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윤희선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가장 아끼는 아들을 감옥에 보낸 그녀는 절대 가만히 있을 위인이 아니었다.성혜인은 요즘 윤희선에게 사람을 붙여 감시하고 있었다. 윤희선이 봤던 것과 똑같은 검사 결과가 그녀의 앞에 놓였을 때는 그녀도 윤희선 못지않게 놀랐다. 윤단미가 윤씨 가문의 자식이 아닐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윤씨 가문은 친자 검사 결과로 인해 완전히 뒤집어졌다. 집안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윤단미에게 그들의 시선은 하나하나의 비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엄서향의 옷을 잡으면서 말했다.“엄마, 빨리 설명해 봐요! 제발 거짓말이라고 설명 좀 해보라고요!”엄서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친자 검사 결과를 뒤엎을 만한 변명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윤단미는 자신이라도 변명을 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뺨을 맞고 입을 꾹 다물었다.“꺼져! 네 더러운 어미랑 같이 당장 우리 집안에서 꺼져!”윤단미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얼굴을 감쌌다. 그녀가 윤씨 가문에 쏟아부은 모든 노력이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부정당했기 때문이다.“아빠...”“나는 네 아빠가 아니다!”윤정무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외쳤다. 집안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런 창피를 당했으니 그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윤희선은 아직도 비꼬는 표정으로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엄서향은 임신 못해요! 윤단미는 엄서향의 자식도 아닌 완전한 잡종이라고요. 이건 엄서향의 건강검진 결과에요. 낙태를 너무 많이 한 나머지 임신 능력을 잃었다고 하죠. 윤단미는 도대체 어디에서 주워 온 자식인지 상상도 하기 싫네요.”윤단미는 눈앞이 핑 돌아서 자칫 쓰러질 뻔했다. 이때 엄서향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윤정무의 다리를 잡았다.“여보, 우리가 지금껏 같이 살아온 정을 봐서라도 제발 쫓아내지 말아줘요.”윤정무는 단호하게 엄서향을 차버렸다. 그리고 분노가 서린 발걸음으로 쿵쿵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다른 집안사람들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윤단미 모녀를 바라봤다.난생처음 느껴보는 수
윤단미가 읽기만 하고 답장하지 않은 것을 보고 성혜인은 덤덤하게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윤단미가 맛볼 비극은 아직 한참 남았기에 급해 할 것은 없었다.윤단미가 크루즈에서 그녀를 죽이려고 한 일과 그녀의 아버지를 죽인 일, 그리고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윤단미를 수백 번 죽인다고 해도 그녀는 속이 후련하지 않을 것 같았다.성혜인은 성모 마리아가 아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녀는 무엇이든 당한대로 갚아주는 사람이었다.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오늘 오후 또 BH그룹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윤단미가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너 딱 기다려! 딱 기다려!!!」성혜인은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윤단미가 윤씨 집안사람이 아니라는 소식은 금방 반승제의 귀에도 흘러들어갔다. 소식을 알려준 사람은 다름 아닌 온시환이었다.“백마왕자처럼 멋지게 나타날 순간은 바로 지금이야, 승제야.”반승제는 대답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잠시 후 진세운이 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윤단미 씨가 윤씨 집안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소식 들었어? 혹시 설씨 집안사람은 아닐까 해서 난 설 회장님이랑 친자 검사를 해볼 생각이야.”진세운은 이미 윤단미의 출신을 조사할 준비를 끝냈다. 그래도 반승제에게 말은 해놓아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건 것이었다.“넌 진짜 개입 안 할 거야? 너만 개입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도와줄 텐데?”반승제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온통 성혜인으로 가득했다.“난 할 만큼 했어.”세한그룹은 BH그룹을 이용해 수많은 돈을 모았다. 하지만 반승제는 줄곧 모르는 척 넘어가 줬다. 더구나 그는 윤단미와 만나면서 천문학적인 금액의 선물도 해왔다.세한그룹의 임원진에 똑똑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절대 이런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연해의 부동산 사건만 해도 그랬다.같은 시각, 윤단미는 김경자와 만나 직접 하소연 했다. 원래도 윤단미의 출신에 약간의 불만이 있었던 김경자는 그녀가 윤씨 가문의
