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그대로 오후까지 자버렸다. 일어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미친 듯이 울리는 핸드폰을 급히 집어 든 성혜인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외숙모 이소애가 건 전화였다. 이소애이 다급하게 물었다. “혜인아,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는데 안 받아서 걱정했어.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니? 외삼촌더러 널 찾으러 가라고 하려던 참이었어.”성혜인은 부재중 통화를 확인했다. 다섯 통이나 걸었으니 이소애가 걱정할 만도 했다. “전 괜찮아요. 어제 너무 늦게 잤더니 피곤해서 못 들었나 봐요.”이소애는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럼 오늘 어머니 제사는 갈 거니?”“네, 이미 일어나서 씻었어요. 이따가 향만 사가면 돼요.”“향은 이미 외삼촌이 샀어. 외삼촌보고 네가 머무는 곳에서 기다리라고 할게. 일어나면 외삼촌이랑 같이 와.”성혜인은 전화를 끊은 지 5분도 되지 않아서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나가서 임동원과 만났다. 임동원은 산 물건을 성혜인에게 건네주면서 얘기했다. “외숙모가 그러는데 네가 어제 늦게 자서 피곤하다며. 내가 운전할 테니 조수석에 앉아서 조금이라도 자.”“고마워요, 외삼촌.”조수석에 탄 성혜인은 짙은 휘발유 냄새를 맡았다. 임동원은 이 차를 오랫동안 운전하면서 깨끗하게 관리했다고 해도 휘발유와 가죽의 냄새는 빠지기 어려웠다. 목적지에 도착 한 그들은 산 물건들을 가지고 차에서 내려 무덤을 찾아냈다. 성혜인은 해마다 꼭 오곤 했다. 가끔 일이 있을 때는 며칠 전이나 후에 오기도 했다. 하지만 성혜인은 그녀의 어머니가 이 이유로 그녀를 탓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최근 성씨 가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해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아 엄마한테 꼭 얘기하고 싶었다. 외삼촌은 멀지 않은 곳에서 성혜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덤 주위는 깔끔하게 정리된 흔적이 있었다. 성혜인은 쪼그려 앉아서 열심히 향을 태웠다. 향을 다 태운 성혜인은 눈을 가볍게 비비고 임동원의 곁으로 왔다. “외삼촌, 이제 가요.”담배를 피던 임동원은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반승제의 미간이 좁아졌다. 서류 더미에서 고개를 들었더니 밖에 서서 환하게 웃는 성혜인이 있었다. 서천의 풍경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그 풍경에 성혜인의 웃는 얼굴이 더해지니 마치 따스한 햇볕과도 같았다. 서류를 든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왜 어디를 가도 성혜인을 만나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성혜인은 반승제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한 번 더 노크했다. “반 대표님?”반승제는 시선을 피하며 얘기했다. “타.”성혜인은 문을 열고 차에 탔다. 밖의 햇빛이 매우 강했다. 게다가 점심이어서 더 따가웠다. 문을 열자마자 더운 공기와 함께 성혜인의 체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 뒤에 서 있던 임동원은 성혜인이 차에 타는 것을 확인하고 이 씨의 차에 올라탔다. 3km정도 타고 나왔을 때 앞에 주차된 BMW가 보였다. 임동원이 오늘 끌고 나온 그 차. 하진희는 서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고 그녀의 옆에는 질이 좋지 않아 보이는 남자가 오토바이에 앉아있었다. 남자는 반승제의 차를 보더니 눈빛이 달라졌다. “진희야, 너 이게 얼마짜리인지 알아?”하진희는 정말 몰랐다. 하지만 이 차는 그녀가 본 가장 예쁜 차였다. “얼마인데?”남자는 얘기하지 않고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2억?”“20억도 넘어!”하진희는 놀란 나머지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20억이 넘는 차라니. 20억짜리 차는 처음 봤다. 20억이면 집을 몇 채나 살 수 있었다. 놀란 그녀는 문득 그 차 뒤의 차에 앉은 임동원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임동원은 어쩔 수 없이 기사와 얘기하고 차를 세웠다. “아버님, 차에 기름이 다 떨어졌잖아요. 나오면서 주유도 안 해요? 어떻게 운전하라는 거예요.”임동원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진희야, 기다려 봐. 내가 동료를 불러서 주유해달라고 할게.”하진희는 차를 훑어보았는데 성혜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순간 20억이 넘는 차를 떠올린 하진희는 설마 성혜인이 그 차에 탔을까 하는 생
