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보석 해주면 된다.라미연은 속이 뜨끔거렸고 경찰까지 온 걸 보면 성혜인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 확실하다.“그냥 몇 마디 대꾸하면서 회사로 물건 좀 던졌어요. 근데 진담으로 여기며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온시환은 문득 김경자에게 고자질을 하던 성혜인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래, 뭐나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여자야.’“알았어. 경찰서에 미리 말해 놓을게.”라미연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감사합니다.”“고마워할 거 없어 네가 운이 좋은 거야.”초조해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라미연의 두 눈에는 금세 득의양양한 빛이 그려졌다.‘난 운이 좋아. 반드시 반승제하고 결혼하고 말겠어.’성혜인은 신고하고 나서 경찰 측에서 즉시 연락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이튿날 점심까지 벨은 울리지 않았고 하는 수 없이 직접 경찰서로 찾아갔다.경찰은 성혜인이 직접 온 것을 보고 다소 난감해했다.“성혜인 씨, 저희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위에서 명령 떨어졌는데, 그 여자 다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이에 성혜인은 반승제가 지시한 일인 줄 알았다.화가 난 성혜인은 이를 악물고 물었다.“그래서 지금까지 라미연을 잡지 않았다는 말입니까?”“그... 죄송합니다. 저희도 난처한 처지입니다. 잡으러 갔다가 다들 직장까지 잃게 됩니다.”성혜인은 더 이상 경찰들을 난처하게 하지 않고 즉시 차를 몰고 네이처 빌리지로 향했다.반승제가 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전에 묵혀 두었던 원한도 한 번에 갚아 줄 생각이었다.네이처 빌리지 경호원은 성혜인을 보고 즉시 막아섰다.반 대표님의 명령이라며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죄송합니다만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성혜인은 화가 잔뜩 난 채로 차에 다시 올라 탔고 순간 이성을 잃었다.그러더니 액셀을 끝까지 밟고 네이처 빌리지의 대문을 향해 거침없이 들이 박았다.결코 싼 차는 아니라 액셀을 끝까지 밟으면 그 충격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쾅!”큰 소리와 함께 대문은 그대로 무너졌다.수십 명의 경
날카로운 이빨은 피부를 뚫고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가 흘러나왔다.주위 사람들은 이에 모두 놀라 사색이 되었다.“대표님!”“다 물러서!”반승제의 말투는 차갑기 그지없었고 다른 한 손으로 성혜인의 허리를 꼭 안고 있다.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어 자리를 떠났다.성혜인은 오는 내내 거의 들이박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들이박았다. 대문만 해도 수십억에 달한다.게다가 귀한 식물들도 모두 깔아뭉개졌다.그렇게 차를 몰고 들어오는 건 반승제를 안중에 두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며 반승제가 당연히 화를 낼 것으로 생각했는데, 자리를 떠날 때 누군가는 웃고 있는 반승제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성혜인은 어깨를 물고 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아 다른 곳을 물었다.그러자 성혜인의 어깨와 쇄골에는 아주 깊은 이빨 자국이 남게 되었다.마친 실크 잠옷을 입고 있던 반승제라 입을 대기 더욱 쉬웠다.그렇게 10분 동안 물고 나서 반승제의 목소리가 들렸다.“이제 분이 풀려?”성혜인은 온몸이 굳어진 채 고개를 들어 반승제를 바라보았다.반승제도 마침 고개를 숙였다.“이제 말할 수 있어? 무슨 이유로 내 집을 이렇게까지 만들었는지?”아직 반승제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을 느끼고 성혜인은 또다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하지만 반승제는 풀어 주지 않고 꼭 끌어안았다.“반승제, 이거 놔!”화가 잔뜩 난 성혜인은 지금 눈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반승제는 그런 성혜인을 풀어주었는데, 풀자마자 뺨을 맞았다.얼굴을 만지며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서야 반승제는 정신을 차렸다.“성혜인, 너 좀 지나치다.”온몸의 힘을 더해 때린 것이라 성혜인도 손바닥이 아팠다.“지나친 사람이 누군데! 반승제, 나 진짜 너 죽이고 싶어!”