성혜인은 몸을 흠칫 떨더니 조용히 반승제의 앞으로 걸어갔다. 반승제는 의자에 앉은 채로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는 반승제의 어깨를 넘어 창문을 바라봤다. 창밖에는 제원의 도시 풍경과 함께 아름다운 노을이 펼쳐졌다.얼마 후 반승제는 성혜인을 훌쩍 안아 올리더니 책상에 눕혔다. 그리고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 쥔 채 힘껏 키스를 퍼부으며 옷을 벗기려고 했다.“승제 형~”이때 임경헌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었다가 당황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미친...!”임경헌은 눈을 가리면서 몸을 홱 돌렸다. 성혜인도 몸을 파르르 떨면서 부랴부랴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얼굴은 창밖의 노을보다도 붉게 물들었다.성혜인은 반승제도 임경헌도 감히 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반승제의 사무실과 연결된 휴게실을 발견하고 후다닥 달려갔다. 몸에서는 열이 나다 못해 김까지 나는 것 같았다.반승제는 다시 의자에 앉으면서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임경헌은 조심스럽게 몸을 돌리더니 눈을 가리고 있는 손 틈으로 주변을 관찰했다. 반승제는 태연한 자태로 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무슨 일이야?”임경헌은 황급히 도망가는 성혜인을 힐끗 바라보면서 말했다.“형, 아무리 페니 씨랑 죽고 못 산다고 해도 그렇지! 대낮에 사무실에서 이러는 건...”“무슨 일이냐니까.”임경헌은 순간 자신이 무슨 얘기를 하러 왔는지 잊어버렸다. 반승제가 성혜인을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사무실에서 그런 짓을 할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요즘의 반승제는 너무 반승제 답지 않았다.임경헌은 한참 진정하고 나서야 원래 하려던 말이 떠올라 천천히 말했다.“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연락했대요. 그리고 직접 찾아가서 싸우기까지 했대요. 승우 형이 살아있다면서요. 덕분에 집안 꼴이 아주 엉망진창이에요.”반승제는 김경자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반승우에 한해 김경자와 백연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승우만 돌아올 수 있다면 두 사람은 아마 반씨 가문을 팔아버려야 한다고 해도 흔쾌히 허락
반승제는 묵묵히 맞고 있다가 반태승이 기침을 그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의 등을 토닥였다.“일단 건강부터 신경 쓰세요.”반태승은 몸을 부르르 떨다가 지팡이를 내리며 한숨을 쉬었다.“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오늘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을 겪은 반태승은 지금까지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반승제가 정말 떠나려는 것을 보고 반태승은 지팡이로 그의 등을 툭툭 찌르면서 말했다.“승우 일은 조사할 만하면 하고, 아니다 싶으면 하지 말거라. 나한테는 살아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니까. 네 어머니랑 할머니는 태초부터 마음가짐이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니 신경 쓸 것 없다.”반승제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다시 한번 강조했다.“할아버지는 건강만 신경 쓰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내가 너와 혜인이를 맺어준 이유는 혜인이가 단순한 아이이기 때문이야. 이것저것 욕심내지 않고 네 곁에 함께 있어 줄 만한 아이란 말이지. 너도 언제까지 혼자 살 수는 없지 않겠냐.”반태승은 아직도 포기하지 못했다. 반대로 그의 말이 유언처럼 느껴진 반승제를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이제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그 아이도 네가 좋다 하던?”사실 반태승은 무심하게 물은 것이었다. 하지만 반승제는 그의 예상보다 훨씬 어두운 표정으로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지난 후에야 겨우 대답했다.“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좋아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잖아요.”백연서에게서는 미치광이의 성질을, 반기훈에게서는 집착스러운 성질을, 부대에서는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성질을 배웠다. 하지만 유독 사랑에 관해서는 가르쳐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말문이 막혔던 반태승은 손을 흔들며 반승제를 보냈다. 그가 차에 올라탄 다음 성혜인은 말없이 페달을 밟았다.차 안의 분위기는 약간 기묘했다. 반승제는 평소대로 담배를 꺼냈다가 성혜인이 곁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넣었다.“페니야.”마침 신호등
