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성혜인은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한서진과의 스캔들이 검색어에 오르자 그녀는 일단 회사가 돈을 써 검색어를 내리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S.M 쪽에서 손을 쓰기도 전에 논란이 잠재워졌다.‘누가 내려준 거지?’그녀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어쩔 수 없이 원래의 계획대로 먼저 한서진의 손에 있는 그 송아현이라는 연예인을 찾기 시작했다.성혜인은 몰랐다. 한서진과의 스캔들로 인해 송아현이 자신의 집에서 그녀를 마구 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이 여자는 또 누구야? 쟤가 어떻게 아저씨랑 같이 실검에 올라갈 수가 있어!”“설마 정말 그 여자를 위해서 계약을 해지한 건 아니겠지?”한서진이 떠났기 때문에, 이제 회사에서는 그녀에게 새로운 매니저를 붙여주었다.“일단 네 손에 있는 대본 촬영부터 잘해.”매니저가 그녀에게 충고했다.“내가 그럴 정신이 어디 있어요? 아저씨도 내 옆에 없는데 내가 어떻게 잘 찍냐고요. 나 촬영 잘하게 하고 싶으면, 좋아요, 아저씨부터 데려와요!”송아현은 비록 드라마 한 편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SNS 팔로워가 이미 5백만 명을 넘어섰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송아현이 각종 시상식에서 후보로 거론될 수 있다고 여겼고, 더불어 TJ 엔터에서도 그녀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았다.전에는 한서진이 있었으므로 송아현은 그 사장들과 술을 마시러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한서진은 떠났고, 오늘 저녁에도 그녀는 겨우 접대를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누군가의 허벅지에 앉혀 만짐을 당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그런데 지금 한서진과 다른 여자의 스캔들을 다시 보고 나니, 그녀는 정말 곧 화가 폭발할 것 같았다.“지금 당장 다른 계정 파요. 그리고 SNS에 이 성혜인이라는 작자가 아주 못생기고 늙은 여자라는 소식을 뿌려요!”그러자 매니저는 손을 들어 눈썹을 어루만졌다.“대표님은 일단 네가 촬영에 전념했으면 해.”송아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꺼져요! 매니저도 내 말을 듣
‘못 볼 것 같다고 말은 하는데 마치 나한테 자기는 연기도 잘해 상도 받을 수 있어, 그러니까 빨리 나 스카우트해, 알겠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아... 내 착각인가, 왜 이렇게 절박해 보이지?’「저희 회사는 오늘 한서진 씨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송아현 씨가 한서진 씨 수하의 연예인이시기 때문에 저희도 매우 좋게 보고 있어요. 시간 좀 내서 이야기 나눠봐도 될까요?」송아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당연히 매우 S.M에 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한서진이 있으니 말이다.그러나 그녀는 성혜인이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 없게 하려고 일부러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그 매니저님은 저를 두고 달아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굳이 다시 찾아갈 것 같아요? 허허. 한 매니저님이 있는 곳이라면 저는 절대 가지 않을 겁니다. 제 촬영 방해하지 마세요, 어차피 저는 여우주연상감이니까요. 그럼, 이만.」이 말은 마치 어린아이가 삐진 듯한 말투로 적혀있었다.성혜인은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웠는지라 다시 한번 손에 있는 송아현의 자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그녀는 올해 20살로 정규적인 연기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첫 작품에서도 살짝 다듬기만 했을 뿐인데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생김새는 딱 보아도 떡잎부터 성공할 자질을 타고난 듯, 한눈에 보기에 놀라운 미녀는 아니지만, 이러한 용모는 화장에 따라 얼마든지 스타일을 바꿀 수 있었다.또한 TJ 엔터에 들어가자마자 한서진의 손에 맡겨진 것으로 보아 TJ 엔터 쪽에서도 그녀를 크게 키우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만약 TJ 엔터가 이와 같은 신인을 발굴한다면, 앞으로 5년 이내에 여자 연예인 중 틀림없이 송아현이 단독으로 1위를 차지할 것이다.성혜인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서둘러 한서진에게 연락하여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다행히 한서진은 S.M과 계약한 첫날부터 늦게까지 회사에 남으며 아직 돌아가지 않았다.성혜인 역시 일에 있어 아주 열심히 했고, 바깥의 하늘빛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한
