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적에 따로 요구가 있을까요?”“너무 작지만 않으면 돼. 붓 씻기 편하게 화장실도 있었으면 좋겠군.”예상 밖의 요구에 성혜인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네.”“벽은 가장 간단한 흰색이면 좋겠어. 또 다른 화가의 작품을 걸어야 하니까 따로 자리를 내줘. 인테리어도 작품이 돋보이게 해주고 국내와 국외 두 가지 파트로 나눠줘.”나라에 따라 화풍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특히 국내 화가들의 화풍이 유독 독특해서 반승제의 요구는 중요한 것이었다.“알겠습니다, 대표님.”“그리고 난 초상화는 싫어.”그 말인즉슨 화방에 걸 작품 중에 초상화는 없어야 한다는 뜻이었다.성혜인은 입술을 약간 깨물었다. 어쩐지 할 일이 많아진 것 같기는 하지만 반승제는 고용주였기 때문에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너도 스승님의 제자니까 그림을 고르는 일은 너한테 맡길게. 대략 8점 정도만 있으면 돼.”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대표님의 소장품 중에서 고를 생각은 없으신가요?”반승제는 수많은 소장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성혜인이 일을 쉽게 해결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요즘 어떤 작품을 살 수 있는지 주의 깊게 봐줘, 돈은 내가 낼 테니까. 마침 얼마 후 경매가 있다고 들었는데 너도 같이 가자. 경매에 아마 그림도 나올 거야.”성혜인은 당연히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는 공적인 일이었기에 싫다고 해도 허락해야 했다. 지금껏 쌓아온 명성을 네이처 빌리지에서 망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경매에 나온 그림은 대부분 수백억 원씩 했다. 반승제는 8점 정도를 요구했으니 화방에 걸 그림에만 2000억 원 정도를 쓰게 될 것이다.반승제는 스케줄 표를 확인했다. 경매는 3일 후에 바로 있었는데 주최 측에서는 최소 4점의 미술 작품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원래 경매에 참석할 생각이 없었지만 성혜인과 함께라면 경매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3일 후에 경매가 있네. 너도 따라와.”이는 제안이 아닌 명령이었다
성혜인의 안색은 좋지 못했다. 마치 영혼을 잃은 것처럼 초점이 흐릿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붕대가 뜨거운 물에 닿아 상처가 심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반승제는 성혜인을 끌어당기면서 그녀가 들고 있던 유리 파편을 빼앗아 던졌다. 다행히 다른 한쪽 손이 유리 파편에 베지는 않은 듯했다.“붕대가 약간 젖었을 뿐이니까 새 걸로 바꾸면 괜찮을 거야.”반승제는 성혜인이 걱정할까 봐 좋은 뜻으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게 이해했는지 피식 웃으면서 반승제를 밀어냈다.“약간 젖었을 뿐이라고요? 대표님이 보기에는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겠죠. 제 한쪽 손 따위가 고귀하신 윤단미 씨의 얼굴보다 중요할 리는 없을 테니까요.”성혜인의 오해에 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몰랐다.반대로 윤단미는 반승제가 성혜인부터 걱정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더욱 서럽게 울면서 말했다.“승제야, 봤지? 저 여자가 내 얼굴을 그어버리려고 했어. 사람이 어떻게 이 정도로 악독할 수가 있어?”윤단미의 말에 성혜인은 속이 다 메슥거렸다.“악독이요? 윤단미 씨, 제를 평가하기 전에 일단 정리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손을 다친 날 왜 윤단미 씨도 마침 손을 다치고, 또 마침 의사를 차지했죠? 저는 윤단미 씨의 얼굴을 다치게 하지 못했지만, 윤단미 씨는 제 손을 다치게 했으니 악독이라는 말은 윤단미 씨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성혜인의 눈빛에는 반승제와 윤단미에 대한 증오로 가득했다.“저와 대표님은 그냥 거래하는 사이일 뿐이에요. 그러니 윤단미 씨의 질투는 대표님한테 직접 얘기해요. 뭐든 저를 골탕 먹이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요.”반승제는 어두운 눈빛으로 윤단미를 힐끗 봤다. 그러자 윤단미는 겁먹다 못해 입술이 다 파르르 떨렸다.“나... 나 아니야. 승제야, 믿어줘.”성혜인은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빨리 진세운을 만나 상처를 봐달라고 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떠나려고