성혜인은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밖으로 나가 다른 잠옷을 꺼냈다. 이번에 반승제는 장난치지 않고 얌전히 잠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는 그녀를 향해 머리를 까딱하며 말했다.“들어가서 씻어.”에어컨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성혜인은 춥지 않았다. 그래도 반승제가 건네는 셔츠를 받아서 들며 욕실로 들어갔다.혹시라도 반승제가 갑자기 쳐들어오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던 성혜인은 꼼꼼하게 문까지 잠그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그가 자신의 욕실을 남에게 내어준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도 모르고 말이다.반승제의 결벽은 병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심했다. 하지만 성혜인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지라 전혀 모르고 있었다.성혜인은 반 시간 정도 지난 후에야 욕실을 나섰다. 거실에서는 반승제가 회의하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갈아입을 옷이 없었던 성혜인은 잠깐 고민하다가 반승제의 셔츠를 걸쳤다. 그녀의 옷은 속옷을 포함해 샤워하면서 씻은 탓에 셔츠 안은 텅 비어 있었다.성혜인이 나온 것을 발견한 반승제는 그녀에게 가까이 오라는 눈치를 줬다. 노트북 곁에는 반승제가 직접 정리한 회의 내용이 있었다. 이는 원래 비서의 업무였지만 그녀는 샤워하느라 놓쳐버리고 말았다.약간 미안한 감이 들었던 성혜인은 빠르게 자리를 잡고 회의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의 회의가 끝난 다음에는 따로 정리해 심인우에게 메일로 보내주고 나서 반승제에게 말했다.“네이처 빌리지의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서요. 저는 내일 오전에 BK사의 대표님과 만나야 해요. 그리고 공사가 끝나는 날짜도 확인해야 해요.”성혜인은 손으로 한쪽 팔을 잡은 채로 말했다. 속옷을 입지 않은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말이다. 반승제는 물론 그녀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대표님은 같이 가실 필요는 없어요. 공사가 끝나는 날짜는 제가 따로 전달해 드릴게요. 그리고 결과물도 제가 먼저 확인한 다음에 보여드릴게요.”“아니, 나도 같이 갈래.”반승제는 덤덤하게 말하
왠지는 모르겠지만 반승제는 성혜인과 끌어안을 때마다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편안하고, 만족스럽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그런 느낌 말이다.두 사람은 같은 바디 워시를 썼기 때문에 체향 또한 비슷했다. 비록 이런 상황에서 한데 끌어안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둘 다 이혼한 몸이었기 때문에 괜히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성혜인이 무릎에 앉자마자 반승제는 그녀의 옷자락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침향 팔찌가 살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몸을 흠칫흠칫 떨었다.그녀의 몸매는 아주 뛰어났다. 평소 보수적인 옷만 입은 탓에 티가 나지 않았을 뿐이다. 살이 있을 곳은 있고 없을 곳은 없는 것이 반승제는 첫날밤부터 엄청난 만족감을 느꼈다. 비록 인정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깊어진 밤, 환한 전등이 호텔 방을 비췄다. 거실에는 한 쌍의 남녀가 부둥켜안고 있었다. 남자의 몸집이 너무 큰 탓에 여자는 어느 때보다도 작아 보였다.반승제는 그 자세대로 한참 키스하다가 머리를 들었다. 눈가에는 말로 이루 설명하지 못할 부드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의 눈빛에 깜짝 놀란 성혜인은 황급히 시선을 돌려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다.“페니야, 네 가족들은 어때? 너한테 잘해줘?”‘만약 좋은 사람들이라면 서민규와 같은 불륜 상습범한테 시집보내지 않았겠지...’반승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물었다. 처음으로 성혜인의 가족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성혜인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나름대로 잘해줘요.”“그건 부족한 부분도 있다는 말인가?”“제가 말하고 싶을 때 다시 알려드릴게요.”반승제는 갑자기 성혜인을 안은 채로 몸을 일으키더니 침실로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성혜인은 몸부림을 치면서 물었다.“키스만 한다면서요?”“오늘은 나랑 같이 자자. 그냥 잠만 자는 거야.”“별로 믿음이 안 가는데요.”손만 잡고 자자는 유형의 남자의 말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아주 전형적인 거짓말이기 때문이다.반승제는 머리를 숙여 당황한 기색의 성혜인을 바라보더니 그녀를 더욱 힘껏
