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는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최근 해외 계열사에 문제가 생겨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래서 최근 이틀 동안 최대한 빨리 본사 일을 마치고 출장을 가야 했다.윤단미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오전에 금방 BH그룹까지 찾아가서 자랑했으니 말이다. 어쩐지 성혜인에게 당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만약 이 모든 것이 다 성혜인이 짠 덫이라면 바보와 같이 뛰어드는 자신이 퍽 우스웠겠다고 윤단미는 생각했다. 그녀가 득의양양해서 문자를 보냈을 때도 성혜인은 비웃었을지도 모른다.이런 생각에 윤단미는 분노를 견딜 수가 없었다. 가짜 그림을 산 것이 들통났을 때보다도 쪽팔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빚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복수는 잠시 뒤로 미뤄뒀다.“승제야, 나 대신 이한 씨한테 잘 좀 말해주면 안 돼? 네 말이라면 무조건 들어줄 거야. 이번 일 나한테 진짜 중요하단 말이야.”윤단미는 핸드폰 건너편에서 대성통곡을 했다.반승제는 신이한과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대뜸 전화해서 부탁하기가 약간 불편했다. 하지만 그가 고민하기도 전에 심인우가 들어오며 10분 후에 회의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해외 계열사에 관한 회의였다.출장을 가기 전까지는 아마 끝도 없이 회의해야 할 것이다. 윤단미의 일에 신경 쓸 시간 또한 없었다. 그래서 반승제는 그냥 신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신이한은 반승제가 전화 온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진짜 윤단미를 위해 나서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앞에 앉아 있는 성혜인을 힐끗 바라봤다.성혜인은 누가 전화 온 것인지 예상했는지 말없이 머리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마침 레스토랑에 함께 있었다. 신이한과의 일을 비밀리에 해나가기 위해서는 늦은 시간에 따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신이한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수락 버튼을 누른 다음에는 일부러 스피커폰 모드로 하고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반 대표님이 웬일로 저한테 전화를 다 하세요?”신이한의 말투는
“페니 씨,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성혜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반승제의 전화에 전혀 영향받지 않은 듯 덤덤하게 말했다.“저는 윤단미 씨한테서 4000억 원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2000억 원으로 44%의 지분을 회수했고, 나머지 2000억 원으로는 윤단미 씨의 지분을 회수할 생각이에요.”신이한은 처음으로 성혜인을 건드린 윤단미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자기 돈으로 성혜인이 지분을 100%까지 모으도록 도와줬으니 말이다.성혜인은 돈 한 푼 쓰지 않고 SY그룹을 얻었다. 덕분에 반승제는 신이한에게 신세를 지고 말았다. 그녀의 지적인 모습에 신이한의 심장은 또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장하리는 같은 날 저녁 세한그룹에 연락해 2000억 원으로 윤단미의 지분을 사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지분을 팔고 나면 윤단미는 더 이상 SY그룹의 사장이 아니게 되고 빚 또한 책임지지 않게 된다.윤단미는 주식을 위해 찾아온 장하리가 신이한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반승제가 얼마 전 금방 그녀를 위해 나서줬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닥치는 대로 계약서에 사인해 버렸다.저녁 10시, 장하리는 계약서를 들고 로즈가든으로 가서 성혜인을 만났다. 짧은 이틀 동안, 정신없이 바쁘기는 했지만 그래도 성혜인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성혜인은 계약서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더니 핸드폰을 꺼내 윤단미에게 문자를 보냈다.「단미 씨, 고마워요.」윤단미는 아직 성혜인의 문자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저 그녀가 또 멍청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윤단미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해도 그녀가 SY그룹에서 퇴출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쯧, 상황 파악도 못 하는 멍청한 년 주제에...’이튿날 아침, 윤단미는 눈을 뜨자마자 SY그룹에서 발표한 소식을 보게 되었다. 성혜인이 어마어마한 지분과 함께 사장으로 복귀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고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아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SY그룹의 임원진 중에는 아무도 성혜
