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가는 어느새 붉게 물들었다. 화가 난 탓인지 눈동자도 조금 충혈된듯했다.성혜인은 계약서를 갖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감독님은 영원히 도라희 씨가 준 수모를 기억하시면 됩니다.”“제가 어떻게 잊겠습니까!”너무 흥분한 나머지 안유결은 말을 끝마치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성혜인은 주변을 살펴보았고 코끝에는 온통 술 냄새로 가득했다.“싸우기 전에 일단 먼저 몸부터 잘 추스르세요. 술 같은 건 마시지 말고요.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안유결의 얼굴은 순간 시뻘게졌다. 누명을 덮어쓰기 전에, 그는 늘 충실하고 건강한 나날을 보냈다.하지만 현재 이 좁은 골목에서 살며, 그는 언제나 도라희의 팬에게 발각될 걱정으로 전전긍긍했다. 이런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 그는 술로써 자신을 마비시켰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알겠습니다.”성혜인의 굳건한 눈빛으로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 감독님께 연락할 겁니다.”말을 끝마치고, 성혜인은 곧바로 자리를 떴다.긴 골목을 벗어나서야 그녀는 공기가 많이 맑아진 것 같다고 느껴졌다.값싼 향수 냄새, 하수구에서 나는 쓰레기 냄새, 그리고 술 냄새는 골목 전체에 퍼져있었다. 오늘 직접 와서 보지 않았다면, 성혜인은 제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절대 알지 못했을 것이다.차에 올라탄 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장하리는 운전기사 역할을 했다.돌아오는 길에 성혜인의 핸드폰이 울렸는데 그건 병원에서 걸어온 전화였다. 내용은 다름 아닌 차유하가 깨어났고 경찰이 증거를 수집하러 갔는데, 성혜인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묻는 것이었다.“합의 같은 건 절대 보지 않겠습니다. 법정에서 내린 판결이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전화를 끝마치자, 이내 도라희가 또 전화를 걸어왔다.“성혜인 씨는 정말 아버지의 유골에는 관심조차 없나 보죠? 내가 사료에 섞어서 돼지한테 먹여도 두렵지 않은가 봐요?”성혜인은 옆에 기대 손끝을 약간 떨더니 피식 웃
도라희는 연예계의 사람이다 보니 진정한 재벌 가문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따라서 성혜인이 반씨 집안과 약간의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 리 없었다.그녀는 두 팔을 끼고 오만한 자세로 서 있었다.“성혜인 씨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나한테 미움 사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아요?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면 이 일은 그냥 넘어가 줄 수 있어요. 하지만 만약 나랑 싸우겠다면, 다음은 무릎 꿇는 것처럼 쉽지 않을 거예요.”도라희는 인기가 없는 배우들을 대할 때에도 이런 수작을 부렸다.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신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도록 말이다.하필이면 인터넷에 도라희의 팬들도 많아, 인기가 없는 배우들은 전혀 그녀를 상대하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그만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차유하 씨의 일은 제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라희는 자신의 한정판 가방을 들어 성혜인을 내리치려 했다.그러자 성혜인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이내 그녀는 발로 도라희를 배를 힘껏 찼다.도라희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멀리 떨어져 나갔다.이윽고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떨리는 손가락으로 성혜인을 가리키며 말했다.“감히 날 때려? 너 내가 얼마나 많은 팬이 있는지 몰라?”성혜인은 우스워하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죄송한데, 진짜 몰라서요.”도라희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너 딱 기다려!”도라희는 차로 돌아가더니 곧바로 자신의 SNS를 켰다. 그녀의 SNS에는 50만 명의 팔로워가 있었는데, 모두 열정적인 팬들이라 그녀가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밑에 댓글을 달며 도라희의 안부와 정신건강을 걱정하며 묻곤 했다.도라희는 차를 몰고 병원으로 가 지인에게 진단서를 떼달라고 부탁하고, 그 진단서를 찍어 SNS에 올렸다.「세상에 정말 이렇게 막무가내인 여자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단지 가족을 대신해 사과하러 갔을 뿐인데, 결국 저에게 손찌검하더군요.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던 그때의 트라