성혜인이 차에 올라탄 다음 반승제는 바로 출발하는 것이 아닌 그녀를 바라보면서 물었다.“손은 좀 어때?”성혜인은 이미 스스로 젖은 붕대를 풀고 상처를 드러냈다. 반승제는 뒷좌석에 있던 약품 상자에서 붕대를 꺼내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한층 한층 감아줬다. 지금도 이렇게 심각한 상처가 다쳤을 때는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반승제는 비수에 심장이 찔린 것만 같았다. 요즘 들어 이런 기분이 더욱 자주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반대로 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감정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붕대를 제대로 감고 난 반승제는 머리를 들어 성혜인을 바라봤다.“이번 일이 단미가 주도한 것이라고 해도 나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성혜인은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그녀의 반응에 반승제는 또다시 열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붕대를 뒷좌석으로 휙 던지고는 빠르게 출발했다.잠시 후 한 별장 앞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니 밧줄에 칭칭 묶인 남자가 보였다. 그가 바로 자기 손을 다치게 한 사람이라는 것을 성혜인은 한눈에 알아봤다. 비록 얼굴을 본 시간은 짧았지만 그 정도로 큰 고통을 준 사람을 쉽게 잊을 수는 없었다.오늘 다시 남자와 마주하게 되자 상대가 아무리 밧줄에 묶여 있다고 해도 성혜인은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녀의 어두운 안색에 반승제는 바로 사람을 제대로 찾아왔음을 직감했다.“저 사람 맞아?”“네.”성혜인이 대답하자마자 남자는 방안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곧바로 문을 사이 두고 처참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반승제는 담배 한 대를 꺼냈다. 고귀한 귀공자가 동네 양아치와 어울리는 듯한 불편한 조합이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난 그는 성혜인은 물끄러미 바라봤다.“저 사람은 반재인이라고 해. 내 사촌 형이야. 혹시 둘이 아는 사이인가?”‘만약 둘이 모르는 사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리도 없었겠지. 아니면 혹시 나한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고 가문에서 손을 쓴 건가? 그렇다면...
반재인은 또다시 피를 토해냈다. 이번에는 너무 겁을 먹어서였다. 반승제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그러니 그가 한 말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그냥 천한 여자일 뿐이잖아? 이렇게 진지할 건 또 뭔데?’이때 반재인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반승제, 너 설마...?”반재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반승제가 그의 얼굴을 꽉 짓밟았다. 마치 그가 보잘것없는 쓰레기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거기 가서 열심히 일해. 내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면 돌아오게 할 테니까.”굴욕을 견딜 수 없던 반재인은 눈가가 빨개졌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기는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그는 원래 윤단미를 만나러 가는 길에 있어야 했다. 하필이면 반평생을 좋아해 온 여자와 저녁 약속을 잡은 날에 반승제에게 끌려왔으니 불만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이... 이거 놔...”반재인의 입가에는 여전히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이를 꽉 악물면서 반항하려 들었다.반승제가 마침 반재인을 끌어내려고 했을 때 핸드폰이 눈치 없이 울렸다. 반희월이 건 전화였다.“여보세요.”반승제는 반재인의 얼굴을 밟고 있는 채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 건너편에서 반희월은 잠깐 침묵하다가 물었다.“너 재인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니?”반승제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되물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모르는 척하는 건 소용없다. 재인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네 사촌 형이 아니니. 만약 오늘 내로 내 앞에 데려다 놓지 않는다면 바로 네 할아버지께 말씀드릴 거다. 네 형이 사고를 당했을 때 이미 집안사람끼리 싸우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당부했잖니.”반승제는 짜증이 밀려와서 반재인을 툭 차버렸다. 그러자 그는 피를 토해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반희월도 당연히 반재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의 참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래서 싸늘한 눈빛으로 경고를 계속했다.“네가 페니를 위해 이런 짓을 벌였다지?