전화를 끊은 후, 장하리는 앞에 있는 문을 바라보았다.그녀가 손을 내밀어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뜻밖에도 안에서 먼저 문이 열렸다. 방우찬이었다.“하리야, 왜 이렇게 늦었어?”여전히 부드러운 말투였다.장하리는 남자라는 생물이 정말 납득이 되지 않았다. 밤새 비열한 일을 하고도 이리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입을 벌려보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러자 방우찬이 그녀를 끌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소파에 앉혔다.“맞춰봐, 이번에는 내가 뭘 선물로 사 왔게?”장하리는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방우찬은 이내 주머니에서 정교한 디자인의 팔찌를 꺼냈는데 유명 브랜드의 제품으로 대략 600만 원쯤 하는 것이었다.사실 그녀는 주택담보대출 문제로 인해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을 매우 아까워했다. 장하리는 줄곧 자신에게 가혹했다.방우찬은 그녀를 달래며 팔찌를 장하리의 손목에 끼워주었다. “미안해, 아침에 너한테 화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근데 나 좀 이해해 주면 안 될까? 요즘 정말 일이 바쁘기도 하고 만나는 손님도 많고 어떤 괴팍한 사람들은 나를 힘들게도 하거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나 봐, 미안해, 애기야.”장하리는 고개를 숙이고 손목의 팔찌를 보았지만, 어쩐지 전혀 기쁘지 않았다.그때, 김정순이 집 안에서 걸어 나오다가 그녀의 손목에 있는 팔찌를 보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어머, 이 비싼걸! 이거 600만 원 정도 하는 거 아니야? 아들 돈 좀 아껴.”“어머니, 제가 어머니에게 줄 선물도 사 왔으니 그만 하세요.”“그래? 뭐 그럼...”방우찬은 또 선물을 꺼내 김정순에게 건네주었다.그것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황금 팔찌로, 약 2000만 원 정도 하는 것이었는데, 장하리도 마침 이 디자인을 본 적이 있었다.“어머니 팔찌는 매우 싼 거야. 지금은 황금이 1g에 몇만 원밖에 안 하잖아, 이 팔찌는 약 200만 원 정도야. 반면에 네 팔찌는 어머니 것보다 두 배나 비싸.”그 말인즉, 방우찬은
장하리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씩 입꼬리를 올렸다.“오빠는 나보다 학력이 높지. 그래서 예전에 나는 내가 오빠한테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오빠는 나한테 턱없이 부족해. 그러니 이쯤에서 파혼하자.”부족하다는 말에 방우찬은 자극을 받았다.그는 제원대를 졸업했지만, 반면 장하리는 일반 대학교 출신이었다. 그런 그가 장하리에게 부족한 사람이라니?게다가 그의 월급은 결코 적은 게 아닌데 말이다.방우찬은 자신이 바람피운 것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그래, 인제 보니 너 더 좋은 선택지가 생긴 거구나? 그래서 변한 거였어. 하리야, 나는 네가 이런 사람일 줄 정말 꿈에도 몰랐다.”그가 피식 냉소했다. 오히려 상대방의 탓을 하며 되레 물을 끼얹는 건 남자들이 가장 즐겨 쓰는 수단이다.이제 장하리는 그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예전의 자신이 얼마나 두껍게 콩깍지가 씌어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방우찬과 함께 한 장장 7년이라는 청춘을 낭비한 것이다!“더 좋은 선택지가 생긴 건 내가 아니라 오빠 아니야? 제원대에서 이런 거나 배운 거야? 선생님들이 이 소식을 들으시면 참 마음 아프시겠네. 대체 졸업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제원대를 갖고 허세 부리는 거야? 제원대가 오빠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인가 보지? 우리 학교가 제원대랑 비교할 레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오빠보다 돈을 적게 버는 건 아니야. 걸핏하면 학교로 나를 압박하는데... 그건 오빠한테나 업적이지,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야!”이 말에 방우찬은 어리둥절해져서 한동안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장하리는 시원하기도 하면서 또 한편 고통스럽기도 했다.사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이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단지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인내하고 있었을 뿐.“오빠, 홍규연과의 일은 더 부정할 필요 없어. 내 동료들도 봤고, 또 다른 사람이 사진도 찍었으니까. 어젯밤 나는 오빠 차를 뒤따라갔었어. 오빠가 너무 급하게 그 여자를 보러 가는 바람