반승제는 입가에 흘러나온 피를 닦으면서 그날 첫사랑 손톱만도 못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화가 좀 나기 시작했다.“이 말 하려고 온 거야?”성혜인은 지나치게 화가 난 바람에 이성을 잃어 이런 일을 한 것이다.지금 이성을 되찾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거실 문이 아직 열리지 않아 반승제는 온시환의 목소리만 들렸다.온시환이 라미연까지 데리고 올 줄은 상상치도 못했다.하인들은 성혜인과 반승제가 끌어안고 있을 때, 눈치껏 자리를 피해 주었다.히여 지금 직접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문을 살짝 열었는데, 그 틈 사이로 밖에 서 있는 라미연이 보였다.라미연은 일부러 더욱 바짝 꾸미고 나타났는데, 성혜인과 거의 같은 인물로 보인다.이는 모두 메이크업 효과이고 언플루언서들이 연예인 메이크업 따라하는 걸로 보면 된다.스카이웨어 출신인 라미연은 다른 건 몰라도 메이크업 기술은 그나마 괜찮다.반승제는 라미연을 보게 되는 순간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문을 확 닫으려고 했다.이때 온시환이 손을 내밀어 문을 닫으려는 반승제의 행동을 막았다.“오늘 여기 무슨 상황이야? 주위에 사람도 없고 경호원들은 지금 공인들 불러서 대문 달고 있던데, 누가 보기라도 하면 도둑맞았다고 소문 퍼지겠어.”온시환은 뻔뻔하게 몸으로 문을 열었고 뒤에 있던 라미연은 볼 발그레 반승제를 바라보았다.“반 대표님, 저...”그러나 고개를 들어보니 소파에 앉아 있는 성혜인의 모습이 포착되어 순간 안색이 확 달라졌다.‘저 X이 왜 저기에 있어?’‘왜 아무 문제도 없는 거지?’‘죽지 않았어도 병원에 누워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미연은 주먹을 꽉 잡아당겼지만, 지난번 일이 있고 난 뒤로 많이 똑똑해졌다.더 이상 무례하게 들이대면 안 된다. 그러면 그럴수록 반승제는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반 대표님,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비록 반승제의 돈으로 사기는 했지만, 정성껏 골라서 산 것이다.옆에 있던 온시환은 성혜인을 보았을 때, 눈썹을 들썩였고 네이처 빌리지가 왜 이런 모습인지 알게 되었다.반승제와 알고 지낸 지도 여러 해가 되며 반승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은혜든 원수든 꼭 갚는 사람이며 일로도 독한 사람이다.다만 성혜인 앞에만 서면 당하고서도 묵묵히 있는 사람이다.온시환은 바로 이러한 점을 포착했기에 요즘 자
반승제는 순간 굳어버리고 온시환도 놀라며 고개를 들었는데, 가장 침착한 사람은 성혜인이다.그러나 임신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폈지만, 가슴이 답답해 미칠 것만 같았다.모든 산소가 사라진 것처럼 호흡도 점점 거칠어졌다.이 순간 성혜인은 난처하기 그지없었다.연속으로 남에게 뺨을 여러 대나 맞은 기분이 들었다.이곳에 온 목적은 반승제가 라미연 같은 범죄자를 옹호해서 따지러 온 것인데, 두 사람이 이미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라미연은 임신까지 했다고 한다.‘앞으로 저 일가족은 행복하게 지낼 것인데, 난 뭐야?’성혜인은 마냥 우스워 옆에 있는 가방을 들고 일어서려고 했는데, 온시환의 말이 들려왔다.“이제 겨우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임신한 거 어떻게 알아?”보통 임신 초기에는 자기가 임신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하지만 라미연은 이미 시나리오를 제대로 짜 놓은 상황이었다.“생리가 늦어졌어요. 그리고... 이미 임테기로 해 봤어요.”말하면서 반승제를 힐끗 보고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반 대표님께서 싫으시다면, 저 아이 지울게요.”마지막 한 마디는 악마의 저주처럼 성혜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한순간 성혜인은 어깨가 축 처지면서 무력함을 느꼈다.전에 성혜인도 강제로 아이를 지워야 했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미처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몰라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반승제는 성혜인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가서 지워. 난 그 아이 싫어.”그러자 라미연은 땅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반 대표님, 아이 지우면 여자한테 상해가 얼마나 큰 지 아세요? 그냥 아이 낳게 하면 안 돼요? 절대 아이로 결혼하자고 협박하지 않을게요.”반승제는 지금 이마의 심줄이 펄떡펄떡 뛰고 있는 것만 같았다.성혜인이 앞으로 지나가자 또 황급히 손을 내밀어 성혜인을 잡았다.하지만 성혜인은 그 손을 뿌리치고 더 빨리 걸어갔다.“혜인아!”반승제는 뒤따라 나가면서