반승제의 키스는 다정함이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격렬했다. 성혜인은 숨이 막혀 히끅거리다가 무의식적으로 그의 팔을 꽉 잡았다. 근육이 붙어 있는 팔은 한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키스를 끝낸 반승제는 진득한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봤다. 그렇게 그가 아직도 여운에 잠겨 있을 때 성혜인의 냉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반재인 씨랑 윤단미 씨가 혹시 아는 사이인가요? 그것 외에는 반재인 씨가 저를 갑자기 찾아올 이유가 떠오르지 않네요. 그리고 반희월 여사님이 갑자기 전화 온 것도 이상해요. 그 새로 고자질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성혜인은 머리를 들어 반승제를 바라봤다. 그녀의 볼은 조금 전의 키스로 인해 발그레해져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성적이었다.“대표님, 조사는 이 세 사람의 관계부터 하면 되겠네요. 혹시 윤단미 씨가 임신했다고 마음이 약해진 건 아니시죠?”조금 전 차 안에서만 해도 반승제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했지만, 정작 반재인 앞에서는 윤단미의 ‘윤’ 자도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반승제가 범인을 찾아준 건 고맙지만, 윤단미가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을 일부러 외면하는 것도 사실이었다.반승제는 아직도 한 손으로 벽을 짚은 채로 성혜인을 품에 가두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성혜인의 다치지 않은 쪽 손을 잡고 끈질기게 시선을 마주칠 뿐이었다.이때 성혜인은 갑자기 손을 거두면서 말했다.“만약 윤단미 씨의 책임을 묻지 않을 생각이라면 이번 일은 이쯤에서 끝내죠. 어차피 저는 윤단미 씨를 이길 능력이 없으니까요.”“복수라면 네가 이미 직접 했잖아. 근데 뭘 더 원하는 거야?”성혜인은 고개를 떨궜다. 조금 전 그가 반재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얻은 얄팍한 감동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제가 너무 큰 걸 원했나 보네요. 이만 돌아가시죠.”“화났어?”성혜인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에게는 화를 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승제는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다. 반승제에게 윤단미보
‘이건 또 무슨 태도야?!’반승제는 운전대를 꽉 잡더니 홧김에 페달을 꽉 밟아버렸다. 그렇게 BH그룹의 사무실에 도착한 다음 윤단미에게 전화를 걸었다.같은 시각, 윤단미는 기다리다 못해 집으로 돌아갔다. 반재인이 지각할 때부터 그녀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반승제가 금방 조사하겠다고 선언했으니 반재인이 잡혀갔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곧바로 반희월에게 연락했다.반희월에게 아들이라고는 임경헌 한 명밖에 없었다. 반씨 가문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줄곧 가문과 동떨어져 지냈다. 반희월도 성격이 부드러운 편이라 집안사람들끼리 싸우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윤단미는 초조한 마음으로 반재인이 답장을 주기를 기다렸다. 그가 자신을 팔아버리지는 않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이때 반승제가 전화를 걸어왔다. 윤단미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수락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승제야...”전화 건너편에서 반승제는 서류를 훑어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반재인은 네가 부려 먹은 거야?”“승제야, 난...”“오늘 일로 다시 페니를 찾아가는 일은 없어야 할 거야. 넌 집에서 형한테 뭘 받았는지나 생각하고 있어.”윤단미는 화가 나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내가 그 여자 때문에 무슨 일을 당할 뻔했는지 몰라?!”“그 여자가 너 때문에 무슨 일을 당할 뻔했는지는 모르는 거야? 혹시 네가 진짜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윤단미는 말문이 막혔다. 눈빛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그녀는 알고 있다. 만약 반승제와 싸우게 된다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만 벌어지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분노를 꾹꾹 억누르면서 피비린내가 맴도는 입으로 말했다.“알았어. 페니는 찾아가지 않을게.”반승제는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윤단미는 이를 악물고 핸드폰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그리고 방안에서 부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산산이 깨부쉈다. 그렇게 한참 후에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밖에 있는 사람 아무나 불러왔다.“디자이너 년의 집안 상