오늘 밤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성혜인이 그녀에게 물었다. “해결됐어요?”장하리는 온몸이 다 젖은 탓에 재채기하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해결됐습니다.”하지만 그녀는 성혜인에게 6억 원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그래요, 오늘 밤은 우선 내가 있는 곳에 가기로 하고, 만약 머물 곳이 없다면 회사 연예인들이 지내는 단지에 방 하나 고르면 돼요.”성혜인이 연예인들의 집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원의 집값은 월급의 절반을 내야 할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장하리도 딱히 갈 곳이 없었던지라 고개를 끄덕였다.“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하리는 그녀의 비서이자 능력 있는 여자였다. 이런 여자는 절대 한 남자 때문에 무너질 리 없었다.얼마 후, 두 사람은 포레스트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성혜인은 개 짖는 소리를 들었고, 곧이어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달려와 그녀의 다리를 붙잡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장하리는 강아지를 아주 좋아하지만, 방우찬이 싫어하기 때문에 줄곧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다.그래서 겨울이를 본 순간, 그녀의 눈이 반짝거렸다.“사장님 강아지도 기르셨어요?”“네, 얘는 겨울이라고 해요. 아주 장난기가 많죠.”장하리는 몸을 웅크리고 겨울이의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겨울이는 털도 매끈하고 눈도 초롱초롱한 게 아주 건강해 보였다.한참을 보고 있는데, 장하리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입술을 꽉 깨물었다.성혜인은 그녀가 감정을 표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7년의 감정이 하룻밤 사이에 부정당하고 이제야 남자의 실체를 알게 됐는데 어찌 순식간에 좋아질 수 있겠는가.“저는 이만 야근 하러 가봐야 해서, 아주머니한테 방 마련해달라고 할게요. 장비서는 여기서 겨울이랑 놀다가 들어가면 됩니다. 그리고 씻고 나서는 푹 쉬어요, 아무 생각 말고. 장비서, 내가 약속할게요. S.M은 장래에 반드시 큰 회사로 거듭날 겁니다. 하
또 10분이 지났지만, 핸드폰은 여전히 고요했다.반승제가 초조해하고 있는 그때, 마침 온시환이 이 시간에 술을 마시러 가자고 불렀다. 그렇게 그는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술집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신이한과 마주쳤다.신이한은 오늘 밤 마치 공작새와 같이, 화려하게 꾸며 입었다.그는 반승제를 보자마자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다.“이게 누구신가, 전남편분 아니세요?”반승제는 안색이 어두워져서 애써 그의 도발을 무시하려 했다. 그러나 신이한이 가만 둘리 없었다.“참, 지난번에 페니 씨가 설우현 씨네 별장에 며칠 머무른 건, 전남편분께서 뭐라 물어보긴 하셨나?”신이한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우선 그는 성혜인이 몇 명의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졌는지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그녀였으니 말이다.하지만 반승제는 아니다.그는 여태 그 어떤 여자와도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윤단미와 잠깐 연인 사이이기는 했으나, 두 사람은 키스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승제는 이 방면에 대해 아주 보수적이라 할 수 있다.아니나 다를까, 신이한이 이 말을 꺼내자 반승제의 얼굴은 완전히 어두워졌다.그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을 하고 있는데, 신이한이 다가왔다.“저는 페니 씨가 얼마나 많은 남자를 사귀었는지 개의치 않아요. 하지만 전남편분은 꽤 신경 쓰시는 것 같습니다만? 두 사람이 만약 나중에 사귀게 된다면, 반 대표는 다른 남자 일을 꺼낼 건가요?”반승제의 온몸에서 풍기는 위압감은 마치 광풍을 동반한 폭우와 같았다.그때, 누군가가 신이한을 끌어냈다. 온시환이었다.그 역시 잔뜩 구겨진 얼굴을 하고 신이한에게 말했다.“신이한 씨, 어느 날 갑자기 HS그룹에 문제가 생기고 싶지 않으면, 그냥 이쯤 하시죠. 그때 가서 모든 걸 후회하지 마시고요.”그러나 신이한이 피식 냉소했다.“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HS그룹이 없어진다 해도, 저는 반드시 혜인 씨를 손에 넣고 말 거니까요.”그 말에 반승제는 폭발하고 말았다.“당신이 어울릴 거라 생각해?”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그때, 반승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는 네가 예전에 얼마나 많은 남자랑 사귀었는지 개의치 않아. 