하진희는 눈썹을 찌푸렸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앞에 앉은 이 씨는 못 봐주겠는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임 씨 다리도 안 좋은데 앞으로 두 시간은 족히 걸어야 할 거야. 진희는 친구 오토바이 타고 가도 되잖아?”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진희가 반박했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피부가 아플 지경인데 오토바이에 앉고 싶지 않아요. 제 친구는 늙은이랑 같이 타는 걸 안 좋아해서 그냥 가라고 했어요. 아버님 몸은 항상 좋았어요. 많이 걸으면 운동도 되고 좋죠. 그러니까 아저씨, 운전해 주세요.”이 씨는 화가 났지만 임동원이 이미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니 뭐라고 할지도 몰랐다. 임동원은 뜨거운 햇빛에 따가워서 어지러웠지만 더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어려웠다. 그냥 걸어갈 셈이었다. 하늘에 리조트에 도착한 성혜인은 차에서 내려 뒤따라 들어오는 차를 보았다. 책임자 몇몇이 차에서 내리고 마지막으로 하진희가 내렸다. 하진희는 반승제를 보고는 놀란 나머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렇게 잘생긴 남자는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게다가 기품도 흘러넘쳐 정장을 입은 모습이 묘하게 섹시하면서 도도했다. 이런 사람과 함께한다면 그 어떤 대가도 아깝지 않았다. 하진희는 마음이 급해 반승제의 앞으로 다가갔다. “반 대표님이시죠? 안녕하세요. 서천에 온 걸 환영합니다. 사실 서천에 아름다운 곳이 여러 곳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그러는 김에 밥도 한 번 사고요.” 하진희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반승제에게 향했다. 숨길 마음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반승제의 표정이 삽시에 어두워졌다. 책임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더니 하진희를 끌어내렸다. 하진희는 발버둥 치며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 반 대표님이랑 대화하는 것도 안 돼요? 아까는 반 대표님이 오늘 하루 서천에 있을 거라고 얘기했잖아요. 내가 서천 주민으로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데 왜 막아요!”하진희의 탐욕스러운 시선은 20억이 넘는 차에 머물렀다가 또 반승제의 얼굴에 고정됐다.
하진희의 목청은 아주 컸고 전혀 줄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반승제는 발걸음을 멈칫하며 덤덤한 눈빛으로 피식 비웃었다. 성혜인은 그에게 남편과 아주 사이 좋다고 말한 적 있었다. 하지만 인제 보니 현실은 완전히 딴판이었다.부부 사이가 좋지 못하면 이혼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여태껏 이혼하지 않은 걸 보면...‘남편을 그 정도로 좋아하나?’성혜인은 억지를 부리는 하진희 때문에 약간 짜증이 나서 휴대전화를 꺼내 임동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성혜인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실외 온도는 36도에 달했고 지나다니는 사람 한 명 찾기 어려웠다. 이런 날씨에 걸어 다니다가 길가에서 쓰러져도 발견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우리 일단 외삼촌부터 찾으러 가자.”하진희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싫어. 갈려면 나한테 2000만 원을 주고 가.”성혜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낯짝 두꺼운 것도 도가 있어야지, 도대체 얼마나 멍청해야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 그녀는 예리한 시선을 물었다.“뭐라고?”하진희는 머리를 쳐들며 다시 한번 말하려다가 성혜인의 싸늘한 시선과 마주치고 금세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몸을 흠칫 떨더니 말을 얼버무렸다.“사, 사람을 왜 그렇게 쳐다봐?”성혜인은 하진희처럼 뻔뻔한 사람은 처음 봤다.“외삼촌이랑 외숙모가 너를 내버려 둔다고 해서 나도 마찬가지인 건 아니야. 경고하는데 앞으로 내 앞에서 알짱거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하진희는 약간 풀이 죽었지만 그래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말했다.“날 협박할 생각이라면 그만둬. 네 집안사람 때문에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데? 괜히 네 사촌 오빠한테 시집갔다가 버림받고 평생 책임져 주겠다는 말 하나 믿고 기다렸는데... 퉤, 네 집안사람은 평생 나한테 속죄하며 살아야 해!”성혜인은 더 이상 하진희를 상종하지 않고 차에 타서는 임동원을 찾으러 나섰다. 그녀는 도로를 따라 천천히 운전하며 계속 임동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반 시간 정도 운
