾으려 했다.하지만 통로의 바닥은 완전히 깨끗해 탁자, 의자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으며 가끔 나타나는 문은 열어보면 낭떠러지와 연결되는 곳이었다.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는 사실에 성혜인은 식은땀이 절로 났다.‘대표님이 이 길에서 표시를 남기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표시를 따라 가장 바깥쪽으로 나가자 땅이 더 심하게 흔들렸다.그때, 앞에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문이 나타났다.이 산속은 들어갈 수만 있고 나갈 수는 없다.문을 하나 두고 바로 밖이 있었지만, 만약 비밀번호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으면,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는 한 영원히 이곳에 갇히게 된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인 것이다.반승제는 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이내 성혜인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의 손에 묻은 핏자국이 온통 그의 몸에서 흐른 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반승제는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는데 통증 때문에 흘린 땀이 머리카락 전체를 젖힐 정도였다.그러나 그는 마치 이것이 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성혜인을 꼭 껴안았다.“혜인아, 조심해!”그가 재빨리 성혜인을 밀쳐내자 머리 위에서 순식간에 큰 돌이 떨어져 반승제의 머리를 쳤다. “반승제!”성혜인은 자신의 몸에 있는 옷감을 찢어내 그의 다친 곳을 막았다.그러나 피는 아무리 해도 멈추지 않았다.말도 안 되게 떨리는 손끝으로 성혜인은 반승제의 머리에 난 상처를 감싸고 문을 두드렸다.“문 열어! 문 열어!”여전히 땅이 흔들리고 있었고 아무런 가림막도 없어 낙석이 언제 굴러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그녀는 손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세게 닦아내고 계속 비밀번호를 입력했다.“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하셨습니다...”“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하셨습니다...”“앞으로 한 번의 기회가 남았습니다...”성혜인의 손끝이 더 심하게 떨렸다. 그때, 반승제가 희미한 목소리로 성혜인을 불렀다.“혜인아...”
그녀의 심장은 갑자기 미친 듯이 뛰었지만, 홍수는 이미 휩쓸려 오고 있었다.산꼭대기에서 산사태, 큰비와 지진까지... 그야말로 악몽이 아닐 수 없다....의식을 차린 성혜인은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성혜인 씨는 곧 깨어날 겁니다.”“혹시 머리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아니요. 그냥 뇌진탕이에요. 깨어난 첫 며칠은 잠깐 현기증이 날 수도 있어요. 괜찮습니다.”“반승제 씨는요?”“반승제 씨는 아직 중환자실에서 관찰하고 있습니다. 오늘만 잘 넘기면 괜찮을 겁니다.”반승제의 이름을 들었을 때, 성혜인은 갑자기 매우 긴장되었다.그는 심한 부상을 입었다. 이미 가슴과 머리에 부상을 입은 데다 산사태에까지 휩쓸렸으니 말이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심장이 시큰거리고, 홍수에 떠밀려 가기 전 했던 키스가 생각났다. 가벼운 듯 또 무거운 것이, 그 어떤 말보다도 강한 힘이었다.성혜인은 입을 벌리고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힘이 없었다.저녁에 깨어났을 때, 그녀는 하얀 천장을 보았다.병상 옆에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강민지가 서 있었다.강민지는 그녀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놀라서 서둘러 성혜인을 끌어안았다.“혜인아, 이게 무슨 일이야. 간호사들이 네 이름을 말했을 때, 나 너랑 동명이인이 실려 온 줄 알았어. 근데 네가 입원했을 줄이야!”성혜인과 강민지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바쁜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민지야.”그녀는 기침을 두 번 했는데, 가슴이 눌려 있어 말하기가 좀 힘들었다.“천천히 말해. 아직 말할 수 없다면 하지 말고.”강민지는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오전에 반 회장님께서 막 가셨는데, 내가 듣기로는 너를 밤새워 지키셨대. 나도 그냥 끝에 있다가 회장님이 가신 후에야 온 거야.”반태승이 자신의 병상 앞에 이렇게 오래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성혜인은 갑자기 매우 미안했다.‘안 그래도 몸이 불편하신 분인데 이번에 대표님이 또 그렇게 됐으니... 또 충격을 받으실까 걱정이네.’“민지야, 반
바로 옆 병실인 반승제의 병상 앞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온시환도 있고 서주혁도 있고 진세운도 있다.반씨 집안사람들도 몇몇 병문안을 왔지만 오랫동안 지켰던지라 지금은 모두 돌아간 상태였다.그리고 그것들은 사실 대부분 진심이 아니다.지금 반승제와 한성 그룹의 맞대결은 이미 보름이나 지나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또 일을 생겨버렸으니 사람들은 모두 그가 이 대결에서 패할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다.아마도 반승제가 퇴원할 때 그는 이미 BH 그룹의 대표가 아닐 것이라며 말이다.곧이어 수술이 잡혀있던 진세운은 흰 가운을 입고 현장에 서 있는 두 사람을 한 번 보았다.“승제는 아마 며칠이 지나야 깨어날 거야. 그러니 여기서 계속 지킬 필요 없어.”그들은 모두 반승제가 이번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이 모든 게 성혜인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안다.그녀가 누군가에게 붙잡혔기 때문에, 그는 성혜인을 구하러 급히 갔다.온시환은 담배를 꺼내 피우려고 했으나 진세운의 눈빛에 제지당했다.“병원에서는 금연이야.”그러자 온시환은 입술을 살짝 잡아당기며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그럼 나가서 피면 되잖아.”사실 세 사람 모두 반승제의 상황에 놀랐다. 부상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그렇게 진세운과 온시환은 모두 떠났고, 이곳에는 순식간에 서주혁만 남게 되었다.