같은 시각, 교외의 별장에는 몇 명의 남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보스, 저희가 갖은 방법을 써봤는데도 침입하지 못했습니다. 반태승 회장님이 직접 배치한 경호원이 너무 치밀해서 애초에 돌파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반태승은 사령관으로 부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그가 직접 배치한 경호는 완벽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전문가도 감히 침입할 엄두를 못 낼 정도로 말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포레스트에 도우미가 아주 적다는 것이다. 대부분 도우미가 삼 년 이상 근무했을 뿐만 아니라 유경아가 매일 체크하기 때문에 도우미를 이용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다.10여 명의 도우미를 제외하고 난 나머지 사람은 전부 경호원이었다. 그것도 반태승이 직접 교육한 충성스러운 경호원 말이다. 그들이 찾는 물건이 포레스트에 있다고 해도 침입은 불가능하고 성혜인이 가지고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다.가면을 쓴 남자는 가장 중간에 있는 빨간 의자에 앉아 괴이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들을 바라봤다.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은 힘을 이기지 못하고 쨍그랑 깨져버렸다.가면남의 손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남자들을 직시했다. 싸늘한 눈빛에 남자들은 너나없이 머리를 숙였다. 이때 한 사람이 용기 내서 말했다.“보스, 성혜인 씨를 납치하는 건 어떨까요?”말을 마치자마자 총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제안한 남자가 힘없이 툭 쓰러졌다. 가면남은 연기가 나고 있는 총구를 닦으면서 가볍게 말했다.“그게 가능하면 진작 물건을 찾아왔겠지. 당하고만 있는 게 아니라.”가면남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시체 곁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오만한 자태로 미간의 정중앙을 명중당하고 쓰러진 남자를 바라봤다.“성혜인 씨가 다치지 않는 전제하에서 조사해 줘. 서주혁이 벌써 노트를 의심하기 시작했으니 빨리 움직여야 할 거야.”지난번의 노트는 성혜인이 보냈다는 걸 가면남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서주혁을 속이기 위해 모든 흔적을 지웠다. 덕분에
반희월은 차가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쏘아봤다. 마치 그녀가 희대의 구미호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페니 양은 잠깐 나가줄래? 내가 승제랑 할 말이 있어서.”성혜인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사무실 문을 닫기도 전에 반희월의 속사포 질문을 들었다.“너 정말 저 디자이너랑 계속 만날 생각이니? 설씨 가문의 딸은 어떡하고?”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어이없는 기분도 들었다. 지난번 설우현도 설씨 가문의 딸에 대해 언급한 적 있었지만 그는 그녀와 아예 모르는 사이였다.“난 어제 우현이랑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너 설씨 가문의 딸이랑 연락하고 지낸다며? 설씨 가문의 딸이 얼마나 사랑받고 자란 줄 알아? 성혜인처럼 대했다가는 설씨 가문에서 너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성혜인은 여기까지 듣고 문을 닫았다. 반승제의 생일 파티에 그녀도 함께 있었기에 당연히 설우현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설씨 가문은 반씨 가문도 비하지 못할 정도의 재벌가이니 그런 집안의 딸을 소홀히 대했다가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몰랐다.사무실의 방음 효과가 아주 좋았기에 성혜인은 더 이상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반대로 반승제는 자신이 설씨 가문의 딸과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 설명하고 나서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고모, 저 이제 회의하러 가야 해요.”“승제야, 페니를 잘 관찰해. 시커먼 속내가 있는 여자가 분명하니까. 너를 위해 이혼한 것도 분명 네 재력과 권력을 탐내서일 거야.”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반승제는 서류를 들면서 또다시 화제를 돌렸다.“회의가 끝난 다음에는 BK사도 다녀와야 해요.”반승제의 방어적인 태도에 반희월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사무실에서 나선 다음은 성혜인만 죽어라 노려봤다.멀지 않은 곳에 있던 성혜인은 반희월이 나온 것을 보고 금방 다가갔다. 그러자 반희월이 분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뺨이라도 후려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잡혀 허공에 멈춘 손은 아무리 기를 써도 움직이지 않았다.비서실 직원들은 흥미진진한 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