“안유결, 아직도 모르겠어? 이런 말 해봤자 아무런 소용 없어. 누구도 당신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당신은 그저 버림당한 불쌍한 벌레에 지나지 않아.”“분명히 네가 그 여자 연예인을 매수하고, 의사까지 매수해서 내가 가정폭력을 저질렀다고 했잖아! 독한 것, 내가 귀신이 되어서도 너는 절대 놓아주지 않을 거다!”그가 분노하며 소리지를 수록, 도라희는 더욱 기뻐했다.하지만 이내 뭔가 미심쩍다는 것을 느낀 도라희가 옆에 있던 보디가드를 부르며 물었다.“저 사람 몸 다 수색해봤어?”만약 핸드폰이나 녹음기 같은 게 있다면 일이 복잡하게 될 테니 말이다.그녀는 매번 사람을 시켜 안유결을 위협할 때마다 이 점을 주의했었다. 때문에 안유결은 여태껏 아무런 약점도 잡지 못했다.“이미 다 수색해보았습니다. 핸드폰과 녹음기는 이미 저희가 다 버렸습니다.”그 말에 도라희는 순식간에 화가 몰려왔다.‘정말 녹음기를 준비했던 거야?’도라희는 또 한 번 안유결의 얼굴을 걷어찼다. 날카로운 그녀의 하이힐 굽에 맞은 안유결은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보호하며 잔뜩 몸을 웅크렸다. 눈빛은 온통 굴욕감으로 찬 채 말이다.“안유결, 지금 쓰레기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다시 여론을 뒤집으려고? 그건 다음 생에나 꿈꾸시지!”말을 끝마치고 그녀는 몸을 돌려 자신의 보디가드에게 말했다.“잘 좀 처리해봐, 적어도 한 달은 침대에 누워있게 말이야. 어디 또 한 번 덤벼들 생각할 수 있나 없나 보자고! 이런 쥐새끼는 평생 캄캄한 하수구에 숨어 살아야 해!”“알겠습니다!”이윽고 주먹과 발길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안유결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고, 도라희는 멀지 않은 곳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한 시간 후, 폭력이 그제야 천천히 멈추기 시작했다.도라희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맞은 안유결을 혐오에 찬 눈빛으로 힐끗 바라보았다.“밖에 내다 버려! 죽게 만들어서는 안 돼, 이 빌어먹을 놈이 전에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거든. 일단 죽게 되
병원에서 돌아가는 길에, 성혜인은 반승제의 차와 마주쳤다.반승제의 차는 한 골목 길가에 주차되어 있었는데, 차 유리가 누군가에 의해 깨진 상태였다.순간 마음이 덜컹한 성혜인은 서둘러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누구도 받지 않았다.그녀는 또 심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심인우는 오늘 밤 반승제가 직접 운전해 호텔로 돌아갔다고 알려주었다.성혜인은 곧장 차에서 내려 곰곰이 생각하더니, 그 골목길을 따라 안으로 걸어갔다.골목 깊은 곳은 축축했고, 불빛도 깜빡 거리는 게 몇 년 동안 수리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바닥에는 쓰러진 몇 명의 남자들과 함께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있었다.그걸 본 성혜인은 다리가 나른해졌다. 그러던 그때, 총알 한 발이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성혜인은 그대로 굳어져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오자 그녀는 깜빡거리는 가로등 아래 벽에 기대섰다.총알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쳐지나 등 뒤에 있는 벽에 꽂혔다.놀란 성혜인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특히 총을 든 남자가 반승제라는 걸 발견하고 말이다.반승제는 성혜인이 이곳에 있을 줄 몰랐다. 그녀임을 알아차렸을 때, 총알은 다행히도 성혜인을 비껴갔다. 그렇지 않았다면 성혜인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성큼성큼 걸어와 성혜인을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단지 이렇게 많은 시신을 보고 놀란 것이라 여기고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뭐하러 왔어요?”“대표님, 다치신 데 없으시죠?”반승제는 흠칫하며 총을 더욱 꽉 잡았다.‘정말 이상한 여자야. 분명히 이 광경이 매우 무서울 텐데... 바닥은 온통 피고 심지어 자신은 총에 맞아 죽을 뻔했는데, 나한테 다친 데는 없냐고 물어?’보통 사람이 이 광경을 봤다면 일찍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심지어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반승제를 악마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였다.“이름이 페니라고 했나?”성혜인은