성혜인은 누군가에게 관자놀이를 얻어맞은 듯 그대로 발걸음을 멈칫했다.반승제는 순간 시선을 반짝이며 몇 걸음 더 빨리 그녀를 쫓아가려 했다. 그때, 성혜인이 말했다.“축하드려요.”그 말에 반승제 역시 앞으로 나아가려던 발걸음을 멈칫하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아.”그렇게 반승제는 멀어지는 성혜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금 뻣뻣해진 자신의 다리를 움직였다.너무 오래 서 있었더니 벌써 감각이 마비되었고, 심지어는 약간 아파 나기도 했다.원래는 라미연의 배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지금은 상관이 없었다.‘아무튼 누구랑 결혼해도 상관없어.’네이처 빌리지 거실에 돌아왔을 때, 온시환과 라미연은 아직 그곳에 있었다.라미연은 그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갑자기 마음이 안정되었다.“반 대표님.”’반승제가 아무 말 하지 않자 그녀는 다가가 보려고 했다. 그러자 온시환이 라미연을 끌어당겼다.늘 여자들 사이에 있는 온시환이 어찌 라미연의 마음을 모를 수 있겠는가.‘분명 승제가 혜인 씨를 포기하고 자기한테 돌아온 거라 생각하고 있을 거야.’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반승제의 안색을 보면 그가 지금 막막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미연이 지금 이 시점에 그에게 다가간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이윽고 반승제는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라미연은 자신이 임신한 것은 확실한 사실이지만, 그 아기가 반승제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 조금 두려웠다.그날 밤 반승제를 떠난 후 그녀는 줄곧 일이 들통날까 봐 걱정했고, 그 후 라미연은 스카이웨어로 돌아가 피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남자 종업원을 찾아 잠자리를 가졌다.심지어 그것은 라미연의 처음이었다. 만약 그녀의 처녀막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반승제에게 한 거짓말도 곧 들통날 테니 말이다.그녀는 원래 피임을 원했지만, 한마음으로는 마침 그래도 아이가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그녀는 무릎의 천을 두 손으로 잡고 긴장한 상태로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온시환은 반
동생은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온시환네 가족은 그가 살아있는지도 알지 못했다.나중에야 온시환은 남동생이 그 여자를 여러 해 동안 짝사랑해 왔는데, 친형이 그녀와 침대에서 구르는 것을 우연히 보고 괴로운 기분을 견디기 힘들어했다는 것을 알았다.이 세상의 남녀 중 그 어느 누구도 사랑에 영원히 충실할 수 없다.이 사람이 아니다 싶으면 자연히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된다. 이것이 온시환이 줄곧 지켜온 규칙이었다.하지만 그는 자신의 그 “규칙”이 이런 대가를 초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동생의 멘탈이 너무 약하고 또 애초에 그런 싸구려 같은 여자를 좋아한 탓이라고 여겼을 뿐.좋아하지 않았다면 상처받을 일도 없고, 상처를 받지 않았다면 가출할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만약 그 장면을 마주쳤을 때 동생이 가만히 있었다면, 아마 그다음에는 형제가 한 여자를 공유했을 수도 있다.이런 일에 있어서 온시환은 늘 오픈 마인드였다. 어차피 모두가 함께 노는 것인데 거부감이 들게 뭐가 있냐는 생각이었다.하지만 그의 남동생의 생각은 달랐다.그렇게 온씨 집안의 도련님은 한 여자 때문에 집을 나가 현재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또 한 재벌가의 도련님은 여자를 위해 위험한 임무를 떠맡으러 갔다.이로써 감정적으로 너무 진지한 사람은 좋은 결말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지금 온시환은 그 길로 걸어가려는 반승제를 보고 있다.반승제는 반승우와 매우 다르다. 반승우는 사랑받는 환경에서 자랐고, 감정을 대하는 데 여유가 있다.하지만 반승제는 무시된 채 자랐고, 감정을 대하는 것은 외골수였다.가장 절정에 이르렀을 때, 가장 통제할 수 없는 때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재앙이나 다름없다.때문에 그 시점이 오기 전에 온시환이 자신이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는 이전에 자신이 두 사람을 이어준 것에 대해 조금 후회를 느꼈다. 성혜인을 향한 반승제의 마음이 진지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순간 안 좋은 예감