그때, 어디서 소식을 듣고 왔는지 모를 라미연이 와서 반승제가 병상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코끝이 시릴 정도로 울어댔다.“흑흑... 대표님. 대표님 꼭 빨리 나아지셔야 해요. 저랑 아이 모두 대표님이 필요하다고요.”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서주혁은 그 말을 듣자 눈썹을 살짝 치켜뜨고 위아래로 라미연을 훑어보았다.그러나 반승제의 연애사에 대해 그는 사실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단지 이 여자가 반승제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이 의외일 뿐.‘허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승제는 결벽이 있어 여자도 함부로 안 만나는데.’서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팡이는 3m 정도 멀어져 갔다.성혜인은 지팡이를 주우려 하던 손을 움츠리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서주혁은 담뱃갑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고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성혜인 역시 그의 기에 눌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서주혁 씨, 왜 이러시죠?”반승제와의 일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와 서수연 사이의 트러블 때문일까?서주혁은 아니꼬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녀는 특별한 외상은 없었고 그저 발에만 부상을 입은 반면, 반승제는 그녀와 달리 중환자실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을 뻔하였다.“승제가 혜인 씨 때문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병실 문 앞까지 와 놓고선 안 들어가요?”서주혁이 성혜인 한테 까칠하게 구는 이유는 반승제 때문이었다.“승제 씨를 보살피는 사람은 따로 있잖아요.”안에서 반승제의 아이를 가진 라미연은 슬프게 울고 있었다.성혜인의 말을 들은 서주혁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갑자기 그녀를 벽에 밀어붙였다.“승제가 혜인 씨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당신을 죽였을지도 몰라요.”목이 졸린 그녀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성혜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았다.서주혁의 생김새는 반승제와는 달랐다. 반승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라면 서주혁은 인정사정없는 냉철한 사람이었다.제원에는 서주혁에 관한 소문은 별로 없었고 굳이 따지자면 반승제 외 몇몇 사람들과 친분이 있고 건달들과 가까이한다는 것이었다.서주혁은 그야말로 인간미라고는 조금이라도 없는 냉정한 사람이었다.그에게 목이 졸린 성혜인은 고통스러웠지만 아무런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그러자 서주혁은 화를 억누르며 그녀의 목에 있던 손을 풀어주고는 이곳이 병원이란 사실을 망각한 채 담뱃불을 붙였다.지나가던 간호사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의 험상궂은 얼굴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그럼 혜인 씨는 승제한테 마음이 없는 건가요?”“대표님은 그다지 저를 맘에 들어 하지 않을 겁니다.”성혜인은 목을 만지며 말했다.이윽고 서주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틀 뒤, 반승제가 깨어났다.하얀 천장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고 여자의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반승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이마를 만지려던 순간 반태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래서 우리 승제가 진짜 그 여자를 임신시켰단 말이야? 언제 적 일인데? 아무 여자나 들쑤시고 다니더니, 이 자식 깨어나기만 해봐 아주 그냥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릴 것이야.”이 말을 들은 반승제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머리가 더 아파오는것 같았지만 그는 계속 자는 척하기로 마음먹었다.반태승은 지팡이를 짚고 손자의 병상 옆에 있었고 라미연도 울음을 그치고 안절부절 해하며 앉아있었다.반태승은 그녀의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언제쯤 일이에요? 아가씨는 언제부터 우리 손자를 알게 되었어요?”라미연은 반태승이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것을 알기 때문에 그에게 밉보일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상상치도 못한 인물을 접한 그녀는 이것이 자신이 출세할 기회라고 생각했다.그녀는 그날 반승제와 네이처 빌리지에서 만난 이유를 반태승에게 알려주었다.하지만 매사에 철두철미한 그는 라미연의 말이 믿음직스럽지 않았는지 심인우더러 네이처 빌리지의 CCTV를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다.그 동시, 반태승은 옆에 서 있는 의사에게도 물었다.“배 속에 아이도 친자 검사를 할 수 있나요?”그의 질문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반태승은 두 손으로 지팡이를 꼭 잡더니 이내 담담한 말투로 말하였다.“그럼 친자확인을 진행하죠. 만약 진짜 우리 반씨 가문의 핏줄이라면 당연히 재산의 일부를 물려주겠지만 우리 가문의 핏줄이 아니라면...”그 뒤의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반태승의 뜻을 알 수 있었다.진짜 핏줄이 아니라면 라미연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기에 그녀는 자신의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원래 겁이 많았던 라미연은 반태승의 말에 두려움을 느껴 떨고 있었다. 그러고는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온시환을 쳐다보았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