하지만 앞으로는 전부 끊어내야 할 거야.”그러자 성혜인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반승제를 바라보았다.“저랑 대표님이 무슨 사이인데요?”그 물음에 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렸다.성혜인은 이를 너무 꽉 깨문 나머지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대표님이 저를 이곳에 데리고 온 건, 그저 저 때문에 감염이라도 될지 걱정돼서 그런 거겠죠. 대표님은 마음속으로 저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저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좋아한다고요? 너무 우습지 않아요?”“대표님이 말씀하시는 그 좋아한다는 감정에는 그 어떤 믿음도 찾아볼 수 없어요!”‘그래봤자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성혜인은 붉어진 눈시울로 뚫어져라 반승제를 쳐다보았다.“앞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어 주세요, 제발 저 방해 하지 마시고요.”반승제는 제자리에 멍해 있었다.‘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야? 그냥 검사 좀 해본 게 이렇게 큰 상처로 남을 일인가? 만약 병이 있다면 가서 치료받으면 되지, 애초에 나는 자기를 미워한 적도 없는데... 다행히 병이 없어서 좋은 거지만...’병원 밖으로 나오자, 성혜인은 화가 난 나머지 가슴이 지끈지끈 아파 났다.반승제는 항상 이렇다. 항상 이리도 가볍게 그녀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이내 그녀는 손을 휘둘러 택시를 잡았다. 어쩐지 입안에는 온통 피비린맛이 감도는 것 같았다.아래로 내려온 반승제 역시 그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것을 보자 약간 화가 났다.차로 돌아온 뒤, 셔츠 단추를 몇 개 풀고 나서야 반승제는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운전하세요.”라고 말했다.‘내가 너무 쫓아다녀서 나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건가? 여자라는 생물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군... 일단 며칠 동안 지켜보는 수밖에.’...성혜인은 차를 몰고 회사로 향했다
“남호 오빠.”성혜인은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그러나 아무런 징조도 없이 임남호는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당황한 성혜인은 다시 간호사를 불러왔는데, 과도한 쇼크로 일어난 반응이라는 검사 결과를 듣게 되었다.그렇게 성혜인은 3시간이 넘도록 기다렸지만, 임남호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병원에서 주구장창 시간을 보낼 수 없기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간병인 두 명을 불렀다.병실을 나서려고 하던 찰나에 갑자기 임남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반씨 가문… 반씨 가문 사람이야. 혜인아… 그 사람이 내 다리 잘라 버렸어.”임남호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다리가 잘리고 나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의지 하나로 그 골목에서 힘겹게 빠져나왔다.그때 두 경호원은 불빛 아래서 전과 많이 달라진 반승혜에 대해서 의논하고 있었다.임남호는 아파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이 말 한마디는 똑똑히 들었다.“반씨 가문 사람들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백연서도 반승혜도 다들 사이코패스나 다름없다.그리하여 임남호는 자기 다리를 잘라버린 사람이 반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하지만 그는 반씨 가문에 대해서 일절 모르고 그 가문의 배경에 대해서는 더더욱 까막눈이다.다만 반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서운 존재라는 것만 뼈저리게 알고 있다.그의 소리를 듣고 성혜인의 발걸음은 순간 굳어지더니 믿어지지 않는 듯한 얼굴로 뒤돌았다.“오빠, 깨어난 거야?”임남호는 깨어났고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혜인아, 반씨 가문 사람들 무서워. 날 죽이려고 했어. 내 다리까지 도끼로 잘라 버렸어. 나 진짜 너무 무서워.”덩치도 산만한 남자가 지금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다.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성혜인은 가슴이 미어졌다.전에 임씨 집안에 얹혀살 때, 성혜인은 그나마 이 사촌 오빠와 말을 나눌 수 있었다.비록 나쁜 일을 많이 했던 임남호이지만, 지금 이 지경까지 될 정도는 아니었다.“혜인아, 나… 무서워. 내 다리가…”임남호는 이미 절단 수술을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