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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1화 성혜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승제는 허리에 목욕타월 한 장만 걸친 채 입구에 서서 그녀가 준 목록을 건네받았다.

바깥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그는 춥기는커녕 오히려 몸의 열기가 올라 더울 지경이었다.

4000만 원짜리 물건은 그가 굳이 에너지를 낭비해서 볼 가치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보는 눈이 있었기에 진지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나갔다.

성혜인은 조금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래도 재무부에 가져가서 대조해 보세요, 이 정도의 돈은 대표님이 일일이 살펴볼 필요가 없습니다.”

“4000만 원도 돈이야.”

깊고 어두운 눈동자로 그는 성혜인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뭔가를 들킬까 봐서 말이다.

바람이 세게 부는 탓에 성혜인이 재채기를 했다.

그러자 반승제가 몸을 옆으로 돌리며 물었다.

“들어가 앉을까?”

“아니요.”

그녀는 가차 없이 거절한 후 그를 재촉했다.

“전 먼저 방에 돌아갈게요. 혹시 잘못된 점이 보이면 핸드폰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이미 제가 이 대표님과 확인해 봤으니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성혜인.”

그가 참지 못하고 성혜인을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입구에 꼿꼿이 서 있는 반승제는 훤칠한 키에 매끄럽고 날카로운 이목구비까지 겸비해 시크한 분위기를 잔뜩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방금 그런 일을 했으리라고는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무슨 일 있나요?”

반승제는 그녀의 눈 밑에서 짜증스러움을 엿보았고 순간적으로 자포자기했다.

“그냥 너랑 더 얘기 나누고 싶어서. 승혜는 내가 사람을 시켜서 정신병원에 보냈어.”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성혜인의 뒷모습과 '쾅' 하고 닫히는 문소리였다.

그녀가 방금 여기 서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반승제는 심지어 자기가 환각을 본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과연, 성혜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만약 반승제가 그녀를 몰래 따라왔다는 것을 본인에게 알려준다면, 성혜인은 감동은커녕 오히려 지겨워할 것이다.

그녀의 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몸이다. 반승제는 완력으로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다. 그녀의 넋이 나가게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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