임동원이 더위 먹은 마당에 따져봤자 소용없었기에, 성혜인은 그저 머리를 끄덕이며 답했다.“알겠어요, 외삼촌.”임동원은 미안한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네 외숙모가 얼마 전 소시지를 만들었는데 좀 가져가려무나. 물론 김치도 있다. 네가 가장 좋아하던 것들 말이야.”“네.”성혜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때 외숙모 이소애가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지 묻기 위해 전화를 걸어왔다.“외삼촌이 더위 먹어서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어요. 아마 좀 늦게 돌아갈 것 같아요.”이소애는 다급한 말투로 물었다.“어느 병원이니? 나도 바로 출발할게.”성혜인은 병원 이름을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여보세요? 성혜인 씨가 내놓으신 매물이 금방 팔렸는데 직접 와서 계약서에 사인해야 해요. 혹시 언제쯤 시간이 되실까요?”‘그 집이 팔렸다고? 다행이네... 그럼 일단 선불로 낼 돈은 생기겠어.’성혜인은 이렇게 생각하며 답했다.“제가 지금 지방에 내려와서요. 돌아가자마자 연락드릴게요.”“네. 저번에 돈이 급하다고 그러셨죠? 계약서에 사인하고 은행 수속도 해야 하니까 시간이 적어도 반 달은 걸릴 거예요. 그러니 최대한 빨리 연락해 주세요.”“네, 알겠습니다.”한 가지 일을 해결하고 난 성혜인은 드디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덕분에 할아버지가 돌아온 후, 포레스트 펜션에서 반승제와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성혜인은 생각 정리를 끝내고 임동원이 있는 병실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임동원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혜인아, 나 이제 괜찮아진 것 같으니 입원할 필요 없어. 병원에 있어봤자 돈만 낭비하지 않나. 집에서 며칠 쉬는 편이 훨씬 좋으니 집으로 데려다주려무나.”“입원비는 제가 낼 테니 돈 걱정 하지 마세요.”성혜인의 설득에도 임동원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약을 받고 집까지 데려다줬다.집에서 이소애는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초대했다. 하지만 성혜
반승제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져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들어와.”성혜인은 혹시라도 반승제가 말을 바꿀까 봐 후다닥 그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반 안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었는데 열려 있는 노트북과 서류 더미가 한눈에 들어왔다.성혜인은 문득 반승제가 BH그룹 후계자로 선택받은 이유가 어쩌면 재능이 아닌 노력 덕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커다란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지는 않는다.성혜인은 일부러 테이블 근처로 가지 않고 의자를 찾아 앉았다. 반승제는 테이블 앞으로 가서 펜과 서류를 들더니 결재를 시작했다. 일에 집중한 반승제의 모습은 아주 차가웠고 함부로 가까이하지 못할 기운을 갖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창밖의 가로등이 비췄고 바닥에 희미한 그림자를 남겼다. 그의 머리카락은 웜톤 불빛에 의해 금빛으로 물들었다.손이 근질근질했던 성혜인은 펜과 종이를 찾아와서 반승제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데 어우러진 그의 선, 빛, 기운, 그림자는 통증을 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게 바로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인가 싶기도 했다.성혜인이 관찰을 넘어 감상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노크하고 반승제가 짧게 답했다.“들어와요.”심인우는 포장된 음식을 잔뜩 들고 들어왔다. 그는 성혜인도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일단 저녁부터 드세요.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회의를 하고, 9시 반부터 또 해외 회의를 해야 하잖아요.”반승제는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수저 세트를 하나 더 챙겨줘요.”심인우는 반찬을 내려놓다 말고 전화를 걸어 수저 세트를 갖고 오라고 지시하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배가 너무 고팠던 성혜인은 반승제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음식 앞으로 왔다. 그녀는 냄새만 맡아도 벌써 군침이 돌았고 배에서 우렁찬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녀는 순간 얼굴이 빨개졌고 반승제는 그저 피식 웃기만 했다. 비록 반승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음