온시환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반승제를 바라봤다.얼마 전 BH그룹은 온시환의 대본에 투자하는 것을 계기로 엔터 사업에 진출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오늘 BH그룹에서 찾은 감독과 미팅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반승제의 사무실에 들렀다.“성혜인 씨 말이야, 꽤 대단한 것 같지 않아?”통화를 하고 있던 반승제는 미처 대답하지 못하고 온시환에게 소파에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온시환은 그가 바쁜 것을 보고 말없이 소파로 가서 앉았다.한 번 시작된 통화는 두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골치 아픈 일들을 해결하느라 애썼다. 이때 심인우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대표님, 비행기는 세 시간 뒤 출발합니다.”반승제는 이제야 핸드폰을 내려놓고 미간을 눌렀다.“임원진한테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해줘요.”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한쪽에서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반승제는 온시환을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온시환은 성혜인에 대해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반승제가 너무 바빠 보였기 때문이다.“출장 가는 거야?”“응.”반승제는 휴게실로 가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온시환도 그를 방해하지 않고 이만 밖으로 나갔다.반 시간 만에 출국 준비를 끝내고 차에 올라탄 반승제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협력사와 회사 임원 외의 연락은 여전히 없었다. 물론 성혜인도 포함해서 말이다.반승제는 어두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나마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리를 돌리며 심인우에게 말했다.“이번 출장은 이틀 정도 걸릴 것 같으니까, 이틀 뒤의 귀국 비행기 티켓을 미리 사줘요.”“네, 대표님.”반승제는 아무에게도 출국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성혜인도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같은 시각, 성혜인은 로즈가든에서 유경아의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어젯밤 경비가 포레스트에서 침입자의 흔적을 발견했어요. 회장님께서 직접 마련하신 별장이라 지금껏 도둑 한 번 든 적 없는데, 혹시 요즘 사모님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성혜인은 임신 테스트기를 한쪽에 놓고 겨울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 나서야 다시 포레스트로 출발했다. 유경아는 마치 그녀가 돌아올 줄 알았다는 듯이 기다리고 있다가 야식이 필요한지 물었다.제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을 꼽으라면 성혜인은 단연 포레스트를 선택할 것이다. 포레스트는 돈이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반태승이 그녀에 대한 마음과 정비례하기도 했다.유경아의 질문에 성혜인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은 야식을 즐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일단 방으로 가서 책상 서랍을 열어봤다. 텅 빈 노트북, 편지, 반지... 다행히 걱정하던 물건들은 전부 다 있었다.사실 성혜인도 자신이 왜 이 물건들부터 확인하는지 몰랐다. 그저 상대가 노리는 것이 이것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이것 외에는 사라져서 안 될 물건이 없기도 했다.서랍을 닫은 성혜인은 불안한 마음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참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서야 화장실에 들어갔다.영원할 것만 같은 기다림이 지속되고 있을 때 유경아가 노크하며 말했다.“사모님, 안색이 안 좋아 보이길래 따듯한 우유를 준비해 왔어요. 요즘은 별장에서 남아서 편히 쉬세요.”성혜인은 우유를 마시고 나서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임신 테스트기에 뜬 선명한 두 줄을 보고서는 손에 힘이 풀려 테스트기를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 머릿속은 창백해졌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임신 테스트기를 쓰레기통 속에 버린 성혜인은 터덜터덜 밖으로 나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분명히 번마다 피임을 제대로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머리카락을 헝클었다.그렇게 뜬 눈으로 보낸 밤이 지나고 해가 떴다. 유경아는 성혜인의 방 앞으로 가서 아침 식사가 준비됐음을 알렸다. 성혜인은 짙은 다크서클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사모님, 요즘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성혜인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머리를 절레