반승제가 이토록 중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진세운은 바로 최근 들었던 한 소문이 떠올랐다.“혹시 네가 그렇게 애지중지한다는 디자이너야?”반승제는 딱히 부정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손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야. 절대 후유증이 남아서는 안 돼. 그러니 오늘 밤에 바로 와줘.”“그냥 병원으로 오라고 하면 될 거 아니야.”사실 반승제는 성혜인을 호텔로 부를 변명거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다친 손 외에는 별다른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핸드폰을 사이 두고 진세운은 반승제의 꼼수를 알아차린 듯 씩 웃었다. 그도 마침 도대체 어떤 여자가 반승제의 정신을 쏙 빼놓았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다.“좋아. 오늘 저녁 9시, 그쯤이면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아.”반승제는 진세운과 통화를 끝내자마자 바로 성혜인에게 연락했다.핸드폰 화면에 떡하니 뜬 반승제의 이름을 보고 성혜인은 무의식적으로 받기 싫다고 생각했다.“여보세요.”“오늘 저녁 9시. 유명한 의사를 불렀으니까 호텔로 와. 너 많이 걱정했잖아.”조금 전 금방 병원에서 진세운과 만나고 온 성혜인은 이미 마음을 놓고 있었다. 강민지의 말로 진세운은 제원에서 가장 유명한 외과 의사이니, 반승제의 호텔에 가봤자 별다른 진찰은 받지 못할 것 같았다.“됐어요.”“...내 친구랑 이미 얘기 끝냈어. 외국에서 상도 많이 받은 애라 후유증이 남지 않게 잘 봐줄 거야.”“손은 괜찮아요.”“이미 다 얘기 끝냈다니까?”성혜인은 포레스트에 거의 도착하고 있었다. 그녀는 빨리 내일 경매를 위해 준비해야 했다. 무슨 영문인지 일 년이나 밀린 경매 뒤에는 무시무시한 내막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내막은 아마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만 알 것이다.“네이처 빌리지의 건이 아니라면 이만 끊을게요.”반승제는 속에서 불이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넌 왜 항상 잘 해줘도 고마운 줄은 모르는 거야?”뚝.성혜인은 단호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포레스트에 들어간 다음에는 저녁 식사에 국물을 빼달라고 유경아에게 당부
반승제는 설씨 가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일찍이 해외로 이민해서 영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흑백 영화로 시작해서 지금으로 발전하기까지 어디에서나 그들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모스카 시상식도 그들의 재력으로 운영되는 것이었다.설씨 집안에는 아들 둘, 딸 하나가 있었다. 두 명의 아들은 또 성격이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유명했다. 큰아들은 반승제가 해외에 있을 때 만나본 적 있는데 조용하고 점잖은 것이 벌써 완벽한 후계자의 모습을 갖췄다. 둘째 아들은 비록 직접 만나본 적 없지만 해외에서 카사노바로 꽤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만약 설씨 가문의 딸이 친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여러 세력이 동요할 것이다. 영화판을 주름 잡는 설씨 가문의 HW그룹이 수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한때 회장인 설의종이 살해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어차피 공부는 진작 끝내고 졸업증까지 받았어. 그래서 자료 찾기 편한 국내로 일찍 돌아왔지.”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의 집안일에 그다지 관심 없었기 때문이다.“시환이 말로는 BH그룹이 영화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던데? 그러면 너도 이제 설씨 집안사람이랑 만나게 되겠다.”진세운은 이렇게 말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약품 상자를 들어 올렸다.“나는 출근하는 동시에 설씨 가문 친딸의 소식까지 알아봐야 해서 진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그러니 미스 애지중지한테는 병원으로 직접 오라고 해.”진세운은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버렸다.문이 닫힌 다음 반승제는 서류를 내던지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 10분이나 지났을까, 윤단미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강동의 땅에 관해 물었다.“승제야, 우리 세한이 내일 입찰에 참여할 건데 네가 보기에는 얼마에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아?”반승제가 대답하려는 찰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문밖에 서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성혜인이었다.반승제의 눈빛은 순간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윤단미가 무엇을 물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