한서진은 그녀에게 몇 마디 위로를 건네려고 했으나, 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이불 위의 서류를 계속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성혜인은 그런 그의 마음을 눈치채고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병원에서 잘 회복하고 있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반드시 그 여자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겠습니다.”“사장님.”한서진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연예계는 비열한 곳입니다. 높은 곳을 바라보려면 어쩔 수 없이 갖은 수모를 당해야 하죠. 권력과 힘이 없으면 업신여김을 당합니다. 우리는 지금 충분히 높은 위치가 아니라 이런 수모를 당하는 건 어찌 보면 필수로 겪어야 하는 과정 중 하나에요. 중요한 건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앞으로 저희가 더 주의하면 되죠.”한서진은 올해 32살이고 나이가 듦에 따라 사람의 포용성도 점점 넓어져 가는 법이다.고개를 끄덕이고 차로 돌아왔을 때, 성혜인은 덧없이 피곤하다고 느껴졌다.몸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말이다.사실 이번 달의 일은 거의 다 끝났기 때문에 그녀는 잠시 며칠 쉬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또 코앞에 닥치니 성혜인은 계속 일에 몰두해 S.M을 좀 더 일찍 큰 회사로 만들고 싶어졌다. 누구도 자신의 머리를 딛고 올라설 수 없도록 말이다.그녀는 포레스트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저녁 무렵, 성혜인은 겨울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러 갔다.성혜인은 이런 때에 겨울이와 있는 것만이 마음이 편했다.그녀는 겨울이를 데리고 포레스트를 떠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그러다 예전에 반승혜와 만났던 곳에 도착했다. 당시 반승혜는 이곳에서 사생화를 그리고 있었다. 아주 순수한 모습으로 말이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말았다.“멍멍멍!”겨울이는 갑자기 큰소리로 어딘가를 향해 짖기 시작했고, 그곳을 보니 한 남자가 서 있었다.하지만 너무 멀어서 성혜인은 상대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보이지 않고, 그저 키가 크고 좋은 기질을 내뿜는 사람이라는 것만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볼 겨를도 없었다.한편, 겨울이는 거의 미친 듯이 달렸으나, 목적지는 포레스트가 아닌 네이처 빌리지였다.비 내리는 거리 사이로 하얀 그림자가 마치 번개처럼 달려 나갔다.강아지는 사람에 대해 잘 파악한다. 누구의 기세가 더욱 강한지 강아지들은 한 번에 보면 알 수 있고 그 능력은 웬만한 사람들보다 뛰어나다.얼마나 달렸는지 모르겠지만, 겨울이는 네이처 빌리지 입구에 도착해서 계속 울었다.조금 전 소동으로 인해 네이처 빌리지의 대문은 새로 바꿨다. 경호원은 CCTV로 겨울이를 보고 조금 당황해했다.“저거 겨울이 아니야? 언제 나간 거지?”“성혜인 씨가 오전에 데려갔습니다.”“그럼 지금은 어떻게 돌아왔지?”“글쎄요. 일단 들여놓으세요.”성혜인은 차를 몰아 네이처 빌리지를 한 바퀴 깔아뭉갠 후로, 이곳 사람들은 이미 그녀가 어떤 지위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네이처 빌리지를 이 모양으로 망치고 온전히 제 발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성혜인이 유일했으니 말이다.그래서 그들은 성혜인의 강아지한테 막 대하지 못했다.철문이 열리자 겨울이가 서둘러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그렇게 네이처 빌리지의 대정원까지 쭉 달려가다가, 바닥 가까이에 열린 작은 창문으로 바로 뛰어 들어갔다.반승제는 지금 서재에서 야근하고 있었는데 물을 마시러 내려왔을 때 겨울이가 달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비를 쫄딱 맞고 달려온 탓에 바닥은 온통 진흙 자국이 잔뜩 묻게 되었다.그 장면을 본 반승제의 안색은 순간 어두워져 얼른 겨울이를 목욕시키라 분부했다.‘이게 또 몰래 달려온 거야? 혜인이가 오늘 다시 가져갔을 텐데.’그러나 도우미가 아무리 잡아당겨도 겨울이는 반승제에 대고 계속 짖어댔다.그저 커피 한 잔 마시러 내려왔던 반승제는 그 울음소리에 짜증이 났다.도우미도 난처하긴 마찬가지였다. 겨울이가 다칠까 봐 두려워 힘도 제대로 쓰지 못했으니 말이다.“대표님, 겨울이가 뭔가에 놀란 것 같아요.”반승제는 얼굴을 찡그리며 도우미에게 장갑을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