백연서는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곧바로 핸드폰을 쳐들고 사진 증거를 남겼다.‘내가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그렇게 경고했는데도 감히 사고를 쳐? 역시 재수 없는 년이야!’백연서는 심호흡하고 나서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반승제가 아닌 심인우였다. 반승제는 오늘 하루 종일 회의할 예정이라 아예 핸드폰을 그에게 맡겨버렸다.“안녕하세요, 사모님. 저 심 비서입니다.”“내가 긴히 할 말이 있으니까, 승제한테 전화 좀 바꿔줘.”심인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대표님께서는 지금 회의 중이시라 대략 네 시간 후에 통화할 수 있습니다.”백연서는 단 일 초도 기다릴 수 없어서 일단 윤단미에게 전화를 걸었다.“단미야, 너 혹시 승제랑 혜인이 어떤 사이인지 알고 있니?”안 그래도 기분이 언짢았던 윤단미는 성혜인의 이름을 듣자마자 흥분하며 대답했다.“두 사람 이혼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승제가 그 여자를 싫어한다고 했잖아요!”윤단미의 대답을 듣고 난 백연서는 약간 시름이 놓였다. 하지만 아무리 반승제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해도 이 소식이 퍼져나가면 반씨 집안이 창피를 당할 것이기 때문에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이젠 하다 하다 바람까지 피워? 그래도 덕분에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네.’안 그래도 성혜인을 집안에서 쫓아낼 구실을 찾고 있던 백연서는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기분 좋은 듯 미소를 지으며 포레스트를 떠나 김경자에게 전화를 걸었다.보수적인 김경자는 이런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김경자는 집안 어르신이 첩을 들이는 모습을 본 적 있는 건 물론이고 남존여비의 사상이 진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원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손주며느리가 다른 남자와 바람나서 애까지 배었다니, 김경자는 당연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백연서의 말을 듣자마자 테이블을 쾅 소리 나게 내리치며 몸을 일으켰다.“승제가 관심
머리가 어질어질 했던 성혜인은 뒷좌석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다행히 몸에 힘만 풀렸을 뿐 정신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차가 병원 앞에 멈춰 서는 것을 보고 성혜인은 백연서가 낙태를 원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손잡이를 꽉 잡으며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다. 하지만 두 명의 경호원은 사정없이 그녀를 차 밖으로 끌어냈다.성혜인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힘으로 경호원의 손을 깨물더니 휘청휘청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 전 금방 약을 들이마신 관계로 100m도 달리지 못하고 땀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몸이 힘든 것보다는 심적으로 두려운 게 더 컸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아무리 계획에 없던 아이라고 해도 그라면 이토록 냉정하게 병원으로 끌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짐승만도 못한 대우도 하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최선을 다해 달리면서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으로서는 정체를 들킨다고 해도 아이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그녀가 스스로 결정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아이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백연서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반승제밖에 없는 상황에 그의 핸드폰은 애석하게도 꺼져 있었다. 마지막 희망의 불씨가 사그라들고 경호원들이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성혜인은 급한 대로 반태승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하지만 전화를 걸기도 전에 경호원이 핸드폰을 차 냈고 그녀도 덩달아 바닥으로 쓰러졌다. 경호원들이 서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젖 먹던 힘까지 짜냈는데도 도망간 거리는 500m밖에 안 됐다. 성혜인은 바닥에 쓰러진 다음에도 핸드폰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경호원이 더욱 먼 곳으로 차버리며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성혜인은 땀인지 식은땀인지 모를 것으로 흠뻑 젖은 채 창백한 안색으로 쓰러져 있었다. 백연서는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팔짱을 끼며 말했다.“네가 원하지 않는대도 어쩔 수 없어. 명색이 반씨 집안 며느리인데, 혼외자식이 웬 말이니?”