가슴이 차가웠다. 그중 절반이 밖으로 다 드러나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다.하지만 그가 또 압박하는 바람에 성혜인은 침을 꼴깍 넘겼다.그녀는 눈을 감았다. 성혜인은 기억을 잃고 누구도 믿지 않는, 심지어 지금 총까지 들고 있는 반승제를 감히 건드릴 수 없었다.가슴에서는 어느새 축축함과 반승제의 이 놀림이 느껴져 왔다.놀란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보았지만, 먼 곳에는 한 무더기의 시체가 있어 하는 수 없이 급히 시선을 거뒀다.반승제의 머릿결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났고 등 근육은 잔뜩 성이 난 듯 보였다.그렇게 10분 동안 키스하고 나서야 그는 몸을 일으켜 세워 성혜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그녀의 얼굴을 어느새 새빨갛게 변해, 차갑기만 했던 얼굴에 생기가 도는 듯 했다.“전에도 내가 이렇게 키스했어요?”성혜인은 왠지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임경헌 씨 말을 기억했던 거구나.’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반승제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앞으로는 안 그럴 겁니다.”‘개자식.’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반승제의 뒤를 따랐다. 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곳을 정리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창문이 깨진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성혜인의 목도리가 현장에 떨어졌지만, 이미 바닥에 있는 피가 묻은 탓에 다시 줍지 않았다.반승제는 그녀를 힐끔 보더니 침을 한번 삼켰다.‘그래도 보는 눈은 있었나 보네, 적어도 입에 침이 마를 정도니까.’그는 긴 손가락으로 핸들을 꽉 잡고는 시선을 거두고 가속페달을 밟았다.성혜인은 밖에 서서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이런 변태의 낭만적인 자극은 쉽게 사람을 흐리게 만든다니까.’그녀는 등을 뒤로 기대 한동안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야, 차를 몰고 포레스트로 향했다.10시가 되자, 도라희는 또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성혜인 씨, 인제 보니 정말 나랑 좋게 얘기할 마음이 없나 봐요? 좋아요. 조금 이따 당신 아버지 유골을 하수구에 버리겠어요. 그리고 인터넷에 성혜인 씨
하지만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올바른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았다. 특히 그 녹취록 안에 있는 발길질 소리들로 보아, 안유결이 얼마나 심한 폭력을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도라희는 분명 자신이 먼저 바람을 피워놓고, 되레 뻔뻔하게도 안유결이 자신에게 가정폭력을 가했다고 말했다.「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못될수가 있지? 정말 못 들어주겠네. 안 감독님이 너무 안됐어.」「듣는 내가 다 도라희를 한 대 치고 싶네. 안 감독님의 명예, 사업, 돈 모두 가로채 가놓고는 세상밖에 나오지도 못하게 하다니!」「보통 사람이 이렇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일찍 자살하고 말았을 거야. 도라희 이 여자 정말 독하네. 퉤! 이름 석 자 올리는 것도 더러워!」인터넷은 곧 욕설로 가득 찼고,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한편 도라희는 자신이 또 폭행을 당했다고 게시물을 올렸다. 하지만 이제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사람들은 또 매번 도라희의 드라마가 방영될 때 마다 안유결이 욕을 먹은 일을 떠올렸다. 그녀의 드라마가 전부 가정폭력에 연관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독한 여자! 살길을 내어주지도 않으면서 남을 밟고 올라서려 하다니!」「이런 여자를 만나다니, 안 감독님 재수가 없으셔도 너무 없으시네요!」「도라희는 연예계에서 나가라! 우리 눈앞에서 꺼지란 말이야! 여러분, 우리 도라희의 모든 작품에 보이콧합시다!」「보이콧!」사람들은 연신 도라희에게 욕을 퍼부었고, 놀란 도라희는 감히 집 밖을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서둘러 다른 사람의 핸드폰으로 안유결에게 연락을 취했다.현재 그녀를 구해 줄 사람은 오직 안유결뿐이었다. 여론도 모두 안유결이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그가 직접 나서줘야 이 상황이 가라앉을 수 있었다.“여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너무 극단적으로 행동하지마, 응? 지금 당장 게시물 삭제하고 나한테 유리한 글을 올려. 그리고 지금 당장 재혼해서 앞으로 둘이 행복하게 잘 지내자. 당신 감독 계속하고 싶은거 아니야? 내가 최대한 힘 써서 당신 지지