성혜인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심인우가 밖에서 걸어들어오더니 반승제의 곁으로 와서 말했다.“대표님, 성씨 집안에서 함께 식사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식사?’반승제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반태승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을 더 꽉 붙잡기 위해 얕을 수를 쓰는 성씨 가문을 그는 미움을 넘어 증오했다.“거절해요.” 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다가 한 마디 보탰다.“성휘 씨는 성혜인 씨가 대표님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대요. 대표님을 위해 요리 연습도 하고 계신답니다.”이 대화의 주인공인 성혜인은 반승제의 앞에 앉아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딸을 이용해 반승제의 환심을 사려는 아버지가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방식은 반승제의 혐오만 일으킬 뿐이었다.역시 반승제는 성혜인의 예상대로 단호하게 답했다.“계약서에 적힌 조항 외에는 꿈도 꾸지 말라고 전해줘요.”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반승제는 성혜인을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성혜인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배가 불렀다고 말하려고 했어요. 대표님은 계속 드실래요?”반태승에 성씨 집안까지 더 해져 방승제는 완전히 입맛을 잃었다. 성혜인은 그가 대답 없는 것을 보고 말없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성혜인은 반승제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상관없었다. 두 사람은 어차피 일 적으로만 연결된 낯선 사람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반승제와 한 번 만나보겠다고 성묘를 위해 지방으로 내려온 딸을 이용해 먹으려는 아버지의 방식이 너무 우스웠다.예전의 성혜인은 단 한 번도 아버지가 누군가를 편애한다는 생각을 한 적 없었다. 예전에는 또 그녀를 위해 소윤 일가를 집에 들이지 않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변하기 시작했다.이때 반승제의 목소리가 성혜인의 생각을 끊었다.“정리할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넌 이만 돌아가.”성혜인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네. 대표님은 모레 제원으로 돌아가요?”“내일.”반승제는
이소애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임동원은 곁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성혜인은 하진희를 보는 체도 하지 않았다.“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임동원과 이소애는 그녀를 큰길까지 데려다주려고 나섰다.성혜인은 잠깐 고민하다가 임동원에게 물었다.“외삼촌, 서천이 재개발한다는 소식이 있다면서요? 만약 인화동을 철거한다면 그 돈은 어떻게 쓸 거예요?”작은 도시는 집값이 쌌기에 2억 원쯤만 있으면 세 사람이 살기에도 넓은 집을 살 수 있었다.철거 얘기가 나오자 임동원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네 사촌 오빠가 빌린 사채 2000만 원을 갚고 더 좋은 집을 사야지. 혜인아, 혹시 무슨 소식을 들은 게냐?”임동현은 성혜인이 재개발을 하는 사람과 같은 차에 올라탄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아직 확실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두 분 잘 상의해 보세요. 두 분도 나이가 많은데 모든 돈을 다 하진희한테 주면 안 되죠.”임동원이 마른기침을 하며 말했다.“진희가... 사람은 참 좋아. 조금 게을러서 그렇지.”“그래, 너무 신경 쓰지 마.”더 이상 말해 봤자 그들이 들을 것 같지 않았기에 성혜인은 인사치레 말만 하다가 차에 올라탔다.임동원은 상기된 표정으로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혜인이 말을 들어보니 무조건 철거가 될 것 같군. 여보, 우리 돈 좀 빌려서 집을 사는 건 어떻겠소? 만약 철거된다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거요!”이소애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인화동에는 나이 많은 어르신이 아주 많았다. 대부분 자식을 큰 도시로 보내고 따로 사는 노인이 아니면, 한 식구가 전부 한 집에 모여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만약 지금 집을 샀다가 철거 소식이 퍼지면 전 집주인과 원수를 지을 게 뻔했다.“아무래도 진희랑 얘기를 해봐야겠소. 내가 어제 혜인이 비싼 차에 타는 걸 봤는데, 그 사장이 분명 알려준 게 있을 거요. 이건 틀림없이 돈을 벌 중요한 기회니까 일단 차랑 땅을 팔고 돈을 좀 빌려서 집 두 채 정도 사면 몇억 원이 몇십억으로 불어날 거요!”고민하고 있던 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