성혜인은 손톱이 살결을 파고들 정도로 주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반태승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백연서에게 빌어봤자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다.그러나 만약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어 연유를 잘 설명한다면 그가 아이를 지키기를 희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아무리 희박하다 해도 가능성이 있긴 있었다.백연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턱을 들어 올렸다.“사람 들고 들어가요, 수술은 이미 예약해놨으니.”“어머님...”백연서의 말투가 매우 담담했다.“성혜인, 승제에게 전화를 걸면 걔가 아이를 지키라고 할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걔가 널 좋아한다고 얘기한 적 있니?”성혜인은 갑자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현재 반박할 기력조차 없었다. 온몸이 나른해져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백연서는 반씨 가문의 힘을 빌려 곧바로 비밀통로를 통해 성혜인을 수술실로 옮겼다.그녀는 성혜인이 난리를 칠 게 두려워 의사에게 전신마취를 해줄 것을 부탁했다.의사도 몇 년 동안 반씨 가문과 합작한 적이 있는지라 순순히 백연서의 말을 들었다.“여사님, 제가 검사를 좀 해보려고 하는데, 정말 아이를 원하지 않으십니까?”“당연하죠.”백연서는 성혜인을 극히 싫어하고 있었다.게다가 반승제가 제 아들이었기 때문에, 어찌 됐든 간에 그의 체면을 잃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의사는 백연서의 뜻을 확인하고는 곧장 수술실의 문을 닫았다.하지만 반 시간이 지나자 수술실 문은 다시 열렸다. 그러고는 의사가 나오며 백연서에게 말했다.“여사님, 검사를 해봤는데 정말 임신을 한 게 맞습니다. 하지만 자궁외임신이라 반드시 유산을 시켜야 합니다.”백연서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코웃음을 쳤다.‘성혜인, 이게 네 업보인가?’아이는 본래 태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그럼 수술 해주세요.”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신 기간이 짧으니 무통 유산을 추천해 드립니다. 전혀 아프지가 않아요. 이미 정맥에 마취를 주사했으니 그럼 수술을 진행하겠습니다.”백연서에게 그런 건 전혀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어차피 자궁외임신이라
포레스트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이곳으로 왔는지도 몰랐다. 침대에 엎드리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베개가 전부 젖어버렸고 그녀의 몸은 미세하게 떨렸다.그녀는 침대 시트를 꽉 쥐고 입술을 꽉 깨물고 울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안간힘을 썼다.그때, 유경아가 문을 두드렸다.“사모님, 국을 끓여왔는데 이거라도 좀 드세요.”유경아는 그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마치 수면 부족인 마냥 요 며칠 성혜인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그녀의 말소리를 들은 성혜인은 침대에 엎드려 이를 악물고 감정을 추슬렀다.“저 안 먹어요, 아주머니.”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은 거라고 여긴 유경아는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국을 보온시켜둘 테니 혹시라도 밤에 드시고 싶으면 주방으로 가세요.”“네.”성혜인은 그저 목이 아플 뿐이었다. 잠시 엎드려 있던 그녀는 문득 또 그 편지와 반지가 떠올랐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꺼내와 편지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편지는 어느새 손에서 젖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차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눈물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그렇게 성혜인은 울며 잠이 들었다.새벽 두 시쯤, 그녀는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일어나 구토를 했다.위가 너무 아파 몸을 부들부들 떨며 겨우 위약을 찾아냈고, 성혜인은 즉시 입안에 넣어 씹어먹었다. 그러고는 수면을 돕는 약까지 한 알 먹고 나서야 다시 침대로 돌아가 엎드려 누웠다.그녀가 몽롱해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강민지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그 시각, 강민지는 병원에 있었다. 신예준의 사촌 여동생 상태가 갑자기 악화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가 수술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모든 수술에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특히 머리를 여는 수술은 그중에서도 가장 리스크가 크다.신예준의 사촌 여동생은 수술이 실패할까 봐 걱정했다.다행히 오늘 밤 응급처치를 받아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꽃을 한 아름 안고 병원에 온 강민지는 비로소 그