지금 도라희는 감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었다.안유결과 이혼할 당시 그녀가 악을 쓰고 아이의 양육권을 가지려 한 것은, 그 아이가 안유결의 아이가 아닌 그녀가 다른 사람과 낳은 자식이었기 때문이다.그녀의 불륜남은 비서뿐만이 아니었다. 도라희는 안유결 몰래 방탕하게 놀았지만, 고지식한 그는 줄곧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 아이를 안유결에게 넘겨준다면, 그건 곧 증거를 제시하는 것과 같았다.이제 그녀는 다시 일어날 희망이 사라지게 되었다.그러나 아직 아이를 빌미로 글을 지어낼 수는 있었다.이윽고 도라희는 서둘러 새로운 게시물을 올렸다.「내게 아무리 잘못이 있다고 한들, 아이는? 안유결 당신은 아이의 생사에 대해서 조금도 개의치 않아? 아이는 우리 둘의 아이야. 하지만 당신은 한 번도 관심을 둔 적이 없지. 그러면서 내 사업을 망치려 들다니, 대체 당신이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어.」하지만 이 게시물의 댓글 창도 곧 만여 개의 욕설로 도배되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안유결은 또 새로운 게시물을 올렸다.「아이는 제 아이가 아닙니다. 당시 몰래 아이의 머리카락을 보관해 친자확인을 해봤거든요. 도라희, 당신 지금 아이를 빌미로 글을 지어내서 내 뺨을 내리치겠다는 거야? 남자로 생겨, 너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고, 너 때문에 진흙탕에도 빠졌는데, 아이마저도 내 아이가 아니었어. 그런데도 너는 결코 네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지.」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안유결은 목이 터져라 욕을 하지도 않고 그저 증거만 내보일 뿐이었다.지금도 그는 도라희의 질책 앞에서 여전히 화를 내지 않았다.그러나 글의 힘은 매우 강했다.많은 사람들은 그가 올린 게시물을 읽고 마음이 시려졌다.그리고 또 도라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이제 모두는 그녀가 다시 일어날 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도라희 본인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어 차라리 물건을 챙기고 출국하려 했다.차유하의 부모가 그녀를 찾아왔다. 그들은 차유하가 감옥에 가지 않게 도라
전화가 망설임 없이 끊어지자, 성혜인은 어쩔 수 없이 가구를 들이기로 했다.가구 역시 모두 그녀가 직접 고른 것들이었는데, 일찍이 업체와 가격을 상의했었다.그녀는 현장에 있으며 가구들을 어디에 배치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알려주었다.가구를 전부 옮기려면 3일 정도가 걸릴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반승제가 현장에 와서 볼 때면, 네이처 빌리지의 공사 건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성혜인은 한숨을 내쉬었다.3일 뒤, 그녀는 또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었다.그가 성혜인을 해고하겠다고 얘기한 뒤로, 3일 동안 한 번도 반승제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그녀의 전화를 받았을 때, 반승제는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고, 네이처 빌리지에 가봐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조금 기다려요.”조금만 기다리라는 반승제의 말에 성혜인은 그가 곧 현장에 올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가 네이처 빌리지 입구에서 장장 3시간을 기다려 거의 얼음 조각상이 될 뻔하고 나서야 반승제는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또 이날 마침 눈이 내려 그는 우산을 들고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입구에 서 있던 성혜인은 추위에 얼어 코끝이 새빨개졌고 몸도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이윽고 반승제는 우산을 접어 차에 넣고는 그녀의 앞에 다가서며 말했다.“갑시다.”추위에 떨며 성혜인은 이를 덜덜 떨었고 발도 굳어진 것 같았다.하지만 반승제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성혜인도 힘겹게 그를 따라나섰다.문은 전자식으로 설계된 양문이었다.“대표님, 비밀번호를 설정하셔야 합니다.”말할 때마다 그녀는 추위에 이를 벌벌 떨었다. 볼도 어느새 새빨개진 상태였다.반승제는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자 성혜인은 그가 비밀번호를 훔쳐볼까 걱정해서 그러는 줄 알고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그제야 반승제는 자신의 생일을 비밀번호로 설정했다.집안에 들어서서, 그는 훌륭하게 설계된 내부를 보며 이곳저곳 돌아다녔다.성혜인도 그를 따라 걸었다.“대표님, 마음에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